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으로 인해 사람들이 들끓는 바람에 새로 부흥한 이지역은 현재로서는 라투르 신부의 관할아래 놓여야 할 것 같다고 캔자스의 주교는 말하고 있었다. 라투르 주교의 거대한대교구는 이미 남쪽과 서쪽으로 수천 평방마일 확대되어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제는 북쪽으로 아직도 미개지이면서 갑자기 중요한 지역이 된 콜로라도 로키 산맥까지도 떠맡아야할 판이었다. 리벤워스의 주교는 라투르 주교에게 그곳으로가능하면 빨리, 이 온갖 종류의 인간들 사이에서 자신을 한껏 잘 지켜 나갈 수 있는 신앙심이 독실할 뿐 아니라 기지가있으며 똑똑하고 유능한 사제를 한 명 보내 달라고 간청하고있었다. 그곳으로 가는 사제는 침구와야영장비, 의약품과식량, 몹시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옷 등을 챙겨가야 한다고 - P275

했다. 덴버에는 담배와 위스키 말고는 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곳엔 여자들도 없고, 요리용 화덕도 없다고 했다. 거기서 금을 캐는 사람들은 반쯤 구워진 밀가루 빵과 술을 먹으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곳은 산골짜기 물조차도 깨끗하게 유지되지 못하고 있어 열병으로 죽기도 한다고했다. 살아가는 환경은 모두 최악의 상태라고 했다.
저녁식사를 한 후에 라투르 신부는 이 편지를 서재에서 바일랑 신부에게 큰 소리로 읽어 주었다. 편지를 모두 읽었을때 그는 빽빽하게 글씨가 쓰여 있는 편지지들을 내려놓았다.
「요셉 신부, 당신은 할 일이 없다고 불평해 왔잖아요. 바로여기 당신이 할 일이 있어요.」 - P276

의 가운데 그 사막 지역에 있는 누런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그에게는 가장 사랑스러웠었다. 하지만 그런 유대 관계를 깨고 작별 인사를 한 후 미지의 다른 곳으로 또다시 떠나야 하는 것이 그의 삶의 규율이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요셉 신부는 그의 장화에 기름칠을 하고 발에 생긴 딱딱한 굳은살을 낡은 면도날로 도려내고 있었다. 트루카스 산맥 쪽치마요라는 멕시코인 마을에사는 선량한 사람들은 그들의 성당에 있는, 말을 타고 있는조그만 산티아고 성자 상을 각별히 모시는 편이었다. 그들은이 성자가 밤마다 말을 타고 밖으로 돌아다니며 임무를 수행하느라 구두가 닳는다며, 몇 개월에 한 번씩 그 성자 조각상에게 새로 만든 장화를 신겨 주곤 했다. 그곳에 머물면서 요셉 신부는 자신의 손을 주님께 헌납하였는데, 이에 준하여주님께서 선교사의 발에도 특별한 축복을 내려 주셨으면 한다고 그곳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었다. - P277

라투르 신부는 은으로 된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기적은모든 게 다 잘되는 것이 기적이지요, 요셉. 하지만 이번 일은꼭 그렇게 될 것 같지가 않아요. 난 당신을 친구로 내 곁에 두고 싶어서 소환장을 보낸 거였어요. 주교로서의 권위를 내개인적인 소망을 위해 쓴 거지요. 그건 이기적인 것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인간으로서 당연히 그럴 만한 일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같은 나라 사람인 데다가, 오랜 시간을 친구로 지내며 함께 추억할 일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두 친구가 이곳에 함께 왔다가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야 하다니...…. 하지만그도 그럴 수 있는 일이겠지요. 나는 이 모든 일에 어떤 기적이 일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 P282

가난한 멕시코인들이 이 단순한 형상에 사랑을 쏟아 부은첫 번째 사람들은 아니라고 주교는 생각했다. 라파엘과 티티안은 그들이 살던 시대에 성모 마리아를 위해 의상을 만들었고, 음악의 거장들은 성모 마리아를 위해 음악을 만들었고, 위대한 건축가들은 성모 마리아를 위해 성당을 지었다. 성모마리아가 지상에 태어나기 오래전, 인류의 타락과 참회 사이의 오랜 여명 속에서 이교도 조각가들은 늘 여자의 모습을한 여신상을 만들려고 애썼었다. - P287

도 있어요」바일랑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난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가 일어서더니 방을 왔다 갔다하며 주교를 보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살아온 삶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어요. 우린 오래전에, 우리가 신학교 학생이었을 때 하려고 계획했던 일들을 해냈잖아요. 적어도 그 일들 중 몇 가지는요. 젊었을 때 꿈꾸었던일들을 실현시키는 것, 그것은 최고로 행복한 일이잖아요.
어떤 세속적인 성공도 이를 대신할 수는 없잖아요.「흰둥이.」 주교가 일어서며 말했다. 당신은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에요. 당신은 오만이나 수치심을 갖지 않고 영혼을구해 주는 위대한 사람이에요. 나는 늘 좀 냉정한데... 당신이 항상 말하듯, 학자인 척만 하는 사람인데요. 훗날 천국에가서 우리가 별들이 달린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된다면, 당신은 수많은 별들이 무리져 있는 왕관을 쓰게 될 거예요. 내게축복을 베풀어 주세요.」주교가 바일랑 신부 앞에 무릎을 꿇었고, 바일랑 신부가그를 축복해 주자 다시 바일랑 신부가 주교 앞에 무릎을 꿇었고, 교대로 주교가 바일랑 신부를 축복해 주었다. 그들은과거를 위해 그리고 미래를 위해 서로 꼭 껴안았다. - P292

언젠가 그가 선교를 위해 테스케를 방문했다가 노새를 타고 나오는 길에 시내를 따라오던 중 이곳을 우연히 지나치게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작은 멕시코인이 사는 집 한 채와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만큼 굉장히 크게 자란 살구나무로그늘이 드리워진 정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나무는 줄기가두 개였는데, 각 줄기가 사람의 몸보다도 더 굵었다. 그리고분명히 아주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열매를 주렁주렁매달고 있었다. 살구는 크고 빛깔이 아름다웠으며 굉장히 맛이 좋았다. 이 나무가 언덕을 배경으로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대주교는 햇살에 많이 노출되는 곳이 좋은 과일을 맺게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바위로 울퉁불퉁한 경사진 언덕으로부터 반사되는 태양의 열기가 이 나무에 똑 고르게 온도를 유지시켜 주며 양쪽에서 따뜻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에서도 이렇게 양쪽에 벽이 있는 곳에서열린 복숭아가 완벽할 정도로 맛이 좋았었다. - P296

그는 그 지역의 야생화들을 집의 정원에 심어 개량하기도했다. 그는 뉴멕시코 언덕에서 무더기로 낮게 자라는 자줏빛꽃이 피는 버베나를 개량시켜 그의 정원의 한쪽 언덕을 완전히 뒤덮게 하기도 했다. 그것은 태양 아래 내던져진 거대한보랏빛 벨벳 망토 같아 보였다. 이것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염색공들과 직조공들이 수 세기 동안 애써 온 미묘한 음영을지닌 색조를 띠고 있었는데, 장밋빛으로 가득 찼으면서도 라벤더 빛깔이랄 수는 없고, 거의 분홍빛이 되려는 파란빛이면서도 다시 하늘로 후퇴한 짙은 자줏빛 같은 보랏빛으로진실한 기독교의 빛깔이자 무수한 변이를 혼합적으로 가진 빛깔이었다. - P298

