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밑줄

1972-73년(『이탈리아에서의 라캉』 외)에는 다시금 현대적인 자본주의 분석이 시도되어 새로이 다섯 번째 디스쿠르인 ‘자본주의 디스쿠르‘가 추가된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1‘로 추가된 이디스쿠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또한거기에서 귀결되는 "자본주의 속의 불만"(Sauret 2009) 혹은 현대적인 ‘우울‘의 문제에 접근하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해 준다.
그렇다면 라캉이 말하는 ‘디스쿠르‘란 도대체 무엇일까? 라캉은 "모든 주체의 결정, 그리고 사고의 결정은 디스쿠르에 의존한다"(S17, 178)고 말한다. 결국 그는 이 술어를 사용하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 다시 말해서 언어(langage, 언어 활동)의 실천"(S17,239)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려 하고 있다.
하지만 디스쿠르 이론은 사회학에서 담화discours 분석처럼 각각의 인간이 어떤 식으로 말하고 있는가(실제로 언어가 사용되는 방법)만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라캉이 디스쿠르라는 술어를 사용하여 논하려고 한 것은 그저 실제의 발화만이 아니라 교육이나 경제 활동 또는 다른 상징적 행위, 더 나아가서는 (타자를 향한) 신경증자가 가진 증상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모두가 언어를 사용하여타자와 어떠한 방식으로 관련을 맺으려고 하는 것이기에 디스쿠 - P88

르란 개인을 사회에 연결시키는 사회적 유대lien social이기도 하다(S19. 42/S20, 21). 라캉은 이러한 광의의 언어활동이 진리나 지식과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주체를 사회 안에서 어떤 식으로위치시킬 수 있는지를 문제시하고 있다.
오해를 감수하고 말한다면, 라캉의 디스쿠르 이론은 정신분석을 사회에 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실제로 ‘68년 5월‘에 학생운동이 확산되면서 노동자가 일제히 파업을 일으켰을 때 소르본 대학의 칠판에 "구조는 거리를 행진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는 사실이 상징하듯이, 이 시기의 사상가들은 실제 사회나 정치 상황에 관하여 어떤 식으로든지 태도를 표명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었다. 1968년 11월에 개강한 세미나 어떤 타자로부터 타자로』, 그리고 이듬해의 세미나인 『정신분석의 이면』은 ‘68년 5월‘에 대한 라캉 나름의 대답이라는 측면도 있는 셈이다. - P89

여기서 라캉은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을 자신의 용어를 사용하여 바꾸어 읽고 있다. 주체(S)가 노동시장(상징계)에 참여하기위해서는 학력이나 체력을 어필함으로써 자신(S)을 노동자라는사용가치(S)로 나타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자로서의 사용가치(S)가 실제 노동 생산 성과물로서의 상품의 교환가치(S)가 되지 않는다면 자본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대체되는 주체는 자신이 노동으로부터 만들어 낸 잉여가치(a)를 착취당한 빗금이 그어진 노동자($)가 되는 운명에 처한다. 결국 노동력을 매각한 노동자가 매일매일의 노동에서 잉여가치를 착취당하는 양상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상징계에 참여하여 어떤 시니피앙으로 대리 표상됨으로써 향락에 속하는 무엇인가를 결정적으로 상실하고 만다. 라캉은 이러한 상실을 잉여향락이라고 부르며, 그것이 인간의 모든 사고나 행위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증상이란 이러한 상실에 대한 관계 안에서 개개인이 각각의 방식으로 고통받는 방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S16, 41). - P91

분명 라캉은 이와 같은 현대적인 욕망의 양태에 대해 "욕망의 착취, 그것은 자본주의 디스쿠르의 위대한 발명이다"(라캉,
1978b)라고 말했던 것이리라. 과거 한때 일본에서도 그의 욕망론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을 소비사회 예찬([남들이] 원하는 것을 원해‘)으로 독해하는 식의 수용이 이루어졌지만 이는 잘못되었다. 실제로 라캉은 자본주의 디스쿠르가 "무서울 정도로 교활하고" 또한 "파멸로 운명 지어진", "버거운/지속 불가능한 것이며 이는 "너무나도 빨리 나아가 버리는" 것이라고 한탄하기도 했다(라캉 1978a). - P109

