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람들



빌과 알린 밀러는 행복한 부부였다. 그러나 때로 그들은 그들이 속한 그룹에서 어쩐지 자기들만 별볼일 없이 사는 것 같다고느꼈다. 빌은 부기 업무에 매달리고, 알린은 비서의 잡무에 파묻혀 지내면서 말이다. 그들은 가끔씩 그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개는 이웃인 해리엇과 짐 스톤 부부의 삶과 비교해볼 때의 얘기였다. 밀러 부부에게는 스톤 부부가 더 충만하고 빛나는 삶을 사는듯이 보였다. 스톤네는 저녁때면 언제나 외식을 했고, 집에 손님을 초대했으며, 짐의 일과 관련하여 국내 여기저기를 여행하고다녔다.
스톤 부부는 밀러네와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다. 짐은기계 부품 회사의 세일즈맨이었는데 종종 일과 유람을 결합하는 - P18

재주를 부렸고, 이번에는 부부가 함께 열흘 동안 여행을 하며 친척들을 만난다면서 먼저 샤이엔으로 갔다가 그 다음에는 세인트투이스를 방문한다고 했다. 그들이 여행 가고 없을 때면 밀러 부부는 스톤네 아파트를 보살피고, 고양이 키티에게 먹이를 주고, 나무에 물을 주곤 했다.
빌과 짐이 차 옆에서 악수를 했고, 해리엇과 알린은 서로 팔을잡고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즐겁게 지내세요."
빌이 해리엇에게 말했다.
"그럴게요. 두 분도 즐겁게 지내요."
해리엇이 인사했다. 알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짐이 그녀에게 윙크했다.
"잘있어요, 알린, 남편 잘 돌보세요."
"네."
알린이 대답했다. - P19

그가 부엌으로 가서 반짝이는 싱크대 위에 쌓여 있는 깡통 중에서하나를 고르자 재빨리 뛰어올랐다. 그는 고양이가 얌전하게 먹이를 먹도록 놔두고 욕실로 갔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다시 바라보았다. 그는 약장을열고 알약통 하나를 찾아냈다. 통에 붙은 종이에는 ‘해리엇 스톤. 지시대로 하루 한 알‘ 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는 약통을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부엌으로 돌아와 물주전자를 꺼내어 거실로 갔다. 화분에 물을 준 다음 주전자를 바닥의 깔개 위에놓아두고 술을 넣어둔 장을 열었다. 뒤쪽에 놓인 시바스 리갈 병을 꺼내어 두 잔을 따라 마신 후, 소매로 입술을 닦고 술병을 장안에 도로 넣었다.
키티는 소파 위에서 자고 있었다. 그는 불을 끄고 천천히 문을닫은 후 잘 잠겼는지 확인했다. 뭔가 놓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P21

그들은 복도를 건너는 짧은 시간 동안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말을 했을 때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거의 알아들을 수가없었다.
"열쇠, 나한테 줘."
"뭐?"
그녀는 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열쇠 말야. 당신이 가지고 있잖아."
"이를 어째, 열쇠를 안에 놔뒀어."
그는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문은 잠겨 있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손잡이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이 벌어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는 두 팔을 벌렸고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겼다.
그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걱정 마. 제발, 걱정하지 마."
그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들은 서로 꼭 끌어안았다.
그들은 바람에 맞서듯이 문에 기대어 서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 P29

그들은 당신 남편이 아니야



얼 오버는 세일즈맨으로 현재 실직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아내 도린은 시내 변두리에 있는 24시간 커피숍에서 밤마다 종업원으로 일했다. 어느 날 밤 술을 마시다가 얼은 그 커피숍에 들러 뭘 좀먹기로 했다. 그는 도린이 일하는 곳을 보고 싶었고 공짜로 주문할 수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는 카운터에 앉아서 메뉴를 들여다보았다.
"당신 여기서 뭐 해요?"
그가 거기 앉아 있는 걸 보고 도린이 말했다.
그녀는 주문서를 주방장에게 주었다.
"얼, 뭘 주문할거예요? 애들은 괜찮아요?"
"괜찮아. 커피하고 2번 샌드위치 중 하나를 먹겠어." - P39

얼은 커피를 마시면서 샌드위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양복 차림에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 깃을 열어젖힌 남자 둘이 그의 옆에앉아서 커피를 시켰다. 도린이 커피를 따르고 가자 그중 한 사람이 옆의 남자에게 말했다.
"저 여자 엉덩이 좀 보게. 놀랍군."
다른 남자가 웃었다.
"그리 대단하진 않은데."
"내 말이 그거야."
처음 남자가 말했다.
"그렇지만 어떤 바보들은 엉덩이에 살이 많은 걸 좋아하지."
"난 아니야." - P40

