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이 묘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던 세계‘다. 19세기 영국에서 아프리카인 남성이 댄디라는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한다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매일이 표상을 마주했던 주류 영국인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어떤이는 불쾌하게 여기고 또 어떤 이는 공감했겠지만, 좋든 싫든 자국이 자행한 식민 지배의 사실, 그 상흔, 건드리고 싶지 않은 죄책감은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설령 심기가 불편할지라도 마음속 깊이 헤치고 들어가 탈식민지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이런 물음이 필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파시즘 국가 중 전쟁 전과 같은군주의 가계를 줄곧 받들어 모시고, 같은 국가와 국기를 계속 사용하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영국과 같은 전승국조차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전쟁이 끝난 뒤로 옛 자국 식민지 민족들과의 ‘다문화 공생‘을 표방해 왔다. 그렇기에 쇼니바레와 같은 아티스트가활동할 공간이 생겼다. 이를 생각하면, 일본은 매우 특수한 나라 - P131

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 전반까지 인류 사회가 막대한희생을 대가로 손에 넣은 평화, 인권, 평등, 반차별 등의 지적·사상적 성취에 완고하게 등을 돌리고 국민 다수도 그 편협한 자기애自己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잉카 쇼니바레의 작품은 일본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기껏해야 ‘포스트콜로니얼(식민지 이후) 아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지적으로 소비될 뿐, 그것을 자국의 입장에 옮겨 놓고 성찰하는 이는 얼마 안 될 게 분명하다. 지금 《잉카 쇼니바레 MBE: 찬란한 정원으로》전이 대구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의 관객은 그의 작품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 P132

니키는 팅겔리와 함께 1966년 스톡홀름근대미술관에서 〈혼Hon)이라는 작품을 제작해 전시했다. 그것은 길이 28미터, 너비6미터나 되는 거대한 ‘나나‘다. 관람객은 미술관 입구에서 다리를 벌린 채 그들을 맞이하는 이 여성상의 성기 안으로 들어가 몸속을 관람한다. 독일 하노버의 시립 공원에는 커다란 나나상이세워져 있는데, 이를 두고 시민 사이에 찬반양론이 벌어졌다고한다. 어느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그곳의 노부인이 이 상을 가리키면서 "만일 총통이 건재했더라면……"이라고 몹시 불쾌한 듯투덜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히틀러라면 그걸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니키의 예술이 지닌 가치를 역설적으로 대변하는 장면이다.
니키는 1984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 부지를 얻어 ‘타 - P137

로 정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타로 카드에서 구상을 얻은 <정의>, <악마> 등의 대형 조형물이 배치된 널따란 정원이다. 니키는 남성 원리가 전쟁과 환경 파괴의 원흉이라는 사상을 실천하면서 여성 원리와 ‘마술성‘의 가치를 강조했다. 타로 정원에는거대한 손 모양 조형물이 있다. 그 손은 그곳으로부터 20킬로미터쯤 떨어진 원자력발전소 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원전이여, 멈추어라."라며 염력을 쓰는 것이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뒤 이탈리아에서는 격렬한 논란 끝에 원전 가동을 중단했다. 그것은 타로 정원의 손이 발휘한 힘 덕분이었다고 니키는 말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부터 불과 4년째인 올해, 많은반대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가고시마현 원전을 재가동했고, 나머지원전들도 잇따라 재가동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P138

니키가 ‘사격 회화‘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때로부터 이미 반세기가 지났으나 그의 작품은 아직 낡지 않았다. 이는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억압이 (겉으로는 어찌 됐든)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일본은 국회의원의 여성 비율(8.1퍼센트)이 세계 129위인 나라다(16.3퍼센트인 한국도 87위로 낮다. 국제의회연맹 조사, 2014년11월 현재), 남성 원리가 의기양양하게 지배하는 사회에서 니키는 결코 낡을 수 없는 것이다. - P138

12월 1일 전시 개막식 행사에서 약 250명의 비교적 젊은 청중을 앞에 두고 나는 켄트리지와 공개 대담을 했다. "계몽의 프로젝트는 좌절했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묻자, 그는 곧바로 "그렇게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분명히 말했다. "자유, 인권, 평등, 민주주의, 이런 계몽의 프로젝트는 미완이며 여전히 진행 중이다."라고.
그에게도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타도된 순간은 "축제와 같았다." 뒤돌아보면 우리 민족에게도 ‘축제‘와 같은 순간은 있었다.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된 순간, 군사정권이 타도된 민주화 실현의순간, 새해 첫날을 맞아 나는 이런 순간의 환희와 그 순간을위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을 다시금 기억하고자 한다.
‘9.11‘ 이후 에드워드 사이드는 "중요한 목표"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문화와 저항』). "중요한 목표"란 "자유와 해방과 계몽을 요구하는 모든 민족이 모이는 승리의 회합이다. 눈앞의 어둠은 짙지만, 식민 지배를 경험한 우리 민족 역시 "승리의 회합에 참가한다는 꿈을 잃어서는 안 된다. - P146

딕스의 동판화 <전쟁> 연작은 1924년에 간행됐다. 그해는 ‘반전의 해‘라고도 불리는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고작 6년, 사람들은 전쟁의 기억을 빨리도 과거로 흘려보내고 다음 전쟁을 향해 가파른 언덕을 굴러가기 시작했다.
올미 감독의 영화 끝부분에서 설원에 높다랗게 선 나무가 포화 속에 불탄다. 나무는 숯이 되고, 무참한 파괴의 상흔이 펼쳐진다. 엔딩으로 양치기의 말이 흐른다. "언젠가 이 땅에 숲이 되살아나고, 여기서 벌어진 일은 믿어지지 않게 [잊히게] 되리니."
영화관을 나서니 초여름 햇빛이 넘실대는 간다의 거리를 남녀노소가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곧 치러질 참의원 선거도 개헌을 획책하는 집권 여당에 유리한 상황이라고 한다. 결국 일본국민은 헌법 9조(전쟁 포기 조항)를 스스로 내버리는 것일까.
숲은 되살아날 것이다...... 이것은 재생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말일까? 불탄 자리에 잡초의 신록이 싹을 틔우듯 인간들은계속 나고 자란다. 비참한 일은 잊히고 참화는 거듭된다. 시간의흐름은 망각의 편이다. 시간의 여신과 전쟁의 신은 사이가 좋다. 레마르크, 딕스, 올미..... 예술가들은 이 무자비한 적과 승산이 희박한 싸움을 이어 가고 있다. - P162

하지만 네루다의 매력은 그 ‘정치적 올바름‘에만 있는게 아니다. 이 영화는 그것을 잘 전해 준다.

풍만한 여인이여 살[肉]의 사과여 달의 
불이여
짙은 해초 내음이여 빛에 단련된 진흙이여
어떤 어스름한 빛이 그 원주 사이로 열리는가
어떤 고대의 밤이 남자의 오감을 홀리는가

ㅡ「풍만한 여인이여」(『100편의 사랑 소네트』)에서 - P174

얼마나 거리낌 없고 관능적인 노래인가. 이는 지금도 뭇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군부 쿠데타 후 멕시코로 망명한 칠레의 영화감독 미겔 리틴Miguel Littin은 1985년 계엄하의 칠레에 잠입해 네루다가 오랫동안 산 이슬라네그라Isla Negra의 집터를 찾았다. 그곳에서 리틴이 마주한 것은 시인이 사망하고 방치된 집에 새로운 세대가 끊임없이 찾아오는 광경이었다. 그곳을 찾은 젊은 연인들은 집 울타리에 낙서를 남기고 간다. 그중 하나는 말한다. "사랑은 결코 죽지 않는다. 장군이여, 아옌데와 네루다는 살아 있다. 1분의 어둠이 우리를 눈멀게 할 수는 없다." (<엄하의 칠레 잠입기 Acta General de Chile>, 1986)이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네루다>는 보여 준다. 네루다의 시가 칠레 민중에게 끼치는 영향력, 시의 위대한 힘을. - P174

칠레에서 이런 격렬한 투쟁과 비극이 진행되던 시기에 지구반대편의 한국에서도 유사한 현실이 진행되고 있었다. 박정희정권이 1972년 10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유신 체제‘를 확립한것이다. 나도 1980년대 중반 한국 정치범의 석방을 호소하기 위해 찾아간 캐나다의 지방 도시에서 칠레 망명자 가족이라는 소녀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는 쿠데타로부터 10년 이상이 흐른 뒤로, 여전히 피노체트 정권이 버티고 있어 망명자들은 귀국할 수없는 상황이었다. 나와 소녀는 말이 통하지 않아 이야기다운 이야기도 나눌 수 없었으나 금세 서로의 처지와 심정을 이해했다.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칠레의 역사는 우리 것이기도 하다.
네루다라는 존재는 우리 것이기도 하다. - P176

아, 가도다, 가도다, 쫓겨 가도다
잊음 속에 있는 간도와 요동벌로
주린 목숨 움켜쥐고, 쫓겨 가도다
진흙을 밥으로, 해채를 마셔도
마구나 가졌드면, 단잠은 얽맬 것을
사람을 만든 검아, 하루 일찍
차라리 주린 목숨, 뺏어 가거라!

