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세 번째 장편소설의 초고를 마쳐놓고 여행 가방을 쌌다.
나 좀 쉬려고요. 좀 지쳤거든요.
이런 마음이 드는 순간, 먼지 앉은 벽장문이 열리며 몇 개의 문장이 선율처럼 떠올랐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낮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장 그르니에의 문장들이 벽장 속에서 떠오르는 날, 여행을 준비한다. 나는 키득거리며 빨강 여행 가방과 남색 여행 가방 중 어느 - P4
걸 가져갈까, 이런 사소한 생각을 하며 커피콩을 간다. 나 자신에게쪽지를 남기듯 다시,
잘 돌아오기 위해, 떠남,
나이 드는 것이 참 좋다, 라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사람들이가진 저마다의 예쁜 구석이 잘 보여서 좋고 몰아붙여야 할 때와 쉬어야 할 때를 비교적 잘 감각할 수 있게 되어서 좋다. 청춘의 시절에는 자주 속았다. 사랑도 분노도 절망도 바닥까지 몰아가야만 직성이 풀리고 고통스러워도 그래야만 진짜라고 생각했다. 진이 빠질때까지 울며 뛰며 소리치며 스스로를 닦달했다. 스스로 경계 지어놓은 진짜와 진짜 아닌 것들이 너무 많아 그것들을 판독하기에만도 늘 시간이 모자랐다. - P5
하긴, 청춘은 그래야만 또한 청춘이려니 이제 청춘의 시절이 지나자 내가 가진 에너지를 조율하게 된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힘이 어느 만큼인지 보이기 시작하고 그걸 충전해야 한다는 것도 인정하게 된다. 예전엔 어딜 가든 나를 꽁꽁 싸매놓은 채 뜨거운 돌을 밟듯이 발을 재게 디디며 낯선 것들을 탐험했다. 일종의 대결의지를 가지고서 그 낯섦들을 내 것으로 경험하고 느껴야 한다는 기묘한 소유 의지가 있었다고 할까. 지금은 살짝 힘이 빠진 상태를 낯 - P5
선 시간과 공간에게 무람없이 들키고 싶어서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무언가 얻어야 한다는 강박 없이. 허술하게 짐을 싸고 그냥훌쩍 떠난다. 다만 솔직하게 고백한다. 나 좀 쉬려고요. 좀 지쳤거든요. 일단 쉬고 다시 잘 살아볼게요. 알았어요. 좀 쉬고 다시 잘 사랑해볼게요. 삶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다행이다. 조금씩, 병아리 눈물 만큼일지라도, 조금 조금씩,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은 거다. 산다는 게 영 녹록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갸륵한 수고, 아, 좋은 날이다. - P5
선 시간과 공간에게 무람없이 들키고 싶어서 여행을 떠난다. 여행자에서 무언가 얻어야 한다는 강박 없이. 허술하게 짐을 싸고. 그냥훌쩍 떠난다. 다만 솔직하게 고백한다.
나 좀 쉬려고요. 좀 지쳤거든요. 일단 쉬고 다시 잘 살아볼게요. 알았어요. 좀 쉬고 다시 잘 사랑해볼게요.