1885년에 한 젊은 신학교 학생인 베르나르 뒤크로가 뉴멕시코로 왔는데, 그는 라투르 신부에게 아들 같은 존재가 되었다. 늙은 대주교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몽페랑에 있는 수도원과 교실에서 종종 이야기되곤 했기에 라투르 신부는 이소년의 상상 속에 자리 잡아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그는 오래도록 이곳에 오기를 기다려 왔었다. 베르나르는 잘생겼고머리가 비상했으며, 존경하는 상관이 지니고 있는 우수함을또한 존경할 줄 아는 훌륭한 청년이었다. 그는 라투르 신부의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했고, 라투르 신부의 회고담을 들었으며, 라투르 신부가 이야기해 준 추억들을 소중히여겼다.
「틀림없어요.」 주교는 사제들에게 말하곤 했었다. 주님께서 내 마지막 남은 세월 동안 나를 도와주라고 이 젊은이를내게 보내 주신 겁니다.」 - P298

뉴멕시코에서 그는 늘 젊은이처럼 깨곤 했었다. 그가 일어도 할 때에서야 자신이 점점 늙어 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가 깨자마자 처음으로 의식할 수 있는 것은붙어 들어오는 가볍고 건조한 바람이었는데, 이태양과 산 쑥과 클로버 냄새를 가져다주었다. 바왕은 누군가에게 몸이 가볍다고 느끼도록 만들며 누군가가마음속으로 어린아이처럼 <오늘이다. 오늘이야.>라고 외치도록 만들었다.
아름다운 환경, 학식 있는 사람들과의 교제, 고상한 여자들의 매력, 우아한 예술 등도 그에게 그런 느낌의 사막에서의 마음 가벼운 아침이나, 다시 소년으로 만드는 바람을 잃어버린 것을 대신해 줄 수는 없었다. 새로운 지역의 공기 속이 특질도 사람에 의해 땅이 개간되어 수확을 하게 되면 사라져 버리는 것을 그는 주목했다. 그가 처음에 널따랗게 펼처진 지역으로 보았던 텍사스와 캔자스 지역들이 비옥한 농장지대로 바뀌게 되자, 공기는 마른 향기 좋은 냄새를 풍기던 가벼움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경작을 한 땅의 습기와 노 - P306

고의 무거움과 성숙해서 곡식을 품고 있는 이 모든 환경이그것을 완전히 망가뜨려 버렸기 때문이다. 세상의 환한 가장자리, 거대한 초원지, 혹은 산 쑥 숲이 군집해 있는 사막에나가야 그런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 공기는 어쩌면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생애가 끝난 후가 되리라.
그가 타인 뉴멕시코로 가서 여생을 보내고 거기서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때가 언제였는지는 그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그곳에는 부드러우면서도 야생적이고 자유로운 어떤것이 있었다. 베개 위에서 귀에 대고 살며시 속삭이며 마음을 가벼이 해주고 슬그머니 열쇠를 돌려 빗장을 빼내고 감금된 정신을 바람 속으로, 파란색의 금빛 대기 속으로, 아침 속으로, 아침 속으로 풀어 놓아 주는 그 어떤 것이! - P307

그래서 인간은 잔인한 삶으로 인해 잔인해져 있었다. 초창기 선교사들은 거인들의 인내심을 시험해 보기로 마음먹고 있는 이지방의 딱딱한 심장 위에 벌거벗은 그들의 몸을 내던진 것이었다. 그들은 사막에서 갈증으로 고생했고, 바위 사이에서 굶주렸으며, 발에 돌투성이로 타박상을 입으며 무시무시하게험준한 계곡을 오르내렸고, 오래 굶주렸던 배를 깨끗하지도않고 비위에 맞지도 않는 음식으로 채웠다. 이들은 분명히 베드로와 그의 형제들이 경험했던 정도를 능가하는 굶주림과 갈증과 추위와 헐벗음을 참아 내야 했다. 유럽에서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든지 간에 그것은 모두 안전한 작은 지중해 세계, 옛날부터 알고 있는 방식으로 옛날부터 알고있는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순교를 견뎌 냈다 해도 그들은 그들의 형제들이 있는 곳에서 죽었고, 그들의 유물은 성스럽게 보관되었고, 그들의 이름은 성자의 입을 통해 살아 있게되었다. - P310

후니페로 신부가 수도사들에게 말하길, 그 집에 들어가는순간부터 왠지 이상하게 그 어린아이에게 끌렸으며 그를 안아보고 싶었지만 그가 그냥 어머니 곁에 있도록 놔두었다고했다. 사제가 저녁 기도를 드릴 때 그 아이는 바닥에 앉아 어머니 무릎에 기대고 있었고 양은 그의 무릎에 있었는데, 신부는 그의 일과성무서에 시선을 집중시킬 수가 없었다고 했다. 기도 후에 그는 그 집 가족들에게 안녕히 주무시라고 하면서 조그만 소년한테 몸을 굽혀 축복을 해주었다고 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손을 들어 조그만 손가락으로 후니페로 신부의 이마에 십자 성호를 그어 주었다고 했다.
라투르 주교가 하룻밤 묵고 있는 대 저택의 벽난로 가에서들은 후니페로 신부의 성스러운 가족에 대한 이 이야기는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그 이야기에 대해 실로 애정 - P314

을 갖게 되어 두 번씩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한 번은 필로메네가 원장으로 있는 리옹 수녀원의 수녀들에게였고, 또 한 번은 로마에 있을 때 마츄치 추기경이 베푸는 저녁식사 자리에서였다. 위대함은 소박함으로돌아온다는 생각은 늘 아주 매력적이었다. 시골 처녀들 사이에서 건초를 만드는 여왕이라든가처럼 …. 하지만 예수님의역사와 영광이 여러 세기가 지난 후 가난한 사람들 중에 가장 가난하다고 할 수 있는 겸손한 멕시코인 가족의 모습으로현현했다니, 그것도 세상의 끝에 있는 황야에서, 천사들도그들을 찾는 일이 거의 드문 그런 곳에서! - P315

그것은 바일랑 신부와는 아무런 관계도없는 존재 같았다. 그는 자신이 베르나르를 보는 것처럼 선명히 요셉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여전히 그들이뉴멕시코에 처음 왔을 때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감상이 아니었다. 그의 기억 속 요셉 신부에 대한 모습은 그것뿐이었다.
다른 모습은 없었다. 주교는, 장례식이란 단지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시켜 주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고자 했다. 장례식은 야외에서 텐트를 쳐놓고 거행되었는데 덴버에는, 그러니까 극 서부 지방 전체에는 건물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다. 그문제로 말하자면, 야외 장례식은 흰둥이의 장례식으로는 충분한 곳이었다. 장례식 이틀 전부터 마을과 광산 야영 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물밀듯이 내려왔다. 그들은 마차나 텐트나 헛간에서 잠을 잤다. 수도원 광장에 국민 전당 대회 때처럼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이 장례식에서 이상한 일이 있었다. - P321

어느 날 아침 간호사가 그의 침대 근처에 신문을 놓고 나갔는데, 거기에 콜로라도의 주교가 죽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수녀가 돌아왔을 때 어느새 환자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즉시 기차역까지 마차를 타고가겠다고 그녀를 설득했다. 덴버에 도착하자마자 마차를 타고 주교의 장례식장으로 가달라고 했다. 그가 거기 도착했을때는 장례식이 거의 반은 끝나 가고 있었다. 죽어 가는 사람이 택시 운전사와 두 사제의 부축을 받으며 군중 속을 뚫고들어가 관 옆에 무릎을 꿇었는데, 이 장면은 어느 누구도 잊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를 위해 의자를 가져다주었고, 나머지 장례식 동안 그는 관 가장자리에 머리를 댄 채 앉아 있었다. 바일랑 주교가 무덤으로 운반되자 르바르디 신부는 병원으로 다시 이송되었고, 거기서 며칠 후에 그는 죽었다. 이것은 홍인족 인디언이건 황인종이건 백인이건 간에 요셉 신부가 친구를 아주 잘 사귀기도 하지만, 한번 사귀면 오래도록 진실한 친구로 만들어 개인적으로 특별히 헌신하도록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한 가지 실례이다. - P322

