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은 또 어떻고. 아침 산책 길에 붙어 있는 광고판을 들여다보다가 우연히 부르델 미술관의 재개관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날 오후에 바로 달려갔다. 우연에 복종하는 것이 이곳에서의 나의 의무.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이었다. 부르델이 로댕의 오랜 조수였다는 사실만 겨우 알고 간 부르델 미술관은 들어서자마자 나를 압도했다. 규모도 힘도 예상을 빗나간다. 고요함 속에서 저토록 뿜어 나오는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장유명한 <활 쏘는 헤라클레스> 작품 옆에서 손가락 하나, 종아리 근육 하나까지 오래 유심히 보았다. 제목에도 ‘활 쏘는‘이라고 표기돼 있지만, 이 작품에는 화살이 없다. 어떤 사람은 활쏘기 전의 포즈라 해석하고, 어떤 사람은 활 쏜 직후의 포즈라해석한다. 나는 후자의 해석에 마음을 둔다. 그 표정으로 보건대, 이미 화살은 떠난 직후니까. 안간힘을 쓰는 표정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다 쏟아부은 표정. 고요하고 강인하다.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까지도 운명의 멱살을 틀어쥐고 있다. 날아간 화살은 이미 상대의 심장을 뚫었다는 걸 알 수 있었 - P54

다. 거센 빗소리가 미술관 앞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나는 작품과 충만하게 함께였다.
나는 내가 좋아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작가의 세계에기꺼이 빠져 허우적거렸다. 동네 산책을 하다가 자드킨 미술관을 발견하고 그의 아틀리에를 통째로 대여한 기분을 만끽하며 (관람객이 나 혼자였다) 조각들을 마음껏 즐겼고, 퐁피두 센터옆의 아틀리에 브랑쿠시도 나에겐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미술관이 공짜였다(다시 말하지만, 파리는 자기방식대로 친절하다). - P55

마침내 꽃도 샀다. 여행자의 신분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그것. 노트르담 대성당 옆을 지나가다가 꽃시장을 발견하고, 그곳에 들어가서 작약 열 송이를 샀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누군가의 파리 사진에서 작약을 보았다. 뭐지. 저렇게 크고, 저렇게 탐스럽고, 한 송이만으로도 저토록 풍성한 저 꽃은.
그땐 그 꽃이 작약인 줄도 몰랐다. 창밖의 파리 지붕들을 배경으로 오래된 나무 창틀 앞에 놓인 꽃병 사진이 이상하게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 사진을 부적처럼 컴퓨터 바탕화면에 걸어놓고 나는 오래도록 파리를 향한 마음을 키웠다. 그 꽃이 작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작약은 파리를 상징하는 나의 꽃이 되었다. - P56

거짓말처럼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만큼 거센 비. 웬만한 비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도 차양 밑으로 뛰어 들어가는 비였다. 거리가 빠르게 텅 비었다. 우산을 썼지만 한쪽 어깨가 순식간에 젖었다. 우산을 푹 쓰고 빠른 속도로 걷는데 뭔가 이상했다. 이렇게나 비가 내리는데, 물웅덩이마다 햇빛이 고여 있었다. 고개를 드니 거리 전체가 비와 햇빛으로 반들거렸다. 이건 무지개의 신호인데? 하며하늘 쪽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봐버렸다. 너무나도 큰 쌍무지개를 모두가 뛰느라, 비를 피하느라 못 보고 있었지만, 나는봐버렸다. 본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다가 또 하염없이 무지개를 봤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큰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내내 내 얼굴에는 큰 미소가 걸려 있었다. 기세 좋게 내리는 비와 기세 좋은 해가 만든 크고 선명한 그 무지 - P64

