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누가 머리를 깎아주는 일이나 슬리퍼나 재떨이나 옥수수죽 같은 것들에 대해글을 쓴다는 생각을 두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부끄럽습니다.

토요일 늦은 오후, 우리는 내 아파트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다. 거실 창밖에서는 이웃 아이들이 말다툼을 하고 있다. 스테이션 왜건 한대가 앞길을 천천히 지나간다. 그의 단편소설의 도입부로 쓸 만한 장면이다.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레이먼드 카버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성냥을 슬쩍 흔드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몸을 앞으로 숙인다.
"작가는 자신의 등장인물이 아니에요.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작가 자신이죠." 그가 말한다.
카버가 살아오면서 담당했던 여러 가지 역할들을 고려해본다면, 홍미로운 관찰이다. 그는 청소부였고, 제재소 일꾼이었고, 배달부였고, 소매점 점원이었고, 출판사의 편집자였다. 1973년부터 1974년까지 아이오와 문예창작 워크숍을 비롯한 여러 대학교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쳤다. - P29

"저는 플롯 라인이라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믿어요. 시를 쓰건 산문을 쓰건 늘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노력해요. 한동안은 단편소설을 쓸 시간이 없어서 시를 썼어요. 시를 쓰면 좋은 게 바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것도 그 자리에서 보이죠. 장편소설을 하나 쓰려고 몇 달을 공을 들였는데 그 결과물이 나쁘면 견디기 어렵잖아요. 장편을 쓰는 건 저로서는 엄청난 투자고, 게다가 저는 그렇게오랫동안 집중을 유지하는 걸 잘 못해요."
카버의 시들이 그의 단편소설들을 닮았다고 말하는 게 납득할 만하다면, 그의 단편소설들에 시적인 밀도가 있다고 하는 것 역시 맞는 말일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매우 선명하고 홀릴 정도로 단순하다. 소설 속의 그 또는 그녀가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독자들은 사건이 어디로 향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 P31

레이먼드 카버는 대사를 쓰는 일에 엄청난 기술을 가지고 있고, 그결과 그의 인물들은 어떤 괴이한 상황에 처해 있어도 매우 선명한 현실감을 가지고 있다.
단편 「알래스카에 뭐가 있지?」에서 메리와 칼은 잭이 생일 선물로받은 물 파이프를 시험해보면서 잭과 헬렌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낸다. 카버는 대마초에 취한 성인 네 명의 대화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구현해낼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일종의 잠재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일련의 갈등을 은근히 암시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이작품의 마지막 문장에서 절정에 도달한다. - P31

저는 제가 어떤 전통 속에 들어가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단편소설을 쓰는 일을 아주 편안하게 받아들입니다. 이야깃거리가 쌓여 있는 것같고,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이번 여름에는 쓸 여유가 생기길 바라고, 꼭 써야 합니다. 올 가을에는 단편집을 묶을 원고를 보내주기로 계약이 돼 있거든요. 그 일을 마무리 지은 뒤에는 장편소설을 쓰게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장편소설을 쓰라고 돈을 받은적이 있는데,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단편들을 썼죠. 아마 2주 정도 장편작업을 하다가 중단하고는 단편을 쓰는 일로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몇 년 동안 암묵적으로, 혹은 덜 암묵적으로 그 장편소설을 쓰라는일종의 압력을 받아왔던 것 같습니다. 제 아내부터 시작해서 출판사에이르기까지 모두들 "장편소설을 써야 한다"고 말했죠. 하지만 저는 단편소설과 시만 계속해서 썼습니다. 그러나 장편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년에는 쓰게 될지도 몰라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일들을 하는 게 좋아요. 더 이상 장편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 P36

전 단편소설을 쓰는 것과 시를 쓰는 일 사이의 유사성이 단편소설을 쓰는 것과 장편소설을 쓰는 것 사이의 유사성보다 확실히 더 크다고생각합니다.
시를 읽고 쓰는 게, 어쩌면 젊은 작가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훈련이라고 생각해요. 에드거 앨런 포는 그걸 ‘단일 효과single effect‘라고불렀어요.
저는 단편소설과 시를 같은 시기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날, 두개의 다른 잡지사로부터 각각 제시와 단편소설을 게재하겠다는 연락을받았어요. 아주 기분 좋은 날이었죠. 정말로 특별한 날이었어요. 제게 있었던 어떤 좋은 일 못지않게 좋은 일이었어요. 시 원고료로 1달러를 받았고, 소설에 대해서는 잡지가 나오면 저자 몫으로 몇 권 보내준다는 약속을 받았죠. 이렇게 일확천금을 얻는 겁니다. - P39

