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조선 시대를 절대왕정시대로 알고 있다. 말그대로 왕이 마음대로 하는 시대말이다. 다른 나라의 예를 봐도 왕의 권력이 대단했던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론은 맞다. 조선은 왕의 나라였고 왕이 모든 권력을 쥔 왕정국가였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많은 제약이 있었고 비록 왕이였으되 어떤것 하나 마음대로 할수 없었던 제한된 왕정국가였다. 무인이었던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는데 큰 힘을 보탠것은 신진 사림이었다. 그들에 의해서 나라의 기틀도 다져졌고 왕조 500년 내내 조선을 지탱하는 큰 축이었다. 그래서 국초부터 왕을 견제하고 권력남용을 막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신권도 강했던 것이다. 그런 신권과 왕권이 늘 긴장하면서 대치했던것이 조선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은이는 그런 조선 시대의 왕들중에서 그 의미가 남다른 4명의 왕들을 통해서 왕과 신료들의 투쟁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먼저 세종. 지은이도 인정했듯이 조선이란 나라를 완성시킨 왕이다. 그의 권력은 아버지 태종에게서 강력한 왕권을 물려받은터라 그 누구보다 마음대로 할수 있는 처지였다.하지만 세종은 스스로 독주를 견제하고 의정부사서제등을 통해 신하들에게 적절히 권력을 위임하고 그러면서도 적당한 방법으로 통제했다. 그 결과 정치는 안정되었고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수많은 업적을 이룩했던것이다.하지만 그런 세종도 작은 불당을 하나 설치하는데도 신하들의 큰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언제든지 그런 알력이 일어날 가능성은 존재했었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었다는것도 따지고 보면 세종이라는 큰 인물에 의해서 왕권과 신권이 잘 조합되었기 때문이지 신권이 제도적으로 약해진 결과는 아니었다. 그 이후 강력한 왕권은 연산군때에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그때 무너진 이후로 다시는 강력한 권력을 가지지 못하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연산군은 포악한 군주였다. 몇번의 사화를 통해서 수많은 선비들이 죽어나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왕권을 누를려고 하는 신권에 대한 연산군의 대응방식이 그런 피비린내 나는 사화를 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번씩이나 사화를 일으켜서 많은 사람을 살상한다는것도 결국 왕권이 강했기에 할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 강하면 결국 부러지는 법. 국정의 파트너로 신료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수족처럼 여겼던 연산군이기에 신권의 강력한 저항을 받지 않을수 없었고 결국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야했다. 그의 퇴장과 함께 조선의 절대왕정은 끝났다고 봐야할것이다. 그 이후에 어떤 왕도 연산군이전의 왕들이 가졌던 권력을 가지지 못했으니깐. 비록 상황이 다르긴 했지만 주어진 권력을 어떻게 행사하느냐는 결국 사람에 달렸다는것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연산이 세종의 반만이라도 되었다면 역사는 또 달라졌을것이다. 광해군같은 경우는 원래부터 불안정한 상태에서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인 선조가 끝까지 권력을 손에서 놓고 싶어하지않은 상태에서 임진왜란을 겪고 여러가지 정쟁속에서 왕에 오른 광해군은 태생적으로 권력기반이 약했다. 그러나 영민했던 그도 왕위를 지키는데만 급급해서 각 당파를 균형있게 쓰지 못하고 한쪽 당파만 기용한 결과 결국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서 반정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그도 신하들의 믿음을 얻는데 실패했던 것이다. 그가 무너지고 나서 또 한번의 국란을 겪게 된다. 어쩌면 병자호란의 책임의 일부도 광해군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그렇게 쫓겨나지 않고 나라를 잘 이끌었다면 그런 환란이 없었을지도 모를일이니깐. 조선의 마지막왕은 순종이지만 실제적인 마지막왕은 정조라도 해야할것이다. 그의 사후에 나라는 망조의 길로 들었고 결국 100년이 조금 넘어서 조선이란 나라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흔히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하는 영정조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정조 대왕. 그 또한 광해군처럼 불안정한 상태에서 왕위에 올랐다. 