개도 오래 하늘에 걸려 있었고.
이걸로 다 되었다. 뭘 더 바라겠는가. 마침내 내가 이런 시간에 도착했는데, 두꺼운 갑옷을 입고 의무와 책임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매 순간 칼을 겨누며 나에게 달려오는 수많은 요구들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앞으로, 그저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던 시기가 있었다. 결코 혼자가 아니었지만, 결코 누구와도 함께일 수 없었던 시간들. 혼자 삼키고 혼자 무릎을 털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갑옷을 고쳐 입는 동안 마음에는 굳은살이 많이 박였다. 지금부터 굳은살을 다 떼어내고, 생살의 따끔따끔한 시기를 거쳐, 새살이 돋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보드라운 시간들이 필요하다. 오늘 먹은 버터의 부드러움을 마음에 바르고, 각양각색의 치즈들로 감싸서, 일곱 가지 무지개의 빛깔을 쬔다면 너무 늦지 않게 새살이 돋아날 것이다.
조급할 필요는 없다. 비로소 나도 낯선 시간에 당도한 것이니까. 나도 낯선 시간의 틈에 닻을 내린 거니까. 우선은 낚싯대를드리우고 마음의 물결을 멍하니 바라보자. 애초에 물고기를바라고 던진 낚싯대가 아니지 않니. - P65

응? 뭐? 눈물?

친구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부터 들어찼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친구가 눈물을 닦으며 웃는다. 어, 이 정도라고? 나는 당황한다. 이 방에 사로잡혀서 한 시간 넘게 모네의 <수련>만 보다가 결국 다른 전시관은 보지도 못하고 나가야만 했던 오래전의 나를 소환한다. 그때의 나라면 지금의 친구를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모네의 <수련>을 본다고 연보라색 옷까지 맞춰 입고 나온 친구를 지금의 나는 놀리지만, 오래전의 나라면친구 옆에서 같이 울었을 테니까. 여긴 아름다움이 온몸에 직진으로 와서 안겨버리는 공간이니까. - P85

그런 거다. 관계는 주고받는 거다. 나는 내가 하는 게 편하고, 함께 있는 누군가가 신경을 안 쓰는 게 좋고, 그리하여 결국 다 내가 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좋고 싫음도 지나치게 분명하기에 나는 내가 좋은 걸 해야만 하고, 싫은 표정은 숨길 줄 모른다. 그 와중에 수시로 멈춰 사진을 찍고, 뭔가를 끄적이고, 자꾸 자기 세상으로 빠져버린다. 내가 생각해 도나는 데리고 다니기에 상당히 까다로운 인간이다. 친구는 그런 나를 다 받아주고 거리를 유지해주고 또 혼자 있을 시간까지 준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안다. 덕분에 상대에게 나를 적당히 맞추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무리가 없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그래서 이 관계는 평생 가까이에서 제자리걸음이다. 변치 않고 계속 제자리걸음을 했더니 관계는 깊고 깊고 깊어졌다. 근데...... 나의 소중한 친구...… 또 딴 데로 가네?
"보미야, 그쪽 아니라니까. 이쪽으로 온나. 으이구." - P96

스스로를 꿈으로 만드는 데 이토록 성공한 도시가 또 있을까. Paris‘라는 단어를 새기기만 해도 팔리는 상품들이 있다.
그 단어를 듣기만 해도 꿈꾸는 얼굴로 돌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파리라는 단어 속에서 각자의 꿈은 다르겠지만그 배경엔 언제나 에펠탑이 있다. 에펠탑은 겨우 130년 만에이 오래된 도시의 수많은 상징들을 물리치고 이 도시의 지울수 없는 얼굴이 되었다. 당연히 2024년 파리 올림픽의 메달에도 에펠탑이 있다. 말 그대로다. 에펠탑 보수 공사에서 채취한철조각 91킬로그램을 활용해 금은동 메달 뒷면에 에펠탑의 실제 철조각을 박은 것이다. 이로써 모든 운동선수들의 꿈에 프랑스란 꿈이 더해졌다. 이 꿈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언제나 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 - P108

