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어의 위로 - 모국어는 나를 키웠고 외국어는 나를 해방시켰다
곽미성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11월
평점 :

모두가 아는 뻔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오기로 결심하면서 만일 이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 선택 이후에 내 나날들은 어떻게 될까, 자문한 적이 있다. 나는 그를 믿지 않고 그러기로 선택한 나를 믿기로 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는데도 어떻게 이민을 가기로 결정한 건지 물었더니 오늘 처음 본 친구가 말했다. 저는 저대로 길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유한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안락한 생활을 해나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어쩐지 제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이민을 결정하고 부모님이 강력하게 반대를 하시는데 그 집에서 편히 살아가는 게 죄스러워서 집을 나온지 이제 6개월이 넘었는데 그래도 굶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게 스스로도 좀 신기하긴 해요. 같이 담배를 태우는 동안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두가 아는 뻔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오기로 결심했던 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러다가 알았다.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을. 곽미성의 짧은 이야기를 훑고난 후 이 책을 아이들에게 소개할 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말을 하기 전에 문득 우리 모두는 각자의 고양이를 찾아 나선다_는 그 말이 무엇인지 알 거 같았다. 나는 나의 낯선 고양이를 찾아 나서기로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구나, 라는 걸 늦은 저녁 귀가하는 동안 알았고. 우리가 서로에게 침묵으로 말을 건네는 동안 주고받는 것들이 무엇일까, 그것이 단순히 의미가 없는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 무의미해보이는 제스처가 왜 우리에게는 하나의 의미로 새겨지는 걸까. 광목천으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커튼 아래에서 과연 무얼 말하고자 하는 걸까. 수업 시간에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저는 보헤미안 스타일을 좋아해요, 말하니 선생님은 물었다. 하지만 수연씨는 항상 단아하게 입고 다니잖아요? 라고. 이건 제 스타일이 아니예요, 여기에는 눈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무난하게 입고 다니는 거예요. 제가 보헤미안이라는 걸 제 사람들은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운명 같은 거죠. 라고 말하는 동안 운명을 거스르는 나날들을 너무 오래 보냈다는 자각도 일어났다. 정교하게 문장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낯선 문자들로 그득한 그곳으로 아이와 나를 이끌고 갈 것이다. 실패해도 무관해, 라고 말하는 대상이 비단 아이뿐만은 아니다. 그 대상은 동시에 나이기도 하다. 실패하고 돌아온다면 또 어떠하단 말인가. 그저 말 많은 이들의 시선을 피하고자 잠깐 자유로운 시간 속으로 탐닉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 시간을 만끽하고 그 시간에 대해서 수놓기로 했으니까. 모두가 아는 뻔한 이야기 속으로 들아갔다가 다시 빠져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그 일련의 과정이 나로 하여금 Oui, c'est la vie. Pourquoi pas? 라고 하게끔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