1875년 주교는 자신의 대성당을 짓기 위해 프랑스에서 온건축가가 일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기 전 그에게 애리조나를보여 주려고 그 지역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 그는 나바호족이 말을 타고 대평원을 다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기뻤다. 두 명의 프랑스인들은 이상하게 생긴 절벽을 구경하기 위해 캐년 데첼리 계곡에까지도 들어갔다. 위로 솟아오른 모래바위 벽들 사이 아래 땅에서는 또다시 곡식들자라고 있었고, 굉장히 웅장한 미루나무들 아래서 양들이 풀을 뜯으며 달콤한 시냇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은 꼭인디언의 에덴동산 같았다.
이제 늙어 아프게 되자 지나간 세월의 어둡고도 밝았던 그모든 장면들이 주교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추방되어 가는 나바호족들이 리오그란데 강에서 나룻배를 기다리며 짓 - P332

고 있던 그 무시무시한 얼굴 표정들, 얼마 남지 않은 가축들을 몰고 노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게 줄지어 늘어선 생존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그가 이른 봄철 리틀 콜로라도에서 유사비오와 함께 보낸 시간이 떠올랐다. 그때 양이 새끼를 분만하는 철이 아직 끝나지 않은 때여서..… 피부가 거무스레한 사람들이 말을 타고이리저리 다니며 엄마 잃은 어린양들을 찾아 품에 안고 들어왔고..... 젊은 나바호족 여자가 엄마 양을 찾을 때까지 어린양에게 자기 젖을 주고 있었다.
「베르나르」 연로한 주교가 중얼거렸다. 주님께서 그런잘못된 일들이 올바로 되는 행복을 내가 볼 수 있도록 오래살게 해주셨구나. 옛날에 나는 인디언이 멸종할 것이라고 믿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가 않아. 주님께서 인디언을 보호해주시리라 믿어.」 - P333

수녀원장과 막달레나와 베르나르가 병든 주교의 시중을들었다. 주교는 침상에서 평화롭게 고통 없이 누워 있었기에그들은 지켜보며 기도하는 것 이외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편안한 모습으로 보아 가끔 그는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눈은 뜨지 않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이 감돌고 의식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날이 저물어 가고 있을 즈음, 촛불이 켜지는 어스름 녘에주교 노인이 편치 못해서 약간 움직이더니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프랑스어였는데, 베르나르는 몇 마디를 알아듣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뭐라고 하셨어요, 신부님? 저 여기 있어요.」주교가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손을 약간 움직이자, 막달레나는 그가 뭔가 물어보거나 말하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 P335

하지만 실상, 주교는 거기에 이미 없었다. 그는 그의 고향 산천 가운데 끝이 툭 튀어나온 푸른 밭에 가서 있었다. 그는 선교하러 떠날 것인지 그냥 고향에 머물 것인지, 그 앞에 놓인두 개의 기로 속에서 고통에 차 있는 젊은이에게 위로를 해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는 신앙심이 돈독하고 고통으로 인해 지쳐 있는 사제에게 새로운 <의지>를 북돋워 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짧았다. 파리행 역마차가 이미 산길에서 우르릉거리며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 어두워진 후 대성당 종이 울렸을 때, 산타페에 사는 멕시코 주민들은 무릎을 꿇었고 미국인 가톨릭교도들도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지 않은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마음속으 - P335

로는 기도를 했다. 유사비오와 테스케에서 온 소년들이 그들의 부족들에게 주교의 임종 소식을 전하기 위해 조용히 떠났다. 다음 날 아침 대주교 노인은 그가 지은 성당의 높은 제단앞에 놓여 있었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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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첼란 Paul Celan1920년

루마니아 북부 부코비나의 체르노비츠에서 유대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체르노비츠는 옛 합스부르크 왕가의 변방으로 독일어를 쓰는지역이었다.) 그의 나이 21세 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체르노비츠는 유대인 거주 지역(토)으로 확정된다. 독일군이 도시를 점령한 후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고, 첼란의 가족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끌려가 강제 노역을 하던 그는 부모의 처참한 죽음에 관한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 또한 가스실 처형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살아남지만, 이후 끔찍한 기억에 고통스러워하며 삶을 이어 간다. 종전 후 그는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번역 및 출판 일을 하다가 이후 오스트리아 빈으로 건너가 첫 시집 『유골 항아리에서 나온 모래』(1948)를 발표한다. 그리고 1948년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여 센강에 몸을 던져 1970년 자살하기까지 꾸준히 시작(詩作) 활동을 해, 모두 7권의 독일어 시집을 남겼다. 1958년 브레멘 시문학상을, 1960년게오르크뷔히너 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전영애

서울대학교 독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괴테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 독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고등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어두운 시대와 고통의 언어: 파울첼란의 시』, 카프카, 나의 카프카』, 『괴테의 도시 바이마르에서 온 편지』, 『괴테와 발라』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괴테 시 전집』, 『괴테자서전-시와 진실』(공역), 『데미안, "변신 시골의사 말테의 수기 보리수의 밤 등이 있다. 2011년 괴테 연구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상중최고 영예의 상으로 꼽히는 괴테 금메달을 동양인 최초로 수상했다.

이제는 부를 수 없는 것, 뜨겁게입안에서 들린다.
다시금 그 누구의 목소리도 없고,
아파 오는 안구의 밑바닥.
눈꺼풀은가로막지 않고, 속눈썹은들어오는 것을 헤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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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9-29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 아메리가 떠올랐어요.....

2023-09-30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슈테판 츠바이크까지... 그렇네요^^
 

라디오에서나 텔레비전에서나 사람들은 홍콩의 밤을 찬양했으니까. 그 말대로였다. 이토록 화려한 야경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높은 건물들과 조명들, 레이저 쇼...... 어떤 고층건물에는 시시각각 빛으로 다른 그림이 수놓이기도 했다. 살면서 이런 풍경을 보게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었다. 기남의 인생에서 벌어졌던 다른 모든 일이 그랬던 것처럼.

우경의 집은 추웠다. 솜이 채워진 차렵이불을 덮었지만 으슬으슬한 추위가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기남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걸이에 걸어둔 패딩 코트를 걸쳐 입었다. 그러고 가만히 서서 마이클의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답게 깊게 잠이 든 듯했다. 한밤중에 모닥불을 보는 사람처럼 기남은 오래도록그애를 바라보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
평소처럼 수면제 반 알을 먹었는데도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그랬지만 나이가 들면서 잠귀가 더 밝아졌다. 기남은 작은 소리에 여러 번 깨면서 얕은잠을 이어서 잤다. 다섯시가 되니 눈이 떠졌고 더는 잠이 오지 않았다. 기남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거울을 쳐다봤다.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자 그 사이로 머리칼 몇 가닥이 쉽게 빠져나왔다. - P276

기남은 마음을 가다듬고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우경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산 아이보리색 니트 원피스를 입고 스타킹을 신었다.
그 위에 검은색 패딩 코트를 걸치고 밤색 털실로 뜨개질해서 만든크로스백을 둘렀다. 분홍색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마스크를 쓴뒤 밖으로 나가니 우경이 제인의 방문을 열고 서랍 위의 잡동사니들을 뒤지는 모습이 보였다. 우경은 잡동사니들 가운데서 검은 장우산을 꺼내고는 기남에게 건넸다.
"언제 한번 이 방 정리하긴 해야 하는데, 이삿짐에서 박스만 푼수준이야."
바닥에는 제인의 요와 이불이 반듯이 개켜져 있었다. - P279

