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진에서 보는 것은 보통 캡션을 통해 설명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사진이 보는 경험을 정확하게 표현한다. 다층적 의미를 지닌 다른 것들(엄밀히 말해 다층적 의미의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궁극적인 의미는 몇 겹의 층위 아래에 숨겨진것이 아니다. 그 신비로운 진실은 이런 층위에 의해 성취된 침식과 축적의 결합이다. 따라서 이 사진의 몇 가지 특징을 순차적으로 검토하겠지만, 사진 속에 이러한 특징이 노출되면서 동시에 은폐된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 P56
헬렌 레빗처럼 어린 시절을 포착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혹은 사회적 사진의 초창기 역사와 그 가능성은 우리의 어린시절만큼이나 확실하게 지나가 버린 걸까? 레빗의 사진들은 진정으로 독창성이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그녀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은혜를 분명히 입었기 때문이다. 카르티에 브레송의 전례가 없었다면 그녀는 거리에서볼 수 있는 미묘한 시詩, 즉 시각적 뒤엉킴과 메아리, 운율, 카르티에 브레송이 세상 곳곳에서 발견해 낸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사소한 기하학에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카르티에 브레송 이전에는 삶에 내재해 있는 그 넘쳐흐르는 시정詩情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단 그가 알아차리자, 돌아다닐 공간이 충분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눈에 보이는것이 그렇게 오랫동안 보이지 않게 숨어 있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그래서 레빗은 돌아다니면서 "실재하는 세상 안에서 미학적 현실을 지각" 하는 제임스 에이지의 공식을 무심코 시도하게 되었다. - P59
그리하여 레빗의 눈앞에는 많은 생명이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노는 아이들의 다큐멘터리 기록을 제작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실재하는 세상이 너무도 쉽게 흉내나 상상속으로 녹아 없어지는 상황에서 도시 아이로 사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해 아이들의 경험을 담아냈다. 물론 이것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현관문 너머에 있는 난간에 올라가서 싸우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 하지만 어른들은 분명히실존하는 위험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아이들의 전투적인 열광에 동참하게 된다. 이는 피할 수 없는 긴장으로 인해 그런 장면이 복잡해지거나 악화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손쉬운 즐거움을 느끼는 방법이다. 인종의 혼합 때문은 아니겠지만, 이사진은 목가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감상주의의 흔적은 없다. 아무것도 희미하게 가려지지 않고, 아무도 이 사진이나 그 안에 있는 아이들을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P60
레빗의 경이로운 사진 중에서 아이들과 자전거, 거울을찍은 이 사진이 단연코 가장 어수선하고 복잡하다. 아이들이옷장을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C. S. 루이스의 ‘나니아연대기‘ 중 첫 번째 작품인 『사자, 마녀, 옷장과 유사한 멋진리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진에서는 거울을 통해 (어린 시절의) 다른 세계를 힐끔 볼 수 있는데, 반사된 모습이 아니라 깨끗하고 직접적인 시야를 제공하므로, 더 큰 작품의 일부와 연결되는 일종의 포털 또는 도관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와 이아이들의 세계를 갈라놓는 것은 없다. 또는 다르게 표현하자면, 액자를 들고 있는 두 소년은 그들이 거울을 깼다는 것을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자전거 탄 아이의 모습을, 실재하는 생명체를 담은 그들만의 사진을 보여 주고 있다. 앞서 나는 레빗의 사진에 내재된 위험이라는 요소에 대해 언급했다. 이 사진에서 위험은 거울의 깨진 파편으로 표현된다. - P62
