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7월 마지막 주와 8월 내내, 그리고 9월 3일간, 난 평생 그 여름을 사랑해왔다. 내 어머니보다 더 진한 당신의 갈색 눈, 달걀형 얼굴, 한쪽 볼에 보조개를 만드는 미소, 안개처럼 부드러운 긴 갈색 머리, 우리가 헤이스 부인의 가게 근처에 서서 도시를, 뾰족탑과 지붕과 강을, 그리고 언제나 킬네이를 떠올리게 했던 먼 초록색 언덕을 내려다보는 내내 난 당신을 훔쳐보았다. - P165

그 여름이 끝나고, 학교의 지루한 수업과 설교 시간에, 소등후 개인적인 시간에도 당신은 나의 비밀이었다. 링과 드 커시에게 당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난 그저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던 사촌이라고만 했다. 그해 가을의 나날들이 얼어붙은 11월로 줄어드는 동안에도 나는 당신을 소중하게 혼자만 간직했다. 부엌 싱크대의 빅 릴리나 블러드 메이저가 바첼러스 워크에서 만난 여자라거나 하는 이야기에 당신은 속해 있지 않았다. 학교생활 자체가 당신으로 하여 달라졌다. "메리앤." 난 속삭였다. "소중하고 귀여운 메리앤." 난 누구에게도 당신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 P166

"내게 약속해, 윌리."
난 약속했다. 바로 그날 밤에 편지를 쓰겠노라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간단하고 명료하게 쓰겠다고. 만약 당신이 날 좋아하지 않는대도 난 이해하고 그 실망을 최대한 견딜 거라고.
"하지만 그녀는 널좋아해, 윌리난 오래전에 너에게 이 말을 해줄 수도 있었어."
우리는 화제를 바꾸었고 조세핀은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염려스러웠으며 연민에 가득차 있어서 난 내 원망이 부끄러웠다. 킬네이의 세 명의 생존자들 가운데 유일한 희생자가 바로 내 어머니였다. 위스키가 상처를 무디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술은 그런 목적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조세핀이 감사해하고 나는 그러지 못했던 노력을 해왔다.  - P183

우리는 집으로 들어갔다. 불이 켜지기 전 난 당신에 대해, 그리고 마침내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편지를 쓸 용기를 냈는지어머니에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당신이 누군지 어머니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어머니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면 아침에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난 계단에서 어머니를 불렀다. 하지만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모든 게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 P184

1983년 도시의 우드컴 사제관에서는 총명한 젊은 성직자가직무를 수행한다. 그에게 세월은 낯설다. 주차장을 만들고 쓰레기를 주워야 하는 우드컴 파크의 가족들에게 세월이 낯설듯이 하지만 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성직자는 복사된 서한을읽느라 바쁘게 지내며 현재를 받아들인다. 그는 두 세대 전 토요일 오후 이 아름다운 사제관에 도착한 전보나, 어째서 그 전보가 5시가 되도록 가정부만 있는 집의 홀 스탠드 위에 동그마니 놓여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퀸턴 부인 사망, 내용의 충격이 수습되었을 때 두 번째 전보가 도싯에서 인도 마술리파탐으로 발송되었다. 에비안타깝게 사망, 조문복 위로 햇살이 일고, 회한과 죄책감이 사제관을 무겁게 짓눌렀다.
1983년 코크주에서는 그 모든 것이 생생히 기억된다. - P187

다. 우리는 보잘것없는 집안이라 우드컴 파크 정원을 산책하라면 허락을 받아야 했다. 로마식 여름 별장과 버드나무들과호수와 위풍당당한 주목 옆을 산책했다. 이곳은 당신의 킬네이와 너무 달랐지만 킬네이 또한 보잘것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도에 없는 무시무시하고 알려지지 않은 어떤 곳처럼 킬네이가 나를 밀어내어도 스위스에서 모은 용돈과 내가 가진 얼마 안 되는 돈이 아일랜드 여행 경비에 보태졌다. 머지않아 나의 추악한 비밀이 아버지를 치욕스럽게 할 것이다. 스스로 평화를 찾지 못하게 된 아버지가 어떻게 신도들에게 하느님의평화를 빌겠는가? 어머니가 기독 어머니 연합 모임에서 들끓을 잔인한 시선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난 윌리와 사랑에 빠졌어요. 그들에게 남긴 쪽지에 이렇게썼다. 그리고 나의 고통뿐 아니라 그들의 고통 또한 견딜 수없어 마음의 문을 닫았다. 나는 ‘우리는 아이를 가졌어요"라고덧붙였다. - P220

