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계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찾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대신 일상의 사소한 기적들,
어둠 속에서 뜻하지 않게 켜지는 성냥불처럼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다.
그때도 그런 순간이었다.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중

책 집필을 계획하는 순간, 영감을 주는 뮤즈들이 비웃는다고했던가. 이 모든 일은 2016년 미국 대선 이전에 일어났다. 한 해전 여름 도널드 트럼프가 출마를 선언했을 때 나는 너무 어이가없어 탄식했고, 그가 열흘 안에 포기한다는 데 10달러를 걸었다.
대선 이후 2년간 여성으로 존재하며 겪는 일상의 시련은, 이면의 상처에서부터 시작해 분노와 카타르시스의 불협화음에까지이르게 되었다.
나는 도의적인 용기가 결국엔 부당함을 이길 거라 믿어야 하지만, 엄청나게 끔찍한 사건들이 이미 일어났고 임기 중 얼마나 더많은 게 황폐해질지 몰라 두렵다.
그래도 지난 몇 년간은 여성들이 표출한 분노에 탄력이 붙어희망을 보기도 했다. 과거의 교훈을 잊지 않았다는,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싸워왔는지 기억하고 있다는 희망 말이다. - P22

우리는 하늘의 존재를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지독히도 새파란 하늘, 질릴 만큼 흔하디흔한 하지만 누구도 모방하지 못할 그푸른빛을 말이다. 9·11 사건 이후로는 새파란 하늘을 보면 비극이떠오른다.
강 위로 기다랗게 늘어선 다리, 비행선 혹은 석유시추선으로시선을 던져 보아도 매일 새벽만 되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푸른빛을 흩어 내는 하늘이 버티고 서서 배경이 되어 주고 있다. 하늘의 말이 들리는 듯하다.
나는 항상 여기 있었지. 내 아래서 뭐든 재밌는 건 다해봐.‘
세상은 이제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타일러에겐 말하지 않았다. 40만 킬로미터를 넘어 무한대의 길이를 가늠할 줄아는 다섯 살 소녀라면, 하늘을 구해 내는 상상력과 죽을 만큼 노력해 볼 용기를 지니고 있다. - P24

그러니까 이 책은 여성들에게 바치고 싶다.
먼저 이네스 가르시아(Inez Garcia)에게 바친다. 1974년, 강간을 당한 그녀는 집으로 가서 22구경 소총을 가지고 나왔고 강간범을 찾 - P24

아가 쏴 죽였다. 그녀는 2급살인 혐의로 주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2년 후 평결이 뒤집히며 혐의를 벗었다.
레시 테일러(Recy Taylor)에게도 바친다. 소작인이었던 그녀는 여섯 명의 백인 남성에게 윤간을 당한 후 침묵하지 않았고, 로자 과크스(Rosa Parks)가 이 사건을 파헤쳤다. 로자 파크스는 수년 뒤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기사의 요구를 거절했다.
데비 샤프(Daehehic Sharpe)에게도 바친다. 텍사스 출신인 내 오랜 전구 데비는 스토커의 손에 살인을 당했다. - P25

버지니아 울프가 상상했던 셰익스피어의 누이에게도 바친다.
소설 <시스터 캐리 (Sister Carrie)》의 주인공에게도 바친다. 난잡한계집이자 인기도 없고 마약쟁이였던 캐리는, 입센의 소설 《인형의 집》에서 집을 뛰쳐나간 노라가 닫고 나간 문의 근처에도 가 보지 못했다.
전기충격 치료를 받다 돌아가신 나의 이모와 고모에게도 바친다.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으로 죽어 가는 여성들을 치료할 방법이전기충격 말고는 달리 없었다고 한다.

물론 이 책은 소년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좋은 남자로 자라 - P25

가는 법을 배우는 선한 아들들에게 바친다.
우리를 뒤이어 이 땅에서 삶을 꾸려 갈 모든 이에게도 바친다.
전쟁에 짓밟힌 이 땅 위에서 살아 낼 다음 세대 모두에게 말이다. - P26

그리고 나는 내면 깊이 묻혀 있던 규칙들을 불러냈다. 일부러모른 척하는 법, 어두운 길에서 빨리 지나가는 법, 혼자 있을 때주차장에서 빠져나가는 법, 눈 맞추는 법, 고함치기와 회유하기, 큰 소리로 말하기, 도망치기, 손가락 사이에 열쇠를 끼우고 주먹쥐기, 휘파람 불기, 유도 배우기.
이 모든 건 여자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존 가이드였다.
그 충격적인 폭로 사건이 터진 후 선거가 열리기까지, 나는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쉽게 열이 받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진정하려고 수영을 더 열심히 했다. 말이 빨라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개인적인 일이든 사회적 사건이든, 재앙이 일어났을 때마다 나의 반응이 이렇진 않았다. - P45

9월, 나는 도망치듯 사우스 쇼어(South Shore)에 가서 해변을 걸으며 산책 나온 개들과 파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날 저녁, 입고 간 옷은 차 안에 벗어 둔 채 티셔츠만 걸치고 1.5킬로미터 정도를 걸어 인적 드문 해변에 도착했다. 나는 높다란 바위 위에 티셔츠를벗어 놓은 뒤 속옷 차림으로 수영을 하러 들어갔다.
신성한 순간, 눈을 감은 채 본능이 이끄는 대로 파도에 몸을 맡기자, 파도로 뛰어들어라, 흐름을 거스르려 애쓰지 말고 해변과나란히 헤엄치다 지치면 등을 돌린 채 물 위에 머무르면 된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삶은 언제나 당신보다 당신의 두려움보다큰 존재임을 기억하자, 물에 뜬 채로 공기를 가득 머금으면, 폐 속가득 생명력을 채워 넣으면, 당신은 뗏목이 된다. 발을 구를수록몸이 가라앉고, 물은 당신의 적이 된다. - P48

바다와 땅은 단 한 번도 당신의 적인 적이 없었다. 아니,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자연의 생명력을 빌어 앞으로 나아가는 편이 차라리 낫다. 그럼 당신은 살 수 있다. 심지어 파도 속에서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을 경험하며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주머니 속 돌들은 안 된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여긴 우즈 강 - P48

이 아니지 않는가. 당신의 티셔츠가 바위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
땅 위에서, 진짜 적들이 도사리는 땅 위에서 말이다. 먼저 바다의품에서 힘과 품위를 떠올려 보자.
정말이지 피난처에 잘 머무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 P49

내 눈빛에서 뭔가를 읽은 그의 얼굴이 서늘하게 굳었다. 그는철벽 앞에서 허둥대는 뻐꾸기 같았고, 말을 더듬거리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텍사스 출신답게 힘껏 흔들었다. 그는다른 한 손을 허공에 대고 허우적거렸다. 그가 당황한 듯 물었다.
"포옹해도 될까요?"
나는 미소를 머금고 "아니요, 전 괜찮아요"라고 대답했고, 그걸로 해결됐다. 그는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알아먹고, 기가 죽은 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몸을 돌려 집에 들어오는 길, 엔도르핀이마구마구 솟아나는 게 느껴졌다. 남자들이 그렇지 뭐, 라며 합리화하는 대신 저리 가라고 말하는 기분이 어떤지 알게 되었다.
모든 분노를 수치심과 절망으로 내면화하는 대신, 바깥으로 표출하는 기분, 칼은 휘두르라고 있는 것이지 삼키는 게 아니었다. - P52

그는 잔인하게 냉담한 태도로 수업에서 나갈 걸 권유했다.
그는 미적분이 여성과는 맞지 않다고 했다. 내 점수는 그걸 증명했다. 연말에는 결국 한 명의 여학생만이 수업에 남게 되었다.
나는 수치심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며 이미 나와 버린 뒤였다.
좋다. 그래서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그때 내 계획이 변경된 게 전적으로 그 냉혈한 교수 탓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수학으로 빛을 볼 운명이었다면 그런 교수 정도는 이미 능가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적분 수업을 포기한 덕에 다른 길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그 수업에서, 아직 세상으로 나오기도 전에 미처 다 배우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조금 속상하다. 만일 예전 그 사람이랑 결혼했다면, 하는 후회와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그때 이후 뭘 하든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수학 과목에서 낙제한 것과 일이 잘 안 풀린 게 어떤 상관관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미적분은 그렇게 나를 떠나갔다. - P58

그랬겠지, 당연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겠지. 우리가 그런걸 말하는 일은 정말 드물지 말했더라도 되돌아오는 답변은 이멋겠지. "남자들이 원래 그렇잖아." 그러니 나도, 절대로 누군가에게 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일 때문에 그놈이 진짜 싫다고는말할 수 있었겠지만, 한동안은 그날 밤 일을 잊으려고 애쓰고 나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은 게 전부다. 기억에서 벗어나는 법은 열가지도 넘었고,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
마리화나를 잔뜩 피운다든지, 여성을 아낄 줄 알고 날 웃겨 주는 히피족 남자친구를 만들어 삶의 다음 단계를 그려 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혁명처럼 보이는 곳으로 넘어갈 태세를 갖추고 나니, 그 철없는 녀석을 업신여기는 게 별 것도 아니었다.
나는 엄마가 죄악의 소굴이라 부르는 곳을 향해 갔다. 반체제의 온상인 오스틴으로 말이다. 그렇게 J의 데이트 강간은 내가 도망쳐 나온 마초 문화의 일부로 남게 되었다. 텅 빈 평지와 너저분한 남자들은 내가 떠나 온 과거의 이미지로 고스란히 남았다. - P68

타일러는 타자기 앞에 앉더니, 심각한 고민에 빠진 작가라도 된 듯 손으로 턱을 괴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마음대로 그리고 과감하게 타자를 두드린다. 대부분 알 수 없는 철자등의 조합이지만, 가끔 ‘튤라‘, ‘타일러‘ 같은 단어를 만들어 냈다.
그녀가 "샤일로는 어떻게 써요?"라고 물었고, 나는 그제야 타일러가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어느날은 타일러가 완전한 문장을 완성했다. ‘타일러가 게일과 튤라를 만나러 갑니다.‘ 그러고는 캐리지에서 종이를 뜯어내 내게 건네며 말했다. "이제 절대로 날 잊지 못할 거예요!"
인식과 언어의 도약, 이 모든 과정은 빠르게 일어난다. 언젠가 내가 쓴 책을 발견한 타일러가 뒤표지에 나온 내 사진을 보고는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이 많은 단어를 혼자 다 쓴 거예요?"
그녀는 글을 읽고 쓰는 세계에 놓인 진실을 언뜻 본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언어로 가득한 보물 상자가 존재한다는 진실, 
- P76