라캉은 정신분석을 "자본주의로부터의 출구"(AE520)로 보았다. 이것은 자본주의 디스쿠르와 분석가 디스쿠르는 공통적 특징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서도 시사되고 있다. 정신분석가 마리 장 소레Marie-Jean Sauret(2009)에 따르면, 정신분석이 자본주의로부터의 출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 디스쿠르가 배제한 거세, 즉 시니피앙과 향락의 양립 불가능성을 또다시 주체 안에 새겨 넣기 때문이다. 분석가 디스쿠르에서는 분석가 자신이 쓰레기로서의 대상 a의 자리를 차지하고 욕망의 원인인 역겨움abjection을 제시하면서 분석 주체가 구조 안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알 수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AE520). 라캉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침으로써 비로소 자본주의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고 보았다. - P1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낙관은 야심찬 것이기에, 언제든지 무감정을 비롯해 온갖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 즉, 두려움, 근심, 배고픔, 호기심에서부터, 중립적인 태도로 [슈퍼마켓의] 매장 통로들을 훑어보는 기민함. ˝다가올 변화˝의 전망에 대한 흥분감에 이르기까지 감정의 전 영역을 포괄한다. 혹은 다가오지 않을 변화에 대한 흥분감일 수도 있다. 낙관이 주는 일상적인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관습성을 유발하는 것이다. 관습성이란, 사람이나 세상이 만들어 낸 좋은 삶의 여러 장르 속에서 예상할 수 있는 안락함으로 욕구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장소이다. 하지만 낙관이 목표를 드러낸다고 해서 어리석거나 단순해지는 것은 아니다- 고통의 순간에 위험을 무릅쓰는 애착심은 종종 합리적 계산을 뛰어넘는 지적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낙관의 경험이 구체적으로 어떻든 간에, 낙관적 애착의 정동 구조는 특정한 환상의 장면으로 되돌아가려는 지속적 경향을 포함한다. 그 환상이란 이번에야말로 이 대상에 다가가면 나 자신이나 세상이 딱 알맞게 달라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할 수 있게 하는 환상이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나 민족이 폭넓은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분투를 감행하는데, 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에 불을 붙였던 대상/장면이 그런 변화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면, 그때 낙관은 잔인한 것이 된다. 그리고 어떤 관계 속에 머무르는 즐거움 자체가 관계의 내용과 상관없이 지속적인 것이 될 때, 그래서 심히 위협적인 동시에 매우 확신을 주는 상황에 사람이나 세계가 스스로 매여 있음을 발견할 때, 낙관은 이중으로 잔인해진다. (10-11)
  • 잔인한 낙관로런 벌랜트 지음, 박미선.윤조원 옮김후마니타스 2024-06-17장바구니담기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4-07-04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이 어렵네요. 그래도 제가 더 많이 읽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4-07-04 11:36   좋아요 1 | URL
달리시는 겁니까? 😎

단발머리 2024-07-04 12:45   좋아요 1 | URL
유시민씨 만나고 있습니다 ㅋㅋㅋ 짬짬히 읽었는데 어렵네요, 이 책…. 라캉보다 쉬울텐데… 그죠? 😜

수이 2024-07-04 18:07   좋아요 0 | URL
라캉보다는 쉽지 않겠습니까? 🤪

공쟝쟝 2024-07-05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녁 먹고 잠깐 정리하고 읽으러나갑니다 쌩---!

수이 2024-07-08 04:52   좋아요 0 | URL
굿모닝~ 이번주도 달려봅시다앙!
 
자크 라캉 2 - 삶과 사유의 기록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 지음, 양녕자 옮김 / 새물결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욕망의 최대치를 스스로에게 허용한 인간, 자크 라캉. 내 아버지를 신화화할 생각은 없지만 아빠를 사랑한 까닭 역시 동일하다. 불완전하기 그지 없는 자신을 응시하며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한 인간의 거대한 서사시를 마주하는 동안 더할 나위 없이 강하게 삶에 대한 애착이 더 커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확히는 시공간과 닿아서 관계성을 따지는 편이 좋을듯. 친구가 알려준 앨범 듣다가 마리아 미즈 언니 책 나온 걸 알게 됨. 더불어 이 책도. 밀접하게 닿는 면들 사이로 우연히 닿게 되는 것들. 아이스라떼 맛난 집에서 테이크아웃 기다리며 두 페이지. 밑줄 그어놓고 메모하다가_ 다른 건 없었습니다. 그저 읽기 위해서 떠난 것뿐입니다. 이 문장. 