그녀는 커피 주전자를 가지고 돌아와서 그와 그 옆의 두 남자에게 따라주었다. 그러고는 접시를 하나 집어들더니 아이스크림을가지러 갔다. 그녀는 아이스크림 통 안으로 몸을 굽히고 아이스크림을 뜨기 시작했다. 흰색 스커트가 엉덩이에 들러붙고 다리위로 끌려올라갔다. 거들이 보였다. 분홍색이었다. 주름이 지고창백하며 털이 약간 있는 허벅지와 보기 흉하게 퍼져나간 핏줄이 보였다.
얼 옆에 앉은 두 남자가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그들 중 하나가눈썹을 치켜올렸다. 다른 남자는 헤벌쭉 웃으며 도린이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 위에 초콜릿 시럽을 끼얹는 동안, 커피를 마시며그녀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녀가 휘핑 크림 깡통을 흔들기 시작했을 때 얼은 음식을 다 먹지도 않고 일어서서 문으로 향했다. 그녀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으나 그는 계속 걸었다. - P41

"나 조금씩 먹어요. 하루 종일 굶다가 일하면서 조금씩만 먹죠. 그게 상당한가봐요."
일 주일 후에 그녀의 몸무게는 5파운드가 줄었다. 그로부터 또 일주일 후에는 9파운드 반이 줄었다. 옷들이 헐렁해졌다. 그녀는 새 유니폼을 사기 위해 집세 낼 돈에 손을 대야 했다.
"커피숍에서 사람들이 말이 많아요."
그녀가 말했다.
"뭐라고 하는데?"
"첫째로는 내가 너무 창백하다고요. 내가 나 같아 보이지 않는대요. 살을 너무 많이 빼는 게 아닌가 하는거죠."
"살 빼는 게 뭐 잘못됐나? 그 사람들 말에 신경 쓰지 마. 자기들일이나 잘하라고 해. 그들은 당신 남편이 아니야. 그들과 함께 사는게 아니잖아."
"그 사람들과 일을 하잖아요."
도린이 말했다.
"그렇지. 하지만 그들은 당신 남편이 아니야."
얼이 대답했다. - P47

학생의 아내



그가 자신이 찬미하는 시인인 릴케의 시를 읽어주고 있는 동안그녀는 그의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다. 그는 큰 소리로 읽는 걸 좋아했고, 잘 읽기도 했다. 확신에 찬 맑은 목소리가 낮고 음울하게깔리다가 높아지는가 하면 흥분으로 떨리기도 했다. 읽을 때면절대로 책장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담배를 찾아 침대 옆 작은 탁자로 손을 뻗을 때에만 멈추었다. 그의 낭랑한 목소리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막 출발한 대상(商)과 긴 옷을 입고 수염기른 남자들이 나오는 꿈속으로 그녀를 떨어뜨렸다. 그녀는 잠깐동안 그가 읽어주는 것을 듣다가 눈을 감곤 스르르 잠에 빠지는것이었다. - P205

밖이 환해지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창가로 걸어갔다. 언덕 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하얗게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나무들과 길 건너편에 한줄로 늘어선 2층짜리 공동주택들이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동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늘이 점점 하얘지면서 언덕 뒤에서부터 빛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아이들 때문에 밤새 깨어 있었던 때를 제외하고는(그러나 그럴 때면 밖을 내다보지 않고 침대나 부엌으로 서둘러 돌아갔기 때문에 그녀는 그것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 그녀는 평생 해돋이를 몇 번 보지 못했다. 그것도 다 어렸을 때 본 것이었다. 그녀는 그 해돋이 중 어느 것도 지금 것과 같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그림에도, 어떤 책에도 해돋이가 이 - P219

렇게 끔찍하다고 나와 있지 않았다.
그녀는 기다리다가 문을 따고 현관으로 나갔다. 그녀는 가운의목 주변을 여몄다. 공기는 축축하고 차가웠다. 조금씩 조금씩 사물들의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눈길 닿는 대로 여기저기 바라보다가 건너편 언덕 위의 라디오 송신탑 꼭대기에서 반짝이는 붉은 빛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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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



