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책에 취미를 갖게 된 것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에서 얻은 즐거움 때문이었습니다. 일고여덟 살 즈음에 그것들을 읽느라 다른 모든 재미를 잊었으니까요. 그 언어가 제 모어(母語)이기도 했고, 그것이 내가 아는 가장쉬운 책이었으며, 소재가 그 나이에 가장 알맞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호수의 랑슬로나 『아마디스」, 「보르도의 위옹 같은, 어린애들이 좋아하는 허접한 책들은 제목도 몰랐고 아직도 내용을 모릅니다. 그만큼 내가 받은 교육이 엄정했던 것입니다. 나는 책을 읽느라고, 주어진 다른 학과 공부에는 더욱 게을러졌습니다. 그 점에서, 이해심 있는 개인 교사와 공부를 한 것은 공교롭게도 나와 딱 맞아떨어진 것이지요.  - P323

우리의 옛 성직자들은 그들의 책에서, 음탕하고 무절제한사랑에 응하고 싶지 않아 자기 남편을 거부한 한 여인을 언급하며A칭송하고 있다. 요컨대 아무리 과도하고 무절제하게 추구해도비난받지 않을 만큼 정당한 쾌락이란 없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말해서, 인간이란 가련한 동물이 아닌가? 자신의 자연스러운 조건으로 딱 한 가지 온전하고 순수한 쾌락을 겨우 음미하는데, 이성으로 그것을 잘라 내 버리려고 애쓰기까지 하니 말이다. 인위적인 수단으로, 공부로, 자기의 비참함을 늘이지않으면 충분히 초라하지 않은지, - P362

우리는 운명의 비참을 불리는 데 우리 재주를 썼다.
프로페르티우스


인간의 지혜는 우리를 위해 부지런히, 고통을 색칠하고 단장해서 그것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려고 술책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으로 어리석게도 우리에게 속한 쾌락의 가짓수와 달콤함을 줄이는 데도 재간을 부린다. 내가 만일 철학 학파의 권위자였다면, 다른 길, 보다 자연스러운, 고로 참되고 편하고 거룩하다고할 길을 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길에 한계를 둘 수 있을 만큼 나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 P363

우리의 정신을 고치는 의사이건 마음을 고치는 의사이건, 마치 서로 공모라도 한 듯 괴롭힘, 고통, 고생을 주는 것 말고는 육체나 정신의 병을 치료할 다른 방법도 약도 찾아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밤샘 기도, 단식, 말총 속옷, 멀고 적막한 곳에서의 귀양살이, 종신 투옥, 채찍, 그리고 여타의 괴B롭힘이 치료의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것들이 진짜 고통, 찌르는듯한 쓰라림을 지녀야 하며, 그것도 갈리오라는 자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은 결과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고 말이다. 갈리오는 레스보스섬으로 추방되었는데, 거기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고통을 주려던 처사가 오히려 그를 더 편하게 해주었다는 소식이 로마에 알려졌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을 바꿔 그를 아내 곁으로, 그의 집으로 다시 보내어 그 자리를 지키라고 명했다.
그가 느끼는 방식에 벌을 맞추려고 말이다. - P363

우리에게는 자기가 직접 가 본 적 있는 지역에 대해 정확한이야기를 해 줄 지지(地) 학자들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팔레스티나를 보았다는 것을 내세워 나머지 모든 세상의 소식마저 이야기해 주는 특권을 누리려 드는 게 그들이다. 누구나 자기가 아는 것을 자기가 아는 만큼만 쓰면 좋겠다. 이 문제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주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이 강이나 우물의 특성에 관해서는 특별한 학식이나 경험이 있을 수 있지만 다른 것에대해서는 보통 사람이 아는 정도밖에 모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한 줌밖에 안 되는 지식을 내세워 보려고 물리학 전체에 대해 저술하려 든다. 이 악덕으로부터 심대한 과오가적잖이 생겨난다. - P371

이제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와 사람들이 전해 주는 바를 새겨보니, 각자가 자기 관습이 아닌 것을 야만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면, 이 신세계에는 아무것도 야만적이거나 원시적인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세론과 관습이 보여 주는 본보기와 생각 말고는 무엇이 진리와 이성의 근거가 되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곳에만 항상 완벽한 종교, 완벽한 정치 체제, 삼라만상의 완벽하고 완성된방식이 존재한다는 식이다. 그들은 야만적이니, 자연이 그 자체의 - P371