카몽이스의 흉상을 지나 계단을 오른다. 오르며 시선은 고집스럽게 계단으로만 향한다. 내 뒤에 에펠탑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장 극적으로 에펠탑을 만나는 순간을 내게 주고 싶기 때문이다. 계단을 다 올라 마침내 뒤돌아선다. 건물들 사이로 세느강이 보이고, 그 뒤로 에펠탑이 있다. ‘너 여기 파리야!‘라고 빼기는 얼굴로 알려주는 에펠탑. ‘감동할 순간이야!"라고 교육하는 에펠탑. 그 교육을 나는 오래도록 받았다.
하지만 볼 때마다 감정의 수위는 교육의 범위를 넘어선다. 저렇게나 아름답다고? 저렇게나 웅장하다고? 나의 로망이 저토록 거대했다고? 뻔한 것을 보고 뻔하지 않게 감동하는 법을 나는 모른다. 금세 눈물이 맺힌다. 나는 당황한다. 솔직히 이나이에 에펠탑을 보고 눈물까지 맺힐 일은 아니지 않나. 에펠탑이 처음도 아니고, 파리가 처음도 아니고. 하지만 어쩌겠나. 이렇게 반응하는 이 몸도 나의 일부인걸. 그토록 좋은 것이다. 내가 파리에 있다는 사실이. 나의 지난한 일상이 꿈과 뒤섞이는이 기적이. - P111

돌아가는 길엔 점점 더 어두워지며 조명들이 제대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파리는 이제 유명 배우 같다. 어둠 속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파리를, 흔들리는 배 위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어쩜 이 도시는 주름살 하나 없이 이렇게 잘늙었을까 감탄만 나온다. 잘 관리된 노년. 영원한 낭만, 오래된과거가 현재형으로 빛난다. 강 표면까지 끝없이 흔들리며 각양각색의 조명들을 반사하고 있다. 문득 이 도시에서 인상파화가가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확신이 든다.
솜씨 좋은 인상파 화가가 강물 위에 끝없이 작품을 그리는 중이다. 붓질은 섬세하고, 순간순간 결과물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나는 세느강 수면에서도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한다. - P113

마지막으로 유람선은 에펠탑 앞에서 다시 방향을 튼다. 에펠탑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그 순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조명을 반짝인다. 그 육중한 몸이 빛으로 별처럼 가벼워진다. 모두의 눈 속으로, 핸드폰 속으로, 강물 위로 아름다움이 낙화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주머니를 꺼내 떨어지는 별빛을, 스치는 반짝임을, 친구 얼굴에 일렁이는 감동을 담는다. 기억하고 싶은 그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꾹꾹 눌러 담아서 아쉬움으로 꼭꼭 닫아둔다. 이 시간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더애틋하게 간직할 기억들이다. 40대 친구 둘이서 하는 여행도,
아이 없이 이토록 마음 편히 있는 시간도, 시시각각 터지는 웃음도, 무엇보다 이토록 빛나는 도시에 우리가 머물렀다는 사실까지도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지금 이곳의 모든 것이 아쉬워질 것이다. 이곳에 우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가장 믿지 못할 무엇이 될 것이다. 뚱뚱해진 기억 주머니를 단단히 챙긴다. 주머니 안에는 온통 친구와의 파리 추억뿐이다. - P114

어느 날 지하철 안에서 친구와 떨어져서 앉게 되었다. 나는우리가 지나는 역이 비르하켐역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친구에게 바로 문자를 보낸다.
‘지금이야, 창밖을 봐•친구가 문자를 확인하고 고개를 드는 바로 그 순간 지하철은 세느강을 건너기 시작한다. 건물들 사이에 가려졌던 에펠 - P114

탑이 갑자기 탁 트인 세느강을 배경으로 튀어나온다. 빠르게달려나가던 모든 시간이 갑자기 느리게 흐른다. 매 순간이 분절되어 찬란하게 새겨진다.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몸서리를 친다. 그 장면에 이젠 친구의 표정까지 더해졌다. 친구의 저표정은, 진짜다. 이 아름다움은, 진짜다.