플래너리 오코너의 『미스터리와 태도들Mystery and Manners』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가 남긴 조각 글들을 모아서 사후에 발간한 건데, 지금도 잘 팔리고 있고,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오코너는 처음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그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경우는 손에 꼽을정도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머릿속에서 하나의 아이디어나 이미지,
몇 줄의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이게 발전해서 무언가가 되고, 그게 다시다른 무언가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위대한 이야기 「좋은 시골 사람들」 역시, 시작할 때만 해도 그는 그 이야기 안에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한쪽 다리는 의족인 여자가 등장하게 될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성경책 외판원이 전화를 거는 장면이 들어가게 될 거라는 것도 몰랐고요. 마지막 여덟 문장을 쓰기 전까지는 그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그 문장들은 오코너에게 들리면서, 그렇게 왔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이런 식으로 쓰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 P41

저는 체호프의 단편소설들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패러디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체호프로부터 빌려 오겠습니다. 그가 말한 것 그대로 빌려 오겠습니다. 체호프는 문학을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하나는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고, 다른 하나는 좋아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저는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정말로 아무런 이론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전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압니다. 제가 뭘 좋아하지 않는지 압니다. 저는 글쓰기에서 정직하지 않은 태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 속임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 정직한 이야기가 잘 서술된 걸 좋아합니다. 그 이야기 안에로맨스가 있든 없든, 그런 건 관계없습니다.
단편소설-특히 학생의 작품이든 잡지의 편집자가 보내온 것이든 원고 상태인 것들을 많이 읽다 보면 그 작품이 쓸 만한 건지 아닌지 첫 두세 문장만 읽어보면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단어들이 연결되면서 작동하는 방식, 보이는 모습, 느낌만으로 전달되는 뭔가가 있습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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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나는 싫다.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해 살다가는 주어진 현실만큼 타락하기도 일쑤이니,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주어진 현실을 혁명해야 하는 시점에 대해 열렬히 깨어 있는 자세와 함께 요구되어야 할 일이다. 삶은 여러 번 지속되겠으나 지금 삶은 한 번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속적인 성공의 끝이란 대개 뻔해서 돈과 명예 정도로 요약되는데 돈과명예가 한 사람의 존재를 정말 행복하게 해주는 필요 충분 조건이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혹은 선험적으로 이미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안전하게 그것을 쫓아 살다가 어느 순간 죽음의 순간을 맞게 된다면 참으로 허무하지 않겠는가. 꿈 없이, 안전한 길로만 골라 디디며 지루하게 살고 싶은가. 정말로? 라고 이곳에 오는 게스트들에게 오로빌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사는가,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묻게 되는 곳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별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 묻게 되는 곳이다. 여기는.
-P 288, 289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나는 싫다.˝ 고 쓸 수 있는 저 환경이 나는 부럽다.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삶을 사는 이들이 도처에 너무나 많다. 나를 비롯해서. 물론 용기가 없는 탓일게다. 점점 ‘용기‘라는 단어가 자주 필요해진다.


오로빌의 주민총회라 할 제너럴 미팅 General Meeting은 원형광장에서열린다. 안건을 제안한 사람이 사회를 본다. 총회의 의장은 없다. 오로빌은 신분, 지위의 고하가 없는 사회이므로. 인구가 불어날수록만장일치가 어려워지고 의사결정이 지연돼 발전이 정체되고 있다는주장이 있지만 아직 만장일치제가 원칙으로 적용되는 이유는 투표를 통한 다수결 방법이 민주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고, ‘신속한 발전이라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인가‘ 성찰하려는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신속하지 않을지라도 모두의 의견을 함께조율하고 공유하는 쪽으로 느리게 움직이는 게 오로빌의 민주적 리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세하다는 이야기다. 다수결이 민주적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경험하는가.
다수결은 또 다른 소외를 낳기 쉽고 소외는 미움을 싹트게 할 수있다는 말에 공감할수록 하나의 안건이 구성원 모두의 동의와 찬성에 이르기까지 몇 밤을 새더라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는 북미인디언들이 떠올랐다. - P201