힘과 그 자체의 평상적인 과정을 통해 생산해 내는 과일들을 우리가 야생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에서 그러하다. 그런데사실은 우리가 인공적으로 변질시키고 평상의 질서에서 벗어나게만든 과실들이야말로 오히려 야만적이라고 불러야 할 일이 아닐까. 전자에는 진짜일 뿐만 아니라 훨씬 쓸모 있고 자연 그대로인효능과 속성이 생생하고 힘차게 살아 있는 반면, 후자에는 우리의부패한 취향을 만족시키려고 적당히 다듬느라 퇴화한 모습으로남아 있다. ‘참으로, 경작도 하지 않는 이들 나라에서 자란 갖가지 과일들은 우리의 것과 견주어 손색이 없을 만큼 그 풍미며 미묘한 맛이 우리 입맛에도 빼어나기 그지없다. 우리의 위대하고강력한 어머니 자연을 누르고 기예가 명예를 차지한다는 것은 당치 않다. 자연의 작품들에 깃든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은 우리가 거기에 얼마나 많은 허튼수작을 부렸던지 완전히 질식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순결함이 반짝거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자연은 공허하고 얄팍한 우리의 기획을 놀랄 만큼 부끄럽게 만드니, - P372

담쟁이는 가꾸는 손길이 없을 때 더 잘 자라며,
산딸기나무는 인적 없는 동굴에서 가장 곱게 피어나고,
새들의 노래는 기교가 없어 더욱 달콤하기만 하네.
프로페르티우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 봐야 작디작은 새 한 마리가 지은 둥지마저 흉내 낼 수 없으니, 그 조직이며 아름다움, 적절한 쓰임새를 우리는 따라 할 수 없다. 미미한 거미가 잣는 거미줄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자연 아니면 - P372

우연, 혹은 인간의 기예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자연이나 우연이 만든 것이요, 가장 미미하고불완전한 것들을 기예가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들 신세계의 민족들은 인간 정신에 의해 형성된 것이 거의 없고 아직도 그들의 원초적인 천진성에 아주 가까이머물러 있기 때문에 내게 그런 점에서 야만적으로 보인다. 그들을 다스리는 것은 여전히 자연의 법이며, 우리의 법에 의해 변질된 바가 매우 적다. 그들이 지닌 순결한 상태를 생각하면 나는 왜이들이 좀 더 일찍, 그들의 진가를 우리 시대보다 더 잘 평가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살던 때에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뤼쿠르고스나 플라톤이 이들을 몰랐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짢다.  - P373

왜냐하면 우리가 경험으로 이들 민족에 대해 알게된 사실들은 황금 시대를 이상화하면서 시인들이 그려 본 온갖그림이며,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 상태를 꿈꾼 온갖 풍경은 물론, 철학이 구상하고 열망해 온 것 자체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게 된 그토록 순수하고 단순한 천진성을 고대인들은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인간 사회가 그토록 적은 기예와 최소한의 인위적인 땜질로 유지될 수 있다고 믿을 수도 없었다. 나는 플라톤에게 말하리라. 그 나라는 어떤 종류의 거래도 없는 곳이라고. 어떤 문자도 알지 못하며 어떤 숫자도 깨우친 바 없고, 판관이라는이름도 정치적 지배 계급도 없으며, 노예 제도도, 부유함과 빈곤 - P373

함이 습속이 된 바도 없다고. 어떤 계약도 없고, 어떤 상속도 재산분할도 없다고. 유유자적한 것 말고는 일이라는 것이 없으며, 모두가 모두를 보살피는 것 말고는 따로 친족을 따지지도 않고, 옷도 없고, 농사도 없고, 쇠붙이도 없고, 포도주나 밀의 사용도 없다고, 거짓말, 배신, 위선, 탐욕, 시기, 중상, 용서를 의미하는 단어들자체가 쓰인 적이 없다고. 그러면 플라톤은 자기가 상상했던 국가가 이 같은 완벽함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알리라. "신들의 손에서 방금 튀어나온 인간들." (세네카)