두려워 마땅했지만 두렵지 않았다. 울어야 했지만 이미 충분히 울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어떤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이 평온함을 느꼈다. 라니건 씨에게 질문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제관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내가 불명예를 안고 가야만 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감지할 뿐이었다. 또 다른 현실이 변호사 사무실에 무거운 짐처럼 놓여 있었고 난 당신이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우리의 사랑을 파괴하려 애썼다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당신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난 지금 나의 선택을 당신이 비난할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우리 둘이 어디에 있든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여기에 있었다. 모든 것을 변화시킨 일부분의 진실에도 불구하고 난 그 사무실에서 나를 둘러싼 사랑을 느꼈다.
- P262

그는 잠시 멈추더니 내얼굴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당신 사촌은 저도 모르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자금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당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 이제는 명확합니다. 저는 합의를 이행할 권한을 부여받았고, 메리앤, 전 당신이 지금 분명히 곤궁에 처했다고 판단합니다."
라니건 씨는 계속 말했다. 그는 나를 영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마지막 노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얼마 후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쇄도하는 그의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킬네이는 그 어느 때보다 무시무시한 곳이었지만 난 다른 어디도 가고 싶지 않았다. 반쯤 탄 집이 아무리 음울해도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아도 당신이 거기에 속했으므로 내가 있어 - P263

야 할 곳은 그곳이었다. 내 존재의 모든 세부, 내 몸의 모든 혈관, 모든 흔적, 내 모든 친밀한 부분이 눈을 감고 쓰러지고 싶게 만든 그 부드러움으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내 20년의 삶은 매 순간 당신과 연결되어 있었고, 인도의 조부모님이 당신어머니를 그토록 염려해주신 데 대해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그 염려가 우리의 여름과 우리의 사랑을 선물했고 그 사랑은우리에게 우리 아이를 선물했지요. 킬네이에서 난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 당신이 이 세계를 떠도는 동안 난 어떤 가혹한운명에도 살아남을 겁니다. 외로움이 당신을 사로잡았다는 걸난 이해합니다. - P264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읽지 못했어요." 나는 지금까지 그가한 말과 관계없는 내용으로 끼어들어 라니건씨를 놀라게 하며 물었다. "전 그때 스위스에 있었으니까요."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갑자기 중단된 뒤다시 시작되지 않았다. 사제관에서는 그 사건을 신문에서 보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수수께끼 같은 사건에 고개를 갸웃하고 어머니는 이름과 이름을 연결 짓는 데 실패했을 것이다.
"러드킨"이라고 당신은 말했다. 그리고 길모퉁이에서 한 손을감싼 채 담배에 불을 붙이다 다정하게 경례했던 그 남자를 묘사했다. - P264

1979년 6월 22일
킬개리프 신부가 장수를 누리다 오늘 운명을 달리했다. 살인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라는 그의 말은 옳았다.
라니건 씨의 사무실에서 내가 진실을 마주하던 순간, 그 애가 비밀 서랍을 열어본 순간, 그가 방문 앞에 서서 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하던 순간, 군인들의 학살 이후 킬네이가 그랬듯 그 결정적인 순간들 이후 우리는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난도질당한 삶들, 그림자의 피조물들.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운명의 꼭두각시들. 우리는 유령이 되었다.

1982년 8월 6일
오늘 그가 돌아왔다. - P330

연로한 부부는 서로 중얼거리며 일어나 밖으로 나가 가을한낮의 온기 속으로 들어간다.그녀의 작은 체구는 나이가 지긋해지면서 더욱 왜소해졌다. 그는 이탈리아의 노인 병원에서 나날을 보내는 것보다 여기에 있는 게 더 즐겁다고 생각한다. 이마의 검버섯이 그의 트위드정장색깔과 어울린다. 머리카락 없는 두피가 조개껍데기처럼 단단한 느낌이다. 절름발이늙은 게 손잡이에 금을 씌운 지팡이의 도움을 받아 걷기 때문에 스스로 그렇게 부른다. 오른쪽 광대뼈 근처에는 그가 살았던 많은 도시 중 하나인 푼타레나스를 추억하는 닻 모양의 흉터가 있다. 1942년 그곳에서 전차가 그를 받아 넘어뜨렸다. 그날 이후 그는 이 흉터와 함께했다. - P333