ㅡ이상화, 「가장 비통한 기욕析慾」(1925)에서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푸르른 대해大海. 하늘 높이 바닷새 한 마리, 자연의 광대함과 아름다움을 구가하는 듯하다. 그 해면에 하나의 점 같은 배가 떠 있다. 카메라가 다가가니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로 빽빽하다. 지중해를 건너려는 난민들을 가득 실은 배다. 메마른 사막. 줄곧 차가운 비가 퍼붓는 변경의 철도역. - P177

군사용 철조망으로 무자비하게 나뉜 경계. 찬비에 젖은 채 멍하니 선 사람들, 주린 배로 추위에 떨며 피로와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실로 "진흙을 밥으로, 해채[시궁창에 고인물]를 마"시는 사람들의 행렬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상화의 시구가 뇌리에 떠올랐다. 1920년대 한반도에서 만주로 흘러든 숱한 난민, 2017년 중동에서 유럽으로 향한 숱한 난민, 두 행렬은 100년의 시차를 두고 한줄기로이어져 있다. 긴 행렬은 전 세계에 걸쳐 있으며, 언제 끊일지도알 수 없다. 아아, "사람을 만든 검 [神]아 (...) 차라리 주린 목숨,
뺏어 가거라!" - P178

그 영화는 아이웨이웨이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유랑하는 사람들)이다.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가자지구에서 여러 유럽 국가, 튀르키예,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 이르기까지세계 23개국 40곳의 난민 캠프를 돌며 제작되었다. ‘난민 문제‘
의 최전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거대한 투시도. 그 영상은 아름답고 처절하다. 화면에는 때때로 감독 자신이 효과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예컨대 난민 캠프의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는 모습,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서 오토바이를 탄 국경순찰대원에게 느긋한 말투로 말을 거는 모습. 고대 중국의 신선 같기도 하고, 시골 농부 같기도 하다. 그 모습이 이 영화의 주제가 가진 장대한 서사시적 척도를 실감하게 한다. - P178

‘민적‘은 일제가 통감부 시대에 조선 민족에게 강요한 제도다. 그것에 저항한 사람들에게는 ‘인권‘이 없었다. 현재도 난민이나 이민은 각종 증명서를 소지할 의무가 있어, 번잡한 절차와 굴욕을 강요받는다. 증명서가 없는 자(프랑스어로 ‘상 파피에sans-papiers‘, 즉 ‘종이가 없는 자)에게는 "인권이 없는" 것이다.
한용운의 시구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난민들의 고통을 예견했다. 참으로 천재적인 통찰! 한용운과 제거스는 이어져 있다. 시인들에게 그런 통찰을 요구하는 상황은 지금도 여전하다. 아니더욱 정치精緻하고 가혹하게 이어지고 있다.
한용운은 8·15해방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제비 떼 까맣게날아오길 기다리나니"라고 노래했던 이육사는 중국 대륙에서항일 독립운동에 종사하다가 일본 영사관 경찰에 붙잡혀 베이징 - P182

에서 옥사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고 노래한 윤동주는 일본 도시샤대학에 유학하던 중
‘독립 기도‘ 혐의로 검거되어 해방을 반년 앞두고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이 시인들은 그나마 시를 통해 가까스로우리에게 메시지를 남겼으나, 다른 많은 이들은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무참하게 목숨을 앗겼다.
3·1독립운동으로부터 100년 ㅡ나는 이른 봄 도쿄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생각한다. 아, 참으로 긴 난민들의 행렬. 참으로많은 눈물과 피. 그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 세계에서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역사수정주의자가 권력을쥐고 있고, 다수 국민 사이에 식민주의의 심성이 오히려 증식하고 있다.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 P183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 「아사히 저널」(1984년 9월 21일 호)이라는 잡지에 선생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거기에는 음악 이야기뿐 아니라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내 형들을 비롯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모든 정치범의 석방을 요구하는 이야기도 담겨있었다. 해방 직후 ‘보도연맹‘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힌 희생자들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그리고 모든 정치범의 석방이 실현될 때까지 한국 정부가 요청하는 귀국은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나는다시금 크게 감동했다. 선생이 내 형들을 비롯한 정치범들에게마음을 썼다는 데 대해서만이 아니다. 그 인터뷰는 몹시도 지친몸으로, 제한된 시간의 1분 1초까지 작곡을 위해 쓰고 싶다는 심경일 때 이루어진 것이다. 게다가 한국 정부의 비위를 거슬러 귀향의 꿈이 더욱 멀어질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선생은한국 사회 (그리고 인류 사회)의 개선이라는 목적에 자신이 할 수있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 P209

김영삼 문민정부 탄생을 전후해 한국 내에서 오래 계속되어온 윤이상 음악을 금기시하는 풍조가 완화되면서 1994년 9월
‘윤이상 음악제‘ 기획이 추진됐다. 그러나 선생은 한국 정부가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범민련‘의 해외본부장이라는 지위에 있었기에 귀국은 정치적 의미를 띨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행동에 반성할 만한 점도 있다." "앞으로 북과는 일절 관계를 끊겠다."라는 뜻을 표명하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선생은 또다시 귀국을 단념했다. 그 뒤 선생은 미국에서 남북의 음악가를 모아 음악제를 여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북측 음악가의 참가가 취소되어 실현되지 못했다.
윤 선생의 마지막 작품은 교향시 <불길에 휩싸인 천사들>(1994)이다. 노태우 정권의 부정과 탄압에 항의해 잇따라 분신자살한 젊은이들을 추념하는 음악이다. 1995년 12월 20일, 선생의유해는 베를린의 묘지에 안장됐다. 해방을 갈망했으나 차마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상처 입은 용의 생애였다고 할 수 있으리라.
선생의 후두부에는 (머리카락에 덮여 보이지 않지만) 큰 거미나 게가 달라붙어 있는 듯한 흉터가 있었다. 1967년 7월 동베 - P210

틀린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옥중에서 자살을 기도하면서 고문실에 있던 무거운 금속제 재떨이로 제 머리를 내려친 상흔이다. 고문실에서의 굴욕, 고통, 절망이 얼마나 혹독했겠는가.
이 위대한 예술가는 자민족의 국가권력에 의해 말살될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에 새삼 섬뜩해졌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그의 작품은 대부분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말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은 그 심연에서 생활했을 뿐 아니라 참으로 놀랍게도 더욱 거대한 존재로 되살아났다. 지금 한국에서 그의 탄생100주년이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이런 경위를 깊은 아픔과 부끄러움과 함께 기억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최근 알게 된 바로는, 박근혜 정권 시절의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윤이상평화재단‘도 올라 있었다고 한다. 이를 등재한 자들은 윤이상의 음악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들어 본 적이 있을까? 도대체 어느 세월에 이런 수치스러운 어리석음에서 벗어날수 있을까. - P211

