가을이라고 하여 준비해보았다, 라고 하고 어머나, 배수아 언니 상 탔나요? 일단 그건 다음에, 요즘은 잘 읽지 않고 매일 놀고 있다. 놀다보니 내 뇌 안에 들어있는 건 우동사리인가 라는 생각을 때때로 하기도 하지만. 아이에게서 공부를 하지 않고 책도 안 읽고 맨날 놀기만 한다고 한소리 듣고 이 어미가 마냥 놀기만 하는 건 아니란다 아가, 으흠, 하고 읽다 만 책을 모아 탑을 만들어놓으니 이거이거이거 다 안 읽었네, 이거이거이거 읽다 관뒀네, 이거이거이거 이햐 깨끗한 거 봐라, 하며 계속 뼈를 때리는 소리만 해서 다 읽을 거야! 버럭 소리를 지르긴 질렀는데....... 놀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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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0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0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젤소민아 2024-10-10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존재와 무....진정한 벽돌책!

수이 2024-10-10 13:06   좋아요 0 | URL
차례만 봤는데 아주 재미가 없지는 않을 거 같아요 🐬

공쟝쟝 2024-10-10 1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아니 책탑이 너무 ...... 너무 머싯습니다... 황홀합니다.... 이런 거 가을에 읽는 여성 누구인가... 저와 결혼해주십시오~! (또 은오 빙의)

수이 2024-10-10 21:01   좋아요 0 | URL
왜 그래 자꾸 비혼주의자 아니었니? 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10-10 1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까치 저 시리즈 ......... 으헝!

수이 2024-10-10 21:01   좋아요 0 | URL
한나 아렌트까지 읽고 넘길게요 기다려요
 
미셸 푸코 - 권력의 꼭두각시로 살지 않기 위해 오늘을 비추는 사색 5
하코다 데쓰 지음, 전경아 옮김 / 까치 / 202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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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별 다섯,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이행되어가는 늦된 과정을 거치는 나에게는 소중한 읽기였다. 푸코가 어렵지 않다는 걸 하코다 데쓰의 글을 통해 몸으로 앎. 푸코 입문서로 훌륭하다. 이런 글을 써주면 어때? 한국에서 푸코 연구하시는 분들. 보들레르가 제일 신선하여 보들레르 간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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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10-07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읽을래요!

수이 2024-10-08 07:45   좋아요 1 | URL
좀만 기다려요!
 

이 장에서는 자기와 타자를 통치하는 사람이 "국가"로 확대되고, 통치성 이론이 근대 국가의 권력기술론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고찰했다. 통치 문제는 16세기에 확산되었다. 반종교개혁에 의해서 고해성사가 제도화되고 세속국가의 주권 이론이 고조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영토가 아닌 사람을 통치하는 방법론이 논의된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종교적이면서 세속적인 통치의 대상이 되고 인간을 통치하기 위한 기술이 발전한다.
이 통치술은 국가 이성, 고전적 자유주의, 신자유주의의 세 가지로 크게 나뉘었다. 푸코가 특히 신자유주의에 주목한 이유는 그것이 사회의 구성단위를 "기업"으로 보고, 완전경쟁을 실현시켜야 하는 이념으로 삼으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시장이 아닌 사회 환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새로운 형태의 통치성이었기 때문이다. - P103

타자 통치는 지배와는 다르게 타자의 행동에 틀은 잡을지언정 완전히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통치란 타자의 확정되지 않은 행동에 구조를 넣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제2장에서 언급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자기 배려에서도 발견된다. 자기 통치는 정치 엘리트층에게는 타자를 통치하는 조건이 되고, 더 넓은 층에게는 더 좋은 인생을 보내라는 권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의무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에 속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통치의 정의는 권력론의 정의와 공통된다. 권력이란 자유가 있는 곳에서만 작동하는 관계적인 것이 - P109