아니 그보다 더 위험한 상태였다. 이미 노론에 포위되어 있던 왕권이었다. 그리고 그 당파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는데 영향을 미친 세력이었다. 하지만 그는 연산군처럼 보복을 위한 정치를 한것은 아니었다. 노론의 세력을 인정할것은 인정하면서 백성을 위한 강력한 개혁의지를 드러냈다. 그가 신권에 맞서는 방법은 인사권이었다고 한다. 수많은 인사를 통해서 신하들이 반대한 기회 자체를 봉쇄한것이었다. 하지만 100년넘게 뿌리박힌 사색붕당의 폐해를 그 혼자 힘으로 바꿀수 있었을까. 그또한 신하들의 믿음을 얻는데 결국 실패했고 그의 사후을 외척에게 부탁하는 악수를 두고 만다.실제로 정조가 애써 이룩해놓았던 새로운 체제는 그가 죽고난뒤 모든것이 무너지고 조선은 서서히 침몰하게 되는 것이었다. 조선의 여러 시대에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4명의 왕들을 통해서 우리는 조선시대 왕들이 재임내내 신하들과 끊임없이 투쟁했음을 볼수 있었다. 결론은 하나다. 결국 사람이 문제라는 것이다. 권력은 똑같이 주어졌지만 그것을 어떻게 운용하는것은 사람에게 달린것이다. 비록 자신이 하고 싶은것을 다 하지는 못했지만 세종은 신하들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연산과 광해는 그것에 실패했다. 그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 바다. 정조는 그 자신이 천재였지만 그또한 세종만큼 신하들의 마음을 잡진 못했다. 그랬기에 그가 죽자말자 모든것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게 된것이다. 왕권이 강한것이 좋은지 신권이 강한것이 좋은지 모른다. 하지만 그 권력이 좀더 세심하게 조합되고 제대로 쓰여졌다면 지금의 역사는 더욱더 풍요로왔을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비록 4명의 왕들을 그렸지만 조선왕들의 전체적인 권력에 대해서 알수 있었고 우리가 찬양하기만 했던 세종과 정조의 한계와 실책도 알수있었고 폭군이라고 했던 연산과 광해의 장점도 알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여러가지 자료들을 실어서 좀더 쉽게 이해할수 있게 했다. 다만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식으로 가정을 하는 어법은 별로 좋게 안 느껴졌다. 그런 가정법은 누구나 할수 있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는 그게 너무 많이 남발한 느낌이 든다. 조선시대 왕과 신하의 권력에 대해 좀더 세밀하게 알수 있게 하는 색다른 책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집의 식구중에 한 사람을 어떤 사람이 폭행을 하고 욕을 하면서 모욕을 준다고 하자.그걸 그대로 가만히 보고 있을 사람이 있을까? 아마 그때의 분노는 그 사람을 '죽일'수도 있을 정도의 분노일것이다. 생각같아서는 죽여도 시원치 않을 정도의 악한 감정을 갖게 되는것이다. 그럼 이건 어떤가. 정말 몸과 마음을 바쳐서 사랑했는데 갑자기 딴 사람이 생겼다면서 이별을 통보할때. 그때 느끼는 슬픔과 함께 그 배신감은 그 상대를 죽이고도 남음이 있지 않을까? 마음먹은대로만 한다면 이처럼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남을 많은 '악의'가 우리 속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특별히 악한 사람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일상에서 작은일로도 얼마든지 그런 마음이 들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평범한 악의를 그린것이다. 그 악의가 결국 어떤식으로 표출이 되고 결과는 어떻게 될것인지 지은이는 다양한 시각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한 여자로부터 시작된다. 어디에나 있을법한 적당한 외모의 적당한 성격의 적당한 직장을 다니고 있는 그냥 평범한 20대 초반의 여성. 그또래의 여자들이 갖고 있을 환상과 허영심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여자. 그런데 그런 여자가 살해당한다. 그녀는 무슨 잘못을 했을까? 한 남자가 있다. 외적으로 괜찮긴 하지만 그리 멋있어보이지 않는 직업을 갖고 있다.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품이지만 조부모에게도 잘하고 친구에게도 친절하다. 특별히 문제를 일으킨적도 없고 남이 보기엔 그저 평범하고 착한 청년일뿐. 그런데 그런 남자가 살해를 한다. 그가 왜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되었을까? 