어린 시절 기남의 방은 부엌 옆에 있었다. 그 방에는 문이 두 개있었는데, 뒷마당으로 연결된 문은 잠가도 되었지만 부엌과 연결미닫이문은 그럴 수 없어 누구나 언제든 열어볼 수 있었다. 기남은 아직도 겨울이 되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 방에서 사는 동안 겨울마다 얼마나 추웠는지, 그게 얼마나 사람을 못 견디게 하는 괴로움이었는지 몸이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기남은 꿈을 꿀 때면 자주 그 방으로 갔다. 벌써 오십 년이 더 지난 일인데도, 기남은 꿈속에서 현재의 나이로 그곳에 살고 있었다.
기남은 아홉 살 때부터 식모 일을 했다. 기남을 제외한 일곱 식구의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비질과 걸레질을 했으며, 얼마 - P279

지나지 않아서는 손빨래를 맡아 하고 밥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기남은 자신이 보통의 식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어느 누가 식모를 학교에 보내주나. 동네 사람들은 기남이 지나가면 권사장네식모라고 불렀다. 그 집에는 아이가 넷 있었는데, 기남보다 세살어린 막내 아이는 너무도 해맑게 기남을 식모 언니라고 불렀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은 기남의 이름을 불러줬다.
어려서 기남은 권사장네 가족에게 소속되고 싶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한다면 식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어떤 말을 듣든, 어떤 일을 당하는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는 일이 자신이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쉬워서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자신을 속일 만큼속이고 나서야 기남은 자신이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 P280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남은 권사장이 운영하는 공장의 주방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김여사라는 여자와 함께 둘이서 일꾼 서른 명의 밥을 하는 일이었다. 김여사는 허리를 꼿꼿이 펴지 못했지만 손이 빠르고 기운이 센 사람이었다. 자식 여덟을 모두 출가시켰다며 이제는 오히려 일하지 않으면 몸이 아프다고 했다. 그녀는 기남이 일하다 실수를 하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말수가 적은데다 잘 웃지도 않아서 처음에 기남은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기남이 사장님 내외의 덕으로 어려서부터 보살핌을 받고 국민 - P280

학교도 다닐 수 있었다고 말했을 때도 그녀는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대꾸했다.
"네가 무슨 덕을 봤는데? 여기서 일하는 거 월급도 안 주잖아? 사장네가 조그만 어린애를 요리조리 써먹고 생색만 내는 거지."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건 처음이어서 기남은 그녀의 말이 듣기 싫기만 했다.
"권사장, 손해보는 장사 하는 사람 아니다. 뭐, 마음이 좋아 널키웠나. 너네 집에서 널 맡기는 비용까지 줬다. 내가 직접 봤다."
그녀는 기남의 부모가 권사장네만큼 부유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저 키우기 귀찮았을 뿐이라고, 아들 없는 집의 여섯번째 딸을 참을 수 없었던 거라고, 헐값에 치워버린 거라고
"사람 가죽 쓰고서 무슨 죄를 받으려고……" - P281

그녀는 쯧쯧 혀를 차면서 마늘 껍질을 벗겼다. 기남은 그런 그녀가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김여사를 만나고서야 권사장네 식구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은 가득 가지고서도 인색한 사람들이었다. 가장 추운 날에도 냉골 같은 기남의 방을 그대로 두었으며, 아무때나 방문을 열어 작은 것 하나라도 기남의손을 이용해 얻으려 했다. 혹여나 기남이 고기반찬을 조금이라도먹을까 전전긍긍했고 과일이 남아서 썩더라도 기남의 손에는 쥐여주지 않았다. 모두 기남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기남은 애써 자신이 모르는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편이 자신이 - P281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덜 아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여사와 시간을 보내면서 기념은 자신이 여태킹 의존해왔던 기만의 뿌리를 뽑아낼 수 있었다. 용기를 내며 큰사랑에게 월급을 요구하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남은 길게은 분노를 느꼈고, 그 분노는 기남에게 약이 되었다 - P282

남은 건물을 나와 다시 해변을 따라 걸었다. 생각보다 멀리까지 왔는지 대관람차가 아주 작게 보였다. 기남은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기남은 바다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다.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달이 눈앞의 바다를 파도치게 한다는 사실도 바닷속에서 길을 잃어 익사하는 거북이 있다는 사실도 기남은알지 못했었다. 기남은 여전히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익숙한 통증이 가슴에 퍼져나갔다. 멀리서 합창하는소리가 들렸다.
기남은 노랫소리를 따라 걸어갔다. 대관람차 가까이서 젊은이들 여럿이 마이크를 들고 캐럴을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이삼삼오오 모여서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기남은 주머니 속의 탁구공을 손으로 이리저리 만지면서 그 노래를 들었다.
캐럴을 듣는 동안, 기남은 명동의 한복판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었던 그날로 돌아갔다.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으로부터 벌써 사십 년 전이었다. - P303

기남의 마음에는 사라지지 않는 방들이 있었다. 언제든 그 문을 열면 기남은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이 생생했다. 그 중식당의 냄새, 식기의 모양, 음식의 종류, 노인 옆에 있던 젊은 남자, 그러니까 노인의 아들이 입었던 옷과 큰언니라는 사람의 표정까지도 기남은 살면서 수시로 그 문을 열었다. 문을 열 때마다 기억의 세부는 조금씩 사라져갔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마음의 통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 문을 열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차갑고 단단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여전히. - P306

기남은 인파에 치이며 명동거리를 이리저리 걸었다. 흥겨운 음악과 반짝이는 불빛들이 쏟아지는 거리를 지나는 동안 기남은 자신이 지금 살아서 숨쉬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일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때 큰길에 있는 극장 앞에 젊은 사람들 여서서 캐럴을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기남은 구경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노래를 들었다. 노래는 아름답게 기남을 이 세계로부터 추방했다. 버스가 나를 그냥 치고 지나가줬으면……어린 시절부터 반복된 상상이 구체적인 실감을 가지고 기남에게 다가왔다.
생모는 기남이 결혼하기 전해에 죽었다. 여자는 가끔 기남에게전화를 걸어 그런 소식을 전하곤 했는데 어느 시점엔가 완전히 소식이 끊겼다. 여자는 살아 있다면 여든이 넘었을 나이였다. 하지만 죽었을 것이다. 살아 있는 한은 어떻게든 기남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연락했을 테니까. 그 어설픈 관심이 기남의 오래된 상처를헤집고 일상의 평화를 침해했다는 것을 그녀는 끝끝내 몰랐을까.
기남을 통해 자신의 삶은 그래도 기남보다 나음을 확인하고자 했던 걸까. 기남은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 P307

"마이클은 다정하구나."
"맞아요. 엄마가 그랬어요. 마이클은 너무 다정해. 한국 할머니처럼."
"정말?"
"근데 너무 다정하면 안 된대요."
마이클이 잠시 기남을 보다 말을 이었다.
"너무 다정한 건 나쁜 거래요."
따뜻한 통증이 기남의 등과 배에 퍼져나갔다. 기남은 마이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클은 자신을 몰랐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몰랐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애가 오히려 자신보다 자신을 더 많이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 건 무슨 이유였을까. 부끄러워도 돼요. 기남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던 말.
기남은 그 말을 잊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 P319

