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건스스로를 잠재적 작가라고 보는 사람들의 문제를 우회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내가 그랬다면‘, ‘내가 그럴 수 있었다면‘, ‘내가 시간이 있었다면‘이라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어쩌면 그건 사실 그들이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겠지요."
"산문 또는 시를 쓰는 작가의 창작 과정과 비교했을 때 그림을그리는 과정은 어떨까요?"
"클라리시, 아마도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재료의 차이일것입니다. 화가는 색과 그림과 선을 이용하죠. 작가는 문장을 이용하고요. 그러나 창작자로서의 숨은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본질이 다를까요?" - P585

"자원은 같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저는 루시우 카르도주에게 무척 놀랐어요. 그는 아픈 이후로 더는 글을 쓸 수도, 불러줄수도 없게 되었지요. 실어증에 걸렸거든요. 그렇지만 왼손으로그림을 그렸어요. 오른손은 마비된 상태였죠. 왜 왼손으로 글을쓰지 않았을까요? 의사가 설명하길,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틀리지 않는다면, 뇌에는 글, 단어가 나오는 엽이 있다고 해요. 또 다른 엽에서는 그림이 나오고요."
"그가 글을 쓰듯이 그림을 그릴까요? 아니죠. 그림을 그리는것은 수공업이에요, 도구를 다룰 줄 알아야 하는 거죠. 단어를가지고 창작하려고 애쓰는 작가도 마찬가지예요. 단번에 그림을 완성하는 화가는 없어요. 문학에서는 그런 게 존재하나요?" - P585

"어쩌면 랭보는 그랬을 거예요."
우리는 잠시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기 전에 완성작의 모습을 머릿속으로이미 그리시나요? 아니면 그 작품의 특별한 세계를 한 발 한 발발견해나가시나요?"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입니다. 예술가는 자기 작품의 첫 번째 관객이지요. 앞선 해결책, 깨친 지식은 새 작품을 창작하는 데 쓰이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배웠던 것을 잊으려고 할 때에만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는 이미 그린 그림들을 다시 그리는 데 시간을 다 썼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건 그저 복사, 복제품에 불과하지요. 네, 클라리시, 우리가 어떤 여행에 뛰어들 때 우리는 직관으로 무언가를 찾습니다. 나아가야 할 길을 정하고 목표 지점을 선택하지만, 그것이 도착 지점에 당도해야 밝혀지는 것들을 예단하는 일은 아니지요.  - P586

"어떻게 구상을 버리고 추상화가가 되신 걸까요?"
"저는 구상을 버리지 않았어요. 그저 변형시킨 것뿐입니다. 당신의 질문이 뛰어난 화가, 이름 있는 화가가 되기 위해 애썼느냐고 묻는 것이라면,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어요. 오히려 사람들이 저를 거장으로 여길 때마다 무척 놀라는걸요.... 당신은 어떠신가요? 이름을 알리는 게 중요한가요?"
"아니요, 그건 사회적인 문제일 뿐이에요. 실질적으로 중요한것은 표현하는 단어를 기다리며 백지 앞에 있는 것이지요. 그때가 정말 중요한 순간이에요. 이베레, 주제를 바꿔보죠. 어떻게 - P587

실패가 당신 작품의 출발점이 되었을까요?"
"실패는 제 어릴 적 판타지이자 저의 장난감이었어요. 그것이제가 만든 작품에 상징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인간의 얼굴에는 어떻게 관심을 두게 되셨나요?"
"화가의 관점으로 말하자면, 저는 인간의 얼굴에 특별한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으로서 얼굴은 그 사람을 비춰준다고 생각해요. 얼굴이 그 사람을 드러내지요. 저는 내면이 썩은사람은 외면도 썩었다고 생각해요. 클라리시, 그게 아니라면 특수효과를 내기 위해 배우들이 분장할 필요가 없겠지요."
"색깔은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색깔만으로 화가가 느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나요? 정확히 왜 붉은색 대신에 밤색을 쓰는 것일까요?" - P588

