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누가 머리를 깎아주는 일이나 슬리퍼나 재떨이나 옥수수죽 같은 것들에 대해글을 쓴다는 생각을 두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부끄럽습니다.

토요일 늦은 오후, 우리는 내 아파트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다. 거실 창밖에서는 이웃 아이들이 말다툼을 하고 있다. 스테이션 왜건 한대가 앞길을 천천히 지나간다. 그의 단편소설의 도입부로 쓸 만한 장면이다.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레이먼드 카버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성냥을 슬쩍 흔드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몸을 앞으로 숙인다.
"작가는 자신의 등장인물이 아니에요.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작가 자신이죠." 그가 말한다.
카버가 살아오면서 담당했던 여러 가지 역할들을 고려해본다면, 홍미로운 관찰이다. 그는 청소부였고, 제재소 일꾼이었고, 배달부였고, 소매점 점원이었고, 출판사의 편집자였다. 1973년부터 1974년까지 아이오와 문예창작 워크숍을 비롯한 여러 대학교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쳤다. - P29

"저는 플롯 라인이라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믿어요. 시를 쓰건 산문을 쓰건 늘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노력해요. 한동안은 단편소설을 쓸 시간이 없어서 시를 썼어요. 시를 쓰면 좋은 게 바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뭔가 문제가 생기면, 그것도 그 자리에서 보이죠. 장편소설을 하나 쓰려고 몇 달을 공을 들였는데 그 결과물이 나쁘면 견디기 어렵잖아요. 장편을 쓰는 건 저로서는 엄청난 투자고, 게다가 저는 그렇게오랫동안 집중을 유지하는 걸 잘 못해요."
카버의 시들이 그의 단편소설들을 닮았다고 말하는 게 납득할 만하다면, 그의 단편소설들에 시적인 밀도가 있다고 하는 것 역시 맞는 말일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매우 선명하고 홀릴 정도로 단순하다. 소설 속의 그 또는 그녀가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독자들은 사건이 어디로 향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 P31

레이먼드 카버는 대사를 쓰는 일에 엄청난 기술을 가지고 있고, 그결과 그의 인물들은 어떤 괴이한 상황에 처해 있어도 매우 선명한 현실감을 가지고 있다.
단편 「알래스카에 뭐가 있지?」에서 메리와 칼은 잭이 생일 선물로받은 물 파이프를 시험해보면서 잭과 헬렌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낸다. 카버는 대마초에 취한 성인 네 명의 대화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구현해낼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일종의 잠재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일련의 갈등을 은근히 암시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이작품의 마지막 문장에서 절정에 도달한다. - P31

저는 제가 어떤 전통 속에 들어가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단편소설을 쓰는 일을 아주 편안하게 받아들입니다. 이야깃거리가 쌓여 있는 것같고,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이번 여름에는 쓸 여유가 생기길 바라고, 꼭 써야 합니다. 올 가을에는 단편집을 묶을 원고를 보내주기로 계약이 돼 있거든요. 그 일을 마무리 지은 뒤에는 장편소설을 쓰게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장편소설을 쓰라고 돈을 받은적이 있는데,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단편들을 썼죠. 아마 2주 정도 장편작업을 하다가 중단하고는 단편을 쓰는 일로 돌아갔던 것 같습니다.
몇 년 동안 암묵적으로, 혹은 덜 암묵적으로 그 장편소설을 쓰라는일종의 압력을 받아왔던 것 같습니다. 제 아내부터 시작해서 출판사에이르기까지 모두들 "장편소설을 써야 한다"고 말했죠. 하지만 저는 단편소설과 시만 계속해서 썼습니다. 그러나 장편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년에는 쓰게 될지도 몰라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일들을 하는 게 좋아요. 더 이상 장편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 P36

전 단편소설을 쓰는 것과 시를 쓰는 일 사이의 유사성이 단편소설을 쓰는 것과 장편소설을 쓰는 것 사이의 유사성보다 확실히 더 크다고생각합니다.
시를 읽고 쓰는 게, 어쩌면 젊은 작가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훈련이라고 생각해요. 에드거 앨런 포는 그걸 ‘단일 효과single effect‘라고불렀어요.
저는 단편소설과 시를 같은 시기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날, 두개의 다른 잡지사로부터 각각 제시와 단편소설을 게재하겠다는 연락을받았어요. 아주 기분 좋은 날이었죠. 정말로 특별한 날이었어요. 제게 있었던 어떤 좋은 일 못지않게 좋은 일이었어요. 시 원고료로 1달러를 받았고, 소설에 대해서는 잡지가 나오면 저자 몫으로 몇 권 보내준다는 약속을 받았죠. 이렇게 일확천금을 얻는 겁니다. - P39

플래너리 오코너의 『미스터리와 태도들Mystery and Manners』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가 남긴 조각 글들을 모아서 사후에 발간한 건데, 지금도 잘 팔리고 있고,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오코너는 처음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그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경우는 손에 꼽을정도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머릿속에서 하나의 아이디어나 이미지,
몇 줄의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이게 발전해서 무언가가 되고, 그게 다시다른 무언가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위대한 이야기 「좋은 시골 사람들」 역시, 시작할 때만 해도 그는 그 이야기 안에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한쪽 다리는 의족인 여자가 등장하게 될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성경책 외판원이 전화를 거는 장면이 들어가게 될 거라는 것도 몰랐고요. 마지막 여덟 문장을 쓰기 전까지는 그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그 문장들은 오코너에게 들리면서, 그렇게 왔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이런 식으로 쓰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 P41

저는 체호프의 단편소설들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패러디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체호프로부터 빌려 오겠습니다. 그가 말한 것 그대로 빌려 오겠습니다. 체호프는 문학을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하나는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고, 다른 하나는 좋아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저는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정말로 아무런 이론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전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압니다. 제가 뭘 좋아하지 않는지 압니다. 저는 글쓰기에서 정직하지 않은 태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 속임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 정직한 이야기가 잘 서술된 걸 좋아합니다. 그 이야기 안에로맨스가 있든 없든, 그런 건 관계없습니다.
단편소설-특히 학생의 작품이든 잡지의 편집자가 보내온 것이든 원고 상태인 것들을 많이 읽다 보면 그 작품이 쓸 만한 건지 아닌지 첫 두세 문장만 읽어보면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단어들이 연결되면서 작동하는 방식, 보이는 모습, 느낌만으로 전달되는 뭔가가 있습니다. - P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