오로빌의 상업 유닛에서는 뭔가 생산해 팔아서 수익을 내면 오로빌을 위해 기부하게 되어 있다. 오로빌의 사업체는 사적소유가 아니다. 사업체는 오로빌과 이웃을 위해 존재한다. ‘내 것‘을 만들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모두의 삶‘에 도움이 되기 위해 돈을 번다.
‘모두‘ 속에는 물론 ‘나‘도 포함되는 것이니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이윤을 ‘모두의 소유‘로 환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오로빌의 경제윤리, 얼마를 환원하는가는 최종적으로 각 단위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어서 차이가 있지만 버는 돈의 거의 전부를 환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조금만 내고 싶어 어떻게든 꿍꿍이를 꿍꿍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 P208

오로빌의 지속적인 유지와 성장에는 이렇게 오로빌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한 의지와 노동의 헌신. 이것은 말 그대로 통합적인 헌신이다. 물론 모든 오로빌리언이 다 이런 수준의 윤리의식과품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겠다. 개개인의 영혼의 수준에 따라오로빌에 사는 오로빌리언의 삶의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개중에는바깥세계처럼 개인의 탐욕이 먼저인 오로빌리언도 분명 있을 것이다. 게스트로서의 내 느낌은, 오로빌 주민들의 최소한 절반 정도는오로빌의 경제윤리를 무소유 - 공동소유의 수준으로 아름답게 고양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절반은? 글쎄다.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살것인가는 최종적으로 개인 각자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각자의 삶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스스로이므로, 오로빌 같은 곳에서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건 오직 자신만이 아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헌신에 편승해서 그저 편하게 살 수도 있고, 스스로도 헌신하는 기쁨을 누리며 살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기쁜 존재들이다. 도울 때의 기쁨, 누군가의 쓸모가 되어줄 때의 기쁨, 이런 것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오히려 그개인에게 불행일 것이니. 답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있겠지. - P213

나라 없는 티베트 민족의 파빌리언이 이곳에서 한국을 비롯한많은 나라 사람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해주며 나눔의 장을 만들고있는 것을 보는 일은 참으로 유정하다. 많은 오로빌리언들이 티베티안 파빌리언을 사랑하는 것은, 거대권력 중국의 강점에도 불구하고 티베트가 지상에서 사라질 수 없는 이유는, 세계의 도처에 이처럼티베트의 문화예술이 공기처럼 스며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전파된티베트의 문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사랑과 자비... 샥티... 샥티... 티베티안 파빌리언을 다녀올 때마다 문화예술의 역할에 대해 생각이 깊어지곤 했다. - P247

이 모든 이해들 혹은 오해들을 거쳐 당도할 결론은 없다.
‘결론‘이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 실험실, 완성을 향해 항해하되 미완성 상태로 스스로를 열어두려는 ‘생의 학교‘가 또한 오로빌이므로 이토록 많은 숙제를 안고 있는 오로빌로 숙제를 함께 풀어보고자 하는 다양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모여들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젊은이들이 계속 합류하고 있고, 오로빌에서 태어나 자라 오로빌 밖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이들도 오로빌 개혁의 꿈을 가지고 다시 오로빌로 돌아오고 있다. 그런 아이들을 맞는 어른들의 표정은 담백하고 환하다. 오로빌을 개혁하겠다는포부를 가지고 돌아왔던 부모세대가 다시 그렇게 돌아오는 아이들을 맞는 동안 오로빌은 멈추지 않고 조금씩 변화 중이다. 정체되어있지 않다는 것, 선의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어떤 실험도 가능한 열린 공간이라는 것. 실험과 개혁의 의지를 가진 어떤 사람도 환영한다는 것. 숙제를 풀어가는 과정과 스스로의 내면적 풍요를 찾아가는 과정이 결국엔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낙관적인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흥미롭다. - P264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순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청년기 오랫동안 내 다이어리맨 앞 장에 적어두곤 했던 말을 다시금 떠올린다. 어디서든 초심을유지하도록 매일 매순간 스스로를 깨우고 자기 감각을 점검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순간 삶의 주인이 아니라 삶의 노예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오로빌이 세계의 한 녘에 있어주어 고마운 이유, 내가오로빌을 좋아하는 이유는, 대세가 정해진 듯 보이는 세계에서 다른 질서를 창조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노력 때문이다. 그들의 치열함 속에 녹아 있는 선의와 우정의 연대과 포용의 느낌이 참 좋기 때문이다.