"저는 색이 문맥, 관계 속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립된 색이 차갑거나 따뜻하다고 한다면, 색의 강렬함은 다른 색과부딪치면서 그 정도가 결정되기도 해요."
"작품을 창작한 후에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해방되었다고 느끼시나요? 작업을 잠시 중단하기도 하시나요? 혹은 즉각적으로창작하셔야 하나요?"
이베레는 깊이 생각했다. 나는 그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작품 하나를, 혹은 연작을 끝내고 나면 비워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고 나서는 준비 작업이 시작되죠. 그렇게 창작 기간이다시 시작되는 거예요. 당신도 그런 경험을 하신 적이 있나요?" - P588

"비슷해요. 과장 하나 없이 절망이라 말할 수 있는 허무를 느껴요. 저는 더 심하죠. 새로운 작업의 발아와 준비에 몇 년이 걸리기도 하거든요. 그사이 저는 죽어 있는 거죠. 신인 화가들에게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잠시 생각을 좀 해볼게요." (그는 팔짱을 끼고 한동안 생각에잠겨 있다가 내게 물을 한 잔 마시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돌아와서이 질문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나도 역시 물 한 잔을 마시고 침묵 속에서 답을 기다렸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는 걸 아시나요?" 이베레가 말했다.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나는 대답했다. 마침내 이베레가 입을 열었다.
"자신이 그림을 창조했다고 믿지 말 것. 당신은요? 신인 작가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쓸것. 쓰고 또 쓸 것."
"야스퍼스는 새로운 세대는 손에 구멍이 나 있을 거라고 썼죠." 이베레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베레가 인용했던 야스퍼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 P589

세상에, 사랑이 얼마나 죽음을 방해하는지! 이해는 너무 제한적이기에 나는 내게 본능적, 직관적 삶을 살게 해준 나의 몰이해에 의지한다고 말하지만, 이 말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친구들을 잃었다. 그러나 죽는 것이 두렵진 않다. 나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쉼일 것이다. 그러니까 마침내 요람에 들어가는 것. 나는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낼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내가 버지니아 울프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게 싫다. (게다가 나는 첫 책을 쓰기 전까지 그녀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자살했다는 것을 나는 용서할 수 없다. 끔찍한 숙제는 끝까지 가는 것이다.  - P600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기만의 현실을 사는 것이다.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덜 고통받기 위해서는 조금 무뎌져야 한다. 더 이상 세상의 고통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며 또 무엇을 느끼는지를 온전히 느낀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따라 살지만 더 이상힘이 없다. 나는 조금은 ‘나를 위해‘ 살 것이다. 조금 더 무뎌질것이다- 내가 절대 하지 않을 말이 있다. 책에는, 신문에는 더욱이 하지 않는다. 세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한 남자가 내게 말하길 탈무드는 많은 사람에게 하지 못하는, 몇몇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을 한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 - P600

는 내 자신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나는 내가 몇 가지 진실을 알고 있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내가 그것을 정신적으로 이해하는지 모르겠다. 그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성숙해야만 한다. 난 이미 짐작하고 있다. 그렇지만 진실에는 단어가 없다. 진실들인가 진리인가? 내가 신에 대해 말할 거라고생각하지 말기를. 그것은 나만 아는 비밀이니까.
맑은 가을날이다. 해변에 부드러운 바람과 자유가 가득하다. 나는 혼자였다. 그때는 아무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는 것을 누군가와 나눠야 하니까. 바다는 잠잠했고, 나도 역시 차분했다. 그러나 의심하며 경계했다. 그 고요함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처럼. 아직도 곧 무언가 도래할 것 같다. 뜻밖의 일은 나를 매료시킨다. - P601

나는 이미 두 사람과 너무도 강렬한 대화를 나눠서 존재하면서도 존재하기를 멈췄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우리는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상대였고 상대는 나였다.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에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일은 너무도 어렵다. 너무도 조용하다.
두 영혼의 만남의 깊은 침묵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말로 하기 너무 어렵다. 우리는 서로를 뚫어질 듯 바라봤고 한동안 그 상태로 있었다. 우리 두 사람뿐이었다. 그 순간은 내 비밀이다. 이른바 완벽한 일치 상태가 됐다. 나는 그 순간을 행복의 예민한 상태라고 말한다. 정신이 끔찍하게 맑은 데다 보다 숭고한 차원의 - P601

