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루아에서 보낸 어느 여름, 나의 클레먼타인과 캐럴라인의 루실, 두 마리 개가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뒷모습이 찍힌 사진이 한 장 있다. 나란히 놓인 두 꼬리, 꼼짝 않고제자리를 지키는 두 견공의 모습에서 경계심과 충직함을 포착한 전형적인 반려견 사진이다. 그런데 여러 해가 지나도록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있다. 창 너머 멀리 들판으로 이어진사진 속 중경의 아주 작은 형체 비탈길을 걸어내려가는 나와 캐럴라인의 실루엣이다. 아마 호수에 가는 길이었을 것이고, 우리 일과에 적응한 개들은 저희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 이 장면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를 집어든 사람은 사진작가인 캐럴라인의 남자친구 모렐리였다. - P24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에 사진 속에서 이 이미지를 발견한 나는 줄곧 이것이 어떤 그림에 감춰진 단서 - 사라진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비밀의 정원- 처럼 느껴졌다. 초코루아에 얽힌 모든 것에는 소박하고 서정적인 빛이 감돌았다.
나는 캐럴라인이 팔씨름에서 톰을 이길 뻔했던 그날 밤을, 쥐를 보고 식탁 위로 뛰어올라간 내 모습에 캐럴라인이 폭소를터뜨리던 순간을, 우리가 제정한(그리고 항상 캐럴라인이 수상한) 최우수 캠퍼 상을 기억한다. 느린 카약을 탄 캐럴라인 - P24

을 놔두고 혼자 안개 속으로 노를 저어 가버린 내게 그녀가화를 내던 그날 일에 대해 나는 지금도 모기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기억이란 대부분 마지막 장면의 색조로 물들듯, 나의기억에는 슬픔의 물리적인 무게가 따라다닌다. 애타게 보고싶은 마음은 차라리 애도의 단순한 부분임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 P25

지금 그 사진과 액자는 개들 사진과 나란히 내 침실에 걸려있다. 캐럴라인은 2002년 6월 초에 마흔둘의 나이로 세상을떠났다.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칠 주 만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처음 몇 주 동안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보트를, 내게 처음 로잉을 가르쳐준 보트이자 그녀가 오랜 세월애마처럼 아끼던 정든 밴두센호를 나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침상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죽음을앞두고 차차 닥칠 일을 내다보며 어떻게든 헤쳐나가려 안간힘을 쓰는 투병 초기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보트를 받겠다고, 단 로잉의 전통에 따라 뱃머리에 그녀의 이름을 써넣겠다고 대답했다. 배의 이름은 캐럴라인 냅이 될 거라고, 무슨 소리, 라고 대꾸하는 그녀의 눈빛이 내게 처음 노 젓는 법을 가르쳐주던 날과 똑같이 반짝였다. 브루티타라고 해야지. - P27

나무의 색마저 바꿔놓는 이 슬픔의 스펙트럼에 들어서기 전까지, 멋모르고 세월을 보낼 수 있는 우리의 배후에는 필시무모하리만큼 맹목적이고 엇나간 가정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의 삶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 혹시 상실의 순간이 오더라도 길의 중간이 아니라 끄 - P27

트머리쯤일 것이라고, 캐럴라인이 죽었을 때 나는 쉰한살이었고, 인생에서 그 시점쯤이면 전도서의 구절을 외워 읊을 정도로 장례식에도 다닐 만큼 다녔을 나이다. 그런데 캐럴라인의 병을 알게 된 날-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는 있습니다"
라는 의사의 무서운 말을 들은 그날-4월의 화창한 생기가감도는 거리를 걸으며 순진함에 타격을 입은 채 내가 크게혼잣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너한테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지, 안 그래?"
이 말은 곧 견딜 수 없는 상실의 잔인함을 나는 어떻게든비켜갈 줄 알았다는 의미였다. 약물남용, 자살, 나이듦처럼당사자의 의지로 혹은 자연의 순리로 비상구에 불이 들어온 죽음들을 마주한 적은 있었다.  - P28

이런 죽음에는 비극을 야기한 매개 (우울증 약만 먹었어도, 코카인만 가까이하지 않았어도)나 서글픈 수용(잘살다 가셨지)이라는 공통의 화두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기둥-중 누구도 너무 이른 나이에, 살려는 의지가 충만한 채로 갑작스레 죽음을 맞은 사람은 없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검사 결과를 받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주변을 정리하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더구나 캐럴라인이라니, 안 될 말이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생, 수십년 뒤 내가 늙고 쇠약해 음식을 못하게 되면 수프를 끓여다 - P28

주겠다고 몇 년째 농담을 하던 그 사람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우리 둘 사이에는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좀 오묘하기까지 한 분위기가 있어서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를 자매나 연인으로 오해하기도 했고 때로는 친구들이 우리둘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도 했다. 캐럴라인이 죽고 일 년 뒤,
우리가 자주 산책하던 프레시폰드저수지에서 우리 두 사람의 공통의 친구가 "캐럴라인!" 하고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자기 실수를 알아차리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우정의 깊이를보여주는 것으로는 명백한 애착도 있었을 테지만, 겉으로 드러나거나 안에서 숨죽인 우리 둘의 닮은 점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각자 살아온 이야기가 서로 상응하는 경로를 거쳐 차츰 접점을 향해 굽이굽이 나아갔다는 사실은 초반에 우리를 이어준 한 부분이었다. - P29

