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를 자주,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슬픔이 가득 담긴 소년의 눈, 역설적인 ‘낙원‘.
유수프는 낙원을 만나게 될까? 낙원이 있기는 한 걸까?
이제 100페이지, 더딘 걸음으로 그의 여정을 따라간다.

유수프에게 그것은 몇 년에 걸쳐 사로잡혀 살면서 얻게 된 평정심을 깨뜨리는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지즈 아저씨의 가게에서 불행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볼모로그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즉 아버지가 진 빚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그가 아지즈 아저씨에게 저당잡혀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수년에 걸쳐 너무 많은 돈을 빌렸고, 그것이 호텔을 팔아서 갚을 수 있는 수준 이상이라는 것을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혹은 그의 아버지가 운이 없었거나, 자기 것이 아닌 돈을 어리석게 써버렸는지도 몰랐다. 칼릴은 그에게 그것이 사이드가 일하는 방식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결과 그에게는 뭐든 필요해질 때, 그 필요한 일을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이드에게 돈이 급해지면, 몇 명의 채권자를 희생시켜 그 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 P70

 그들의 음성이나 특유의 성향 - 어머니의 웃음, 마지못해 짓는 아버지의 웃음에 대한 생각이 다시 그를 안심시켰다. 그가 그들을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사실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들을 점점 덜 그리워했다. 그것은 차라리 그들과 헤어진 것이 그의 삶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사건이라는 의미였다. 그는 그것에 대해곰곰이 생각해보았고,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슬퍼했다. 그는 그들에 대해 알아야 했거나 그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던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그를 겁에 질리게 했던 격렬한 싸움들. 바가모요를 떠난 후 물에빠져 죽었을 두 소년의 이름. 나무들의 이름. 그런 것들에 대해 그들에게 물어볼 생각만이라도 했더라면, 스스로 너무 무지하다고 느끼거나그토록 위험하게 모든 것으로부터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을지도 몰랐다. 그는 주어진 일을 했고, 칼릴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완수했으며, 그 ‘형‘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그리고 허락을 받을 때면,정원에서 일했다. - P71

"키자나 음주리 "아름다운 소년이로군. 모하메드 압달라가 유수옆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얼룩덜룩하고 비늘이 덮인 듯 느껴지는 손으로 그의 턱을 잡고 말했다. 유수프는 고개를 흔들어 놓여났다. 턱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이리 와 너, 사이드께서 아침에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신다. 너는 우리와 같이 가서 장사를 하며 문명과 야만의 차이에 대해 배우게 될 거다. 지저분한 가게에서 노는 대신에………… 이제 좀컸으니 세상이 어떤지 돌아볼 때가 되었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유수프의 악몽 속에서 어슬렁거리던 개들이 떠오르는 약탈자의 얼굴이었다.
유수프는 공감을 바라며 칼릴에게 갔지만, 칼릴은 그를 가엾게 여기지도 그의 운명을 함께 슬퍼해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웃으면서 장난처럼 팔을 때렸다. 유수프는 몹시 아팠다. "너, 여기 정원에 앉아 놀고싶지? 저 미치광이 음지 함다니처럼 카시다 노래나 하고 싶지? 정원은거기에도 많아. 사이드한테 괭이를 빌릴 수도 있을 거다. 야만인들과거래하려고 몇십 개는 가지고 다닐 테니까. 야만인들이 괭이를 좋아하거든. 왜 그런지 누가 알겠니? 그들은 싸움도 좋아한다더라.  - P76

 그들은이틀 낮과 하룻밤을 기차로 이동했다. 기차는 자주 서고 속도도 별로높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대지에 야자나무와 과일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가장자리의 초목들 사이로 작은 농장들과 농원들이 보였다. 기차가 멈출 때마다 짐꾼들과 보초들은 무슨 일인지 보려고 플랫폼으로 우르르 내려갔다. 그중 일부는 전에도 이 경로로 이동해본 적이 있어서 역무원들과 플랫폼 상인들과 안면이 있는 터라 지체 없이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들은 전해줄 메시지와 선물을 건네받았다. 이른오후의 더위로 정적이 감돌 무렵 도착한 어느 역에서, 유수프는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다. 오후 중반쯤 되자 기차가 카와에서멈췄다. 그는 긴장한 채 조용히 기차 바닥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 그를알아보고 그의 부모를 당황하게 만들면 어쩌나 싶었다. 나중에 지대가점점 높아지면서 그들의 여정은 동쪽을 향했고, 나무들과 농장들은 더드물어졌다. 초원들이 이따금 울창한 잡목림으로 이어졌다. - P81

산밑의 공기는 쌀쌀했고, 햇빛은 유수프가 전에 보지 못한 자주색을띠고 있었다. 이른아침에는 산봉우리가 구름에 가려졌지만, 해가 더강해지기 시작하면서 구름들이 사라지고 얼음으로 덮인 봉우리가 드러났다. 한쪽으로는 평평한 평지가 길게 뻗어 있었다.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를 산 뒤쪽으로 가축을 키우고 동물들의 피를 마시는 먼지 빛깔의 전사 부족이 산다고 했다.  - P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 먼저 그의 이름은 유수프였다. 그는 열두 살 때 갑자기 집을떠났다. 그는 그때를 하루하루가 전날과 똑같은 가뭄철이었다고 기억했다. 예상치 않은 꽃들이 피었다가 죽었다. 이상한 벌레들이 돌 밑에서 종종걸음으로 나와 뜨거운 햇빛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죽었다. 태양은 멀리 있는 나무들이 대기 속에서 떨게 만들었고 집들이 부르르하며숨을 헐떡이게 만들었다. 저벅저벅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먼지구름이피어올랐고 낮시간에는 날카로운 정적이 감돌았다. 계절의 막바지에는 그런 순간들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 P9

칸주 한 벌, 셔츠 하나, 쿠란 한 권, 어머니의 낡은 묵주가 전부였다. 그녀는 묵주를 제외한 나머지 전부를 낡은 숄에 싸고 끝을 잡아당겨 묶어두툼한 매듭을 지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유수프가 짐꾼들처럼꾸러미를 어깨에 메고 갈 수 있도록 매듭 속으로 지팡이를 밀어넣었다.
그러고는 적갈색 사암으로 만들어진 묵주를 마지막에 은밀히 건넸다.
오랫동안 부모와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거나, 어쩌면 다시는 그들을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단 한순간도 들지 않았다. 언제 돌아올지 물어본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왜 자신이 아지즈 아저씨를 따라가야 하는지, 일이 왜 갑자기 그렇게 되었는지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기차역에서 유수프는 성난 표정의 검은 새가 그려진 노란 깃발외에, 은빛 테두리의 검은 십자가가 그려진 또다른 깃발을 보았다. 그들은 고위층 독일군 장교들이 기차로 이동할 때에만 그 깃발을 달았다. 아버지가 그를 향해 몸을 숙여 악수를 했다. 그러고는 다소 길게무슨 말인가를 했고 마지막에는 눈물을 글썽였다. 나중에 유수프는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던 건지 기억하지 못했지만, 신에 대한 말이었던것 같다. - P30

유수프는 손님에게서 돈을 받는 법과 손가락 사이에 꼭 끼게 지폐를 쥐는 법도 배웠다. 칼릴은 그에게 코코넛기름을 국자로 재는 법을 가르치면서 손이 떨리지 않게 잡아주었고 긴 철사로 기다란 비누를 자르는 법도 보여주었다. 유수프가 잘 따라서 하면 그는 인정의 의미로 활짝 웃어 보였고, 그러지 못하면 몹시 아프게 때렸다. 때때로 손님들 앞에서도 그랬다.
손님들은 칼릴이 하는 모든 것을 보고 웃어댔지만, 그는 신경쓰지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의 억양을 두고 끊임없이 그를 놀렸고, 그를흉내내면서 왁자하게 웃었다. 동생이 말을 더 잘하도록 자신을 가르치는 중이라고, 그는 그들에게 말했다. 그는 충분히 말을 잘할 수 있게되면 통통한 음스와힐리* 아내를 얻어 경건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테라스에 있는 노인들은 통통한 젊은 아내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칼릴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말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손님들은 그가 발음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단어와 구문을 반복하게했다. 칼릴은 그것들을 아무렇게나 발음하면서 같이 웃었다. 그의 두눈이 즐거움으로 환하게 빛났다. - P46

