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계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찾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대신 일상의 사소한 기적들,
어둠 속에서 뜻하지 않게 켜지는 성냥불처럼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다.
그때도 그런 순간이었다.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중

책 집필을 계획하는 순간, 영감을 주는 뮤즈들이 비웃는다고했던가. 이 모든 일은 2016년 미국 대선 이전에 일어났다. 한 해전 여름 도널드 트럼프가 출마를 선언했을 때 나는 너무 어이가없어 탄식했고, 그가 열흘 안에 포기한다는 데 10달러를 걸었다.
대선 이후 2년간 여성으로 존재하며 겪는 일상의 시련은, 이면의 상처에서부터 시작해 분노와 카타르시스의 불협화음에까지이르게 되었다.
나는 도의적인 용기가 결국엔 부당함을 이길 거라 믿어야 하지만, 엄청나게 끔찍한 사건들이 이미 일어났고 임기 중 얼마나 더많은 게 황폐해질지 몰라 두렵다.
그래도 지난 몇 년간은 여성들이 표출한 분노에 탄력이 붙어희망을 보기도 했다. 과거의 교훈을 잊지 않았다는,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싸워왔는지 기억하고 있다는 희망 말이다. - P22

우리는 하늘의 존재를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지독히도 새파란 하늘, 질릴 만큼 흔하디흔한 하지만 누구도 모방하지 못할 그푸른빛을 말이다. 9·11 사건 이후로는 새파란 하늘을 보면 비극이떠오른다.
강 위로 기다랗게 늘어선 다리, 비행선 혹은 석유시추선으로시선을 던져 보아도 매일 새벽만 되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푸른빛을 흩어 내는 하늘이 버티고 서서 배경이 되어 주고 있다. 하늘의 말이 들리는 듯하다.
나는 항상 여기 있었지. 내 아래서 뭐든 재밌는 건 다해봐.‘
세상은 이제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타일러에겐 말하지 않았다. 40만 킬로미터를 넘어 무한대의 길이를 가늠할 줄아는 다섯 살 소녀라면, 하늘을 구해 내는 상상력과 죽을 만큼 노력해 볼 용기를 지니고 있다. - P24

그러니까 이 책은 여성들에게 바치고 싶다.
먼저 이네스 가르시아(Inez Garcia)에게 바친다. 1974년, 강간을 당한 그녀는 집으로 가서 22구경 소총을 가지고 나왔고 강간범을 찾 - P24

아가 쏴 죽였다. 그녀는 2급살인 혐의로 주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2년 후 평결이 뒤집히며 혐의를 벗었다.
레시 테일러(Recy Taylor)에게도 바친다. 소작인이었던 그녀는 여섯 명의 백인 남성에게 윤간을 당한 후 침묵하지 않았고, 로자 과크스(Rosa Parks)가 이 사건을 파헤쳤다. 로자 파크스는 수년 뒤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기사의 요구를 거절했다.
데비 샤프(Daehehic Sharpe)에게도 바친다. 텍사스 출신인 내 오랜 전구 데비는 스토커의 손에 살인을 당했다. - P25

버지니아 울프가 상상했던 셰익스피어의 누이에게도 바친다.
소설 <시스터 캐리 (Sister Carrie)》의 주인공에게도 바친다. 난잡한계집이자 인기도 없고 마약쟁이였던 캐리는, 입센의 소설 《인형의 집》에서 집을 뛰쳐나간 노라가 닫고 나간 문의 근처에도 가 보지 못했다.
전기충격 치료를 받다 돌아가신 나의 이모와 고모에게도 바친다.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으로 죽어 가는 여성들을 치료할 방법이전기충격 말고는 달리 없었다고 한다.

물론 이 책은 소년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좋은 남자로 자라 - P25

가는 법을 배우는 선한 아들들에게 바친다.
우리를 뒤이어 이 땅에서 삶을 꾸려 갈 모든 이에게도 바친다.
전쟁에 짓밟힌 이 땅 위에서 살아 낼 다음 세대 모두에게 말이다. - P26

그리고 나는 내면 깊이 묻혀 있던 규칙들을 불러냈다. 일부러모른 척하는 법, 어두운 길에서 빨리 지나가는 법, 혼자 있을 때주차장에서 빠져나가는 법, 눈 맞추는 법, 고함치기와 회유하기, 큰 소리로 말하기, 도망치기, 손가락 사이에 열쇠를 끼우고 주먹쥐기, 휘파람 불기, 유도 배우기.
이 모든 건 여자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존 가이드였다.
그 충격적인 폭로 사건이 터진 후 선거가 열리기까지, 나는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쉽게 열이 받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진정하려고 수영을 더 열심히 했다. 말이 빨라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개인적인 일이든 사회적 사건이든, 재앙이 일어났을 때마다 나의 반응이 이렇진 않았다. - P45