사실 이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그리 복잡하거나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 놀랄것도 없는 단순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저지르거나 혹은 당할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더 현실적이고 섬뜩할지도 모르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여자나 남자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분명 투영되어 있는것이고 그들의 행동 또한 우리의 모습에서도 찾을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의 행동이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잘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하는건 아닌지?... 남자가 느꼈을 모욕과 분노에서 우리는 동질감을 느낀다. 자기 자신 같아서도 충분히 느낄수 있는 마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도 결국 그처럼 살인을 하게 될까? 마음먹은대로?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악의'라는 것이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발현이 되는가를 참으로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죽이고 싶다는 순간적인 그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할까에 대한 생각도 하게 했다. 하루에 한두번 그런 비슷한 마음이 들수 있을 정도로 세상은 바쁘고 복잡하고 메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이라는 강력한 제어제가 있기에 다들 마음만 품고 행동에 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의 끈이 풀릴때는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될까? 마음속에 품었던 그런 행동을 저지르게 될까? 인간이 과연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까지도 생각하게 만드는 재미난 소설이었다. 한편으로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론 나라면 저러지 않았을꺼야라는 생각도 들게 했다. 하지만 직접 그 상황을 맞이해보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알수 없을것이다. 최상의 상황을 만들지않게 평소때 부지런히 훈련을 해둬야 할지도. 이야기 구조는 조금 독특하다. 두 남녀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 하면서도 중간중간 그 주인공의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 주인공의 입체적으로 보게 해준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또다른 면을 주변인들을 통해서 알게 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책이었다. 번역도 깔끔했고 오탈자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제본도 튼튼했다.표지디자인은 단순한것같지만 나름 선명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본격 추리소설이라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인간의 내면을 추리적인 기법을 이용해서 잘 표현해낸 책이었다. 소설에서 보여준 남자주인공의 그 모습이 책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남게 했던,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했던 책이었다.
역사를 세밀하게 복원하면서 상상력을 가미한 역사펙션소설로 유명한 토머스 해리스가 새로운 신작을 내놓았으니 이번엔 현대 러시아가 배경이다. 전작인 당신들의 조국과 이니그마에서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히틀러의 광기를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현대 러시아의 스탈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스탈린이라니? 그는 이미 수십년전에 사망하지 않았는가? 이미 그가 구시대의 유물이 된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런데 스탈린이 부활이라. 그 스탈린이 현대에 부활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전제하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린 책인데 역시 토머스 해리스답게 정확한 현대사를 고스란히 잘 살려서 기술하고 있다. 무대는 90년대 옐친이 대통령이었던 현대 러시아. 비록 민주주의는 지켜냈지만 정부의 무능으로 경제는 피폐해지고 옛 공산당의 인기도 서서히 올라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학술대회에 초청된 역사학자 켈소에게 어떤 한 노인이 다가온다. 자신이 스탈린의 최후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최후의 모습에서 역사상에 기록된 어떤 노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스탈린이 늘 갖고 다녔다는 비밀노트인데 그 내용안에 어떤 내용이 숨겨져있을까. 