검문 요원들은 내게서 진통제를 압수했고 그제야 우리를 보내줬다. 나는 마취제에 취한 탓에 그 순간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있는지 크게 신경 쓰지도 못했을 뿐더러, 이후에도 크게 분노하지않았다. 그 경험은 1970년에 성욕이 왕성했던 젊은 여성들이 무수히 당했던 치욕 중 하나에 불과했다.
우리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오스틴에 도착했고, 나는 열 시간을내리 잤다. 다음 날에는 임신 사실을 확인했던 학생 건강증진센터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 나를 봐 준 담당자는 40대의 차분한 남자 의사였다. 검사를 마친 그가 책상을 둘러 내게 오더니 어깨를토닥거리며 말했다. "누가 했든지 간에, 정말 잘했네요." - P89

검사를 마친 나는, 캠퍼스 바로 옆 19번가에 있는 나이트호크레스토랑으로 걸어가 안락한 가죽 의자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편안함을 느꼈다. 혼자 너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라떼 한잔과 콜라 한 병, 그리고 미식축구 선수라도 배불리 먹을 만큼의치킨 요리를 주문했다.
식사를 마친 나는 거리로 나와 뜨겁게 내리쬐는 텍사스 햇살아래서, 더할 나위 없는 내 자리에 섰다. 그러자 반짝이고도 소중한 내 삶을 향한 감사함에 눈물이 차올랐다. 몇 주 뒤에는 자궁 내 피임장치를 할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 - P89

열아홉, 선의와 평균 이상의 지능을 겸비한 나는 평범하게 권리를 누리며 살았다. 평범하게 살아온 삶의 일부는 이랬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미적분) 교수의 편견을 마주했고 직장 내성희롱을 당했다(애머릴로에서 여름 인턴을 할 때, 상사가 밤을 함께 보내자며 내게 1,000달러를 내밀었다. 내가 거절하자 자르겠다고 위협했다.
사람들이 데이트 강간이라 부르는 것에 ‘이용당했고, 한때 사귀었던 철없는 놈한테 맞았다.
여성들이 (공격적이지 못하고 영민하지 않아 형편없는 법조인이된다는 말도 들어 왔으며,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영계들‘은 온통 ‘남자들이랑 잘 생각뿐‘이라는 말도 들었다. - P90

우리가 여성해방운동의 초기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후 몇 년간 내가 운동에서 만나 연대한 여성들은 타고난 재능을 갖고도 멋대로 사는 이들이었고, 여성은 어떠해야 한다는 정통적 규정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런 깨달음은 내 시야를 넓혀 줬고 매일 매일을 가두 연극을 하는 기분으로 살게 했다.
우리는 뭔가를 고의로 방해하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가 무대를급습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전략적 승리는 내면에서 일어났다.
남성들의 생각, 예상 그리고 요구를 신경 쓰지 않자 변화가 일었다. 현상유지에서 관심을 돌려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너무 순진하고 이상적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순진하고도 이상적인 게 맞지만, 그 시대에 우리는 그래야만 했다. 이후 10년 동안은 우리의 비전이 탄력을 받아 축제의 세계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 P91

당시 오스틴에서 살아남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성지도 위험한 곳으로변모할 수 있었다. 많은 여성이 도약하거나 떠났고, 우리가 도착한 그곳에는 그곳에 닿기까지 지불한 모든 게 상처로 새겨져 있었다. 누구는 엄마가 되었고, 누구는 의학 전문대학원이나 법학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누구는 음악가나 활동가가 되기도 했다.
나에게 도약은 대학원에 진학할 용기를 의미했기에, 타자기와위스키 두어 병을 트렁크에 싣고 동부 해안을 향해 나아갔다. 그로 인한 피해 목록 또한 길었다. 우울과 약물 남용 그리고 불운.
나는 그것이 비극적인 여자 영웅이나 극적인 인물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라고 여기곤 했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건 힘들어도 살아가려는 삶과 관련된 것들일 뿐이다. 수십 년 길을 걷다 보면, 모든 길가에는 깨어진돌들이 널브러져 있기 마련이다. - P92

역사는 일련의 스냅사진이다. 달콤한 추억이든 낡고 찢어진 사진이든,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고 우리를 괴롭히며 전체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준다.
과거의 아쉬운 일을 생각하느라 시간과 마음을 얼마나 낭비하든 진실은 살아 보지 않은 삶을 평가할 수 없다. 대신 우리는 과거를 실패한 꿈이라고 여긴다. 때로 판타지는 꼭 필요한 거짓일뿐이며,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고 현재를 견디게 해 준다.
어떤 기억들은 암갈색을 띠고 미심쩍은 모습을 하고 있다. 어느 시점에는 카드를 마구 섞은 뒤 카드판을 인생이라 부른다. 우리는 단지 빙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어른이 되어가는 청사진은 들여다보지 않고 심리극의 대본이나 짜는 젊고 아름다운 바보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잘 안다. 여성운동은 어디서도 찾을 수없었던 나 자신을 찾게 해 줬다. 여성운동이 빠진 나의 삶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 P93

이런 대답도 삼간다. "음, 사실, 내가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경향이 있어. 내가 떠난 적도 있고, 그들이 날 떠나기도 했지.
아 그리고 나는 20년 동안 조니 워커 레드랑 결혼했었어. 술과 사랑에 빠지면 방안이 온통 술병으로 가득차게 된단다."
하지만 대답에서 생략된 내용은 정리되지 않았을지언정 모두사실이다. 그러니 내가 타일러에게 ‘아직은 말해 주지 않는 가장중요한 점은, 운이 좋다면 실수들이 지류가 되어 다른 어떤 곳을향해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되돌아보면, 과거의 모든 선택과 유턴과 방랑벽이 나름의 박자와 내면의 논리에 따라 하나의 삶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그게 무엇이든 지나온 이야기에 자신을 결부시킨다. 수용 혹은 부정이라 불리고, 세계 종교들의 중심 토대가 되기도 한다. - P101

나는 커다란 의자와 개들이 있는 집을 원했고, 누구든 들어올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온종일 머무는 사람은 없어야 하는 집을 원했다. 이제 내 나이가 70에 접어들었으니, 지금까지 꽤 긴시간이었다. 엄동설한이 닥쳤을 때나 다쳤을 때, 혹은 브로콜리 사오는 걸 깜빡했을 때나 재밌다는 파티에 못 간다고 핑계를 대야할 때는 참담한 짐으로 느껴진다.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느냐의 문제라기보단 영혼과 정신의 문제다. 그리고 누구든 원하고 꿈꾸고 고통받고 후회하는 능력인의식 자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 P103

한겨울 깜깜한 밤에 개와 산책을 할 때, 나는 창에서 황색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살아 내고 있는 곳, 그 안에는 우리가 볼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마도 타일러와 내가 같이 쓰게 될 책은 여름날의 기억과 공원에서의 농구시합, 그리고 장애물달리기나 파이 만들기 같은 추억에 근거해 의식의 안과 밖을 표류하는 판타지가 될 것이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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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초기에는 충격적일 만큼 광포하게 감정이 날뛴다. 걷잡을 수 없이 사납고 절망적이다. 슬픔에 이를 수만 있다면 슬픔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애도의 순전한 물질성에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납으로 안감을 댄 외투처럼몸을 내리누르는 둔통을 털어내기까지 몇 개월이 걸릴지 몰랐다. 내가 상실에 대해 뭔가 안다고 생각했던들-캐럴라인이 없는 상태, 두려움이 물러가고 근심이 멈춘 이후의 상태를어떻게 예상했던들-그것이 새로운 불변의 세계를 뜻할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나는 캐럴라인의 항시 부재라는 현실에 살고 있는 것 같았고, 때로는 그 명백한 사실이 내 숨통을 꽉 틀어막는 듯했다. 추도식을 치르고 보름쯤 지났을 무렵, 친구 둘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게 되었다. 간신히 한 끼 분량의 절반쯤 음식을 차리고서야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간소하디간소한 치킨라이스 접시-깜빡 - P224

하고 다른 요리는 더 만들지도 않았다 앞에 너그럽게 앉아준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조리대에 몸을 기댔다. 그녀가 죽었다. 이 말이 떠올랐다. 그 자체로참혹한 말이었다. 나는 죽음을 에둘러 완곡하게 표현하는 문화가 언제나 싫었다. ‘세상을 떠났다‘ ‘유명을 달리했다‘ ‘고이잠들었다‘, 이런 말들은 회피적이고 감상적인 것 같았다. 죽음이라는 개념에서 그 진술의 효력이 탈색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어째서 이 단어를 희석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죽었다. - P225

었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글을 읽었다. 프로이트의 『애도와 우울증』, W. H. 오든, 에밀리 디킨슨 프로이트보다 시가 더 도움이 되었다. 몹시 힘들게, 그러나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나는 이중 상실이라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기 시작했다. 만신창이가 된 지금 나의 외로움은캐럴라인의 마지막 몇 주 동안 그녀로 인해 겪은 괴로움과는별개의 것이었다.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 죽음에 대해 하는 말은 모두 상투적이다. 나는 적막감으로 미칠 것 같았고, 적막감은 종종 노여움으로 둔갑했다. 난데없이 엄습하는 원초적인 분노에 대해 말해주는 책은 없다. 죽은 사람과의 동거를대신할 그나마 견딜 만한 대안은 이런 분노뿐이다. 죽음은 아무도 청하지 않은 이혼이며, 이것을 견디고 산다는 건 잃고서 - P225