숨을 삼킨다는 게 이런 걸까. 국도에서샛길로 빠져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자 돌연 눈앞에 작은 분지가 펼쳐졌다. 주위를 에워싼 산들은 화사한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젯밤부터 내린 비는 그쳤으나 하늘에는 구름이 겹겹이흘러가고 있었다. 낮은 쪽 구름은 엷은 먹빛, 높은 쪽 구름은 솔로 싹 쓸어 낸 듯 희다. 강풍에 날려 가던 구름의 갈라진 틈새로화살 같은 햇빛이 대지에 내리꽂힌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요란하게 흔들자 붉고 노랗게 물든 잎이 어지럽게 춤춘다. 신화 세계의 광경이다. - P220

도쿄에 사는 나의 상상력은 피해지 주민들이 경험하는 불안에 닿지 못한다. 오사카나규슈 사람들의 상상력은 훨씬 더 닿기 어렵다. 한국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즉 방사선량뿐 아니라 상상력 역시 동심원적으로 멀어진다는 역설이 나타나는 것이다. 동심원 중심에 가까운사람들은 공포와 불안에 대한 실감이 그만큼 강하다. 그렇기에 "편리한 진실"(프리모 레비)을 찾아내서 거기에 매달리는 심리가 작동한다.
재난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중심을 향한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중심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눈을 돌리면 사태의 본질을 냉철하게 인식해 재발을 방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사태이다. 우리는 이 ‘동심원의 패러독스‘를 의식해서 중심과 먼 사람들일수록 중심을 향한 상상력을 갈고닦고, 중심에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엄혹한 현실을 더욱 직시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태가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상력이 시험받는 것이다. - P228

가해의 책임까지 분명하게 언급하며 일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사죄의 뜻을 표명한 점이다. 언제나 그렇듯 피해를 당한 사람들,
고통받고 있는 미약한 존재가 타자와의 진정한 연대를 추구하는지혜와 용기를 보여 준다. 타자를 해친 자들,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은 고개를 돌리거나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로 일관한다.
합천 대회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가니 거리는 비상경계 상태였다. 거리에서 지하철역까지 곳곳에 경찰 부대가 깔려 있었다.
‘핵안보정상회의‘ 때문이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에 더해 부와 권력까지 쥔 자들이 앞으로도 핵을 ‘안전‘하게 독점하기 위한 모임이다. 그에 비해 합천은 핵 따위는 갖지 않은 미약한 사람들, 소수자들의 모임이었다. 어느 쪽에 ‘희망‘이 있는지는 명백하지 않은가. 이 글이 신문에 실릴 즈음이면 한국은 총선 직전일 것이다. 탈핵이라는 화두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한국 국민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수 있기를 기원한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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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아름다운 마을은 없을까
하루 일을 끝낸 뒤 한잔의 흑맥주
괭이 세워 놓고 바구니를 내려놓고
남자도 여자도 큰 맥주잔 기울이는

어딘가 아름다운 거리는 없을까
과일 달린 가로수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노을 짙은 석양
젊은이들 다감한 속삭임으로 차고 넘치는

어딘가 아름다운 사람과 사람의 힘은 없을까
같은 시대를 더불어 살아가는
친근함과 재미 그리고 분노가
날카로운 힘이 되어 불현듯 나타나는

ㅡ이바라기 노리코, 6월」 - P47

현대 일본의 여성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6월」. 내가 이시를 처음 읽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반세기도 더 지난 옛날이다. 중학생 시절의 나는 이 시에 그려진 ‘유토피아‘(그것도 노동하는 남녀의 유토피아)의 이미지에 매료당했다. "과일 달린 가로수들이 늘어선 거리는 바로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된 조선 민중이 그리던 꿈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쯤 지나 모국 유학 중 군사정권에 의해 투옥당한 형(서준식)에게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을 넣어 주었더니, 형은 이 시에 각별한 애착을 느낀 듯 직접 이 시를 번역해 옥중에서 쓴 편지에 적어 보냈다. 가장 험악했던 군사독재 시절에 이 ‘유토피아‘의 이미지가 한국 옥중의 젊은이에게 전달된 것이다. 그 소식을 당시 일면식도 없던 시인에게 전했더니, 그는 굳이 내가 사는 교토까지 찾아와 주었다. 처음 만난 그 사람은 산뜻했다. - P48

이바라기 노리코는 1926년생이다. 초기 작품에 「내가 가장예뻤을 때」라는 게 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고, 거리는 파괴되어 쓰레기로 뒤덮였다. 나는 멋쟁이가 될기회를 잃어버렸다‘고 노래하는 시다. 그러나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힌 한탄의 노래는 아니다. 봉건제와 군국주의의 멍에에서 해방되어 홀로 서려는 여성의 눈부심,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이 - P48

라 할 만한 광휘로 가득하다.
그 뒤 세상은 바뀌어 많은 동료 시인(특히 남자들)이 무기력한 현실 긍정 쪽으로 돌아선 상황에서도 이바라기는 한평생 그 광휘를 잃지 않았다. 1975년 10월 31일 쇼와 ‘천황‘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전쟁 책임‘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런 "언어의 기교에 대해서는, 나는 문학 방면은 별로 연구한 바가 없어 (...) 대답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답했다. 제국의 절대권력자이자 전쟁의 최고사령관이었던 천황이 타국과 자국의 무수한 사람을 죽음으로몰고 간 전쟁에 대해 "언어의 기교"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책임을 교묘하게 얼버무린 것이다. 게다가 더욱 놀랍게도 일본의 거의 모든 일본 지식인, 언론은 이 발언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이바라기 노리코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 P49

전쟁 책임에 대해 묻자
그 사람은 말했다
그런 언어의 기교에 대해
문학 방면은 별로 연구한 바가 없어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와
거무칙칙한 웃음 피토하듯
내뿜다, 멈추고, 또 내뿜었다

ㅡ「사해파정四海波靜」에서 - P49

만년의 이바라기는 한국어를 독학해 윤동주 같은 조선의 시인을 일본 독자에게 소개하는 한편으로 일본 사회의 급속한 우경화를 개탄했다. 1999년 73세에 낸 시집 『기대지 않고는 ‘히노마루(국기)·기미가요(국가)‘의 법제화가 강행되던 중 출판된 것이다.


더 이상 어떤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오래 살아
속속들이 배운 것은 그것뿐
(...)
기댄다면
그것은
의자 등받이뿐

ㅡ「기대지 않고」에서 - P50

2006년 2월, 시인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나는(2006)년 (2)월 (17)일, (지주막하출혈)로 이 세상을 하직하게되었습니다. 이것은 생전에 써 둔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사망 통지서까지 준비해 놓고 홀로 떠나간 것이다. 지금은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6월」이 노래한 유토피아의 이미지는 오히려 냉소의 대상이 되어 있다. "어딘가 아름다운 사람과 사람의 힘은 없을까"....... 지금은 저 유토피아의 빛과 시인의 산뜻했던 뒷모습을 상기해야 할 때다. - P50

그때로부터 거의 1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세계는 조금도나아지지 않았음을 통감한다. 지금 우리는 핵전쟁의 늪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으며 이를 저지할 어떤 방법도 없다. 세계사의시계가 한 세기 정도 되돌아가 버린 듯하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니 글을 쓰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그럴 때내가 떠올리는 것은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
파울 첼란Paul Celan(1920~70), 장 아메리Jean Amery (1912~78),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87) 같은 ‘디아스포라 지식인 선배‘들이다. 그 ‘선배‘들은 하나같이 인간성이 지닌 외면하고 싶은 추악함과, 그럼에도 희미하게 빛나는 숭고함에 관한 깊은 고찰을 남기고는 스스로 삶을 저버렸다. 나는 ‘디아스포라‘라는 존재를 정의할 때 이런 의미를 넣어도 좋겠다고 몰래 생각해 본다.
디아스포라는 일부 지식인은 ‘인간성이라는 심연까지 도달하는 말들을 남기고 자살하는 존재이다. - P56