무소유, 집단소유, 개인소유가 한 공동체 안에 지지고 볶으며 공존하는 오로빌의 실험이 10년 후 20년 후엔 어찌 되어 있을지 나는퍽 궁금하다. 오로빌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좋은 시스템이 어느 수준까지 도달해볼 수 있을 지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하다. - P267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나는 싫다.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해 살다가는 주어진 현실만큼 타락하기도 일쑤이니,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주어진 현실을 혁명해야 하는 시점에 대해 열렬히 깨어 있는 자세와 함께 요구되어야 할 일이다. 삶은 여러 번 지속되겠으나 지금 삶은 한 번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속적인 성공의 끝이란 대개 뻔해서 돈과 명예 정도로 요약되는데 돈과명예가 한 사람의 존재를 정말 행복하게 해주는 필요 충분 조건이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혹은 선험적으로 이미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안전하게 그것을 쫓아 살다가 어느 순간 죽음의 순간을 맞게 된다면 참으로 허무하지 않겠는가. 꿈 없이, 안전한 길로만 골라 디디며 지루하게 살고 싶은가. 정말로? 라고 이곳에 오는 게스트들에게 오로빌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사는가,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묻게 되는 곳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별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 묻게 되는 곳이다. 여기는. - P289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고 따라가는 게 진짜 너의 삶이니? 정말 그렇니? 남들 다 갖는 거니까 나도 갖고 싶다는 게 진짜너의 욕망이니? 어차피 자리는 한정되어 있지. 1명의 합격자가 있기위해 999명의 불합격자가 있어야 하는 게 이상하지 않니? 999명이왜 1명을 위해 마련된 의자를 향해 돌진하다 절망해야 하니? 왜 그하나의 자리가 인생의 전 목적인 듯 달려가다가 낙오자의 패배감을맛보며 루저라는 말에 가슴 뜨금하며 살아야 하니? 다른 삶을 개척할 수는 정말 없는 거니? 난 말야 너희들이 도시의 삶에 목매지말았으면 좋겠어. 층층사다리를 통과하는 치열한 경쟁에서 간신히이겨 위로 올라가봤자 사실 거기 별거 없어. 진짜 내가 있어야 행복한 건데 진짜 내가 없기 쉬워 다르게 사는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다른 꿈들 말야. S야 모야 K야, 난 너희가 삼삼오오 뜻 맞고 마음맞는 친구들과 농촌으로 황무지로 전 세계의 의미있는 공동체들로자신의 삶을 실험하러 떠났으면 좋겠어. 여기 저기 한갓진 시골에서좋은 친구들과 함께 다양한 공동체를 실험해보면 좋겠어.  - P295

인생은 당신이 배우는 대로 형성되는 학교이다.

당신의 현재 생활은 책 속의 한 장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지나간 장들을 썼고, 뒤의 장들을 써갈 것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의 저자이다.
사람이 자기 조국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왜 국경에서 멈추는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당신의 사상을 하늘 위에
불로 새겨놓은 것처럼 그렇게 사고하라.
진실로 그렇게 하라.

온 세상이 단 하나의 귀만으로 당신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듯이
그렇게 말하라. 진실로 그렇게 하라

당신의 모든 행위가 당신의 머리 위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행동하라.
진실로 그렇게 하라.

당신의 신이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당신을 필요로 하듯이 살아라.
진실로 그렇게 하라. - P299

.....
땅과 태양과 동물들을 사랑하라, 부를 경멸하라,
원하는 모든 이에게 자선을 베풀라,
어리석고 제정신이 아닌 일에 맞서라,
당신의 수입과 노동을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 돌려라,
신에 대하여 논쟁하지 말라,
사람들에게는 참고 너그럽게 대하라,
당신이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것 또는
사람수가 많든 적든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라,
지식은 갖추지 못했으나 당신을 감동시키는 사람들,
젊은이들, 가족의 어머니들과 함께 가라,
자유롭게 살면서 당신 생애의 모든 해, 모든 계절,
산과들에 있는 이 나뭇잎들을 음미하라,
학교, 교회, 책에서 들은 모든 것을 다시 검토하라,
당신의 영혼을 모욕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하라.
.....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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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휩쓸려 간다. 부유물처럼, 물이 거세나 잔잔하냐에 따라 때로는 순하게, 때로는 격하게.

보지 못하는가?
인간이란 뭘 원하는지 모르고, 끊임없이 찾으면서,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려는 듯,
여기저기 옮겨 다닌다는 걸.
루크레티우스


날마다 새로운 공상을 품고, 날씨가 변하면 기분도 덩달아움직인다.