이것을 찾기 위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펼쳐진다. 켈소에게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이 노트를 찾는것지만 거기에 상업적인 목적으로 접근하는 기자, 공산당의 부활을 꿈꾸는 스탈린의 추종자들, 그리고 스탈린의 부활을 두려워하는 당국의 비밀기관이 서로 개입하면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드디어 비밀노트를 얻게 된 켈소. 그 속에 들어있는 정보를 토대로 스탈린이 남긴것을 추적해 들어가고 결국에는 찾아내게 되는데 결국 그가 본것은?...그리고 스탈린은 결국 현대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까?.. 어떻게보면 크게 긴장되고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다. 중간에 살인사건이 일어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주 긴박하게 전개되는건 아니다. 하지만 그 전제 자체, 현실이 어쩌면 더 무섭다고 할수가 있다. 수백만명을 학살했던 그 스탈린이 새롭게 부활한다는 그 전제 자체가 끔찍한 공포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스탈린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실 수많은 사람이 이유없이 죽어갔던 그 시절을 잊고 마는 사람들의 그 망각 자체가 더욱더 끔찍스러운 것일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힘들게 민주주의를 쟁취하긴 했지만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인해서 정부의 인기는 바닥에 떨어지고 과거 미국과 함께 세계를 호령했던 소련에 대한 향수가 살아나던 시기였다. 마치 공산당이 다시 집권이라도 하면 새로운 시대가 펼쳐질꺼 같은. 사실 스탈린에 대한 평가는 끝났다. 그 누구가 수백만명을 학살한 학살의 괴수를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싶은 모습만 본다는 말이 있다. 스탈린이 있을때 분명 소련은 세계를 지배했다. 그것이 어떤 수단이었는지는 보지도 않고 또 그런 댓가로 국민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는 생각도 안하는 것이다. 그때의 유산이 엄연히 남아있는 시대에 스탈린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공포스러운 일일것이다. 사실 그것은 우리 사회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지난 시절 경제가 절단이 나서 치욕스런 imf사태가 왔을때 과거의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가 일어서 아직까지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물론 그 정권들이 잘 한점도 있지만 어찌 그 과거의 망령을 오늘날에 되새김질하고 싶을까. 이런 현실을 바탕으로 깔고 만들어진 책이 바로 이책이다. 글 내용중에서 히틀러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스탈린이다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말이다. 만일 독일의 경제 상황이 안 좋았다면 히틀러도 스탈린같이 다시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히틀러도 스탈린도 둘다 끔찍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그중에 누가 더 끔찍한가보다는 그들의 망령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일반 국민의 의식이 더 무섭다고 할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다시 이시대에 스탈린이나 히틀러가 살아온다고 해도 그들이 처음 등장했을때처럼은 안될것이다. 이미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될것은 분명하기에 그런 설정 자체가 공포스러운것이었다. 스탈린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리 스릴러가 넘치는것은 아니고 추리적인 면도 그리 복잡하지 않은 편이고 긴박감도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전체적인 힘은 끝까지 잘 유지되는 편이었다. 인디애나 존스같은 어떤 재미난 모험이야기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심심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책은 번역도 괜찮았고 제본상태나 전체적인 디자인도 괜찮은 편이었다. 우리안에는 이율배반적인 생각들이 없는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사랑스러운 용 테메레르. 