인간성에 다다르는 느낌인 것이다. 그것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가장 고귀한 순간이었다. 다만 그런 후에…… 그러고 나서 이사람들에게 그 순간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 분주했고 나는 혼자였다. 완전히 혼자였다. 그것은 깊을수록 말 없는 고통이다. 이제 나는 턴테이블을 고치러 온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잠시 멈춰야 한다. 내가 어떤자세로 타자기 앞에 돌아올지 모르겠다. 나는 한동안 음악을 듣지 않았다. 나를 무감각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번에는 영화 <잃어버린 전주곡>을 보면서 현행범이 되어 깜짝놀랐다. 음악이 흐르고 내가 울고 있었던 것이다. 운다고 부끄러워할 것은 없다. 내가 울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게 부끄러운것이지. 나는 글을 쓰고 돈을 받는다. 그러므로 써야 한다. - P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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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과 놀아주기


페널티킥, 프리킥, 오프사이드, 축구의 세칙을 모르지만 공차는 꿈을 꾼다

잔디밭도 축구장도 황토언덕도 아닌 별자리들 사이에서 공을 찬다
거문고자리 큰곰자리 페가수스자리가 한꺼번에 보이는 광활한 운동장

오리온자리의 허리띠 쪽으로 공을 몰다 유성우 쏟아져
황소자리 뿔 속에 들었다가 백조자리 여우자리 오가며
푸른 붉은 흰 콩을 서리해 깜부기불에 굽다
우주먼지 쏴아 걷히며 쾌청해지는 순간
돌고래자리 감마에서 오리온자리를 향해 다시 공을 몰고 달린다
그러다 다리를 삐는 때도 있지만,

잠에서 깨어 소변을 보러 간다
돌돌돌 소변 흐르는 소리가 지구 밖까지 흘러나가는 것

같은 비몽사몽
삔 다리와 멀쩡한 다리와 우주의 움푹 파인 곳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과 인간의 시간에 매달린 벌레집, 어린별들이 터뜨리는 꽃씨들, 푸드득 비늘을 터는 달의 북쪽 같은 걸 생각하다 다시 잠든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 몸이 살려고 뒤치락거리는 낮밤엔 득점이 필요 없는 축구를 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별자리 삼아 공이라 부를 만한 모든 공들을 제멋대로 드리블하며

꽃이라는 유심론


눈앞에 열명의 사람이 잘빠진 몸매로 웃고 있어도
백명의 사람이 반짝이는 선물을 펼쳐 보여도
내 눈엔 그대만 보이는

그대에게만 가서 꽂히는
마음
오직 그대에게만 맞는 열쇠처럼

그대가 아니면
내 마음나의 핵심을 열 수 없는

꽃이,
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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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카르무스가 말하기를, 보고 듣는 것도 오성이요, 모든것을 유익하게 사용하고, 모든 것을 처리하고, 다스리고 지배하는것도 오성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며영혼도 없다는 겁니다. 참으로 우리는 오성에게 스스로 활동할 수있는 자유를 주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비굴하고 비겁하게 만듭니다. 한 번이라도 자기 학생에게 키케로의 이런저런 문장의 수사법이나 문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선생이 있습니까?
마치 글자이며 음절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을 이루는 신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선생들은 그 문장들을 깃털까지 다 달린 통째로 우리 기억에 쑤셔 넣습니다. 외우는 것이 아는 것은 아니지요. 외우는 것은 남이 준 것을 기억에 간수해 놓는 것일 뿐입니다.
무엇을 확실하게 알면, 우리는 그 주인을 쳐다보거나 책으로 눈을돌리지 않고도 알아서 처리합니다. 순전히 책에만 의지한 능력이라니, 가련한 능력이로다! 그런 것은 장식으로나 쓰이지, 토대로쓰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플라톤의 견해에 따르면, 굳셈과 믿음과성실성이 진정한 철학이요, 다른 것을 겨냥하는 나머지 모든 학문은 겉치레에 불과하니까요. - P283