주피터가 세상에 보내는 다채로운 빛줄기들을 따라,
인간의 생각도 그와 함께 변하나니.
호메로스 - P14

플라톤은 「법률」에서, 공공의 비판이나 피치 못할 숙명적인불행,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수치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아니라 겁이 많아 비열하고 유약한 탓에 자기와 가장 가깝고 가장친한 자, 즉 자기 자신에게서 생명과 운명의 흐름을 빼앗은 자는수치스럽게 매장하라고 명한다.
게다가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견해는 가소롭다. 왜냐하면결국 그것이 우리의 존재요 우리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보다고상하고 풍요로운 존재를 지닌 것들은 우리를 비난해도 좋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찮게 여기며 우리를 소홀히 다루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다. 자기를 미워하고 하찮게 여기는 것은별난 병(病), 다른 피조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병이다.  - P45

이 역시 우리가 아닌 다른 것이 되고자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치한 생각이다. 그런 욕망의 결실은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 욕망자체가 자기모순, 자가당착이니까. 사람에서 천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저 자신을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천사가 된 것에서 아무 득도 보지 못한다. 그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누가 자기를 위한 이 변화를 느끼고 즐길 것인가?

한 존재가 불행과 고통을 느낄 수 있으려면,
그 불행이 닥치는 그 순간에
존재하고 있어야만 하므로.
루크레티우스 - P46

1573년이나 1574년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에세에서 몽테뉴는, 초기 에세에서 다룬 죽음과 병에 대한 그 자신의 강박관념, 삶을 위협하는 고난에 대처하기 위해 고대 철학자들이 수행했던 고행을 상기시킨 뒤, 1569년 또는 1570년 초에 겪은ㅈ낙마 사고를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그 체험을 에세 쓰기의 목적, 방법, 의미와 연결시킨다. 제목에 쓰인 ‘exercitation (연습, 수련, 훈련)‘은 고대의 철학집단과 그리스도교 등의 종교 집단이 진리와 이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삼은 어려운 논전, 고행 수행 등에 쓰인 옛 단어이다. 몽테뉴는 고대 철학이 설정한 거의 초인적이며 일면 가학적인 수행을 지칭하던 이 단어를 보편적 ‘인간조건‘을 지닌, ‘보잘것없고 광채 없는‘(『에세 3」 2장) ‘나‘의 인생을 참되고 가치있게 만들기 위한 ‘자기 탐구‘를 지칭하는 단어로 삼는다. 그 실행이 글쓰기였고,
그 글쓰기의 형태가 곧 ‘에세‘이므로, exercitation, 같은 뜻으로 보다 흔히 쓰인exercice, exercer, 그리고 essai는 글쓰기라는 하나의 행위 안에서, 구별하기 어려울만큼 동시에 수행되는 수련이라 하겠다. "이 글은 영광이나 칭송을 바라기 어려운 일종의 수련(exercitation)이요, 이름을 낼 만한 것이 못 되는 일종의 시작
(composition)이다." (『에세 2』 17장)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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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미소는 제한된 관계에서만 오간다. 아는 사이, 좁히자면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웃음은 ‘정상‘이다. 그런데 나는 잘 웃는 사람이다. 강연이나 낭독회 등 독자들과 만나는행사장에서 나의 웃음은 곧잘 빵빵 터진다. 지인들과의 만남에서도심각한 포즈는 영 질색이다. 외롭고 고독한 포즈, 사양이다. 내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차라리 사람을 만나지 않는 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존재다. 어차피 존재의 고독은 혼자 감당하게 설계되어 있는 것이고, 고독은 행복의 반대편에 있는 말이아니다. 행복한 사람에게도 고독이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행복한사람일수록 존재의 고독에 명민하게 깨어 있고 고독을 잘 보살피는것이리라. 그러니 고독은 존재의 자기 증명 방식이기도 하다. 고독을잃어버린 삶은 영혼의 어떤 부분이 마모되어버린 삶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 고독해, 나 외로워, 라며 사뭇 괴로운 포즈로 엄살 피우는예술가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고독을 잘 감당하는 사람, 고독 - P46

을 잘 즐기는 사람이 좋다. 자신의 고독의 무게로 다른 사람까지 무거워지게 하지 않는 삶이 나는 좋다.


