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낳다


겨우내 몇 번의 혹한이 다녀갔지만
좀처럼 눈도 비도 내리지 않았다
나는 불 꺼진 빈집에 들어
남쪽 드넓은 들판의 험준한 바위산을 어림
한다
다른 산들에 기대지 않고 홀로 서서
푸른 밤이면 가랑이 사이에서 달을 낳는
슬픔의 깊이를

나는 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슬픔으로 가득한 지워지지 않는 바다와 포구가 있음을

나는 또한 안다
거친 수로를 맴돌던 바람 아직 잠들지 못하고
산정의 키 작은 나뭇가지 상고대는 꽁꽁 얼어 있음을

나는 기억한다
혹한 속에서도 강바닥부터 조금씩 물이 
흘러 물길을 열고

흐르는 것은 모두 크고 작은 슬픔을 안고 간다는 것을

나는 손을 뻗어 속삭인다
처마 밑 붉은 등 바람에 흔들리는 밤이면
거친 산등성이에 꽃망울 조심스레 잎을 낼 것이라고

나는 또한 말할 것이다
그 무렵 늦은 마음으로
나 다시 너에게로 갈 것이라고

먼 풍경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는
제 몸의 가지가 어디로 뻗을지 알지 못한다
수천 년을 흐르는 강 또한
물길이 어디로 나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가지가 어디로 뻗든
물길이 어디로 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지마다 초록이 오르고 꽃이 만개하고
물길 닿는 곳마다 생명이 움트는
나무와 강이 품고 빚어내는
먼 풍경이 아름다운 것이다

나도 내가 어떻게 뻗어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다
하여 그것들이 빚어낼 훗날의 풍경 또한
서둘러 예단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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