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초기에는 충격적일 만큼 광포하게 감정이 날뛴다. 걷잡을 수 없이 사납고 절망적이다. 슬픔에 이를 수만 있다면 슬픔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애도의 순전한 물질성에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납으로 안감을 댄 외투처럼몸을 내리누르는 둔통을 털어내기까지 몇 개월이 걸릴지 몰랐다. 내가 상실에 대해 뭔가 안다고 생각했던들-캐럴라인이 없는 상태, 두려움이 물러가고 근심이 멈춘 이후의 상태를어떻게 예상했던들-그것이 새로운 불변의 세계를 뜻할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나는 캐럴라인의 항시 부재라는 현실에 살고 있는 것 같았고, 때로는 그 명백한 사실이 내 숨통을 꽉 틀어막는 듯했다. 추도식을 치르고 보름쯤 지났을 무렵, 친구 둘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게 되었다. 간신히 한 끼 분량의 절반쯤 음식을 차리고서야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간소하디간소한 치킨라이스 접시-깜빡 - P224

하고 다른 요리는 더 만들지도 않았다 앞에 너그럽게 앉아준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조리대에 몸을 기댔다. 그녀가 죽었다. 이 말이 떠올랐다. 그 자체로참혹한 말이었다. 나는 죽음을 에둘러 완곡하게 표현하는 문화가 언제나 싫었다. ‘세상을 떠났다‘ ‘유명을 달리했다‘ ‘고이잠들었다‘, 이런 말들은 회피적이고 감상적인 것 같았다. 죽음이라는 개념에서 그 진술의 효력이 탈색되는 것 같았다. 이제는 어째서 이 단어를 희석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죽었다. - P225

었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글을 읽었다. 프로이트의 『애도와 우울증』, W. H. 오든, 에밀리 디킨슨 프로이트보다 시가 더 도움이 되었다. 몹시 힘들게, 그러나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나는 이중 상실이라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기 시작했다. 만신창이가 된 지금 나의 외로움은캐럴라인의 마지막 몇 주 동안 그녀로 인해 겪은 괴로움과는별개의 것이었다.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 죽음에 대해 하는 말은 모두 상투적이다. 나는 적막감으로 미칠 것 같았고, 적막감은 종종 노여움으로 둔갑했다. 난데없이 엄습하는 원초적인 분노에 대해 말해주는 책은 없다. 죽은 사람과의 동거를대신할 그나마 견딜 만한 대안은 이런 분노뿐이다. 죽음은 아무도 청하지 않은 이혼이며, 이것을 견디고 산다는 건 잃고서 - P225

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줄 알았던 존재와 절연할 길을 찾는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우리 우정의 강도를 의심하거나 무시하고 있었다. 마치 사랑을 버리면 고통을 건너뛸 수 있을 것처럼, 이런 시도의 효과는 이십 분을 넘기지 못하거나, 아니면우리 둘을 아는 누군가에게 "그래,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가깝진 않았을 거야"라고 했다가 상대방이 웃음을 터뜨리며 끝이 났다. 내가 좋아하지 않던 캐럴라인의 특징을 일일이 떠올려볼까도 생각했다. 그런 점은 몇 가지 없었다. 혹은 보트를타고 강에 나가 그녀에게 소리내어 말을 걸기도 했다―그런시간이 잦아지고 길어지면서 결국 강의 특정구역을 ‘캐럴라인 예배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루실의 근황을 보고하고, 사람들이 했던 관대하거나 어리석은 언행을전하고, 우리 모두가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 P226

어느 날은 싸늘한 거실에 앉아 날뛰는 아픔에 몸을 내맡겼다. 오직 이곳에서만 내 마음이 거울에 정확히 비치는 느낌이었다. 나의 다른 자리들-내 집, 친구들과의 관계, 클레먼타인과 함께하거나 보트를 타거나 수영을 하는 나날은 내슬픔의 굴절된 형상을 담고 있었다. 그런 자리들은 모두 나를품어주고, 우리의 이야기를 되비춰주었으며 잠깐씩 잊게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의 이야기 자체였다. 쾌적하다고 할 수 없는 온도와 박물관 같은 정적이 흐르는 여기가캐럴라인이 있는, 그녀가 떠난 자리였다. 이 장소는 하느님을팔아버린 나의 불신앙과 나의 모든 변명을 뚫고 들어왔다. 그런 까닭에 나는 여기에 가야만 하는 동시에 가기 싫었다. - P232

캐럴라인의 죽음 이후 처음 한 해 동안은 평소와 같은 일상, 이제 두툼한 침묵에 싸인 일상을 보내는 것 외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산책하고 책을 읽고 빛의 변화를지켜보는 일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편지와 카드를 읽고 또 되풀이해 읽으며 우리가 함께있을 적의 모습을 기억에 담았다. 평소 캐럴라인과 함께 보내던 휴일이 되면 친구앤드리아에게 이끌려 모임에 나갔다. 로잉도 했다 - 그야말로 손바닥이 가죽처럼 뻣뻣해지고 심장이 느끼는 피로감으로 온몸이 욱신거릴 때까지 노를 저었다.
저녁 어스름 속에서 보트하우스로 돌아오면 보트를 물 밖으로 꺼내 열심히 걸은 말에게 하듯 닦고 말려주었다. 글을 쓰기는 했지만 몇 달은 글쓰기가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흙에서 생명이 나고 번식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차가운 순수생물학의 승리를 인간의 의식이나 계획으로 넘어서 - P239