기남의 마음에 어떤 파문을 일으켰는지 모르는 마이클은 자리에 앉아서 계속 이야기했다. 여자친구 에밀리에 대해서, 바다거북의 산란지인 카보베르데에 대해서, 그곳에서 태어난 새끼 거북들이 어떻게 바다를 향해 가는지에 대해서…… 마이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기남은 그애가 한 계절만 지나도오늘의 일을 잊을 거란 걸 알았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자신이 그애에게 그저 멀고 낯선 혈육이 되리라는 것도. 하지만그 사실이 자신을 더는 슬프게 하지 않는다고 기남은 생각했다.
"할머니."
자신을 부르는 마이클을 보며 기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고 연약한 순간이 아직은 자신을 떠나지 않았음을 바라보면서.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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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허클베리 핀』 『백년의 고독 』 ...... 우리의 경험이라는 바탕은 어둡고, 우리가 창조하는이야기는 모두 그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가 불길 속에서 훌쩍 뛰어나온다.
상상력은 삶이라는 암흑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많은개인적 에세이와 자서전에서 내가 점점 갈망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변신, 우리가 공유하는 친숙한 불행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한 번도본 적이 없는 것을 보고 싶다. 비전이 무시무시하게 이글거리는 모습으로 나를 향해 뛰어나오면 좋겠다. 변화의 힘을 품은상상력의 불꽃이 되어. 나는 진짜 용을 원한다.
ㅡP 440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가설, 즉 우리 모두 생각이 똑같다고 생각해버리는 실수를 소수집단이나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집단에 속한 작가들은 비교적 덜 저지르는 편이다. 그들은
‘우리‘와 ‘그들‘이 다르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를 ‘모두‘와 혼동하는 것에 가장 유혹을 느끼는 것은 사회의 특권층이나 지배층에 속하는 사람, 또는 대학이나 백인 미국인 동네나 신문사 편집부원처럼 고립되거나 비호받는 환경에 속하는 사람이다.
전제는 이렇다. 모두가 나와 비슷하고, 우리는 모두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추론 결과는 이렇다.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 - P396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현상(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삽을 삽이라고 부르는 식으로 평범하고 소박한 말을하는 걸 막으려고 동정심이 흘러넘치는 자유주의자들이 꾸민 음모)은 앞의 추론 결과를 신념의 문제처럼 전시하며, 갖가지 편협한 주장을 옹호하는 데 이용한다.
오만은 보통 무지다. 때로는 순진함일 수도 있다. 다른사람의 생각과 감정에 대한 아이들의 무지는 용서받아 마땅하지만, 그래도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다. 지리적 요인이나 빈곤 때문에 고립된 공동체에는 어른이 될 때까지 평생 같은 공동체에서 같은 신념, 가치관, 가설을 갖고 살아와서 너나없이비슷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 작가도 글에 드러난 편견이나 편협함을 옹호하는 도구로 무지나 순진함을 정당하게 들고 나올수 없다. - P397

편협성에 대한 거부를 모두 자유주의자의 음모로 보는사람들이 그런 책에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릴지도 모른다. 출판사와 비평가도 그런 작품을 대개 게토로 몰아넣어, ‘일반적인 흥미를 다루는‘ 소설과 분리한다. 남자의행동을 중심에 놓은 소설, 주요 인물이 남자, 백인, 이성애자, 젊은이인 소설에서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특별한 설명이 언급되지 않고, 소설 자체는 ‘일반적인 흥미를 다루는‘ 작품으로 분류된다. 주요 인물이 여자, 흑인, 동성애자 노인인 소설에 대해서는 비평가들이 그 특별한 집단을 다룬 작품이라고말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작품에 공감하는 비평가들조차이런 소설은 주로 또는 오로지 그 집단의 흥미를 끌 뿐이라고생각해버린다. 이렇게 해서 기성 비평계와 출판사의 홍보 활동 및 판매 전술이 편견에 엄청난 권위를 부여한다. - P408

많은 어른들의 문제는 정반대다. 자신감이 부족하다는것, 여자들, 특히 자녀가 있는 여자들이나 나이가 중년 이상인 여자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을 엄청나게 힘들어한다. 이타주의의 함정이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돈을 벌어 와야 하는 평범한남자라고 생각하며 자란 남자들도 역시 자신을 작가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생각의 도약을 잘 해내지 못한다. 수십 년전부터 아마추어 작가와 반아마추어 작가 집단들이 크게발전했고, 워크숍이 엄격한 평등주의를 기반으로 기능하고있는데도, 워크숍에 강사가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강사는 이미 작품을 발표한 적이 있어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짜작가로서, 워크숍의 중심인물이 되어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하고 참가자 모두에게 작가의 기분을 느끼게 해줄 수있다.
따라서 강사는 반드시 글쓰기 교사가 아니라 글쓰기를가르치는 작가여야 한다. 워크숍 분야에서 활발하게 전문적인 글을 발표한 적이 있어야 한다. - P420

연습은 흥미로운 단어다. 우리는 연습이 초보자에게나맞는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을 연습하는것은 곧 예술을 하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예술이다. 워크숍참가자가 자기처럼 연습중인 작가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글쓰기 연습을 하고 나면, 정말로 작가가 되었다는 기분을 느끼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워크숍의 요체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집단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집단의 형성에는 강사의 도움이 있지만, 사람들의 모임 그 자체가 에너지원이 된다. 참고로, 그 모임이 가능한 한 문자 그대로 서클, 즉 원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 P421

워크숍에 참가해서 글을 쓰고, 읽고, 비평하고, 토론하는사람들은 많은 것을 배운다. 무엇보다 먼저, 비평을 받아들이는 법, 자신이 비평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배운다. 부정적인 비평, 긍정적인 비평, 공격적인 비평, 건설적인 비평, 가치 있는비평, 멍청한 비평,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직접 해볼 때까지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비평을 두려워하다 보면, 글을제대로 쓸 수 없게 된다. 자신이 가차 없는 비평을 받았는데도 계속 글을 쓸 수 있음을 깨닫고 나면, 갇혀 있던 많은 에너지가 자유로워진다. - P422

워크숍 참가자들은 또한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책임 있는 비평을 내놓는 법도 배운다. 남의 글을 제대로 읽는 경험을 이때 처음 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휴식과 도피를 위해 쓰레기 같은 글을 읽을 때처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독서와는 다르다. 영문학 기초 수업을 들을 때처럼 냉담하게머리만 써서 글을 분석하는 독서와도 다르다. 적극적으로 열심히 글을 읽으면서 부분적으로만 머리를 사용해 텍스트와협업하는 독서다. 이런 독서를 가르치는 워크숍은 스스로 자신감을 가져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집단이 만들어지고 나면, 거기에 속한 모든 사람이 서로의 작품을 그런 식으로 읽게 된다. 이런 독서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이 방식이 몸 - P422

시 짜릿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서, 텍스트를 과대평가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활기찬 워크숍의 사소한 위험 중 하나다.
글을 읽는 법을 배우면, 글쓰기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자신이 쓴 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이제알기 때문이다. 비평과 협업 기술을 자기 작품에도 적용할 수있게 되었으므로, 건설적인 퇴고와 수정이 가능하다. 경험이일천한 많은 작가들처럼 퇴고가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까 봐,
또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워크숍에서 집단 활동을 하며 심리적 예리함과 감수성을 믿고 이용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아마도 사람들이 함께 힘든 일을 열심히 해내고 있다고 느끼는 데에서, 정직과 신뢰가 일을 해내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경험한 데에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런 정직과 신뢰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재주를 모두 동원할 것이다. 집단이 집단으로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면, 강사를 포함해 거기에 속한 모든 사람이 에너지를 얻어 더 강해진다. - P423