엔지니어였던 프리모 레비의 아버지는 푸줏간 진열장 앞에 서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유대교 계율에 반하는 햄이나 소시지 같은 돼지고기 가공육을 사곤 했다. 그럴 때면 셈이 맞는지 눈금이 새겨진 로그자로 검산했기 때문에 동네 푸줏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말리아 할머니"는 레비의 할머니다. 한창때 뭇 남성을 "애끓게 하던" 그녀는 젊어서 혼자가 되었지만 나이를 더 먹은 뒤 늙은 기독교도 의사와 재혼했다. 하루건너 유대교예배당인 시나고그와 기독교 교구 교회에 번갈아 다니며 80세가 넘어 세상을 떠났다. "바르바파르틴‘은 ‘보나파르트 아저씨‘
라는 뜻으로, 나폴레옹이 잠깐 가져다준 유대인 해방을 기리기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아저씨‘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아내"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개종을 하고 기독교 선교사가 되어 중국으로 떠난다. 이렇듯 다채롭게 펼쳐지는 매우 기괴하면서도 사랑스럽기도 한 초상화들... 유대인들이 계율을 어기고 돼지고기를 먹기 시작하고 기독교도와 결혼한다.  - P57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전쟁의 결과,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유대인의 신분 해방이 실현되지만, 불과 수십 년이지나 그들은 파시즘과 나치즘이라는 대홍수에 휩쓸리게 된다.
레비가 생생하게 그려 낸 모습은 그 대홍수 이전의 이야기다. 유머가 넘치는 추억담인 동시에, 비통한 묘비명이기도 하다.
‘후배‘인 나도 쓸 수 있을까. 재일조선인 사이에서 늘 주고받는 농담 중에 ‘모든 재일조선인은 소설 한 권 쓸 만큼의 사연을가졌다."라는 말이 있다. 어디까지나 농담이지만 가혹한 역사에 떠밀려 온 재일 디아스포라 개개인에게는 그만큼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살아 있다는 뜻이리라. 물론 실제로 글을 쓰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점은 잘 알고 있지만 내게도 인생을 마무리하기전 내 가족과 친척, 지인들의 ‘초상‘을 글로 그려 내 남기고 싶은욕구가 있다. 디아스포라는 고향, 국가, 가족, 혈통 같은 허구의관념에 믿음을 두지 않기에, 적어도 작품으로 자기의 흔적을 새겨서 남기고자 하는 어려운 희망을 품는 것이다. - P58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불법체류‘란 국가가 마음대로 단정해 놓은 정의다. 예를 들어 지금 우크라이나의 경우를 보자. 그땅에서 태어나 그 땅의 말을 쓰며 살아온 사람들은 한때 오스만제국이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제국의 신민이었고, 그 후로는 ‘소련인‘이었다. 그러고는 우크라이나인이 되었다가
지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 찢겨 있다. 본인은 ‘이동‘하지 않았지만 위로부터 국가가 차례차례 자의적으로 선을 긋고 나누어서로 싸우게 만든 것이다. 우리 민족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마찬가지다. 내 이모부는 남한의 탈영병, 고모부는 북에서 온 인민군 소년병이었다. 두 사람이 어디선가 총탄을 주고받았다고 해도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 일이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있으며, 이는 ‘조선‘ 민족의 역사에서도 오히려 흔하디흔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모부는 누구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필사적으로 살아남았다. 그 과정을 겪으며 허무하다고 할 만큼 현실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처세술을 몸에익혀야 했다. 전 세계의 많은 디아스포라가 그러했다. - P63

‘근대적‘인 사상의 소유자인 아버지가 부르주아적 입신 출세주의에 물들어 있었던 데 비해 ‘봉건적‘인 어머니는 자신과 자식의 인간성을 외부와 아버지의 권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또 저항했다. 이런 ‘민중과 여성‘의 관점에서 깊은 사색을 통해 자국의 역사를 반성하며 통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시모다는 생각한 것이다.
이 서술은 나에게 내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그런 감개를 품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일본, 한국, 독일, 아니 세계 어디에서든 어머니들은 그렇듯 필사적으로 아이를 감싸 안아 왔다.
콜비츠의 <희생>은 그런 어머니들에 대한 찬가다. 단, 나에게는그처럼 어머니를 칭송하는 것에 대한 주저와 고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칫 잘못하면 자식이자 남자인 내가 어머니를 두 번 이용하고 착취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콜비츠를 그저 ‘감동적‘으로 소비하기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 이시모다 쇼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억은커녕 호전적인 야만의 목소리가 전 사회에 넘쳐흐른다. "일본을 되찾자."라고 외치는 아베 신조 정권은 지금 불법적인 - P119

‘헌법 해석‘을 통해 자위대가 미군과 함께 세계 각지에서 군사행동을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그런 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로서 정권이 항상 거론하는 것 중 하나가 ‘한반도(조선반도) 유사‘ 사태라는 상정이다. 즉 일장기를 내건 일본군이 또다시 한반도에 발을 들여놓고 조선 민족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일을 상정하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기지가 몰려 있는 오키나와의 사람들도 막대한 희생을 치를 것이다. 일본 본토에서는 관심이 저조하지만, 오키나와에서는 헤노코 기지 건설 반대 운동이 경탄할 만한 집념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오키나와인들 자신은 물론 한국인, 나아가 동아시아 민중이 피를 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투쟁이다. - P120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74세의 콜비츠는 <씨앗들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그림 8)를 제작했다. 그 자신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 여자(늙은 여인)는 자식들을 제 외투 속에 품고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넓게 팔을 벌려 소년들을감싸고 있다. <씨앗들을 짓이겨서는 안 된다>ㅡ이 요구는 <두 번 다시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와 마찬가지로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율법이다. 명령이다."
케테 콜비츠의 이 ‘명령‘을 오늘날에 전하는 사키마미술관. 기지에 머리를 들이밀듯 들어선 그 모습은 평화를 위한 투쟁의선두에 내걸린 깃발처럼 보였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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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그림‘ 시리즈 중에는 색다른 그림 한 점이 있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개>라든가 <모래에 묻히는 개>라고불린다. 보기에 따라서 있는 힘껏 급류를 헤엄쳐 건너는 것같기도 하고, 개미지옥의 흘러내리는 모래에 삼켜져 어찌할도리가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 개는 고야 자신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이 개는 나야, 라고 
생각했다.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아니,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역사는 때로 힘찬 물살처럼 빠르게 흐르지만 대개 기운이 빠질 정도로 느리다. 그리고 갔다가 되돌아왔다가 하는그 과정의 국면마다 희생은 차곡차곡 쌓여 가야만 한다. 게다가 희생이 가져다주는 열매는 번번이 낯 두꺼운 구세력이 가로채 간다.
하지만 그 헛수고처럼 보이는 희생 없이는 애당초 어떤 열매도 맺지 않는다. 그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

-「모래에 묻히는 개」,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프란시스코 데 고야, <개(모래에 묻히는 개)>,
1819-23년, 석고 벽에 유채(현재 캔버스에 유채), 131.5×79.3cm,
프라도미술관 소장.