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줄 알았던 존재와 절연할 길을 찾는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우리 우정의 강도를 의심하거나 무시하고 있었다. 마치 사랑을 버리면 고통을 건너뛸 수 있을 것처럼, 이런 시도의 효과는 이십 분을 넘기지 못하거나, 아니면우리 둘을 아는 누군가에게 "그래,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가깝진 않았을 거야"라고 했다가 상대방이 웃음을 터뜨리며 끝이 났다. 내가 좋아하지 않던 캐럴라인의 특징을 일일이 떠올려볼까도 생각했다. 그런 점은 몇 가지 없었다. 혹은 보트를타고 강에 나가 그녀에게 소리내어 말을 걸기도 했다―그런시간이 잦아지고 길어지면서 결국 강의 특정구역을 ‘캐럴라인 예배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루실의 근황을 보고하고, 사람들이 했던 관대하거나 어리석은 언행을전하고, 우리 모두가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 P226

어느 날은 싸늘한 거실에 앉아 날뛰는 아픔에 몸을 내맡겼다. 오직 이곳에서만 내 마음이 거울에 정확히 비치는 느낌이었다. 나의 다른 자리들-내 집, 친구들과의 관계, 클레먼타인과 함께하거나 보트를 타거나 수영을 하는 나날은 내슬픔의 굴절된 형상을 담고 있었다. 그런 자리들은 모두 나를품어주고, 우리의 이야기를 되비춰주었으며 잠깐씩 잊게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의 이야기 자체였다. 쾌적하다고 할 수 없는 온도와 박물관 같은 정적이 흐르는 여기가캐럴라인이 있는, 그녀가 떠난 자리였다. 이 장소는 하느님을팔아버린 나의 불신앙과 나의 모든 변명을 뚫고 들어왔다. 그런 까닭에 나는 여기에 가야만 하는 동시에 가기 싫었다. - P232

캐럴라인의 죽음 이후 처음 한 해 동안은 평소와 같은 일상, 이제 두툼한 침묵에 싸인 일상을 보내는 것 외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산책하고 책을 읽고 빛의 변화를지켜보는 일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편지와 카드를 읽고 또 되풀이해 읽으며 우리가 함께있을 적의 모습을 기억에 담았다. 평소 캐럴라인과 함께 보내던 휴일이 되면 친구앤드리아에게 이끌려 모임에 나갔다. 로잉도 했다 - 그야말로 손바닥이 가죽처럼 뻣뻣해지고 심장이 느끼는 피로감으로 온몸이 욱신거릴 때까지 노를 저었다.
저녁 어스름 속에서 보트하우스로 돌아오면 보트를 물 밖으로 꺼내 열심히 걸은 말에게 하듯 닦고 말려주었다. 글을 쓰기는 했지만 몇 달은 글쓰기가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흙에서 생명이 나고 번식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차가운 순수생물학의 승리를 인간의 의식이나 계획으로 넘어서 - P239

는 게 가능한지 남몰래 고민할 때가 많았다. 주로는 부인할수 없는 그녀의 부재를 견디기 힘들었고, 기억 속에 남는 것이 곧 진정한 의미의 영생이라는 시시한 관념도 참을 수 없었다. 죽은 이들은 꼼짝도 않는데, 그들을 지나쳐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산 자들의 의연함 혹은 착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궁리하며 보낸 시간도 허다했다. 처음에는 희망을 품는것이 상실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희망이 없다면우리는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러 해 전 아직 젖먹이였던 첫아이를 잃은 친구가 있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얼마 되지않아 슬퍼하던 그녀가 들은 뼈아픈 위로의 말들 가운데, 죽은 사람에게 느끼는 강렬한 의리를 이해하는 어느 남성의 한마디가 있었다고 한다. "진짜 지옥은," 그가 친구에게 말했다.
"이것을 결국 극복하고 산다는 사실입니다." 불가사리처럼, 제 살이 잘려나가도 심장은 죽지 않는다. - P240

클레멘타인은 엉덩이와 배를 여러 곳 물리고 등은 길고 깊숙이 찢어져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아마 촘촘하게 몸을 덮은 이중 털 덕분에 목숨을 구했을 것이다. 상처의 봉합이 모두 끝나고 마취가 풀리기 시작할 때, 나는 클레멘타인이 깨자마자 내냄새를맡을 수 있도록 수술대옆에 웅크려 앉았다. 치료중에 수의사를 보조하며 클레먼타인을 붙들고 있어준 매기가 수술대 건너에서 내게 미소를 보냈다. "그래도요," 그녀가 말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잘 버티시네요."
나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당연하죠." 내가 말했다. "이녀석이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 P251

우리가 공격받은 다음날 동물관리과에서 핏불테리어들을데려가 격리시켰다. 수개월에 걸친 법정출석과 둘 중 한 마리는 안락사를, 다른 한 마리는 영구격리를 하도록 요구하는 시차원의 긴 캠페인이 이어졌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불안과 때때로 엄습하는 그때의 기억, 다소 엉뚱한 걱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험이 지나간 뒤에 서서히 정신을 잠식하는 트라우마의 파편이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이미 내러티브의 순전한 힘을 무기로 이런 잔해에 맞설 태세가 돼 있었다. 숲에서피터에게 전화를 건 순간부터 그날의 사건들은 견딜 만한 진실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게 있어 오래도록 수색과 구조의 신이었던 캐럴라인이야말로 이 이야기를 다시 들려줄 때 빠질 수 없는 산소 같은 존재였다. - P253

"죽은 이들이 우리를 지켜줘." 축구장의 그 스산한 날로부더 한참 시간이 흐르고, 캐럴라인의 영혼이 우리를 집까지인도해주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니지 않은 지도 이미 오래인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며 앤드리아에게 내가 한 말이다. 무슨 뜻인지 나조차도 긴가민가하고 입 밖에 내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의식조차 못했는데,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기도서의 문구처럼 확신에 차 있었다. 죽은 이들이 우리를지켜준다. 이제 나는 이 말을 실감하며 강한 안도감을 얻는다.
캐럴라인의 죽음으로 나혼자 전장에서 버티도록 내몰렸지만, 이제 그녀가 말없는 호위병이 되어 내 안에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이런 애착이 기억 덕분이든 신의 가호이든, 이것은 내가 아는 그 무엇과도 다른 위안을 안겨준다. 그대는 나와 함께 있다. "전부 앗아가잖아!" 그날 밤 절망에 치여 전화기에 대고 루이즈에게 그렇게 소리쳤었다. 지나고 보니 전부다 앗아가버리는 건 아니다. - P255

그후로 십 년 동안 클레먼타인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감정이 확장되고 즐거웠던 시절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가장 슬펐던 순간의 목격자였다. 내게는 다시없을 절친한 친구와 함께 나를 숲으로 이끈 것도 클레먼타인이었고, 캐럴라인이 죽어갈 때 매일 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기다려준것도 클레먼타인이었다. 연로한 부모님을 보살피러 텍사스에 다녀올 때마다 그 여정의 끝에는 클레멘타인이라는 보초가 서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텍사스 태양 아래 두 분을 나란히 묻어드리고서 케임브리지로 돌아왔을 때, 클레먼타인은 현관에 들어서는 내 코끝을 가볍게 다독이듯 깨물고 내게 몸을 기댔다. 녀석은 그후 며칠간 좀처럼 내 곁을 비우지 않았다. - P262

옛날 나바호족 사람들은 러그를 짤 때 어울리지 않는 실을한 가닥씩 넣고 그 도드라지는 색이 바깥 테두리로 이어지게했다. 이 의도된 결함은 러그 안에 갇힌 에너지를 풀어주고또다른 창조로 이어지도록 길을 낸다는 뜻에서 영혼의 줄이라 불렸으며, 이 줄의 유무로 진품을 가릴 수 있다.
인생에서 굳게 품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에는 모두 이런 영혼의 줄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희망이라 부르든 내일이라 부르든, 내러티브의 뒷이야기라고 부르는 상관없다. 다만 이것없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선명한 불협화음 없이는 우리의 의식과 함께 모든 것이 안으로 무너져 파열될것이다. 우주가 역설하는바, 모든 고정된 것은 유한하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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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이야기의 끝이 아님을 이해하기까지 나는 몇 년이 걸렸다. 죽음은 이야기를 바꾸어놓는다. 일방적인 대화체의 오류와 통찰을 수정하고 고쳐쓴다. 우리 대부분이 서로의 삶을 드나드는 건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가 아니라 거리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다-시공간과 마음의 권태야말로 인간관계에서 더 냉정한 사형집행인이다.
되풀이해서 꾸는 캐럴라인 꿈이 몇 가지 있다. 캐럴라인이 녹색과 청색으로 가득한 숲속 작은 집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꿈, 그녀에게 보낼 편지를 타이핑하는데 내가 찍은 글씨의 잉크가 계속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꿈, 꿈에서 그녀는 언제나이미 죽었거나 죽어가는 사람이지만, 끔찍하거나 고통스러 - P183

을 꿈은 아니다 손을 뻗으면 서로 닿는 지척이었기에 나는언제나 상실감을 이겨낸다. 하지만 견디기 힘든 꿈이 한 가지있다. 아파서 치료받고 있는 그녀를 내가 찾지 못하는 꿈이다. 연락이 끊어지거나, 전화가 되지 않거나, 잠긴 문 너머에그녀가 있는데 내 열쇠가 부러진다. 조금씩 다른 변주가 여러가지 있지만, 번번이 허공을 할퀴며 깨어나는 이 꿈의 메시지는 하나다.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것은 삶이지 죽음이 아니라는 것. - P184

시인 키츠는 "마음의 애정이 지니는 신성함"과 상상력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캐럴라인과 나는 서로 내면의 무엇을 잠잠히 다스려준 덕분에 밖으로 나가 더 넓은 세상에 발을 담글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과 기억을, 그 두 가지가 서로에 미치는 영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사람임에도 나는 이 모든 이야기의 가닥들을 따라가다가 다다른 한 가지 생각을 도저히 떨칠 수가 없다. 그녀가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으스스하고 초월적인 생각.
내 주위는 온통 사실을 반증하는 삶과 죽음의 파편들이다. 요리책에서 떨어진, 조목조목 꼼꼼한 그녀의 손글씨로 쓰인 감자그라탱 레시피가 그렇고, 그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힘들게 구해준 J. R. 애컬리의 『우리 개 튤립 * 초판이 그렇고, 죽음 이후 그녀 집에서 발견한 수수께끼 같은 CD가 그렇다. ‘캐 - P184

