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한동안 망설였다. 4년여의 시간이 흘러, 아무래도 이 글들을 나의 것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고쳐 쓸 수도 없었다. 생각과 감정의 틀 자체가 변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쓰거나 쓰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렇게 여러 날의 여러 마음 끝에, 결국 이렇게 책을 묶게 되었다. 최종 원고를 보내기 위해 오래 전의 나와 조우한 며칠 동안 나는 좀 어리둥절했다. 이런 나도 있었구나. 꽤 밝았구나. 마음이 가볍고 담담했구나. 단순하고 낙관적이었구나. 심오할 것도 무거울 것도 없이. 고통스럽게 파고들어간 자기 응시의 흔적 없이.
1998년 여름의 일이다. 첫 장편소설을 낸 지 열흘 만에, 나는 혼자서 여행가방 두 개를 끌고 미국의 소도시 아이오와시티로 날아갔 - P6

다. 그곳에서 3개월간 체류하며 아이오와 대학 주최의 국제창작 프로그램(IWP)에 참가했다. 세계의 열여덟 나라-주로 제3세계에서 온시인, 소설가들과 기숙사 8층에 함께 묵으며, 빠듯하지 않은 일정 속에서 자유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동료 작가들이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간 뒤에도 잠시 그곳에 머물다가, 한 달쯤 이곳저곳을 여행한 뒤 돌아왔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때의 경험들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국제창작 프로그램이나 미국 여행에 대한 보고서는 아니다. 실상 문학에대한 얘기조차 별로 없다. 그저 내가 만난 사람들짧게 스쳐가며 내면을 열어 보여준 이들에 대한 스케치, 혹은 크로키라고 하면 될까. - P7

그 거친 연필 자국 아래 서른 전의 젊은 내가 숨어 ㅡ생략되어 ㅡ 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생각하고, 이해하려 애쓰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생생히.
잡지에 이 글들을 연재하던 때부터, 오랫동안 재촉하고 원고를 기다려준 이영희 주간께 마음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책이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다감하게 애써주신 편집부의 여러분께도 감사한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한 모든 이들에게 그립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이 처음 나올 때 이렇게 써놓고서, 그 뒤로 시간이 6년 더 홀렀다. 그러니까 벌써 그 무렵으로부터 성큼성큼 10년을 떨어져나온 - P8

셈이다. 그래도 아직 가끔 그곳, 그 사람들의 꿈을 꿀 때가 있다.
책을 되살려 펴내주신 열림원의 민병일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감히 생각지도 못했는데 표지의 글을 써주신 정현종 선생님, 임철우 선생님께 부끄럽게 머리 숙여 인사 드린다. 오래도록, 애틋하게 감사드리게 될 것 같다.
새로 태어난 이 책으로 만나게 될 독자들께 반가운 안부인사 드린다.
2009. 겨울, 韓江 - P9

그녀는 네바다의 죽음계곡 안에 있는 아파치 보호구역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했다. 나는 좀놀랐다. 백인 중류층 일색인 중서부의 아이오와에서만 석 달을 보낸나에게 그녀는 내가 직접 대면한 첫 인디언이었다. "버스에 오르면내 옆에 앉을 건가?" 그녀는 물었다. "왜요?" "네가 마음에 들어서. 인상 쓰고 정면만 바라보고 말 한마디 건네려 하지 않는 인간들은 질색이야, 인생을 미워하는 사람들이지."
그래서 우리는 버스의 중간쯤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한국어에대해 물었고 영어를 중고등학교에서 배운다고 내가 설명하자 미소를지으며 말했다.
"나한테도 영어는 모국어가 아냐. 보호구역의 미션 스쿨에서 배 - P16

