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임 후 간단하게 점심 먹으면서 와인을 한 잔 하기로 했는데 밖에서 마시기 애매모호한 시간일 거 같아, 라는 연장자의 말을 듣고 그럼 간단하게 점심 먹으면서 콜키지만 내고 마시죠, 했더니 오 좋은 생각이야, 해서 그러기로. 아무래도 마주하는 이들이 요즘 거의 다 프렌치라 그런 거겠지만 와인 이야기만 나오면 다들 그냥 눈에 불을 켜고 와인이 없는 삶이란 상상하기조차 힘들지 않아? 어떻게 그걸 삶이라 할 수 있겠어? 라고 하는 어떤 프렌치 이야기를 들으며 참 과장도 가지각색이다, 라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얘네 참 노는 거 좋아해, 뭐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맨날 노는 이야기뿐인지라. 내가 첫사랑과 다이렉트로 결혼했더라면 내 아가도 대학생일 텐데 라는 생각을 수업 후 잠깐 했다. 수업 끝난 후 엘베 타고 내려와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같이 수업 듣는 막내가 언니 언니 하면서 아까 선생님이 뭐라고 하신 거예요? 숙제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예요? 해서 말했더니 쫑알쫑알거리며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귀여워서 몇 살이예요? 하니 스물 하나라 해서 엄마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했더니 76년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언니 말고 이모라고 해요, 했더니 언니는 언니죠, 어떻게 이모라고 해요, 그리고 이모 아니라 진짜 언니 같아요, 큰 언니! 라고 해서 이햐 요즘 MZ 세대들은 외교력이 상당하구나 느꼈다. 엄마가 스타벅스에서 기다리신다고 같이 점심 먹고 영화 볼 거라고 해서 응응 가서 효도해요, 하고나니 급 내 딸이 보고싶어지긴 하더라. 훈이한테 전화 걸었더니 안 받아서 진이랑 잠깐 통화, 진이한테 다 늙어서 공부하려니 눈알이 빠개질 거 같고 혈압이 급치솟으며 했더니 그러니까 스물때 하는 거라니까 공부는...... 하고 둘이 키득키득거렸다. 모임때 브런치로 마실 와인 대충 고르고 커피 한잔 마시는데 갑자기 이가 시큰거려서 아 나이듦이란 하고 홀로 가슴 아파 심장을 지그시 내리누르고 치과에 예약 잡아놨다. 오 민이가 유툽 보고 있는데 곁에서 들으니 우리나라 성인 평균 세 명 중에 한 명이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있다고 한다. 오. 화가 많아서 그러한가 이 나라가. 하긴 요즘 다 그럴 일들 투성이긴 하지. 당근으로 물건 두 개 팔았다. 두 개를 팔고나니 또 새로운 물건 둘이 들어오고. 저녁을 뭘로 먹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