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람들



빌과 알린 밀러는 행복한 부부였다. 그러나 때로 그들은 그들이 속한 그룹에서 어쩐지 자기들만 별볼일 없이 사는 것 같다고느꼈다. 빌은 부기 업무에 매달리고, 알린은 비서의 잡무에 파묻혀 지내면서 말이다. 그들은 가끔씩 그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개는 이웃인 해리엇과 짐 스톤 부부의 삶과 비교해볼 때의 얘기였다. 밀러 부부에게는 스톤 부부가 더 충만하고 빛나는 삶을 사는듯이 보였다. 스톤네는 저녁때면 언제나 외식을 했고, 집에 손님을 초대했으며, 짐의 일과 관련하여 국내 여기저기를 여행하고다녔다.
스톤 부부는 밀러네와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다. 짐은기계 부품 회사의 세일즈맨이었는데 종종 일과 유람을 결합하는 - P18

재주를 부렸고, 이번에는 부부가 함께 열흘 동안 여행을 하며 친척들을 만난다면서 먼저 샤이엔으로 갔다가 그 다음에는 세인트투이스를 방문한다고 했다. 그들이 여행 가고 없을 때면 밀러 부부는 스톤네 아파트를 보살피고, 고양이 키티에게 먹이를 주고, 나무에 물을 주곤 했다.
빌과 짐이 차 옆에서 악수를 했고, 해리엇과 알린은 서로 팔을잡고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즐겁게 지내세요."
빌이 해리엇에게 말했다.
"그럴게요. 두 분도 즐겁게 지내요."
해리엇이 인사했다. 알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짐이 그녀에게 윙크했다.
"잘있어요, 알린, 남편 잘 돌보세요."
"네."
알린이 대답했다. - P19

그가 부엌으로 가서 반짝이는 싱크대 위에 쌓여 있는 깡통 중에서하나를 고르자 재빨리 뛰어올랐다. 그는 고양이가 얌전하게 먹이를 먹도록 놔두고 욕실로 갔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다시 바라보았다. 그는 약장을열고 알약통 하나를 찾아냈다. 통에 붙은 종이에는 ‘해리엇 스톤. 지시대로 하루 한 알‘ 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는 약통을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부엌으로 돌아와 물주전자를 꺼내어 거실로 갔다. 화분에 물을 준 다음 주전자를 바닥의 깔개 위에놓아두고 술을 넣어둔 장을 열었다. 뒤쪽에 놓인 시바스 리갈 병을 꺼내어 두 잔을 따라 마신 후, 소매로 입술을 닦고 술병을 장안에 도로 넣었다.
키티는 소파 위에서 자고 있었다. 그는 불을 끄고 천천히 문을닫은 후 잘 잠겼는지 확인했다. 뭔가 놓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P21

그들은 복도를 건너는 짧은 시간 동안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말을 했을 때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거의 알아들을 수가없었다.
"열쇠, 나한테 줘."
"뭐?"
그녀는 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열쇠 말야. 당신이 가지고 있잖아."
"이를 어째, 열쇠를 안에 놔뒀어."
그는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문은 잠겨 있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손잡이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이 벌어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는 두 팔을 벌렸고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겼다.
그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걱정 마. 제발, 걱정하지 마."
그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들은 서로 꼭 끌어안았다.
그들은 바람에 맞서듯이 문에 기대어 서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 P29

그들은 당신 남편이 아니야



얼 오버는 세일즈맨으로 현재 실직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아내 도린은 시내 변두리에 있는 24시간 커피숍에서 밤마다 종업원으로 일했다. 어느 날 밤 술을 마시다가 얼은 그 커피숍에 들러 뭘 좀먹기로 했다. 그는 도린이 일하는 곳을 보고 싶었고 공짜로 주문할 수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는 카운터에 앉아서 메뉴를 들여다보았다.
"당신 여기서 뭐 해요?"
그가 거기 앉아 있는 걸 보고 도린이 말했다.
그녀는 주문서를 주방장에게 주었다.
"얼, 뭘 주문할거예요? 애들은 괜찮아요?"
"괜찮아. 커피하고 2번 샌드위치 중 하나를 먹겠어." - P39