이것이 자연이 지어 준 최초의 법들이다.
베르길리우스 - P374

하느님은, 선인이라면 이 세상의 행불행이 아닌 다른 것을 희망해야 하고, 악인 또한 이 세상의 행불행이 아닌 다른 것을 두려워해야 함을 가르치시기 위해, 세상 일을 당신의 신비로운 뜻에 따라 조종하고 적용하여 우리가 어리석게 이용할 수 없게 하신다. 세상의 행불행을 인간적인 동기에 따라 이용하려는 자는 경박한자이다. 그런 자들은 찌르기 1점을 얻으면 반드시 2점을 잃는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적수들에게 이 점을 멋지게 증명해보였다. 이것은 이성이라는 무기보다는 기억이라는 무기에 의해 결정되는 말싸움인 것이다. 태양이 광선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는 빛에 만족해야만 한다. 태양 자체에서 보다 큰 빛을 잡겠다고 눈을 쳐드는 자는 그 자만심에 대한 벌로 시력을 잃더라도놀라지 말라. "사람들 중 누가 하느님의 의도를 알 수 있으며, 누가 주님이 원하시는 바를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지혜서 9:13) - P391

나는 사람들이 흔히 하듯 나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잘못은 범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는 나와 다른 점들이 있으리라 쉽게 이해하는 것이다. 내 삶이 어떤 틀에 속해 있다고느낀다고 해서, 남들이 다 그러는 것처럼 세상에 그것을 강요할 마음이 없으며, 살아가는 데는 서로 다른 수많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이해한다. 그리고 너나없이 모두가 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 사이의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원하면 원하는 대로, 내 의향이나 내 원칙으로 남을 구속하지 않으며,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으로 바라보고, 그 사람 고유의 모습에 맞게 옷을 입히는 정도인 것이다.  - P409

그리고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만큼 더 그들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판단할 때는각자 한 사람씩 따로 보고, 일반적인 틀에 맞춰 나를 재려 들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약하다는 사실이, 제대로 평가받아 마땅할 사람들의힘과 활력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할 견해를 변질시키지는 않는다.
"자기가 따라 할 수 있을 만한 것 빼고는 아무것도 칭찬하지 않는사람들이 있다." (키케로)  땅바닥 맨흙 위를 기어가면서도 나는 저기 구름 위까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높이 솟아 있는 몇몇 영웅적인 정신의 고매함을 알아본다. 행동은 그러지 못할 망정, 절도 있는 판단력을 견지하고 적어도 이 주요한 능력이 변질되지 않게 건사하는 것만도 내게는 대단한 일이다.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을때는 선한 의지를 갖는 것으로도 상당한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적어도 우리의 이 땅은 너무나 우중충하여 덕성의 실천은 고사하고 미덕을 상상하는 일마저 드문 지경이다. 그것은 기껏해야 학교에서나 떠드는 상투어일 뿐이다. - P410

덕은 농 속에 걸어 두거나 장식용으로 귀 끝에 매달듯, 혀 끝에 달고 다니는 싸구려 장식품이 되었다.
덕스러운 행동은 더 이상 식별되지 않는다. 덕의 얼굴을 하고 있는 행위들은 외양에도 불구하고 덕의 정수를 담고 있지 않다. 이익이나 영예, 두려움, 습관 혹은 다른 엉뚱한 이유들이 덕행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우리가 행하는 정의나 용기, 너그러움 따위는 남이 보기에, 그리고 대중 앞에 드러나는 모습 때문에 그렇게 불릴 수는 있으나, 행하는 자 자신의 내면에서는 전혀 덕이 아니다. 의도했던 다른 목적, 다른 동기가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덕은 덕 자체에 의해, 그리고 오직 덕 자체를 위해 행해지는 것만 덕으로 인정한다.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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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결국 오만 없는 달콤한 세상에 나를 내던지길 선택한다면 나는 내 분노를 사랑이라고 부르리라. 나는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그첫마디 (사랑)로 나 자신을 영원히 속일까 너무 두려워 폭력 속에, 음욕의 피를 주입한 눈동자 안에 숨는다. 당신의 발과 늘 당신을 나타냈던 익명의 ‘타인‘의 발에 내가 굴복하는 것이 두려워 모든 것을, 정말 모든 것을 숨겼다. 자신을 굽히지 않는 나는어떤 왕인가? 나는 오만의 균열과 무지와 달콤함을 오가는 사랑의 흐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나의 오래된 진실이 아직 쓸모가 있을까? 신은 완벽을 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남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속하지 않으려고 하고 남들에게도 속하지 않으려고 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일곱 개의 죄를 금하셨다. 나는 타인이 ‘그‘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걸 아는 순간,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한다. 나는 사랑이 더 느 - P693