예술은 기술이다. 모든 예술은 언제나 기본적으로 기술의 산물이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 작품에는 근본적이고 영속적인 핵심이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기술이 작용해서 자유롭게 모습을 드러낸다. 돌덩이 안에 들어 있는 조각상을 조각가는 어떻게 찾아내는 걸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조각상을 어떻게 알아볼까? 이것이 진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내가 가장 즐겨 하는 대답 중 하나는 다음과같다. 누군가가 윌리 넬슨에게 어떻게 악상을 얻느냐고 묻자그는 이렇게 말했다. "허공에 곡조가 가득합니다. 나는 그저손을 뻗어 하나를 골라잡을 뿐이에요."어서이건 비결이 아니지만, 달콤한 미스터리다.
그것도 진짜 진짜 미스터리, 바로 그거다. 픽션 작가에게 이야기꾼에게 세상은 이야기로 가득한 곳이다. 이야기가거기 있으니, 작가는 그저 손을 뻗어 붙잡을 뿐이다.
그다음에는 그 이야기가 스스로 펼쳐지도록 내버려두는능력이 있어야 한다.
가장 먼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 P430

법 침묵 속에서 기다리며 귀를 기울인다. 곡조를, 비전을 이야기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인다. 움켜쥐지도 말고, 밀어붙이지도 말고, 그냥 기다리면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원하는 것이 찾아올 때 잡을 수 있게 준비를 갖추고서. 이것은 신뢰의행동이다. 자신을 믿고 세상을 믿는 행동, 예술가는 말한다.
내게 필요한 것은 세상이 내게 줄 것이고, 나는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움켜쥐고자 하는 탐욕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는 준비 자세가 필요하다. 기꺼이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고, 선명한 눈으로 정확하게 본 다음에 단어들이 스스로 올바른 길을 찾아가게 가만히 두고 보는 자세. 거의 올바른 길이 아니다. 올바른 길이다. 그 비전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법을 아는 것, 그것이 기술이다. 연습은 바로 이 기술을 위한 것이다. 준비 자세로 기다리라는 것은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 P431

비록 작가들이 주로 하는 일이 그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예술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을 연습한다. 그리고 글쓰기는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예술이다. 음계와 손가락 연습, 연필 스케치, 아직 완성되지 못한 채 계속 퇴짜를 맞는 이야기들...... 연습하는 예술가는 연습과 성과의 차이를 안다. 그둘이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안다. 언뜻 몇 시간또는 몇 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인내심과 준비 자세, 좋은 귀, 예리한 눈, 솜씨 좋은 손, 풍부한 어휘력과문법 지식이라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 재능이 어디서 오는 - P431

지는 하느님만 아시지만, 기술은 연습에서 온다.
힘들게 얻은 숙련된 기술, 이 도구를 가지고 예술가는 ‘아이디어‘(곡조, 비전, 이야기)가 일그러지지 않고 선명하게드러나도록 최선을 다한다. 어리석음, 어색함, 서투름이 없어야 한다. 관습, 유행, 여론에 왜곡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과격한 일이다. 자신의 직업을 허투루 생각하지 않는 예술가가 아이디어를 다루는 일, 비전을 언어라는매체로 다듬어내는 일. 이것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일이고, 기술은 내가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즐겨 말하는주제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 한없이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작업의 기반이 되는 비전, 즉 ‘아이디어‘ 가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니까. - P432

허공에는 곡조가 가득하다.
돌덩어리에는 조각상이 가득하다.
땅에는 비전이 가득하다.
세상에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예술가는 이것을 믿는다. 맞는 말이라고 믿는다. 그렇게확신한다.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이 작품의 소재, ‘아이디어‘ 를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여기서부터 나는 음악과 미술을 빼고 이야기에만 집중하겠다. 비록 모든 예술의 뿌리는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진짜 지식을 갖고 있는 분야는 이야기뿐이다).  - P432

상상한 내용을 지칭하기에 아이디어는 이상한 단어다.
추상적이지 않고 대단히 구체적이며, 지식이 아니라 표현으로 구현된 내용을 지칭해야 하는데, 그래도 우리는 아이디어라는 단어를 고수한다. 또한 이 단어가 완전히 과녁에서 빗나간 것도 아니다. 상상력은 이성적인 능력이니까.
"꿈에서 그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1년 내내 좋은 이야기의 아이디어를 얻지 못했다………"  "오전이 절반쯤 지난 지금 내 머리에는 갖가지 아이디어와 비전 등등이빽빽하게 차 있지만, 나는 그것들을 덜어낼 수 없습니다. 올바른 리듬을 찾지 못해서......"
마지막 문장은 1926년에 버지니아 울프가 작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쓴 것이다. 나중에 이 문장에 대해 다시 살펴볼 것이다. 리듬에 대한 언급이 예술의 원천에 대해 내가 생각하거나 읽은 그 어떤 내용보다 더 심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듬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경험과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다. - P433

픽션 작가만 이러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한다. 항상, 끊임없이 살아남기 위해서. 세상을 이야기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은 미쳐버린다. 아니면 유아나 (아마도) 동물처럼 역사가 없는 세상, 오로지 현재밖에 없는 세상에 산다.
동물의 정신은 커다랗고, 신성하고, 현존하는 미스터리다. 나는 동물에게도 언어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의언어는 전적으로 진실만을 말한다. 거짓말을 할 줄 아는 동물은 우리뿐인 것 같다. 우리는 현실과 다른 것, 처음부터 달랐던 것, 처음부터 달랐지만 현실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을 생각해내서 말할 수 있다. 없는 것을 지어내고, 가정하고, 상상할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기억과 함께 뒤섞인다. 그래서 우리는이야기를 들려주는 유일한 동물이다. - P434

원숭이는 경험을 기억하고, 경험을 기반으로 추정할 수있다. 개미탑을 막대기로 찔렀더니 개미들이 막대기를 타고올라오는 걸 한 번 본 뒤, 원숭이는 그 개미탑을 다시 그 막대기로 찌른다. 어쩌면 개미가 또 막대기를 타고 올라올지도 모르니까. 그러면 또 그 개미들을 핥아먹을 수 있을 것이다. 냠냠, 그러나 상상력을 지닌 동물은 우리 인간뿐이다. 원숭이가 개미탑을 막대기로 찔렀다가 빼보니 막대기에 금가루가잔뜩 묻어 있었는데, 광물을 찾아다니던 사람이 그 광경을 본것이 1877년 로디지아에서 일어난 대 골드러시의 시작이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동물은 우리 인간뿐이다. - P434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 픽션이다. 이 이야기에서 현실과 일치하는 것은, 일부 원숭이가 정말로 개미탑을 막대기로 찌른다는 사실과 로디지아라는 지명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뿐이다. 하지만 1877년에 로디지아에서 골드러시가일어나지는 않았다. 그 부분은 내가 지어낸 이야기다. 나는인간이므로 거짓말을 한다. 모든 인간은 거짓말쟁이다. 이건진실이다. 내 말을 믿어야 한다. - P435

픽션은 경험에 상상력이 작용한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경험, 기억, 힘들게 얻은 지식, 과거사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는 사실 픽션이 아주 많다. 하지만 신경 쓸 필요 없다. 지금 내가 말하는 주제는 진짜 픽션, 즉 소설이다. 소설은 모두 작가가 실제로 경험한 일에 상상력이 작용해서 변화시키고, 걸러내고, 왜곡하고, 선명하게 다듬고, 미화한 결과물이다.
‘아이디어‘는 세상에서 머리를 거쳐 우리에게 온다.
이 과정 중 내 관심사는 바로 아이디어가 머리를 통과하는 부분이다. 상상력이 원료에 작용하는 부분. 하지만 아주많은 사람이 마뜩잖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P435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허클베리 핀』 『백년의 고독 』 ...... 우리의 경험이라는 바탕은 어둡고, 우리가 창조하는이야기는 모두 그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가 불길 속에서 훌쩍 뛰어나온다.
상상력은 삶이라는 암흑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많은개인적 에세이와 자서전에서 내가 점점 갈망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변신, 우리가 공유하는 친숙한 불행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한 번도본 적이 없는 것을 보고 싶다. 비전이 무시무시하게 이글거리는 모습으로 나를 향해 뛰어나오면 좋겠다. 변화의 힘을 품은상상력의 불꽃이 되어. 나는 진짜 용을 원한다. - P440

