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학벌 세탁에 드는 자원을 마련할 수도 없었다. 몰락한 중산층이 되어 월백만원에이르는 재수 학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생계 노동에 나서야 하기에 책상에 붙어 앉아 미적분을 풀 시간이 없었고, 두 아이 양육과 살림만으로도 생체 에너지는 고갈됐다. 그 모든 한계를 떨치고 일어날만큼 공부에 한이 맺혀 있지도 않았다. 지금 책장에 꽂힌 책만 다 읽기에도 남은 인생이 부족할 지경이었는데 내가 왜 굳이 또 그걸. 나는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운이 좋은 고졸 사람이었다. 비교적 문턱이 낮은 자유기고가 직업에 입문해 열일했고 전세자금도 올려줬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글쓰기 관련 강의도 나간다. 학력 문제는 계속 따라다닌다. 내가주로 강의를 나가는 곳은 시민단체다. 나랏돈을 받아 운영되다 보니강사료 지급 기준이 박하고 엄격하다. 다른 통로로 최저 강사료를마련해주기 위해 활동가가 애를 먹기도 한다. 작년에 모 대학 특강을 갔을 때는 강사료 지급기준에 석박사 학력 기준은 있어도 고졸학력 기준은 없어서 새로 만들어야 했단다. - P115
여자라서 불편한 게 많다 보니 피곤하긴해도 ‘생각‘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처럼, 고졸이란 신분도 그랬다. 덕분에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디 있는지 늘 되묻고 깨어 있어야 했으니까. 얼마 전에는 그것과 관련해 꽤 불쾌한 일을 겪었는데 괜찮지 않았다. 나는 잊고 살아도 세상은 잊지 않으므로 ‘그것‘을 자주 생각해야 한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 P116
그들의 변신 욕망이 어떤 가치를 낳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자기를 억압하느냐 해방하느냐. 하나는 분명해보인다. 묵묵한 살아냄보다 무구한 조작이 우세할수록 삶은 꼬인다는 것, 이장욱 시인의시구처럼 "나는 오해될 것"이고 "결국 나는 나를 비켜갈 것"이라는사실이다. 삶은 명사로 고정하는 게 아니라 동사로 구성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오해받을지라도 순간의 진실을 추구하고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며 살아갈 때만 아주 미미하게 조금씩, 삶은 변한다. - P118
살면서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들은 이름, 감각, 느낌, 음악, 이야기・・・・・ 나에게 존재를 위해 금가루 뿌리는 일이란 음악이 내미는손을 잡는 것,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것, 느낌을 나누는 것. 그리호사 누리며 살기로 한다. - P119
할 말 못할 말, 들을 말, 못 들을 말, 찬란한 말, 쓰라린 말, 참담한말, 간절한 말, 희미한 말, 비정한 말, 흔드는 말, 지독한 말, 다정한말 사는 동안 숱한 말의 숲을 통과한다. 도무지 그 말이 어려워 서성이기도 했고, 그 말에 채여서 주저앉기도 했고, 그 말이 따스해 눈물짓기도 했다. 그렇게 추억이란 말의 기억이다. 그리고 어느 시인의 말대로 모든 흔적은 상흔이다. 완전한 제거는 없다. 누렇게 곰팡이 쓴 말들과 소화되지 않은 말들을 껴안고 한평생 살아간다. 가끔텅 빈 몸에서 말의 편린들이 덜컹거리면, 외로운 몸뚱이 안에서 들려오는 그 인기척이 반갑기까지 하다. 어느새정이 든 게다. - P121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의 허물어진 어깨를 훑고 가던 쓸쓸한 바람이 다시 분다. 긴 강을 건넌 기분이 든다. 다행히 줄초상은나지 않았다. 