우리가 이 아름다움 속에, 같이 있었다.

이 문장은 오래도록 믿기지 않을 것만 같다. - P115

한 세계가 가고 다른 한 세계가 왔다. 겨우 두 시간 만에 세계는 완전히 뒤바뀐다. 여행 친구를 선택하는 건 실은 어떤 여행 세계를 선택하느냐와 같은 문제라는 걸 깨닫는다. 좀 더 친숙한 세계를 택할 것인가, 좀 더 모험심 가득한 세계를 택할 것인가, 요리와 술이 넘치게 흐르는 세계를 택할 것인가. 천천히 오래 보는 세계를 택할 수도 있고, 빠르게 많이 경험하는 세계를 택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지금 내게 새로운 세계가 찾아왔고, 덕분에 나는 완전히 다른 파리에 도착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친구에게 내가 지금까지 있었던 보미라는 세계의 이야기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다 보따리는 본격적으로 풀린다.
"밥 먹을 때 와인 한 잔 시켰다가 보미에게는 술 중독이라는소리 들었잖아."
"보미 언니는 술 못 마셔?"
"걘 주량이 맥주병 목이거든." - P126

2023년 5월 21일 / 선영과 오랑주리 / 다시, 마티스 전

가장 용기가 되는 건 과정들. 그림을 그린 과정을 그대로 기록한 20개의 사진 속에서 없던 무늬가 생기고, 줄무늬는 격자무늬로 바뀌고, 다리의 모양이 바뀌며 그림 속 여자의 고개가 빳빳하게 들리는 걸 본다. 가장 완벽한 상태를 찾는 것이 아니라 가장적절한 자신의 스타일에, 자신의 세계에 맞는 작품을 찾는과정. 그 여정. 그것이 내 세계를 찾는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과 연결된다. 거의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6개월 동안 떠난 마티스의 타히티섬 여행을 기억할 것.


그림 속 세계에는 옳고 그름이 없었다. 다만 화가의 선택이필연이 될 뿐이다. 이곳은 거대한 성공의 세상이 아니라, 나만의 세상 속에서 나만의 빛남을 쟁취해나가는 세상이다. 내가창조주인 나의 세상 속에서 나만의 필연을 찾아가는 여정. 마티스 전시에서 유독 내 마음을 울린 건 그 여정이었다. 그의 고 - P133

민이, 그의 방황이, 그의 선택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들이 지금내 눈앞에 있다. 그것이 나에게는 큰 자극이었다. 영원히 머물고 싶은 자극. 품이 넓어 언제든 새롭게 해석되는 자극. 나는잔뜩 상기된 얼굴로 선영이를 만났다. 나와 달리 선영이는 담담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이곳을 둘러본 것만으로도친구에게 이 미술관은 소임을 다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연히 모두가 파리의 미술관을 사랑할 수는 없다. 그녀의 행복이미술관 형광등 아래에 없다면 다른 곳을 찾아보면 된다. 파리는 크고, 그 매력은 결코 하나가 아니니까. 그럼 친구에게 꼭맞는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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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파리 지도는 새롭게 계속 그려졌다. 아침마다 유명한 파리가 그냥 우리 동네로 편입되었다. 부자 동네 생제르맹이 우리 동네가 되고, 뤽상부르 공원이 우리 동네 큰 정원이되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과거로 데려가는 자동차가 달린 길을 걸었다가, 오웬 윌슨처럼 그 성당 계단에 앉아 조용한 우리 동네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주저 없이 그 새벽, 내발이 닿는 곳 모두를 우리 동네라 불렀고, 기꺼이 그 안에서 길을 잃었다. 우리 동네는 점점 더 커져갔다. 길은 반듯하지 않아 늘 나를 낯선 곳에 데려다 놓았으니까. 그리고 나의 정처 없는 새벽 산책을 끝내는 건 언제나 바게트였다. 새벽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는 빵집을 발견하면, 혹시라도 그곳에 ‘ler prixmeilleure baguette (바게트 대회 1등 수상)‘라고 적혀 있으면,
나는 주저 없이 산책을 끝내고 지갑을 열었다. - P33