‘체감 시간‘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있다.
이런 말이 실제로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체감온도‘는 온도계가 표시하는 온도와는 별개로 사람이 느끼는 온도를 가리킨다.
‘체감 시간‘은 거기서 나온 연상으로, 시계나 달력상으로는 같은시간일지라도 사람에 따라 그것이 빠르다거나 느리다며 다르게 느끼는 걸 말한다.
나는 요즘 ‘체감 시간‘이 무척 빠르다. 모든 게 순식간에 지나가는 느낌이다. 그것은 인생의 끝이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고있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래서 두렵다거나 슬프다는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원래 신슈信州 (나가노현)의 고원에 자그마한 산장을갖고 있었는데, 이번 봄에 고도가 조금 낮은 곳으로 옮겼다. 그래도 해발 1,200미터 정도는 된다. 숲속의 작은 집이다. 이제부터는 이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 P13

순식간에 지나가리라.
이 계절이 되도록 집 주변에는 눈이 수십 센티미터나 쌓여 자동차를 주차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도로가 꽁꽁 얼어 스노타이어를 장착해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천천히 운전할 수밖에없었다. 그랬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나무들이 일제히 새싹을 틔우고 매화, 복숭아, 벚꽃, 개나리, 진달래, 수선화 등색색의 꽃들도 피었다. 순백이던 야쓰가타케 연봉(해발2,899미터의 최고봉을 비롯한 8개의 고봉이 늘어선 산)은 산꼭대기 부근에만 곳곳에 잔설이 남아 있다. 저 추웠던 겨울은 한바탕꿈이었던가. 아니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꿈인가. 흡사 여우에 홀린 것 같다. - P14

연구실의 책을 버린다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아 학생들에게 가져가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막상 책을 처분하려니 쉽지않다. 오래된 책을 정리할 작정이었지만 1970~80년대에 손에넣은 책들은 귀중하다. 학생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쓸데없이 그런 느낌이 든다. 내게는 현실의 기억과 얽힌 일들이 그들에게는먼 과거의 일이다. 예컨대 베트남 전쟁이나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그렇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당시 읽었던 책을 책장에서 꺼내 한 구절 읽어주기도 한다. 읽은 뒤 문득 깨닫고 보면 그 책은30~40년 전에 입수한 것이다. 학생 시절의 나에게 누군가 해방(일본에서는 종전終戰이라 한다) 전의 책을 읽어 주는 격이다. 학생 시절의 나는 내 앞에 놓인 시간에 끝이 있다는 걸 개념상으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게 현실이라는 건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언제까지고 끝없이 이어지는 인생을 상상하고는 조바심을 쳤다. 젊은이와 노인의 ‘체감 시간‘에는 그만큼 차이가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 P15

많은 사람이 이 이야기를 ‘그래서 젊은이에게는 미래가 있다‘는 식의 낙관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 그 반대다. 노인이 된 내 경험과 감각이, 시간은 얼마든 넘쳐 난다고 생각(착각)하는 젊은이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데 대한 안타까움이다. - P16

나는 1951년생이다. 그해 조국에서는 한국(조선)전쟁이 한창이었다. 사춘기 때는 베트남에서 무자비한 살육이 자행되었다.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 한국은 군사독재의 절정기였고, 두 형은 투옥되어 있었다. 서른 살 이후의 내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만사가 ‘임시적인 삶‘이었다. 중장기적인계획을 세우고 인생을 설계하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쉰 살 가까이 되어 우연히 대학에 취직했을 때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주변 동료들이 정년 때까지의 수입과 지출을 치밀하게 계산해서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모습이었다. 사회조직 속에 편입된 머조리티(다수자, 주류)의 ‘안정‘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디에서 살고 어떻게 죽을지도 예측할 수없는데 노후를 대비한 양치질이라니, 무리였다. 이 나이 되도록 어떻게든 살아온 것은 수많은 우연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에서 태어난 나는 일본 사회밖에 알지 못하면서도, 일본에서 인생 마지막까지 보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애당초 일본이라는 나라는 재일조선인을 배제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1960년대 말까지 ‘국민 건강 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었다.
1년 뒤면 나는 만 70세다. 정년퇴직이다. 말 그대로 노인이다.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오래 - P19

살기를 바란 적도 없다. 애당초 장수를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고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살아 있는 것 자체를 가치로 여기는 사고방식은 인생의 자기목적화라 할 수 있다. 인생의 가치는 그런 차원의 것과는 달라야 한다. 사람은 진실, 아름다움, 정의, 공정, 평화 등 개개인의 삶을 넘어선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게 아닐까. 젊은 시절부터 그런 생각이었다.
물론 그 ‘가치‘가 가짜이거나 왜곡된 것인 경우도 많다. 거짓 ‘가치‘가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데에 이용되어 온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을 비판하고 그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은 보편적 가치라는 ‘기준‘을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 원칙조차 내팽개쳐진 세계,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식조차 잃어 가는 세계다. - P20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악의 평범함‘이라는 탁월한 고찰을 제시했다. 그것은 막대한 희생의 대가로 얻은 평화를 위한 고찰이다. 하지만 이 역시 크고 작은 아이히만들의 끊임없는 출현을 막을 힘이 되지는 못했다. 국회에서 태연히 거짓말을 지껄이는 정치인, 자료를 은폐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관료, 그것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멍하니 사고 정지 상태에 빠져 있는 다수의 국민. 일본사회의 이런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 일본 정부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정년을 연장하려 하는 한편으로 의료비나 사회보장비는 억제하려 하고 있다. 켄 로치 KenLoach (1936~) 감독이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묘사한 것처럼, 노인과 사회적 약자에게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 P22

이 나이까지 살아남았기에 ‘악몽의 시대‘를 목격하게 됐다. 형들이 옥중에 있던 군사정권 시절에 "나는 그저 두 눈 부릅뜨고이 운명이 어디로 향하는지 속속들이 지켜보라고 스스로에게 명했다."(「나의 서양미술 순례』) 지금은 이 빠진 무력한 노인이 됐지만, 30년 전에 한 그 말을 다시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는 그렇다 치고, 눈만큼은 부릅뜨고 지켜볼 작정이다. - P22

지금 세계를 뒤덮은 불안은 ‘코로나 사태‘만이 아니다. 나는 얼마 전 뉴스에서 미얀마군이 자국 시민들을 폭행하는 장면을보고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아, 이건 광주다.‘ 다친 시위대를 구조하려던 구급대원 세 명을 군인들이 구급차에서 끌어 내려 곤봉과 총대로 마구 두들겨 패는 장면이었다. 그 구급대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목숨은 건졌을까. 그 뒤의 일은 모른다. 이런 무도한 폭력이 미얀마뿐 아니라 홍콩, 태국, 벨라루스, 러시아 등지에서 일상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정치 폭력이 ‘역병처럼‘ 세계에 만연해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시대인가.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앞으로 1년. 한국이 저 암흑시대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정년 뒤 조용한 은퇴 생활을 바라는 마음이 절실하지만, 세계는 그것을 허락해 줄 것 같지 않다. - P28

화를 잘 낸다. 특히 컴퓨터나 휴대폰을 쓸 때 잘 다룰 줄 모르는 건 물론이고 그 세계에서 통용되는 언어 자체에 어두운 탓에 마음이 몹시 상한다. 내 패스워드를 잊어버리고, 신용카드 결제도 뜻대로 안 된다. 그런 자신에 대한 화를 참지 못한다. 하얀천에 뚝뚝 떨어진 ‘늙음‘이라는 검은 얼룩이 서서히 번져 나가는느낌이라고 할까.
20년쯤 전에 독일의 뮌스터라는 도시에 갔을 때 공영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할 때마다 차체를 비스듬히 아래로 기울이는 모습을 봤다. 승객, 특히 고령자가 부담 없이 타고 내릴 수 있도록 한 장치였다. 나와 아내는 거기에 감동해서 우리가 사는 일본의 도시에도 이런 장치가 어서 보급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했을 때는 우리가 그런 혜택을 입을 것이라는 생각은 거의 없이 고령자나 약자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 뒤 어느새 일본에도 그런 버스가 꽤 보급되었다. 지금은 그 버스를 반기며 감사히 노약자석에 앉게 됐다. 50대 무렵의 나는 고령자의 ‘타자‘로서 ‘타자‘인 노인들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내 몸에 ‘늙음‘이라는 낯선 타자가 비집고 들어와 나의 내부를 침식하고 있다고 느낀다. - P37

이 이야기는 ‘해방된 노인‘들이 떨치고 일어나 작금의 상황에 파문을 일으킨다는 꿈, 일종의 우화다. 현실의 많은 청년들은 자진해서 ‘회사 인간‘이 되어 안정을 얻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고 있다. 가토의 ‘노학공투‘는 흥미진진한 꿈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런 우화를 나도 이야기하고 싶다. 젊은 사람들이 말하려 하지 않는 꿈, 다른 인생의 꿈을 제시하는 것, 그 역시 노인이 할 수 있는 사회 공헌이다.
내 안에서 자라나는 ‘늙음이라는 타자‘와 끈기 있게 사귀고 대화해 나갈 작정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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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낳다