사실 ‘굿‘이라는 풀지 못한 숙제를 안고 살아가는 3년동안 문득 조마조마했다. 그럴 때마다 280 인 분의 거룩한 식사를 생각했다.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다는 사실이 뜨겁게 자각되었다. 삶을 옹호하는 본능일까. 주위에 더 눈길을 돌리고 더 아우르며 마음 다해 살 수 있었다. 내게 삶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런 난해함을 삶의 일부로 껴안고살아간다. 또다시 내 앞에 물살 거센 긴 강이 놓일 수 있다는 것을긍정하면서 말이다. 돌이켜 보면 그 점쟁이의 말은 충분히 불우했으되 나의 몰락과 미망을 도와준 바람의 말이었다고 말하게 된 지금에서야, "과거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말한 니체의 말을 내것으로 삼는다. - P127
한시절 편안하고 맵시있게 입었더라도 옷은 낡고 체중은 는다. 그리하여어느 날 몸에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때가 온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몸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의 시점이 온다. 연심의 변심 혹은 절심은 언제나 비약으로 다가오는 사건이지만생물성이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이치이기도 하다. 나도 그랬다. 어디든 데려다주는 날개이자 비바람을 막아주던 존재가 불편하고 갑갑해지는 순간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엄마가 그랬고 연인이 그랬고 친구가 그랬고 동료가 그랬다. 어떤 음악이 어떤 책들이 그랬다. 세월이 그렇게 했다. 생의 시기마다 필요한 옷이 있고 어울리는 색과 취향이 있듯이삶의 체형에 맞게 인연도 변해간다. 식물도감 동물도감 속 개체들처럼 사람 역시 멋진 자기 유지를 위해 색을 바꾼다. 인연의 옷을 갈아입는다. - P130
사는 동안 존재를 확장하려는 노력은 멈출 수 없겠지만순한 양처럼 주어진 시간에 복종하고 싶다. 어디로든 끝 간에는 사라질 길. 그저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 P141
사랑하는 것들과 결을 맞추는 연습. 그리고 얻어온 것들의 본래 자리를 기억하는 노력. 궁극에는 돌려보내야 할 것들과 이별하는 훈련. - P153
생의 빈틈이나 존재의 허전함을 사람으로 채우려는 건 무리한 욕심이다. 그래서 음악이 필요하고 책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말 없는 그것들이 품은 살 같은 말에 기대어 살아가는 나를 본다. 나는 사람과 관계 맺는 법, 사람을 사랑하는 법에서 점점 더 멀어져간다. 그저 연연하지 않을 만큼 가까워지기를 희망한다. 그리 사는 영혼이문득 가여운 거다. - P154
그럼에도 그것이 이삼십 대에는 치열함의 미덕으로 소용됐을지언정, 사십 대에는 좀 넉넉한 시간의 옷이 필요한 것 같다. 빈틈없이날카로운 잣대는 늘어진 뱃살 드러나는 쫄티처럼 이제 내게 안 어울린다. 갑갑하고 각박하다. 남 보기에도 안 좋고 나도 불편하다. 야무지게 살려니 체력도 달린다. 오래된 핸드폰처럼 일 하나 처리하면 어느새 배터리가 한 칸만 남는다. 아무래도 다른 삶의 방식으로살아야 할 때인가보다. 게으름을 지혜의 알리바이로 삼지는 말되 게으름이 아닌 느긋함으로, 조급함이 아닌 경쾌함으로, 주변의 것들과어우러지는 행복한 삶의 속도를 만들어나가야겠다. 올라갈 때 못 본그 꽃, 내려올 때 볼 수 있도록. - P160