그녀의 작품에는 분명 자신감이 있지만, 완전히 제도화된 자신감은 아니다. 그 사진들은 절대 포스트모던하거나 개념적이지 않을뿐더러, ‘무엇이 ‘현실‘인지 묻거나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에 관해 묻는일에 몰두하지도 않는다. 씨름할 필요가 없는 많은 것들로 인해, 레빗은 자신의 눈앞에서 끝없는 종이접기처럼 펼쳐졌다가 다시 접히는 것들에게 완전히 집중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이제 사진은 스스로를 진지하고 어른스럽게 여기면서(그것이 꽤 유치해 보일 수 있다는 예측 가능한 역설적 결과를 가지고) 자신의 역사를 너무도 의식하고 있으므로, 아마도 다시는그 시절의 신선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길거리에서노는 모습을 찍은 오늘날의 사진은 반드시 레빗의 사진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뿐 아니라, 레빗이 어린 시절을 묘사한 방식도 떠올리게 할 것이다. 그 사진들은 레빗에대한 논평, 혹은 헌사가 될 것이다. - P64
비비안 마이어는 사후 발견의 극단적인 예로, 온전히 그녀가 본 것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사진계에 전혀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그녀가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조차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아이는 물론 가까운 친구조차 없었다는 사실의 여파 혹은 부작용으로 여겨지는 이런 사실은 불행하고 심지어 잔인해 보이기도 하지만, 모든 인간에 잠재된 알 수 없는 능력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있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가 시 센서스Census」에 호머에 대해 쓴 것처럼, "여가 시간에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 P66
1960년대 이후 종종 좌절된 자유 사이에서 여성들이 역사적으로 억압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 마이어는 빅토리아 시대 소설의 전형적 인물인 보모(혹은 가정교사)로서 생계를 꾸렸다. 가정생활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외부인으로서, 관찰력 말고는 다른 어떤 재능도 발달시킬 수 없었다. 마이어는 오랫동안 그녀를 규정해 온 특유의 늘어진 모자와코트 등으로 완벽하게 표현된, 주변 환경에 정교히 적응하게해 준 감성을 통해 시카고와 뉴욕 거리를 조심스럽게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 같다. 마이어가 마치 그녀의 운명을 예언하는 역할을 하는 듯한 할머니를 촬영한 사진에서는필연적인 신랄함을 찾아볼 수 있다. 외롭고 괴상한 모습으로외투를 걸쳐 입은 채 순간적으로 꿰뚫어보는 카메라의 능력을 통해 직감한, 평생의 비밀을 감내하는 듯한 운명 말이다. - P69
아직 언급하지 않은 중요한 구성 요소가 하나 있다. 맨 앞으로 비집고 들어가 플래카드 사이에 서 있는 바가지 머리를한 외로운 소년 말이다. 열세살정도로 보인다. 사람들이 긴장할 때 가끔 그러듯이, 오른팔이 배 위를 가로질러서 왼팔을잡고 있다.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무늬가 있는 반팔 셔츠를입고 있다. 살짝 웃고 있는데, 백인이다. 그는 거기에 있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며, 심지어 그의 손목시계는 그가 거기에 있던 때와 사진이 찍힌 정확한 순간을 알려 주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사진을 보았으며, 우리의 입가에 맴도는 질문은 그신비함과 마술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는, 다른 방법으로 말하면, 이 사진은 우리의 질문에 대해 완강히 침묵을 지키고있다. 그는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앞서 언급한 설튼의말로 돌아가 보면, 이 생명체가 어떻게 방으로 들어온 걸까? - P73
사진 속 모든 인물 중에서 이 소년은 어리다는 이점으로인해 60년이 지난 먼 미래인 지금 자신의 존재로 인해 제기된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그의 설명을 듣고 싶다. 로리의 말에 따르면, 전시에 소개된 사진 속 몇몇 사람들은 옛날 사진 앞에서 자기자신을 확인하고 다시 사진을 찍기 위해 전시를 방문했다. 이는 역사적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사진에 찍힌 다른 많은 사람들이 여러 다른 상황에서 했던 일이다. 사람들의 기억이 사진의 존재에 의해 반박되거나 강화되거나 심지어 창조되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는 부분적으로는 종종 이해에 도움이 된다. - P75