그런데 나는 이내 깨달았다. 모든 오로빌 주민들이 다 미소를 띠며 사는 건 아니란 걸. 오로빌 같은 데서 도대체 저 이는 왜 저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 걸까. 어쩌면 그런 의문은 오로빌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혹적인장점이 너무나 많은 이 마을에서 저렇게 안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본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내가 토로할 때, 나는 이미오로빌을 대상화시켜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막연한호감을 가지고 오로빌에 오는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여러 가지 정보들 중 대체로 두 가지 정도의 선입견이 공통적인 듯하다. 오로빌을 수식할 때 자주 사용되는 말들이다. - P47

오로빌은 젊다. 오로빌에선 모든 실험이 가능하다. 누구든 제안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언제든 발의하고 발의한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룹이 생기면서 일이 추진된다. 열정과 용기만 있다면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실험해볼 수 있다. 오로빌의 에너지는스스로의 변화와 진보를 꾀하는 이런 열정과 용기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그 모든 현장에 유일한 규칙이 있다면 오픈 마인드. 자신과 다른 의견과 관점에 대해 틀렸다고 하지 않고 다르다고 인식하는 것. 다른 것들을 조율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걸리는 것을 인내해야 한다는 것. 내가 느낀 오로빌의 가장 큰 매력은바로 이 지점이다. 오로빌에선 모든 것이 ‘되어가는 과정‘이지 평화롭고 완숙한 결론에 미리 도달해 있는 것이 없다. 완성형이 아니라 다양한 실험들이 모색되고 실천되는 과정의 마을인 오로빌은 ‘되기 마을‘이다.

이 푸른 오로빌의 메리 크리스마스! - P57

안에는 흙 한줌이 들어있다. 냄새를 맡아보라고 한다. 바구니를 들어 코 가까이 대었다. 아, 말할 수 없이 향기로운 흙의냄새, 눈물이 핑 돌 뻔 했다.
향기를 뿜는 흙 한 줌. "꽃이군요!" 흙에 코를 묻은 채 내가 외치자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 역시 한줌 꽃 거름을 두 손에 받쳐 든 채로.
내가 지상에서 처음 맡아본 꽃 거름 냄새, 꽃으로 만들어진 흙의 냄새.
세속의 관점에서라면 이토록 쓸모없는 일을 자신의 일로 삼은 사람과, 그 일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공동체 사람들과, 그 일에 맘껏 감동한 한 게스트가 함께 보낸 오전 시간이 무슨 병처럼 찌르르찌르르하게...... 그렇게 완성되었다. - P68

오로빌 아이들이 오로빌을 사랑하는 마음은 각별하다. 오로빌너머의 세계를 경험한 아이들일수록 더하다. 오로빌에서 자라 평생오로빌에서 사는 이들도 있지만 오로빌 바깥에서 다양한 공부를하고 돌아와 오로빌에 무언가 기여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외국에서 대학을 마친 아이들 중 80% 이상이 다시 오로빌로 돌아온다. 그게 이해가 된다.


기억나는 스리 오로빈도의 말이 있다.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다. 가까운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먼 것으로 나아가라 자신의 성장은 자신의 마음의 인도를 받아야한다"는 교육의 세 가지 원칙.
곱씹어볼수록 동의가 된다.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따라 성장하는교육이 사라진 학교가 배출해온 우리의 모습 속에는 타인의 욕망을욕망하는 것이 자신의 욕망이라고 착각하는 슬픈 그림자도 한 녘에있을 것이다. - P113

남는 음식들은 거의 없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남게 되는음식 찌꺼기와 화장실에서 나오는 대변은 거름으로 발효시켜 나무를 심을 때 사용한다. 스머프 하우스처럼 너무 깜찍한 오두막 화장실은 전혀 냄새가 나지 않는다. 냄새는커녕 퍽 정결한 느낌이어서화장실에 앉아 푸른 하늘 흰 구름을 올려다보며 오렌지머핀을 뜯어먹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소변과 대변을 따로 보는데 대변을보면 톱밥을 뿌려 거름으로 순환시킨다. 사다나의 곳곳은 이렇게지구환경에 해를 덜 끼치면서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찾아내고 실험해보려는 아기자기한 실험들로 넘쳐난다. 사다나 포레스트 안에서는 술, 담배, 마약을 할 수 없고 화학제품을 일체 사용할 수 없다.
비누나 샴푸도 그곳에서 싸게 구매해주는 친환경제품을 사용한다.
숙소용 오두막들의 입구에 대롱대롱 매달린 친환경 치약통도 어찌나 깜찍하던지! - P140