그해 겨울 용산참사 노제가 열리던 날도 그랬다. 민들레처럼 눈이 내렸다. 함박눈이 펑펑 그칠 줄 몰랐고 남일당 앞 스피커 차에서는 <민들레처럼>이 연신 울려 퍼졌다.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한다...…… 모질고 모진 이 생존의 땅에∙∙∙∙∙∙ 온몸 부딪치며 살아야 한다……… 민들레처럼." 구슬픈 가락 따라 눈사람이 된 유족과 검은 영정 사진이 무겁게 흘러갔다. 거침없이 피어나 짓밟힌 사람들. 고조되는 목소리. "아, 해방의 봄을 부른다. 민들레의 투혼으로오." 언젠가 봄은 온다고들 말하지만, 당사자에게 겨울은 너무 길고춥다. 구체적인 아픔을 무화시키고 봉합해버리는 상투적인 결말이거슬렸다.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보다 체온을 나누며 겨울을 나는 법을 노래해야 하는 게 아닐까. 마디마디 분절되어 살갗에 닿던 민들레처럼 말이다. - P163
데이트 생활자의 겨울 근래 들어 근무 태만이다. 혼자 노는 기술을 알아버렸다. 이를 테면, 파울첼란의 시집을 사고는 카페에 갔다가 독일풍으로 뮌헨 빵과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는 된장녀 짓을 일삼으니 지루하진 않다. 늘 그랬다. 사는 일은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립다. 바늘 하나로도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생명이고 눈송이 하나라도 깨어날 수 있는 것이 사람 아닌가. 그러니 이 헛됨을 누리면서 견딜 수 있는 한 번의 기쁨, 한 번의 감촉, 한 번의 이윽한 진실이 필요하다. 합정동에 두고 온 그대 생각 남일당에 두고 온 민들레처럼 학림다방에 두고 온 종이학. 팔뚝에 저장된 체온 같은 것들…………. 나의 무제한적인 부, 눈과 함께 서리서리 쌓인 시간의 기억들. 그것으로 겨울을 나고 일생을 버틴다. 사람은 가도 옛날은 남으니까. - P166
안 보이는 사람의 나라가 있다. 삶에 대한 상상력이 직업에 대한정보력을 넘지 못하는 수준이다 보니,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사람의이야기는 사라져간다. 남성, 이성애자, 서울 출신, 명문대 졸업, 전문직 종사자로 표상되는 소위 정상적 삶의 서사는 매스컴으로 구전으로 맹렬히 유통되는 반면, 거기서 벗어날수록 삶의 서사를 구성하기가 어렵다. 장애여성 강사처럼 자기 경험과 생각과 감정을 말할 기회가 드물고, 겨우 말한다 해도 오해나 동정을 산다. 그런데 남에게자기 얘기를 하지 않으면 사람은 자기를 알기 어렵고 사회에 자신을위치지을 수도 없다. 말소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마도 사람을 단정하는 내 ‘꾸준한 고집‘으로 눈앞에서 놓쳐버린무수한 타인들이 있을 것이다. 다시 듣기를 시도한다. 저마다 처지와 형편과 고민을 말하고 듣고 상상하는 동안 서로의 존재 정착을도우리라. - P170
여하튼 통속적이지 않았다. 드라마와 영화와 소설에서 변주되는 그숱한 삶의 유형으로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사다. 어쨌거나 다살아간다. 세상에는 무수한 삶이 있다. 이 말은 세상에는 무수한 아픔이 있다는 뜻이다. 알고 싶은 그러나 알 수 없는 그래서 보고도 모르는. - P174
뼈아픈 후회의 말들. 누군가가 자기 삶을 걸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얼마나 쓸쓸한가. 구슬처럼 흩어진 나날들 어언 20년 세월이다. 주말마다 집회 및 행사에 가느라 휴일 없이 살아온 그다. 대기업·정규직 · 남성 중심의 노동운동판에서 여성활동가의 입지는 좁다. 조직 내부의 부조리한 문화에 가슴앓이 다반사다. 높고 큰 벽, 정면돌파하기에는 선배의 기초 체력이, 권력의지가 약했다. 원래 목표 지향적 감각이 여성에게는 부재하다. 그래서 하루하루는 바빴으나 청춘 시대는 허술해진 형국이 되어버린 거다. 매일 일해도 평생가난할 수 있듯이. - P230