트라디를 뜯어 먹으며 하는 일은 늘 같았다. 오늘의 운명 찾기. 식탁 앞에 앉아 수년간 구글맵에 표시해놓은 별들을 헤매며 오늘 내 기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운명의 장소를 찾는 것이다. 매일의 산책 길을 선택하는 이야기나, 끌리는 빵집이 나오는 순간 산책을 멈춘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눈치를 챘을지도모르겠다. 그렇다. 어차피 파리 자체를 운명이라 여기며 온 이상, 이곳에서 나는 철저히 운명론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의마음이 이끄는 그곳이 바로 오늘 나의 운명, 평소 그토록 계획짜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파리에서는 아무 계획이 없다. 모두에게 말했다. "정말 아무 계획 없어." 물론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말했다. "계획을 안 짜는 걸 계획했겠지." 엄마, 그렇게 나를 단숨에 간파하지 말라고. - P35

나는 책마다 퐁피두 센터에 대한 사랑을 숨겨두었다.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는 "여행이 일상이 되는 것을 꿈꾼다. 아침 바게트가 일상이 되고, 노천카페가 일상이 되고, 밤새워 쓰는글이, 퐁피두 센터가 (중략) 일상이 되는 것을 꿈꾼다"라고 썼고, 《모든 요일의 여행》에서는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왜 이 땅을 떠나 그 땅에 도착해야만 하는가. (중략) 너무 보고 싶어 세 번이나 들러서보고 또 봤던 미술관 한 귀퉁이의 조각상만 다시 보고 싶었다"
라고 썼고,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에선 "여행자라면 누구나 이마에 박고 살아가는 자신만의 별.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도 이마엔 자신만의 별이 박혀 있단다. (중략) 나의 별은 파리 퐁피두 센터에 있었는데, 너의 별은 밤의 베네치아에 있었구나"라고 썼다. 심지어 이 책의 시작 부분에도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스무 살, 파리에게 첫눈에 반했다. - P37

무엇이 그렇게 좋았을까. 또렷하게 말하긴 조금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나는 그곳에 있는 나를 좋아했다. 처음 보는 그림에 그토록 마음을 내주고, 처음 알게 된 화가의전시실에 오래도록 앉아 있는 나를 좋아했다. 위로할 길 없는슬픔을 가진 조각상이 마음 쓰여서 퐁피두 센터 앞을 지날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매번 다시 들어가는 나를, 찬찬한눈길로 그 조각상의 구석구석을 토닥이며 위로하는 나를 좋아했다. 모네의 그림도 좋아하고, 반 고흐의 그림에도 열광했지만 그 감정과 이 감정은 달랐다. 20대의 나는 유독 특정 슬픔에예민하게 반응했다. 토해내는 슬픔이 아니라 속으로 삼키고또 삼켜 내장이 너덜너덜해져 버린 슬픔을 잘 알아봤다. 그런슬픔이 퐁피두 센터에 있어 나는 이해받고 있다고 느꼈다.
스무 살 때만 매일 이곳에 온 게 아니었다. 그다음 파리에 왔을 때도 아침이면 늘 퐁피두 센터에 들렀다가 어디론가 다시 떠나곤 했다. 겉에서 보기만 해도 좋았고, 좋아하는 장소에 그렇게 쉽게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고, 하루가 좋아하는마음에서 시작되는 것도 좋았다. 그러니 이번 여행을 퐁피두센터에서 시작하는 것은 예정된 나의 운명이었다. - P38