리고 위급함이 나를 소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당신의 사랑이 부디 나의 분노를 덮기를, 나의 분노가 그저 사랑하지 않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의 분노는 잡초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견디기 힘든 책임감으로 애쓰는 것이다. 나는 전능하다고 느끼는 깜짝 놀란 잡초다. 나에게서 파괴적인 거짓 전능함을 없애주시길. 이 선택의 순간에 상처를 주는 사람도 나와 같은 죄에빠져 있다는 것을 내가 깨닫게 해주시길, 바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교만함 속에서 단지 그가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상처를 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도 상처를 주기에 그가 단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단지 자신이 약탈당한 왕처럼 느껴진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분노로 고통받는 자들을 도와주러 오시기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당신에게 자신을 바치는 것이니까. 그러나 당신의 위대함을 나는 이해할 수 없으니,
내 앞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주시기를. 아버지 또는 어머니로, 친구로, 형제로, 애인으로, 아들로, 분노여, 내 안에서 용서로 변하기를, 너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고통이니까. - P694

너무도 대단한 명료함이 현재,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인 나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공허한 통찰력이다. 어떻게 설명할까? 모든 것은 꼭 필요하진 않지만 완벽한 수학적 계산 같다. 말하자면 나는 선명하게 공허를 본다. 내가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보다 무한히 크기에 나에게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통찰력으로 무엇을하겠는가? 나는 내가 가진 이 통찰력이 인간의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 일은 이미 일어났다. 왜냐하면 나는 현실에 대한 이 통찰력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비현실성을 포기하고 감수하는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적응의 끝에서, 그러니까 내 불꽃은 꺼진다. 신이시여, 이 불꽃은 매일을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가능한 방식 안에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그 안에 있기를, 그 안에 있기를, 아멘. - P738

더는 브라질에 대한 그리움으로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나는 뉴욕을 거쳐 돌아올 것이다. 뉴욕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잃으며 2주 동안 머무를 것이다. 뉴욕의 인파는 고독을 누리는가장 쉬운 방법이다. 너무 외롭게 느껴지면 영사관을 방문할 것이다. 브라질을 다시 보기 위해, 어려운 우리 말로 다시 말하기위해, 어렵지만 아름다운 언어. 특히 글로 쓸 때 아름답다. 포르투갈어로 쓰는 일은 확실히 어렵다. 그것은 사고와 결과에 의해작동하는 언어가 아니다. 인간의 섬세한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축약된 순응적 언어다.
그러다가 마침내 - 리우로 돌아올 것이다. 그전에 프란시스쿠 파울루 멘지스와 베네지투 누니스(주소가 뭐였더라? 부탁이니 내게 편지를 써주기를)와 다른 중요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벨렝에 갈 것이다. 그들은 분명 나를 잊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잊지 않았지만, 벨렝에서 매우 행복하게 6개월을 보낸 적이있다. 나는 그 도시에 감사한다. - P750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3시의 저 단단한 태양에대해서 누구도 내게 말해준 적이 없었다. 이토록 메마른 삶의 리듬이나 이 먼지 두드리는 소리에 대해서도 아무도 내게 미리 말해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누가 아프게 할지 막연하게 알려줬다.
그러나 나의 희망을 향해 수평선에서 오는 것이 내게 다가와 내위에서 독수리 날개를 활짝 펴며 정체를 밝힐 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위협적으로 펼친 커다란 날개로, 나를 향해 날카롭게 내밀어 나를 쪼는 부리로 침울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 P767

사춘기 때 찍었던 사진들의 앨범 속에서 나는 오만하게도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지만, 그때가 내가 가장 사랑했던때였고, 나는 그것을 혼자 깨달아야 했다. 거짓말의 대가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나는 조심하기 위해 거짓말하기 시작했고누구도 내게 이런 신중함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거짓말은 나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나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 내가 한 거짓말에 대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할 정도였고, 내게는 그것이 이미 얼빠진 짓이라고 느꼈다 진실을 말하는 일이었다. 나는 결국 내가 한 거짓말이 꾸밈없고, 짧고, 단순한 것이라고 할 정도로 타락했다. 나는 그거짓말이 폭력적인 진실이라고 말했다. - P767

