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결국, 잃은 뒤에야 그것의 소중함을알게 된다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진리를 나는 이 쾌적한 아파트에서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처음 약수를 길러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그 동네에 갔을 때, 집이 있던 골목 어귀에 들어선 순간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눈시울이뜨거워졌다. 숱하게 오르내렸던 비탈진 언덕을 지나 약수터에 이르자내 마음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온기로 덥혀졌다.
그, 평화,
햇살이 좋은 봄이면 책 한 권을 들고 나와 나무 그늘 아래서 읽었던 곳이 그곳이고, 저녁이면 계곡물에 떨어졌을 흰 산벚꽃잎을 보려고 산책 나왔던 곳이 그곳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충일과 평화가 거기 고스란히 떠돌고 있었다. - P221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은 소설가 한강이 1988년 아이오와대학 국제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하느라고 3개월 머무는 동안 사귄 여러 나라 시인, 소설가들과의 우정어린 사귐을 회상하는 애틋한 기록이다.
자기가 태어나서 오래 산 곳을 떠나 낯선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느끼는 저 생생한 자유로움-잠정적이나마 과거로부터 멀어지면서 활짝 피는 듯한 그 자유로움 속에 겪는 일들과 사귀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모두 파릇파릇할 것이다. 마음 안팎의 사물을파릇파릇하게 만드는 것이 시인의 영원한 임무라면, 이 책의 작가가 겪고 기록한 그시간들은 필경 시적인 순간들이며, 세계가 시작되기 전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준 마음의 가벼움과 원초성에 인화된 순간들이다.
작가가 말하듯이 그 사귐에 깃들어 있었던 평화, 우정, 따뜻함도 물론 그러한 상황의 소산이며, 글 속에 깃들어 다함이 없는 촉촉한(여성적) 애틋함이 읽는 사람을 감동에 젖게 한다.
-정현종(시인)

작가 한강, 자신의 이름 그대로, 그는 강을 똑 닮았다. 투명하고 유려한 그의 문장은먼 길 향하는 강물소리처럼 나직하면서도 깊고, 부드러우면서도 힘차다. 이 아름다운 산문집은 그의 고요한 영혼의 수면 위에 별처럼 잠시 머물렀다 떠난 사람들, 그리고 그 만남에 대한 애틋한 추억록이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마주친 그 특별한 만남들은 삶, 자유, 고독, 사랑, 그리움, 조국, 노래 그리고 눈물이 되어 우리들 앞에 감동적으로 다시 태어난다. 책을 덮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더 조용히 앉아있었다. "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고향을 잃고 세상을 떠도는 어느 망명 작가의 쓸쓸한 음성이 오래도록 가슴을 울렸다.
-임철우(소설가,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ㅂ한동안 망설였다. 4년여의 시간이 흘러, 아무래도 이 글들을 나의 것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고쳐 쓸 수도 없었다. 생각과 감정의 틀 자체가 변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거나 쓰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렇게 여러 날의 여러 마음 끝에, 결국 이렇게 책을 묶게 되었다. 최종 원고를 보내기 위해 오래 전의 나와 조우한 며칠 동안 나는 좀 어리둥절했다. 이런 나도 있었구나. 꽤 밝았구나. 마음이 가볍고 담담했구나. 단순하고 낙관적이었구나. 심오할 것도 무거울 것도 없이. 고통스럽게 파고들어간 자기 응시의 흔적 없이.
1998년 여름의 일이다. 첫 장편소설을 낸 지 열흘 만에, 나는 혼자서 여행가방 두 개를 끌고 미국의 소도시 아이오와시티로 날아갔 - P6

다. 그곳에서 3개월간 체류하며 아이오와 대학 주최의 국제창작 프로그램(IWP)에 참가했다. 세계의 열여덟 나라-주로 제3세계에서 온시인, 소설가들과 기숙사 8층에 함께 묵으며, 빠듯하지 않은 일정 속에서 자유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동료 작가들이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간 뒤에도 잠시 그곳에 머물다가, 한 달쯤 이곳저곳을 여행한 뒤 돌아왔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때의 경험들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국제창작 프로그램이나 미국 여행에 대한 보고서는 아니다. 실상 문학에대한 얘기조차 별로 없다. 그저 내가 만난 사람들짧게 스쳐가며 내면을 열어 보여준 이들에 대한 스케치, 혹은 크로키라고 하면 될까. - P7