밤 9시, 미술관이 문을 닫는다는 방송이 나올 때가 되어서야나는 간신히 퐁피두 센터를 빠져나왔다. 저 멀리 에펠탑 옆으로 지는 해를 멍하니 바라보며. 이러니 계속 올 수밖에 없지, 라고 중얼거리며. 이러니 오래도록 그림 앞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나도 몰랐던, 내게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작품들이 다 챙겨서 오롯이 내게 안겨주고 있으니 말이다.
구글맵을 켜서 집까지 가는 길을 검색했다. 퐁피두 센터에서 집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이 사실이 어찌나 어이가없는지, 퐁피두 센터 앞에 서서 혼자 바보처럼 웃었다.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데 눈에는 어쩐지 눈물이 고였다. 이곳에 오고 싶어 그 오랜 시간을 헤맸는데, 이제는 버스 한 번이면올 수 있다. 버스 한 번이면 내 몫의 용기를 챙길 수 있다. 언제든. 그야말로 언제든, 믿기지 않지만, 이것이 내가 도착한 곳이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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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매
ㅡ흰 꽃들의 노래


너는
거기 앉아
죄 없이 눈부시구나

봄 나무 불길 속에 앉아
헤헤 웃고 있구나

손 흔들며 뛰어갈 때
귓불을 흔들던 작은 귀걸이
때죽나무 조롱조롱 흰 종을 달고

무얼 하고 놀고 있느냐

산천 가득 다시 돋는
하얀 꽃망울
종아리 아래 빛나던
열여덟 네
뒤꿈치처럼

햇빛 재잘거리는 물속
젖은 얼굴에 흰 수국
못다 한 말 자줏빛 꽃술로 품고
산목련 숭어리마다 맺힌 응어리

설운 땅 닿지 말고 딛고 가라고
절뚝절뚝 철쭉이 피네 오르네
더 놀고 가렴
다물지 못한 입에 이팝꽃 피네
천석 만석
저녁을 짓네

이 멀고 억울한 향기
나는 알지
네 몸 냄새
캄캄한 향기

무덤가에 휘이 호랑지빠귀
네 휘파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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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일상을 여행하며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쓰며 다시 기억을 여행하는 사람.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오래 일했다.
《내 일로 건너가는 법》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띵 시리즈: 치즈》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하루의 취향》 등을 썼으며 현재 ‘오독오독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삶을 계속 여행해보고 싶어졌다. 무정형으로."

이 책은 ‘직장인의 틀‘에서 벗어나 내가 빚는 대로 모양이 바뀌는 삶을 시작하기 위해 로망의 종착지인 파리에서 보낸 두 달간의 이야기다. 새롭게 다가온 ‘무정형의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해답을 찾아가는 작가의 여정은 어느새잃어버린 꿈, 낭만, 취향, 행복 등 나만의 ‘좋음‘들이 번져 내가 좋아하는 것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사랑의 이유를 묻는 건 어리석다. 아무리 촘촘히 대답해도 말과 말이 만드는 성근 망 사이로 사랑은 빠져나갈 수밖에 없으니.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오래도록 말과 말 사이를 헤매며 파리에 대한 나의 사랑을 설명해보려 애했지만, 그 어떤 말에도 이 사랑은 담기지 않았다. 어디부터 말하면 좋을까. 무엇을 말해야 내 사랑이 남들의 사랑과는 다르다는 걸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분명 사랑에 빠진 연인의 마음이다. 이 사랑이 얼마나 운명적인지, 다시 없을 감정인지 설명하고 싶은 거다. 나만 알고 있는 그 사람의 사랑스러움은 하아... 그걸 어떻게 말로 해. 그러니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시점에도 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직감하고 있다. 파리와의 사랑을 하아...... 그걸 어떻게 말로 해.
나는 이 사랑에 대한 설명을 포기한다. 다만 이 사랑의 역사를 말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 P10