9월, 나는 도망치듯 사우스 쇼어(South Shore)에 가서 해변을 걸으며 산책 나온 개들과 파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날 저녁, 입고 간 옷은 차 안에 벗어 둔 채 티셔츠만 걸치고 1.5킬로미터 정도를 걸어 인적 드문 해변에 도착했다. 나는 높다란 바위 위에 티셔츠를벗어 놓은 뒤 속옷 차림으로 수영을 하러 들어갔다.
신성한 순간, 눈을 감은 채 본능이 이끄는 대로 파도에 몸을 맡기자, 파도로 뛰어들어라, 흐름을 거스르려 애쓰지 말고 해변과나란히 헤엄치다 지치면 등을 돌린 채 물 위에 머무르면 된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삶은 언제나 당신보다 당신의 두려움보다큰 존재임을 기억하자, 물에 뜬 채로 공기를 가득 머금으면, 폐 속가득 생명력을 채워 넣으면, 당신은 뗏목이 된다. 발을 구를수록몸이 가라앉고, 물은 당신의 적이 된다. - P48

바다와 땅은 단 한 번도 당신의 적인 적이 없었다. 아니,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 자연의 생명력을 빌어 앞으로 나아가는 편이 차라리 낫다. 그럼 당신은 살 수 있다. 심지어 파도 속에서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을 경험하며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주머니 속 돌들은 안 된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여긴 우즈 강 - P48

이 아니지 않는가. 당신의 티셔츠가 바위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
땅 위에서, 진짜 적들이 도사리는 땅 위에서 말이다. 먼저 바다의품에서 힘과 품위를 떠올려 보자.
정말이지 피난처에 잘 머무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 P49

내 눈빛에서 뭔가를 읽은 그의 얼굴이 서늘하게 굳었다. 그는철벽 앞에서 허둥대는 뻐꾸기 같았고, 말을 더듬거리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텍사스 출신답게 힘껏 흔들었다. 그는다른 한 손을 허공에 대고 허우적거렸다. 그가 당황한 듯 물었다.
"포옹해도 될까요?"
나는 미소를 머금고 "아니요, 전 괜찮아요"라고 대답했고, 그걸로 해결됐다. 그는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알아먹고, 기가 죽은 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몸을 돌려 집에 들어오는 길, 엔도르핀이마구마구 솟아나는 게 느껴졌다. 남자들이 그렇지 뭐, 라며 합리화하는 대신 저리 가라고 말하는 기분이 어떤지 알게 되었다.
모든 분노를 수치심과 절망으로 내면화하는 대신, 바깥으로 표출하는 기분, 칼은 휘두르라고 있는 것이지 삼키는 게 아니었다. - P52

그는 잔인하게 냉담한 태도로 수업에서 나갈 걸 권유했다.
그는 미적분이 여성과는 맞지 않다고 했다. 내 점수는 그걸 증명했다. 연말에는 결국 한 명의 여학생만이 수업에 남게 되었다.
나는 수치심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며 이미 나와 버린 뒤였다.
좋다. 그래서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그때 내 계획이 변경된 게 전적으로 그 냉혈한 교수 탓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수학으로 빛을 볼 운명이었다면 그런 교수 정도는 이미 능가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적분 수업을 포기한 덕에 다른 길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그 수업에서, 아직 세상으로 나오기도 전에 미처 다 배우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조금 속상하다. 만일 예전 그 사람이랑 결혼했다면, 하는 후회와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그때 이후 뭘 하든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수학 과목에서 낙제한 것과 일이 잘 안 풀린 게 어떤 상관관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미적분은 그렇게 나를 떠나갔다. - P58