경험은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일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픽션은 경험을 상상력으로번역하고 변형하고 변신시킨 것이다. 진실에는 사실이 포함되지만, 진실과 사실이 항상 같은 시공에 존재하지는 않는다.
예술에서 진실은 흉내가 아니라 환생이다.
사실을 담은 역사책이나 회고록에서 경험이라는 원료가 가치를 지니려면 선별, 배열, 성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소설에서는 이 과정이 훨씬 더 과격하다. 작가는 원료를 선별해서 성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융합하고, 발효시키고, 다시 결 - P440

합시키고 다시 손보고, 다시 배열하고, 다시 탄생시킨다. 이과정에서 원료는 자기만의 형태를 찾을 수 있게 되는데, 합리적인 사고는 여기에 간접적으로만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어쩌면 모든 과정이 순수한 창작처럼 보일 수도 있다. 괴물에게바쳐진 제물로 바위에 묶여 있는 여자. 미친 선장과 하얀 고래, 절대적인 힘을 주는 반지 용그러나 세상에 순수한 창작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출발점은 경험이다. 창작은 재조합이다. 우리는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작업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머릿속에는 괴물, 리바이어던, 키메라가 있다. 이들은 정신적인 사실이다. 용은 우리에 관한 진실 중 하나다. 그 진실을 표현할 다른 방법이 우리에게는 없다. 용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대개 용에게 잡아먹힌다. 안에서부터. - P441

독서는 가장 신비로운 행동이다. 시청이라는 방식이 독서를 대체한 적은 과거에도 전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시청은 완전히 다른 방식이고, 보상도 다르다.
책을 읽는 독자는 그 책을 만들어간다. 임의적인 상징과인쇄된 글자를 자기만의 내적인 현실로 번역해서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독서는 창조적인 행동이다. 여기에 비해 시청은 수동적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은 그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것은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 영화에 참여해 영화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영화에 흡수되는 것이다.
독서를 할 때는 독자가 책을 잡아먹고, 영화를 볼 때는 영화가 보는 사람을 잡아먹는다. - P442

이건 아주 굉장한 일일 수 있다. 좋은 영화에 먹혀서, 자신의 눈과 귀를 따라 어쩌면 평생 경험하지 못할 현실 속으로끌려 들어가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그러나 ‘수동적‘이라는말은 ‘취약하다‘는 뜻이다. 수많은 매체가 우리에게 이야기를들려주며, 바로 그 점을 이용한다.
독서는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적극적인 거래다. 텍스트는 독자의 통제하에 있다. 독자는 텍스트를 건너뛸 수도 있 - P442

고 한 곳에서 머뭇거릴 수도 있고, 테스트를 해석할 수도 있고, 오독할 수도 있고, 앞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에 잠길 수도있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고,
판단을 내릴 수도 있고, 그 판단을 수정할 수도 있다. 진정한상호작용을 할 시간도 여유도 있다. 소설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활발히 진행되는 협업이다.
시청은 이것과는 다른 거래다. 협력적이지 않다. 시청자는 영화 제작자나 프로그래머에게 통제권을 넘겨주기로 동의한다. 심리적 시간이나 여유가 없어서 영화와 프로그램이들려주는 시청각 이야기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수용할 수 없다. 스크린이나 모니터는 일시적으로 시청자의 우주가 된다.
자유재량의 여지는 거의 없고, 끊임없이 흘러 들어오는 정보와 이미지를 통제할 방법도 없다. 그 정보와 이미지를 거부하고,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거기서 스스로 멀어지는 방법뿐이다. 그러면 그 정보와 이미지가 기본적으로 무의미하게보인다. 아니면 아예 프로그램을 끄는 방법도 있다. - P443

작가들은 모두 서로의 어깨 위에 서 있다. 모두 서로의아이디어와 재주와 플롯과 비결을 이용한다. 문학은 공동 작업이다. ‘영향의 불안‘이니 뭐니 하는 말은 그냥 남성호르몬의 작용일뿐이다. 내말을 오해하면 안 된다. 나는 표절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흉내 내기, 베끼기, 도둑질을 말하는것이 아니다. 만약 내가 정말 고의적으로 다른 작가의 글을이용했다고 생각했다면, 지금 이자리에 서서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종이봉투로 내 머리를 가렸을 것이다(저명한 역사학자 여러 명도 이렇게 해야 한다). 내 말은, 경험이 우리에게 스며들듯이 다른 사람의 책에서 이런저런 것이 우리에게 스며든다는 뜻이다.  - P455

딱 맞는 단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문체는 아주 간단한 문제예요. 리듬이 가장 중요하죠. 이걸 알고 나면 엉뚱한 단어를 쓰기가 불가능해집니다. 오전이절반쯤 지난 지금 내 머리에는 갖가지 아이디어와 비전등등이 빽빽하게 차 있지만, 나는 그것들을 덜어낼 수 없습니다. 올바른 리듬을 찾지 못해서. 이건 매우 심오한 문제예요. 리듬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 단어보다 훨씬 더 깊습니다. 어떤 광경, 감정이 마음속에 이렇게 물결을 일으킵니다. 그러고 한참 지난 뒤에야 거기에 단어를 맞춥니다. 글을 쓸 때 우리는 이것을 다시 포착해서 (이것이 현재나의 믿음입니다) 작동하게 만들어야 합니다(단어와는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고 나면 그것이 마음속에서 깨어지고 구르면서 단어를 자신에게 맞추죠. 하지만 내년이면 내 생각은 틀림없이 달라져 있을 것 같네요. - P461

울프가 이 글을 쓴 것은 80년 전이다. 그녀가 그 이듬해에 생각이 달라졌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 글에서 울프의 말투는 가볍지만,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매우 심오하다. 나는 이야기의 원천, 즉아이디어의 원천에 대해 이보다 더 심오하거나 더 유용한 것을 아직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 P461

기억과 경험 아래에, 상상과 창조 아래에, 울프의 말처럼단어 아래에 리듬이 있고, 기억과 상상력과 단어는 모두 그 리듬에 맞춰 움직인다. 작가가 할 일은 그리듬이 느껴질 만큼깊이 내려가서 리듬을 찾아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듬이 기억과 상상력을 움직여 단어를 찾아내게 가만히 놔두는 것이다.
울프는 아이디어가 가득한데 덜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리듬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울프는 그 아이디어들의 잠금장치를 풀어, 그들이 이야기를 향해 나아가게 해줄 박자, 그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하게 해줄 박자를 찾지 못했다. - P462

울프는 그것을 마음에 이는 물결이라고 부른다. 어떤 광경이나 감정이 그 물결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도 한다. 잔잔한 수면에 돌이 떨어지면, 중심에서부터 침묵 속에 완벽한 리등으로 원이 퍼져나가는 것과 같다. 마음은 그 원들을 따라밖으로, 밖으로 나아가다가 마침내 단어로 변한다…… 하지만 울프의 이미지는 이보다 더 거대하다. 그녀가 생각한 물결은 파도다. 조용하고 매끄럽게 바다 위를 1천 킬로미터 넘게가로질러 와서 해안에 철썩 부서지는 파도. 파도가 부서져 날아오르면서 단어라는 거품이 된다. 그러나 그 파도, 일정한박자의 충격은 단어 이전에 존재하며, "단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작가가 할 일은 그 파도를 알아보는 것이다.
저 멀리 바다에서, 마음이라는 대양 저편에서 조용히 부풀어오르는 파도를 알아보고 해안까지 따라오는 것이다. 해안에 - P462