어떤 말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휴가가 아니라 여행. 여행이 아니라 삶. 한 시기의 삶. 기어이 내가마련한 삶. 20년간의 회사 생활을 저축해 얻어낸 이자 같은 삶.
거기에 합당한 삶의 모양을 취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그곳에서의 모든 순간을 잘게 잘게 쪼개서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야금야금 뜯어 먹을지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완벽한여행이 아니라 나를 위한 여행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파리 살기가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로망 살기의 모양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결단은 곧바로 다른 친구도 울려버렸다. 오랫동안 같이 일하며 오랫동안 같이 퇴사 후 삶을 이야기한 친구였다. 그친구도 나의 계획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눈이 부풀어 오르더니 울면서 또 웃었다. - P16

봄의 파리는 처음이었다. 내가 알던 회색빛 파리는 그곳에없었다. 공항 지하철에서 나와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쁘렝평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땅 울렸다. 주저함이 없는 햇빛이었다. 그 햇빛 아래에서 사람들도 주저함이 없었다. 오늘 이 도시의 본업은 쁘렝땅이었으며, 이 햇빛을 받는 것만이 모두의 의무였다. 공원 잔디밭에 사람들이 꽃처럼 피어 있었다. 색색의천을 바닥에 깔고서. 웃통을 훌러덩 벗고서. 몸의 마지막 긴장한 톨까지 다 풀어버리고서, 햇빛이 드는 노천카페에는 빈자리라곤 없었다. 테이블 위에선 와인 잔들이 쨍그랑쨍그랑 봄빛을 튕겨냈고, 분수의 물줄기도 봄빛으로 샤워하며 차르르차르르 시끄러웠다. 봄볕에 말린 이불 같은 공기가 바스락바스락 세상을 채우고 있었고, 높다란 마로니에 나무엔 분홍 꽃, 하얀 꽃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오늘, 이 봄을따 먹지 않는 자, 유죄였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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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 많은 소설을 창작하고 난 뒤, 나는 생각과 문장 사이의 시간차를 줄이는 일이 어떤 소설을 끝까지 쓸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깨달았다. 도중에 그만둔 소설들 대개 작가 생활 초기에 이런 미완성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과 끝까지 써서 출판한 소설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애초의 구상에서 대대적인 수정이가해졌느냐 아니냐에 있었다. 내 경우 출판까지 이른 소설들은대개 애초의 구상과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와 플롯으로 완성됐다. 단어와 표현 들은 당연히 모두 바뀌었다. 이때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지우기 키였다. 지우기 키를 더 많이 이용할때, 즉 쓰고 지우기를 더 많이 반복할 때 어떤 소설이 완성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이 사실을 체감하면서 왜 육필로 쓸 때보다 키보드를 이용할 때 소설을 완성시킬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지에 대한 이유도 깨닫게 됐다. 키보드를 이용해 컴퓨터에 입력하면 쓰고 지우기를 더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P242

자신이 쓴 문장들을 지우는 일은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행위다. 조르조 아감벤은 「창조행위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예술에 품격을 부여하는 저항"이라는 말로 작가의 ‘쓰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정의했다. 나는 문장들을 지우는 일이야말로 이 ‘쓰지 않을 수 있는 힘‘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의 제목은 1987년 질 들뢰즈가 파리에서 가진 강연회의 제목과 같다. 따라서 모든 창조행위를 무언가에 대한 저항행위로 규정한 것은 들뢰즈가 먼저였다. 아감벤은 들뢰즈가 말한 ‘저항행위‘라는 게 모호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왜 창조행위가 저항행위인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끌어들여 잠재력을 뜻하는 ‘힘dynamis‘과 행동을 통해 표출된 에너지인 ‘행위energeia‘를 구분한 뒤, 잠재력을행동의 유보, 더 나아가 힘의 부재가 아닌 ‘~하지 않을 수 있는힘‘으로 정의한다. 들뢰즈가 말한 저항행위는 바로 여기에 연결된다. - P243