가득 찬 프레임을 통해 나이와 시대 차이는 줄어들고, 디커라바가 방해하기보다는 보존한 순간의 친밀함이 더해지고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사진 속 두 사람과 가까이에 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재즈 음악가의 지위, 더 정확히는 3단계로 구성된 그들의 지위와 관련된 사실이 드러난다. 인종 차별은 그들이 2류 시민임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디커라바는 그런 불평등한 환경에서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거리에 있는 다른 흑인들을 촬영하는 것처럼 콜트레인과 웹스터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는 "음악가를 음악가가 아니라 사람으로, 그리고 일꾼으로 생각한다"고말했다. 그의 다른 음악가 사진과 마찬가지로, 이 사진은 할렘의 사람들을 찍기 위해 진행 중이었던 더 큰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1951년 구겐하임 미술관에 지원금을 신청할 때 말했듯이, 그는 "오직 흑인 사진가만이 해석할 수 있다고 믿는, 흑인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이해에서 나온 창의적인 표현을 원한다." - P83
흔히 말하듯 재즈는 순간 안에 존재한다. 디커라바는 서사의 맥락을 배제함으로써 순간의 중요성을 확정 짓고 동시에 순간을 확장한다. 어떤 면에서는 셔터 속도가 너무 느려서그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명확하게 기록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실패는 더 많은 시간이 사진 속으로 새어 들어가고 넘쳐흐르게 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므로 이사진이 프레이밍된 방식을 즉흥 연주라는 다른 형태를 통해명확히 설명해 보자. 이 사진이 이미지의 패턴으로 된 카펫의일부라고 상상해 보자. 우리는 그것이 정확히 패턴 내부의 어디에 있던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역사가 그 시작(재즈에서는버디 볼든 또는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한 사건의 연대기적 순서와 관련이 있는 반면 카펫의 패턴은 중앙으로 집중된다는것을 알고 있다. 이 사진은 주변의 모든 것이 시간에 의해 집어삼켜진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항상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거나 되돌아가려고 노력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사진은 재즈의 중심에 위치하는 사진이다. - P86
트럼펫 연주자 찰스톨리버의 말처럼 콜트레인이 "우주로 가 버리기‘로 선택하면, 곧바로 존스는 이쯤에서 끝내자며 드럼 연주자 라시드 알리를 놔두고 색소폰연주자를 따라 우주 공간으로 따라갔다. 엘빈은 지구의 무아지경의 순간을 보존한 사진가처럼 실재와 현실에, 가장 작은시간에 뿌리를 두며 남겨진다. 콜트레인, 엘빈과 다른 밴드 멤버들은 「마이 페이버릿 스」를 수없이 연주했다. 디커라바의작품 설명 또한 수없이 자주 인용되어왔다. 하지만 다시 들을 가치가 있다. "내 사진은 즉각적인 동시에 영원하다. 너무나 심오한 순간을 보여 주므로 그 순간은 영원이 된다……… 마치 장대높이뛰기를 하는 사람이 달리기 시작해서, 쏘아 올려졌다가, 내려오는 것과 같다. 맨 꼭대기에서는 움직임이 없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는다. 바로 그것이 내가 기다리는순간이다. 다른 생명력과 균형을 이루는 순간………… 모든 힘이융합하는 순간,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는 순간, 그것이 영원이고...... 재즈이며..... 인생이다. - P90
워홀이 일찍이 깨달았듯이, 의미가 명백하다고 해서 그것을만들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워홀이 만들기 전까지는 죽음과 재앙에 대한 이런 이미지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만큼 이 이미지들은 우연한 사고 같다. 사고가 나기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평범하고, 눈에띄지 않으며, 정상이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사고 이전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포함해 모든 것은 완전히 바뀐다. 워홀의 엄청난 성공과 영향력으로 인해 그가 얼마나 극단적인 사례인지는 쉽게 잊히지만, 이와 같은 사례는 그전에는 없었고 그 후에만 있을 뿐이다. (죽음과 재난에대한 것뿐만 아니라) 그의 실크 스크린 회화는 단순히 그것들이 보이는 방식만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방식을 창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왔다. - P91