그 거친 연필 자국 아래 서른 전의 젊은 내가 숨어 ㅡ생략되어 ㅡ 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생각하고, 이해하려 애쓰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생생히.
잡지에 이 글들을 연재하던 때부터, 오랫동안 재촉하고 원고를 기다려준 이영희 주간께 마음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책이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다감하게 애써주신 편집부의 여러분께도 감사한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한 모든 이들에게 그립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이 처음 나올 때 이렇게 써놓고서, 그 뒤로 시간이 6년 더 홀렀다. 그러니까 벌써 그 무렵으로부터 성큼성큼 10년을 떨어져나온 - P8

셈이다. 그래도 아직 가끔 그곳, 그 사람들의 꿈을 꿀 때가 있다.
책을 되살려 펴내주신 열림원의 민병일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감히 생각지도 못했는데 표지의 글을 써주신 정현종 선생님, 임철우 선생님께 부끄럽게 머리 숙여 인사 드린다. 오래도록, 애틋하게 감사드리게 될 것 같다.
새로 태어난 이 책으로 만나게 될 독자들께 반가운 안부인사 드린다.
2009. 겨울, 韓江 - P9

그녀는 네바다의 죽음계곡 안에 있는 아파치 보호구역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했다. 나는 좀놀랐다. 백인 중류층 일색인 중서부의 아이오와에서만 석 달을 보낸나에게 그녀는 내가 직접 대면한 첫 인디언이었다. "버스에 오르면내 옆에 앉을 건가?" 그녀는 물었다. "왜요?" "네가 마음에 들어서. 인상 쓰고 정면만 바라보고 말 한마디 건네려 하지 않는 인간들은 질색이야, 인생을 미워하는 사람들이지."
그래서 우리는 버스의 중간쯤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한국어에대해 물었고 영어를 중고등학교에서 배운다고 내가 설명하자 미소를지으며 말했다.
"나한테도 영어는 모국어가 아냐. 보호구역의 미션 스쿨에서 배 - P16

웠지. 내가 아파치말을 쓸 때마다 수녀들이 날 때렸어……. ‘노 아팟치!‘ ‘노 아팟치!‘ 하면서 한 수녀는 내 새끼손가락을 세 번 분질렀어"
그녀는 관절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여줬다. 아연한 나에게 그녀는 이어 말했다.
"내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아버지 어머니가 
백인들에게 살해됐어.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붙여줬지. 태양의 딸이라고, 태양의 딸, 살리달,"
그 할아버지도 그녀가 여섯 살 때 죽었고, 그 ‘나쁜‘ 미션스쿨에서 8학년을 마친 뒤 살리달은 켄터키의 목장에 갔다. 거기서 말을 돌 - P17

보며 밥과 숙소를 빌어 고등학교를 마쳤다. 인디언 남자와 결혼을 한것은 열여덟 살 때였다. 남편과 네바다에서 버지니아까지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리던 중 그가 철길 사고로 죽었다. 그때, 남편의 시신에서 물건들을 빼앗아 가는 백인들의 팔을 그녀는 부러뜨려버렸다고했다.
"나는 미쳤었어! 알겠어? 나는 미쳤었어."
달려온 경찰이 그녀의 허벅지와 허리 사이를 쐈고, 당시 임신 4개월이었던 그녀의 아기는 그 자리에서 사산됐다.
"그 뒤로 결혼을 안 하셨나요?" 내가 묻자 그녀는 대답했다. "결코!" 결혼을 안 한 것은 물론 그녀는 누구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 P18

하지 않았다. 안아주며 "네가 좋다"라는 말까지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건 상처를 주니까,
아프니까"라고 그녀는 이유를 설명했다.
몸을 회복한 뒤 그녀는 여러 주의 보호구역을 전전하며 방황했다. 처음으로 바다를 본 것은 플로리다에서였다. 그 위에 떠 있는 요트들을 봤을 때 그녀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저거다!" "난 저걸 몰 거다!"
그녀는 항해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전문대에 들어갔다. 졸업한뒤, 스페인의 선박회사에서 만든 대형 요트를 직접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까지 운반해 오는 일을 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만한 고래가 - P20