며, 그 점에서 주체에 행위의 자유가 없는 지배와는 구별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푸코는 틈만 나면 "권력은 그 자체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권력을 가치중립적 도구나 타도의 대상으로 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권력관계는 권력을 행사하는 쪽과 행사를 당하는 쪽이 서로 작용하는 장이며, 거기에 주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사전에 정해져 있지 않다. 다르게 말하면, 권력관계에 있는 주체에게는 늘 지금과는 다른 행위를 할 힘이 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미시적 권력 분석에 대한 방법론을 언급하면서 지식의 의지와 비슷한 표현을 사용한다. 이에 따르면 권력을 미치는 측과 당하는 측의 관계는 언제든 대결할 수 있는 결코 진정될 수 없는 관계이며, 관계 자체는 힘끼리 서로 부딪침으로써 일시적일지라도 반전될 가능성이 있다. 그 권력은 사회부터 개인의 몸까지 관통하는 것이어서 반격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P110

그러나 푸코는 말한다. 사목과 관련한 이러한 거대한 반란조차 사목관계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고. 이러한 반란은 "사목과 관련한, 다시 말해 통치받을 권리와 어떻게 통치받고, 누구에게 통치받을 것인가를 아는 권리와 관련된 것으로 발전했다. 여기에서 핵심은 종교개혁 이후의 정치적 흐름을, 농민 전쟁에서부터 30년전쟁까지 "반봉건 혁명"이라고 부를 수는 있어도 "반사목 혁명"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성서」의 독일어 번역본을 통해서 사람들이 성서의 말씀을 직접 접할 기회를 만든 이유는 그때까지와는 다른 사목적 인도를 바 - P115

랐기 때문이다. 사목권력의 근본적인 재편을 가져온 사태는 지금까지 여러 번 있었지만, 사목을 역사에서 추방하자는 "혁명"은 서양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기독교회에 국한해 말하면, 오히려 대항품행에 속하는 움직임을 거듭 받아들이고 자기 쇄신을 꾀함으로써 통치성의 위기를 넘어 자신의 명맥을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의 기독교 역사를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목관계의 역사로 이해하면, 통치에 "끝"이 없다고 해도 비관할 일은 아닐 것이다. 권력관계가 끊임없이 변경된다는 점을 받아들이면 이제 사목, 다시 말해서 통치관계가 폐기되지 않았는데도, 다른 통치를 바라는 대항품행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커다란 과제가 된다.
세속의 역사에서는 누가 대항품행의 주체인가? 푸코는 국가에 종속되기를 거부하고 국가가 제시하는 진리와는 다른 진리로 자신을 집단으로 인도하는 시민 사회, 주민, 민족, 곧 국민이 그 주체라고 했다. 문맥으로 - P116

보자면 국가 이성에 대항하는 정치적 자유주의, 자유주의에 항거하는 민중봉기와 혁명 운동, 제국주의와 식민지주의에 항거하는 내셔널리즘과 혁명 운동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또한 동시대적으로는푸코가 1950년대 이후 줄곧 관심을 가져온 동유럽 공산권나라들의 반체제파나, 대항품행이라는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 문제의식을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가운데 "정치적 영성"이라는 논쟁적 개념으로 고찰했던 1970년대 말 이란의 민중봉기를 들 수 있다. - P117

진리가 자기와 타자의 통치와 관련이 있다는 논점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인데, 푸코는 이것을 칸트로부터 보들레르에 이르는 비판으로서의 생존 미학과 확실하게 교차시킨다. 그는 철학적 파레시아에서 인도의 대상, 자기 배려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은 "삶", 다시 말해서 자기의 존재, 사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을 선고한 민주주의 제도를 멀리하고 철인왕을 육성하여 이상의 정치를 실현시키려다가 좌절한 플라톤이 아니라, 그와 동시대인이자 플라톤이 "미친 소크라테스"라고 말했던 시노페의 디오게네스sinope Diogenēs를 비롯한 키니코스Cynicos(유)파에서 "진정한 삶"의 실천, 삶을 통해서 진리를 드러내는 행위를 발견했다. - P125