일명 ‘힘에의 의지‘로 니체는 세계의 작동 원리를설명한다. 온몸이 귀가 되어 니체의 철학을 빨아들이던 선배는 그럴수록 어머니의 지혜에 탄복했다. 나도 신기했다. 서해안 작은 섬에서 평생을 살아온 분이다. 나쁜짓이라도 하는 게 낫고 그러면서 하나라도 배워야 한다는 믿음. 그깨달음의 높은 돛대에 오르기까지 어머니는 얼마나 모진 풍파를 겪으셨을까. 선배는 선거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로 부위원장에 선출됐다. 더이상 젖지 않는 자, 불타지 않는 자의 모습은 없다. 지금은 환희에 젖고의욕에 불탄다. 내부 상황은 어지럽지만 해보고픈 일 해나가겠다며악행론을 폈다. "정말 그렇더라. 내가 조직에서 고립됐을 때 그들의악행 덕분에 대학원에서 공부할 결심도 했고, 또 내가 채용직 활동가라는 관례를 깨고 선거에 나가는 악행을 저질러서 조직에서 여성운동을 해볼 기회가 마련됐고, 악행이 꼭 악행이 아니더라고." 고개를끄덕이던 나는 니체 깔대기로 마무리했다. "그래서 니체가 창조하는자만이 비로소 어느 것이 선이고 악인지를 결정한다고 했지." - P232
한 번뿐인 인생. 잘 벌어 잘 먹고 잘 쓰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기의 세계관에 맞게 추구하면 될 일이다. 헌데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돈의 세례 속에서 평생 살 수 있는 인생이 많지도 않거니와돈은 속성상 충족을 모른다. 바닷물처럼 마실수록 갈증만 일으킨다. 돈의 만족보다 삶의 만족을 이루기가 더 쉽다. 이른 나이부터 안빈낙도하기는 어렵겠지만, 일찌감치 돈에 정신을 묶어두는 것도 서글프다. 마흔일곱에 겨우 벼슬에 오른 두보는 어지러운 정국과 부패한 관료 사회에 실망하여 시를 짓고 술을 마셔가며 시름을 달랬다고전해진다. 젊은 날 자유하고 성찰하며 살았던 사람은 자기 삶을 짓누르는 나쁜 공기를 금세 알아챈다. 이것은 위대한 능력이다. 두보를 보아도 그렇다. 부귀영화에 이 한 몸 던져 행복하려는 사람이 있고, 헛된 영화에 이 한 몸 얽맬 필요가 있으랴 노래하는 이가 있다. 둘 다 자기 선택이겠으나 젊은 날의 경험과 감각이 판단의 중요한근거가 됨은 분명해보인다. 인생의 꽃 시절은 짧고, 삶은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지속된다. - P238
프리랜서로 일할 때 여기 가라면 여기 가고 저기 가라면 저기가서 일해주고 오는데, 내가 몸 파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창녀의 직업과 크게 다른 노동을 한다는 생각을 갖기 어려웠다"고 했다. 일순 침묵이 흘렀다. "스스로를 팔기 위해 악착같이 이 거리에 매달린생"이라는 대목에선 우리들은 저마다의 처지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을 사고파는 일의 쓸쓸함은 정녕 피할 수 없는가. 분업화되고 파편화되는 삶의 양식에, 합리성과 효율성과 생산성에 저항해야지. 이 야만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에 길들여지지 말아야지. 팔 때 팔더라도 알고 팔려야지. 팔리기를 포기하지 못하면서 버둥거리는 노동절 전야. - P244
원수의 멸망을 보려거든 그가 늙을 때까지 기다려라 늙으면 필연코 추해진다 화장으로 가릴 수 없는 시든 주름들과 힘 빠져 늘어진 뱃가죽. 저 웅크린 매음녀의 짧은 한평생을 보라, 침처럼 흘러내리는 중얼거림이 그 옛날의 흔해 빠진 사랑의 고백이거나 노골적인 호객의 대사임을 듣고 그대는 놀라리라, 스스로를 팔기 위해 악착같이 이 거리에 매달린 생이 늦은 11월, 떨어져 비 젖은 나뭇잎과 쓰레기를 닮아간다는 사실, - P244
문득 술 취한 어느 손길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가 깜짝 놀라 물러설 때도 희미하게 그 어둔 눈빛 반짝인다는 사실, 이 거리의 어느 누구도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팔리기를 포기하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녀의 늙음은 너무 빨리 찾아왔다 그녀의 늙음은 너무 쉽게 노출된다 상처를 이루지 못한 비싼 사랑의 흔적들이 정액처럼 표지 위에 얼룩져 있다.