지나가는 것을 보기도 했고, 태풍을 만나 배가 가라앉은 적도 있었다고했다.
"배가 가라앉다니, 그럼 어떻게 살아남은 거죠?"
"아니, 나는 그때 죽었어."
짐짓 유령처럼 무서운 얼굴로 나를 겁주더니, 살리달은 구명보트를 타고 구조를 기다리던 긴박한 순간들을 묘사하다 말고 갑자기 침묵했다. 창밖 밤하늘의 무수한 흰 별들이 우리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침묵을 깨고 그녀는 말했다.
"......여기가 세도나야, 붉고 아름다운 암석들이 있는데...... 낮에 왔으면 네가 보고 좋아했을 텐데. 하지만 별이 좋지? 난 한 번도 - P21

별을 바라보는 데 질려본 적이 없어."
그녀는 느닷없이 고개를 쳐들더니 조그만 소리로 코요테 울음을 흉내냈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난 별을 좋아해."
그녀는 이어 말했다.
"그리고 여행을 좋아해∙∙∙∙∙∙. 1년 이상은 한 곳에 있을 수 없어. 유목민 체질이라 그래."
여행하는 동안 외롭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자신의 왼쪽 어깨에는 죽은 어머니가, 오른쪽 어깨에는 죽은 아버지가, 가슴에는 죽은 남편이 함께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고 했다.
- P22

"나는 삶을 사랑해. 난 자유로워 이렇게 여행하다 보면 사람들을만날 수 있잖아? 오늘 너를 만난 것처럼.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느껴. 인디언 바구니 짜는 법을 백인들에게 강습한 적이 있지. 그때마다 난 말했어.
당신들이 만든 바구니에 기쁨을 담으라고."
"백인들을 증오하지 않나요?"
"다 지난 일이야."
그녀의 얼굴은 어두웠고, 조금 외로워 보였다. 잠시 후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다시 별을 향해 코요테 울음소리를 냈다. 질주하는차창 밖의 어둠이 별빛에 실려 어지럽게 흔들리던 밤이었다. - P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편지가 전화보다 좋은 것은 오래오래 생각해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편지로 하는 버릇이 있다. 영원히 증거로 남아도 좋을 얘기만 써보자, 하는 마음가짐이 오히려 이야기를 잘 풀어준다. 글쎄요...... 하고 머리를 긁적거리거나, 먼산만 바라보거나, 웃음으로 대충 얼버무리거나 할 수 없는백지 앞에서 상대방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가끔 그렇게 옛날의 감각으로, 아주 오래 모니터 앞에 앉아 이메일을 쓴다.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도 이렇게 쓸까, 아니면 저렇게 쓸까,
고민하며 몇 분을 보내버릴 때가 있다. 글쓰는 사람이어서라기보다는, 오랫동안 편지를 쓰던 습관 탓이지 싶다.
오래된 노래가 좋은 까닭은, 혹시 오래된 마음이 좋아서일까? - P119

어떤 슬픔이나 고통은 곧이곧대로 말하려 하다가는 말하는 사람의 몸뚱이를 으스러뜨려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가슴에 눌러두면 시름시름 앓게 될 테니, 방법은 하나다. 리듬에 맞춰 노래하는 것. 세자리아 에보라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 이렇게 인생을 넘어가는구나. 이토록 깊은 슬픔과 리듬 사이의 서늘한 낙차 속에서, 그저 흔들리며 넘어가는구나.
케이프 베르데의 민델로 항구에서 태어난 세자리아 에보라는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를 아홉 살 때 잃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 속에선술집들에서 노래하며 성장했다고 한다.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 끊기지 않는 가난 후에 프랑스에서 음반을 내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그것이 그녀의 근원을 달래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무대에서 맨발로 노래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발벗은 마음의 자유를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뻐근해진다.
가사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모든 것이 전달되는 이 노래. 리듬 속에 몸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리는 동안, 우리의 삶이라는 게 워낙에 흔들리는 것임을, 그러니 너무 슬퍼할 것도, 후회할 것도 없 - P124

음을 어느 틈에 서늘히 알게 되는 노래.