물질도 풍족하지 않고 기후도 열악한 이곳으로 그러나 오로빌리언들은 다시 돌아온다. 쾌적하고 안락한, 원하는 모든 물건들이가게마다 즐비한, 대부분 선진국이라 할 나라들에서 여름 한철을보내고 나면 돌아오기 싫어질 것도 같은데 왜 그들은 이곳으로 돌아오는 걸까. 체감하는 삶의 질, 삶의 만족도가 크기 때문일 거라고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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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세 번째 장편소설의 초고를 마쳐놓고 여행 가방을 쌌다.


나 좀 쉬려고요. 좀 지쳤거든요.


이런 마음이 드는 순간, 먼지 앉은 벽장문이 열리며 몇 개의 문장이 선율처럼 떠올랐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낮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장 그르니에의 문장들이 벽장 속에서 떠오르는 날, 여행을 준비한다. 나는 키득거리며 빨강 여행 가방과 남색 여행 가방 중 어느 - P4

걸 가져갈까, 이런 사소한 생각을 하며 커피콩을 간다. 나 자신에게쪽지를 남기듯 다시,


잘 돌아오기 위해, 떠남,


나이 드는 것이 참 좋다, 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사람들이가진 저마다의 예쁜 구석이 잘 보여서 좋고 몰아붙여야 할 때와 쉬어야 할 때를 비교적 잘 감각할 수 있게 되어서 좋다. 청춘의 시절에는 자주 속았다. 사랑도 분노도 절망도 바닥까지 몰아가야만 직성이 풀리고 고통스러워도 그래야만 진짜라고 생각했다. 진이 빠질때까지 울며 뛰며 소리치며 스스로를 닦달했다. 스스로 경계 지어놓은 진짜와 진짜 아닌 것들이 너무 많아 그것들을 판독하기에만도 늘 시간이 모자랐다. - P5

하긴, 청춘은 그래야만 또한 청춘이려니 이제 청춘의 시절이 지나자 내가 가진 에너지를 조율하게 된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힘이 어느 만큼인지 보이기 시작하고 그걸 충전해야 한다는 것도 인정하게 된다. 예전엔 어딜 가든 나를 꽁꽁 싸매놓은 채 뜨거운 돌을 밟듯이 발을 재게 디디며 낯선 것들을 탐험했다. 일종의 대결의지를 가지고서 그 낯섦들을 내 것으로 경험하고 느껴야 한다는 기묘한 소유 의지가 있었다고 할까. 지금은 살짝 힘이 빠진 상태를 낯 - P5

선 시간과 공간에게 무람없이 들키고 싶어서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무언가 얻어야 한다는 강박 없이. 허술하게 짐을 싸고 그냥훌쩍 떠난다. 다만 솔직하게 고백한다.
나 좀 쉬려고요. 좀 지쳤거든요. 일단 쉬고 다시 잘 살아볼게요.
알았어요. 좀 쉬고 다시 잘 사랑해볼게요.
삶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다행이다.
조금씩, 병아리 눈물 만큼일지라도, 조금 조금씩,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은 거다. 산다는 게 영 녹록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갸륵한 수고, 아, 좋은 날이다. - P5

선 시간과 공간에게 무람없이 들키고 싶어서 여행을 떠난다. 여행자에서 무언가 얻어야 한다는 강박 없이. 허술하게 짐을 싸고. 그냥훌쩍 떠난다. 다만 솔직하게 고백한다.


나 좀 쉬려고요. 좀 지쳤거든요. 일단 쉬고 다시 잘 살아볼게요.
알았어요. 좀 쉬고 다시 잘 사랑해볼게요.