순간은 심지어 순간이 아니라(순간은 시간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글쎄, 뭐라고 칭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해 보자. 그는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기 위해 그 순간을 확장하는 것이아니다. 반대로 시간 자체가 수축하는 것, 수축 포장에 더 가깝다. 동일한 순간이 아닌, 약간 새로운 순서로 크기와 색이변화하는 순간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리하여 그 사건은우리가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마취제 역할을 하는미학적 영역에 온전히 존재하게 된다. 이디세지윅을 두고 워홀의 연적으로 유명했던 한 인물이 나중에 말했듯이, 아무도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워홀은 "똑같은 것을 많이 볼수록 더많은 의미가 사라진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폭력과 죽음의 사진으로부터 파생된 예술품에서 하나의 의미와 가치를표백하는 일은 다른 일들의 급진적 발전과 보폭을 맞춰 진행된다. - P95
‘아무것도‘라는 말을 지금까지 기다려야만 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워홀은 "아무것도 아닌 것의 정수"라는이유로 수프 캔을 그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것도아닌 것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이해하려면, 여러 종류의「전기의자」를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에세이의 도입부에서 그랬듯 뻔한 것부터 시작해 보자. 그것은 의자다. 존 자코우스키는 아제에 관한 책에서 사진의 발명 이후 빈 의자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는 점을 상기했다. 빈 의자가 부재의 이미지가 된 것이다." 이 경우 부재는 "남은 것은 침묵"이라는 햄릿의 마지막 대사가 압축되어 조용히 울리는 가운데) ‘침묵‘이라는 자기 설명만큼이나 절대적이다. 검은색의 강렬함은 마치 망각이 작품의 바탕이 된 원본 사진에는 완전히 부재하는방식으로 이미지를 잠식하거나 먹어치워 버린 것처럼 보이게한다. 진공은 이미지로부터 빠져나와 이미지에 모여든다. 이사진의 모든 것, 즉 고요함, 공허, 밀실공포를 느끼게 하는 침묵은 상응하는 시간의 부재에 대해 언급할 것을 촉구한다. 다시 한번, 도스토옙스키가 이런 종말론적 장면의 목격자라고상상하면서 다양한 작품에서 인용한 계시록의 이상한 구절을 떠올릴 수 있다. "더는 시간이 없을 것이다." - P101
하지만 기억하라. 이것은 워홀의 작품이다. 그러니 모순적 감각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특히 외부의 시간이 우리가 사진에서 의자를 인식하는 방식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간략하게 말하면, 의자는 곧 사라질 것이다. 미국에서 사형 제도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동안, 독극물 주 - P101
사로 인해 전기의자는 대부분쓸모없게 되었다. 말하자면 집행할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처벌의 상징, 낡은 두려움의상징이 된 제 처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거기 놓여 있는 의자는 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품격을 갖추게 되었다. 그 결과전기의자는 은퇴의 기념비로서, 망해 버린 이발소에 놓인 의자 같은 특징을 지닌다. 전혀 밝지 않은 미래의 모습에서 그의자가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은 아마도 ‘악마의 섬‘ 알카트라즈와 같은 용도로 전환되는 것이다. 관광객들은 잠시라도 거기에 앉아서, 그것이 항상 하기로 했던 일, 즉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사는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사이 의자는 의자가 하는 일을 할 것이다. 의자는 자신의 다리에 가해진 하중을 삭제하고는 기다릴 것이다. 마치 자신이 영원이 된 것처럼. - P102
또한 그에게는 어떤 사진가보다도 단순하고 중요한 재능이 있었다. 바로 거기에 있었다는 점이다. 단지 워홀하고만 같은 방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해변의 모래 빛 금발 머리였던 데이비드 호크니, 그리고 놀랍도록 잘생긴 루샤와 친밀한 사이였다. 이런 종류의 가벼운 친밀함은 낸 골딘의 『성적종속물에 관한 발라드 Ballad of Sexual Dependency』와 연관되지만, 골딘의 사진이 그들 자신의 역사적 중요성을 기록하는 거울이 된 데 반해 (골딘은 그들 중에서 마약이 아닌 다른 일을 하게 된 유일한 사람이다), 호퍼의 작업은 현재의 세상이 보이는대로 만들어지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한 전기적 자료의원천이다. 그의 사진 속에서 우리는 일어난 그대로의 역사뿐아니라, 신화의 형성 과정에 대한 다큐멘터리적 증거도 볼수 있다. 이런 작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더욱 커진다. - P110