대학에 다닐 때 잠깐 풍물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북을 둘러메고 지쳐서 간신히 행군을 따라가고 있는 나에게 선배가 다가와 말했던 기억이 난다.
힘들면 무릎을 더 꺾어서 흥을 내봐. 춤을 춘다고 생각해. 가락을 타봐. 그러면 오히려 안 힘들어.
그 말대로 해보자 정말 힘이 들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유난히 지치고 마음 둘 데 없을 때 이 노래를 듣게 되는 것도 아마 비슷한 까닭일 게다. 막막하던 마음으로 흥겨운 기타 소리, 타악기의소리, 코러스들의 목소리, 깊고도 낮은 그녀의 목소리가 스며들어오면, 잠들어 있던 생명이 서서히 요동치며 꿈틀거린다. 살 거야. 살아야지. 살고 싶어. 춤추고 싶어. 더 무릎을 꺾어야지. 더 리듬을 타야지. 더 부딪혀야지. 더 껴안아야지. 더 담대하게 무너져야지. - P125

12월의 이야기


눈물도 얼어붙네
너의 뺨에 살얼음이

내 손으로 녹여서 따스하게 해줄게
내 손으로 녹여서 강물 되게 해줄게

눈물도 얼어붙는
12월의 사랑노래



가족과 함께 내가 서울로 올라온 것은 80년 1월이었다 (26일이라는 날짜도 기억한다). 서울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넓고 춥다‘는 것이었다.
유리창의 성에 얼어붙은 길. 딱딱 소리치며 이가 부딪히는 추위. 그것들은 아마 나에게 서울의 인상이자 삶의 인상이 되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겨울만 되면 필요 없는 새 스웨터를 사고 싶어지는 건, 추위에 대한 두려움이자 따뜻함에 대한 갈망 탓인지도 모르겠다. - P130

나무는 


언제나 내 곁에 있어
하늘과 나를 이어주며 거기
우듬지 잔가지 잎사귀 거기
내가 가장 나약할 때도

내가 바라보기 전에
나를 바라보고
내 실핏줄 검게 다 마르기 전에
그 푸른 입술 열어

언제나 나무는 내 곁에 있어
우듬지 잔가지 잎사귀 거기
내가 가장 외로울 때도
내가 가장 나약할 때도
음ㅡ 음ㅡ - P138

저기 자작나무가 심어져 있었구나. 한 그루, 두 그루, 세 그루.... 숨을 골라가며, 하나씩 세며 걸으니 모두 스물두 그루였다. 흰 우듬지,
흰 줄기, 흰 가지, 반짝이는 잎잎의 푸른 잎사귀들. 살아 있다는 것이 벅차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너무 벅차 오히려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누군가는 죽는다는 것이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듣지 못하는 거라고했다던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더 이상 나무를 보지 못하는 거라고 대답하고 싶다. 겨울날 뼈대를 드러내고 하늘을 향한 활엽수들, 봄날 연푸른 잎을 돋워내는 나무들. 그 줄기와 가지의 아름다움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그 잎사귀의 빛과 소리를 그 꽃과 냄새를 열매의 빛과 맛을.
우리가 가장 나약할 때, 가장 지쳤을 때, 때로 억울하거나, 서럽거나 후회할 때, 가장 황폐할 때,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나무는 그자리에 있다. 땅속 캄캄한 곳에서부터 잔뿌리들로 물줄기를 끌어올려 잎사귀 끝까지 밀어올리며,
그러니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때로 이들을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고요한 몸, 더욱 고요한 눈길로 이들을 떠올리기 위해서라도. 어느날 거울을 보았을 때, 내 그을린 얼굴 대신 한 그루 낮고 푸른 나무가비칠 때까지. - P142