한 인간의 삶에서 대수롭지 않은 행동, 또는 의미 없어 보이는 말 한마디를 가려 내는 플루타르코스를 보는 것, 그것 자체가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사고력 있는 사람들이 간결하게 쓰는 것만 그토록 좋아하는 것은 유감입니다. 아마도 그들의 명성에는 그것이 더 나을지 몰라도,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덜합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우리가 그의 지식보다 판단력을 칭찬하기 바랍니다. 포만감을 주기보다 자기를 더 알고 싶어 하게 놓아두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는 좋은 일에 대해서도 말이 너무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알렉산드리다스가 스파르타의 법관들 앞에서 좋은말이지만 너무 길게 말한 자를 올바르게 나무랐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 이방인이여, 그대는 해야 할 말을, 하지 말아야 할방식으로 말하는구려."라고 말입니다. 체격이 빈약한 사람들은 옷에 털뭉치를 넣어 몸을 부풀리고, 내놓을 거리가 얄팍한 자는 말로 부풀립니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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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생각을 한다 해도, 분별 있는 사람은 일반의 옷입는 방식을 거부하지 않는다. 반대로 내가 보기엔 상궤에서 벗어나 특이하게 차려입는 것이야말로 참된 이치에서가 아니라 야심과 객기가 어우러진 겉멋에서 나온 듯싶다. 지혜로운 인간은 자기영혼을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빼어내어 자기 안으로 돌이켜, 만상을 거침없이 판단할 수 있는 자유와 권능 안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외적인 것들은 기왕에 받아들여진 방식과 관례를 온전히 따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공적인 사회가 우리 생각까지 간섭할 권리는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생각 이외의 것들, 즉 우리의 행동, 우리의일, 우리 재산과 우리 생명까지도, 우리는 사회가 쓰도록 빌려줘야 하며, 공통된 견해가 요구한다면 포기까지 해야 한다. 위대•하고 선한 소크라테스가 판관에게, 그것도 몹시 불공정하고 사악•한 판관에게 불복종함으로써 자기 생명을 구하는 것을 거부했듯이 말이다. 규칙 중의 규칙, 법 중의 보편적인 법은 누구나 자기 사는 땅의 법과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 P227

그러고도 한참을 말한 뒤 (두 시간이 넘도록 내내 말했으니) "물러가라."라며 말했다. "킨나, 전에 적이었던 너를 살려 주었던 것처럼 배반자요 시역자인 너를 살려 준다. 오늘부터 우리 사이에 우정이 시작되길 바란다. 우리 둘 중 누가 신의 있게 행동하는지보자. 목숨을 돌려준 나인지, 돌려받은 너인지." 이 말과 함께 그는 킨나를 두고 자리를 떠났다. 얼마 후 그는 킨나에게 집정관자리를 주었다. 감히 그 자리를 청하지 못한 것을 나무라면서 말이다. 이후 킨나는 그의 굳건한 친구가 되었고, 그의 유일한 상속자로 지명되었다. 아우구스투스의 나이 마흔에 일어난 이 사건 이래 그를 노린 음모나 공격이 한 번도 없었으니, 그가 베푼 관용은 정당한 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의 기즈 공작에게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관대한 처사는 차후에 같은 배신의 올가미에 빠지지 않도록 보장해 주지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지혜란 허망하고 변덕스럽다. 우리의 모든 계획, 우리의 결심이나 방비들을 가로질러 항상 사태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운수이다.
우리는 어떤 의사가 좋은 결과를 내면 운 좋은 의사라고 부른다. 마치 그들의 기술만으로는 장담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제 힘에만 의지하기에는 그 기반이 너무 약하다는 듯이. 또한 마치 운수의 손을 빌려야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의술뿐이라는 듯이. 의사의 기술을 극찬하건 헐뜯건 나는 다 믿는다. 왜냐하면 고 - P240

랍게도 우리는 서로간에 아무런 거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이들과는 반대여서, 항상 의술을 대단찮게 여겨 왔다. 그러다 병이 들면, 의술과 타협 관계에 들어가기는커녕 그것을 더욱 미워하고 무서워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약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기운을 차리고 건강을 회복해서 그들이 주는 약의 작용이나 위험을 좀 더 잘 견딜 수 있게 될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 달라고 대답한다. 나는 자연에 맡겨 둔다. 자연이 자기에게 가해진 공격을 방어하고, 해체하고 싶지 않은 이 몸의 골격을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이빨과 발톱을 갖추고 있겠거니 생각한다. 몸이 병과빈틈없이 찰싹 붙어 싸우고 있는 만큼, 몸을 구하러 달려든다는게 행여 몸이 아니라 몸의 적수를 돕고 몸에 다른 과제를 얹어 주게 되지나 않을까 겁내는 것이다. - P241