이멜다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 동네 사람들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녀에게 데려왔다. 한 여자는 치매에서 벗어났고 한 남자는 백내장이 나았다. 그녀의 행복은 그녀를 신비스럽게 둘러싸는 장막과 같아서 그 근원은 오직 그녀만이 알 뿐이다. 주홍색 응접실 벽난로에서 나무가 타오르는 동안 놋쇠로된 장작 보관상자의 한 남자가 음식을 나르는 여자의 손을 잡기 위해 등 뒤로 팔을 뻗는 것을 오직 이멜다만이 안다. 양파같은 전구는 어슴푸레 빛나고 벽난로를 둘러싼 흰 대리석에 새겨진 잎사귀는 불꽃의 명멸만큼 섬세하다. 중국산 카펫 한가운데에 서서 정원과 응접실의 가구를 동시에 보고, 홍방울새의 날갯짓으로 가득 찬 저녁을 느낄 때 그녀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 P3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움은 제 굴혈로 돌아온다


당신에게 도달하는 그리움은 없다
그리움은 내게로 온다
기름을 만땅으로 넣고 남쪽 바다 수직 절벽까지 가서
흰 갈매기들의 보행 멀리, 구멍뿐인 공중을 팽팽히 당겨보다가도

시월 햇빛 난반사하는 끓는 가마솥, 그 다도해에
무수히 뛰어 들어보다가도,
그리움은 그리움의 칼에 베여 뒹구는 것

우리가 두 마리 어지러운 짐승으로 불탔다 해도
짐승으로 세상을 헤쳐갈 수 없어
한 짐승은 사람이 되어 떠나고,
짐승으로 세상을 헤쳐갈 수 없어
한 짐승은 짐승으로 남았으므로

칼을 녹여 다시 불을 만들 순 없다
제 골대로 역주행하는 공격수처럼 멍청히
뭉그적대는 귀경 차량들 틈에 끼어들 수밖에 없다
다급한 건 생활이어서,
길은 경기도계에서부터 저렇게 밀리는 것이리라

짐승을 사랑할 수 없어
당신이 두 마리 사람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사람을 사랑할 줄 몰라 내가
두 마리 짐승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리움은 제 굴혈로 돌아온다
사 들고 온 비닐봉지를 헤쳐 뭔갈 또 우물거리는 밤
당신에게 나눠 줄 그리움이란 애초에 없었던 거다
혼자 갉아먹기에도 늘 빠듯했던 거다

우리는 사랑이라 부르던 무른 벌레를 눌러 죽였다
나는 살기 위해 평생을 허비할 것이다


시인의 말


우울은, 쓰게 한다.
명랑은 그걸 오래 계속하게 하고.
주름 없어 잘 웃지 않는 명랑은 말한다.
네 모멸의 기쁨, 겸손의 쾌락을 내려놓아라....
다 내려놨어, 나는 거짓말하고.
명랑하고,
아야, 내 신세야..…

2018년 7월
이영광

방심


그는 평생 한 회사를 다녔고,
자식 셋을 길렀고
돈놀이를 했다
바람피우지 않았고
피워도 들키지 않았다
방심하지 않았다
아내 먼저 보내고 이태째
혼자 사는 칠십대다
낮술을 몇 번이나 나누었는데
뭐 하는 분이오, 묻는 늙은이다
치매는 문득 찾아왔고
자식들은 서서히 뜸해졌지만,
한번 오면 안 가는 것이 있다
그는 이제 정말 방심하지 않는다
치매가 심해지고 정신이 돌아온다
입 벌리고 먼 하늘을 보며, 정신이
머리 아프게, 점점 정신 사납게,
돌아온다 그는 방심이 되지
않는다 현관에 나앉아 고개를 꼬고,

새가 떠나면 구름이 다가올 뿐인
먼 하늘에 꽂혀 있다.
꽃 지자 잎 내미는 산벚나무 그늘 밑
후미진 꽃들에 들려 있다
그는 자꾸 정신이 든다
평생의 방심이 무방비로 지워진다
한번 오면 안 가는 것이 있다
저녁엔 퇴근하는 내게 또 담배를 빌리며
어제 왔던 자식들의 안부를 물을 것이다
뭐 하는 분이오? 침을 닦으며,
결코 방심하지 않을 것이다