더 읽을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픈 것은, 그의 운명을 미리 알기 때문입니다. 그가 동경에 가고자 하나 관의 허락을 못 받으면 마음이놓이고, 기어이 동경에 오고 말았소‘라고 하는 편지에서는 숨을 멈추게 됩니다. 하루하루 말라가며 저녁의 발열과 각혈, 가솔린 냄새로인한 구토를 견디는 대목은 그가 곧 죽을 것임을 내가 알기에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는 아직 모르나 나는 날짜까지 알고 있는 그의 미래말입니다. 한 달쯤만 있다 돌아가야겠소, 라는 다짐도, 돌아갈 수 없소 ㅡ 이대로는 결코, 라는 다짐도 부질없이 안타깝습니다.
밖으로 나오면 마음이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도처에서 그의 독백이 들리는 듯합니다. 짐짓 괜찮은 척 김기림의 안부를 묻고, 얼마 전시작했다는 배구가 재미있느냐며 너스레를 하고, 저녁에 듣고 온바이올린 연주에 대해 평하는 목소리입니다. 그러나 처절하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와주오. 제발 이리 와주오. - P176

카페 왈츠에서 곡들을 추리며 빼게 된 노래의 가사들은 더러 어두웠습니다. 차라리 우물 속처럼 아주 어두우면 그 어둠에 빛이 어리기도 할 텐데, 어떻게 보면 설어두운 노래들이었습니다. 빼면서는 조금아쉬웠지만 이제는 잘한 것 같습니다. 이 책의 글들도, 같은 마음으로 많이 덜어내며 썼습니다.
저는 제 운명을 미리 알지 못하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빛을 던지는 것뿐일까요. 아주 찬란한 빛이 아니라 해도 어슴푸레한, 빛의 어린아이 같은 무엇이라 해도…… 오직 생의 가운데에만 있는 무한한기쁨이, 어렴풋한 따스함으로라도 제 서툰 노래들에 배어 있기를 빌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의미 없는 바람이라는 걸. 하지만 바로 그 의미 없음으로써만 가까스로 살아남는 바람이라는 걸..... 이젠 조금은 알 것 같아서요. - P1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이여 고마워요 Gragias à la vida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어서
나에게 준 두 개의 밝은 별
그것을 열면
흑과 백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으니까
높은 하늘 깊이 별들이 보이고
군중 속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네요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어서
나에게 준 귀로 전부 새겨 넣게 되는
밤과 낮의
귀뚜라미와 카나리아 소리
망치 소리와 물레방아 소리, 공사장 소리와 소낙비 소리
그리고
마음 깊이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러운 목소리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어서 - P86

나에게 소리와 문자를 주어서
내가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할 수 있는 언어를 주어서
어머니 친구 형제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영혼의 길을 비춰줄 빛을 주어서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어서
힘차게 뛰는 심장을 주어서
인간의 두뇌가 이룩한 성과를 보며
선이 악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게 해주어서
그의 맑은 눈 깊은 곳에 내 시선이 가 닿게 해주어서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어서
웃음을 주고 눈물을 주어서
덕분에 행복과 슬픔이 구별되고
그것들이 내가 노래를 만드는 재료
당신들의 노래, 그것도 같은 노래, 모두의 
노래
그것은 나 자신의 노래 - P87

인생이여 고마워요



얼마 전, 요즘은 안 들고 다니는 가방을 창고에서 꺼내 정리하다가 여러 번 접은 A4용지를 발견했다. 펼쳐보니 이 긴 메모가 적혀있었다.



내가 가진 것.

눈이 있어, 세상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표정을 볼 수 있고책을 읽을 수 있고
그림을 볼 수 있고
나무를 볼 수 있다.

귀가 있어,
바람 소리, 빗소리,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음악을 들을 수 있다. - P88

코가 있어,
모든 냄새ㅡ쑥냄새, 아기 냄새, 풀냄새, 흙냄새,
군고구마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고소하고, 향긋하고, 은은하다.

입이 있어,
말할 수 있고,
노래할 수 있고,
맛볼 수 있다.

피부가 있어,
바람을 느끼고, 따뜻한 물의 감각을 느끼고,
아이의 살결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만 느끼고,
생생히 받아들이며 살 수 있어도 좋은 것.

어두운 것. - P89

무거운 것.
이 모든 감각을 잊게 하고, 금가게 하는 것들ㅡ 두려움, 후회, 근심, 갈등.
을 극복할 것.
그 길을 찾을 것.