헤밍웨이와 카뮈는 그들의 문학으로 속단하지 않아도 좋은 저널리스트였다. 정도를 잘 지키는 것, 그것이 호흡이 달리지 않는다면 내가 갈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렵다. 많이 쓰면 보통 말이 망가지기 마련이니까. 신발을 팔거나 만드는 게 말을 지키는 데에는 더 나을 것이다. 말은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테니까. 신발을 만들 줄 모르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보또 다른 문제는 신문에 실릴 글을 쓸 때 절대 독자를 잊어서는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쓸 때에는 곧바로 사람들과 타협하지 않고 훨씬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벨루오리존치의 어느 저널리스트는 신기한 사실을 검증했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 책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내가더 복잡한 글을 실어도 신문에 실린 글은 완벽하게 이해한다는것이다. 내가 쓴 글 중에 은총을 받은 상태에 관해 쓴 것이 있는 - P792

데 주제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어느 미사 경본에 실렸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나는 저널리스트에게 독자들의 이해는 텍스트에 접근하는 독자의 태도와 경향, 선입관의 여부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고 대답했다. 어려움 없이 읽는 것에 익숙한 신문 독자들은 모든 것을 다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신문은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신문에 쓰는 글보다 책에 쓰는글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신문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는 기쁨을, 그런 글을 끊임없이 사랑하면서 말이다. - P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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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은 사랑이되, 자신을 버리고는 지속되지 못한다. 아니모든 사랑이 그런 것이라고,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은 그대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일이 아니라, 거꾸로 그대의 삶을 위해 나의 생명력을 북돋우는 일이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점을 잘 보여준 것이 김선우의 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시가 보여준 ‘몸‘의 생동감이, ‘편협한 사랑‘의 정치가, 그래서 때로 ‘시체놀이‘를 수반한다는 것은 역설적이면서도 흥미로운일이다. 이제 시를 쓰는 일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하는갱생의 과정이 된다. 시를 읽을 때 우리는 "잠깐 죽은 척했던 게분명한데/정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느낀다. 적어도시를 통해 "새로 태어나는 척"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잠시 죽은 사람의 마음으로, 그의 시를 읽는 것이다. 
이장욱 시인

어른이라는 어떤, 고독


좁은 골목길 언덕에서 소녀가 칼등을 잡고 햇빛을 자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반달칼을 손톱에서 꺼내 허공을 긋던 소녀가 소년을 안는다 비닐봉지가 부푼다 흘러내리는 새싹들, 부서지는, 일종의 꿈들

있잖아 난 결국 너랑 자지 않을 거야
어제 배운 그 시기억나?
응 그림자를 팔아먹은 지 오래되었어
웅웅 그림자가 없으니 어른이 되어도 우린 함께 자지 못할 거야

침묵이 엄마인 검은 바람의 말, 담장 밑 깨진 화분에 가득고인 소음들, 잃어버릴 집도 돈도 부모도 가진 적 없는 꽃씨들, 떠도는, 일종의 방패인 칼들

그림자가 없는 소녀와 소년이 한낮 골목길 언덕에서 시를 이야기하는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애들에게 들릴지 어떨지 알 수 없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인사한다

미안해.. 나도..... 사생어른이야……

쓸쓸하다
그림자의 사전 3


쓸쓸하다,는 형용사
하지만 이 말은
틀림없는 마음의 움직임

쓸쓸하다,를
동사로 여기는 부족을 찾아
평생을 유랑하는 시인들

유랑이 끝날 때
시인의 묘비가 하나씩 늘어난다

목련 열매를 가진 오후


목련꽃을 사랑하는 이에게
목련 열매를 마저 보여주어라

꿈지럭거리며 허물 벗는 무섬중 같은..

여러개의 심방을 가진 심장,
분열하는 붉은 열매를 찢고

꽃이 사뿐 날아오를 때

꽃을 기억하는 사람의
꽃이 아니라

꽃이 기억하는 열매까지
보여주어라

꽃으로 보여주어

연두의 내부


막 해동된 핏방울들의
부산한 발소리 상상한다
이른 봄 막 태어나는 연두의 기미를 살피는 일은
지렁이 울음을 듣는 일, 비슷한 걸 거라고

상상해본다 최선을 다해 운다고
상상해본다 최선을 다해 웃는다고도
최선을 다해 죽는다거나
최선을 다해 이별한다거나
최선을 다해 남는다거나
최선을 다해 떠난다거나