요 귀여운 녀석이 언제 날아오나 하는 기다림에 지쳐갈때쯤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이번에 새롭게 나온 3권에서는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비교적 단조로운 일정이었던 2권에 비해서 3권은 그야말로 대륙을 횡단하면서 여러나라를 거치는 대모험을 펼치게 되는것이다. 1권에서 탄생과 성장, 그리고 자라난 나라인 영국에서의 전쟁 참여에 이어 2권에서는 고향인 중국에서의 활약이 보였었는데 어느덧 무대는 새로운 나라를 향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안락할 삶을 살수도 있었지만 동료들이 있는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테메레르. 단순히 돌아가는것만 아니라 중국에서의 용의 대우를 영국에서도 적용시킬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를테면 '운동권 용'이 된것이다. 그런데 그때 영국에서 긴급한 명령이 날아온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으로 가서 용알을 받아오라는 것.지체없이 빠르게 가야하는 상황이어서 로렌스와 테메레르는 승무원들과 함께 배를 타지 않고 대륙을 횡단해서 가기로 한다. 하지만 중국을 넘어가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는데 그것은 바로 사막을 가로질러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냥 접근하기 힘든 그곳을 많은 사람과 함께 가야했으니 얼마나 고생이었겠는가. 하지만 여러가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이스탐불에 도착한다. 용알을 받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나 했는데 이들에게 예상치 않은 일이 닥친다. 용알을 가져가지 못하게 된것이다. 이런저런 사투끝에 드디어 용알을 갖고 떠나는 테메레르 일행. 급히 영국으로 가야했기에 가까운 길로 가기위해서 동맹국인 프러시아에 도착한 일행은 여기서도 뜻밖의 일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것은 테메레르를 지원 부대로 안 것이었다. 영국이 프러시아에 용 지원 부대를 보내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애매한 상황에 빠진 로렌스와 테메레르. 하지만 곧 거기서 싸우는 것이 영국에서 싸우는거나 다름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프러시아편에서 프랑스와 싸우게 된다. 그러나 강하게 보였던 프러시아의 잇달은 패배, 그리고 지원하기로 했던 러시아마저 패하게 되고 테메레르일행은 영국으로 귀환하기 위한 필사의 작전을 전개하게 되는데... 3권의 하일라이트는 후반부의 전투장면이다. 영국에서 쳐들어오는 프랑스군대를 맞아서 용감히 싸웠던 테메레르는 여기에서는 프러시아용과 함께 싸우게 되는데 영국에서의 싸움보다 더욱더 장대하고 스케일 큰 전투장면이 나온다. 프러시아 공군의 전술이 프랑스 공군에 비해서는 떨어지고 용들도 상대적으로 약세라서 테메레르 혼자서 고군분투한다. 여기에 나온 전쟁은 실제로 있었던 전쟁이었다. 작가는 그 전쟁에 상상력을 동원하여 용들의 전쟁을 구성해낸것이다. 실제로는 그 당시 공군은 없었겠지만 실제 공군이 있었던것처럼 적절하게 전투장면을 재창조해서 더욱더 박진감있게 느껴졌다. 1권부터 3권까지 주된 적은 프랑스였고 당연히 프랑스용들과 싸움을 했지만 라이벌이라고 할만한 용은 없었다.하지만 3권에서는 테메레르를 죽도록 미워하는 대단한 용이 나타났으니 바로 리엔이다. 2권에 등장한 리엔은 원래 테메레르와 같은 종의 용인데 그의 비행사를 테메레르가 죽였다고 여기고 그와 대적하기 위해서 프랑스공군으로 들어가게 된다. 비록 전투경험은 없지만 성숙하고 노련미에서 앞선 리엔은 프러시아 공군을 일거에 무력화시키고 테메레르를 끝까지 추격하게 된다. 3권에서의 이 험악한 만남은 앞으로의 두 용간의 불꽃튀는 접전을 예상하게 했다. 그리고 3권후반부에는 새로운 용이 깨어나는데 바로 이스탐불에서 가져온 알중에서 부화한 이스키에르카이다.이 용도 태어나자말자 말도 잘하고 호전적인 성품이어서 앞으로도 많은 활약을 할것으로 기대되었다. 지은이인 나오미 노빅은 여성작가답지 않게 전쟁과 관련된 장면을 세밀하면서도 재미나게 잘 그려내고 있다. 군인이라고 해도 육군이나 공군, 해군의 스타일은 다 다른데 그것까지도 섬세하게 잘 그려내서 더욱더 사실감있게 책을 읽게 했다.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크게 좋게보는것은 캐릭터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용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표현하는것이 그리 쉽지않았을것인데 정말 바로 앞에 있는것처럼 세세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투정부리는 장면이나 화내는 장면, 기뻐하는 장면 등등 순간순간 테메레르가 보이는 모습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같이 느낄수 있게 잘 묘사하고 있다. 테메레르뿐만 아니라 로렌스를 비롯한 여러 인간들의 모습도 우리가 흔히 보는 사람들처럼 사실적으로 잘 표현하는데 이 또한 캐릭터를 잘 살려낸다고 볼수가 있을것이다. 