그들은 아지즈 아저씨가 저녁 늦게 그날 번 돈을 가지러 올 때,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그를 보았다. 그는 칼릴이 건네준 돈자루를 흘깃 들여다보고, 칼릴이 하루의 매상을 기록한 공책을 훑어보고는 더 자세히살피기 위해 둘 다 가져갔다. 이따금 그를 더 자주 볼 때도 있었지만,
지나치는 길에만 그랬다. 그는 늘 바빴다. 아침에는 시내로 가는 길에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가게를 지나쳐갔고,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는 심각한 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테라스에 있는 노인들은 아지즈 아저씨가 생각에 골몰해 있을 때면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유수프는 이제 그 노인들의 이름을 알았다. 바 템보, 음지 타임, 알리 마푸타. 그러나 그는 그들을 하나의 현상이라고 여겼다. 그들이 얘기하는 동안 자신이 눈을 감으면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될 거라고 상상했다. - P49

 유수프는 이제까지 그렇게 바다 가까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는 그것의 거대함에 말을 잃었다. 물가의 공기는 상쾌하고 알싸한 느낌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똥과 담배와 원목 냄새로 가득했다. 자극적이면서 썩는 듯한 냄새도 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해초 냄새였다. 해변에는 끌어올린 아우트리거 보트들이 줄지어 있었다. 한참 위쪽에는 선주인 어부들이 차양 밑과 요리중인 불 주변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조류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류가 일몰두 시간 전쯤 바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두 사람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주자 칼릴은 그들 사이에 태연히 앉더니 유수프를 자기 옆에 끌어다앉혔다.  - P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낙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1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디어 ‘낙원‘을 읽기 시작한다.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세계로 진입하게된 것이다. 이제 막 시작한 걸음이라 뭐라 규정할 순 없지만 ‘유수프‘와함께 고향을 떠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열두살은 모험이 두려울 것이다. 앞으로 유수프가 만나는 세상이 내가 만났던 세상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십 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 대도
가꾸는 삼십 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 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 대.
사십 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어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고정희의 시 <사십 대>

p148. 149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학벌 세탁에 드는 자원을 마련할 수도 없었다. 몰락한 중산층이 되어 월백만원에이르는 재수 학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생계 노동에 나서야 하기에 책상에 붙어 앉아 미적분을 풀 시간이 없었고, 두 아이 양육과 살림만으로도 생체 에너지는 고갈됐다. 그 모든 한계를 떨치고 일어날만큼 공부에 한이 맺혀 있지도 않았다. 지금 책장에 꽂힌 책만 다 읽기에도 남은 인생이 부족할 지경이었는데 내가 왜 굳이 또 그걸. 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운이 좋은 고졸 사람이었다. 비교적 문턱이 낮은 자유기고가 직업에 입문해 열일했고 전세자금도 올려줬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글쓰기 관련 강의도 나간다. 학력 문제는 계속 따라다닌다. 내가주로 강의를 나가는 곳은 시민단체다. 나랏돈을 받아 운영되다 보니강사료 지급 기준이 박하고 엄격하다. 다른 통로로 최저 강사료를마련해주기 위해 활동가가 애를 먹기도 한다. 작년에 모 대학 특강을 갔을 때는 강사료 지급기준에 석박사 학력 기준은 있어도 고졸학력 기준은 없어서 새로 만들어야 했단다. - P115

여자라서 불편한 게 많다 보니 피곤하긴해도 ‘생각‘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처럼, 고졸이란 신분도 그랬다.
덕분에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 있는지 늘 되묻고 깨어 있어야 했으니까.
얼마 전에는 그것과 관련해 꽤 불쾌한 일을 겪었는데 괜찮지 않았다. 나는 잊고 살아도 세상은 잊지 않으므로 ‘그것‘을 자주 생각해야 한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 P116

그들의 변신 욕망이 어떤 가치를 낳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자기를 억압하느냐 해방하느냐. 하나는 분명해보인다. 묵묵한 살아냄보다 무구한 조작이 우세할수록 삶은 꼬인다는 것, 이장욱 시인의시구처럼 "나는 오해될 것"이고 "결국 나는 나를 비켜갈 것"이라는사실이다.
삶은 명사로 고정하는 게 아니라 동사로 구성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오해받을지라도 순간의 진실을 추구하고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며 살아갈 때만 아주 미미하게 조금씩, 삶은 변한다. - P118

살면서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들은 이름, 감각, 느낌, 음악, 이야기・・・・・ 나에게 존재를 위해 금가루 뿌리는 일이란 음악이 내미는손을 잡는 것,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것, 느낌을 나누는 것. 그리호사 누리며 살기로 한다. - P119

할 말 못할 말, 들을 말, 못 들을 말, 찬란한 말, 쓰라린 말, 참담한말, 간절한 말, 희미한 말, 비정한 말, 흔드는 말, 지독한 말, 다정한말 사는 동안 숱한 말의 숲을 통과한다. 도무지 그 말이 어려워 서성이기도 했고, 그 말에 채여서 주저앉기도 했고, 그 말이 따스해 눈물짓기도 했다. 그렇게 추억이란 말의 기억이다. 그리고 어느 시인의 말대로 모든 흔적은 상흔이다. 완전한 제거는 없다. 누렇게 곰팡이 쓴 말들과 소화되지 않은 말들을 껴안고 한평생 살아간다. 가끔텅 빈 몸에서 말의 편린들이 덜컹거리면, 외로운 몸뚱이 안에서 들려오는 그 인기척이 반갑기까지 하다. 어느새정이 든 게다. - P121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의 허물어진 어깨를 훑고 가던 쓸쓸한 바람이 다시 분다. 긴 강을 건넌 기분이 든다. 다행히 줄초상은나지 않았다. 사실 ‘굿‘이라는 풀지 못한 숙제를 안고 살아가는 3년동안 문득 조마조마했다. 그럴 때마다 280 인 분의 거룩한 식사를 생각했다.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다는 사실이 뜨겁게 자각되었다. 삶을 옹호하는 본능일까. 주위에 더 눈길을 돌리고 더 아우르며 마음 다해 살 수 있었다.
내게 삶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런 난해함을 삶의 일부로 껴안고살아간다. 또다시 내 앞에 물살 거센 긴 강이 놓일 수 있다는 것을긍정하면서 말이다. 돌이켜 보면 그 점쟁이의 말은 충분히 불우했으되 나의 몰락과 미망을 도와준 바람의 말이었다고 말하게 된 지금에서야, "과거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말한 니체의 말을 내것으로 삼는다. - P127

한시절 편안하고 맵시있게 입었더라도 옷은 낡고 체중은 는다. 그리하여어느 날 몸에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때가 온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몸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의 시점이 온다.
연심의 변심 혹은 절심은 언제나 비약으로 다가오는 사건이지만생물성이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이치이기도 하다. 나도 그랬다. 어디든 데려다주는 날개이자 비바람을 막아주던 존재가 불편하고 갑갑해지는 순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엄마가 그랬고 연인이 그랬고 친구가 그랬고 동료가 그랬다. 어떤 음악이 어떤 책들이 그랬다. 세월이 그렇게 했다.
생의 시기마다 필요한 옷이 있고 어울리는 색과 취향이 있듯이삶의 체형에 맞게 인연도 변해간다. 식물도감 동물도감 속 개체들처럼 사람 역시 멋진 자기 유지를 위해 색을 바꾼다. 인연의 옷을 갈아입는다. - P130