최선을 다해 광합성하고 싶은
꼼지락거리는 저 기척이
빗방울 하나하나 닦아주는 일처럼
무량하다 무구하다 바닥이 낮아진다

아마도 사랑의 일처럼

아직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꽃 피지 않는 봄이 올 것이다
시인의 부음이 그전에 당도할 것이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이주하는 구름들의 해진 눈꺼풀 위에 문 닫은 나무들의냉담 위에
비린 바람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붉은 바람이

여러번 태어나도 매번 처음인
매번 연습이 모자라는 생
아직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며 깃발을 흔드는 죽은 시인이여 장미 열매를 쪼개고 뜨거운 붉은 차돌을 꺼내 손에 쥔 아직 살아 있는 시인이여
가로수 밑 식탁에 작년 꽃의 두개골을 올려놓지 말 것
기억을 두려워해 기억을 배신하는 눈보라
아직 때가 아니라고
웅얼거리는 하얗게 혼이 빠진 천둥소리 밑에서 불면을 향유하는 잠입자여
돈 때문에 질병 때문에 절망 때문에 질투 때문에 분노 때문에 전쟁 때문에 이기심 때문에 경쟁 때문에 증오 때문에

냉소 때문에 무지 때문에 무수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시취를 맡았다는 개들 아직 없고
미래가 중단되었다는 진단서 아직 없고
지금은 죽을 때가 아니라는 방부된 속삭임,
아직 살아 있는 시인은 죽을 때를 기다렸다

희망은 아프다 아픈 곳에서 태어나는게 희망이므로
나는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불치의 것들과 함께 끝까지갈 것이므로
저 숱한 죽음의 이유는 비루하다 최선은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이런 말을 지껄이는 시인의 매장을 바라는 은밀한 마음들을 애도하며 시인은 썼다
사랑 때문에 죽는 사람이 없다는 것 ㅡ 그것이야말로 이시대의 불명예다

내 시는 명예의 쪽인가 불명예의 쪽인가

검은 밑줄이 시인이 남긴 마지막 기록이었다
밑줄의 오른쪽 끝에 힘이 들어가 씨앗처럼 잠시 반짝였으나

꽃은 피지 않았다
아무도 사랑 때문에 죽지 않게 된 지 오래되었으므로

아직
사랑해서 죽은 자,
마지막 시인이었다

시인의 말

뜻밖에도 설렌다. 처음 떠나는 모험처럼.

나는 여전히 시가
아름다움에의 기록의지라고 믿는 종족이다.
운명이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

이것은 처절하고 명랑한 연애시집이다.
라고 독자들이 말해주면 좋겠다.
사랑한
사랑하는,
아름답고 아픈 세상에 이 시집을 바친다.

2012년 새봄 강원도에서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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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건스스로를 잠재적 작가라고 보는 사람들의 문제를 우회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내가 그랬다면‘, ‘내가 그럴 수 있었다면‘, ‘내가 시간이 있었다면‘이라고 말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어쩌면 그건 사실 그들이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겠지요."
"산문 또는 시를 쓰는 작가의 창작 과정과 비교했을 때 그림을그리는 과정은 어떨까요?"
"클라리시, 아마도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재료의 차이일것입니다. 화가는 색과 그림과 선을 이용하죠. 작가는 문장을 이용하고요. 그러나 창작자로서의 숨은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본질이 다를까요?" - P585

"자원은 같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저는 루시우 카르도주에게 무척 놀랐어요. 그는 아픈 이후로 더는 글을 쓸 수도, 불러줄수도 없게 되었지요. 실어증에 걸렸거든요. 그렇지만 왼손으로그림을 그렸어요. 오른손은 마비된 상태였죠. 왜 왼손으로 글을쓰지 않았을까요? 의사가 설명하길,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틀리지 않는다면, 뇌에는 글, 단어가 나오는 엽이 있다고 해요. 또 다른 엽에서는 그림이 나오고요."
"그가 글을 쓰듯이 그림을 그릴까요? 아니죠. 그림을 그리는것은 수공업이에요, 도구를 다룰 줄 알아야 하는 거죠. 단어를가지고 창작하려고 애쓰는 작가도 마찬가지예요. 단번에 그림을 완성하는 화가는 없어요. 문학에서는 그런 게 존재하나요?" - P585

