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미소는 제한된 관계에서만 오간다. 아는 사이, 좁히자면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웃음은 ‘정상‘이다. 그런데 나는 잘 웃는 사람이다. 강연이나 낭독회 등 독자들과 만나는행사장에서 나의 웃음은 곧잘 빵빵 터진다. 지인들과의 만남에서도심각한 포즈는 영 질색이다. 외롭고 고독한 포즈, 사양이다. 내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차라리 사람을 만나지 않는 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존재다. 어차피 존재의 고독은 혼자 감당하게 설계되어 있는 것이고, 고독은 행복의 반대편에 있는 말이아니다. 행복한 사람에게도 고독이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행복한사람일수록 존재의 고독에 명민하게 깨어 있고 고독을 잘 보살피는것이리라. 그러니 고독은 존재의 자기 증명 방식이기도 하다. 고독을잃어버린 삶은 영혼의 어떤 부분이 마모되어버린 삶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 고독해, 나 외로워, 라며 사뭇 괴로운 포즈로 엄살 피우는예술가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고독을 잘 감당하는 사람, 고독 - P46

을 잘 즐기는 사람이 좋다. 자신의 고독의 무게로 다른 사람까지 무거워지게 하지 않는 삶이 나는 좋다.


그런데 나는 이내 깨달았다. 모든 오로빌 주민들이 다 미소를 띠며 사는 건 아니란 걸. 오로빌 같은 데서 도대체 저 이는 왜 저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 걸까. 어쩌면 그런 의문은 오로빌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혹적인장점이 너무나 많은 이 마을에서 저렇게 안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본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내가 토로할 때, 나는 이미오로빌을 대상화시켜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막연한호감을 가지고 오로빌에 오는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여러 가지 정보들 중 대체로 두 가지 정도의 선입견이 공통적인 듯하다. 오로빌을 수식할 때 자주 사용되는 말들이다. - P47

오로빌은 젊다. 오로빌에선 모든 실험이 가능하다. 누구든 제안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언제든 발의하고 발의한 것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룹이 생기면서 일이 추진된다. 열정과 용기만 있다면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실험해볼 수 있다. 오로빌의 에너지는스스로의 변화와 진보를 꾀하는 이런 열정과 용기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그 모든 현장에 유일한 규칙이 있다면 오픈 마인드. 자신과 다른 의견과 관점에 대해 틀렸다고 하지 않고 다르다고 인식하는 것. 다른 것들을 조율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걸리는 것을 인내해야 한다는 것. 내가 느낀 오로빌의 가장 큰 매력은바로 이 지점이다. 오로빌에선 모든 것이 ‘되어가는 과정‘이지 평화롭고 완숙한 결론에 미리 도달해 있는 것이 없다. 완성형이 아니라 다양한 실험들이 모색되고 실천되는 과정의 마을인 오로빌은 ‘되기 마을‘이다.

이 푸른 오로빌의 메리 크리스마스! - P57

안에는 흙 한줌이 들어있다. 냄새를 맡아보라고 한다. 바구니를 들어 코 가까이 대었다. 아, 말할 수 없이 향기로운 흙의냄새, 눈물이 핑 돌 뻔 했다.
향기를 뿜는 흙 한 줌. "꽃이군요!" 흙에 코를 묻은 채 내가 외치자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 역시 한줌 꽃 거름을 두 손에 받쳐 든 채로.
내가 지상에서 처음 맡아본 꽃 거름 냄새, 꽃으로 만들어진 흙의 냄새.
세속의 관점에서라면 이토록 쓸모없는 일을 자신의 일로 삼은 사람과, 그 일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공동체 사람들과, 그 일에 맘껏 감동한 한 게스트가 함께 보낸 오전 시간이 무슨 병처럼 찌르르찌르르하게...... 그렇게 완성되었다. - P68

오로빌 아이들이 오로빌을 사랑하는 마음은 각별하다. 오로빌너머의 세계를 경험한 아이들일수록 더하다. 오로빌에서 자라 평생오로빌에서 사는 이들도 있지만 오로빌 바깥에서 다양한 공부를하고 돌아와 오로빌에 무언가 기여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외국에서 대학을 마친 아이들 중 80% 이상이 다시 오로빌로 돌아온다. 그게 이해가 된다.


기억나는 스리 오로빈도의 말이 있다.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다. 가까운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먼 것으로 나아가라 자신의 성장은 자신의 마음의 인도를 받아야한다"는 교육의 세 가지 원칙.
곱씹어볼수록 동의가 된다.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따라 성장하는교육이 사라진 학교가 배출해온 우리의 모습 속에는 타인의 욕망을욕망하는 것이 자신의 욕망이라고 착각하는 슬픈 그림자도 한 녘에있을 것이다. - P113

남는 음식들은 거의 없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남게 되는음식 찌꺼기와 화장실에서 나오는 대변은 거름으로 발효시켜 나무를 심을 때 사용한다. 스머프 하우스처럼 너무 깜찍한 오두막 화장실은 전혀 냄새가 나지 않는다. 냄새는커녕 퍽 정결한 느낌이어서화장실에 앉아 푸른 하늘 흰 구름을 올려다보며 오렌지머핀을 뜯어먹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소변과 대변을 따로 보는데 대변을보면 톱밥을 뿌려 거름으로 순환시킨다. 사다나의 곳곳은 이렇게지구환경에 해를 덜 끼치면서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찾아내고 실험해보려는 아기자기한 실험들로 넘쳐난다. 사다나 포레스트 안에서는 술, 담배, 마약을 할 수 없고 화학제품을 일체 사용할 수 없다.
비누나 샴푸도 그곳에서 싸게 구매해주는 친환경제품을 사용한다.
숙소용 오두막들의 입구에 대롱대롱 매달린 친환경 치약통도 어찌나 깜찍하던지! - P140

물질도 풍족하지 않고 기후도 열악한 이곳으로 그러나 오로빌리언들은 다시 돌아온다. 쾌적하고 안락한, 원하는 모든 물건들이가게마다 즐비한, 대부분 선진국이라 할 나라들에서 여름 한철을보내고 나면 돌아오기 싫어질 것도 같은데 왜 그들은 이곳으로 돌아오는 걸까. 체감하는 삶의 질, 삶의 만족도가 크기 때문일 거라고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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