 


오늘 읽은 구절들, 특히 좋아서 많이 메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마 전에 관계를 끊은 동네 친구가 있다. 아름답고 성실하고 다정하고 술을 좋아해서 자주 어울렸다. 하지만 술을 좋아해도 너무 좋아해서 나는 곧 쉰, 이 몸으로 더 이상 그 정도로 술을 마실 수 없어서 서서히 멀어지고 싶었다. 이별의 상실감에 연달아 사흘인가 술을 같이 마시고난 후 다음날 아침에 선언했다. 죄송하지만 더 이상 님과는 술을 마시지 못하겠습니다. 운동하거나 밥 먹거나 커피 마실 때는 불러주십쇼. 하지만 술은 다른 이들과 마시세요. 하지만 번번이 약속은 어긋났고 자연스럽게 소주를 주문하는 태도에 인상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서로 낮술을 마시고 언쟁을 높여 서로에게 선생질을 하고난 후 아 이제는 진짜 애들이랑 같이 볼 때 빼고는 못 보겠다 싶었다.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일이 겹쳐지고난 후 시절인연, 이제 끝날 때가 된 건가 보다_ 그런 말을 다른 이에게서 들었다. 시절인연이란 말은 이런 뜻으로 원래 쓰인 건 아니라는데 이렇게 저렇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걸 왜 항상 다른 이들에게 전시하듯 자랑하려고 하는 걸까? 술이 불콰해져서 물어보았던 기억 난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의 삶에 만족을 하면서 왜 항상 그렇게 전시하듯 자랑질을 하려고 하는가? 라고. 알아달라는 거 아닌가. 그저 잘 살고 있으면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으면 그렇게 행복하다면 그렇게 자랑질을 하려는 게 자연스럽게 발현되는건가? 궁금한 마음에. 뭐 그런 후 서로 미친듯 독화살을 날리고난 후. 며칠 후 아무렇지도 않게 연락이 와서 언니 밥 먹자, 술 마시자, 커피 마시자, 라고 전화가 왔고 저는 다른 모임이 있어서 힘들 거 같습니다. 나중에 서로 시간 맞으면 보도록 하죠, 라고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존대어를 썼다. 알아서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한 동네 사니 우연히라도 보게 되면 서로 커피 한잔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더 이상 이 사람과 내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니 그것도 힘들듯 싶다. 이런저런 책들이 나왔다. 시절인연. 잠깐이나마 같이 해서 좋았습니다. 건강하시기를. 자랑질은 좀 적당히 하시면서 살아도 좋겠는데....... 뭐 이제 무관하니...... 마음대로 사십쇼. 도서관에 신청 넣으면서 기록. 


가야트리 스피박 대충 훑고난 후_ 어려워서 글자만 읽었습니다. 



스피박 다시 한번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제가 알기로는, 가르치는 경험은 충분한 자격을 갖는 윤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책임-의무에 더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윤리적이고자 계획을 세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아요. 《시학》의 첫 페이지에는 미메시스와 포이에시스 사이에서 진행되는 연극이 나옵니다. 아이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정말로 할 수 있는당신의 미메시스 안에서 가능한 한 양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투케tuche를 통해서 포이에시스가 출현할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것은 우리가 이야기 하고 있는 아름다운 모델입니다. 당신은 가르치면서 "나는 윤리적이야"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이 정말로 생각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완수할수 있을까?"겠죠.

샌더스 맞습니다.

스피박 어떻게 완수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움직여야 하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그저 그것에 대해서 완전하게 의지를 가지는 겁니다. 그렇죠? 중요한 것은 그런 노력이 언제나 강압에 매우 근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강압 말입니다. 심지어 설명조차 강압과 매우 가깝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욕망이 움직이도록 만들어야만 합니다. 그것의 비강압적인 부분은 당신의 개입 없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투케를 통해서 오는 포이에시스와 같습니다. - P215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4-06-27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친한 사람은 아닌데 올해 옮긴 곳에서 새로 생긴 직장 동료가 그렇게 자랑질을 하더라구요. 이게 진짜 너무 뜬금없이 나와서 참 어이없더라는..... 저는 근데 보다보니까 이게 좀 안타깝더라구요. 얼마나 주변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저렇게 본인이 나서서 자랑을 해야할까? 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너무 심한 때문인거 같아요. 그래서 안타깝긴 하지만 가까지 하고싶지는 않아요. 피곤해요. ㅎㅎ

수이 2024-06-27 10:16   좋아요 1 | URL
정확히 바람돌이님 마음이 제 마음입니다. 그게 다 보인다는 걸 그들은 모르는 거 같아요. 아니,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준다는 걸 모르는 게 정확한 거 같아요. 인간의 마음이라는 건 정말 신비롭기 그지 없어요.

페넬로페 2024-06-27 1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절 인연‘이라는 말, 너무 맞아요
공감 100%~~
아이 키우다보면 그런 인연이 저절로 생기는데,
지금은 정말 마음 맞는 사람만 남아 있어요^^
손절만이 답인 듯 해요.

수이 2024-06-27 15:05   좋아요 2 | URL
마음 맞는 이들끼리 지내는 게 최고인 거 같아요. 손절했습니다 😏 공감해주셔서 감사해요 페넬로페님 :)

2024-06-29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29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