사는 동안 존재를 확장하려는 노력은 멈출 수 없겠지만순한 양처럼 주어진 시간에 복종하고 싶다.
어디로든 끝 간에는 사라질 길.
그저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 P141

사랑하는 것들과 결을 맞추는 연습.
그리고 얻어온 것들의 본래 자리를 기억하는 노력.
궁극에는 돌려보내야 할 것들과 이별하는 훈련. - P153

생의 빈틈이나 존재의 허전함을 사람으로 채우려는 건 무리한 욕심이다. 그래서 음악이 필요하고 책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말 없는 그것들이 품은 살 같은 말에 기대어 살아가는 나를 본다. 나는 사람과 관계 맺는 법, 사람을 사랑하는 법에서 점점 더 멀어져간다. 그저 연연하지 않을 만큼 가까워지기를 희망한다. 그리 사는 영혼이문득 가여운 거다. - P154

그럼에도 그것이 이삼십 대에는 치열함의 미덕으로 소용됐을지언정, 사십 대에는 좀 넉넉한 시간의 옷이 필요한 것 같다. 빈틈없이날카로운 잣대는 늘어진 뱃살 드러나는 쫄티처럼 이제 내게 안 어울린다. 갑갑하고 각박하다. 남 보기에도 안 좋고 나도 불편하다. 야무지게 살려니 체력도 달린다. 오래된 핸드폰처럼 일 하나 처리하면 어느새 배터리가 한 칸만 남는다. 아무래도 다른 삶의 방식으로살아야 할 때인가보다. 게으름을 지혜의 알리바이로 삼지는 말되 게으름이 아닌 느긋함으로, 조급함이 아닌 경쾌함으로, 주변의 것들과어우러지는 행복한 삶의 속도를 만들어나가야겠다. 올라갈 때 못 본그 꽃, 내려올 때 볼 수 있도록. - P160

그해 겨울 용산참사 노제가 열리던 날도 그랬다. 민들레처럼 눈이 내렸다. 함박눈이 펑펑 그칠 줄 몰랐고 남일당 앞 스피커 차에서는 <민들레처럼>이 연신 울려 퍼졌다.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한다...…… 모질고 모진 이 생존의 땅에∙∙∙∙∙∙ 온몸 부딪치며 살아야 한다……… 민들레처럼." 구슬픈 가락 따라 눈사람이 된 유족과 검은 영정 사진이 무겁게 흘러갔다. 거침없이 피어나 짓밟힌 사람들. 고조되는 목소리. "아, 해방의 봄을 부른다. 민들레의 투혼으로오."
언젠가 봄은 온다고들 말하지만, 당사자에게 겨울은 너무 길고춥다. 구체적인 아픔을 무화시키고 봉합해버리는 상투적인 결말이거슬렸다.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보다 체온을 나누며 겨울을 나는 법을 노래해야 하는 게 아닐까. 마디마디 분절되어 살갗에 닿던 민들레처럼 말이다. - P163

데이트 생활자의 겨울 근래 들어 근무 태만이다. 혼자 노는 기술을 알아버렸다. 이를 테면, 파울첼란의 시집을 사고는 카페에 갔다가 독일풍으로 뮌헨 빵과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는 된장녀 짓을 일삼으니 지루하진 않다. 늘 그랬다. 사는 일은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립다. 바늘 하나로도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생명이고 눈송이 하나라도 깨어날 수 있는 것이 사람 아닌가. 그러니 이 헛됨을 누리면서 견딜 수 있는 한 번의 기쁨, 한 번의 감촉,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필요하다. 합정동에 두고 온 그대 생각 남일당에 두고 온 민들레처럼 학림다방에 두고 온 종이학. 팔뚝에 저장된 체온 같은 것들…………. 나의 무제한적인 부, 눈과 함께 서리서리 쌓인 시간의 기억들. 그것으로 겨울을 나고 일생을 버틴다. 사람은 가도 옛날은 남으니까. - P166

안 보이는 사람의 나라가 있다. 삶에 대한 상상력이 직업에 대한정보력을 넘지 못하는 수준이다 보니,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사람의이야기는 사라져간다. 남성, 이성애자, 서울 출신, 명문대 졸업, 전문직 종사자로 표상되는 소위 정상적 삶의 서사는 매스컴으로 구전으로 맹렬히 유통되는 반면, 거기서 벗어날수록 삶의 서사를 구성하기가 어렵다. 장애여성 강사처럼 자기 경험과 생각과 감정을 말할 기회가 드물고, 겨우 말한다 해도 오해나 동정을 산다. 그런데 남에게자기 얘기를 하지 않으면 사람은 자기를 알기 어렵고 사회에 자신을위치지을 수도 없다. 말소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마도 사람을 단정하는 내 ‘꾸준한 고집‘으로 눈앞에서 놓쳐버린무수한 타인들이 있을 것이다. 다시 듣기를 시도한다. 저마다 처지와 형편과 고민을 말하고 듣고 상상하는 동안 서로의 존재 정착을도우리라. - P170

여하튼 통속적이지 않았다. 드라마와 영화와 소설에서 변주되는 그숱한 삶의 유형으로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사다. 어쨌거나 다살아간다.
세상에는 무수한 삶이 있다. 이 말은 세상에는 무수한 아픔이 있다는 뜻이다. 알고 싶은 그러나 알 수 없는 그래서 보고도 모르는. - P174

뼈아픈 후회의 말들. 누군가가 자기 삶을 걸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얼마나 쓸쓸한가. 구슬처럼 흩어진 나날들 어언 20년 세월이다. 주말마다 집회 및 행사에 가느라 휴일 없이 살아온 그다. 대기업·정규직 · 남성 중심의 노동운동판에서 여성활동가의 입지는 좁다. 조직 내부의 부조리한 문화에 가슴앓이 다반사다. 높고 큰 벽, 정면돌파하기에는 선배의 기초 체력이, 권력의지가 약했다. 원래 목표 지향적 감각이 여성에게는 부재하다. 그래서 하루하루는 바빴으나 청춘 시대는 허술해진 형국이 되어버린 거다. 매일 일해도 평생가난할 수 있듯이. - P230

일명 ‘힘에의 의지‘로 니체는 세계의 작동 원리를설명한다. 온몸이 귀가 되어 니체의 철학을 빨아들이던 선배는 그럴수록 어머니의 지혜에 탄복했다.
나도 신기했다. 서해안 작은 섬에서 평생을 살아온 분이다. 나쁜짓이라도 하는 게 낫고 그러면서 하나라도 배워야 한다는 믿음. 그깨달음의 높은 돛대에 오르기까지 어머니는 얼마나 모진 풍파를 겪으셨을까.
선배는 선거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로 부위원장에 선출됐다. 더이상 젖지 않는 자, 불타지 않는 자의 모습은 없다. 지금은 환희에 젖고의욕에 불탄다. 내부 상황은 어지럽지만 해보고픈 일 해나가겠다며악행론을 폈다. "정말 그렇더라. 내가 조직에서 고립됐을 때 그들의악행 덕분에 대학원에서 공부할 결심도 했고, 또 내가 채용직 활동가라는 관례를 깨고 선거에 나가는 악행을 저질러서 조직에서 여성운동을 해볼 기회가 마련됐고, 악행이 꼭 악행이 아니더라고." 고개를끄덕이던 나는 니체 깔대기로 마무리했다. "그래서 니체가 창조하는자만이 비로소 어느 것이 선이고 악인지를 결정한다고 했지." - P232