럴라인을 위한 음악‘이라고 제목이 달린 이 CD는 노라 존스와 피오나 애플부터 에디트 피아프에 이르기까지 한 곡 한곡 우리 모두가 품은 알 수 없는 열정의 고백을 담고 있다.
언젠가 캐럴라인은 삶의 일차적인 모호성을 "기쁨의 어두운 이면"이라 말했는데, 요즘은 그 반대쪽 면이 펼쳐진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행복한 중간지대로, 작가 스스로 뛰어드는둔주상태** 속으로 내가 그녀를 데려와 함께 걷고 있으므로.
개들과 함께 뛰노는 풀밭과 숲에서, 로잉 수업과 토론과 한가한 전화통화에서 매번 그녀는 온전하게 살아 있다. 이즈음 그녀의 죽음은 저만큼 떨어진, 닫혔으되 잠기지 않은 어느 문너머에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강바람에 그을린 그녀가깔깔 웃고 있다. 곧 전화가 울리고 우리 중 하나가 묻겠지. 지금 뭐해? 그러면 모든 게 다시 시작될 것이다. - P185

다른 한 장면은 그날 늦은 오후, 클레먼타인을 산책시키고 캐럴라인에게 필요한 물품을 사러 한참 병원 밖에 나와 있을때 일이다. 동네 공원 쪽으로 걸어내려가는데 저편 농구코트에 친구와 일곱 살배기 딸 소피가 있었다. 내가 그들을 보았을 때 마침 소피가 공을 잡아 슛을 던졌다. "엄마!" 아이가 소리쳤다. "봤어?" 아이가 코트에서 첫 승리를 거둔 순간이었고, 나는 그 승리의 우연한 목격자가 되었다. 그렇게 손만 뻗으면 쉽게 잡히는 기쁨이 얼마나 강력한지 나는 숨이 멎을 듯했다.
햇빛 찬란한 이 오후에 캐럴라인은 죽어가고 있고 소피는 슛을 넣었다. 엄마! 그렇게 아이는 지치지 않는 생명력으로 공을던지고 있었다. - P193

"이런 일이 생기기 전이었다면 말이야." 그날 밤 그녀는 이런말도 했다. "만약 누군가 폐암에 걸려서 네 군데나 전이됐다는 얘기를 들었으면 아마 나도 ‘어쩌나, 그사람 육 개월밖에안 남았네‘ 그랬을 거야." 그러고는 링거를 꽂은 날씬한 근육질의 팔을 들어올리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내가 얼마나 강한지 몰라."
이 모든 게 어제 일 같기도 하고 아주 옛날 일 같기도 하다.
상상 속에 고정된 시간과 공간의 깊은 균열 사이에서 벌어진일인 것만 같다. 이 모든 게 기억나는 것은 내가 이 모든 것을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위기의 순간에 나 - P197

눈 대화는 마치 나무에 난 상흔처럼 윤이 난다. 지금은 내기억을 떠올리며 깜짝 놀라지만, 그럴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는캐럴라인의 목소리를 내 가슴에 새겨놓았으니까. 그 목소리, 그 억양과 음역과 타이밍이 완벽한 유머까지. 이것을 잃을 일은 없다.
월요일이 되니 화학요법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진단을 받고 며칠 안 되어 캐럴라인이 자신의 상담치료사-그녀가 이십 년 동안 알고 지내며 좋아한 사람에게 연락했으나 그는 아직까지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상황의 엄중함을 뒤로 미뤄보려고 캐럴라인도 상담치료사도 애를 쓰고있었을 것이다. 그날 캐럴라인은 그동안 지켜온 신체적 심리적 평정을 모두 잃었다. 지독하게 앓으며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나는 오후 내내 누워 있는 그녀 곁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네덧 시간이 흐르는 동안 캐럴라인은 깨어났다 움찔했다 다시 잠들기를 되풀이했다. 나는 물수건을 차가운 것으로 바꾸러 갈 때를 빼고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힘들 것 없는 기이한 보초를 서며 시간도 생각도 다 사라졌다. - P198

우리 주위에는 화학요법을 받기 위해 대기중인 이들이 많았는데, 이 대화가 오가는 동안 우리에게 눈길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한 여성이 휴지상자를 건네주고는 다시 읽던 잡지로 눈을 돌렸다. 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안도가 되고가르침이 되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누구도 낯선 이들의 감정에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도 죽음에 직면한 자들의 은밀한 문화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들.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선 심장의 맨살이 훤히드러났다.
때는 5월 초의 화창한 오후였다. 우리는 일찌감치 병원에도착해 햇살이 내리쬐는 야외에서 땅바닥에 책상다리를 한채 서로를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이때쯤 캐럴라인의 작가활동은 이미 중단된 상태였는데, 잊어버리고 미처 취소하지 못 - P203

한 미해결 원고가 하나 남아 있었다. 애견잡지에 보낼 그녀와투실에 대한 에세이였다.
"무슨 얘기를 써야 하지?" 그녀가 물었다. "함께 살던 개를잃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 있다면 자기가 개보다 먼저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거라고?"
그녀의 음성이 갈라졌다. 내가 가보지 못한 두려움 너머의어딘가에 그녀가 서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가장힘들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듣는 일이라는 것도 희망이나 안도의 거짓 약속은 모두 우리가처한 자리에서 도망치려는 시도일 뿐이었다. 햇살이 비치는마운트 오번병원 잔디밭, 내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목을 감싸쥐고 앉은 이곳이 지금의 우리 자리였다. - P204

내가 루실의 변변찮은 안내자가 되었다. 결혼식에서낭송하기에 걸맞은 사랑과 언약에 관한 시를 한 편 찾아달라는 캐럴라인의 부탁도 있었다. 나는 적당한 것을 고르느라 며칠을 보냈다. 연애시들은 대부분 머리 위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상황을 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캐럴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두 사람 다 해피엔딩을 간절히 원했지만 그렇다고 해피엔딩을 꼭 믿지는 않았다. 어느모로 보나 인생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다는 게 입증되고 있지않은가. 어렵사리 에드나 세인트빈센트 밀레이 * 소네트한 편을 찾았다. ‘반짝이는 운명의 물레‘를 파괴하는 숙명에 - P205

대해 이야기하는 시이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진실을 담고 있었다. 마침 시를 읽고 있는데 캐럴라인에게 전화가
"하나 찾았어." 내가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너무 음하다." 그러고서 그녀에게 첫 몇 행을 읽어주었다. "원컨대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 기쁨을 안아주시기를 / 잠시라도 아니라면 당신의 눈물로 내가 울게 하시기를."
"됐어." 도중에 불쑥 그녀가 말을 잘랐다. "바로 이거야. 그걸 읽어줘야 해."
결혼식날 모렐리가 우리 둘을 찍어준 사진이 한 장 있다.
사진 속에서 우리는 한 쌍의 그레이하운드 새끼들처럼 꼭 달라붙어 있다. 결혼식이 끝난 밤, 캐럴라인과 모렐리와 나는그녀의 소파에 드러누워 그날 하루를 세세히 되짚었다. "기분이 어때?" 곁에 누운 캐럴라인에게 내가 물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빙그레 웃었다. "위로받은 느낌이야." - P206

그뒤 며칠 동안, 캐럴라인을 사랑하는 우리들을 엄습한 공포는 일정 부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녀가 그것을 어떻게 겪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데서 왔다. 병실에들어서서 본 캐럴라인의 두 눈은 두려움으로 사나웠다. 누군가 그녀에게 내가 왔다고 말해주었다. 그녀가 괴로운 울부짖음을 토해냈고, 내 귀에 그 소리는 두 가지 뜻으로 들렸다. 하나는 나를 알아보고 내는 단순한 소리. 다른 하나는 내가 나타난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 먼 거리를 되돌아왔다면 상황이얼마나 심각한지 깨닫고 내는 소리였다.
말을 걷어내면 말을 둘러싼 온갖 수식이 보인다. 몸의 언어와 손짓, 눈빛이 하는 이야기까지. 모렐리와 캐럴라인의 형제자매가 모든 의료결정 대리권을 위임받아야 했지만, 그 주에 작성된 서류들에는 아직 필요한 서명이 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캐럴라인이 상황을 파악하고 펜을 쥘 수 있는지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내가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캐럴 - P208

라인, 나야.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내 손을 꽉 쥐어봐."
그녀가 지체 없이 세게 손을 쥐어 응답했다. "좋아." 내가 말을 이었다. "위임장에 자기 서명이 필요해. 할 수 있을 것 같으면ㅡ" 그녀의 응답에 나는 말을 멈췄다. 거의 내 손을 부러뜨릴 만큼 강렬한 힘, 그것은 조바심과 유능함이 고스란히 담긴, 완전하고 의미 있는 문장이었다. 그녀가 서류에 이름을흘려 쓰는 동안 나는 그녀의 몸을 꼭 붙들었다.
그날 이후로 양팔이 그녀의 목소리를 대신했다. 어느 밤 병실 침대 옆에 앉아 있던 내가 캐럴라인이 누운 매트리스에 머리를 기댔다. 모렐리는 내 피로한 기색을 읽고 목 밑에 수건을 받쳐주었다.  - P209

방안의 밝기와 숨소리의 횟수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던 이후 며칠동안 그가 셀 수 없이 베푼 자상한 행동 가운데 하나였다. 그때 캐럴라인이 팔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나의 며칠을 위로하고도 남는 손짓이었고, 우리는 그렇게 그대로 있다가 둘이 스르르 잠들었다.
우리는 몇 년을 수다로 보낸 사이였다ㅡ남들이 포기했을 상황에도 수다를 통해 감정과 대화와 복잡다단한 일상을 가닥가닥 해체했다. 이제 그녀가 더이상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러니 나도 말을 하지 않았다. 침묵의 안무가 우리의 이야기가되었다. 몇 시간씩 그녀의 침대 발치를 지키고 있어도 내가거기 있는 것을 그녀가 알기는 하는지 모르겠는 시간이 대부 - P209

