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일상을 여행하며 글을 쓰는 사람.
글을 쓰며 다시 기억을 여행하는 사람.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오래 일했다.
《내 일로 건너가는 법》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띵 시리즈: 치즈》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하루의 취향》 등을 썼으며 현재 ‘오독오독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삶을 계속 여행해보고 싶어졌다. 무정형으로."

이 책은 ‘직장인의 틀‘에서 벗어나 내가 빚는 대로 모양이 바뀌는 삶을 시작하기 위해 로망의 종착지인 파리에서 보낸 두 달간의 이야기다. 새롭게 다가온 ‘무정형의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해답을 찾아가는 작가의 여정은 어느새잃어버린 꿈, 낭만, 취향, 행복 등 나만의 ‘좋음‘들이 번져 내가 좋아하는 것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사랑의 이유를 묻는 건 어리석다. 아무리 촘촘히 대답해도 말과 말이 만드는 성근 망 사이로 사랑은 빠져나갈 수밖에 없으니.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오래도록 말과 말 사이를 헤매며 파리에 대한 나의 사랑을 설명해보려 애했지만, 그 어떤 말에도 이 사랑은 담기지 않았다. 어디부터 말하면 좋을까. 무엇을 말해야 내 사랑이 남들의 사랑과는 다르다는 걸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분명 사랑에 빠진 연인의 마음이다. 이 사랑이 얼마나 운명적인지, 다시 없을 감정인지 설명하고 싶은 거다. 나만 알고 있는 그 사람의 사랑스러움은 하아... 그걸 어떻게 말로 해. 그러니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시점에도 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직감하고 있다. 파리와의 사랑을 하아...... 그걸 어떻게 말로 해.
나는 이 사랑에 대한 설명을 포기한다. 다만 이 사랑의 역사를 말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 P10

어떤 말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휴가가 아니라 여행. 여행이 아니라 삶. 한 시기의 삶. 기어이 내가마련한 삶. 20년간의 회사 생활을 저축해 얻어낸 이자 같은 삶.
거기에 합당한 삶의 모양을 취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그곳에서의 모든 순간을 잘게 잘게 쪼개서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야금야금 뜯어 먹을지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완벽한여행이 아니라 나를 위한 여행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파리 살기가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로망 살기의 모양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결단은 곧바로 다른 친구도 울려버렸다. 오랫동안 같이 일하며 오랫동안 같이 퇴사 후 삶을 이야기한 친구였다. 그친구도 나의 계획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눈이 부풀어 오르더니 울면서 또 웃었다. - P16

봄의 파리는 처음이었다. 내가 알던 회색빛 파리는 그곳에없었다. 공항 지하철에서 나와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쁘렝평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땅 울렸다. 주저함이 없는 햇빛이었다. 그 햇빛 아래에서 사람들도 주저함이 없었다. 오늘 이 도시의 본업은 쁘렝땅이었으며, 이 햇빛을 받는 것만이 모두의 의무였다. 공원 잔디밭에 사람들이 꽃처럼 피어 있었다. 색색의천을 바닥에 깔고서. 웃통을 훌러덩 벗고서. 몸의 마지막 긴장한 톨까지 다 풀어버리고서, 햇빛이 드는 노천카페에는 빈자리라곤 없었다. 테이블 위에선 와인 잔들이 쨍그랑쨍그랑 봄빛을 튕겨냈고, 분수의 물줄기도 봄빛으로 샤워하며 차르르차르르 시끄러웠다. 봄볕에 말린 이불 같은 공기가 바스락바스락 세상을 채우고 있었고, 높다란 마로니에 나무엔 분홍 꽃, 하얀 꽃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오늘, 이 봄을따 먹지 않는 자, 유죄였다. - P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