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출장을 다녀왔어요^^

 
은유적 생
                  손세실리아

  광교산자락 무허가식당에서 일하는 산숙씨 버려진 땅 일궈 재배한 시금치 앉은걸음으로 반나절 넘게 캐 손수레에 싣고 가게로 돌아가던 중 왕벚꽃터널 혼자 보기 아깝다며 육성으로 중계해주는데요 어서 가 쉬라는 말 일축한 채 일당 받고 출장 나와 꽃구경하는 처지에 고되다면 염치없는 거 아니냐며 여기야말로 신의 직장이라 너스렙니다 노조간부하다 미운털 박혀 잘리고 손대는 일마다 실패해 남은 거라곤 바슬바슬한 몸뚱이 뿐이지만 죽는소리 일절 없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어금니 악물고 견디는 중일 테지요 생과 맞장 뜨는 참일 테지요 신경질적인 경적 더는 모르쇠 못하겠던지 전화 끊으려다말고 불쑥 화장실문짝에 시 한 편 붙여놨다며 저작료 숯불제육구이에 동동주는 알아서 수령해가라 통고합니다 구실 삼아 밥 한 끼 거둬 먹이려는 속정일터 책상머리 벗어나 하루쯤 콧바람 쐬라는 완곡한 출장명령 일터

 신고한 생에서 길어 올린
 놀랍도록 번뜩이는

                             발표지면; [현대 시학] 2010년 2월호

 

 

 

      

 

       

 

 

      

 

 

      

 

 

      

 

       

 

 

 

시금치는 아니고 열무였는데

연휴가 길고 다른 밭의 열무들한테
우선 순위가 밀려
꽃이 피어버렸어요.
그래도 녀석들은 김치거리가 아니고
국거리용이니까 심한 애들은 빼고도 두차...
오고 가는 길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과
이문세의 '슬픔도 지나고나면' 이
동행했어요.
모두의 원성을 뒤로하고 한다발 꺾어온
장다리꽃... 예뻐요^^

오늘, 열무를 삶고있어요
씻어서 씻고 짜고
더러는 염장
이번 여름 열무는 이것으로 끄읕.
                                         2014.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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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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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천천히
읽었지만 결국 끝이다.
누워 뒹굴대며 읽다가
어느사이 구부정하게 앉은 자세를 풀지 못해
등이 꼿꼿하다.
가슴께가 찌릿하다.
결국은 소리없이 흐느끼면서 덮었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먹먹하다.
아득하다.
동호야~ 하고 입을 달짝여 본다.
순하디 순한 소년의 얼굴이 보인다.
보고도 금방 잊을 것 같은 특징 없는 얼굴

5.18 국립 묘역에서 만난
타원형 액자에 갇혀 있던 둥그스름한 앳된 얼굴, 얼굴들.

구 묘역에서 마주한 흑백의 익숙한 얼굴들.

5.18 자유공원에서 보냈던 그 한나절의 스산한 시간도 스쳐간다.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소년이 온다'는

가슴께가 저릿저릿하게 만든다.

'동호야~'

를 부르는 엄마의 음성이, 넋두리가 중얼중얼 박혀온다.

34년을 지나왔어도

여전히 발포 명령자가 없는 서글픈 이 나라

차떼기 정치 자금 전달은 잘못했다는 국정원장 후보와

잔디밭 마당에 고추모를 정원수로 심어놓고 세금을 피하는 고개숙인 미래부 장관 후보 인사정문회장.....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발탁이고 청문회일까?

 

태풍이 오고 있다.

남은 실종자들은 어쩌나?

답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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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2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이벤트 덧글 쓰기로
저자의 자필 싸인본에 당첨되었는데 정작 책은 의정부의 진미에게로 날아갔다.
생일 선물로 보낸 주소지가 대표 주소지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쩝~!
난 속이 쓰린데
우울한 날들을 위한 선물이었다고 좋아라하니 또 쩝이다.
그래도 땡큐~ 창비,
땡큐~ 알라딘이다.
 
팽이는 서고 싶다 창비시선 209
박영희 지음 / 창비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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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로 한다

                         박영희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시집[팽이는 서고 싶다(창비 2001)]중에서

 

 

             

 

2014년이 접히는 유월,

세상사 온갖 시름을 체념하듯 혹은 달관하듯 초연하게

접어서 종이배로 강물에 띄워 보내 버릴까요?

종이비행기로 저 하늘에 날려버릴까요?

이럴까? 저럴까? 복잡한 궁리와 생각들,

접기로 합니다.

욕심에서 비롯된 집착, 터무니없는 오해와 편견,

접기로 합니다.

그대여, 세상 어디에서든 근심을 접고 둥지에 들 듯 평온과 사랑으로 가득한 시간이길 바래봅니다.

                                                    **농원 식구들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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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견딜 수 없을 만큼 피로해지기 위해 걷는다. 이제 돌아가야 할 집의 정적을 느낄 수 없게 될 때까지, 검은 나무들과 검은 커튼과 검은 소파, 검은 레고 박스들에 눈길을 던질 힘이 남지 않을 때까지 걷는다. 격렬한 졸음에 취해, 씻지도 이불을 덮지도 않고 소파에 모로 누워 잠들 수 있을 때까지 걷는다. 설령 악몽을 꾸더라도 중간에 잠에서 깨지 않기 위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까지 뜬눈으로 뒤척이지 않기 위해 걷는다. 그 생생한 새벽시간, 사금파리 같은 기억들을 끈덕지게 되불러 모으지 않기 위해 걷는다.