수많은 인상적인 작품들 사이에 여러 걸작이 있다. 철조망 펜스의 그물 같은 그림자가 조용한 여성스러움을 드리운, 셔츠를 벗은 폴 뉴먼(1964)의 모습이 담긴 유명한 사진은 남성을 찍은 가장 아름다운 사진 중 하나로, 내면을 드러내는 배우의 미묘한 재주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1964년루샤의 주유소 회화 전시의 포스터로 사용된, 일명 「이중 잣대Double Standard」라는 사진이 있다. 이 사진에는 자동차 앞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두 개의 스탠다드 주유소 간판과 반사되어 보이는 후방의 차, 선루프를 통해 엿보이는 하늘이 매우 영화적으로 표현된 동시에 스스로 캡션 역할을 하고 있다. 워커에반스, 프랭크, 프리들랜더, 스티븐 쇼어 등 너무나 많은 사진적 흐름이 여기에 모여 있다. 전후 미국의 사진을 단 하나의이미지로 정제해야 할 때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훨씬더 못한 작품을 고를 수도 있다. - P112
스턴펠드의 발언이 시사하듯, 1970년대 중반이 되자 많은 사진가들이 단색의 거의 전적인 지배와 경쟁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발터 벤야민이 사진 자체의 여명에 대해 "발명의 시기가 무르익었고, 같은 목적을 위해 독자적으로 노력했던 한 명 이상의 사람들은 그 시기를 감지했다"고 말한 것은 1970년대에 사진이 컬러 매체로 재창안된 일에도 적용할수 있다. 놀랍게도 사진의 바깥에서는 남극을 탐험하고 4분안에 1마일을 달리고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등 오랫동안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라고 여겨져 온 것들이 갑자기 실현될 가능성이 커져서, 결승선이 아닌 출발선을 향해 달려가는 단거리 육상 선수 같은 모습을 띠었다. 그러므로 많은 비평가와관객에게 비슷하게 보일지라도, 이글스턴이 바로 그 정상에서컬러 스냅 사진(!)으로 미학적 공격을 감행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결정된 데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 담당 디렉터 존 자코우스키의 영향이 매우 컸다. - P114
흑백 사진에서는 어떤 일이 막 일어났거나 일어나려고 할수 있다. 비록 그 일(종종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이 이전에 일어났거나 나중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과 인과관계가 없다 해도 말이다. 여기에는 플롯 대신 파편과 패턴, 패턴의 파편들이 있다. 체호프의 작품에서 주변에 총이 있고1막에서 벽에 총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모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안다. 하지만 여기에는 2막이 없다. 생각해보면 1막도 없으며, 제작되지 않은 영화를 위해 섭외하지 않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읽지 않은 대본을 위한 예고편만 있을 뿐이다. 종종 여기에는 식별이 가능한 동시에 응집력이 뛰어나며 수집 조사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심리 상태의 시각적 표현인 운명이 명백하게 결여되어 있음을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진단하려는 바로 그것의먹이가 되는 것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 P121
에반스는 컬러 사진이 ‘천박하다‘고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헤어조크의 많은 사진은 그 경계에 불안하게 서있다. 문제는 코다크롬이 붉은색을 너무도 강렬하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쪽 지방인 밴쿠버에 있는 부식되고 빛바랜 표면들이 마치 남쪽의 아바나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그 효과를 느끼지 못한다면, 이붉은색은 마치 아동용 플라스틱 접시의 섬뜩한 표면처럼 다른 모든 흥미를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과도하게선명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편집자들은 그림자를 드리운오아시스로 쓰일 흑백 사진 몇 장을 영리하게 이 책에 포함한 것 같다. 하지만 그중 몇 작품, 특히 당구대와 당구공은 색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밝게 빛나고 있다! 헤어조크의 컬러팔레트는 최상의 상태일때 탄력 있고, 때로는 쓸쓸한 분위기로 제프 월이 서문에서 "페인트의 노화, 시간에 따른 색의 변화"라고 말한 것을 증명한다. - P130