삶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다행이다.
조금씩, 병아리 눈물 만큼일지라도, 조금 조금씩,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은 거다. 산다는 게 영 녹록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갸륵한 수고. 아, 좋은 날이다. - P6

그랬다. 나는 개개인의 삶이 자신의 내면의 풍요에 맞춰져 있고, 사회의 전체 분위기가 개인의 행복감을 훼방하지 않는 그런 공간 속으로 들어가 몸과 마음을 쉬고 싶었다. 행복에 감염되고 싶었다고 할까. 우리 사회 전체의 차갑고 딱딱한 절망, 어떤 무기력의 상태라고나 해야 하는, 무거운 매연처럼 내려앉은 이 차가운 절망으로부터 어떻게 스스로를 깨울까. 이런 절실함이 내게 있었다. 행복의 감각이 깨어 있을 때라야만 우리는 꿈꾸기를 지속할 수 있다. 무엇이 정말 행복한 상태인지 스스로에게 더 이상 묻지 않게 될 때 꿈도 끝난다. 꿈 없이 행복 없이, 인생은 뭐란 말인가. - P7

나는 지상에서 신비가 사라지는 것이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경험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이다. 신비는 예술과 과학의 근본을 이루는 진정한 모태이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확실한 길만을 추구하는 과학자는 결코 우주를 맑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아름다웠던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이런 태도를 나는 사랑한다 내가 아인슈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그가 놀라운 법칙을 발견해낸 천재과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주와 지구의 신비 앞에 엎드려 탄성을지를 줄 안 아름다운 몽상가이기 때문이다. 신비를 잃으면서 인간이라는 종의 타락은 가속화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또한 지나친 신비주의도 경계하는 사람이다. 어느 시대건 지나치게 배타적인 종교나 오컬티즘은 인간의 미혹에 봉사해온 혐의가 크다. 특히나 나는 ‘진리는 오직 하나‘라고 생각하 - P14

는 ‘절대‘의 세계에 대한 본질적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가진 우주관은 범신론에 가깝고, 다양다색의 진리가 자연스럽게 창조, 수용되는 사회일수록 평화의 구현이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는쪽이다. 세상 만물 모든 것 속에 신성함의 씨앗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 속에 부처도 예수도 성모 마리아도, 크리슈나도 존귀한 가능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 P15

오로빌에 도착해 보름 동안은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냥 놀았다. 메모나 간단한 일기조차 쓰지 않았다. 단 한 글자도 쓰거나 읽지 않고 보름 동안이나 놀아본 것은 드문 일이다. 나는 오로빌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숲길에서 여러 번 길을 잃었고 사는 일이 길을 잃는일이기도 하듯이), 오가며 마주친 많은 사람들과 따뜻한 미소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런데 슬슬 뭔가 쓰고 싶어지기 시작한 거다. 노트북을 무릎에 안고 커서가 홀로 깜빡이는 무한한 공포의 시간 속으로 여행을하고 싶어지는, 여행지 속의 또 다른 여행, 이른바 글쟁이의 지병이 도진 거다.


사실 작가에게 여행이란 문학하는 행위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문학은 꿈이다. 여행은 꿈을 충동한다. 문학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자기 고백과도 같다. 포기하고 싶은 순 - P17

간이 많지만 끝내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다시 들끓는, 문학은결국,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결국은인간학인 문학의 운명을 나는 사랑한다. 여행 역시 인간학의 공부가 지속되는 학교이니, 이 에세이도 그렇게 나의 학교 외딴 교실 한칸에서 자란 셈.


그동안 여러 곳을 여행하며 살았지만 여행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 모든 여행은 시와 소설로 전이되어 몸 바꾸기를 하기에 특별히 - P18

여행 에세이라는 형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로빌을 여행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똑같은 욕망을 욕망하게 되어버린 우리 사회의 욕망의 획일성이 오로빌에 와서 더욱 아파진 까닭이다. 갈수록 현란해지는 이 시절에 우리의 삶의 방식은 점점 더다채로워지는 게 아니라 왜 더 획일적이 되어 가는 것일까. 언제부터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착각하며 살게 된 걸까.
지금 우리 사회는 주체의 과잉이 문제라기보다 주체의 실종이 문제인 것은 아닐까. 휘황한 거리에는 ‘나‘라는 광고 문구가 넘치건만 왜갈수록 나를 잃어버리며 산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나의 실종에 불안하면서도 남들 사는 대로 살지 않으면 또 다른 불안이 엄습하는기이한 닫힌 회로, 출구 없는 일상의 쳇바퀴로부터 어떻게 ‘나‘를 찾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과 함께 다른 삶의 풍경을 만들며사는 이들을 훔쳐보고 싶었다고 할까. 굳이 말하자면 이 여행 에세이는 ‘약간 건강한 의도를 가진‘ 훔쳐보기의 소산일 수 있겠다. 이훔쳐보기를 통해 우리의 삶에 몇 개의 새로운 창문이 더 생기고 열려서 기존의 사회가 강요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삶과 행복도 가능하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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