저 파도는 단어를 변화시키거나 스스로 단어가 되어 품고 있더 이야기를 내려놓고, 자신의 이미지를 토해내고, 비밀을 쏟아낼 수 있다. 그러고는 이야기의 대양으로 스르르 다시 물러간다.
아이디어와 비전이 꼭 필요한 저변의 리듬을 찾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울프는 왜 그날 오전에 아이디어와비전을 ‘덜어내지 못했을까?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 걱정거리. 하지만 내 생각에는 작가가 너무 서둘러서 단어를 너무 일찍 움켜쥐기 때문에 단어를찾지 못할 때가 아주 많은 것 같다. 작가는 파도가 들어와 부서질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다. 작가인 탓에 그냥 글을 쓰고싶어 한다.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다른것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자신이 아는 것, 아이디어, 의견, 신념, 중요한 생각...... 작가는 파도가 들어와 모든 아이디어와의견 너머로 자신을 데려가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다. 그곳에서는 엉뚱한 단어를 쓰기가 불가능해지는데. - P463

우리들 중 누구도 버지니아 울프가 아니지만, 모든 작가가 적어도 한 순간이나마 파도를 타본 적이 있다면, 항상 딱맞는 단어를 찾아내는 경험을 했다면 좋겠다.
독자로서 우리는 모두 그 파도를 타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즐거움을 안다.
산문과 시, 모든 예술, 음악, 춤은 우리 몸, 우리 존재, 이세상의 몸과 존재가 지닌 심오한 리듬에서 솟아나 그 리듬과 - P463

함께 움직인다. 물리학자가 읽는 우주는 아주 다양한 진폭의진동,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술은 그 리듬을 따라가며표현한다. 일단 올바른 박자를 찾기만 하면, 우리의 아이디어와 단어가 그 리듬에 맞춰 춤춘다. 누구나 합류해서 춤을 수있는 윤무輪舞다. 그러면 나는 당신이 되고 장벽이 내려간다.
잠시 동안. - P464

그녀가 여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여신, 초월적인 존재
원래 모든 것을 아는 존재.
타자기 앞의
원형
나는 이 말에 저항한다.

그녀의 일, 나는 정말로 그녀의 일이
싸움도 아니고 승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구가 되는 것도 아니고, 달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녀의 일, 나는 정말로 그녀의 일이
자신의 진짜 일이 무엇인지 알아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일, 그녀 자신의 일,
그녀가 인간인 것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 P479

그래, 만약 내가
작가라면, 내 일은
단어다. 쓰지 않은 편지들.
단어들은 나의 존재 방식
인간, 여자, 나,
단어는 나를 자아내는 물레,
인생이라는 천을 짜기 위해
세월이라는 날실 사이로 던져진 북,
모양을 잡아
사용하고, 장식하는 손.
단어는 나의 치아,
나의 날개.
단어는 나의 지혜.

나는 낡은 책상의
비밀 서랍 안
편지 다발.
편지에 무엇이 있나?
무슨 말이 있나? - P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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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유럽 사람들은 ‘하나의 유럽‘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독재의 사령부가 된 유럽을 반대한다. 유럽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상생의 공동체로 거듭날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그런 이상주의자들은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사람들에게 원망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희망도간직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유럽연합이 지금까지그래왔던 것처럼 개혁이 불가능한 집단임이 분명해진다면, 그어떤 언론의 선동이 있더라도 유럽인들은 유럽연합을 버리는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 P231

프랑스와 독일의 철도 공기업들은 각각의 유럽 국가들이 각자자신의 환경에 적합한 최적의 철도운영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놔두라고 유럽연합에 요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 문제에대한 노조와 사용자 측의 현실 진단은 거의 똑같았다. 그들은신자유주의의 유럽이 저지른 거대한 실수를 이제 모두 인정하고 있다. 다만 노조는 17년 전에 알았던 것을 사용자는 이제야,
그것이 자신들이 설 자리마저 밑동부터 위협하자 인정하게 된것이다. 그 해법을 찾는 데서 사용자는 여전히 유럽연합 지도부에게 뒷덜미를 잡혀 있다. 그들도 내심 노조의 강력한 압박을 바랄지도 모른다.
높은 곳에 있을수록 덜 자유롭다. 떨어지기를 두려워하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높을수록 진실에서 멀어진다. 발이 땅에 닿지않기 때문에,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자들에게는 머리를 날려 허공에 떠 있는 자들이 현실을 깨닫도록 만들어야 하는 고단한 임무가 있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계급투쟁이라 불렀다. - P240

모든 개인의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다. 모든 개인적 고통이 사회적 고통이듯, 나의 고통을 객관화할 수 있을 때, 남의 고통을 나의 것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사회적 치유가 시작되고, 그 안에서개인이 치유될 때 비로소 역사는 전진한다.
2016년 봄,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여성혐오misogyny의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이 추모와 분노, 조소와 야유로 부딪혔다. 여성들은 비로소 우리 모두가 피해자였음을, 그 자잘한 일상의 불 - P262

안과 불쾌함, 공포가 여성 모두의 것이었음을 말하는데, 자신의평소 언행이 여자들을 하루하루 죽여가는 것이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성들은 그들의 조용한 추모와 분노에 끼어들어 이를 조롱했다.
여성혐오에 대한 여성들의 폭발적 자각과 그 앞에 선 남성들의 망연함 사이에서, 정부는 무슨 일을 했는가. 마치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듯 정부는 아무 말도 행동도취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파리에 가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 꿈에 부풀어 있을 뿐이고, 정부의 나팔수 <조선일보>는 강남역에모여든 추모 인파들을 세월호 유가족처럼 폄훼했다. 해결은 없고 훼방만 있으며, 대화는 가로막고 대결만 조장한다.
그러나 솟아오르기 시작한 불기둥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으리라. 그 누구도 현명한 제도적 해결 방안을 제시해줄 리 없는 사회에서, 남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먼저 여성들의 상처를 있는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녀들이 하는 말을 모두 들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여성이 피눈물 흘리는세상에서는 남성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 - P264

신자유주의가 거부할 수 없는 옷처럼 우리 몸에 달라붙기 시작한 외환위기 시점 이후, 한국사회에서의 남녀 간 불평등은기하급수적으로 가중되어왔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략 이때부터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현상이 다소 다른 양상으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모순이 극대화되면, 폭발할 수밖에 없다. 수습 불가능한 수준으로 축적된 모순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다. 표출의 방식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그다음의 문제다. 짓밟고 능멸해오던 대상들이 마침내 발끈하며 일어서자, 남자들이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은 어리둥절함이다. 그리고 정의당 탈당 사태에 이어 <시사인> 절 사태가 보여주듯,
기존의 전선과 이념을 초월해 남성들의 자기방어 기제가 발동되고 있다. 가부장제를 수호하기 위한 이러한 ‘남성 연대‘는 충분히 예측됐던 광경이다. - P267

여성협오를 둘러싼 이 무수한 국지전을 보며 생각한다. 여성에대한 조직적 차별은 가부장제 발생 이후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것이지만, 마치 그들에게 원한이라도 가진 듯 여성을 혐오하고공격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남자들이 출현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도드라진 한국사회의여성혐오를 보며 지배계급의 프레임 속에 걸려든 것은 아닌지나는 강한 의혹을 품고 있다. 그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조장해온 피지배계급 간의 분열 프레임.
박정희가 호남을 차별하고 영남에 특혜를 제공하면서 지역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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