"어쩌면 랭보는 그랬을 거예요."
우리는 잠시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기 전에 완성작의 모습을 머릿속으로이미 그리시나요? 아니면 그 작품의 특별한 세계를 한 발 한 발발견해나가시나요?"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입니다. 예술가는 자기 작품의 첫 번째 관객이지요. 앞선 해결책, 깨친 지식은 새 작품을 창작하는 데 쓰이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배웠던 것을 잊으려고 할 때에만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는 이미 그린 그림들을 다시 그리는 데 시간을 다 썼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건 그저 복사, 복제품에 불과하지요. 네, 클라리시, 우리가 어떤 여행에 뛰어들 때 우리는 직관으로 무언가를 찾습니다. 나아가야 할 길을 정하고 목표 지점을 선택하지만, 그것이 도착 지점에 당도해야 밝혀지는 것들을 예단하는 일은 아니지요.  - P586

"어떻게 구상을 버리고 추상화가가 되신 걸까요?"
"저는 구상을 버리지 않았어요. 그저 변형시킨 것뿐입니다. 당신의 질문이 뛰어난 화가, 이름 있는 화가가 되기 위해 애썼느냐고 묻는 것이라면,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어요. 오히려 사람들이 저를 거장으로 여길 때마다 무척 놀라는걸요.... 당신은 어떠신가요? 이름을 알리는 게 중요한가요?"
"아니요, 그건 사회적인 문제일 뿐이에요. 실질적으로 중요한것은 표현하는 단어를 기다리며 백지 앞에 있는 것이지요. 그때가 정말 중요한 순간이에요. 이베레, 주제를 바꿔보죠. 어떻게 - P587

실패가 당신 작품의 출발점이 되었을까요?"
"실패는 제 어릴 적 판타지이자 저의 장난감이었어요. 그것이제가 만든 작품에 상징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인간의 얼굴에는 어떻게 관심을 두게 되셨나요?"
"화가의 관점으로 말하자면, 저는 인간의 얼굴에 특별한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으로서 얼굴은 그 사람을 비춰준다고 생각해요. 얼굴이 그 사람을 드러내지요. 저는 내면이 썩은사람은 외면도 썩었다고 생각해요. 클라리시, 그게 아니라면 특수효과를 내기 위해 배우들이 분장할 필요가 없겠지요."
"색깔은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색깔만으로 화가가 느끼는 것을 표현할 수 있나요? 정확히 왜 붉은색 대신에 밤색을 쓰는 것일까요?" - P588

"저는 색이 문맥, 관계 속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립된 색이 차갑거나 따뜻하다고 한다면, 색의 강렬함은 다른 색과부딪치면서 그 정도가 결정되기도 해요."
"작품을 창작한 후에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해방되었다고 느끼시나요? 작업을 잠시 중단하기도 하시나요? 혹은 즉각적으로창작하셔야 하나요?"
이베레는 깊이 생각했다. 나는 그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작품 하나를, 혹은 연작을 끝내고 나면 비워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고 나서는 준비 작업이 시작되죠. 그렇게 창작 기간이다시 시작되는 거예요. 당신도 그런 경험을 하신 적이 있나요?" - P588

"비슷해요. 과장 하나 없이 절망이라 말할 수 있는 허무를 느껴요. 저는 더 심하죠. 새로운 작업의 발아와 준비에 몇 년이 걸리기도 하거든요. 그사이 저는 죽어 있는 거죠. 신인 화가들에게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잠시 생각을 좀 해볼게요." (그는 팔짱을 끼고 한동안 생각에잠겨 있다가 내게 물을 한 잔 마시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돌아와서이 질문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나도 역시 물 한 잔을 마시고 침묵 속에서 답을 기다렸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는 걸 아시나요?" 이베레가 말했다.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나는 대답했다. 마침내 이베레가 입을 열었다.
"자신이 그림을 창조했다고 믿지 말 것. 당신은요? 신인 작가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쓸것. 쓰고 또 쓸 것."
"야스퍼스는 새로운 세대는 손에 구멍이 나 있을 거라고 썼죠." 이베레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베레가 인용했던 야스퍼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 P589

