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결국, 잃은 뒤에야 그것의 소중함을알게 된다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진리를 나는 이 쾌적한 아파트에서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처음 약수를 길러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그 동네에 갔을 때, 집이 있던 골목 어귀에 들어선 순간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눈시울이뜨거워졌다. 숱하게 오르내렸던 비탈진 언덕을 지나 약수터에 이르자내 마음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온기로 덥혀졌다.
그, 평화,
햇살이 좋은 봄이면 책 한 권을 들고 나와 나무 그늘 아래서 읽었던 곳이 그곳이고, 저녁이면 계곡물에 떨어졌을 흰 산벚꽃잎을 보려고 산책 나왔던 곳이 그곳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충일과 평화가 거기 고스란히 떠돌고 있었다. - P221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은 소설가 한강이 1988년 아이오와대학 국제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하느라고 3개월 머무는 동안 사귄 여러 나라 시인, 소설가들과의 우정어린 사귐을 회상하는 애틋한 기록이다.
자기가 태어나서 오래 산 곳을 떠나 낯선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느끼는 저 생생한 자유로움-잠정적이나마 과거로부터 멀어지면서 활짝 피는 듯한 그 자유로움 속에 겪는 일들과 사귀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모두 파릇파릇할 것이다. 마음 안팎의 사물을파릇파릇하게 만드는 것이 시인의 영원한 임무라면, 이 책의 작가가 겪고 기록한 그시간들은 필경 시적인 순간들이며, 세계가 시작되기 전과 같은 상황이 만들어준 마음의 가벼움과 원초성에 인화된 순간들이다.
작가가 말하듯이 그 사귐에 깃들어 있었던 평화, 우정, 따뜻함도 물론 그러한 상황의 소산이며, 글 속에 깃들어 다함이 없는 촉촉한(여성적) 애틋함이 읽는 사람을 감동에 젖게 한다.
-정현종(시인)

작가 한강, 자신의 이름 그대로, 그는 강을 똑 닮았다. 투명하고 유려한 그의 문장은먼 길 향하는 강물소리처럼 나직하면서도 깊고, 부드러우면서도 힘차다. 이 아름다운 산문집은 그의 고요한 영혼의 수면 위에 별처럼 잠시 머물렀다 떠난 사람들, 그리고 그 만남에 대한 애틋한 추억록이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마주친 그 특별한 만남들은 삶, 자유, 고독, 사랑, 그리움, 조국, 노래 그리고 눈물이 되어 우리들 앞에 감동적으로 다시 태어난다. 책을 덮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더 조용히 앉아있었다. "사랑이 아니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고향을 잃고 세상을 떠도는 어느 망명 작가의 쓸쓸한 음성이 오래도록 가슴을 울렸다.
-임철우(소설가,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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