겨우내 몇 번의 혹한이 다녀갔지만
좀처럼 눈도 비도 내리지 않았다
나는 불 꺼진 빈집에 들어
남쪽 드넓은 들판의 험준한 바위산을 어림
한다
다른 산들에 기대지 않고 홀로 서서
푸른 밤이면 가랑이 사이에서 달을 낳는
슬픔의 깊이를

나는 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슬픔으로 가득한 지워지지 않는 바다와 포구가 있음을

나는 또한 안다
거친 수로를 맴돌던 바람 아직 잠들지 못하고
산정의 키 작은 나뭇가지 상고대는 꽁꽁 얼어 있음을

나는 기억한다
혹한 속에서도 강바닥부터 조금씩 물이 
흘러 물길을 열고

흐르는 것은 모두 크고 작은 슬픔을 안고 간다는 것을

나는 손을 뻗어 속삭인다
처마 밑 붉은 등 바람에 흔들리는 밤이면
거친 산등성이에 꽃망울 조심스레 잎을 낼 것이라고

나는 또한 말할 것이다
그 무렵 늦은 마음으로
나 다시 너에게로 갈 것이라고

먼 풍경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는
제 몸의 가지가 어디로 뻗을지 알지 못한다
수천 년을 흐르는 강 또한
물길이 어디로 나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가지가 어디로 뻗든
물길이 어디로 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지마다 초록이 오르고 꽃이 만개하고
물길 닿는 곳마다 생명이 움트는
나무와 강이 품고 빚어내는
먼 풍경이 아름다운 것이다

나도 내가 어떻게 뻗어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다
하여 그것들이 빚어낼 훗날의 풍경 또한
서둘러 예단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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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쓰기는 독자를 배려해야 합니다. 글쓰기에 단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타자와의 소통이 되어야 하죠. 그 타자가 나 자신일 때는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쓰는 것이고, 사회적인 자소서처럼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이라면 그 사람과의 원활한 소통을 글쓰기의 목표로 삼아야 해요. 꼭 명심할 것은 사회적 자기소개서의목표는 이 글을 보는 타자를 배려해야 하고, 고려해야 하고, 그 사람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 P247

매끄럽게 글을 쓰는 것과 번지르르하게 쓰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자소서는 여러분의 표현 능력과 센스를 보는 수단입니다. 그리고 정성스러움도 봅니다. 자소서의 특징을 알고 짜임새 있게조직했다는 사실을 구조와 문단에서 보여줘야 해요. 인사담당자는 글을 보면서 조직 생활을 잘할 친구인지, 논리적인 친구인지,
핵심을 잘 파악하는 친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글은 주인의 성격을 드러냅니다. 최대한 정성을 들여서 쓰면 분명 이로운 점이있을 겁니다. - P258

자소서도 마찬가지예요. 오타가 있는지 꼭 확인하셔야 해요. 오타보다 더 심각한 실수도 있습니다. 회사 이름을 잘못 쓰는 겁니다. 설마 그런 사람이 있냐고요? 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종종 합니다. 제 이름이 나민애인데 학생들이 제 이름을 나인애, 나민예 등으로 바꿔 메일을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메일을다 읽기도 전에 기대감이 와장창 깨져요.
어떤 학생이 A전자에 자소서를 넣었어요. 꼭 다니고 싶다는말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화를 썼는데 ‘저희 아버지께서는 예전부터 B전자제품만 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예전부터 백색가전은 B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썼다면 어떨까요? 수많은 회사에 원서를 넣었고, 회사 이름만 바꾸다가 이런 실수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겠죠. 안 뽑고 싶을 거예요. 그러니까 자소서를 쓴 다음에는 처음부터 꼼꼼히 읽어보는 퇴고를 꼭 하시길 바랍니다. - P259

구하기 시작했을강의 연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제가 내향형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무서웠습니다. 그래도하긴 해야 하니 카메라를 앞에 두고 셀프 촬영을 했습니다. 이후에 촬영한 내 목소리를 듣는데 소름끼치고, 영상 속의 내 모습이뚱뚱하고 못생겨 보이더라고요. 그렇지만 계속해서 열심히 촬영하고, 열심히 봤습니다. 보다 보니까 점점 나아지더라고요.
다음엔 녹음기를 사다가 제 말을 녹음했습니다. 먼저 초 단위로 강의 스크립트를 썼습니다. 그리고 3분짜리 5분짜리 스크립트를 외우고 심지어 농담까지도 외웠죠. 그걸 녹음하고 다시 듣고또 녹음하고 다시 듣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누구나 실력이 늘어납니다. 저처럼 내향적인 사람도 발표를 잘할 수 있습니다. 노력하기만 한다면요. - P270

발표를 할 때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시선 처리입니다. 한 사람 한사람 눈을 바라보는 거죠. 엄청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강의실에서 학생들 한 명씩 눈을 봤는데 그러면 저와 눈이 마주친 아이들의 고개가 파도타기처럼 다다다다 숙여집니다. 선생님은 마음에 상처를 입습니다. 저같은 소심형 인간은 상처가 무섭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빈 책상에 놓인 가방을 보고 얘기하거나 학생들 노트북에 붙여진 스티커를 보면서 이야기합니다. 허공을 보면서 얘기할수는 없잖아요. 시선을 마주치는 게 굉장히 에너지 소모가 크더군요. 그럴 때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쳐다보는 것이 방법입니다. 그리고 좀 익숙해진다 싶을 때 눈을 조금씩 맞춰 보는 거죠. - P271

목소리 톤도 중요합니다. 앞에서 발표할 때는 의도적으로 톤을 낮춰서 시작하셔야 합니다. 사람들은 당황하면 목소리 톤이 높아집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더 낮게 시작하세요. 음계로 따졌을때, 평소 내 목소리가 ‘미‘ 톤이라면 발표에서는 ‘도‘에서 시작하세요. 그래야 ‘솔‘에서 끝납니다. 평상시 ‘미‘ 톤인데 긴장해서 ‘미나 ‘파‘에서 시작한다면 초음파 돌고래 톤으로 끝날 거예요. 듣는 사람도 당황스럽고 본인은 더 당황스럽겠죠.
그리고 단어와 단어 사이에 잠깐씩 쉬어주는 것도 팁입니다. 급하다고, 부끄럽다고 쉬지 않고 말하는 게 아니라 말과 말 사이에 휴지를 넣어주는 거예요. 잠깐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말과말, 문장과 문장 사이의 속도를 조절하면 발표자가 안정되었다는인상을 줍니다.
이렇게 말하면 발음도 좋아져요. 제가 사실 발음이 좋은 편은아니라 중간에 쉬는 시간을 넣어줘서 보완하곤 합니다. 시선, 목 - P271

소리 톤, 속도, 말할 때 이 세 가지를 적절히 조절하면 이사님 앞에서 발표를 하든 면접관과 심층 면접을 하든 크게 당황하지 않을수있어요.
마지막으로 자세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에 나와 서는 순간, 청중들이 보면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발표자의 뒤통수입니다. 만약 피피티를 설명하는데 몸을 완전히 돌리고 등만보인다면 어떨까요? 청중들이 불편할 수 있겠죠. 그러니 해야 할말은 미리 다 외우는 게 좋습니다. - P272

내가 대답을 못 할 질문이 들어왔을 때도 우아하게 반응해야합니다. 우선 버퍼링 시간을 가져보세요. 바로 받아치지 마시고 3초정도 ‘음‘ 하는 생각의 버퍼링을 거치고, 그다음에 "네,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저쪽에서 나에게 싸움을 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참 좋은 질문이네요"라고 말하는 거죠. 그다음에, "그 질문의 내용을 보완해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감정을 잘 조절하며 최대한 예의를 갖추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모든 질문에 반드시 즉답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미루고 현명한 대응을 추후에 마련하세요. 이런 여유의 전법이 필요할 때가 상당히 많습니다. - P273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글을 쓰고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항상인문학적인 인간으로만 살 수는 없죠. 모든 글을 다 잘 쓰고 싶지만 잘 안되더라도 메일 등 공적인 글쓰기로 소통을 잘하면 자존감이 올라가기도 합니다.
궁금했지만 사실 누구에게 물어보기 애매했던 부분들까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는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늘 만나왔던 글쓰기에 대해 되돌아보고, ‘나는 제법 잘 써요‘라는 성취감 속에 사시면 좋겠습니다. - P273