촛불


나는 나를 백만분의 일로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거대해질 수 있다

분노는 내가 묻는 것이다
슬픔은 내가 먹는 것이다
사랑은 내가 비는 것이다
싸움은 내가 받는 것이다
해방은 내가 없는 것이다

나는 타오른다
나는 일어선다
나는 물결친다
나는 나아간다

나는 모든 죽음을
삼켜버린다

서울역


역사에는 여행이 있고
광장엔 흔히 설교와
노동자 집회가 있다
종교는 정신없이 아프고
노동은 아파서 간신히,
정신을 가누고 있다
기차가 슬슬 똬리를 풀며
기적도 없이 울어대서
여행은 또 떠나야 하지만
종교는 멀리 하늘로,
노동은 땅끝까지 피 흘려
나아가야 한다
소주병 쥐고 앉아 노숙은
모든 떠남들을 지켜봐야 한다

파랗게


갓진 십일월 은행잎들은
죽으면 뭐 하나 하다가도
살면 또 어떡하지? 하며
노랗게 거리를 죽여주고

갓 핀 사월 은행잎들은
살면 뭐 하나 하다가도
죽은들 또 무슨 소용 있나 하며
파랗게, 거리를 살려낸다, 파랗게

진흙 논에 드리운 백일홍 그림자


봉선사 범종 소리는
범종을 버리고
절을 버리고
세상 끝 지평선을 무너뜨리고 있는데

사자후는 멀어라
진흙 논에 드리운 백일홍 그림자,
찬물을 벌겋게 데우는
이 세상 군불

홍조를 띄우고 그대 내 곁에서
갱년기로 웃을 때




분노는 말을 때린다
말은 분노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은 무섭다
말은 눈물을 뿌리며 달린다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닿아야 분노에
맞지 않을 수 있나
분노를 떨어뜨릴 수 있나
질주하는 말은 분노의
헝클어진 발음기호다
말은 분노를 흐느낀다
분노는 말에 매달린다
분노는 말을 더듬거린다

무릎


무릎은 둥글고
다른 살로 기운 듯
누덕누덕하다

서기 전에 기었던 자국
서서 걸은 뒤에도 자꾸
꿇었던 자국

저렇게 아프게 부러지고도
저렇게 태연히 일어나 걷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윌리엄 트레버William Trevor

1928년 아일랜드 코크주 미첼스타운에서 태어났다. 더블린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역사학을 수학하고 1954년 영국으로이주, 1964년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데뷔 이후 횟브레드상(현 코스타상) 3회, 오헨리상 4회, 래넌상, 왕립문학협회상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고, 다섯 번의 부커상 후보 외에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수차례 거론되었다.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7년 대영제국 훈장 사령관 수훈을, 1994년 문학 훈위 칭호를 받았으며, 1999년에는 영국 작가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이라 불리는 데이비드 코언상을 수상했다. 2002년 평생의 업적과 공헌에 대하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았다. 줌파 라히리,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등이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로 손꼽았으며, 아일랜드의 대통령 마이클 히긴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뛰어난 업적을 이뤄낸 우아함을 지닌 작가‘로 표현한바 있다. 2016년 11월 20일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 수백 편의 단편과 18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했고 대표작으로 《비온 뒤》《여름의 끝》《루시 골트 이야기》 《그의 옛 연인》 《밀회》 등이 있다.

우리가 그때 풋사랑이든 뭐든 서로 사랑했던 걸까? 당신은 라스코맥이나 캐슬타운로쉐에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어디도 아닌 여기 로크였을지도. 지난 수많은 세월 난 종종 당신이 가까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으면 일요일 교회에 있는 당신 모습이 보였다. 당신의 파란 드레스, 모자 끈에 달린 조화 장미. 의자 너머로 당신을 흘긋 보았다. 나 자신을어찌할 수 없어서, 데렌지 씨가 팬지 고모에게 눈길이 머무르는 걸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 P35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 이런 불안한 사랑이었다. 심지어팬지 고모를 향한 정중한 구애에도 불구하고 데렌지 씨는 때때로 쓸쓸해 보였다. 아버지가 말하는 걸 들었는데, 데렌지 씨는 사랑꾼은 아니라고 했다. 사랑꾼은 바로 조니 레이시라고. 데렌지 씨는 회계장부와 청구서들, 스위니네하숙집 2층의 고독한 프로테스탄트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는30여 년 동안 팬지 고모를 사랑했다고 한다.
난 킬개리프 신부나 데렌지 씨와 팬지 고모가 불행하길 원치 않는 것 이상으로 팀 패디가 불행하길 바라지 않았다. 모든것이 어떤 식으로든 결국엔 다 괜찮길 바랐다. 오닐의 아픈 관절이나 플린 부인의 과부 형편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 P49