푸코의 관심 영역은 인문학, 사회과학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었다.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명 "사고 체계의 역사"가 그 업적에 걸맞을 것이다. 그는 1960년대 내내 동시대에 존재하며 겉보기에는 차이가 있는 지식이나 실천이 물밑에서 공유하는 체제 혹은 규칙에 대해 비연속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밝히는 연구를 "고고학"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1961년에 박사논문 [광기와 비이성] 으로 출판되었던 광기의 역사에서는 서양 사회에서의 "광기"를 역사적인 "경험"으로 파악하고 그 변천을 고찰했다. 차기작 [임상의학의 탄생 Naissance - P139

de la Clinique』(1963)은 개인을 지식의 대상으로 삼은 근대의학에 주안을 두고 병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있었다고 논했다. 그리고 「말과 사물Les Mots et les Choses』(1966)은 서양의 인간과학을 광범위하게 다루었고, 그 진전을 공통기반인 "에피스테메episteme"의 단절적 이행으로 묘사했다. 이처럼 전개된 접근법을 방법론적으로 다듬은 것이 지식의 고고학L‘archéologie du Savoir』(1969)이다. 1970년대에는 권력과 진리, 주체에 역점을 둔 역사분석을 계보학이라고 불렀다. [감시와 처벌](1975)에서는 본문에서 논한 규율권력론이, "성의 역사" 제1권 지식의 의지(1976)에서는 생명정치론이 묘사되며 권력론의 확장을 도모한다. 제2권 쾌락의 활용」(1984)과 제3권 자기 배려」(1984)는 고대 그리스, 로마를, 사후 출판인 제4권 육체의 고백(2011)은 교부 시대와 초기 수도제를 대상으로, 전체적으로 이교 세계에서 중세 기독교사회까지의 진리와 주체성의 관계성을 다루었다. [나, 피에르 리비에르 Moi, Pierre Rivière』(1973)와 [에르퀼린 바르뱅Herculine Barbin』(1978)은 각각 19세기 중반의 존속살인 - P140

자와 인터섹스 당사자의 수기와 관련 문서(전자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세미나의 성과도 포함)이며, 19세기의의학적 지식-권력과 엇갈린 사람들의 기록으로서 출판되었다. 또한 가족의 소동Le Désordre des Familles』(1982)은 제1장에서 언급한 봉인장을 아카이브에서 골라 수록한 것이다.
또한 주요 텍스트로는 발언이나 다양한 글들을 정리한 말하기와 쓰기Dits er Écrits』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1970년부터 1984년까지 열린 강의가 "미셸 푸코의강의 Cours de Michel Foucault"라는 제목의 13권짜리 전집으로 간행되었다. 그의 취임 강연은 ‘담론의 질서L‘ordre duDiscours』(1971)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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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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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10-07 14: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즈ㅏ 푸코!

청아 2024-10-08 1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져! 나도 불끈! ㅋㅋㅋㅋ
 






