날씨가 아주 좋기로 유명한 이곳에도 항상 숨기거나 막아야 할 것이 있다. 예를 들어 검은 편백나무가 하얀 벽 앞에 있는 것을 생각해 보자. D. H. 로렌스는 『이탈리아의 황혼Twilight in Italy』에 "밤의 어둠을 밝힐 촛불이 있는 것처럼, 편백나무는 완연한 햇빛 아래에서 어둠이 불타오르게 하는 촛불"이라고 썼다. 이 사진들은 로렌스가 산 가우덴초에서 관찰한 것이 로스앤젤레스의 긴 햇살 아래에서도 사실이었음을증명한다. - P143
이 현실은 마치 꿈만 같다. 그 꿈이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모든 것은 "즉각적으로 친숙하지만 여전히 신비롭다." 그리고 미스터리는 매우 투명하기때문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다(‘투명성‘은 기리의 개인적 단어 목록의 또 다른 키워드다. 앞서 살펴본 현실/형이상학의 패턴을 반복하면서 문자 그대로 투명성을 만드는 것은 "투명성 그 자체의개념에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감춰진 것은 없고 모든 것이보류되어 있다. 눈이 뇌에 요구하는 투명도가 어떻게 불투명할 수 있겠는가? 또한 모든 거울은 창이며, 그 반대의 경우 우리는 잠재적 출구를 제공하는 거울 안에 밀폐되어 있다. 탈출가능성은 감금의 환영과 구분되기 어렵다(모든 사람이 이자각몽에서 깨어나 탈출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 너머에놓여 있는 것은 표면에 더 깊이 잠긴 것이다. 말하자면 루스섬 해안 근처의 화장실처럼, 경이로운 세계의 모든 조각은 다른 조각들과 일치하며, 심지어 그 프레임 너머의 아직 보이지않는 부분과도 일치한다. 큰 세계는 가장 작은 조각에 함축되어 있다. 가장 작은 부분은 전체를 포함한다. - P149
흔들리는 나무나 서두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없는 개별사진의 고요함은 징후와 인과관계를 보여준다. 다시말하지만 논리는 순환적이고 밀폐되어 있다. 고요함은 시간의 부재를 공간적으로 발현하고, 공간을 통하는 움직임의 결여를 시간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서사가 부족한 것이다. 순간을넘어서는 움직임은 없다. 기술적 의미를 제외한다면 250분의1초든 뭐든 순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무한대의 거리에 초점을 맞추는 기능을 제공한다. 내 생각에 셔터스피드에서 무한대의 등가물은 아마 영원일 것이다. 기리의사진은 하나하나 우리에게 영원의 특정한 순간을 제공한다. 그 사진들은 자신을 완전히 제공하면서, 순간적으로 우리가오랜 시간 동안뿐만 아니라 영원이라는 한계점 위에 서서볼수 있다는 느낌을 전한다. - P150
사진은 사진에 찍힌 사물과 같지 않다. 그러나 사진은 사물 자체에서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인식하게 해 주기도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진은 사물에 관해 거의 의식하지 못했거나 완전히 망각하고 있던 것을 알려 준다. 에드워드 웨스턴은 고추나 변기 같은 것을 촬영하면서, 카메라는 "사물 자체의실체와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101 특별히 준비된 기계라고 반복해서 주장했다. 당시는 카메라의 잠재력을 탐색하고 확립하던 과정이었고, 그래서 카메라가 필연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었다. 피터 미첼의 허수아비 사진에서 사진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전에 산책하면서 이 허수아비들을 수백 번마주쳤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허수아비를 지나쳤을까? - P152
나는 허수아비가 노숙자라고 말했지만, 허수아비보다 더단단하게 한 장소에 붙어 있는 것은 동상이나 나무뿐이다. 어떤 허수아비는 걷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존재론적 한계라기 보다는 사진이 발걸음을 얼어붙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정도로 허수아비들은 그들 자신 안에서 완전히 편안하게존재한다. 그리고 허수아비들은 잠을 전혀 자지 않는다. 영원한 각성 상태는 그들의 좌우명이자 생활 양식이다. 만약 한순간이라도 존다면, 새들을 막는 그들의 효율은 저하될 것이다. 그들은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사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명백하므로) 이는 명백하다. 그 의식은 대개 깊은 명상을 통해 얻어진다. 자아가 결여된 그들은 땅과 하늘, 그리고 더나아가모든 창조물과 하나다. 음……… 까마귀도 포함해서? - P156