나는 친구 리타네 집에서 커피를 앞에 놓고 담배를 피워가면서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다.
다음은 내가 그녀에게 얘기한 내용이다.
허브가 그 뚱뚱한 남자를 내 담당 테이블에 앉힌 건 손님이 뜸한 어느 수요일 저녁이었어.
그 뚱뚱한 남자는 단정한 외모에 아주 잘 차려입고 있긴 했지만, 난 그렇게 뚱뚱한 사람은 처음 봤어. 모든 게 다 크더라구. 하지만 가장 잘 기억나는 건 손가락이야. 그 사람 테이블 가까이에앉은 노부부의 시중을 들러 그 옆에 섰을 때 그 손가락들을 처음보았어. 보통사람 크기의 세 배는 되어 보이데. 길고 두껍고 말랑말랑하게 생겼어. - P9

나는 다른 테이블의 시중도 들어야 했어. 요구가 많은 사업가네 명이 앉은 테이블하고 남자 세 명과 여자 한명이 앉은 테이블, 그리고 노부부의 테이블이었지. 리앤더가 그 뚱뚱한 남자에게 물을 따라주었고, 나는 그 남자가 결정할 시간을 충분히 준 다음 그테이블로 갔어.
안녕하세요? 주문 받을까요? 내가 말했지.
리타, 그 남자는 덩치가 컸어, 정말 크더라구.
안녕하세요, 좋은 저녁이네요. 우리 이제 주문할 준비가 된 것같은데요, 하고 그가 말했지. - P10

그는 이런 식으로 말했어 ㅡ이상하지 않니? 그리고 때때로 조금씩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더라.
시저 샐러드로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그러고 나서 괜찮으시다면 수프에 빵과 버터를 곁들이구요. 양고기 요리가 좋을 것 같군요. 사워크림 얹은 구운 감자하고요. 디저트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합시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 메뉴를 건넸어.
세상에, 리타, 그 손가락이라니.
나는 서둘러 주방으로 가서 루디에게 주문서를 내밀었어. 그는인상을 쓰면서 그것을 받았어. 너도 알잖아. 그 사람 일할 때면 늘그런 얼굴이지. - P10

나는 침대에 들어가서 가장자리에 딱 붙어 배를 깔고 누웠어. 그런데 불을 끄고 침대로 들어오자마자 루디가 시작하는 거야. 나는 원치 않았지만 바로 누워서 몸의 힘을 뺐어. 그런데 바로 그거였어. 그가 내 위로 올라왔을 때 난 갑자기 내가 뚱뚱하다고 느낀 거야. 내가 끔찍하게 뚱뚱하다고, 너무 뚱뚱해서 루디가 조그맣게 되어버리고 날 제대로 안지도 못한다고.
말도 안 돼, 라고 리타가 말하지만 나는 그녀가 그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어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우울해진다. 하지만 그녀와 그 얘기를 계속 하지는 않을것이다. 벌써 그녀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말했다.
그녀는 우아한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지면서 기다리고앉아 있다.
뭘 기다리는 걸까? 난 알고 싶다.
8월이다.
내 인생은 변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느낀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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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너무한 일


이제 겨우 배가 떠서 기어다니기 시작하는 첫애기에게봉숭아 꽃물을 들여주겠다고 덤비는 엄마가 있었으니 그건 해도 너무한 일.
아이와 실랑이를 하는 엄마에게 남편은 핀잔은 주어도 그 맘속에는 엄마와 한가지인 어떤 게 있던 터라 외면하며 바라보는 여러 가지가 다 꽃 피어나듯 잔잔한 물결속인데, 그렇기는 해도 그 예닐곱 달 된 애기에게 봉숭아꽃물을 들이겠다고 한 것은 너무하긴 너무한 일이다. - P21

초승달에서



어스름 막 지난 때
노란 불을 하나 켜서 맞는
마지막 저물어가는 하늘빛 속으로
오너라
아픈 사람의 이마를 짚는 손길처럼
떡쌀에 머무는 흰빛처럼

오늘 하루
마음에 가장 오래 머문 일,
시들어 떨어지는 분꽃들
눈여겨 바라봐야 했던 일
말갛게 삭이러

허공을 파낸 이 풀씨만한 석굴(石窟)로. 분꽃이 지듯,
오너라
분꽃이 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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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오,
저 물위를 건너가는 물결들
처럼.

서른넷, 初
장석남

개정판 시인의 말


고맙게도 ‘서른넷, 初‘라고 쓴 그 아래에
나란히 이렇게 한번 더 써본다.
‘쉰여덟, 初!‘

그 사이를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여전히 젖은 눈이다.