분이었다. 하지만 캐럴라인과 나의 우정은 비언어적 소통으로 우아한 진실을 추구하는 결속에서 시작되었다. 몸놀림과손짓과 눈맞춤이야말로 동물과의 대화에서 필수요소니까.
처음 그녀가 병상에 누웠을 때, 나는 그녀가 아끼던 티셔츠를병원에 가져갔다. 뉴욕의 레스토랑 바킹도그런처네트BarkingDog Luncheonette 의 티셔츠로, 등에 ‘앉아! 기다려!‘라고 쓰여 있었다.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얼마나 정직하고 중요한지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한 일도그것이었다. 앉기, 그리고 기다리기. - P210

그 담대함이란 물론, 그녀는 숨을 거두기까지 한참을 견뎠다. 뇌출혈이 일어나고 이삼일 안에 의료진이 그녀의 몸에 중심정맥관을 삽입해 모르핀을 투여했다. 이 약물이 고통을 충분히 억제해 부디 그녀가 근심 걱정 없이 자유로운 곳을 떠다녔을 거라고 나는 믿고 싶다. 진실은 알 길이 없다. 임종이라는 바로 이웃한 우주를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이 의문은 그때도, 그녀가 떠난 뒤 몇 달 후에도내내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녔다. 목격자의눈에비친 고통이막막하고 무력한 세계임은 나도 안다. 의식이 또렷한 멀쩡한이들은 정녕 그 내막을 알아낼 수도, 어떻게 돌려놓을 수도없는 광경을 지켜볼 뿐이다. 고통은 삶의 마지막 판도를 바꿔 - P213

놓고 죽음의 검은 외피를 희게 탈색시킨다. 고통은 시간의 바깥에 놓인 침침한 통로이며, 그곳에서는 오직 맹렬한 탈진감만이 당신을 제압하고 윽박질러 죽음이 들어서도록 문을 열게 만든다.
캐럴라인은 출혈을 일으킨 그날 밤 이후로 열여드레를 살았다. 모렐리는 루실까지 데리고 그녀의 병실로 거의 이사를하다시피 했다. (어느 밤인가 병실을 나서던 새로운 조무사가 씨익 웃으며 "어휴 깜짝이야, 여기 개가 와 있어!"라는 말로 넘어가준 것이 투쟁 끝에 우리가 얻은 즐거움이었다고나 할까.) 이 기간동안 나는 불안할 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얼마쯤 지나면 큰슬픔이 찾아오리란 걸 알면서 가능한 한 그 사실을 외면했다. - P214

순진한 질문이었을지 모르지만, 내가 휘청거리며 상실의지원으로 향하고 있었음을 지금은 안다. 사망선고를 받아들하는 것은 슬로모션으로 계단을 굴러떨어지는 것과 같다. 한간에 하나씩 멍이 늘어나며 견딘다-쿡, 한 번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시 한 칸 떨어지면서. 나는 탈진하여 쓰러지기 직전이었지만, 눈앞의 현실을 피해 달아나보겠다는 듯 맹렬한목적의식으로 계속 움직였다. 텍사스에서 돌아오던 날 밤,
허조그의 집 전화번호를 구해 병원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실을 찾은 그의 손에 은방울꽃 한 다발이 들려 있었고-다른 것은 몰라도 캐럴라인의 후각은 무사하리라는 배려였다 그가 그녀에게 다가가 꽃다발을 코에 대주었다. 이꼼꼼한 자상함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뒤 몇 주 동안 나는 캐럴라인을 사랑하는 다른 모든 이들 앞에서 억누른 괴로움을허조그와 대화할 때만은 감추지 않았다. 끝이 머지않았던 어느 밤, 병원 복도에서 지금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니 그가 말했다. "캐럴라인에게 아직 못 한 말이 있으면 다 해요." 그래서 나는 안도하며 미소를 지었다. "하나도 없어요" - P215

임종의 세세한 순간들은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프다. 숨쉼,
기다림, 그리고 다시 숨쉼, 기다림. 몸이라는 훌륭한 장치는언제 어떻게 멈출지를 잘 안다. 다만 캐럴라인은 워낙 강인하고 결연한 사람이라서, 이 마지막 과제의 끝을 향해 나아갈때조차 팽팽한 힘을 놓지 않았다. 내가 여러해동안 물위에서 지켜보았던 그녀는 이제 앤 섹스턴"이 "하느님에게 가는끔찍한 뱃길"이라 부른 그 여정에 오르고 있었다.
하느님이라, 내게 하느님은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주인 같은존재였다. 성인이 된 이후 주로 나는 믿음을 버린 냉담자이거나 환난에 처해서야 신을 찾는 신자로 살았다. 둘 중 어느 쪽으로든 답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나는 항상 놀라웠다. 그러나인간의 의식보다 더 크고 불가지한 존재에 대한 내 믿음이 - P216

근처로부터 시험당한 적은 결코 없었다. 이따금 나는 병원의작은 예배당에 들어가 침묵으로 몸을 감싼 채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캐럴라인의 병실로 올라갔다. 유난히 힘들던 어느 밤, 바깥 복도의 불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 길의 참혹한 최후가 느껴지던 일을 기억한다―그 순간에는 맞은편에 아무것도 없는 돌담에자동차를 들이받듯, 끝이 단순히 끝일 뿐인 것 같았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적막한 순간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날밤 그 방안의 유일한 신은 모르핀 한 방울인 것처럼 느껴졌다. 무–살고 견디고, 그리고 죽는 생래적 본능 이외에 모든 것이 무의미한 우주를 응시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냉정한 깨달음이 들었다.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날이 새듯 일상적인 일이고 지금은 캐럴라인이 저물어야하는 때였다.  - P217

거기에 광명도 의미도 없다는 사실이 나로서는참을 수 없었다. 인간이 부활의 신화를 믿게 된 것도 무리는아니었다. 그나마 그것이 암흑 속에 한 가닥 틈을 열어, 이 끝을 견디는 유일한 방편이 되었으리라.
그 어렴풋한 통찰을 다시 불러오려고 애를 써보지만 그때의 강렬함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는망각하게끔 설계돼 있으니까. 우리는 다리를 세우고 언어를배우고 아이를 낳고 막대기로 바위를 두드리며 리듬을 찾는 - P217

일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죽음이 나타날 때는 이 모든 것의덧없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것 역시 오래가지는 않는다. 죽음의 거센 흡입력을 기억하기란 손안에 물을 쥐려는 시도와같다. 그 어두운 통로를 벗어나며 내가 얻은 깨달음은 이것이었다. 신의 존재에 대해 굳이 알 필요가 없다는 것 - 그 엄연한 광경의 바깥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혹은 존재하지 않는지알지 못한다는 겸허함이 필요하다는 것. ‘없어서는 안 되는수수께끼‘ 이어진 몇 달 동안 이 구절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치 우주 속의 필연적인 내 위치가, 앎과 알지 못함의 경계에, 내게는 오만해 보이는 종교적 확신과 믿음 없는 세상의절망 사이에 서 있는 내 자리가 그 안에 담겨 있기라도 한 듯. - P218

캐럴라인이 죽던 날, 나는 원고 마감을 지켰다. 강한 척을하려던 것이 아니라 앞으로 스물네 시간 안에 그녀의 심장이멈출 것이고 그뒤에는 내가 무너지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 당장 서너 시간은 비교적 고통 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것이 글쓰기라서 나는 그날 글을 썼다. 추측하건대 아마 그녀도 그러기를 바랐을 것이고, 그녀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일요일이었던 전날은 밤늦게까지 병원에 있다가 캐럴라인 - P218

의 형제자매와 모렐리를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와 열 시간 동안 놀랄 만큼 깊이 잠을 잤다. 캐럴라인은 사흘 전부터 의식이 없었다. 나는 그녀 곁에 앉아 숫자의 의미를 알 수 없을 때까지 그녀의 숨소리를 셌다. 마지막으로 내가 부둥켜안았을때 그녀의 몸은 불덩어리처럼 뜨거웠고, 움직임이 없는데도격렬한 에너지가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미 수일전부터 우리 곁에 없었다. - P219

개들과 사람들과 빈 접시들이 집안 구석구석을 채웠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나는 수면제를 한 알 먹고 잠을 청했다. 이 모든 상심과 나란히 아이러니와 경이가 느껴졌다. 캐럴라인과 나는 비슷한 고요와 고독 속에 은신하다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없고, 그녀가 떠나며 내문을 사방으로 활짝 열어둔 것이다.
우리가 일평생 애도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단기집중강좌가 유일하다. 캐럴라인이 죽기 전까지 나는 반대편 세상, 순진함과 선형적 기댓값의 세계에 속해 있었고, 애도라는 것이그저 쓰라린 슬픔과 그리움의 영역이며 서서히 희미해지는 - P221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의에는 일시적인 착란, 상실이 가하는 치명타, 더 복잡미묘하고 지독히도 강렬한 일련의 감정이 모두 누락돼 있었다. 몇 주, 어쩌면 몇 달간 나는 마치 물에 잠긴 것처럼 움직였지만 사망일부터 추도식까지 처음 며칠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눈물과 경악의 연속이었다. 나의일부는 금요일 아침 추도예배에서 낭독할 시를 찾아 소리내읽는 연습까지 하며 섬뜩할 만큼 민첩하게 상황에 맞는 동작들을 수행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의 나는 이 단계에서 다음단계로 도저히 넘어갈 수 없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그리고사람들 앞에서 캐럴라인을 놓아보낸다는 건 난해한 끈이론만큼이나 혼란스럽고 불가해한 일이라고-단단히 믿고 있었다.  - P222

집을 떠나 오하이오에서 그녀의 부고를 들은 오랜 친구 피트가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나는 두려워서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 다음날 치를 추도식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피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그가 들려준 말은 영원히 내 귀에 맴돌 만큼 큰 위안이 되었다. "모르는 게 아니야, 게일." 그가 말했다. "인간인 이상 우리는 오랜 세월 이런 일을 해왔어. 그러니까 이건 말이야 그저 몸이 시키는 대로하면 되는 거야." - P222