그런데 나는 의술뿐 아니라 보다 확실한 여러 기술 분야에서도운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하련다. 시인을 사로잡아 무아지경에 이르게 하는 시적 영감, 왜 그것은 운으로 돌리지 않겠는가? 시인 스스로 시적 영감이 자기 소질이나 능력을 훨씬 능가한다고고백하며,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온 것이요. 자기 능력에속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고 인정하는데 말이다. 웅변가들도 자기가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자신을 밀어붙이는 그 비상한 충동과 동요가 자기 능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림도 마찬가지여서 때로 화가의 손놀림에서 벗어나 화가 자신의 구상이나 재능을 능가해 버림으로써 화가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든다. 하지만그런 모든 작품들에서 운의 작용이 특히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작업자가 의도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지각하지도 못했을 때 나오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에 의해서이다.  - P241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택한 길, 나는 그것이 우리가 택할 수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그는 관용과 온화함으로 적들조차 자기를 사랑하게 하려고 애썼다. 음모가 발각되어도 그저 자기가 알고 있었다고 선언했을 뿐이다. 그렇게 한 뒤 신들과 운수의 가호에 자기를 맡긴 채, 두려움도 근심도 없이 자기에게 닥칠 일을 기다린다는 너무도 고매한 결심을 한 것이다. 살해될 때의 그의 상태가 분명 그러했다. - P248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식물이 죽고 기름을 너무 많이 넣으면등불이 꺼지듯이 정신의 활동도 너무 많이 공부하고 너무 많은 재료를 채워 넣으면 둔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생각할거리가 너무 다양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우적거리는 정신이 뚫고 나올 힘을 잃은 채 그 짐에 눌려 허리가 굽고 웅크리게된 형국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이 우리 영혼은가득 채워질수록 더 확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의 예를 보건대, 오히려 공공 영역을 담당한 유능한 사람들이나 위대한 장수들,
국사에 관여한 탁월한 조언자들은 대단한 지식인이기도 했다.
모든 공직에서 발을 빼고 있는 철학자들로 말하자면, 그들 역시 자기 시대의 거침없는 풍자 정신에 의해 이따금 조롱거리가 되곤 했다. 그들의 견해나 행동거지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스꽝스러워 보인 것이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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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백년 동안의 고독을 지은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 책은 보기 드물게 문학적가치를 지닌 베스트셀러다. 가족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 사랑과 폭력과 광기가 가득하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사실만을 가지고 글을 쓴다. 그의 인물들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한없이 고독한데,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들의 생각을 글로 옮기지 않는다. 작가 역시 "시와 유머, 고귀하고 마법 같은 언어로, 행위의 리듬을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광인, 시인, 혁명가, 망나니들, 예쁜 여자들, 이 모든 족속들에게서 " 넘어설 수 없는 고독감을 느꼈다. 시인 엘리아니 자구리가 훌륭한 번역을 해냈다. (포르투갈어에서 어떤 이국적 언어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책을 번역하는 동안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매순간 놀라운 책으로 366쪽에 예기치 못한 요소가 담겨 있다. 사비아 출판사에서 출간됐으며, 훌륭한 일러스트는 카리베의 작품이다.  - P397