이처럼 책 중심 시대의 독자는 혁신적 테크놀로지로서의페이지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건 학자뿐만 아니라 소설의 독자역시 마찬가지다. 현대 소설의 독자는 스토리텔러가 들려주는대로 이야기를 쫓아가던 이전의 청자들과 달리 자율적인 읽기가 가능했기 때문에, 진부한 부분은 건너뛰고 난해한 부분은 되돌아가 반복적으로 읽으며 깊이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모더니즘은 바로 이런 자율적인 독자를 상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자율적인 독자와 작가 사이에 존재하는 게 바로 물질로서의 페이지다. 작가가 최종적으로 구성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이 물질로서의 페이지이며, 이 페이지는 최종적인 것이라 불변한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자율적인 독자는 깊이 있는 독서를 할수 있다. - P249

사실 이 메스꺼움을 불러일으킨 실체는 지우기 키가 아니라 컴퓨터 화면일 것이다. 그들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은 LCDliquid crystal display 창을 본 것인지는할 수 없지만, 결국 일어난 일은 마찬가지다. 그들은 페이지를, 텍스트를, 소크라테스가 그토록 우려한 문자언어의 완결성과 불변성을 근본적으로 파괴시키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목격한것이다. 나는 이 ‘액정 liquid crystal‘이라는 단어가 흥미롭다. 액체와 고체의 중간상태에 있는 물질이라는 이 액정 속에서 책중심 문화를 유지하던 텍스트는 조각조각 나뉘어진 채 녹아내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문자언어의 예술성을 담지했던 표현력과수사력 역시 유실되고 있다. 소크라테스조차 바꿀 수 없는 것이문명사적 전환이라면, 아감벤의 어투를 빌려, 그것을 읽지 않고쓰지 않는 힘을 유지한 채, 이제 액정 안에서 읽고 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 P254

이 지체가 저는 흥미롭습니다. 여기에는 시간의 문제가 개입돼 있습니다. 역사의 눈으로 봤을 때는 정교한 시계장치와같이 원인과 결과가 맞물려서 돌아갑니다. 거기에는 지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눈으로 봤을 때 결과의 시간은지체되거나,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은 인과율의 세계, 과학의 세계, 근대성의 세계를 학습하면서도 끊임없이우연과 신화와 운명의 세계에 매료됩니다. 이따금 저는 극지방의 겨울을 상상합니다. 몇 개월간 밤이 계속되는, 그런 세계 속에 제가 있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그때 제가 낮을, 빛을 희망한다면 어떨까, 언젠가 그 빛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데도 긴 밤 안에서 죽는다면 또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희망은 지체되다가 결국에는 영영 실현되지 않겠지요. 소망하는 바를 가졌을 때 개인이 직면하는 것은 이처럼 희망이 유예된 시간입니다. - P295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간신히 살아낼 뿐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저절로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이 사이에 인과의 다리를 놓을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도 구원받을 수 있겠지만, 그 소년의, 그토록 짧은 약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는 근대 이후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 소년에게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를매혹시킨 근대적 기계들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닮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구불구불 흘러내려가는 강을 닮아 있습니다.
인간의 시간은 곧잘 지체되며, 때로는 거꾸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깊은 어둠 속으로 잠겨들지만, 그때가바로 흐름에 몸을 맡길 때라고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쉼없이 흘러가는 역사에 온전하게 몸을 내맡길 때, 우리는 근대이후의 인간, 동시대인이 됩니다. 그때 저는 온전히 인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깊은 밤의 한가운데에서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역사의 흐름에 몸을 내맡길 때, 우리의 절망은 서로에게 읽힐 수 있습니다. 문학의 위로는 여기서 시작될 것입니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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