                                                                         p90

                                                                      

그런 기억이 있다.

지치도록 걷고

또 걷고

걸었던 길들에서의 시간의 기억을 희랍어 시간에서 확인했다.

가슴, 서늘하게.

한강의 글들은 늘 그렇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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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6-03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걷고 나면 슬픔이 무디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픔의 창이 가슴을 덜 깊숙이 찌르는 듯한 착각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얼음물에 발을 담구어 그 순간만은 감각을 무디어지게 했던 어느날 처럼 적어도 걷는 시간, 오로지 걷는 것에 미치는 시간은 조금은 나았던 것 같아요. 환청과 환각같은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

하지만 그렇게 걷고도 악몽은 꾸어졌던 것 같고, 기억들은 어느 틈에선가 다시 침범해버리곤 했지만.. 그래도..

살 것 같았나? 라고 물으면
살 것 같지 못해 걸었다. 그 뿐.. 모르겠어요..



걷고 또 걷고..
그래요. 산님...........




2014-07-07 23:42   좋아요 0 | URL
새벽숲 님
답이 많이 늦었네요. 한달이 지나 버렸으니...ㅠ,
정신 없는 유월이었답니다.
차차 옮겨 보도록하지요. ^^

걷고 또 걷고
그렇게 지냅니다.
일할 때 걷고, 산책 삼아 운동 삼아 또 걷고...

먼 곳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사랑을 놓치다 문학동네 시집 57
윤제림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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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젖다 2

                        윤제림

 

봄이 오는 강변, 빗속에

의자 하나 앉아 있습니다.

의자의 무릎 위엔 젖은 손수건이 한 장.

가까운 사이인 듯, 고개 숙인 나무 한 그루가

의자의 어깨를 짚고 서 있지만,

의자는 강물만 바라보고 앉아 있습니다.

영 끝나버린 사랑은 아닌 것 같은데

의자는 자꾸만 울고,

나무는 그냥 듣고만 있습니다.

언제나 그칠까요.

와락, 나무가 의자를 껴안는 광경까지

보고 싶은데.

 

손수건이 많이 젖었습니다.

그새.

                           시집 [사랑을 놓치다]중에서

 

 

봄이 오는 강변,

빗속에 우산을 들고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이 정경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 물씬합니다.

봄비는 종아리까지 속수무책 튀어 오르고

몰래 지켜보던 시선 홀로 들켜버리면

꿈이 깨듯 사라지고 말 풍경이, 마음 길이,

쓸쓸해서 함께 젖습니다.

.......

봄이 점점 짧아집니다.

짧아서 더 사무치게 아름다운 이 봄.

가문 세상을 촉촉하게 적시는 봄비, 화안한 꽃비 내리는

그대 생애 최고의 봄날이

여기서 머문 바로 오늘이면 좋겠습니다.

^_^;;

            

 

 

지난 사월에 화장실에 걸었던 시인데 갑작스럽게 다가온 황망한 소식에 차마 올릴 수 없었어요.

누구에게랄 것 없이 화가 나고

무기력하게 슬프기만 했던.

아침이면 저수지에 나가 아름다운 봄 풍경 앞에서 '이것도 사치다. 사치다'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강허달림의 노래들에 홀려 있다가

바람이를 달려 일터를 달려가고는 했던 고단한 시간이 이어졌어요.

퇴근길에는 그 길을 한 시간씩 걸으면서 몸을 혹사시켜 보아도 마음이 달래지지가 않았는데.

오월이 되면서는 도무지 걷고 싶지가 않아

유혹하는 수변 산책로를 외면하고 바람이로 쌩하고 달려옵니다.

이 무슨 변덕인지.  

데크 한 켠에 점점 길어지는 노란 포스트잇의 기원들이 먹먹하게 만들었는데

그마저도 사라져버린 허망함 탓일 겁니다.

이놈의 나라에서 도무지 희망이라는 것이 보이질 않아서 일 겁니다.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시를 붙입니다.

어쩌면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설령, 내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함께 젖다

                      윤제림

 

공양간 앞 나무백일홍과,

우산도 없이 심검당 섬돌을 내려서는

여남은 명의 비구니들과,

언제 끝날꼬 중창불사

기왓장들과,

거기 쓰인 희끗한 이름들과

석재들과 그 틈에 돋아나는

이끼들과,

삐죽삐죽 이마빡을 내미는

잡풀꽃들과,

 

목숨들과

목숨도 아닌 것들과.

                     시집 [사랑을 놓치다]중에서

 

서산 개심사(開心寺)에 가 보셨나요?

이 시에는 자분자분 비 내리는 개심사 경내가 보입니다.

나무백일홍도, 비구니들도, 기왓장에 쓰인 희끗한 이름들도, 이끼들과 촉촉하게 함께 젖고 있는 풍경으로.

물론 시인께서 그런 개심사를 보았을지는…… 모르지요.

그곳이 어디든‘목숨들과 목숨도 아닌 것들과’

함께 젖고, 함께 피어나고, 함께 지는 슬픈 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스러져버린 어린 목숨들이 아파서 함께 젖어보는 오월입니다.

2014년 4월 16일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함께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고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다짐한 그 시간들과 그 사람들을.

다시는 이런 참담한 사건 앞에서 무기력하지 않을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잊지 말아야합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과 유가족들의 안녕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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