한 번뿐인 인생. 잘 벌어 잘 먹고 잘 쓰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기의 세계관에 맞게 추구하면 될 일이다. 헌데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돈의 세례 속에서 평생 살 수 있는 인생이 많지도 않거니와돈은 속성상 충족을 모른다. 바닷물처럼 마실수록 갈증만 일으킨다.
돈의 만족보다 삶의 만족을 이루기가 더 쉽다. 이른 나이부터 안빈낙도하기는 어렵겠지만, 일찌감치 돈에 정신을 묶어두는 것도 서글프다. 마흔일곱에 겨우 벼슬에 오른 두보는 어지러운 정국과 부패한 관료 사회에 실망하여 시를 짓고 술을 마셔가며 시름을 달랬다고전해진다. 젊은 날 자유하고 성찰하며 살았던 사람은 자기 삶을 짓누르는 나쁜 공기를 금세 알아챈다. 이것은 위대한 능력이다. 두보를 보아도 그렇다. 부귀영화에 이 한 몸 던져 행복하려는 사람이 있고, 헛된 영화에 이 한 몸 얽맬 필요가 있으랴 노래하는 이가 있다.
둘 다 자기 선택이겠으나 젊은 날의 경험과 감각이 판단의 중요한근거가 됨은 분명해보인다.
인생의 꽃 시절은 짧고, 삶은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지속된다. - P238

프리랜서로 일할 때 여기 가라면 여기 가고 저기 가라면 저기가서 일해주고 오는데, 내가 몸 파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창녀의 직업과 크게 다른 노동을 한다는 생각을 갖기 어려웠다"고 했다. 일순 침묵이 흘렀다. "스스로를 팔기 위해 악착같이 이 거리에 매달린생"이라는 대목에선 우리들은 저마다의 처지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을 사고파는 일의 쓸쓸함은 정녕 피할 수 없는가. 분업화되고 파편화되는 삶의 양식에, 합리성과 효율성과 생산성에 저항해야지. 이 야만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길들여지지 말아야지. 팔 때 팔더라도 알고 팔려야지. 팔리기를 포기하지 못하면서 버둥거리는 노동절 전야. - P244

원수의 멸망을 보려거든 그가 늙을 때까지 기다려라
늙으면 필연코 추해진다
화장으로 가릴 수 없는 시든 주름들과
힘 빠져 늘어진 뱃가죽.
저 웅크린 매음녀의 짧은 한평생을
보라, 침처럼 흘러내리는 중얼거림이
그 옛날의 흔해 빠진 사랑의 고백이거나
노골적인 호객의 대사임을 듣고
그대는 놀라리라, 스스로를 팔기 위해
악착같이 이 거리에 매달린 생이
늦은 11월, 떨어져 비 젖은 나뭇잎과
쓰레기를 닮아간다는 사실, - P244

문득 술 취한 어느 손길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가 깜짝 놀라 물러설 때도
희미하게 그 어둔 눈빛 반짝인다는 사실,
이 거리의 어느 누구도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팔리기를 포기하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녀의 늙음은 너무 빨리 찾아왔다
그녀의 늙음은 너무 쉽게 노출된다
상처를 이루지 못한 비싼 사랑의 흔적들이
정액처럼 표지 위에 얼룩져 있다.

신간 코너에서 베스트셀러 코너로,
재고 도서로 쌓였다가 다시 무수한 손을 거쳐지루한 세일 기간 동안 싸구려로
드디어 제값으로 팔리기 위해 나와 앉은 헌책들

- 이영광의 시 <헌책들> - P245

윤여정은 이 영화 개봉 즈음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도 나처럼 부모 밑에선 소중한 딸 아니겠냐. 그런 생각을하면서 착잡해졌고 우울해졌다. 사람들은 왜 할 일이 많은데 저런일을 하느냐고 손가락질한다. 그런데 영화 속 대사에도 나오지만,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을 거다.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겠더라."
윤여정은 또한 영화를 하지 않았으면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살았을 세계를 안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의 내밀한 연기 덕분에 나역시 평소 모자이크 처리되고 음성변조된 채 가십거리로 소비되는한 존재의 생활 세계를 경험했다. 한 사람의 속사정에 다가갔다. 영화 제목만 봤을 땐 ‘죽여주는‘이란 수식어가 직업적 숙련도를 뜻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성적 쾌락과 죽음 대행,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소영이 하는 일이란, 산 사람 살게 하고 죽으려는 사람 죽게 하는 것이다. 그녀의 단골 고객 증언대로 소영은 천사였을까. 그렇다면 아마도 그건 지상의 가장 낮고위태위태한 자리에서 일생을 살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 P248

 남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다. 나는울컥함을 어찌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슬프고 구차한가요" 문자를보냈다. 답이 왔다. 마음만 남루하지 않으면 괜찮은 거라고 생각하라고 우연히, 혹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알아보겠다고. 그리고 말했다. "돌봄은 우주를 돌고돈다고 하죠."
니체가 남을 동정하고 연민할 때는 섬세한 기예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런 거였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쟤한테 받은 건 얘한테 줘도 되니까. 지금 받고 이따 줘도 되니까. 돌봄의 우주적 순환원리가 수건돌리기처럼 재밌고 흥미로운 이 세계의 운동으로 이해됐다. 그러고보니 텔레비전 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처럼 나에게 답지하는 온정의 손길로 나는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학력 자본 화폐 자본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내가 밥 먹고 사는 건 누군가의지극한 돌봄 덕분이었구나, 깨달았다. 신세 한탄 그만하고 나의 돌봄은 어디를 어떻게 향해야 하는가를 연구해야겠구나 마음 다잡았다. 그런데,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글픔은 긴 속삭임처럼 - P256

흘러다녔다. 난방비 폭탄이 나온 관리비 고지서 앞에서는 그토록 아름다운 이론도 힘을 잃는다. 본디 이데아적 세계는 감각의 세계 앞에서 무기력하다. 바람 앞 등불처럼 흔들리면서 꺼지지도 못하는 질긴이생. 바늘방석 같은 사랑 때로는 망각의 잠을 청하고 싶은. - P257

다 가진 삶의 기준이 결혼, 직장, 아이인가. 그 나름도 실속 있는삶이지만 단 하나 삶의 모델을 좇아 60억 인구가 한 방향으로 뛰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또 직장 다니면서 가정 꾸리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갑갑한 삶을 사는지, 그나마 손에 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두리번거리지도 못하고 삶의 에너지를 다 써야 한다는 팍팍한 현실을 상기시켰다. 일찍부터 타협하고 사는 노회한 젊음은 매력 없으니, 진짜 소설을 쓰려거든 지금처럼 불안하게 살라고 말했다. 그도 알고 있을 원론적인 얘기를 건네고, 나도 알고 있는 원론적인 말들을 들었다. 수다는 공회전이 본질이다. 전화를 천천히 끊고는 남사스러워서 하지 못한 말은 문자로 띄웠다. 실은 그날 전화한 날, 나눈물바람 했다고 자기가 초라하다고 생각하는 삶이 누구에겐 부러워 죽겠는 삶이기도 하다고 쓸쓸한 고백, 아니 수줍은 자백………….
황지우 시인의 말대로 삶을 한 번쯤 되물릴 수 있는 그곳에 간다면 난 얼마나 다르게 살 것인가. 아파하고 아파하는 이를 알아보면서 이 아픔의 전승 구조에 몸을 싣고 아마 지금처럼 살고 있을 것같다. 그것밖에 힘이 없다. 누구나 지금이 존재의 최선이다. - P262

내 직업 ‘작가‘도 학자와 더불어 문을 숭상하는 한국 사회 유교적 전통의 수혜 직군이다. 가난해도 대접받는 편이다. 그런데 글 쓰는 직업에도 위계가 있다. 자유기고가와 르포르타주 작가로 일하는내게 사람들은 예사롭게 묻는다. "시나 소설은 안쓰세요?" "등단하셔야죠. 저 순문학 세계에 이르는 길 어디쯤에 비소설 분야 문필하청업자 자리가 있지 싶다.
장르는 갈래다. 장르 자체가 작품의 고귀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직업이 인격을 담보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권력에 빌붙어 합리적 생존성만 따지는 의사나 법조인이 있고, 약자에게 다정한 폭력을 휘두르는 문인과 교수가 있다. 특정 직업에 덧씌워진 환상을 벗겨내고, 그 일이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 다른 존재를 억압하진 않는지, 어떤 관점을 내포하는지 해부학적으로 따져야 한다.
‘나는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누드모델처럼, 보여질 때조차도 보는 사람이 예술가다. - P266