조심스럽게 살아와서 비교적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고 대중의 관심으로부터도 안전하다고 얼마쯤 믿었던 캐럴라인이추도식 광경을 봤더라면 아마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 마운트오번 공동묘지 예배당은 추모객들이 차고 넘쳤다. 오전내내 차가운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었고, 캐시가 집으로 나를 데리러 와주었다. 예배당 입구가 보이는 차 안에서 나는캐시에게 안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고맙게도 그녀는 서둘러 안심시키려 들지도 내 말을 그저 비유적인 표현으로 넘겨듣지도 않았다. "문까지는 갈 수 있겠어요?" 캐시가물었다. 4미터가 채 못 되는 거리였다. 문까지 걸음을 뗐더니, 모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부터는 괜찮았다. - P223

그날 아침 내가 읽은 루이즈 보건의 시 종막을 위한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제 당신의 얼굴을 가슴에 새기고보니, 내 눈은/ 당신의 이목구비보다 거무스름해지는 뼈대에더 머뭅니다." 추도식 이후 이틀 동안 나는 시의 운율을 머릿속에 담고 다녔다. 산책을 갈 때도 수영을 할 때도 잠들기 전마지막 생각을 할 때도 이 운율이 감미로운 배경음이 돼주었다. - P223

다. 마치 먼 옛날의 합창대가 내 안에 머물며 아름다운 성가를 들려주듯, 내 움직임에 운율이 되고 달리 표현할 길 없는슬픔에 반주가 되었다. 이틀이 지나자 시는 도로의 빗물처럼자연스럽게 사라졌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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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을 맹세한 대상이 문제의 원인일 때는 그런 경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깨진 유리로 뒤덮인 길을 한참 기어서 빠져나온 뒤라면 모를까. 최대한 상냥하고 위협조가 아닌 도움이라 할지라도-알코올중독자에게 그런 게 있을 수 있다면 말이지만 문을 부서뜨리지는 못했다. 혹시 문이 부서졌으면 아마 나는 야반도주라도 했을 것이다. 나는 도움을 원치않았다. 내가 원한 것은 나를 안심시켜줄 말이었다. 잠깐이어도 좋고 억지스러워도 상관없으니, 그저 내가 별 탈 없이 계속 술을 마실 수 있을 거라는 위로를 받고 싶었다. 어느 오래된 농담처럼 말이다. 무인도에 간 사내에게 호리병 요정이 두가지 소원을 빌라고 하자 사내는 맥주 한 병을 부탁한다. 요정이 즉시 맥주를 대령하며 이것은 시원한 맥주가 영원히 마르지 않는 병이라고, 이제 소원 한 가지를 더 빌라고 한다. 그랬더니 사내가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그냥 맥주를 한 병 더 줘요, 라고 말한다는 이야기. - P89

이런 무한반복이 남기는 최악의 심리적 앙금은 지속적인배신감이었다. 매일 아침 술을 마시지 않기로 계약을 맺지만, 밤 여덟시나 아홉시쯤 계약은 다시 깨진 뒤였다. 돌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끊이지 않는 침식작용이 일어났다. 나는운좋게도 양친의 장점을 고루 물려받아 어머니의 독립심과아버지의 강한 결단력을 모두 지녔다. 그리고 삼십 년 동안제법 괜찮은 성과를 거둔 나 자신에 대한 신뢰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적수는 그간의 도전 상대들보다 훨씬 가혹하고 끈질기고 강력했다. 승부가 이미 판가름났다는 건 앞선 한 해로증명이 됐다. 실제로 링에 올라 잭다니엘 병에게 흠씬 두들겨맞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술을놓지 않으려고 신들과 협상을 벌였다. 마감시간을 지키면 술을 사기로, 일감을 따내면 술을 마시기로, 내 글이 흡족할수록 하루의 끝에 받는 보상도 더 커졌다. - P97

연료가 충분한지 외양은 괜찮은지 점검을 거듭하며 한심한 영웅 흉내를 내고 있었지만, 물가로 나오게끔 내게 밧줄을던져준 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였음을 이제는 안다. 술을 지키고 글쓰기를 잃은 세상에서 산다고 생각하면 술이 없는 세상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다. 비참했던 마지막 몇 달 동안은 밤늦게 술에 취해 내가 나에게 끼적거린, 반쯤은 이해되고반쯤은 이해되지 않는 메모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낮에 맑은 정신으로 쓴 글은 최소한 알아볼 수 있고 명료했는데, 내어두운 반쪽이 남긴 메모들은 마치 한물간 왕년의 브로드웨이 탕녀를 싸구려 술집에서 맞닥뜨린 느낌이었다. 내 나이 서른셋이었다. 고뇌하는 낭만주의자의 환상이 아무리 심하게나를 몰아붙였던들, 비극적인 몰락을 맞기엔 아직 너무 이른것 같았다. 수년간 나는 위스키로 재능을 길들인 작가들을 모아 술에 전 명예의전당을 만들었다.  - P101

작가가 되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리라 생각하며 살던 다락방은 가로수가 늘어선 거리의 엘리베이터 없는 삼층 건물에있었다. 타자기가 놓인 자리는 거실이었고, 그곳에 난 건물전면 창밖으로 지붕들과 뉴잉글랜드의 하늘이 이어졌다. 아래로는 사람들이 삶을 꾸려가는 거리 풍경 - 우편배달부,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 도시생활의 후경을 이루는 친숙한 타인들이 내려다보였다. 부러진 갈비뼈 때문에 집에서 꼼짝을못하던 어느 겨울 오후, 그저 주류판매점에 걸어가 버번 한병만 사올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심정으로 창가에서서 눈발이 휘날리는 바깥을 내다보는데, 문득 내 꿈의 경로가 이만큼 어그러졌다는 생각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작가가 되겠다는 의지로 아무런 일자리도, 가족도, 발판도 없는이곳까지 그 먼길을 와놓고 지금은 저 아래 세상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비좁은 내 삼층 독방에 발이 묶인 채 어서 술을마실 수 있도록 이 하루가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다니. 수년간의 자유낙하가 끝이 났고, 불안은 절망이 되었고, 나는 정말로 더는 버틸 힘이 없었다. - P102

술을 끊자 몇 가지 즉각적이고 드라마틱한 효과가 나타났다.
집을 청소하고 날마다 1500미터씩 수영을 했고, 전에 없이단것이 당겼다. 여러 AA 모임에 참석하고,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소설책을 쌓아놓고 읽었다. 지역 문예평론지 편집자로 취직되어 첫 출근을 하던 날, 그곳에서 짙은 음색에 키가크고 점잖은 매슈를 만나 좋은 친구가 되었다. 매슈는 다시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몸소 보여주는 사람이었다-그와 함께 있으면 장애물 훈련장 같던 세상도 놀이공원이 되었다. 창밖 매스 애비뉴에 눈발이 휘날리는 늦은저녁까지 매슈와 나는 사무실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산더미같은 투고들을 읽었다.  - P113

그리고 얼마 뒤, 훨씬 덜 취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열망의1대상이 되었다. 나는 술에 절어 있는 사교의 장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 그리고 때로는 사교생활 자체를 피해가는 법을익혔다. 한때는 내게 손짓하던 마법 같은 삶도 시간이 흐를수록 별로 부럽지 않고 오히려 낯설게 보였다. 나에게 일어난근본적인 변화를 알아차린 것은 어느 날 밤 보스턴 시내에서 한 명사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였다. 모임장소는 리츠칼튼호텔이었고, 다른 참석자 전원 남성이었다 - 모두 폴란드산 보드카와 더블스카치 같은 독주를 주문했다. 나는 웨이터에게 웃으며 물었다. 생수는 어떤 게 있어요?" 주문을 마친 내게 그날의 초청명사가 조롱하는 눈빛을던졌다. "술 안 마셔요?" 그가 말했다. "얼마나 지루할까."
"전혀요. 지루하지 않아요." 바로 쏘아붙였다. 탄산수나 마시는 연약한 여자로 남들 눈에 비쳤다는 생각보다 그 남자의무례함에 도리어 기가 막혔다. 나는 더이상 그 남자든 아니면누가 됐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연연하지 않았다. - P117

첫인상은 그 정도가 전부였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캐럴라인의 직감이 빗나간 몇 안 되는 경우였다. 알코올에 얽힌 각자의 과거사가 친숙했다면, 변화 가능성에 관해 우리가 공유한 명제는 더 복잡하고 질겼다ㅡ삶은 고되고 때로 가장 치열한 싸움은 고독하게 치러야 하지만, 두려움 속으로 걸어들어가 상처를 입고 나올지라도 여전히 숨을 쉴 수 있다는 믿음. 우리는 이것을 공유했다. 우울증 환자의 시각에서 해석한희망일지언정 이는 신중한 숙고를 통해 얻은 믿음이며, 우리는 진정한 난관에 직면할 때도 일상의 소소한 사건사고를 마주칠 때도 항상 이 믿음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캐럴라인은이십대 후반에 거식증의 물살을 헤쳐나왔고, 나는 처음엔 기어서 나중엔 절뚝거리며 소아마비를 이겨냈다. 그 긴 오르막덕분에 나는 술을 끊는 데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자질, 결단 - P119

과 집요함을 기를 수 있었다. 상대방에게서 이런 생존방식을 알아보았기 때문에 캐럴라인과 나는 서로 안전거리를 유지했다 우리는 자신보다 상대에게 관대해지기가 훨씬 쉽다는 것도 여러 해의 경험으로 깨달았다. 캐럴라인이 루실을데리고 6킬로미터를 걷겠다고 고집하면 내가 절반으로 충분하다고 설득하고, 거꾸로 내가 내리막길에서 무려 16킬로그램이나 되는 커다란 보트를 머리 위로 들겠다고 고집하면 그녀가 보트하우스에 차를 몰고 와 운반을 도와줬다. 우리는 각자 내면에 도사린 고약한 감독관을 ‘내면의 해병대‘라 명명했다. 그렇게 부르니 내가 녹초가 되도록 노를 젓고 그녀가 지칠 때까지 수영을 해도 큰 가책이 들지 않았다. - P120

타인의 너그러운 배려로 충만한 인생을 산 사람들은 애착관계 자체를 복잡하지만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내향적인 사람에게 이것은 더 막연한 영역이다. 내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감정표현에 적극적이고 활발할 수 있었던 것은 끝이언제 어떻게 날지, 하루의 끝, 파티의 끝, 산책의 끝, 관계의 - P129