충동, 그 이상은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그저 충동이었으나 하나의 충동은 아니다. 충동이 그 여자를 유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유지한다는 것은 어떤 ‘상태‘임을 암시하는데, 충동이 계속해서 그녀를 움직이니 ‘상태‘를 이야기하는 건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그녀는 어딘가 도달하려는 버릇이 있으므로 그 충동에 힘입어 어느 곳 또는 어느 행동에 다다를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충동의 자동사적 성질에 반하는 아주 작은 불편함을 일으킨다. 그러나 자동사적 성질을 말했다고 해서 충동의 무상성을 말하고자 함은 절대 아니다. ‘매매‘의 습성, 결론에도달해야 안도의 숨을 쉬는 행위에 익숙한 우리는 결론이 나지않는 것, 끝나지 않는 것, 흩어진 채로 있는 것, 중단된 것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사실상 충동은 늘 ‘어딘가로 향하게‘ 하는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다시 한번 거리에 대한 문제, 그러니까멀리 가려는 것인가 가까운 곳에 가려는 것인가, 또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숙고하게 만들 수 있는데, 이때 우리는 조금 전에 말했던 충동의 실행과 충동 그 자체를 혼동할 때 생기는아주 작은 불편함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 P401

우리는 글쓰기에서 형식과 내용의 대립을 말한다. 우리는 내용은 좋지만 형식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럴 수가! 그러나문제는 한쪽에 내용이 있고 다른 한쪽에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랬다면 쉬웠을 것이다. 그것은 형식을 이용하여이미 자유롭게 존재하는 것, 내용을 말하는 것일 테니까. 그러나형식과 내용의 대립은 본래 생각 안에 있다. 내용은 형식을 갖기위해 투쟁한다. 사실상 형식 없이는 어떤 내용을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오직 직관만이 내용도 형식도 필요로 하지 않고 진실에 이른다. 직관은 형체 없이 이뤄지는 가장 깊고 무의식적인성찰인 데 비해 형식은 나타나기 전에 애쓴다. 생각이나 글을 꼭두 국면으로 나눠야 한다면, 내가 보기에 형식은 내용이 준비된뒤에야 나오는 듯하다. 형식의 어려움은 내용을 구성하는 방식에서, 실제로 생각을 하거나 느끼는 데서 나온다-생각도 느낌도 때로는 독창적인 적절한 형식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 P417

무언의 소통

고독으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것은 서로가 가진 고독이다. 때때로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이 서로 나누는 것은 고독의 감정이다. - P421

더구나 제가 첫 책을 낸이후로 사람들은 제 ‘문장들‘에 대해서 말하지요. 그렇지만 의심하지 마십시오. 저는 신의 보살핌으로 문장 자체를 바란 게 아니라 문장을 통한 무언가를 바랐고 또 얻어냈으니까요.
‘언어 편중주의‘라 불리는 것은 감정의 언어에 가능한 한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고통스러운 의지입니다그것이 저를 놀라게 하는 부분이고요. 그리고 그것은 저에게 주는 것과 받는 것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거리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제가 준 것과 사람들이 받은 것이 무엇인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상치아구단타스는 처음 이 책을 읽고 놀랐었지요. 그는 저에게 실력이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난 후 그는 잠이 오지 않는 밤에 한번 더 그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그러고 저에게 경악하며 말했지요. "이건 당신이 쓴 최고의 책이잖아요." 그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루크레시아 네비스와 상제라우두의 말들을 깊이 이해했다는 점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아니요, 당신은 그 책을 ‘묻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역시 그 책을 ‘지었지요‘. 죄송하지만 상제라우두의 말들 중 한 마리처럼요. - P428

나는 어릴 적부터 개미들의 행렬을 책임졌다. 개미들은 인디언들처럼 줄을 서서 작은 나뭇잎을 들고 걷는데, 반대 방향에서오는 행렬이나 다른 개미들에게 뭔가를 말하기 위해 멈추는 행렬을 만나도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벌을, 특히 여왕벌을 책임진 이후로 벌에 관한 유명한 책을 읽었다. 벌들은 날아다니고 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개미들은 크기가 매우 작은데, 어떤 개미든 매우 작으며, 개미 안에는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것을 주의 깊게 살피지않으면 놓치고 만다. 그러니까 조직에 대한 본능적 감각, 인간의귀가 감지하지 못하고 자애심이라는 본능적 감정이 감지하지 못하는 초음파 언어가 개미들에게는 있다. 나는 어릴 때 개미를 책임졌다. 그리고 지금은 그 개미들을 너무도 다시 보고 싶은데 단 한 마리도 만난 적이 없다. 누군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랬다면 내가 알았을 테니까. 세상을 책임진다는 것은 커다란 인내심 역시 요구한다. 나를 위해 개미 한 마리가 나타나는 날을 기다려야만 하니까. 인내란 지각할 수 없을 만큼미세하게, 천천히 피는 꽃을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그저 아직 그것을 깨달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 P434