살 수 있는 길을 찾아갈 것


마지막 줄, ‘살 수 있는 길을 찾아갈 것‘ 아래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잊고 있었는데 그때야 기억이 났다. 춤추며 <Let it be>를 듣던 바로 그 즈음에 쓴 메모였다. 내가 정말 모든 걸 잃은 건가, 소설을 못쓰게 되었다고 정말 그렇게 느껴도 되는 건가, 의문하며 백지를 펴놓고 차근차근 써내려갔었다.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들만을써보자. 라고 생각하며 쓰다 보니 이런 목록이 완성되었다.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들의 목록. 제목처럼 ‘내가 가진것‘들의 목록.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의 시작인 오감.
그때 나에게는 사실상 자존감이라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내면이황폐했었는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런 목록을 작성할 마음을 먹 - P90

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얼마간 신기하다. 더 신기한 것은, 이 목록이 <인생이여 고마워요>의 가사와 아주 조금 닮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노래의 시적인 가사는 풍요한 생명과 감사, 축복으로 가득 차있고, 그에 비하면 일상적인 언어로 씌어진 내 목록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것들을 기억하자는 첫걸음, 아니, 첫걸음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된 건 2년쯤 전이었다. 우연히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반을 갖게 되었고, 마지막에 실린 이 노래를 들었다. 유일하게 아는 스페인어가 고맙다는 말이고, 고등학교 때 불어를 조금 배웠으니 대략 인생에 고마워하는 내용이려니 짐작만 할 수 있었다. 전체적인 가사는 전혀 몰랐지만 반복되는 그 말, Gracias à la vida를 들을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그 후 세계음악에 대한 책을 읽다가 거기 실린 이 가사를 보았고, 칠레 가수 비올레타 파라가 부침 많은 삶을 겪은 뒤에 쓴 곡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불렀는데, 그중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성이 가장 정직하고 깊다. 세계음악을 좋아하는 친구가 들려준 존 바에즈와 메르세데스 소사가 함께 부른 노래도 감동적인데, 라이브의열띤 생생함이 마치 삶 전부를 벅찬 축제로 만드는 듯하다.
대학시절 은사이신 정현종 선생님의 시들 중에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제목의 시가 있다. 시창작론 시간에 내가 냈던 시에 ‘내 - P91

청춘이 하룻밤 흙탕물처럼 떠내려가버렸어요‘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강의 시간에 나에게 물으셨다. "정말 청춘이 가버렸다고 생각하나?" 내가 대답을 못하자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 난 아직도 밤마다 달밤이야."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달밤을 느낄 시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은지도. 이 노래처럼 인생에게 고백할 시간이 많지 않은지도, 실은 너에게 고맙다고. 이렇게도 많은 것을 나에게 베풀어주어서. - P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강
1970년 11월 광주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이 되던 해 겨울,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수유리에서 자랐다.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고 졸업한 뒤 3년쯤 책과 잡지 만드는 일을 했다.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4편을발표하고,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달이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예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을 냈다. 오늘의젊은 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버리고싶은 것은 한숨 쉬는 습관, 얻고 싶은 것은 단순함과 지혜, 입고싶지 않은 것은 길을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버릇이다.

새벽이면 걷다 오는 물가에 버드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라는 시집도 있지만, 버드나무들의 모습을 보면 식물에게도 감정이 있으리란 생각이 실감난다. 특히 그중 한 그루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이는데, 뭔가 나에게 말을 하고 있는것 같아서다. 뭘까. 뭐라고 하는 걸까. 그걸 들으려고 한참 서 있을때가 있다. 언어로 하지 않는 말이니 설령 들었다 해도 옮겨 적기는어렵다. 굳이 억지로 옮겨 적자면 …… 하루는 이렇게 말하더랬다.
울지 마라고. 그럴 거 없다고.
그 말이 맞다.
그럴 거 없다. - P5