나는 밥벌이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거기에 붙들릴까 염려한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거주하는 이 세계의 일상성이 무너질까 두려워할때 발생하는 것이 ‘불안‘이라고 했는데, 나는 내가 거주하는 이 세계의 일상성이 강고해질까봐 두렵다. 김수영의 시구대로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그런 어리석음을 동력으로 굴러가는 인생이다.
밥을 위한 삶 가치를 추구하는 삶. 이분법적으로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노동과 삶이 분리된 처지가 사람에게는 폭력적이다. 하나만 골라서 극단을 취하기는 어쩌면 만만할 것이다. 둘사이의 경계에서 긴장을 견디는 게 삶의 기예일 것이다. 그게 어려워 김수영도 제정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노상 주문을 외웠고, 자기미움으로 온통 시를 도배해놓았겠지. 내가 무슨 돈, 지위, 명예 같은권력의 표상을 탐하는 자도 아니고, 어떤 슬픈 일이 있어도 눈물을 - P269

말리고 내일을 위해서 잠을 지야 하는 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데도 사는 일이 간단치 않다.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해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 늦은 거미같이 존재 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들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 P271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국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 김수영의 시 <구름의 파수병> - P272

 은근히 긴장됐다. 동료와수다를 떨다가 지금 이 상황이 매우 당황스럽고 부담스럽다고 말했더니 그가 시니컬하게 한마디 던진다. "철학하려고 하지 말고 글쓰기를 해. 뭐가 문제야?" "알았어" 냉큼 답했다.
뜨끔했다. 나는 은근히 철학을 겸비한 글쓰기를 하려고 욕심내고있었다. 한 번에 다 이루려는 전형적인 초보자의 조급증. 그는 나쁜글, 좋은 글 사례나 많이 모아두라고 했다. 노가다가 진리니 3D 모드로 일해야지 다짐했다. 잠시 망각했는데, 나는 생산 모드에 돌입했을때 철학하지 않았다. 몸 써서 일했다. 농부처럼 허리 굽혀 씨 뿌릴 때무언가 자라났다. 그리고 누가 누구에게 ‘좋은 무엇‘을 말로써 가르칠수는 없다. 하다못해 아들과 대화할 때도 애초의 훈화 목적은 빗겨 가기 마련이다. 타자를 변화시키는 힘은 계몽이 아니라 전염이다. 자꾸까먹는다. 긴긴 겨울밤 존재의 방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마냥 뒹굴던 농한기가 가고 농번기가 온다. 글쓰기 강좌라는 농사를 앞두고, 내좋은 봄날의 캐롤송 <하얀 목련>을 부른다. 몸이 깨어나도록.
‘글쓰기의 최전선‘ 첫 번째 수업을 마치고 생각했다. ‘인터뷰랑이랑 비슷하네.‘ 어차피 낯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생각과 느낌 - P275

을 섞고 ‘글‘이라는 생산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랬다. 일주일이 후딱 갔고 수업이 기다려졌다. 글쓰기 수입이 전생처럼 익숙했고천직처럼 재미났다. 이는 거, 모르는 거 있는 거 없는 거 다 탈탈 털어서 나누고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얼결에 나도 많이 배웠다. 마지막 수업 때는 연천으로 엠티를 떠났고 밤 산책에서 반딧불의 향연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 스크린이 눈앞으로 내려온 느낌이랄까. 시야에 일렁이는 반딧불의 움직임은 진정 몽롱하고 아득했다. 좋은 글과 좋은 추억 가득했던 짜릿한 시간들. 마지막수업을 끝내고 생각했다. ‘강의 연애랑 비슷하네‘
예정된 일이었지만 허탈하고 허전했다. 궁상맞게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 날> 그 노래까지 떠올랐다. 남녀상열지사에 따르는 표준적인 이별 감정은 아닐진대 라디오에서 슬픈 노래만 나오면 눈물이 찡흘렀다. 토요일이 길었다. 그 무자비한 청의 시간이 가고 한 달 정도 지나자 서서히 평상심으로 돌아왔다. 이런 내가 비정상은 아닌가보다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배울 때 기쁨을 느끼지 않는 지는 가르쳐서는 안 된다. 무언가 다른것에 열중하는 것, 사랑하는 것, 배우는 것, 그것은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처음은 얼마나 무서운가. 첫사랑, 첫 아이, 첫 친구, 첫 스승, 첫 동료, 처음이라서 서툴고 두렵고설레고 그리고 애틋한 그 무엇. 한 존재의 급진적 변화를 끌어내는첫 바이러스들, 급류 같던 몇 군데 ‘첫‘ 인연을 통과하고 ‘글쓰기의최전선‘ 동료들을 만나며 나는 믿게 됐다. 인간은 처음 인연에 매몰된 만큼 성장한다. - P276

허수경의 시 구절처럼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 명함과 소속이 없으면 이리저리 치인다. 직장 다니는 여자가 살림하는건 당연시되지만 살림하는 여자가 공부하는 건 수시로 이유를 추궁당한다. 학위와 등단과 취직을 위한 공부가 아니어서, 그냥 글 쓰고싶은 삶이어서 나는 긴 세월 난감했다. 사회적 약자는 가진 게 없는사람이 아니라 무지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몸으로겪었다. 내가 책을 냈다고 했을 때도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은 이거였다. "어느 출판사예요?"
사람이나 책이나 이름 대면 알 만한 반듯한 명패가 방패가 되어주는 세상에서, 불확실성의 살아가기로 버티려면 아버지들의 말씀을 반사시킬 질문 카드라도 한 장 준비해야 할까보다.
"근데 그게 왜 궁금한 거죠?" - P280

어디 살림만 그러겠는가 싶다. 삶은 그 자체가 낭비다. 책 한 권을어렵사리 읽어도 돌아서면 내용을 까먹지 않던가. 두툼한 책 한 권에서 단어 하나 내 것으로 만들기가 어렵다. 수학 문제도 몇 번을 풀어야 자신 있게 답을 쓴다. 수년간 다달이 부은 보험을 해약하면 푼돈만 남는다.
사는 게 총체적으로 낭비라는 걸 인지하지 못할 때는 살림만 미워했다. 살림이, 정확히 가사 노동이 지겹고 하찮게 느껴져서 제발집안일 안 하고 살길 간절히 염원했다. 지금은 아니다. 좀 나아졌다.
콩나물을 다듬고 깻잎을 씻고 쌀을 씻으면서, 땅에서 난 그것들을만지면 마음이 순해지고 위로를 얻는다. 바닥 구석구석에 어질러진머리카락을 쓸어 담으며 헝클어진 번뇌를 같이 모아버린다. 떨어진단추를 달고 터진 솔기를 꿰매면서 벌어진 마음의 틈을 메운다. 해드는 오후 마루에 앉아 빨래를 반에서 반으로 접으며 미련과 회한을접는다. 날 괴롭히는 것이 날 철들게 한다더니 살림이 그렇다. - P285