2022년 3월
장석남

봉숭아를 심고


조그만 샛강이 하나 흘러왔다고 하면 될까
바람들이 슬하의 식구들을 데리고
내 속눈썹을 스친다고 하면 될까
봉숭아씨를 얻어다 화분에 묻고
싹이 돋아 문득
그 앞에 쪼그리고 앉는 일이여
돋은 떡잎 위에 어른대는
해와 달에도 겸하여
조심히 물을 뿌리는 일이여

후일 꽃이 피고 씨를 터뜨릴 때
무릎 펴고 일어나
일생을 잘살았다고 하면 되겠나
그중 몇은 물빛 손톱에게도 건너간
그러한 작고 간절한 일생이 여기 있었다고
있었다고 하면 되겠나
이 애기들 앞에서

일모



저기 뒹구는 것은 돌멩이
저것은 자기 그늘을 다독이는 오동나무
저것은 어딘가를 올라가는 계단
저것은 곧 밤이 되면 보이지 않을 새털구름
그리고 저것은 근심보다 더 낮은 데로 떨어지는 태양

화평한 가운데
어디선가 새소리 짧게 들리다 만다
오늘 저녁은 새의 일생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 시장기

밤의 창변



적적한 가정의 지붕들을 바라보며
종일 선배들의 에세이를 읽었다 때로
사랑은 헤어졌다가 나뭇잎 몇 번 지게 하고는 다시 만나더군
음악은 귀를 툭툭 치며 장마 지난 밭고랑을 따라갔고
어둠은 늘 말이 없는 가장처럼
슬픔 몇 송이를 오므려 갓더군
돋을새김한 불빛들
자세히 봐도
더 자세히 봐도 이곳에 온 내 생에서
참을 만한 것은
연애를 잃은
슬픔 정도뿐이더군
약관의 나라에 태어난 것 말고는
(이제 협궤열차도 없어지고......
남동 갯벌의 노을도 참을 만은 했었는데......)

돌멩이들



바닷소리 새까만
돌멩이 너덧 알을 주워다
책상 위에 풀어놓고
읽던 책 갈피에도 끼워두고 세간
기울어진 자리도 괴곤 했다
잠 아니 오는 밤에는 나머지 것들
물끄러미 치어다도 보다가 맨 처음
이 돌멩이들 있던 자리까지를
궁금해하노라면,

구름 지나는 그림자에
귀 먹먹해지는 어느 겨울날 오후
혼자 매인
늦둥이 송아지 눈매에 얹힌
낮달처럼
저나 나나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듯 외따로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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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일은 괴로웠다. 유월 초 아내가 떠난 뒤로 여름 내내 괴로웠다. 하지만 그 얼마 전까지, 그러니까 일하던 고등학교에서수업이 시작되기 얼마 전까지, 칼라일은 아이를 돌볼 사람이 필요 없었다. 그 자신이 아이를 돌봤다. 매일 밤낮으로 그는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멀리 여행을 떠났다고말했다.
그가 처음으로 구한 베이비시터 데비는 뚱뚱한 열아홉 살 소녀로 자기 집에는 가족이 많다고 칼라일에게 말했다. 아이들이저를 따르거든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두 개 정도의 이름을 적어주면서 참고하라고 했다. 그녀는 노트에 그 이름들을적기까지 했다. 칼라일은 그 이름을 건네받고 잘 접어서 셔츠 주 - P243

머니에 넣었다. 그는 그녀에게 다음 날 첫 수업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날 아침부터 일할 수 있는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물론이죠"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납득했다. 아일린은 칼라일이 성적표를 작성하고 있을 때 집을 떠났다. 그녀는 서던 캘리포니아에서 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칼라일의 고등학교 직장동료인 리처드 홉스와 떠나버렸다. 홉스는 연극교사이자 유리를 불어서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는데, 제시간에 성적표를 작성하고 자기물건들을 챙겨 아일린과 황급히 마을을 떠난 게 분명했다. 이제길고 고통스러웠던 여름은 거의 끝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칼라일은 결국 새로운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첫번째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누군가를, 그게 누구라도 구하려고 했기 때문에 데비를 선택한 것이다. - P244