는 게 가능한지 남몰래 고민할 때가 많았다. 주로는 부인할수 없는 그녀의 부재를 견디기 힘들었고, 기억 속에 남는 것이 곧 진정한 의미의 영생이라는 시시한 관념도 참을 수 없었다. 죽은 이들은 꼼짝도 않는데, 그들을 지나쳐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산 자들의 의연함 혹은 착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궁리하며 보낸 시간도 허다했다. 처음에는 희망을 품는것이 상실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희망이 없다면우리는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러 해 전 아직 젖먹이였던 첫아이를 잃은 친구가 있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얼마 되지않아 슬퍼하던 그녀가 들은 뼈아픈 위로의 말들 가운데, 죽은 사람에게 느끼는 강렬한 의리를 이해하는 어느 남성의 한마디가 있었다고 한다. "진짜 지옥은," 그가 친구에게 말했다.
"이것을 결국 극복하고 산다는 사실입니다." 불가사리처럼, 제 살이 잘려나가도 심장은 죽지 않는다. - P240

클레멘타인은 엉덩이와 배를 여러 곳 물리고 등은 길고 깊숙이 찢어져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아마 촘촘하게 몸을 덮은 이중 털 덕분에 목숨을 구했을 것이다. 상처의 봉합이 모두 끝나고 마취가 풀리기 시작할 때, 나는 클레멘타인이 깨자마자 내냄새를맡을 수 있도록 수술대옆에 웅크려 앉았다. 치료중에 수의사를 보조하며 클레먼타인을 붙들고 있어준 매기가 수술대 건너에서 내게 미소를 보냈다. "그래도요," 그녀가 말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잘 버티시네요."
나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당연하죠." 내가 말했다. "이녀석이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 P251

우리가 공격받은 다음날 동물관리과에서 핏불테리어들을데려가 격리시켰다. 수개월에 걸친 법정출석과 둘 중 한 마리는 안락사를, 다른 한 마리는 영구격리를 하도록 요구하는 시차원의 긴 캠페인이 이어졌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불안과 때때로 엄습하는 그때의 기억, 다소 엉뚱한 걱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험이 지나간 뒤에 서서히 정신을 잠식하는 트라우마의 파편이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이미 내러티브의 순전한 힘을 무기로 이런 잔해에 맞설 태세가 돼 있었다. 숲에서피터에게 전화를 건 순간부터 그날의 사건들은 견딜 만한 진실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게 있어 오래도록 수색과 구조의 신이었던 캐럴라인이야말로 이 이야기를 다시 들려줄 때 빠질 수 없는 산소 같은 존재였다. - P253

"죽은 이들이 우리를 지켜줘." 축구장의 그 스산한 날로부더 한참 시간이 흐르고, 캐럴라인의 영혼이 우리를 집까지인도해주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니지 않은 지도 이미 오래인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며 앤드리아에게 내가 한 말이다. 무슨 뜻인지 나조차도 긴가민가하고 입 밖에 내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의식조차 못했는데,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기도서의 문구처럼 확신에 차 있었다. 죽은 이들이 우리를지켜준다. 이제 나는 이 말을 실감하며 강한 안도감을 얻는다.
캐럴라인의 죽음으로 나혼자 전장에서 버티도록 내몰렸지만, 이제 그녀가 말없는 호위병이 되어 내 안에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이런 애착이 기억 덕분이든 신의 가호이든, 이것은 내가 아는 그 무엇과도 다른 위안을 안겨준다. 그대는 나와 함께 있다. "전부 앗아가잖아!" 그날 밤 절망에 치여 전화기에 대고 루이즈에게 그렇게 소리쳤었다. 지나고 보니 전부다 앗아가버리는 건 아니다. - P255

그후로 십 년 동안 클레먼타인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감정이 확장되고 즐거웠던 시절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가장 슬펐던 순간의 목격자였다. 내게는 다시없을 절친한 친구와 함께 나를 숲으로 이끈 것도 클레먼타인이었고, 캐럴라인이 죽어갈 때 매일 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기다려준것도 클레먼타인이었다. 연로한 부모님을 보살피러 텍사스에 다녀올 때마다 그 여정의 끝에는 클레멘타인이라는 보초가 서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텍사스 태양 아래 두 분을 나란히 묻어드리고서 케임브리지로 돌아왔을 때, 클레먼타인은 현관에 들어서는 내 코끝을 가볍게 다독이듯 깨물고 내게 몸을 기댔다. 녀석은 그후 며칠간 좀처럼 내 곁을 비우지 않았다. - P262

옛날 나바호족 사람들은 러그를 짤 때 어울리지 않는 실을한 가닥씩 넣고 그 도드라지는 색이 바깥 테두리로 이어지게했다. 이 의도된 결함은 러그 안에 갇힌 에너지를 풀어주고또다른 창조로 이어지도록 길을 낸다는 뜻에서 영혼의 줄이라 불렸으며, 이 줄의 유무로 진품을 가릴 수 있다.
인생에서 굳게 품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에는 모두 이런 영혼의 줄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희망이라 부르든 내일이라 부르든, 내러티브의 뒷이야기라고 부르는 상관없다. 다만 이것없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선명한 불협화음 없이는 우리의 의식과 함께 모든 것이 안으로 무너져 파열될것이다. 우주가 역설하는바, 모든 고정된 것은 유한하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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