난 무엇보다도 동정을 원하지 않았다. 주홍 응접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팀 패디는 두 번 다시 솔 자루에 기대지않을 테고, 플린 부인도 근사한 정장을 차려입고 일요 미사에가지 못할 것이다. 난 아버지와 함께 다시는 경사진 목초지를올라 자작나무 숲길을 지나서 제분소로 걸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밤에 잠자리에서 난 더 이상 흐느끼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써서 다른 손 손바닥을 쥐어뜯지 않고도아버지와 여동생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내가 그토록많이 들었던 천국, 이제 궁금해할 더 큰 이유가 생겼음에도 여전히 어렴풋한 땅으로 남은 천국에 있는 제럴딘과 데르드러를상상할 수 있었다. 플린 부인과 팀 패디와 오닐도 그곳에 있다.
고 여겼다. 물론 나의 아버지도. - P78

그 시절 아일랜드에 평화가 머뭇머뭇 찾아왔다. 독립전쟁에이어진 내전은 결국 끝이 났다. 마이클 콜린스는 내전 중 조약을 반대하는 반란군 매복조에 의해 죽었다. 영국과의 조약으로 스물여섯 개 아일랜드 카운티가 자치지역으로 인정받을 거라는 <코크 이그재미너>의 기사를 조세핀이 읽어주었다. 빨간우편함이 녹색으로 칠해졌고, 제국주의 인물의 동상들이 철거되었고, 아일랜드어가 되살아났다. 이런 종류의 문제에 흥미를 잃어버린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성장할 수 있는 위대한 시대야." 내가 어느 날 오후 머천트방파제를 서성이고 있을 때 한 노인이 장담했다. "내가 네 시대를 살았음 좋았을 텐데." 그러나 낯선 거리와 상점이야말로국가의 자유나 성장이 보장된 미래보다 내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도시의 날씨 또한 중요했다. 날씨는 전과 같지 않았다. - P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많은 사람들은 ‘일반적인‘ 성학대와 성폭력, 그리고 성매매 내에서 일어나는 성학대와 성폭력 사이의 유사점을비교하기 조심스러워한다. 조롱받을까 두려워서 생긴 신중함이다. 나는 조롱받을까 두려워 물러설 형편이 아닌데, 조통을 피하려고 물러서면 진실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학대의 기회를 스스로 구해 찾은 사람은결코 학대 피해자가 아니지만 우리 여성들은 지속적으로학대당한 자의 언어로 서로의 경험을 연관 지었다. 우리 몸위에 부과된 성행위를 얘기함에 있어 우리는 ‘역겹다‘ ‘끔찍하다‘ ‘구역질 난다‘ ‘혐오스럽다‘ ‘메스껍다‘ 라는 표현을썼다. 특히 학대적인 성구매자들을 언급할 때 우리는 ‘개자식‘ ‘쓰레기같은 인간‘ ‘돼지 같은 자식‘ ‘추잡한 동물‘ 같은말을 사용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여성들로부터 이런 말들을 들었지만 묘사하는 이 모든 용어들 중에 ‘학대‘라는 단어는 거의 듣지 못했었고 그 이유를 안다. 그 말이 우리가경험하는 학대를 실제로 더 악화시키는 이차적인 역동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직업‘에서 겪은 경험을 학대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 이것이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다.
- P174