500쪽 내외의 긴 글임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완성도는 내내 유지되고 있었다. 사막을 횡단한다는 비교적 단조로운 일정에도 사막용의 등장이라는 장면을 집어넣어서 자칫 지루해질듯한 부분을 재미나게 했다. 이 용들이 나중에 다시 등장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은 또다른 묘미였다. 테메레르가 태어나서 맞이하게 된것이 프랑스와의 전쟁이었다. 3권에서도 나폴레옹전쟁의 초기단계임으로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전투와 전쟁을 겪게될꺼같다. 영국으로 날아간 테메레르가 또 어떤 전투에서 그의 멋진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아울러 중국에서 느낀 점을 어떻게 영국에서 펼치게 될지도 자못 궁금하다. 어떻게 영국인들을 설득해서 용들의 지위향상을 이루어낼까. 인간친화적이라는 용이 시위라도 하게 될까? 앞으로 남은 권들이 기대되는 또다른 이유다. 오탈자가 몇개 보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번역도 잘되었고 제본도 튼튼하다. 무엇보다 많은 쪽수에 비해서 비싸지 않게 책정된 책값이 제일 좋다. 책값한다는 소리 들을 자격 충분히 있는 시리즈다.
중요한 시험이 있었던 시절 하루종일 공부하면서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은 자는 시간이 아니라 밥먹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뭘 먹을까 이런 고민도 행복했고 맛있게 나온 음식을 먹을때는 괴로운 시험 공부 생각을 안해도 되었기때문에 하루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복중에 하나가 건강한 치아라고 하는데 그 이빨이 튼튼하다는것은 결국 맛있는것을 먹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맛난 음식에 관한 사연은 굳이 소설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많은 음식중에서 수프다. 어떻게 보면 익숙하다고도 볼수도 있고 익숙하지 않다고도 볼수 있는 음식이 수프인데 서양의 밥같은 존재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이 책은 그런 수프를 매개로 음식이 주는 의미와 거기에 얽힌 사랑의 이야기인데 전체적으로 참 따뜻한 느낌이 들게 하는 이야기였다. 언뜻보면 음식을 경연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사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는것은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랑을 이야기할려고 한것이 아닌가 싶다. 한 남자와 한 여자에게 있었던 이야기들은 수프를 매개로 인해 실마리가 풀리게 되지만 결국 그속에 사람이 있었다. 책에 나온 수많은 맛있는 수프가 있었지만 제일 맛있고 기억에 오래 남은 수프는 정성을 다해서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만든 수프였는것을 보면 느낄수 있을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전해진 수프. 결국 마음으로 먹는것이 아니겠는가. 소설은 조금은 독특하게 서술이 되고 있다. 한남자의 시점에서 쓰여진 부분에 이어서 한여자의 시점에서 쓰여진 부분이 교차로 이루어지면서 점점 흥미를 고조시키는 방법인데 처음에는 살짝 헷갈렸지만 계속 읽어내려가니 오히려 더 재미있는 방식인거 같았다. 전체적으로 참 맛있고 따뜻한 수프처럼 부드럽고 기분좋은 이야기였긴한데 모든것이 밝혀지고 서로간의 관계가 알려지는 부분에서는 조금 억지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주요인물이 결국 다 아는 사이라고 하는것은 너무 뻔하지 않는가. 무슨 일일연속극 보는것도 아니고. 그중에서 한두명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으면 좀더 현실감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그것이 읽는데 큰 방해가 되는 요인은 아니었다. 남자주인공이 수프전문요리사고 일하는곳이 수프전문점이라서 여러 수프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고 레시피도 나오는데 눈으로 읽는데 입에서는 침이 왜 그리 고이는지. 원래 수프 그리 즐기지도 않는데 말이다. 덕분에 돈가스먹을때 대충 먹었던 수프밖에 몰랐던 나에게 참 다채롭고 다양하고 영양가 많은 수프라는 음식에 대해서 새롭게 눈뜨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수프 잘하는 음식점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겨울에 읽으면 딱 좋은 소설. 음식이란것은 마음으로 할때 가장 맛이있고 또 그런 마음으로 먹어야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 소설이었다. 다만, 밤중에 배고플때 읽으면 크게 후회할 소설이다.배를 괴롭게 할테니깐. 아무튼 따뜻하게 기분좋게 부담없이 읽을수 있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