그 일련의 과정들이 내가 나에게 내리는 하나의 테스트였다는 걸 낮은 첼로음을 듣다가 스스로 알았다. 사가와 치카를 조금 더 읽었다. 여름이 끝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왜 여름이 시작되고 여름이 끝나는 걸 두려워했을까. 가을을 맞이하고난 후에야 알았다. 왜 그렇게 불안에 떨었는지를. 왜 그토록 밀어내지 못해서 난리법석을 떨었는지를. 왜 버리라고 소리 소리를 질러댔는지를. 왜 그 지랄 발광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았다. 그리고 이것이 일련의 테스트라는 걸 그 누구도 말한 적은 없지만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걸 한 사람 탓으로 돌리고 싶어 했다는 걸. 한 사람이 곁에 없기에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온갖 히스테리를 부렸다는 걸 알았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한참 전부터 시작되는 거겠지만. 아침 무리하지 않고 스트레칭을 하고 조카들 데리러 이동. 민이는 간만에 수학 문제 풀다가 새벽 두 시 넘어 잠들었다. 조카들 데려와 집에 당도하면 그때쯤 일어날듯. 늦은 밤 디카페인인 줄 알고 마신 에스프레소는 카페인이 잔뜩 들어있는 거였다. 일어났다가 다시 잤다가 일어났다가 그러는 동안 계속 웃음이 파도처럼 일어났다. 고양이가 품에 안겨 계속 그르렁거린다. 우리가 한데 다리를 겹쳐 잠든 그 수많은 밤들, 네 털뭉치가 내 맨발에 닿지 않을 날이 오면 나는 절망에 빠져 온몸의 털을 뽑고 싶을 정도로 광분하게 될 텐데 말이 끝나자마자 마치 알아들은 것 마냥 내 배 위에 올라와 그 거대한 덩치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맡길 때 또 웃음이 일어났다. 슬픔을 앞당겨 가불받지 말자. 어떤 형식으로든지 온전하게 머물러 있으리라는 걸 알았으니까.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고 비행기를 타고 대한민국을 떠나고 있다는 걸 아는 동안, 솔직히 이러한 모든 것까지 내다본 건 내 마음이었다. 언제 올 거야? 내게? 라고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는 그에게 물었다, 나 혼자서. 아마 내게는 그게 시작점이었던 거 같다. 그걸 후회하겠다는 건 아니다. 이러한 것들이 내 삶의 요소가 되리라는 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마음이론 안에 깃들어있는 그 보편성이 진리일 수도 있겠다. 내가 원하는 건 그 이론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 진리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 헤글에 맞춰서 나를 맞출 생각이 없다는 거다. 내 마음이 그러하고 우리 관계가 그러하고 그러한 것들이 지극히 자연스럽다는 그런 거 혹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그런 거. 물론 그럴 수 있다. 그걸 거부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지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그 마음. 시간이 흘러서 나중에 이불킥을 찰 정도로 부끄럽게 여겨질지라도 지금은 이걸 따라가보자. 다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가을이 오면 따뜻한 옷감으로 된 싸구려옷을 걸치고 뭔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일종의 고행이었다. 지금은? 가봐야 알겠지. 그것들을 기록할 수 있다면 된 거다. 바라는 게 지금으로서는 그거니까. 루시드폴을 들으면서 선크림을 바르고 있다. 어떤 것들을 읽어야 할지 대략 감 잡아가는 중. 왜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걸 두려워해야 하는가. 두려움을 억지로 주입시키는 것 또한 하나의 길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왜 내가 그 두려움을 내 소유로 만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왜 우리들이 바보들의 배에 탑승하기를 주저한다고 여기는가 말이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매일 마주하면서도 좋았던 그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는 그때도 그러했고 지금도 나의 그 말을 기억하는 후배가 신기하기만 했다. 8년이 훌쩍 흘렀고 8년이 마치 어제였던 것 마냥 서로 마주하자마자 덥석 서로를 끌어안으면서 8년의 시간을 먼지로 만드는 모션이 지닌 것들. 누나 정확히 15키로 빠졌어, 라고 해서 어떻게 알았어? 놀라서 물어보니 나 패션 전공한 남자야. 왜 이래. 그래서 또 웃었다. 이것도 알고리즘인가 싶었다. 우연에 우연을 겹쳐놓으면 그것이 알고리즘화된다는 걸 마치 운명처럼 믿는 거 같기도 해서. 한때나마 공통분모였던 이들의 안부를 서로 주고받고. 그 말이 지닌 힘 안에서 또. 민이는 내 후배를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고 후배는 예의 바르게 가슴과 가슴이 닿지 않을 정도로 아이의 어깨를 안아주며 토닥거렸다. 우리 꼬꼬마 아가씨가 이렇게나 커버렸다니, 라고 중얼거리며. 지나고보니 얼마나 어렸고 어리석었는지 또 알았다. 8년 전만 해도 모든 것들을 다 해보겠다고 까불고 다녔구나. 겁대가리 상실하고. 지쳤는가? 설마. 관계의 본질을 따질 것도 없이 옭아매기 위해서 다가갔던 건가 물어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 언어가 나를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은 착각일지도 모른다. 끝없이 과자와 과일을 먹고 있는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있는 정신이 약간 나간 여자를 마주보면서 문장. 저 여자와 내가 다른 게 뭐가 그리 있을까 싶은. 커피는 식어가고 여자가 아이패드 속 화면을 바라보면서 가짜 웃음을 짓는 동안 내가 내 감정에 몰입해서 바로 보지 못했던 게 무엇이었더라 헤아리고 있다. 놓친 것들. 그 속눈썹들. 소중한 걸 놓칠뻔 했구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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