신간 코너에서 베스트셀러 코너로, 재고 도서로 쌓였다가 다시 무수한 손을 거쳐지루한 세일 기간 동안 싸구려로 드디어 제값으로 팔리기 위해 나와 앉은 헌책들
- 이영광의 시 <헌책들> - P245
윤여정은 이 영화 개봉 즈음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도 나처럼 부모 밑에선 소중한 딸 아니겠냐. 그런 생각을하면서 착잡해졌고 우울해졌다. 사람들은 왜 할 일이 많은데 저런일을 하느냐고 손가락질한다. 그런데 영화 속 대사에도 나오지만,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을 거다.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겠더라." 윤여정은 또한 영화를 하지 않았으면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살았을 세계를 안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의 내밀한 연기 덕분에 나역시 평소 모자이크 처리되고 음성변조된 채 가십거리로 소비되는한 존재의 생활 세계를 경험했다. 한 사람의 속사정에 다가갔다. 영화 제목만 봤을 땐 ‘죽여주는‘이란 수식어가 직업적 숙련도를 뜻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성적 쾌락과 죽음 대행,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소영이 하는 일이란, 산 사람 살게 하고 죽으려는 사람 죽게 하는 것이다. 그녀의 단골 고객 증언대로 소영은 천사였을까. 그렇다면 아마도 그건 지상의 가장 낮고위태위태한 자리에서 일생을 살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 P248
남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다. 나는울컥함을 어찌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슬프고 구차한가요" 문자를보냈다. 답이 왔다. 마음만 남루하지 않으면 괜찮은 거라고 생각하라고 우연히, 혹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알아보겠다고. 그리고 말했다. "돌봄은 우주를 돌고돈다고 하죠." 니체가 남을 동정하고 연민할 때는 섬세한 기예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런 거였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쟤한테 받은 건 얘한테 줘도 되니까. 지금 받고 이따 줘도 되니까. 돌봄의 우주적 순환원리가 수건돌리기처럼 재밌고 흥미로운 이 세계의 운동으로 이해됐다. 그러고보니 텔레비전 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처럼 나에게 답지하는 온정의 손길로 나는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학력 자본 화폐 자본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내가 밥 먹고 사는 건 누군가의지극한 돌봄 덕분이었구나, 깨달았다. 신세 한탄 그만하고 나의 돌봄은 어디를 어떻게 향해야 하는가를 연구해야겠구나 마음 다잡았다. 그런데,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글픔은 긴 속삭임처럼 - P256
흘러다녔다. 난방비 폭탄이 나온 관리비 고지서 앞에서는 그토록 아름다운 이론도 힘을 잃는다. 본디 이데아적 세계는 감각의 세계 앞에서 무기력하다. 바람 앞 등불처럼 흔들리면서 꺼지지도 못하는 질긴이생. 바늘방석 같은 사랑 때로는 망각의 잠을 청하고 싶은. - P257
다 가진 삶의 기준이 결혼, 직장, 아이인가. 그 나름도 실속 있는삶이지만 단 하나 삶의 모델을 좇아 60억 인구가 한 방향으로 뛰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또 직장 다니면서 가정 꾸리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갑갑한 삶을 사는지, 그나마 손에 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두리번거리지도 못하고 삶의 에너지를 다 써야 한다는 팍팍한 현실을 상기시켰다. 일찍부터 타협하고 사는 노회한 젊음은 매력 없으니, 진짜 소설을 쓰려거든 지금처럼 불안하게 살라고 말했다. 그도 알고 있을 원론적인 얘기를 건네고, 나도 알고 있는 원론적인 말들을 들었다. 수다는 공회전이 본질이다. 전화를 천천히 끊고는 남사스러워서 하지 못한 말은 문자로 띄웠다. 실은 그날 전화한 날, 나눈물바람 했다고 자기가 초라하다고 생각하는 삶이 누구에겐 부러워 죽겠는 삶이기도 하다고 쓸쓸한 고백, 아니 수줍은 자백…………. 황지우 시인의 말대로 삶을 한 번쯤 되물릴 수 있는 그곳에 간다면 난 얼마나 다르게 살 것인가. 아파하고 아파하는 이를 알아보면서 이 아픔의 전승 구조에 몸을 싣고 아마 지금처럼 살고 있을 것같다. 그것밖에 힘이 없다. 누구나 지금이 존재의 최선이다. - P262