어디서부터 시작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은 시작부터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은 동시에 써졌다. 모든 것은 거기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뚜껑이 열린 피아노의 시공간처럼, 동시에 울리는 피아노 건반처럼.
나는 커다란 주의를 기울이며 내 안에서 결성되고 있는 것을찾아 글을 썼고, 원고를 다섯 번째 본 이후로 그것을 지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말해지길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내가 두려웠던 건, 내가 나를 이해하는 것이 느리다는 이유로일어나는 짜증 때문에 때가 되기 전에 서둘러 어떤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시간을 더 들일수록 해야 하는 이야기를 혼란 없이 할 수 있으리라고 느꼈다. 아니 확신했다.
매번 모든 것은 인내심의 문제이고, 사랑이 인내를 만들며 인내가 사랑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 P456

자라나는 일그러진 영혼은 부피가 커지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무언가의 기다림이 형성되어 세상에 나오는 것임을 전혀 알지 못한다.
힘든 기다림과 더불어 즉흥적이었던 최초의 시선을 조금씩글로 재구성하는 인내도 있다. 시선을 되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나는 글을 쓰지 못한다. 생각을 설명하지 못하고, 하나의 생각에 단어의옷을 입히지 못한다. 내가 쓰는 것은 과거에 했던 생각을 참조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의 생각이다. 적합한 단어, 대체할 수 없는 단어 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로 이미 표면 위로 올라온 것 말이다. - P457

글을 쓰면서 나는 다시 한번 역설적이고 명백한 한 가지 확신을 느낀다. 글쓰기를 방해하는 것은 단어로 써야 한다는 것. 불편한 일이다. 그것은 내가 마치 더 직접적인 소통, 사람들 사이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말 없는 이해를 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내가 나무 위에 그린 그림이나 어린아이의 머리를 만지는 손길또는 시골길 산책 같은 중간 단계를 통해 글을 쓸 수 있었다면,
나는 절대 단어의 길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글을 쓰지않는 모든 이가 하는 것처럼 했을 것이고, 글을 쓰는 사람이 느끼 - P457

세상의는 것과 정확히 같은 기쁨과 고통을 느꼈을 것이며, 달랠 수 없는깊은 실망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나는 살았을 것이다. 단어를이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환영한다.


신문을 위한 글쓰기가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 글은 가볍다. 가벼워야 하며 피상적이어야 한다. 신문을 읽는 독자들은 깊게 읽고 싶어 하지 않고 깊이 읽을 시간도 없다. 그러나 책을 위한 글쓰기는 분명히 우리가 가진 것보다 더 커다란 힘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그렇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우리가 자신만의 작업 방식을 창조해야 할 때가 그렇다.  - P458

내가 열세 살에 의식적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를 인정했을 때 나는 어릴 적에 글을 썼지만 이 운명을 인정하진 않았다쓰기 의지를 인정했을 때, 갑자기 나 자신이 텅 빈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텅 빈 곳에서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아무도 없었다.
나는 스스로 무無에서 일어서야 했다. 스스로 자신을 이해해야 했다. 결국 내 진실을 말하기 위해 스스로를 꾸며내야 했다.
나는 시작했지만 시작부터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종이는 저희끼리 서로 부닥쳤다- 의미는 서로 반박했고, 할 수 없다는 절망은 실질적으로 할 수 없게 하는 부수적인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끝없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헤르만 헤세의 「황야 - P458

의 늑대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그걸 간직하지 않은 게 얼마나 안타까운지. 나는 입문자의 거의 초인적인, 자신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외면해 그것을 찢어버렸다. 모든 것은 비밀리에 이뤄졌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고통 속에서 혼자 살았다. 나는 일찌감치 한 가지를 짐작했다. 언제나 글쓰기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 글을 쓰기에 제일 좋은 순간을 기다리지 말 것, 그런 순간은 오지 않으니까. 내가 흔히 말하는 소명을 가졌다고 해도 내게 글쓰기는 늘 어려운 일이었다. 소명은 재능과는 다르다. 소명은 있어도 재능은 없을 수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부름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 P459

