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1970년 11월 광주에서 태어났다. 열한 살이 되던 해 겨울,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수유리에서 자랐다.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고 졸업한 뒤 3년쯤 책과 잡지 만드는 일을 했다.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4편을발표하고,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달이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예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을 냈다. 오늘의젊은 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버리고싶은 것은 한숨 쉬는 습관, 얻고 싶은 것은 단순함과 지혜, 입고싶지 않은 것은 길을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버릇이다.
새벽이면 걷다 오는 물가에 버드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라는 시집도 있지만, 버드나무들의 모습을 보면 식물에게도 감정이 있으리란 생각이 실감난다. 특히 그중 한 그루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이는데, 뭔가 나에게 말을 하고 있는것 같아서다. 뭘까. 뭐라고 하는 걸까. 그걸 들으려고 한참 서 있을때가 있다. 언어로 하지 않는 말이니 설령 들었다 해도 옮겨 적기는어렵다. 굳이 억지로 옮겨 적자면 …… 하루는 이렇게 말하더랬다. 울지 마라고. 그럴 거 없다고. 그 말이 맞다. 그럴 거 없다. - P5
소월의 시에 곡을 붙였다는 것도 모르며 이 노래 <엄마야 누나야>를 배운 것이 바로 그 방학이었다. 막내고모가 불러주었는데, 처음들은 순간부터 이해했고, 곧 좋아하게 되었다. 노래를 배우던 바로그때에도 뒤안의 바람 소리가 들렸으니까. 겨울 내내 뒷숲의 동백나무 잎사귀들이 솨솨 흔들리던 그 소리. 그러고 보면 바람이라는 단어도, 햇빛이라는 단어도 없이 얼마나햇빛과 바람으로 가득 찬 노래인지. 지금도 가끔 흥얼거리곤 하는데, 읊조릴수록 사무치는 소월시의 주술적인 힘과 함께 단순한 선율은 - P40
고요히 빛나며 몸을 채운다. 식물들처럼 사람에게도 향일성이 있어, 이렇게 빛나는 것에 끌리는 걸까. 빛나는 기억, 빛나는 유년, 빛나는시간, 빛나는 모국어 ...... 살아 있으니 다행이라고 속삭여주는 것 같은이 낮은 노래. - P41
지금도 그렇지만, 젊은 날 어머니는 눈물이 많았다. 한번은 아버지가 주무시는데 옆자리의 기척이 이상해, 팔을 뻗어 어머니의 얼굴을더듬어보니 손바닥이 젖었다고 했다. 철든 후 나는 가끔 그려보곤 했다. 소리내지 않고, 옆에 누운 사람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이를 물고, 눈물이 귓속으로 흘러들지만, 들킬까 봐 손을 들어 닦지도 못하고, 어둠 속에서 혼자 우는 여자. 그 밤은 어쩌다 아버지가 깨어 손을 뻗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밤이 훨씬 많았으리라. 이제 어머니는 예순세 살이다. 곧 아흔이 되는 할머니를 모시고 아버지와 함께 바닷가에 사신다. 피곤하면 입술이 먼저 붉게 부르트고, 무릎이 아파 무거운 것을 들거나 계단 오르내리는 것을 힘들어하신다. 올해 들어서는 어째선지 부쩍 쓸쓸해하시는데, 가끔 밭일을 버려둔 채 바닷가에 혼자 앉아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신다고 한다.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다만 짐작한다. 그렇게 때로 물살에 맡겨두어야 하는 당신 삶의 고단함을, 젊은 날의 그 노래처럼 바닷물이 출렁출렁, 당신 대신 목메어주는지. - P44
하지만 산울림의 노래 중에서 꼭 한 곡만 꼽으라면 아무래도 이 노래, <청춘>이 될 것 같다. 돌아가신 김현 선생님이 즐겨 부르셨다는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이라는 가사에는 정말 푸르른 청춘을 앓고 있는 사람의 애틋한 육성이 느껴진다. 후에, 누군가 이 가사를 바꿔 ‘갈 테면 가라지, 푸르른 이 청춘‘으로 부르는 걸 듣고 웃은 적이 있다. 그 노래를 들은 지 벌써 십년이 지났는데, 그 사람은 이제 어떻게 그 가사를 바꿔 부르고 있을까. 이젠 다 가버렸지, 푸르른 그 청춘? 가고 나니 애잔하네, 푸르던 그 청춘? 아니, 차라리 이렇게 갔어도 좋다네, 푸르른 그 청춘.. 그런 것, 다시 돌아가기는 싫은 것. 그만큼 혹독했던 것. 언제나 가버리려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 그러나 돌아보면 이상하게도 달 무척 밝던 밤의 한 순간으로 기억되는 것. 청춘, 피었다 지는 꽃잎 같은. - P67
나는 한번 좋아하는 물건이 생기면 해지거나 잃어버릴 때까지 쓰고, 마음에 든 시디는 백 번도 더 듣고, 한번 나에게 감동을 준 작가나시인은 어떻게 변한다 해도 끝까지 이해하고 포기하지 않는다. 송창식도 그렇다. 어렸을 때, 두 팔을 허수아비처럼 활짝 벌리고 <피리 부는 사나이>를 부르는 허허실실한 모습에 반해 좋아하기 시작했고, 사춘기 땐 ‘그 헤벌쭉한 아저씨가 뭐가 좋아? ‘이상한 한복 좀 안 입었으면 좋겠어! 라는 친구들의 핀잔과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이제는 어쩌다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모습으로 여전히 바보처럼 커다랗게 웃으며 노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니..... 오, 위대할손 나의 끈기!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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