책에 대한 글이라고 생각하면 보통 독후감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런데 독후감과 서평은 조금 다릅니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목적의 차이죠. 독후감은 독후감대로 의미가 있고, 서평은 서평대로의미가 있습니다.
독후감은 영혼을 성장시키는 글입니다. ‘그 책을 읽었더니 나의 생각과 태도가 바뀌었어요‘, ‘책을 읽었더니 내 심장이 이렇게 반응했어‘ 이렇게 심장의 말을 쓰는 것이 독후감입니다. 서평은 독후감에 비해 조금은 지적인 영역이에요. 심장이 한 말을 바탕으 - P279

로 하되 머리가 이성적, 지적,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쓴 글이죠.
영혼의 성장은 누구의 문제일까요? 나 자신을 위한 문제입니다. 독후감은 나를 위한 글쓰기예요. 여기 민지라는 친구가 기후위기로 열병을 앓는 지구에 대한 책을 읽었다고 가정합시다. 민지는 에어컨을 오래 틀었던 일을 반성하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지않은 일을 반성하고, 에너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일을 반성하며, 이제부터 환경을 먼저 생각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실천도 계획하죠. 이것은 개인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서평은 ‘내가 이 책을 이렇게 읽었는데요, 내가 쓴 글이여러분에게도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의 글입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는 글쓰기죠. 독후감은 독자가 없어도 돼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읽는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본인을 위한 글쓰기니까요. 하지만 서평에는 독자가 있습니다. 서평은 글을 쓴본인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는 예비 독자들을 위해 쓰는 글입니다. - P280

독후감에서는 개인의 과거가 중요합니다. 내가 어떻게 읽었냐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그래서 읽은 나의 소감을 강조하고, 나개인적인 반응을 적고, 이런 가치를 내면화하게 되었다고 서술합니다. 반대로 서평은 우리의 현재가 중요합니다. 지금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이드를 주는 글이니까요. 그래서 독후감보다 보편적인 반응을 예상하며, 내가 파악한 가치를 남과 공유합니다. 즉, 독후감이 나에게 집중하며 나의 영혼을 성장시키는 개인의 글쓰기라면, 서평은 타인을 배려하며 공동체의 가치를 함께나누는 글쓰기입니다. - P280

앞에서도 잠깐 설명했지만, 서평을 쓰면 ‘이 책이 내 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권의 책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때문에 인생 독서를 하게 되죠. 내 영혼의 서가에 책을 꽂는 겁니다. 서평을쓰려면 오래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분석까지 하니 추론 능력이 높아집니다. 읽기가 배우는 ‘학의 영역이라면 서평쓰기는 익히는 ‘‘의 영역입니다. 두 가지가 합쳐져서 비로소학습이 되고 공부가 완성됩니다.
서평을 읽으면 책을 안 읽은 사람도 본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최신 트렌드를 알고 싶지만 책을 다 사서 읽을 수 없다면 그책에 대한 서평을 찾아서 읽어보세요. 또는 책을 읽었는데 이해가 안 될 때도 서평 읽기는 유용합니다. 책을 읽고 난 후 서평을 읽으면 희미했던 점이 뚜렷해지고,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도알게 됩니다. 책뿐만이 아니라 영화도 그렇잖아요. 어려운 영화를 본 후 이해가 잘되지 않을 때 영화 평론을 찾아보면 그 장면이 그 - P281

런 의미였구나라고 이해하는 것처럼요.
서평을 많이 읽고 쓰면 다른 텍스트를 분석하는 능력치도 향상됩니다. 특히 전문 서적이나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레벨이 상승하죠. 읽기로는 정리가 안 될 때 글로 쓰면 정리가 됩니다. ‘남이 쓴 한 권의 책이 내가 쓴 한 페이지의 글‘이 되었을 때 그 책은 내책이 됩니다.
서평은 독후감을 잘 써본 사람이 유리합니다. 하지만 독후감에 너무 빠져 있으면 서평을 쓰는 데 불리해집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서평엔 독후감적인 부분이 존재합니다. 독후감을 쓸때 어떻게 쓰나요? 내가 이 책을 왜 읽게 됐는지 이유를 쓰고 줄거리를 쓰죠. 그리고 내가 느낀 점에 대해서 소감을 붙입니다. 이런점은 서평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읽은 책의 줄거리와 느낌이 서평에 들어가죠. - P282

다만, 서평은 이것만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독후감과 유사하지만 ‘읽었노라, 즐겼노라, 느꼈노라‘만 쓴다면 서평이라고 할 수없습니다. 서평에는 말 그대로 책에 대한 평가, 장점과 단점에 대한 분석과 판단이 들어가야 합니다. 저자에 대한 사전 조사도 필요하죠. 분석을 하려면 경험도 있고 데이터베이스도 풍성해야 합니다. 뭔가 알고 배운 사람이 분석을 잘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독후감 쓰기를 추천하고 성인에게는 서평 쓰기를 추천합니다. - P282

서평은 의외로 배우기 쉬운 글쓰기입니다. 이건 일종의 장르 글쓰기라서 문법이 존재하거든요. 장르 글쓰기란 여기에 어떤 내용이들어갈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글쓰기입니다.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사이에 암묵적인 약속이 존재하죠. 어떤 약속이 있냐고요? 이 책을 안 읽은 사람들에게 모종의 도움을 줄 거라는 약속입니다.
예를 들어 검색창에 책 제목을 넣고 서평을 찾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은 어떻게 - P283

생각할까?‘, ‘나는 이렇게 판단했는데 다른 사람은 어떻게 판단할까?" 이런 걸 알고 싶어서 찾습니다. 또는 ‘이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이면서 어떤 책인지를 알고 싶을 때도 서평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 책에 대해 알고 싶을 때도 서평을 읽으면 책의 대략적인 윤곽을 알 수 있습니다.
안 읽은 사람도 어느 정도는 읽은 듯 만들어 주는 게 서평의 규칙입니다. 이 책에는 이런 장단점이 있고, 여기에 주목해야 하고, 여기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죠. 서평이 뭔지 아는사람이 다른 서평을 찾아서 검색하고, 서평이 뭔지 아는 사람이 규칙에 맞추어 서평을 쓰는 겁니다. 서평의 독자는 책의 예비 독자들입니다. 고객이 분명한 글쓰기라는 것이죠. 그래서 서평을 장르 글쓰기라고 하는 겁니다. - P284

서평의 중반부는 줄거리로 시작합니다. 줄거리 요약이 나온다? 서평 좀 읽고 써본 사람들은 ‘척‘ 하고 알아듣습니다. 이제 앞부분이 끝나고 중간 부분이 시작된다는 것을요. 그러니까 ‘이제부터줄거리를 요약하겠다‘는 말은 쓰지 마세요. ‘여기가 바로 책의 내용이야‘ 이런 얘기도 필요 없어요. 그냥 줄거리 요약이 시작되면그게 중반부의 시작이 됩니다.
단, 줄거리는 길게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줄거리 요약이 길면 내가 분석하고 판단한 장점과 단점에 대해 논할 분량이 줄어듭니다. 어디까지나 줄거리의 ‘요약‘입니다. 요약은 간략하게 쓴다는말입니다.
좋은 비평문을 쓰려면 책을 장악해야 합니다. 내가 이 책을 장 - P287