그랬겠지, 당연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겠지. 우리가 그런걸 말하는 일은 정말 드물지 말했더라도 되돌아오는 답변은 이멋겠지. "남자들이 원래 그렇잖아." 그러니 나도, 절대로 누군가에게 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일 때문에 그놈이 진짜 싫다고는말할 수 있었겠지만, 한동안은 그날 밤 일을 잊으려고 애쓰고 나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은 게 전부다. 기억에서 벗어나는 법은 열가지도 넘었고,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
마리화나를 잔뜩 피운다든지, 여성을 아낄 줄 알고 날 웃겨 주는 히피족 남자친구를 만들어 삶의 다음 단계를 그려 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혁명처럼 보이는 곳으로 넘어갈 태세를 갖추고 나니, 그 철없는 녀석을 업신여기는 게 별 것도 아니었다.
나는 엄마가 죄악의 소굴이라 부르는 곳을 향해 갔다. 반체제의 온상인 오스틴으로 말이다. 그렇게 J의 데이트 강간은 내가 도망쳐 나온 마초 문화의 일부로 남게 되었다. 텅 빈 평지와 너저분한 남자들은 내가 떠나 온 과거의 이미지로 고스란히 남았다. - P68

타일러는 타자기 앞에 앉더니, 심각한 고민에 빠진 작가라도 된 듯 손으로 턱을 괴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마음대로 그리고 과감하게 타자를 두드린다. 대부분 알 수 없는 철자등의 조합이지만, 가끔 ‘튤라‘, ‘타일러‘ 같은 단어를 만들어 냈다.
그녀가 "샤일로는 어떻게 써요?"라고 물었고, 나는 그제야 타일러가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어느날은 타일러가 완전한 문장을 완성했다. ‘타일러가 게일과 튤라를 만나러 갑니다.‘ 그러고는 캐리지에서 종이를 뜯어내 내게 건네며 말했다. "이제 절대로 날 잊지 못할 거예요!"
인식과 언어의 도약, 이 모든 과정은 빠르게 일어난다. 언젠가 내가 쓴 책을 발견한 타일러가 뒤표지에 나온 내 사진을 보고는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이 많은 단어를 혼자 다 쓴 거예요?"
그녀는 글을 읽고 쓰는 세계에 놓인 진실을 언뜻 본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언어로 가득한 보물 상자가 존재한다는 진실, 
- P76

검문 요원들은 내게서 진통제를 압수했고 그제야 우리를 보내줬다. 나는 마취제에 취한 탓에 그 순간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있는지 크게 신경 쓰지도 못했을 뿐더러, 이후에도 크게 분노하지않았다. 그 경험은 1970년에 성욕이 왕성했던 젊은 여성들이 무수히 당했던 치욕 중 하나에 불과했다.
우리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오스틴에 도착했고, 나는 열 시간을내리 잤다. 다음 날에는 임신 사실을 확인했던 학생 건강증진센터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 나를 봐 준 담당자는 40대의 차분한 남자 의사였다. 검사를 마친 그가 책상을 둘러 내게 오더니 어깨를토닥거리며 말했다. "누가 했든지 간에, 정말 잘했네요." - P89

검사를 마친 나는, 캠퍼스 바로 옆 19번가에 있는 나이트호크레스토랑으로 걸어가 안락한 가죽 의자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편안함을 느꼈다. 혼자 너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라떼 한잔과 콜라 한 병, 그리고 미식축구 선수라도 배불리 먹을 만큼의치킨 요리를 주문했다.
식사를 마친 나는 거리로 나와 뜨겁게 내리쬐는 텍사스 햇살아래서, 더할 나위 없는 내 자리에 섰다. 그러자 반짝이고도 소중한 내 삶을 향한 감사함에 눈물이 차올랐다. 몇 주 뒤에는 자궁 내 피임장치를 할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 - P89

열아홉, 선의와 평균 이상의 지능을 겸비한 나는 평범하게 권리를 누리며 살았다. 평범하게 살아온 삶의 일부는 이랬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미적분) 교수의 편견을 마주했고 직장 내성희롱을 당했다(애머릴로에서 여름 인턴을 할 때, 상사가 밤을 함께 보내자며 내게 1,000달러를 내밀었다. 내가 거절하자 자르겠다고 위협했다.
사람들이 데이트 강간이라 부르는 것에 ‘이용당했고, 한때 사귀었던 철없는 놈한테 맞았다.
여성들이 (공격적이지 못하고 영민하지 않아 형편없는 법조인이된다는 말도 들어 왔으며,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영계들‘은 온통 ‘남자들이랑 잘 생각뿐‘이라는 말도 들었다. - P90