나는허수아비의 평균 기대수명을 알지 못한다. (패션계처럼) 계절단위일까? 아니면 연단위일까? 어느 쪽이든 그들이 걸친 눈옷은 서리가 내리는 끔찍할 정도로 오랜 시련에서 겨우 살아남은 것처럼 피로 얼룩지게 된다. 피 묻은 상처는 까마귀들이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먹기 시작했음을 암시한다. 결국옷은 썩어 없어져서, 허수아비들은 황야에 서 있는 리어 왕같은 비극의 분위기를 얻게 된다. "꺼져라, 꺼져 버려라!" 차이점은 리어 왕의 옷 밑에 ‘가엾고 벌거벗은 사람‘이 있는 반면 허수아비들은 옷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난당한 신체 부위가 아니라 얻어 온 천들을 모아서 기우면프랑켄슈타인의 특징을 얻게 된다. 그것들은, 정의상, 무섭다. 허수아비들이 스스로 무너져 내릴 때, 그것은 마치 그들이 살아 있기 위해 체지방을 소비한 것과 같다. 어떤 사진은범죄 현장을 보는 경찰의 시선과 닮아 있다. - P160
빌 브란트에서 리처드 애버던, 다이앤 아버스까지, 사진가들은 사진이 일종의 예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인생의 특정한 순간에 찍은 사진이 앞으로의 삶에 대해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스는 헤밍웨이와 마릴린 먼로에 대해 말하면서, 그 얼굴에 자살의 기미가 어려 있었고 운명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매력적인 개념이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래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 P165
그 결과를 기록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았을 때 그 미래가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하도록 말이다. 한편 우리는 세월을산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세월이 우리를 산다. 이 사실이이 시리즈를 매우 흡인력 있게, 어떤 면으로는 무척 끔찍하게만든다. 불변의 계시는 여기서도 그리스 비극에서만큼 강력하다. 특히 촬영이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므로, 또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글쎄, 달력으로는 여전히 1년에 한 번이지만, 자매와 사진가가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매년촬영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10년 이상촬영을 계속한다면, 사진들은 한 번의 촬영에서 나온 다양한이미지들처럼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적인 사진시리즈는 해마다 가속도를 얻게 된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조급함을 쉽게 억누르며 새로운 사진들, 즉 정지된 에피소드를 기다린다. 무엇이 드러날까? 실은 드러나는 것이 많지 않다. 1년에서 다음 1년까지는 차이가 그리 크지 않지만, 10년에서 다음 10년 사이의 차이는 분명하다. 1년에서 40년사이라면 거의 무서울 정도다. - P166
시간은 여러 면에서 효과를 달성한다. 하지만 이 사진에명백하게 드러나듯, 어느 시점 이후로 시간은 우리의 얼굴을똑바로 쳐다보는 단 하나의 일만 한다. 시간은 이 여성들을죽음으로 이끌고 있다. 또는, 약간의 재량이나 모호함을 허용해서 다시 말하자면, 시간은 그들과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준비하게 한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찍은 사진들은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이사진들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무엇에 관한 것이었는지가 명백해진다.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더라도 말이다. - P167
인정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시선을 피하고 다른 곳을 보는 것이다. 앞서 나는 이 시리즈가 가속도를 얻었다고 말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말년의 가속도를 얻었다. 소설가 수전 미노는 이 프로젝트에 관한 사려 깊은 에세이에서 1981년, 1983년, 1984년의 사진 속에 사진가의 그림자가 들어 있음을지적한다. 그녀는 이것을 그의 속하고 싶어하는 욕망, 즉 모든외동아이의 욕망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았다. 낙관적인 해석이다. 나는 그림자를 더불길하게 본다. 특히 닉슨의 그림자뿐아니라 카메라 자체의 그림자, 또는 사진 자체의 그림자가 침범해서 마치 엑스레이로 드러난 덩어리처럼 스스로의 존재를느끼게 할 때 말이다. - P167