공부든, 육아든, 농사, 간이든, 장사는 본디 사는 일은 간단치 않다. 나와 세상의 협응이 쉬울 리 없다. 그런데도 유독 출판, 사유와 집필 노동의 성과물에는 그 자체로도 번듯한 지위가 부여된다.
판매량에 비례해 사회적 위상이 수직으로 상승한다. 지식 노동 전반에 관한 우대 풍토는 교육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와 생산성이 최고라는 산업사회 이데올로기가 만나서 형성된 독특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내 비록 무명작가지만 이번에 책을 내고 더욱 실감했다. 저자에게 부여된 과도한 권위와 선망을.
책을 내는 것, 그 자체가 선업일 수 없다. 특히 요즘은 특정 집단의 이익과 자기 정당성 확보를 위한 출판도 많고 쉽다. 그 경계와 판단은 모호하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책이 나왔을 때 주변에서 축하도 좋지만 그 책이 어떤 책인가를 따져묻고 토론하는 인문적인 풍토가 형성되면 좋겠다. ‘책 낳는 일‘이 권력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해체하는 일이 되도록 말이다. - P28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자의 말

내가 여성성을 맞닥뜨린 건 결혼 이후다. 낯선 생활 세계가 열렸다. 해주는 밥만 먹다가 밥을 해먹어야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나는 집안일에 솔선하는 아내가, 그는 잘 도와주는 남편이 되었다.
그도 나도 똑같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다가 결혼을 했는데 가부장제 가족 제도에 편입되는 순간, 여자인 나는 계속 뭔가 불리했다. 자식의 배우자를 대하는 양가 부모의 태도도 달랐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치밀어 이불 뒤집어쓰고 울다 잠들곤 했다.
싸움보다 교화를 택했다. 여의도에서 잠실로 남편과 같이 출퇴근하면서 차 안에서 여성주의 책들과 고정희의 시집을 소리내 읽어주었다. 일상의 불평등 구조는 해소되지 않았다. 이론의 주입은 가능하나 감각의 세팅은 불가능했다. 두 아이를 낳았고 엄마가 되었다. 그때부터 공중 삼회전 난이도가 따르는 삼인분의 삶을 살았다. 밥도세 그릇, 빨래도 세 판, 청소도 세 번, 고민도 세 가지. 물론 남편은아이들과 놀이터에 나갔고 설거지를 자처했으며 배우자의 사적 생활을 지지했다. - P5

나는 싸움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공격 대상이 모호했다. 날마다 가슴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혼자 치르는 전투에서 나는 매일 전사했고꿈처럼 깨어나 오늘을 살았다. 시가 무기였다. 둥그런 바가지 머리일 때부터 방바닥에 누워 주섬주섬 먹던 시 이전처럼 한갓 유희로 시를 읽을 수 없었다. 생이 고달플수록 시가 절실했다. 일을 마치고 늦은 밤 귀가하면 식구들은 잠들고 집은 난장판이 되어 있곤 했다. 식탁 위에는 라면 국물이 반쯤 남은 냄비와 뚜껑도 닫지 않은 김치보시기와 고춧가루 묻은 젓가락이 엑스자로 놓여 있었다. 남편과아이들이 벗은 양말은 발아래 낙엽처럼 채였다. 텔레비전은 저혼자 무심하게 떠들고 있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손댈 수가 없을 때면, 나는 책꽂이 앞으로 가서 주저앉았다. 손에 잡 - P6

히는 시집을 빼서 시를 읽었다. 정신의 우물가에 앉아한 30분씩 시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기계적으로 일하는노예가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임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으면서 나는 나를 연민하고 생을 회의했다. 생이 가하는 폭력과 혼란에 질서를 부여하는 시. 고통스러운 감정은 정확하게 묘사하는 순간 멈춘다고 했던가. 마치 혈관주사처럼 피로 직진하는 시 덕분에 기력을 챙겼다. 꿈같은 피안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남루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힘이 났다. 시가 주는 묘한 해방감의 정체가 무언지는 몰랐다. 그런데 친구가 소설에서 봤다며 조선조사대부 여인에게는 시가 짓기를 금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책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결혼은 항상 숙명과 같은 엄숙한 얼굴로 가시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아내는 그 울타리 안에서 순치된 가축처럼 고분고분 살아갈 뿐이다. 이것이 남권 사회의 순리다. 가장 무난한 방도는 회의하지 않는 일이다. 남권 사회에 있어서 여인의 회의는 독약이나 같다. 조선조 사대부 여인들에게 시가 짓기를 금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문학에 눈뜨는 것은 회의에 눈뜨는 일이 아닌가.
- 이영희의 소설 《달아 높이곰 돋아사(1권)》 - P7

문학에 눈뜨는 일은 회의에 눈뜨는 일이고, 회의에 눈뜨는 일은존재에 눈뜨는 일이었다. 시를 읽는 동안 나 역시 생각에서 생각으로 돌아눕고 곱씹고 되씹고 뒤척이기를 반복했다. 흔한 기대처럼 시 - P7

는 삶을 위로하지도 치유하지도 않는다. 백석 시인이 노래했듯이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할 뿐이다.
시는 일이 만족스러운 사람은 굳이 삶을 탐구하지 않을 것이다.
시가 내게 알려준 것도 삶의 치유불가능성이다. 니체가 말했듯 "상투어로 자신을 위로하는 끔찍한 재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바닥까지 시는 깊게 내려간다. 옥타비오 파스의 말대로 시는 존재의 심층에 거주한다. 시를 통해 나는 고통과 폐허의 자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법을 고통과의 연결고리를 간직하는 법을 배웠다.
일명 진실과의 대면 작업. 어디가 아픈지만 정확히 알아도 한결 수월한 게 삶이라는 것을,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 오늘의 확실한절망을 믿는 게 낫다는 것을, 시는 귀띔해주었다. "인간은 자기가 어떻게 절망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알면 그 절망속에 살아갈 수 있다"는 벤야민의 말을 나는 시를 통해 이해했다. 시를 읽는다고 불행이 행복으로 뚝딱 바뀌지는 않지만 불행한 채로 행복하게 살 수는있다. 불행에 삶의 자리를 선뜻 내어주자 나는 싸움하지 아니하는사람이 되었다. 황동규 시인의 말대로 "시는 행복 없이 사는 훈련"
인 것이다. - P8

생에 울컥한 순간 일상을 추스르며 적어간 글 중 아직 어느 책에도실리지 않은 기록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보와 《한겨레》에 가장최근까지 연재한 칼럼을 모은 것이다. 이 책은 서른다섯부터 마흔다섯을 경유하는 한 여자의 투쟁의 기록이다. 모성을 수행하는 엄마이자 존재를 이행하는 자아라는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삶의 조건 속에서 나는 분열했고 분투했다. "존재하는 한 이야기하라"는 페미니즘의 명제대로 말하기를 시도했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싸움은 불가피했다. 팸 모리스 말대로 "모든 재현은 이데올로기적 갈등의 장또는 상반되는 관점들이 서로를 지배하기 위해 투쟁을 벌이고 있는언어학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언어와 현실의 투쟁을 거치며 자기언어를 더듬더듬 찾아갔고 그러는 사이 삼인분의 인격은 각자 분화했다. 딸아이 꽃수레는 미취학 아동에서 중학생이 되었고, 잠꾸러기아들은 군에 입대했고, 나는 글 쓰는 사람 은유가 되었다. - P11

싸울 때마다 질문은 탄생했다. 집안일부터 세상일까지 나의 울컥은 생의 질문이 되었다. 끝도 없고 두서없는 물음의 연쇄는 사람이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되었다. 내가 구상하는 좋은 세상은 고통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이다. 이는 아주 일상적으로는 끼니마다 밥 차리는 엄마의 고단함을 남편과 아들이 알아보는 것이고, 음식점이나 경비실에서 일하는사람과 눈을 마주하는 것이다. 혹서기도 혹한기도 예외 없이 캐리어위에 방석 하나 깔고 앉아 깐 마늘을 파는 할머니의 다 닳아빠진 엄지손톱을 보면서 그의 삶을 가만히 헤아리는 일이다. 세월호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문득 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2014년 4월 16일보다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는 것이다.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고 존재가 존재를 닦달하지 않는 세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 물음을 내려놓지 않는 한, 나는 계속 무언가와 싸우며 글을 쓰고 있을 것 같다. - P12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자아가 있다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아무런 이익도 추구하지 않고 스스로를 달고유화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라고 엘렌 식수가 말했던가. 엄마가 내어준 부드러운 자아의 토양에 삶에서 길어낸 언어의 씨앗을 뿌렸더니, 그것이 신기하게도 책으로 자랐다. 내 거친 생각에 빛과 물을 부어준 귀한 인연들,
같이 시를 읽고 글을 쓰고 말을 나눠준 도반들, 이 책에는 그들의 체온과 지분이 들어 있음을 말하고 싶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지는 모든 존재들의 ‘탈고유화‘의 여정 위에 이 책을 내려놓는다. - P13