끝이 어떨지 알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던 시절에는 버번이소울메이트이자 변치 않는 애인으로 등뒤에 버티고 있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을 피하거나 뿌리쳐야 했다. 하지만 벽돌담이든 고립의 담이든 이미 쌓은 담은 마땅한 수고 없이는 허물어지지 않는다. 캐럴라인과 나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서로를 밝은 바깥으로 나오도록 이끌었다. 서두르지 않고 상대방의 자율을 분명히 배려한 덕분에 우리는 주춤거리며 서로에게서 물러설 필요가 없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친구가 되던 첫 한 해 동안 우리는 서로를 경계하던 단계에서 매일 붙어 다닐 만큼 편안해지기까지아주 조금씩 신뢰를 쌓아갔고, 그 과정의 많은 부분이 지금보니 신중하고 심지어 말이 오가지 않는 교환과도 같았다.  - P130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에게 기대게 됐다. 텍사스에서 마음에 드는 스웨터가 눈에 띄면 나는 이제 두 개씩 사올 줄도 알았다. 하나만 사들고 돌아와 캐럴라인이 실망하는 얼굴을 보느니 두 개를 사오는 게 속이 편했다. 캐럴라인은 바람이 심한 날 보트하우스에서 배를 끌고 나갈 때면 내게 미리 자기스케줄을 알려주었다. 배가 뒤집히거나 노에 머리를 맞아 루실 혼자 집에 남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불안감을 달래는 방책이었다. 나는 아직도 캐럴라인의 집 열쇠를 가지고있다. 그 열쇠로 열 자물쇠와 문은 이제 없지만, 내 차 글러브박스에 열쇠는 그대로 들어 있다. 지난 몇 년간 이 차에서 저차로 옮겨다녔을 뿐. 언젠가는 이 열쇠도 찰스강에 던질 생각이다. 내가 빠뜨린 그녀의 보트시트와 다른 많은 것이 그곳에 있으니. - P131

"뭐해?" 글 쓰는 시간이 끝나고 아직 산책시간은 되기진한 이른 오후, 나는 전화를 걸어 묻곤 했다. "전화 기다리고있었지.‘ 반쯤 농담처럼 그녀의 대답이 떨어지면, 우리는 수다로 뛰어들었다. 조간신문 기사(각자 두 종류씩), 로잉과 수형 기록(강에서 8킬로미터, 수영장에서 1500미터), 하루의 끝에서 끝까지 ‘스물네 시간‘ 사이의 사건사고 일지까지. 통화를 마치고 해가 지기 전에 물가에서 만나면 캐럴라인은 내팔에 팔짱을 끼고 물었다. "그래서어어………?" 그럼 우리는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며 끝없는 대화의 또다른 문장을 시작했다.
낡은 규범에 따르면 모름지기 남자는 운동, 여자는 수다였다.
그러나 캐럴라인과 나는 두 가지 모두를 연마했고, 물에서 그리고 뭍에서 함께 이동한 거리가 길어질수록 우리가 디딘 내면의 땅도 단단히 다져졌음을 알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지금 깊은 유대와 일상 속에서 피어난 우정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이 공기를 붙잡으려는 시도와 모든 면에서 닮아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의 결합에는 일상의 묵묵함과 종요로움이함께 있었다. 장미에게 자리를 내주는 격자 울타리처럼. - P132

이런 그날그날의 사건을 우리는 서로에게 털어놓았고, 그렇게 표현을 하는 것만으로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한번은 음식을 하나씩 준비해가는 저녁모임을 앞두고 캐럴라인이 안절부절못하며 전화를 했다. 숫기가 너무 없는 그녀는 며칠을 이 일로 전전긍긍했다. 나는 참석만 하고 일찍 빠져나오라고 말해줬고, 그날 그녀는 간신히 십일 분을 버텼다.
내가 빈둥댈 때는 그녀가 나를 몰아쳐주었고, 그녀가 과하게능률을 추구하다 곤란에 처할 때, 가령 주차장에 급하게 진입하다 보트캐리어가 차에서 떨어질 뻔한 날에는 내가 그녀를 위로했다. 우리는 각자의 강점에 따라 영역을 나눴다. 나는 컴퓨터와 수의학 관련 일을 잘했고, 캐럴라인은 집수리와체력을 요하는 일을 담당했다. 정신과 영혼에 관한 일이라면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알았다. 그래도 수용의폭이나 외교술은 캐럴라인이 나보다 나았다. - P143

그러나 초코루아에서 캐럴라인이 그 불꽃을 보여준 첫해여름으로부터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세상에 나쁜 로잉이란 없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로잉이 열어준 세상은하루하루가 다르고 강렬해서 우리는 2월이든 8월이든 기대에 부풀어 달력에 열성적으로 로잉 일정을 표시했다. 내가 처음으로 강에서 온전히 한 시즌을 보낼 때부터 캐럴라인은 오래전 자신이 겪은 과정을 기분좋게 떠올리며 내 넘치는 의욕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수면상태가 완벽한-거울처럼 잔잔한-날은 만사를 제쳐두고(그것이 치과 예약이든 저녁 약속이든) 보트를 타러 갔다. 나는 주로 이른 저녁, 야생동물도 쉬러가고 현란하게 빛나던 수평선이 모네의 황혼으로 바뀌는 시간에 강에 나갔다가 황금색 빛을 받으며 다시 선착장으로 노를 저었고, 그때쯤 다른 보트들은 반딧불이처럼 물위를 오가곤 했다. - P152

이 사고가 남긴 껄끄러운 교훈과는 별개로, 그날 오후 내가캐럴라인에게 들려주었던 사고의 한순간은 몸의 상처가 모두 아물고 차를 바꾼 뒤로도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몸이공중에 떠올랐을 때 뇌리를 스치던 생각. 위기의 복판에서 세상은 맹렬한 총천연색을 띤다. 허공에 들린 몸이 그리던 선명한 포물선, 평소보다 50센티미터 정도 높아졌던 내 시선이십 년이 지나도록 기억에 생생하다. 그렇지만 가장 잊히지 않는 것은 허공을 가르며 느꼈던 분노, 내 영역을 침범당했다는감각이었다. 어떻게 나한테 감히 몸과 마음이 동시에 분노에휩싸였다. 나는 지금 한창 생의 한가운데 있는데, 이 스토리라인을 위해 몇 년을 공들여왔기에 나는 노여움이 북받쳤다. 그리고 아직 이대로 끝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 P167

"환상을 한 겹 벗기면 악몽이 보인다." 이것은 캐럴라인이좋아했던 문구로, 본래 우리 둘과 가까운 한 친구가 꿈꾸던삶을 좇아 타국에 갔다가 결국 불행의 덫에 빠지게 된 이야기를 하다 나온 말이다. 그뒤로 이 말은 다른 어딘가에서 더나은 직업이나 파트너를 갖고, 혹은 더 나은 내면으로 살아가는, 겉보기에 완벽한 삶을 총칭하는 우리만의 암호가 되었다.
"우리가 왜 여기 사는 거지?" 내가 종종 (겨울철이나 길이 막히는 날, 혹은 운수 나쁜 날) 이렇게 푸념하면 캐럴라인은 "프레시폰드와 스타벅스가 있어서"라고 지체 없이 응수하곤 했다. - P170

아직 스타벅스가 미국의 거리 모퉁이마다 들어서기 전이긴했지만, 캐럴라인의 대답은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것은 길모퉁이의 까칠한 시인일 수도, 해질 무렵 강일 수도, 우리 이름을 아는 정육코너 점원일 수도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사는 것은 서로가 있어서였고, 반경 30킬로미터 거리에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서였다.
사람들이 현재 사는 곳을 떠나지 않는 타당한 이유가 우리에게도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은 밀밭이나 바다의 풍경이필요하고, 폭우의 내음이나 도시의 소리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혹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른 곳으로 - P170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거의 포기상태였던 5월, 꽃들이 흐드러진 어느 날에 매물공지를 보았다. 목련이 줄지어 늘어선 케임브리지 어느 거리의 비늘판으로 외벽을 두른 허술한1920 년대 주택 공간 절반을 판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집 크기도 작은데다 주인이 벽을 겨자색으로 칠해놓고 식당에는 빨간 벨벳커튼을 달아놓았다. 하지만 이런 건하나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집안에 들어가보기도 전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긴 진입로를 내려다보는 우뚝솟은 단풍나무들, 그리고 그 안쪽으로 층층나무와 라일락과키가 무려 20 미터에 가까운 개버즘단풍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아늑한 도심 속 정원이었다. 뉴잉글랜드에서 이십 년을 살았어도 여전히 텍사스 사람인 나는 땅 위에 있는 것보다 땅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나는 나무들을 택하기로 했다. - P175

11월 초 캐럴라인의 생일날, 나는 새집으로 이사했다. 아침에 그녀에게 축하 꽃다발을 보내고 클레먼타인도 맡겨놓은뒤 나는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층계를 오르내리며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평상시라면 숨막히도록 우수에 젖었을 뉴잉글랜드의 가을이 역사의 비극으로 뒤집히고 빛을 잃었다.
이웃의 누군가는 자살을 했다. 세계무역센터에서 약혼자를잃은 여성이었다. 친구의 친구는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다고했다. 모두가 열 손가락으로 다 꼽지 못할 만큼 이런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사연이 재앙의 동심원 안에 있었고,
조목조목 애달픈 조각들이 트라우마와상실 사이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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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루아에서 보낸 어느 여름, 나의 클레먼타인과 캐럴라인의 루실, 두 마리 개가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뒷모습이 찍힌 사진이 한 장 있다. 나란히 놓인 두 꼬리, 꼼짝 않고제자리를 지키는 두 견공의 모습에서 경계심과 충직함을 포착한 전형적인 반려견 사진이다. 그런데 여러 해가 지나도록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있다. 창 너머 멀리 들판으로 이어진사진 속 중경의 아주 작은 형체 비탈길을 걸어내려가는 나와 캐럴라인의 실루엣이다. 아마 호수에 가는 길이었을 것이고, 우리 일과에 적응한 개들은 저희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 이 장면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를 집어든 사람은 사진작가인 캐럴라인의 남자친구 모렐리였다. - P24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에 사진 속에서 이 이미지를 발견한 나는 줄곧 이것이 어떤 그림에 감춰진 단서 - 사라진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비밀의 정원- 처럼 느껴졌다. 초코루아에 얽힌 모든 것에는 소박하고 서정적인 빛이 감돌았다.
나는 캐럴라인이 팔씨름에서 톰을 이길 뻔했던 그날 밤을, 쥐를 보고 식탁 위로 뛰어올라간 내 모습에 캐럴라인이 폭소를터뜨리던 순간을, 우리가 제정한(그리고 항상 캐럴라인이 수상한) 최우수 캠퍼 상을 기억한다. 느린 카약을 탄 캐럴라인 - P24