우리가 여성해방운동의 초기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후 몇 년간 내가 운동에서 만나 연대한 여성들은 타고난 재능을 갖고도 멋대로 사는 이들이었고, 여성은 어떠해야 한다는 정통적 규정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런 깨달음은 내 시야를 넓혀 줬고 매일 매일을 가두 연극을 하는 기분으로 살게 했다.
우리는 뭔가를 고의로 방해하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가 무대를급습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전략적 승리는 내면에서 일어났다.
남성들의 생각, 예상 그리고 요구를 신경 쓰지 않자 변화가 일었다. 현상유지에서 관심을 돌려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너무 순진하고 이상적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순진하고도 이상적인 게 맞지만, 그 시대에 우리는 그래야만 했다. 이후 10년 동안은 우리의 비전이 탄력을 받아 축제의 세계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 P91

당시 오스틴에서 살아남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성지도 위험한 곳으로변모할 수 있었다. 많은 여성이 도약하거나 떠났고, 우리가 도착한 그곳에는 그곳에 닿기까지 지불한 모든 게 상처로 새겨져 있었다. 누구는 엄마가 되었고, 누구는 의학 전문대학원이나 법학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누구는 음악가나 활동가가 되기도 했다.
나에게 도약은 대학원에 진학할 용기를 의미했기에, 타자기와위스키 두어 병을 트렁크에 싣고 동부 해안을 향해 나아갔다. 그로 인한 피해 목록 또한 길었다. 우울과 약물 남용 그리고 불운.
나는 그것이 비극적인 여자 영웅이나 극적인 인물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라고 여기곤 했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건 힘들어도 살아가려는 삶과 관련된 것들일 뿐이다. 수십 년 길을 걷다 보면, 모든 길가에는 깨어진돌들이 널브러져 있기 마련이다. - P92

역사는 일련의 스냅사진이다. 달콤한 추억이든 낡고 찢어진 사진이든,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고 우리를 괴롭히며 전체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준다.
과거의 아쉬운 일을 생각하느라 시간과 마음을 얼마나 낭비하든 진실은 살아 보지 않은 삶을 평가할 수 없다. 대신 우리는 과거를 실패한 꿈이라고 여긴다. 때로 판타지는 꼭 필요한 거짓일뿐이며, 숨 쉴 공간을 마련해 주고 현재를 견디게 해 준다.
어떤 기억들은 암갈색을 띠고 미심쩍은 모습을 하고 있다. 어느 시점에는 카드를 마구 섞은 뒤 카드판을 인생이라 부른다. 우리는 단지 빙 둘러앉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어른이 되어가는 청사진은 들여다보지 않고 심리극의 대본이나 짜는 젊고 아름다운 바보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잘 안다. 여성운동은 어디서도 찾을 수없었던 나 자신을 찾게 해 줬다. 여성운동이 빠진 나의 삶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 P93

이런 대답도 삼간다. "음, 사실, 내가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경향이 있어. 내가 떠난 적도 있고, 그들이 날 떠나기도 했지.
아 그리고 나는 20년 동안 조니 워커 레드랑 결혼했었어. 술과 사랑에 빠지면 방안이 온통 술병으로 가득차게 된단다."
하지만 대답에서 생략된 내용은 정리되지 않았을지언정 모두사실이다. 그러니 내가 타일러에게 ‘아직은 말해 주지 않는 가장중요한 점은, 운이 좋다면 실수들이 지류가 되어 다른 어떤 곳을향해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되돌아보면, 과거의 모든 선택과 유턴과 방랑벽이 나름의 박자와 내면의 논리에 따라 하나의 삶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그게 무엇이든 지나온 이야기에 자신을 결부시킨다. 수용 혹은 부정이라 불리고, 세계 종교들의 중심 토대가 되기도 한다. - P101

나는 커다란 의자와 개들이 있는 집을 원했고, 누구든 들어올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온종일 머무는 사람은 없어야 하는 집을 원했다. 이제 내 나이가 70에 접어들었으니, 지금까지 꽤 긴시간이었다. 엄동설한이 닥쳤을 때나 다쳤을 때, 혹은 브로콜리 사오는 걸 깜빡했을 때나 재밌다는 파티에 못 간다고 핑계를 대야할 때는 참담한 짐으로 느껴진다.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느냐의 문제라기보단 영혼과 정신의 문제다. 그리고 누구든 원하고 꿈꾸고 고통받고 후회하는 능력인의식 자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 P103

한겨울 깜깜한 밤에 개와 산책을 할 때, 나는 창에서 황색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들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살아 내고 있는 곳, 그 안에는 우리가 볼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마도 타일러와 내가 같이 쓰게 될 책은 여름날의 기억과 공원에서의 농구시합, 그리고 장애물달리기나 파이 만들기 같은 추억에 근거해 의식의 안과 밖을 표류하는 판타지가 될 것이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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