내 직업 ‘작가‘도 학자와 더불어 문을 숭상하는 한국 사회 유교적 전통의 수혜 직군이다. 가난해도 대접받는 편이다. 그런데 글 쓰는 직업에도 위계가 있다. 자유기고가와 르포르타주 작가로 일하는내게 사람들은 예사롭게 묻는다. "시나 소설은 안쓰세요?" "등단하셔야죠. 저 순문학 세계에 이르는 길 어디쯤에 비소설 분야 문필하청업자 자리가 있지 싶다. 장르는 갈래다. 장르 자체가 작품의 고귀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직업이 인격을 담보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권력에 빌붙어 합리적 생존성만 따지는 의사나 법조인이 있고, 약자에게 다정한 폭력을 휘두르는 문인과 교수가 있다. 특정 직업에 덧씌워진 환상을 벗겨내고, 그 일이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 다른 존재를 억압하진 않는지, 어떤 관점을 내포하는지 해부학적으로 따져야 한다. ‘나는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누드모델처럼, 보여질 때조차도 보는 사람이 예술가다. - P266
나는 밥벌이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거기에 붙들릴까 염려한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거주하는 이 세계의 일상성이 무너질까 두려워할때 발생하는 것이 ‘불안‘이라고 했는데, 나는 내가 거주하는 이 세계의 일상성이 강고해질까봐 두렵다. 김수영의 시구대로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그런 어리석음을 동력으로 굴러가는 인생이다. 밥을 위한 삶 가치를 추구하는 삶. 이분법적으로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노동과 삶이 분리된 처지가 사람에게는 폭력적이다. 하나만 골라서 극단을 취하기는 어쩌면 만만할 것이다. 둘사이의 경계에서 긴장을 견디는 게 삶의 기예일 것이다. 그게 어려워 김수영도 제정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노상 주문을 외웠고, 자기미움으로 온통 시를 도배해놓았겠지. 내가 무슨 돈, 지위, 명예 같은권력의 표상을 탐하는 자도 아니고, 어떤 슬픈 일이 있어도 눈물을 - P269
말리고 내일을 위해서 잠을 지야 하는 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데도 사는 일이 간단치 않다.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해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 늦은 거미같이 존재 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들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 P271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국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 김수영의 시 <구름의 파수병> - P272
은근히 긴장됐다. 동료와수다를 떨다가 지금 이 상황이 매우 당황스럽고 부담스럽다고 말했더니 그가 시니컬하게 한마디 던진다. "철학하려고 하지 말고 글쓰기를 해. 뭐가 문제야?" "알았어" 냉큼 답했다. 뜨끔했다. 나는 은근히 철학을 겸비한 글쓰기를 하려고 욕심내고있었다. 한 번에 다 이루려는 전형적인 초보자의 조급증. 그는 나쁜글, 좋은 글 사례나 많이 모아두라고 했다. 노가다가 진리니 3D 모드로 일해야지 다짐했다. 잠시 망각했는데, 나는 생산 모드에 돌입했을때 철학하지 않았다. 몸 써서 일했다. 농부처럼 허리 굽혀 씨 뿌릴 때무언가 자라났다. 그리고 누가 누구에게 ‘좋은 무엇‘을 말로써 가르칠수는 없다. 하다못해 아들과 대화할 때도 애초의 훈화 목적은 빗겨 가기 마련이다. 타자를 변화시키는 힘은 계몽이 아니라 전염이다. 자꾸까먹는다. 긴긴 겨울밤 존재의 방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마냥 뒹굴던 농한기가 가고 농번기가 온다. 글쓰기 강좌라는 농사를 앞두고, 내좋은 봄날의 캐롤송 <하얀 목련>을 부른다. 몸이 깨어나도록. ‘글쓰기의 최전선‘ 첫 번째 수업을 마치고 생각했다. ‘인터뷰랑이랑 비슷하네.‘ 어차피 낯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생각과 느낌 - P275
