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생각을 한다 해도, 분별 있는 사람은 일반의 옷입는 방식을 거부하지 않는다. 반대로 내가 보기엔 상궤에서 벗어나 특이하게 차려입는 것이야말로 참된 이치에서가 아니라 야심과 객기가 어우러진 겉멋에서 나온 듯싶다. 지혜로운 인간은 자기영혼을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빼어내어 자기 안으로 돌이켜, 만상을 거침없이 판단할 수 있는 자유와 권능 안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외적인 것들은 기왕에 받아들여진 방식과 관례를 온전히 따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공적인 사회가 우리 생각까지 간섭할 권리는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생각 이외의 것들, 즉 우리의 행동, 우리의일, 우리 재산과 우리 생명까지도, 우리는 사회가 쓰도록 빌려줘야 하며, 공통된 견해가 요구한다면 포기까지 해야 한다. 위대•하고 선한 소크라테스가 판관에게, 그것도 몹시 불공정하고 사악•한 판관에게 불복종함으로써 자기 생명을 구하는 것을 거부했듯이 말이다. 규칙 중의 규칙, 법 중의 보편적인 법은 누구나 자기 사는 땅의 법과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 P227

그러고도 한참을 말한 뒤 (두 시간이 넘도록 내내 말했으니) "물러가라."라며 말했다. "킨나, 전에 적이었던 너를 살려 주었던 것처럼 배반자요 시역자인 너를 살려 준다. 오늘부터 우리 사이에 우정이 시작되길 바란다. 우리 둘 중 누가 신의 있게 행동하는지보자. 목숨을 돌려준 나인지, 돌려받은 너인지." 이 말과 함께 그는 킨나를 두고 자리를 떠났다. 얼마 후 그는 킨나에게 집정관자리를 주었다. 감히 그 자리를 청하지 못한 것을 나무라면서 말이다. 이후 킨나는 그의 굳건한 친구가 되었고, 그의 유일한 상속자로 지명되었다. 아우구스투스의 나이 마흔에 일어난 이 사건 이래 그를 노린 음모나 공격이 한 번도 없었으니, 그가 베푼 관용은 정당한 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의 기즈 공작에게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관대한 처사는 차후에 같은 배신의 올가미에 빠지지 않도록 보장해 주지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지혜란 허망하고 변덕스럽다. 우리의 모든 계획, 우리의 결심이나 방비들을 가로질러 항상 사태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운수이다.
우리는 어떤 의사가 좋은 결과를 내면 운 좋은 의사라고 부른다. 마치 그들의 기술만으로는 장담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제 힘에만 의지하기에는 그 기반이 너무 약하다는 듯이. 또한 마치 운수의 손을 빌려야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의술뿐이라는 듯이. 의사의 기술을 극찬하건 헐뜯건 나는 다 믿는다. 왜냐하면 고 - P240

랍게도 우리는 서로간에 아무런 거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이들과는 반대여서, 항상 의술을 대단찮게 여겨 왔다. 그러다 병이 들면, 의술과 타협 관계에 들어가기는커녕 그것을 더욱 미워하고 무서워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약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기운을 차리고 건강을 회복해서 그들이 주는 약의 작용이나 위험을 좀 더 잘 견딜 수 있게 될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 달라고 대답한다. 나는 자연에 맡겨 둔다. 자연이 자기에게 가해진 공격을 방어하고, 해체하고 싶지 않은 이 몸의 골격을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이빨과 발톱을 갖추고 있겠거니 생각한다. 몸이 병과빈틈없이 찰싹 붙어 싸우고 있는 만큼, 몸을 구하러 달려든다는게 행여 몸이 아니라 몸의 적수를 돕고 몸에 다른 과제를 얹어 주게 되지나 않을까 겁내는 것이다. - P241

그런데 나는 의술뿐 아니라 보다 확실한 여러 기술 분야에서도운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하련다. 시인을 사로잡아 무아지경에 이르게 하는 시적 영감, 왜 그것은 운으로 돌리지 않겠는가? 시인 스스로 시적 영감이 자기 소질이나 능력을 훨씬 능가한다고고백하며,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온 것이요. 자기 능력에속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고 인정하는데 말이다. 웅변가들도 자기가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자신을 밀어붙이는 그 비상한 충동과 동요가 자기 능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림도 마찬가지여서 때로 화가의 손놀림에서 벗어나 화가 자신의 구상이나 재능을 능가해 버림으로써 화가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든다. 하지만그런 모든 작품들에서 운의 작용이 특히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작업자가 의도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지각하지도 못했을 때 나오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에 의해서이다.  - P241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택한 길, 나는 그것이 우리가 택할 수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그는 관용과 온화함으로 적들조차 자기를 사랑하게 하려고 애썼다. 음모가 발각되어도 그저 자기가 알고 있었다고 선언했을 뿐이다. 그렇게 한 뒤 신들과 운수의 가호에 자기를 맡긴 채, 두려움도 근심도 없이 자기에게 닥칠 일을 기다린다는 너무도 고매한 결심을 한 것이다. 살해될 때의 그의 상태가 분명 그러했다. - P248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식물이 죽고 기름을 너무 많이 넣으면등불이 꺼지듯이 정신의 활동도 너무 많이 공부하고 너무 많은 재료를 채워 넣으면 둔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생각할거리가 너무 다양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우적거리는 정신이 뚫고 나올 힘을 잃은 채 그 짐에 눌려 허리가 굽고 웅크리게된 형국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이 우리 영혼은가득 채워질수록 더 확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의 예를 보건대, 오히려 공공 영역을 담당한 유능한 사람들이나 위대한 장수들,
국사에 관여한 탁월한 조언자들은 대단한 지식인이기도 했다.
모든 공직에서 발을 빼고 있는 철학자들로 말하자면, 그들 역시 자기 시대의 거침없는 풍자 정신에 의해 이따금 조롱거리가 되곤 했다. 그들의 견해나 행동거지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스꽝스러워 보인 것이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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