을 놔두고 혼자 안개 속으로 노를 저어 가버린 내게 그녀가화를 내던 그날 일에 대해 나는 지금도 모기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기억이란 대부분 마지막 장면의 색조로 물들듯, 나의기억에는 슬픔의 물리적인 무게가 따라다닌다. 애타게 보고싶은 마음은 차라리 애도의 단순한 부분임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 P25

지금 그 사진과 액자는 개들 사진과 나란히 내 침실에 걸려있다. 캐럴라인은 2002년 6월 초에 마흔둘의 나이로 세상을떠났다.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칠 주 만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처음 몇 주 동안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보트를, 내게 처음 로잉을 가르쳐준 보트이자 그녀가 오랜 세월애마처럼 아끼던 정든 밴두센호를 나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침상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죽음을앞두고 차차 닥칠 일을 내다보며 어떻게든 헤쳐나가려 안간힘을 쓰는 투병 초기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보트를 받겠다고, 단 로잉의 전통에 따라 뱃머리에 그녀의 이름을 써넣겠다고 대답했다. 배의 이름은 캐럴라인 냅이 될 거라고, 무슨 소리, 라고 대꾸하는 그녀의 눈빛이 내게 처음 노 젓는 법을 가르쳐주던 날과 똑같이 반짝였다. 브루티타라고 해야지. - P27

나무의 색마저 바꿔놓는 이 슬픔의 스펙트럼에 들어서기 전까지, 멋모르고 세월을 보낼 수 있는 우리의 배후에는 필시무모하리만큼 맹목적이고 엇나간 가정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의 삶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 혹시 상실의 순간이 오더라도 길의 중간이 아니라 끄 - P27

트머리쯤일 것이라고, 캐럴라인이 죽었을 때 나는 쉰한살이었고, 인생에서 그 시점쯤이면 전도서의 구절을 외워 읊을 정도로 장례식에도 다닐 만큼 다녔을 나이다. 그런데 캐럴라인의 병을 알게 된 날-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는 있습니다"
라는 의사의 무서운 말을 들은 그날-4월의 화창한 생기가감도는 거리를 걸으며 순진함에 타격을 입은 채 내가 크게혼잣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너한테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지, 안 그래?"
이 말은 곧 견딜 수 없는 상실의 잔인함을 나는 어떻게든비켜갈 줄 알았다는 의미였다. 약물남용, 자살, 나이듦처럼당사자의 의지로 혹은 자연의 순리로 비상구에 불이 들어온 죽음들을 마주한 적은 있었다.  - P28

이런 죽음에는 비극을 야기한 매개 (우울증 약만 먹었어도, 코카인만 가까이하지 않았어도)나 서글픈 수용(잘살다 가셨지)이라는 공통의 화두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기둥-중 누구도 너무 이른 나이에, 살려는 의지가 충만한 채로 갑작스레 죽음을 맞은 사람은 없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검사 결과를 받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주변을 정리하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더구나 캐럴라인이라니, 안 될 말이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생, 수십년 뒤 내가 늙고 쇠약해 음식을 못하게 되면 수프를 끓여다 - P28

주겠다고 몇 년째 농담을 하던 그 사람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우리 둘 사이에는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좀 오묘하기까지 한 분위기가 있어서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를 자매나 연인으로 오해하기도 했고 때로는 친구들이 우리둘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도 했다. 캐럴라인이 죽고 일 년 뒤,
우리가 자주 산책하던 프레시폰드저수지에서 우리 두 사람의 공통의 친구가 "캐럴라인!" 하고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자기 실수를 알아차리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우정의 깊이를보여주는 것으로는 명백한 애착도 있었을 테지만, 겉으로 드러나거나 안에서 숨죽인 우리 둘의 닮은 점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각자 살아온 이야기가 서로 상응하는 경로를 거쳐 차츰 접점을 향해 굽이굽이 나아갔다는 사실은 초반에 우리를 이어준 한 부분이었다. - P29

수년 전 그날 밤 캐럴라인 손에 들려 있던 화이트와인이 그녀에게 마법의 지팡이인 동시에 비수였다는 사실은 나 역시공개된 사정만이 아니라 개인적 연유로도 알고 있었다. 공개된 사정이란 회고록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을 통해서 캐럴라인이 스스로 밝힌 이야기였다. 그때는 회고록이 출간된 해여름이었고, 그사이 그녀는 토크쇼며 언론 기사에 여러 차례등장해 이미 출판계의 이상형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업계 사람들 말마따나 그녀는 "그림이 좋았다". 길게 땋은 금발, 고운음색, 단정한 태도 이면에 깊은 우울이 엿보이는 조심스러움까지, 캐럴라인의 책이 누린 성공이야말로 대부분 작가가 원하는 종류의 성공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경험과 직관에 비추어 내가 보는 관점은 달랐다. 만약 작가들에게 공통된 기질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소극적인 자기중심주의 성향일 것이다. 대중의 관심은 그들이 갈망하는 인정을 받기 위해 감내하는 스포트라이트일 뿐이다. - P37

나는 나대로 혼잡한 기로를 막 빠져나온 참이었다. 사십대초반, 언덕에서 바라보는 시야가 분명하고도 신랄해지는 나이였다. 상상했던 조망이 실제 행로로 실현되는 나이, 어린시절 이후로 그 어느 때보다 더 현재를 사는 시기가 아닐까.
나는 마감할 원고만큼이나 아드레날린과 테스토스테론이 산재한 대도시 신문편집실에서 삼십대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전 서평란 편집자를 그만두고 보스턴 글로브> 서평가라는본업으로 돌아갔다. 이런 이동과 최근의 기술변화 덕분에 재택근무를 하며 개와 시간을 보내는 생활이 가능해졌다. 클레먼타인은 내게 책읽기란 자기가 뼈를 씹는 행위와 같다는 걸금세 파악했다. 하늘이 내 특유의 기질에 꼭 맞춤한 직업을안겨줬다고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 P46

나는 이 애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했다. 그것은 제 목숨을내게 의지하는 존재에 대한 본능적이고 깊은, 어쩌면 모성을닮은 감정이었다. 인간과 동물의 인연을 존중하는 마음이 생긴 것도 당연했다. 항상 아버지 주위로는 개들이 모여들었고, 나도 어릴 때부터 동물들과 함께 자랐으니까. 텍사스에 사는 언니는 에어데일 한 마리와 보더콜리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생물종 사이의 애착이 내게는 생소하지 않았다.  - P65

이 신비롭고 영리한 동물을 나는 다른 무엇의 대신이 아니라 하나의 축복으로 내 인생에 맞아들였다.
내 생활은 더없이 흡족하고 소박하게 변했다. 저녁에 친구들과 회식을 하는 대신 동네 공원의 반려견 모임에 합류해, 개 없는 세상에서 삶의 경로가 교차하지 않았을 사람들과 어리게 됐다. 고질적인 올빼미족인 내가 클레먼타인의 배변시간표를 지키느라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기 시작했고, 책장과 오래된 페르시아러그로 정돈된 공간이었던 아파트는 이게 누르면 소리나는 장난감이며 원숭이인형으로 어수선했다. 계획중이던 해외여행은 보류하고 대신 웰플리트연못 근처에 집을 한 채 빌려 클레멘타인에게 헤엄을 가르쳤다.  - P66

친구가 되기 전 여름, 나는 클레먼타인과 일주일 동안 머물던 케이프코드 트루로의 비에젖은 오두막에서 이미 캐럴라인의 회고록 드링킹』을 읽었다. 낮 동안은 연못에서 수영을 하고 땅거미가 질 때까지 방충망을 친 베란다에서 책을 읽었다. 잠든 클레먼타인 옆에 앉아 바깥의 어스름이 칠흑처럼 깜깜해질 때까지 책을 읽던 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는 자신의 중독을 고백하는 유명인사의 회고록이 잇달아 출간되던 시즌 첫 라운드로, 피트 해밀을 비롯한 몇몇이 『화산 아래서』의 터프가이 버전을 새롭게 발표한 참이었다. 허나 그때까지도 술에 얽힌 이야기는 대부분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나는 그날 밤 트루로에서 캐럴라인의 책을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그것이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 비통하고 정직한 이야기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십이년 전 마지막 남은 잭다니엘 한 병을 개수대에 쏟아버린 사람으로서, 나는 그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도 알았다. - P74

눈앞에 삶이 펼쳐지려는 아슬아슬한 순간, 도약을 할는지추락을 할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마 허세와 불안이 나를 반반씩 차지하고 있었나보다. 오스틴에서 보낸 마지막 두 해동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박사학위 구술시험을 대비해 공부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나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글을 쓰는 삶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글쓰기라는 내면의 안식처의 위력과 위안은 실로 대단해서 그것이 내미는 손에 나 - P84

는 심히 흔들렸다. 당시 나는 충고 3미터에 창문을 유리공예로 장식한 오래된 남부풍 저택에 방을 빌려 지냈고, 밤마다그곳에서 스카치 한 잔과 윈스턴 한 갑을 옆에 두고 타자기앞에 앉았다. 어느 밤인가는 술기운이 돌기 전에 글을 써놓고-무슨 글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흥분이 차오른나머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선 채로 타자기를 계속 두드렸다. 젊은 작가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글을 쏟아내는 또렷한 희열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보건대 나에게그것은 결정적인 순간이자 내 영혼을 팔아넘기는 파우스트적인 순간이었다. 호박색 불빛, 왱왱 돌아가던 타자기, 그리고 열망과 기쁨으로 가득찬 젊은 여성이 그곳에 있었다. 글쓰기는 나의 생명력이었고 위스키는 풀숲에 도사린 뱀이었다.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나는 두 가지를 다 놓지 않았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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