우주에 대해 산발적이면서 당황스러운 생각을 해본 끝에 몇 가지 명백한 결론에 이르게 됐다.(명백함은 매우 중요하다, 명백함이 어떤 진실성을 보장해주니까.) 나는 일단 무한함이 있다는 결톤에 이르렀다. 수학적인 추상적 관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무한함 말이다.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유한을 바탕으로 고찰하는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다음으로 만약 우주가 유한하다면 다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유한함 다음에는 무엇이시작된다는 말인가? 그러다가 신은 무한하다는, 나로서는 매우 겸손한 결론을 내리게 됐다.  - P476

나의 횡설수설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나는 그런 점이 기뻤다. 그것은 희망의 기쁨이었다. 나는 내가 아는 얼마 안 되는 지식으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러니까 내가 모르는 것에설명이 있을 수 있고, 나는 그것을 희망하며, 그 설명을 얻게 된다면 조금 더 알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무한함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정의하는 데 쓸 수 있는 형용사가 하나도 없다는 데 있다. 무한함은 존재한다. 그게 전부다. 그저 존재한다. 우리는 무의식으로 무한함과 연결된다. 우리의 무의식은 무한하다.
무한함은 억누르지 않는다. 무한함에 대해서라면 ‘규모‘나 ‘약 - P476

분 불가능‘을 말할 수 없으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한함에 동조하는 것뿐이다. 나는 절대적인 것이 무엇인지 안다. 나는존재하고, 또 나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나의 무지는 진정으로나의 희망이다. 나는 형용사화할 줄 모르고, 거기에 안전함이 있다. 형용사화는 질이다. 그리고 무의식은 무한함처럼 질도 양도아니다. 나는 무한함을 들이마신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자신에게 취한다.
절대적인 것은 인간의 정신으로는 표현할 수도, 상상할 수도없는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열망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은 무한함과 우리가 맺는 관계이며, 우리가 무한함에 동조하는 방식이다.  - P477

분명 흔치 않은 일이겠지만, 무한함의 존재가 너무도 강렬하게 느껴지는 순간에 우리는 현기증을 느낀다. 무한함은 다가오는 것이다. 무한함은 시간에 의해 불가분한 현재다. 무한함은 시간이다. 공간과 시간은 같은 것이다. 내가 물리와 수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일인가. 그것들을 이해했더라면 이 의미 없는 횡설수설 대신에제대로 숙고하고 내가 느낀 것을 전달하는 데 적합한 어휘력을가졌을 텐데.
나는 우리가 누리는 풍요에 놀란다. 인간은 몇 세기에 걸쳐 시간을 계절로 나누게 됐다. 무한함을 날과 달, 해로 나눠보기도한다. 무한함이라는 것이 매우 숨 막히게 하고 심장을 옥죌 수 있으니까. 불안 앞에서 우리는 무한함을 의식의 영역으로 데려가고 인간적 형태로 단순화하여 조직한다. 그 형태 또는 조직된 모 - P477

든 다른 형태 없이도 우리의 의식은 광기만큼 위험한 현기증을느낀다. 동시에 인간의 정신에 무한성의 영원함은 쾌락의 근원이고, 우리는 그 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해한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아간다. 우리 인생은 고작 무한함의 하나의 양식이다. 아니, 무한함은 양식이 없다. 의식이 무한함을 독식하는데 있어서 가장 적합한 형식은 무엇인가? 이미 말했듯이 무의식은 저와 무한함과 같다는 간단한 이유로 무한함을 인정한다. 우리가 원을 그린다면 우리는 무한함을 더 잘 이해하게 될까? 내가 틀렸다. 원은 완벽한 형태이지만 우리 인간의 정신에 속해 있어 인간의 본성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사실상 무한함에 형용사는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연스러운 실수 중 하나는 무한함이 우리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로부터 보는 관점을 취하지 않고서는 ‘나는 존재한다‘라는 생각에 이르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길을 잃었고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맞다, 무한함에 대해 바보 같은 소리를 적는 것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지금은 점심시간이고가정부가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이미 알렸다는 것. 내가 정말 멈춰야 할 순간이다. -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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