성매매 여성이 실제로 하는 일이란 자신의 몸이 성적으로 확대되도록 돈을 받고 허락하는 것이다. 성학대와 관련된 모든 부정적인 느낌들을 겪지만, 본인이 수용했기에 사실상 스스로에게 재갈을 물리고야 말았다. 말 그대로 표현할 권리를 팔았다. 이는 성매매의 또 다른 쌍둥이이고, 이두 번째 요소는 적어도 첫 번째 만큼이나 해롭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학대를 숨기고 내면화해야 하는 상황 또한 학대이다. 강요된 침묵은 학대적이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잠깐 섹스를 빼고 상상해보자. 만약에 채찍질로 고문하면서피해자를 조용하게 하려고 재갈을 물렸다면, 채찍질의 상처가 피부에 덜 남을까? 그리고 만약에 여성이 ‘여기, 돈 주고 채찍질하세요‘라고 말하며 채찍을 건네고 채찍을 맞으려고 가만히 있다면 그 피부에 쓰라림이 덜할까? 그리고 후에 그 경험에 대해 말할 때 돈을 받아서 폭력을 경험했다는 주장을 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세상이 그녀에게 그렇게말하기 때문에), 그녀를 아프게 하는 기쁨을 누리려고 돈을 지불한 폭행범이 덜 학대적인 걸까? - P175

성매매 여성은 자신의 피해경험에 대해 매일 침묵하며살아간다. 현대 사회의 관점이 그녀에게 재갈을 물렸고 그결과로 초래된 심리적 손상은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 흔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다.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는 감정적으로 고된 삶이 그저 한층 더해졌을 뿐이라며 대개 질문 없이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상황에 대한 현실을 집단적으로 아주 깊이 있게검토하지는 않았다. 심리 상태에 대한 긴 토론을 하지는 않았지만, 학대라고 명명하지 않은 상태로 학대당한 느낌을 - P175

나눴다.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학대가 초래한 정신적 측면의 결과들이었다. 뼈가 부러지지 않고, 나사가 풀리지 않게 살아 있으려고 매일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현살이었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이야기 나눴고,
상황을 공유했으며, 상황에 대한 생각들을 나눴지만 가장깊은 생각은 나 스스로만 간직했다. 성매매의 어떤 부분들은 빼놓고 해석하기 너무 고통스러워서 내가 알던 성매매여성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쉴 새 없이 얘기했고 일상의 대부분과 성매매,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는데, 그 모든 이야기 중에 나는 한 번도 성매매 여성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하면서 현실에서 겪는 다른시련들이 부수적으로 경감되었듯 성매매가 초래한 것들 중어떤 것들은 반가웠지만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행복과 같은 것이 아님을 알 테다. - P1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매매에서 겪었던 최악의 경험들 중 몇몇은 아일랜드 최고급 호텔들에서였다. 실제로 특정한 사고방식을 가진어떤 유형의 성구매자를 상대할 때, 그 구매자의 풍요 속에서 함께 있으면 더 궁색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부유한 남자들은(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여성이 아무리빈틈없이 비싼 옷을 차려입고 화장을 했더라도 그곳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특권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섹스와 돈을 교환하는 관계에서는 성구매자가 지배당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고 표현하는 경우에나 겨우 구매자가 압도적인 힘으로 인식되지 않지만 앞 장에서 언급했듯이 그런 경우에서조차 구매자들은 여전히 돈을 지불하는 위치에서 비롯되는 통제력을 즐긴다. 아주 비싼 호텔이나 지극히 부유한 집에서 만났던 어떤 구매자들은 성매매여성이 만나게 되는 구매자들 중 가장 까다로운 부류였다.
실제로 그 남자들은 지불하는 돈만큼 자신들의 권한이 커진다고 느꼈다. 그 태도는 분명했다. ‘너한테 2백 파운드를 지불했어. 너는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해야 하고 그것에대해 입을 닥쳐야겠지.‘  - P151

그런 환경에서 만난 성구매자들 중에는 내가 에스코트업종에만 있었다고 추측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거리나 마사지 업소에서도 나를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똑같은 성매매임에도 다른 업종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다. 동시에 다른 업종의 성매매를오가며 소위 ‘양다리‘를 걸치는 수많은 여성들을 만났지만, 나처럼 모든 업종을 오갔던 여성은 많이 없었다. 내가 만났던 여성들 중 한 유형 이상의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은 거의가 거리 성매매와 업소 혹은 에스코트 에이전시와 업소를겸했다. 나처럼 전 업종을 오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단순하지만, 그 다양한 경험들로 내가 알고 지내던 많은 여성들보다 성매매에 대한 더 큰 그림을 파악했다고 생각한다. - P152