소월의 시에 곡을 붙였다는 것도 모르며 이 노래 <엄마야 누나야>를 배운 것이 바로 그 방학이었다. 막내고모가 불러주었는데, 처음들은 순간부터 이해했고, 곧 좋아하게 되었다. 노래를 배우던 바로그때에도 뒤안의 바람 소리가 들렸으니까. 겨울 내내 뒷숲의 동백나무 잎사귀들이 솨솨 흔들리던 그 소리.
그러고 보면 바람이라는 단어도, 햇빛이라는 단어도 없이 얼마나햇빛과 바람으로 가득 찬 노래인지. 지금도 가끔 흥얼거리곤 하는데,
읊조릴수록 사무치는 소월시의 주술적인 힘과 함께 단순한 선율은 - P40

고요히 빛나며 몸을 채운다. 식물들처럼 사람에게도 향일성이 있어,
이렇게 빛나는 것에 끌리는 걸까. 빛나는 기억, 빛나는 유년, 빛나는시간, 빛나는 모국어 ...... 살아 있으니 다행이라고 속삭여주는 것 같은이 낮은 노래. - P41

지금도 그렇지만, 젊은 날 어머니는 눈물이 많았다. 한번은 아버지가 주무시는데 옆자리의 기척이 이상해, 팔을 뻗어 어머니의 얼굴을더듬어보니 손바닥이 젖었다고 했다. 철든 후 나는 가끔 그려보곤 했다. 소리내지 않고, 옆에 누운 사람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이를 물고,
눈물이 귓속으로 흘러들지만, 들킬까 봐 손을 들어 닦지도 못하고, 어둠 속에서 혼자 우는 여자. 그 밤은 어쩌다 아버지가 깨어 손을 뻗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밤이 훨씬 많았으리라.
이제 어머니는 예순세 살이다. 곧 아흔이 되는 할머니를 모시고 아버지와 함께 바닷가에 사신다. 피곤하면 입술이 먼저 붉게 부르트고,
무릎이 아파 무거운 것을 들거나 계단 오르내리는 것을 힘들어하신다. 올해 들어서는 어째선지 부쩍 쓸쓸해하시는데, 가끔 밭일을 버려둔 채 바닷가에 혼자 앉아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신다고 한다.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다만 짐작한다. 그렇게 때로 물살에 맡겨두어야 하는 당신 삶의 고단함을, 젊은 날의 그 노래처럼 바닷물이 출렁출렁, 당신 대신 목메어주는지. - P44

하지만 산울림의 노래 중에서 꼭 한 곡만 꼽으라면 아무래도 이 노래, <청춘>이 될 것 같다. 돌아가신 김현 선생님이 즐겨 부르셨다는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이라는 가사에는 정말 푸르른 청춘을 앓고 있는 사람의 애틋한 육성이 느껴진다. 후에, 누군가 이 가사를 바꿔 ‘갈 테면 가라지, 푸르른 이 청춘‘으로 부르는 걸 듣고 웃은 적이 있다. 그 노래를 들은 지 벌써 십년이 지났는데, 그 사람은 이제 어떻게 그 가사를 바꿔 부르고 있을까. 이젠 다 가버렸지, 푸르른 그 청춘? 가고 나니 애잔하네, 푸르던 그 청춘? 아니, 차라리 이렇게 갔어도 좋다네, 푸르른 그 청춘..
그런 것, 다시 돌아가기는 싫은 것. 그만큼 혹독했던 것. 언제나 가버리려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 그러나 돌아보면 이상하게도 달 무척 밝던 밤의 한 순간으로 기억되는 것. 청춘, 피었다 지는 꽃잎 같은. - P67

나는 한번 좋아하는 물건이 생기면 해지거나 잃어버릴 때까지 쓰고, 마음에 든 시디는 백 번도 더 듣고, 한번 나에게 감동을 준 작가나시인은 어떻게 변한다 해도 끝까지 이해하고 포기하지 않는다. 송창식도 그렇다. 어렸을 때, 두 팔을 허수아비처럼 활짝 벌리고 <피리 부는 사나이>를 부르는 허허실실한 모습에 반해 좋아하기 시작했고, 사춘기 땐 ‘그 헤벌쭉한 아저씨가 뭐가 좋아? ‘이상한 한복 좀 안 입었으면 좋겠어! 라는 친구들의 핀잔과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이제는 어쩌다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모습으로 여전히 바보처럼 커다랗게 웃으며 노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니..... 오, 위대할손 나의 끈기! - P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