을 섞고 ‘글‘이라는 생산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랬다. 일주일이 후딱 갔고 수업이 기다려졌다. 글쓰기 수입이 전생처럼 익숙했고천직처럼 재미났다. 이는 거, 모르는 거 있는 거 없는 거 다 탈탈 털어서 나누고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얼결에 나도 많이 배웠다. 마지막 수업 때는 연천으로 엠티를 떠났고 밤 산책에서 반딧불의 향연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 스크린이 눈앞으로 내려온 느낌이랄까. 시야에 일렁이는 반딧불의 움직임은 진정 몽롱하고 아득했다. 좋은 글과 좋은 추억 가득했던 짜릿한 시간들. 마지막수업을 끝내고 생각했다. ‘강의 연애랑 비슷하네‘ 예정된 일이었지만 허탈하고 허전했다. 궁상맞게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 날> 그 노래까지 떠올랐다. 남녀상열지사에 따르는 표준적인 이별 감정은 아닐진대 라디오에서 슬픈 노래만 나오면 눈물이 찡흘렀다. 토요일이 길었다. 그 무자비한 청의 시간이 가고 한 달 정도 지나자 서서히 평상심으로 돌아왔다. 이런 내가 비정상은 아닌가보다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배울 때 기쁨을 느끼지 않는 지는 가르쳐서는 안 된다. 무언가 다른것에 열중하는 것, 사랑하는 것, 배우는 것, 그것은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처음은 얼마나 무서운가. 첫사랑, 첫 아이, 첫 친구, 첫 스승, 첫 동료, 처음이라서 서툴고 두렵고설레고 그리고 애틋한 그 무엇. 한 존재의 급진적 변화를 끌어내는첫 바이러스들, 급류 같던 몇 군데 ‘첫‘ 인연을 통과하고 ‘글쓰기의최전선‘ 동료들을 만나며 나는 믿게 됐다. 인간은 처음 인연에 매몰된 만큼 성장한다. - P276
허수경의 시 구절처럼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 명함과 소속이 없으면 이리저리 치인다. 직장 다니는 여자가 살림하는건 당연시되지만 살림하는 여자가 공부하는 건 수시로 이유를 추궁당한다. 학위와 등단과 취직을 위한 공부가 아니어서, 그냥 글 쓰고싶은 삶이어서 나는 긴 세월 난감했다. 사회적 약자는 가진 게 없는사람이 아니라 무지한 질문에 답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몸으로겪었다. 내가 책을 냈다고 했을 때도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은 이거였다. "어느 출판사예요?" 사람이나 책이나 이름 대면 알 만한 반듯한 명패가 방패가 되어주는 세상에서, 불확실성의 살아가기로 버티려면 아버지들의 말씀을 반사시킬 질문 카드라도 한 장 준비해야 할까보다. "근데 그게 왜 궁금한 거죠?" - P280
어디 살림만 그러겠는가 싶다. 삶은 그 자체가 낭비다. 책 한 권을어렵사리 읽어도 돌아서면 내용을 까먹지 않던가. 두툼한 책 한 권에서 단어 하나 내 것으로 만들기가 어렵다. 수학 문제도 몇 번을 풀어야 자신 있게 답을 쓴다. 수년간 다달이 부은 보험을 해약하면 푼돈만 남는다. 사는 게 총체적으로 낭비라는 걸 인지하지 못할 때는 살림만 미워했다. 살림이, 정확히 가사 노동이 지겹고 하찮게 느껴져서 제발집안일 안 하고 살길 간절히 염원했다. 지금은 아니다. 좀 나아졌다. 콩나물을 다듬고 깻잎을 씻고 쌀을 씻으면서, 땅에서 난 그것들을만지면 마음이 순해지고 위로를 얻는다. 바닥 구석구석에 어질러진머리카락을 쓸어 담으며 헝클어진 번뇌를 같이 모아버린다. 떨어진단추를 달고 터진 솔기를 꿰매면서 벌어진 마음의 틈을 메운다. 해드는 오후 마루에 앉아 빨래를 반에서 반으로 접으며 미련과 회한을접는다. 날 괴롭히는 것이 날 철들게 한다더니 살림이 그렇다. - P285
공부든, 육아든, 농사, 간이든, 장사는 본디 사는 일은 간단치 않다. 나와 세상의 협응이 쉬울 리 없다. 그런데도 유독 출판, 사유와 집필 노동의 성과물에는 그 자체로도 번듯한 지위가 부여된다. 판매량에 비례해 사회적 위상이 수직으로 상승한다. 지식 노동 전반에 관한 우대 풍토는 교육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와 생산성이 최고라는 산업사회 이데올로기가 만나서 형성된 독특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내 비록 무명작가지만 이번에 책을 내고 더욱 실감했다. 저자에게 부여된 과도한 권위와 선망을. 책을 내는 것, 그 자체가 선업일 수 없다. 특히 요즘은 특정 집단의 이익과 자기 정당성 확보를 위한 출판도 많고 쉽다. 그 경계와 판단은 모호하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책이 나왔을 때 주변에서 축하도 좋지만 그 책이 어떤 책인가를 따져묻고 토론하는 인문적인 풍토가 형성되면 좋겠다. ‘책 낳는 일‘이 권력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해체하는 일이 되도록 말이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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