삶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다행이다. 조금씩, 병아리 눈물 만큼일지라도, 조금 조금씩,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은 거다. 산다는 게 영 녹록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갸륵한 수고. 아, 좋은 날이다. - P6
그랬다. 나는 개개인의 삶이 자신의 내면의 풍요에 맞춰져 있고, 사회의 전체 분위기가 개인의 행복감을 훼방하지 않는 그런 공간 속으로 들어가 몸과 마음을 쉬고 싶었다. 행복에 감염되고 싶었다고 할까. 우리 사회 전체의 차갑고 딱딱한 절망, 어떤 무기력의 상태라고나 해야 하는, 무거운 매연처럼 내려앉은 이 차가운 절망으로부터 어떻게 스스로를 깨울까. 이런 절실함이 내게 있었다. 행복의 감각이 깨어 있을 때라야만 우리는 꿈꾸기를 지속할 수 있다. 무엇이 정말 행복한 상태인지 스스로에게 더 이상 묻지 않게 될 때 꿈도 끝난다. 꿈 없이 행복 없이, 인생은 뭐란 말인가. - P7
나는 지상에서 신비가 사라지는 것이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경험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이다. 신비는 예술과 과학의 근본을 이루는 진정한 모태이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확실한 길만을 추구하는 과학자는 결코 우주를 맑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아름다웠던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이런 태도를 나는 사랑한다 내가 아인슈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그가 놀라운 법칙을 발견해낸 천재과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주와 지구의 신비 앞에 엎드려 탄성을지를 줄 안 아름다운 몽상가이기 때문이다. 신비를 잃으면서 인간이라는 종의 타락은 가속화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또한 지나친 신비주의도 경계하는 사람이다. 어느 시대건 지나치게 배타적인 종교나 오컬티즘은 인간의 미혹에 봉사해온 혐의가 크다. 특히나 나는 ‘진리는 오직 하나‘라고 생각하 - P14
는 ‘절대‘의 세계에 대한 본질적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가진 우주관은 범신론에 가깝고, 다양다색의 진리가 자연스럽게 창조, 수용되는 사회일수록 평화의 구현이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는쪽이다. 세상 만물 모든 것 속에 신성함의 씨앗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 속에 부처도 예수도 성모 마리아도, 크리슈나도 존귀한 가능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 P15
오로빌에 도착해 보름 동안은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냥 놀았다. 메모나 간단한 일기조차 쓰지 않았다. 단 한 글자도 쓰거나 읽지 않고 보름 동안이나 놀아본 것은 드문 일이다. 나는 오로빌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숲길에서 여러 번 길을 잃었고 사는 일이 길을 잃는일이기도 하듯이), 오가며 마주친 많은 사람들과 따뜻한 미소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런데 슬슬 뭔가 쓰고 싶어지기 시작한 거다. 노트북을 무릎에 안고 커서가 홀로 깜빡이는 무한한 공포의 시간 속으로 여행을하고 싶어지는, 여행지 속의 또 다른 여행, 이른바 글쟁이의 지병이 도진 거다.
사실 작가에게 여행이란 문학하는 행위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문학은 꿈이다. 여행은 꿈을 충동한다. 문학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자기 고백과도 같다. 포기하고 싶은 순 - P17
간이 많지만 끝내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다시 들끓는, 문학은결국,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결국은인간학인 문학의 운명을 나는 사랑한다. 여행 역시 인간학의 공부가 지속되는 학교이니, 이 에세이도 그렇게 나의 학교 외딴 교실 한칸에서 자란 셈.
그동안 여러 곳을 여행하며 살았지만 여행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 모든 여행은 시와 소설로 전이되어 몸 바꾸기를 하기에 특별히 - P18
여행 에세이라는 형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로빌을 여행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똑같은 욕망을 욕망하게 되어버린 우리 사회의 욕망의 획일성이 오로빌에 와서 더욱 아파진 까닭이다. 갈수록 현란해지는 이 시절에 우리의 삶의 방식은 점점 더다채로워지는 게 아니라 왜 더 획일적이 되어 가는 것일까. 언제부터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착각하며 살게 된 걸까. 지금 우리 사회는 주체의 과잉이 문제라기보다 주체의 실종이 문제인 것은 아닐까. 휘황한 거리에는 ‘나‘라는 광고 문구가 넘치건만 왜갈수록 나를 잃어버리며 산다는 느낌이 드는 걸까. 나의 실종에 불안하면서도 남들 사는 대로 살지 않으면 또 다른 불안이 엄습하는기이한 닫힌 회로, 출구 없는 일상의 쳇바퀴로부터 어떻게 ‘나‘를 찾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과 함께 다른 삶의 풍경을 만들며사는 이들을 훔쳐보고 싶었다고 할까. 굳이 말하자면 이 여행 에세이는 ‘약간 건강한 의도를 가진‘ 훔쳐보기의 소산일 수 있겠다. 이훔쳐보기를 통해 우리의 삶에 몇 개의 새로운 창문이 더 생기고 열려서 기존의 사회가 강요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삶과 행복도 가능하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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