다른 듯 같은 삶. 할머니와 어머니 세대에는 그 질곡이 더 심했으며, 주로 딸들이 목격자이자 피해자로서 그 원한을 간직한다. 약자에게 원한은 단 하나의 기억의 장소다. 대를 거듭해 매일 되풀이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의 입에서 나오다니, 뜨끔했다. 나는 사과했다. 너무 지랄해서 미안하다고. 그랬더니 선배는 그날의 대화로전시의 방향을 잡았다며 외려 고맙다고 했다. 큰언니가 듣고 있다가쓴소리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발전한다고 거들었다. 덜 민망했다. 집요하게, 치열하게, 고민하다가 가길 얼마나 잘했는지, 소주에 맥주를연거푸 마셔도 취하지 않은 밤이 얼마 만인지. - P29

결혼도 이혼도 인연을 쓰는 한 방편일 뿐이다. 플라톤의 말대로무엇이든 그 자체 단독으로 아름답거나 추하지는 않다.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실천의 미이고, 그것을 추하게 만드는 것은 실천의 비열함이다. 이혼도 그런 것 같다. 비열한 이혼도 아름다운 이혼도 있다. 그러니 권장할 일도 배척할 일도 아니다. 삶 전체를 위한 합리적인 골격을 짜는 하나의 과정으로 아픈 선택일 뿐이다. 삶의 어느국면에서 생을 담은 물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 단지 그것뿐이다.

이별은 언제나 예고 없이 온다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어 잊고 산다
어리석어 내 생을 담은 한 잔 물이
잠시 흔들렸을 뿐이다단지 그것뿐이다- 
정일근의 시 <그 후> 부분 - P24

- 김기택의 시 <풀인간적 성숙은 낯선 대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을겪으며 자기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때 일어나는 것이다. 엄마라는 생태적 지위는 성숙에 이르는 여러 기회 가운데 하나일 뿐저절로 성불하는 코스가 아니다. 그나마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고통의자산화가 가능하려면 어느 정도 문화적 자원이 있어야 한다. 애키우고 먹고사느라 하루하루 허덕이는 여성은 그럴 겨를조차 없다.
요즘은 소신 있게 출산을 거부하는 이들도 많다. 불임 여성도 느는 추세다. 그래서 애 낳은 여자, 애 안 (못) 낳는 여자의 일상의 구체적 고통을 외면한 ‘모성의 이상화‘는 참 나쁜 관념이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고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애를 안 낳아봐서가 아니라 해결하지 않아도 권력을 유지하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권력을 떠받치는 것은 온갖 나쁜 관념에 휩싸여주변의 여린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주변 사람들이다. - P32

 자기 욕망을 일인칭 시점에서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여전히 모자라다. 착한 여자는 천당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는 말대로, 일상의 금기는 넘나들지만 몸에 그은 선은 제자리다. 올여름‘그래도 될까‘를 되묻고 검열하다가 점잖지 못한 핫팬츠 두 개는 버렸고, 머리는 기장만 짧게 손질했다. 내 인생의 두발 자율화가 시행된 지가 언제인데 머리 모양은 중고등학생 때 그대로, 단발에서 어깨까지 길이를 무료하게 오간다. 꼭 한 번 빨간 머리를 원했지만 어느새 흰머리가 정수리부터 증식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명동성당 첨탑이 보이는 2층 술집에서, 그날 우리는 늙기 전에 오프숄더 드레스 입고 송년 파티를 열어볼까 호기롭게 떠들었다. 술단지가 비는 동안 ‘남들이 뭐라든 입는‘ 장단지가 드러나는 반바지에서 ‘우리가 입어보고 싶은‘ 어깨가 내보이는 드레스로 논의가 진척됐다. 이게 어딘가 자못 대견하다. 저무는 여름밤, 여자들은 매미처럼 시끌벅적 ‘생의 언어‘를 배양했다. 오규원 시인의 시구처럼 "욕망의 성기이며 육체의 현실인 말"을 - P36

<본분 금메달>이 열렸던 설 연휴에 차례를 지낸 후 나는 제주도로 떠났다. 기름 냄새에 찌든 메스꺼운 기분에서 벗어나 옥빛 바다의 찬 공기를 쐬며 맑은 정신으로 명절을 보냈다. 결혼 후 처음 누리는 호사다. 며느리, 딸, 엄마, 아내의 본분을 벗어나 존재의 오롯함을즐겼다. 바닷가 마을 작은 서점에 들렀다가 스무 살의 나로 돌아가전혜린의 에세이 《목마른 계절》을 집어들었고, 그 책에서 "여성의가장 본질적인 약점으로 나는 생 전반에 대한 비본연적 태도를 들고싶다"는 문장에 아프게 밑줄을 그었다.
비본연적 태도로 살아가길 강요받는 이 땅의 모든 <본분 금메달>의 출전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전혜린은 이렇게 글을 매듭짓는다. "남녀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무서운 조건하에 놓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근본적인 생감정에 지배된 생활이어야 한다"고 - P49

역할 역할의 꽃, 엄마 역할. 역시 ‘역할‘은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다. 영혼 없이도 가능하다. 현관에 들어서면 나는 엄마가 되어 기차가 레일을 지나가듯 현관에서 부엌으로, 부엌에서 식탁으로, 식탁에서 냉장고로 자동 왕복하는 거다. 사고하지 않아도 그냥 습관대로하던 대로 막힘없이 수행한다. 이런 걸 무슨 숭고한 모성이라고 말하겠는가. 자기 손에 물 묻히기 싫은 사람들이 지어낸 말일 뿐. 누추하고 번거로운 집안일이다.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싫은 건 아니다.
엄마 역할로 주어지는 과다한 몫들이 싫다. 엄마 역할을 하는 동안은 내가 나 같지 않다. 그냥 밥순이, 그냥 아줌마다. - P52

가족들이랑 캐리비언 베이 가는 거 말고, 내가 정말 가고 싶은 데는 여수 밤바다다. 혼자서 가고프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여수행우등고속을 끊고 떠났다가 여수에서 며칠 묵고 또, 백석이 "자다가도 바다가 보러 나가고 싶다"고 한 통영에도 가고 민박집에서 하루종일 방 끝에서 방 끝으로 뒹굴면서 책 보고 밤이면 파도 소리 들으면서 글 쓰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붙박이 인생 청산하고 떠돌이처럼 살면 내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사는 일이 덜 지겨울까 역할에서 빠져나오면 나비처럼 자유로울까. 여섯 시간째 뱃속이 텅 비었다고 전화하는 딸내미에게 즉시 달려가지 않아도 되면 나의 인생이 더 고상해질까.
밥에 묶인 삶. 늘 떠남의 욕망에 시달린다. 먼곳에 대한 그리움이 바다 되어 출렁이고 마음만은 지중지중 물가를 거닌다. - P56