수년 전 그날 밤 캐럴라인 손에 들려 있던 화이트와인이 그녀에게 마법의 지팡이인 동시에 비수였다는 사실은 나 역시공개된 사정만이 아니라 개인적 연유로도 알고 있었다. 공개된 사정이란 회고록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을 통해서 캐럴라인이 스스로 밝힌 이야기였다. 그때는 회고록이 출간된 해여름이었고, 그사이 그녀는 토크쇼며 언론 기사에 여러 차례등장해 이미 출판계의 이상형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업계 사람들 말마따나 그녀는 "그림이 좋았다". 길게 땋은 금발, 고운음색, 단정한 태도 이면에 깊은 우울이 엿보이는 조심스러움까지, 캐럴라인의 책이 누린 성공이야말로 대부분 작가가 원하는 종류의 성공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경험과 직관에 비추어 내가 보는 관점은 달랐다. 만약 작가들에게 공통된 기질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소극적인 자기중심주의 성향일 것이다. 대중의 관심은 그들이 갈망하는 인정을 받기 위해 감내하는 스포트라이트일 뿐이다. - P37

나는 나대로 혼잡한 기로를 막 빠져나온 참이었다. 사십대초반, 언덕에서 바라보는 시야가 분명하고도 신랄해지는 나이였다. 상상했던 조망이 실제 행로로 실현되는 나이, 어린시절 이후로 그 어느 때보다 더 현재를 사는 시기가 아닐까.
나는 마감할 원고만큼이나 아드레날린과 테스토스테론이 산재한 대도시 신문편집실에서 삼십대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전 서평란 편집자를 그만두고 보스턴 글로브> 서평가라는본업으로 돌아갔다. 이런 이동과 최근의 기술변화 덕분에 재택근무를 하며 개와 시간을 보내는 생활이 가능해졌다. 클레먼타인은 내게 책읽기란 자기가 뼈를 씹는 행위와 같다는 걸금세 파악했다. 하늘이 내 특유의 기질에 꼭 맞춤한 직업을안겨줬다고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 P46

나는 이 애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했다. 그것은 제 목숨을내게 의지하는 존재에 대한 본능적이고 깊은, 어쩌면 모성을닮은 감정이었다. 인간과 동물의 인연을 존중하는 마음이 생긴 것도 당연했다. 항상 아버지 주위로는 개들이 모여들었고, 나도 어릴 때부터 동물들과 함께 자랐으니까. 텍사스에 사는 언니는 에어데일 한 마리와 보더콜리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생물종 사이의 애착이 내게는 생소하지 않았다.  - P65

이 신비롭고 영리한 동물을 나는 다른 무엇의 대신이 아니라 하나의 축복으로 내 인생에 맞아들였다.
내 생활은 더없이 흡족하고 소박하게 변했다. 저녁에 친구들과 회식을 하는 대신 동네 공원의 반려견 모임에 합류해, 개 없는 세상에서 삶의 경로가 교차하지 않았을 사람들과 어리게 됐다. 고질적인 올빼미족인 내가 클레먼타인의 배변시간표를 지키느라 새벽 여섯시에 일어나기 시작했고, 책장과 오래된 페르시아러그로 정돈된 공간이었던 아파트는 이게 누르면 소리나는 장난감이며 원숭이인형으로 어수선했다. 계획중이던 해외여행은 보류하고 대신 웰플리트연못 근처에 집을 한 채 빌려 클레멘타인에게 헤엄을 가르쳤다.  - P66

친구가 되기 전 여름, 나는 클레먼타인과 일주일 동안 머물던 케이프코드 트루로의 비에젖은 오두막에서 이미 캐럴라인의 회고록 드링킹』을 읽었다. 낮 동안은 연못에서 수영을 하고 땅거미가 질 때까지 방충망을 친 베란다에서 책을 읽었다. 잠든 클레먼타인 옆에 앉아 바깥의 어스름이 칠흑처럼 깜깜해질 때까지 책을 읽던 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는 자신의 중독을 고백하는 유명인사의 회고록이 잇달아 출간되던 시즌 첫 라운드로, 피트 해밀을 비롯한 몇몇이 『화산 아래서』의 터프가이 버전을 새롭게 발표한 참이었다. 허나 그때까지도 술에 얽힌 이야기는 대부분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나는 그날 밤 트루로에서 캐럴라인의 책을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그것이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 비통하고 정직한 이야기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십이년 전 마지막 남은 잭다니엘 한 병을 개수대에 쏟아버린 사람으로서, 나는 그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도 알았다. - P74

눈앞에 삶이 펼쳐지려는 아슬아슬한 순간, 도약을 할는지추락을 할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마 허세와 불안이 나를 반반씩 차지하고 있었나보다. 오스틴에서 보낸 마지막 두 해동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박사학위 구술시험을 대비해 공부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나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글을 쓰는 삶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글쓰기라는 내면의 안식처의 위력과 위안은 실로 대단해서 그것이 내미는 손에 나 - P84

는 심히 흔들렸다. 당시 나는 충고 3미터에 창문을 유리공예로 장식한 오래된 남부풍 저택에 방을 빌려 지냈고, 밤마다그곳에서 스카치 한 잔과 윈스턴 한 갑을 옆에 두고 타자기앞에 앉았다. 어느 밤인가는 술기운이 돌기 전에 글을 써놓고-무슨 글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흥분이 차오른나머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선 채로 타자기를 계속 두드렸다. 젊은 작가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글을 쏟아내는 또렷한 희열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보건대 나에게그것은 결정적인 순간이자 내 영혼을 팔아넘기는 파우스트적인 순간이었다. 호박색 불빛, 왱왱 돌아가던 타자기, 그리고 열망과 기쁨으로 가득찬 젊은 여성이 그곳에 있었다. 글쓰기는 나의 생명력이었고 위스키는 풀숲에 도사린 뱀이었다.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나는 두 가지를 다 놓지 않았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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