어느 해에는 네 자매가 아니라 세자매가 될 것이다. 자매중 한 명이 죽은 후에도 닉슨이 이 프로젝트를 계속한다는가정하에 말이다. 현악 사중주는 삼중주로 계속될 수 있지만, 보통은 새로운 바이올리니스트를 영입한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서는 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사중주가 더는 불가능하다면 중단을 선언하거나, 하이든의 고별 교향곡」의 사진적 등가물처럼 축소된 상태로 단 한 명의 자매가 남을 때 비로소 끝날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결국 외동아이뿐이다. 물론 여기에는 숨겨진 가정이 있다. 즉 사진가가 대상보다 오래 산다는 것이다. 그가 자매보다 먼저 죽는다면 프로젝트 자체가 끝날 수도 있다. 또한 제3의 가능성도 있다. 무슨일이 일어나든 내가 더는 그것을 볼 수 없는 경우 말이다. - P168
말년에 다이앤 아버스는 "사진에서 볼 수 없는 것을 사랑하게되었다. 브라사이의 사진에는 빌 브란트의 사진에는 실제로물리적인 어둠의 요소가 있으며, 어둠을 다시 보는 것은 매우흥분된다" 고 말했다. 이는 짜릿하지만 위험하다. 존 자코우스키는 윌리엄 게드니가 제안한 ‘밤The Night‘ 시리즈에 다소경멸적으로 반응하면서 "사진은 볼 수 있는 것에 관한 것인 반면 그 시리즈는 볼 수 없는 것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볼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한다는 이 딜레마는 복잡한 만큼 간단하다. 황혼이 매력 있는 건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사라지려는 시간이기 때문이며 낮의 빛이 비추는 현실의 세계가 꿈의 영역으로 미묘하게 미끄러지기 시작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 P169
매우 고요한 사진 속에 결여된 움직임, 오염되지 않은 침묵은 시간에서 벗어나고 상호 작용의 순환과 동떨어진 세계를 느끼게 해 준다. 현재 팔고 있는 상품과 그 실마리를 보여 주는 간판이 사라진 텅 빈 상가는 시대를 추정하기가 어려워서, 때로 시간뿐만 아니라 역사로부터도 동떨어진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 대부분이 일시적이거나 덧없는 현상이라는 것을 의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간에서 벗어난 세계 대신, 시간에서 벗어난 순간들에 대해 더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이미지에는 드라마 또는 긴장감이 현저히 부족하다. 그 공허함은 공간적이면서 시간적이며, 『어두운 도시』는 그것으로 가득 차 있다. - P174
『건널목들Crossings』이 가장 명백하게 보여 주듯, 웹은 경계에끌린다. 그러니 사진의 경계, 즉 가장자리가 작품의 중심임을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말 그대로다. 이런 점에서그는 가장자리였던 것이 중심이 되어 버린, 장벽이 붕괴한 후의 (분단된 도시라고 불렸던) 베를린과 등가를 이루는 사진가다. 웹은 독특하게 기둥이나 나무, 또는 벽의 가장자리로 사진을 나눈다. 분할된 것의 양쪽에는 잠재적으로 상당히 다른 두세계, 또는 서로에 대한 두 개의 거울에 가까운 이미지가 있다. - P192
예상된 일이다. 사람들은 사물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그런 다음 그 기록은 애가의 특징을 가지게 된다. 특별한 것은 그것이 일어나는 속도와 ‘그런 다음‘의 짧은 시간이다. 이미지가 현상용 트레이에 나타나는 즉시, 또는 심지어 셔터를 찰칵 누르는 순간에도, 이미지는 미래에 보이게 될 모습에고취된다(물론 이제는 이러한 공정 자체도 애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 P201
제프 다이어 GEOFF DYER
‘제프 다이어가 곧 장르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영국의 대표 작가․ 사진, 재즈, 여행 등 한 작가가 다뤘다고 보기 어려운 다양한 소재를 소설, 에세이, 르포르타주 등 여러 장르에 담아내며 독창적인 글쓰기를선보인다. 전 세계 독자들은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알랭 드 보통 등동시대 작가들에게도 사랑받는 작가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전공했고 2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1992년 『그러나 아름다운』으로서머싯 몸상, 2004년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로W. H. 스미스 최우수여행도서상, 2006년 지속의 순간들』로국제사진센터 인피니티상, 2011년 달리 말하면 인간의 조건 otherwiseKnown as the Human Condition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등 다수의상을 수상했고 2009년에는 ‘지큐GQ』에서 선정한 올해의 작가로뽑혔다. 의외로 그는 사진을 찍지도 않고, 심지어 카메라도 없는 상태에서사진에 관한 글을 써 왔다. 그 결과 롤랑 바르트, 수전 손택, 존 버거 등사진 비평으로 널리 알려진 대가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비평 세계를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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