열 번 잘하다가도 어느 순간 남처럼 등 돌리는 남자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 씻지도 못하고 이틀째 널려 있는 빨래를 걷는데도 꼼짝 않고 누워 있는 남편 결혼 전에 아빠를 볼 때면 좀 궁금했다. 옆 사람 힘든 게 왜 안 보일까………. 나중에 알고 보니 못 본 척하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보이는 거다. 대대손손 소통불능의 장애를 겪는 남성들. 그렇게 살아도 삶이 유지됐으므로 타인의 심정을 헤아리는 능력이 퇴화한 것이다. 무심함이 무뚝뚝함, 남자다움으로 미화된데다가 학교나 학원에서 안 가르쳐주니까 관 뚜껑 닫힐 때까지 모른다. 모르고 편하게 살다가 죽는 남자들이 많으니까 그만큼 한평생고생만 하다가 죽는 여자들도 많다. - P58

요즘 집밥이 화제가 되는 걸 보면서 나는 오래 전 저 어머니와 밥의 삽화들이 떠올랐다. 지금 나는 아침 안 먹는 아이로 키우는 소설가 엄마보다는 밥 차려주는 어머니에 해당하는 순응적 일상을 겉으로는 살고 있다. 허나 속으로는 끼니마다 회의한다. 나에게 밥은 집밥이냐 외식이냐, 레시피가 간단하냐 복잡하냐, 맛이 있냐 없냐가아니다. 그 밥을 대체 ‘누가‘ 차리느냐의 문제다. 최승자 시인의 시구대로 우리는 "채워져야 할 밥통을 가진 밥통적 존재이고, 누군가차리지 않은 그냥 밥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엄마들은 어디 효도관광이라도 가서야 내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매 끼니밥이 나오는 신비를 경험한다. 그제야 맛본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을 - P67

출산은 성스럽지만은 않다. 아이는 모성의 힘으로 낳는 게 아니다.
제 스스로의 힘으로 뚫고 나온다. 그리고 낯선 존재의 출현은 공포와위험으로 다가온다. 첫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밤잠을 설치며 아기가숨을 잘 쉬는지 코에 손가락을 대보곤 한다.
갓난아기는 신성한 생명인데 어떻게 버릴 수 있느냐는 물음은 바뀌어야 한다. 신성함은 누구에 의해 어떤 상황에서 규정되는가. 왜생물학적 아버지인 남자 친구나 부모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서‘ 한생명체를 쏟아내듯 낳고 치우듯 버려야만 했을까. 왜 미혼모로 살아가는 일이 제 몸 아파 낳은 아기를 죽게 내버리는 일보다 더 공포스럽게 되었을까. 미혼모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학교에 유아원을 두는독일 같은 나라도 있다는데, 왜 우리 사회는 미혼모가 사회 안에 섞여 살아가지 못하고 양육의 짐을 몽땅 떠맡아야 할까. - P70

그간 나는 너무 쉽게 고통의 자산화와 운명애를 말한 건 아닐까.
고통에 대한 분석적 언어는 때로 현실의 구체적 고통을 소거시킨다.
이데올로기 이전의 삶은 이리도 난폭하고 섬뜩하다. 그러니 여자로태어나서 미친년으로 진화한다는 말은 여자의 연대기에 관한 핵심적 진술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를 읽다가 밑줄그었던 부분, "미친년 널뛴다는 말은 폭력적이다. 미친년을 미치게만든 미친놈들의 존재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새삼 궁금했다. 그길고 오랜 세월 동안 미친놈들의 존재는 어떻게 생략이 가능했을까.
미혼모는 있어도 미혼부는 없지 않은가. 세상은 어째서 여전한가.
느닷없는 물음에 붙들린 2012년 2월 29일.
늦된 엄마는 오늘도 딸을 낳고 앳된 딸은 매일매일 학교에 간다. - P75

나는 아직도 미안하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내게 터놓은 그 친구에게 가해자가 친족이었고 아홉 살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나는너무 놀라 "그랬구나………" 말끝을 흐리며 어정쩡하게 다른 얘기로넘어갔다. 그 친구는 더 말하고 싶었을 텐데 난 듣는 법이 서툴렀다.
세월이 흐르고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인터뷰할 때 물었다.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상대가 무어라고 말해주면 가장 좋은지. 그들은이렇게 답했다. "힘들었겠구나. 나한테 얘기해줘서 고마워."
진실은 말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듣는 데 있는 것이다. 말할 권리the right to speak 와 들릴 권리the right to be heard는 영어로 같은 표현이라고 하지 않나. 그러니 집집마다 당도해야 할 것은 가해자의신상 명세가 아닌, 피해자의 들릴 권리가 담긴 서툰 말이다. - P81

첫아이 키울 때는 전화기 건너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억장이 무너졌다. 그 눈물이 긴 시간의 강물로 보자면 돌멩이 하나 던져진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한참 후다. 늘 입으로는 엄마도 엄마 인생이 있단다를 주장해왔지만 뜻대로 살기 힘들었다. 자기중심적인 엄마라는 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고작 일곱 살아이 혼자 두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소주잔 기울이는 나를 스스로도 좀 심한 엄마로 규정하게 된다. 정말로 아이 키우는 일은 순간순간이 어려운 시험이다. 노사 협상처럼 하나 양보하고 하나 받아내는 거래를 해보기도 한다. 나의 좋음과 아이의 좋음의 접점을 찾아
‘윤리적 선택‘을 고민해보기도 한다. 그게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는 알겠다. 아이가 다양한 상황에 놓여보는 것이 아이의 감성을 일깨우는 것 같다. 늘 살던 패턴대로 익숙하게 사는 사람은 생각할 일이 없다. 열차 시간처럼 정확히 도착하던 엄마가 늦을수도 있음을 유년시절 윗목에서 체험한 아이는 적어도 상실감, 외로움, 쓸쓸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감정의 결이 생기고 마음의 살이 포동포동 오르겠지. - P90

엄마의 죽음으로 나는 한 차례 변이를 경험했다.
세상을 감각하는 신체가 달라졌다.
삶이라는 것, 그냥 살아감 정도였는데,
엄마를 통해 죽음을 가까이서 보고 나니까
‘삶‘이라는 추상명사가 만져지는 느낌이었다.
삶은 이미 죽음과 배반을 안고 시작된다. - P97

왜 엄마들에게 행복은 늘 충족유예 상태로만 존재해야 하는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인내하는 삶 자식을 위해 당신은 포기하는삶………. 워낙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서 그러신 줄은 안다. 그래도 난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는데, 엄마가 호강 한번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결심이 더 확고해졌다. 나의 일신의호강은 주체적으로 ‘지금 여기서 챙겨야 한다는 것. 그 엄정한 사실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늙고 아프고 죽는다는 차가운 명제를 상기한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자식에게 의지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고 내가 부모님을 봉양해야 할지도 모른다. 닥치면 살겠지 한다. 미리 걱정하면서 고통을 가불하고 싶지 않다.
늙음, 그 존재의 무너짐을 삶의 과제로 의연히 받아들이고 싶다.
내가 늙은 부모를 봉양하든 내가 늙어 자식에게 의탁하든, 비참하고비루한 생이 지겨워 눈물 바람 할 테고 태어난 걸 후회하다가도 또어떤 날은 살 만해서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겠지.  - P101

육아가 힘들 때 아이들이 족쇄 같아 괜히 낳았다고 원망했던 것처럼 더러는 괜히 죄없는 부모님을 탓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나는 안다. 힘든 일 포기하고 떠난다고 자유롭지 않다. 그건 자유에 대한 환영이고 망상이다.
넘지 못할 것 같은 산도 한 걸음 내디디면서 다리 힘이 길러지고 그러면 다음 봉우리는 더 쉽게 건널 수 있다. 근육이 튼튼해지고 체력이 길러지면 삶의 어느 고비에서도 성큼성큼 문제 안으로 들어가는궁극적인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런데 문제를 회피하고 도망가면 걸린 데서 또 걸린다. 살아보니 그랬다.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고 좋기만 한 관계는 가짜이고, 아무런 사건도 생기지 않은 무탈한 일상이행복은 아니었다. - P1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