얼은 커피를 마시면서 샌드위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양복 차림에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 깃을 열어젖힌 남자 둘이 그의 옆에앉아서 커피를 시켰다. 도린이 커피를 따르고 가자 그중 한 사람이 옆의 남자에게 말했다.
"저 여자 엉덩이 좀 보게. 놀랍군."
다른 남자가 웃었다.
"그리 대단하진 않은데."
"내 말이 그거야."
처음 남자가 말했다.
"그렇지만 어떤 바보들은 엉덩이에 살이 많은 걸 좋아하지."
"난 아니야." - P40

그녀는 커피 주전자를 가지고 돌아와서 그와 그 옆의 두 남자에게 따라주었다. 그러고는 접시를 하나 집어들더니 아이스크림을가지러 갔다. 그녀는 아이스크림 통 안으로 몸을 굽히고 아이스크림을 뜨기 시작했다. 흰색 스커트가 엉덩이에 들러붙고 다리위로 끌려올라갔다. 거들이 보였다. 분홍색이었다. 주름이 지고창백하며 털이 약간 있는 허벅지와 보기 흉하게 퍼져나간 핏줄이 보였다.
얼 옆에 앉은 두 남자가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그들 중 하나가눈썹을 치켜올렸다. 다른 남자는 헤벌쭉 웃으며 도린이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 위에 초콜릿 시럽을 끼얹는 동안, 커피를 마시며그녀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녀가 휘핑 크림 깡통을 흔들기 시작했을 때 얼은 음식을 다 먹지도 않고 일어서서 문으로 향했다. 그녀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으나 그는 계속 걸었다. - P41

"나 조금씩 먹어요. 하루 종일 굶다가 일하면서 조금씩만 먹죠. 그게 상당한가봐요."
일 주일 후에 그녀의 몸무게는 5파운드가 줄었다. 그로부터 또 일주일 후에는 9파운드 반이 줄었다. 옷들이 헐렁해졌다. 그녀는 새 유니폼을 사기 위해 집세 낼 돈에 손을 대야 했다.
"커피숍에서 사람들이 말이 많아요."
그녀가 말했다.
"뭐라고 하는데?"
"첫째로는 내가 너무 창백하다고요. 내가 나 같아 보이지 않는대요. 살을 너무 많이 빼는 게 아닌가 하는거죠."
"살 빼는 게 뭐 잘못됐나? 그 사람들 말에 신경 쓰지 마. 자기들일이나 잘하라고 해. 그들은 당신 남편이 아니야. 그들과 함께 사는게 아니잖아."
"그 사람들과 일을 하잖아요."
도린이 말했다.
"그렇지. 하지만 그들은 당신 남편이 아니야."
얼이 대답했다. - P47

학생의 아내



그가 자신이 찬미하는 시인인 릴케의 시를 읽어주고 있는 동안그녀는 그의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다. 그는 큰 소리로 읽는 걸 좋아했고, 잘 읽기도 했다. 확신에 찬 맑은 목소리가 낮고 음울하게깔리다가 높아지는가 하면 흥분으로 떨리기도 했다. 읽을 때면절대로 책장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담배를 찾아 침대 옆 작은 탁자로 손을 뻗을 때에만 멈추었다. 그의 낭랑한 목소리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막 출발한 대상(商)과 긴 옷을 입고 수염기른 남자들이 나오는 꿈속으로 그녀를 떨어뜨렸다. 그녀는 잠깐동안 그가 읽어주는 것을 듣다가 눈을 감곤 스르르 잠에 빠지는것이었다. - P205

밖이 환해지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창가로 걸어갔다. 언덕 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하얗게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나무들과 길 건너편에 한줄로 늘어선 2층짜리 공동주택들이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동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늘이 점점 하얘지면서 언덕 뒤에서부터 빛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아이들 때문에 밤새 깨어 있었던 때를 제외하고는(그러나 그럴 때면 밖을 내다보지 않고 침대나 부엌으로 서둘러 돌아갔기 때문에 그녀는 그것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 그녀는 평생 해돋이를 몇 번 보지 못했다. 그것도 다 어렸을 때 본 것이었다. 그녀는 그 해돋이 중 어느 것도 지금 것과 같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그림에도, 어떤 책에도 해돋이가 이 - P219

렇게 끔찍하다고 나와 있지 않았다.
그녀는 기다리다가 문을 따고 현관으로 나갔다. 그녀는 가운의목 주변을 여몄다. 공기는 축축하고 차가웠다. 조금씩 조금씩 사물들의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눈길 닿는 대로 여기저기 바라보다가 건너편 언덕 위의 라디오 송신탑 꼭대기에서 반짝이는 붉은 빛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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