웠지. 내가 아파치말을 쓸 때마다 수녀들이 날 때렸어……. ‘노 아팟치!‘ ‘노 아팟치!‘ 하면서 한 수녀는 내 새끼손가락을 세 번 분질렀어"
그녀는 관절이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여줬다. 아연한 나에게 그녀는 이어 말했다.
"내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아버지 어머니가 
백인들에게 살해됐어.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붙여줬지. 태양의 딸이라고, 태양의 딸, 살리달,"
그 할아버지도 그녀가 여섯 살 때 죽었고, 그 ‘나쁜‘ 미션스쿨에서 8학년을 마친 뒤 살리달은 켄터키의 목장에 갔다. 거기서 말을 돌 - P17

보며 밥과 숙소를 빌어 고등학교를 마쳤다. 인디언 남자와 결혼을 한것은 열여덟 살 때였다. 남편과 네바다에서 버지니아까지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리던 중 그가 철길 사고로 죽었다. 그때, 남편의 시신에서 물건들을 빼앗아 가는 백인들의 팔을 그녀는 부러뜨려버렸다고했다.
"나는 미쳤었어! 알겠어? 나는 미쳤었어."
달려온 경찰이 그녀의 허벅지와 허리 사이를 쐈고, 당시 임신 4개월이었던 그녀의 아기는 그 자리에서 사산됐다.
"그 뒤로 결혼을 안 하셨나요?" 내가 묻자 그녀는 대답했다. "결코!" 결혼을 안 한 것은 물론 그녀는 누구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 P18

하지 않았다. 안아주며 "네가 좋다"라는 말까지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건 상처를 주니까,
아프니까"라고 그녀는 이유를 설명했다.
몸을 회복한 뒤 그녀는 여러 주의 보호구역을 전전하며 방황했다. 처음으로 바다를 본 것은 플로리다에서였다. 그 위에 떠 있는 요트들을 봤을 때 그녀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저거다!" "난 저걸 몰 거다!"
그녀는 항해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전문대에 들어갔다. 졸업한뒤, 스페인의 선박회사에서 만든 대형 요트를 직접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까지 운반해 오는 일을 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만한 고래가 - P20

지나가는 것을 보기도 했고, 태풍을 만나 배가 가라앉은 적도 있었다고했다.
"배가 가라앉다니, 그럼 어떻게 살아남은 거죠?"
"아니, 나는 그때 죽었어."
짐짓 유령처럼 무서운 얼굴로 나를 겁주더니, 살리달은 구명보트를 타고 구조를 기다리던 긴박한 순간들을 묘사하다 말고 갑자기 침묵했다. 창밖 밤하늘의 무수한 흰 별들이 우리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침묵을 깨고 그녀는 말했다.
"......여기가 세도나야, 붉고 아름다운 암석들이 있는데...... 낮에 왔으면 네가 보고 좋아했을 텐데. 하지만 별이 좋지? 난 한 번도 - P21

별을 바라보는 데 질려본 적이 없어."
그녀는 느닷없이 고개를 쳐들더니 조그만 소리로 코요테 울음을 흉내냈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난 별을 좋아해."
그녀는 이어 말했다.
"그리고 여행을 좋아해∙∙∙∙∙∙. 1년 이상은 한 곳에 있을 수 없어. 유목민 체질이라 그래."
여행하는 동안 외롭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자신의 왼쪽 어깨에는 죽은 어머니가, 오른쪽 어깨에는 죽은 아버지가, 가슴에는 죽은 남편이 함께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고 했다.
- P22

"나는 삶을 사랑해. 난 자유로워 이렇게 여행하다 보면 사람들을만날 수 있잖아? 오늘 너를 만난 것처럼.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느껴. 인디언 바구니 짜는 법을 백인들에게 강습한 적이 있지. 그때마다 난 말했어.
당신들이 만든 바구니에 기쁨을 담으라고."
"백인들을 증오하지 않나요?"
"다 지난 일이야."
그녀의 얼굴은 어두웠고, 조금 외로워 보였다. 잠시 후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다시 별을 향해 코요테 울음소리를 냈다. 질주하는차창 밖의 어둠이 별빛에 실려 어지럽게 흔들리던 밤이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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