악했는지 아닌지 셀프 점검하려면 이 책을 한 문단으로 깔끔하게요약할 수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서평의 줄거리는 짧고 굵게, 분명하고 깔끔하게 한두 문단 정도로 쓰면 됩니다.
요약을 마무리했다면 이제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딱 3개만 찾으세요. 직접 인용을 할 부분입니다. 왜 3개냐고요? 10개, 20개도 찾을 수 있지만 너무 많이 중요하다는 말은 하나도 안 중요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을 선택해서 고르는 일도 중요한판단입니다. 뭔가를 발췌하고 인용했다면 왜 그게 중요한지를 쓰세요. 이 부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특징을 보여주는지, 어떤 상징이 있는지,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쓰는 거죠. 줄거리와중요한 부분, 중요한 이유. 여기까지가 서평의 중반부입니다. - P288

내가 준 별을 문장으로 표현해 보세요. 어떠어떠한 면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 어떤 점에서 긍정적이다, 무엇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총평을 내리세요.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이 책을 누구에게 추천할지 쓰는 겁니다.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 번아웃이 온 사람,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 등이책을 추천하고 싶은 대상과 이유를 적으면 마지막 결론이 완성됩니다.
조금 모자란다 싶으면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혹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가치를 제시하고, 연계 도서 등 확장할수 있는 유형을 제시하는 것도 좋습니다. - P289

이런 구조가 서평의 가장 흔한 패턴입니다. 물론 변주도 가능합니다. 누가 읽으면 좋을지 대상을 서두에 밝혀도 좋고, 줄거리를 글 맨앞에 써도 좋습니다. 서평 쓰실 때는 이런 점을 꼭 기억하세요.


°서평이란 책을 직접 읽고 쓰는 것이다.
°책만 대상으로 쓰지 않고 저자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고 쓴다.
°단 한 줄이라도 나의 ‘판단‘이 있다면 성공이다. - P289

저자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면 그의 어마어마한 이력 때문에 비판적인 점을 찾기 어렵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서평에 장점만얘기해야 할까요? 아니면 단점만 얘기해야 할까요? 그저 자신이본 것만 쓰면 됩니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에 내가 무슨 이야기를더 없어도 될까 걱정하는 분도 있는데, 얹어도 됩니다. 저자는 열린 마음으로 책의 장점과 단점을 귀담아들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 책이 본인한테 좋았으면 ‘나한테 좋았는데 당신한테도 좋지 않을까요‘라고 쓰고, 이 책의 어느 부분이좀 아쉬웠으면 ‘이 부분이 아쉬운데 당신한테도 좀 아쉽지 않을까요‘라고 쓰는 거예요. - P290

장점을 쓸 때는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어느 부분이다.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점입니다‘라고 쓰는 겁니다. 소설이라면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은 부분은 어느 부분입니다, 그부분은 우리에게 이러한 울림을 줍니다‘라고 쓰는 거죠. 실용서라면 ‘독자들에게 가장 큰 효용이 되는 부분은 어디이고, 이 부분의지표가 효율적입니다‘라고 쓸 수도 있겠죠. 이런 장점 찾기가 서평의 분석이 됩니다.
어떻게 이런 특징을 잘 찾아낼 수 있을까요? 대게를 먹을 때살을 잘 파먹으려면 포크 같은 기다란 꼬챙이가 필요합니다. 도구 - P290

가 있어야 살을 효과적으로 많이 긁어낼 수 있잖아요. 책도 비슷합니다. 중요한 부분을 골라낼 때는 미리 이런 문장을 적어놓고 시작해 보세요.
‘주목할 부분을 한번 찾아보자.‘
‘감명 깊은 부분을 찾아보자.‘
이렇게 써서 포스트잇으로 붙인 후 찾으면서 읽으면 훨씬 잘보입니다. 중요한 부분과 특징을 뽑아야 책에 대한 장악이 가능하고 남한테 도움도 줄 수 있어요. 그러니 의도적으로 저런 문장의도움을 받으세요.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기도 하거든요.
장점 쓰기보다 어려운 것이 단점 쓰기입니다. 내가 단점을 써도 될 수준인가를 고민하진 마세요. 단점이 보이면 쓰는 겁니다.
단, 단점이 없는데 억지로 끄집어내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단점을 못 찾아내면 저자에게 지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보이는그대로, 특징적인 부분을, 그것이 좋든 나쁘든 밝히는 게 서평의 분석입니다.
만약에 어느 부분에서 책의 허점을 
발견했다면 이렇게 쓰세요. ‘어떤 점이 아쉽다‘ 혹은 ‘이 부분이 보완된다면 더 좋은 저작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등이 단점을 서술하는 서평의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 P291

주제적인 제목, 즉 가제를 정하고 그 가제를 따라서 한 편의 글을완성했다면 이제 최종 제목을 붙일 시간입니다. 최종 제목 쓰기가 진짜 어렵습니다. 글쓰기 수업의 심화 단계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도 제목에 대한 겁니다. ‘어떻게 하면 제목 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던 중, 저는 최종 제목을 짓는 네 가지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이 공식 외에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저는 네 가지 공식 중에서 하나를 골라 적재적소에 쓴다면 제목 쓰기의 난관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P309

내가 쓴 글이 읽는 사람에게 훅 들어가길 원한다면 돌직구 제목을 선택하는 게 좋겠죠. 새벽 감성으로 촉촉하게 썼다면 감수성 제목을 생각해 보세요. 지적이고 학문적인 분위기를 주고 싶다면 모범생 제목을, 다른 사람들에게 트렌디하게 궁금증을 유발하고 싶다면 이상한 스타일을 선택하면 됩니다.
이 넷 중에 여러분이 쓰실 만한 게 하나는 있겠지 싶어서 이렇게 제목을 만드는 공식을 준비해 봤습니다. 제목 짓기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다면 이 넷 중에 하나를 실천해서 본문에 맞는 제목을 찾길 바랍니다. - P315

글쓰기를 땅에 글자라는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제목을 심는 곳이 가장 비싼 자리입니다. 정말 비옥하고 좁은 자리이기 때문에 선별한 단어만 잘 배치해야 합니다.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금싸라기 땅이 바로 제목의 자리죠.
가제는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도 있지만 수식어를 덧붙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옳은 끝맺음으로써의 최종 제목도 만드는 데 전략이 꼭 필요합니다. 제목 하나를 어떻게붙이느냐에 따라 본문이 활짝 피느냐, 조금 흐려지느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 P317

우리는 일상에서 제목을 쓸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제목 쓰기를 굳이 배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일상에 제목의자리는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광적으로 메모를 하는 편인데요, 날마다 오늘 하루를 기념하기 위해 일기를 씁니다. 다이어리 꾸미기도 퍽 좋아해요. 오늘 일과 감정을 자세히 쓸 시간이 부족하면 간단하게나마 메모를 남깁니다. ‘이상하지만 기분은 좋았던 날‘, ‘구름이 예뻐서 사진을 남겼던 날‘, ‘올해 석양이 제일 예뻤던 날‘, ‘아이들이 속 썩여서 많이 힘들었던 날‘, ‘남편하고 싸운 두 번째 날‘ 등 이렇게 쓰죠. 이런 글들이 저의 하루를 마감하는 제목이에요. - P317

저는 하루를 잘 마감하고 제목으로 남겨서 일기에 묻어두고 잊어버려야 다음 날을 잘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에도 제목을 붙일 수 있어요. 카페에 한두 시간 있었다면 그 시간을 흘려보내지 마시고 카페에서 보냈던 시간에 대해 제목을 붙여보세요. 그 제목이 모이면 오늘 하루의 제목이 됩니다. 하루의 제목이 모이면 1년의 제목이 되고, 70년, 80년 쌓이면 우리 인생의 제목이 됩니다. 여러분도 하루를 잘 살고 마치면서 ‘오늘의 제목‘을 달아보세요. - P318

여러분과 저는 한 편의 책을 쓰듯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중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저자요, 작가입니다. 우리는 그 여정 중에 잠깐 만났습니다. 작은 하이파이브 같은 책을 마무리하면서 여러분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맨 마지막 날에 우리가 우리의 책장을 덮을 때 좀 뿌듯한 제목이 달리기를, 당신이라는 책의 멋진 제목을 응원할게요. 결국 국어는 그 제목 하나를 위해 배우는 거 아닐까요.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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