볼스브리지 부유층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단독으로에스코트 에이전시를 운영하던 매력적인 한 아이를 알았다. 광고 비용이 2주에 350파운드였고, 월세는 한 달에 천파운드였다. 휴대폰 요금은 광고 비용보다 더 많이 나왔다.
이때는 1993년도였다(당시 아일랜드에서 휴대폰은 최신기술이었고 사업가, 마약상, 성매매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그 아이는 택시비와 ‘에스코트‘ 위상에 걸맞는 옷, 신발에많은 돈을 썼다. 몇 달 동안 빈털터리였던 적도 있었는데그럴 때조차 다른 업종의 성매매로 수입을 보충하지 않았다. "너는 거리에서 뭐 하니?"라고 그 아이는 내게 묻곤 했다. "너는 빌어먹을 이 아파트에서 뭐 하니?"라고 나는 되받아쳤다. 무의미해 보였다. 일정 기간 동안 그녀는 성매매를 하는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성매매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건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꾸리기 위해서일뿐이라고 그 아이에게 말하곤 했다. - P153

에스코트 성매매에서 만난 여성들 중에서는 업소를 경험한 여성들이 에스코트 에이전시에서만 있던 여성들보다성매매 현실에 대해 더 사실적으로 이해했다.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고급 창녀 신화를 비웃었다. 그 말을 믿을 만큼어리석지 않았다.
성매매를 화려하게 묘사하는 사람들은 대게 비싼 호텔로비를 배경으로 성매매 여성을 상상한다. 최신 유행하는유명 상표 옷과 하이힐을 신고, 선명한 빨간 립스틱으로 돋보이는 외모를 한 채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을 출입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나는 최신 유행의 유명 브랜드 옷과 하이힐을신은 모습으로 여러 색상의 립스틱을 바르고 셀 수도 없이많은 호텔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내 가슴이나 마음이 겪고 있던 걸 달라지게 하거나 신체적 경험에 어떠한 차이도 만들지 못했다. 아무것도 내 입과 가슴과 질에 - P163

실질적인 혜택이 되지 못했다. 일어나고 있는 일은 뒷골목에서 내가 치마를 들어 올리고 있던 때와 똑같았다. 성매매의 본질은 그 환경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거친 콘크리트바닥이 아닌 하얀 리넨에 엉덩이를 비빈다고 성매매가 다른 것으로 변하진 않는다. - P164

성매매 여성은 성폭력이 상존하는 환경에 놓여 있다.
성구매자들은 번번이 성폭력을 행사하는데 경험상으론 구매자들 다수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믿고 싶어 하지않거나, 아예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 역시 성폭력을 행사한다. 폭력을 즐기지 않으면서 성매매 여성을 이용하기는 불가능하다. 성매매에서 성폭력을 행사하는 남성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그저 폭력을 사용하지 않거나 성매매에 폭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를 선호하는 남성들이 있다. 다음으로는 폭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근절하지 않는 부류이다. 또 다른 부류는 폭력이 존재한다는 걸 너무 잘 알면서 그 사실로 인해 크게 성적 즐거움을 느끼는 이들이다. 성매매 여성들은 이 마지막 부류의구매자들을 그들이 알게 모르게 분출하는 자아감 때문에구분할 수 있는데,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주파수를 내보내지만 악을 행하는 사람은 어둡고 악한 주파수를 - P168

내보낸다" 라는 일본인 과학자이자 저자인 마사루 에모토의 글에서 잘 표현된 바 있다.
의도적으로 성폭력을 행사하려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둡고 악한 주파수를 내뿜는다. 이 주파수와 정기적으로 접촉해보면 이를 인식하고 감지하게 된다. 이 인식 능력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붐비는 공간에서도 이 주파수를 내뿜는 사람을 느낄 수 있다. 유용한 기술이고 한 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작동된다. 예를 들어 어떤여성들은 남성이 바른 의도를 가지고 실수로 어리석은 말을 했는지 아니면 그 의도에 어떤 불길함이 숨어 있는지 본질을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만, 나는 항상 구별할 수있다. 성매매 여성들은 영혼을 잠식시키는 성폭력의 진동에 거듭 노출되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자기 보호 본능으로성폭력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진화된다.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다행이다. 이 구별 능력이 우리 여성들 다수를 폭력과 죽음에서 구했다고 확신한다. 나를 살린 순간들이 있었다. - P1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