칼라일은 말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두통도 여전했고, 파자마차림으로 자신의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묵묵히 기다리는 그 할머니와 함께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게 쑥스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두통이 사라졌다. 그다음에는 쑥스러운 느낌도멎더니 자신이 어떤 식으로 느끼고 있었는지도 잊어버렸다. 그는 아이가 태어난 뒤의 중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처음으로, 그러니까 아일린은 열여덟, 그는 열아홉시절의 일들, 한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나 사랑에 불타오르던 시절로 돌아갔다.
그는 이마를 닦기 위해 말을 멈췄다. 그는 입술을 적셨다.
"계속해요." 웹스터 부인이 말했다. "당신이 하는 말이 뭔지알아요. 계속 말하세요, 칼라일 씨, 때로는 그렇게 다 말하는 게 좋을 때가 있어요. 때로는 말해야만 하는 거라우. 게다가, 나도듣고 싶어요. 다 말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질 거예요. 나한테도 일어났던 일이에요. 당신이 말하는 얘기 말이에요. 사랑.
바로 그것 말이죠." - P285

노부부는 조심스레 길을 따라 걸어내려가 트럭에 올라탔다. 짐 웹스터는 대시보드 아래로 몸을 그렸다. 웹스터 부인은 칼라일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바로 그때, 그가 창가에 서 있을 때, 그는 뭔가가 완전히 떠나갔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일린과 관계된 이전의 삶과 관계된 그 뭔가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 적이 있었던가?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랬다는 것을 안다. 비록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그는 이제 모든게 끝났다는 걸 이해했고 그녀를 보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 - 비록 그게 불가능하게 보였고 그가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 - 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픽업이 덜컹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그는 다시 한번 팔을 올렸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두 부부가 짧게 그를 향해 몸을돌리는 걸 그는 바라봤다. 그런 다음 그는 팔을 내리고 아이들에게 몸을 돌렸다. - P287

굴레



미네소타 번호판을 단 스테이션왜건이 창 너머로 보이는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앞자리에는 남자와 여자가, 뒷자리에는 남자아이 둘이 타고 있다. 칠월이고 기온은 화씨 100도가 넘는다. 그 사람들은 기가 죽어 보인다. 차 안에는 옷들이 걸려 있다. 뒤에는 여행가방, 박스 등이 쌓여 있다. 할리와 내가 나중에 얘기를 맞춰본 바에 따르면, 미네소타에 있는 은행에다가 집, 픽업,
트랙터, 농기구, 소 몇 마리를 넘겨버린 그들에게 남은 물건은그게 다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잠시 가만히 앉아 있다. 우리 아파트의 에어컨은 펑펑 돌아가고 있다. 할리는 건물 뒤에서 잔디를 깎고 있다 앞자리에서 약간 말을 주고받은 - P289

뒤, 여자와 남자가 차에서 내려 현관문으로 향한다. 나는 손으로머리칼을 매만진 뒤 그들이 벨을 두 번 누를 때까지 기다린다.
그다음에 나는 그들을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아파트를 찾으시나요?" 나는 묻는다. "여기, 시원한 곳으로 들어오세요." 나는그들에게 거실을 보여준다. 거실은 내가 일하는 곳이다. 거기서나는 집세를 징수하고, 영수증을 쓰고, 관심이 있는 고객들과 상담한다. 나는 머리도 만진다. 나는 내가 스타일리스트라고 생각한다. 내 명함에 그렇게 적혀 있다. 나는 미용사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건 촌스럽다. 거실 한쪽에는 의자가 있고, 의자 뒤에는 내가 뽑아서 쓸 수 있는 드라이어가 있다. 몇 년 전 할리가 설치한세면대도 있다. 의자 옆에 있는 탁자에다 나는 잡지를 몇 권 갖다놓는다. 낡은 잡지들이다. 어떤 잡지는 표지도 뜯어지고 없다. 하지만 머리를 말리는 동안 사람들은 뭐라도 봐야 한다. - P290

서랍 안쪽 구석에서 나는 그 남자가 처음 찾아왔을 때 들고 온 말굴레를 본다. 서둘러서 떠나느라 빼놓고 간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있다. 그 남자가 일부러 두고 갔을 수도 있다.
"굴레"라고 나는 말해본다. 나는 그걸 창 쪽으로 들고가 밝은빛에 비춰본다. 멋질 수가 없는, 낡은 검은 가죽의 말굴레일 뿐이다. 내가 아는 바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거기에 말의 입에 물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 부분을 재갈이라고 부른다. 강철로 만들었다. 말의 머리 위로 고삐를 돌리므로 손가락사이로 목을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부가 그 고삐를 이리저리 잡아당기면 말은 방향을 바꾼다. 간단하다. 재갈은 무겁고 차갑다. 이빨로 이런 걸 물어야만 한다면 금방 많은 것을 알게 됐으리라. 뭔가 당겨진다면 그건 떠날 시간이 됐다는 뜻이라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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