세상에, 사랑이 얼마나 죽음을 방해하는지! 이해는 너무 제한적이기에 나는 내게 본능적, 직관적 삶을 살게 해준 나의 몰이해에 의지한다고 말하지만, 이 말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친구들을 잃었다. 그러나 죽는 것이 두렵진 않다. 나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쉼일 것이다. 그러니까 마침내 요람에 들어가는 것. 나는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낼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내가 버지니아 울프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게 싫다. (게다가 나는 첫 책을 쓰기 전까지 그녀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자살했다는 것을 나는 용서할 수 없다. 끔찍한 숙제는 끝까지 가는 것이다.  - P600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기만의 현실을 사는 것이다.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덜 고통받기 위해서는 조금 무뎌져야 한다. 더 이상 세상의 고통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며 또 무엇을 느끼는지를 온전히 느낀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따라 살지만 더 이상힘이 없다. 나는 조금은 ‘나를 위해‘ 살 것이다. 조금 더 무뎌질것이다- 내가 절대 하지 않을 말이 있다. 책에는, 신문에는 더욱이 하지 않는다. 세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한 남자가 내게 말하길 탈무드는 많은 사람에게 하지 못하는, 몇몇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을 한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 - P600

는 내 자신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나는 내가 몇 가지 진실을 알고 있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내가 그것을 정신적으로 이해하는지 모르겠다. 그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성숙해야만 한다. 난 이미 짐작하고 있다. 그렇지만 진실에는 단어가 없다. 진실들인가 진리인가? 내가 신에 대해 말할 거라고생각하지 말기를. 그것은 나만 아는 비밀이니까.
맑은 가을날이다. 해변에 부드러운 바람과 자유가 가득하다. 나는 혼자였다. 그때는 아무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는 것을 누군가와 나눠야 하니까. 바다는 잠잠했고, 나도 역시 차분했다. 그러나 의심하며 경계했다. 그 고요함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처럼. 아직도 곧 무언가 도래할 것 같다. 뜻밖의 일은 나를 매료시킨다. - P601

나는 이미 두 사람과 너무도 강렬한 대화를 나눠서 존재하면서도 존재하기를 멈췄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우리는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상대였고 상대는 나였다.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에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일은 너무도 어렵다. 너무도 조용하다.
두 영혼의 만남의 깊은 침묵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말로 하기 너무 어렵다. 우리는 서로를 뚫어질 듯 바라봤고 한동안 그 상태로 있었다. 우리 두 사람뿐이었다. 그 순간은 내 비밀이다. 이른바 완벽한 일치 상태가 됐다. 나는 그 순간을 행복의 예민한 상태라고 말한다. 정신이 끔찍하게 맑은 데다 보다 숭고한 차원의 - P601

인간성에 다다르는 느낌인 것이다. 그것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가장 고귀한 순간이었다. 다만 그런 후에…… 그러고 나서 이사람들에게 그 순간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 분주했고 나는 혼자였다. 완전히 혼자였다. 그것은 깊을수록 말 없는 고통이다. 이제 나는 턴테이블을 고치러 온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잠시 멈춰야 한다. 내가 어떤자세로 타자기 앞에 돌아올지 모르겠다. 나는 한동안 음악을 듣지 않았다. 나를 무감각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번에는 영화 <잃어버린 전주곡>을 보면서 현행범이 되어 깜짝놀랐다. 음악이 흐르고 내가 울고 있었던 것이다. 운다고 부끄러워할 것은 없다. 내가 울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게 부끄러운것이지. 나는 글을 쓰고 돈을 받는다. 그러므로 써야 한다. - P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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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과 놀아주기


페널티킥, 프리킥, 오프사이드, 축구의 세칙을 모르지만 공차는 꿈을 꾼다

잔디밭도 축구장도 황토언덕도 아닌 별자리들 사이에서 공을 찬다
거문고자리 큰곰자리 페가수스자리가 한꺼번에 보이는 광활한 운동장

오리온자리의 허리띠 쪽으로 공을 몰다 유성우 쏟아져
황소자리 뿔 속에 들었다가 백조자리 여우자리 오가며
푸른 붉은 흰 콩을 서리해 깜부기불에 굽다
우주먼지 쏴아 걷히며 쾌청해지는 순간
돌고래자리 감마에서 오리온자리를 향해 다시 공을 몰고 달린다
그러다 다리를 삐는 때도 있지만,

잠에서 깨어 소변을 보러 간다
돌돌돌 소변 흐르는 소리가 지구 밖까지 흘러나가는 것

같은 비몽사몽
삔 다리와 멀쩡한 다리와 우주의 움푹 파인 곳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과 인간의 시간에 매달린 벌레집, 어린별들이 터뜨리는 꽃씨들, 푸드득 비늘을 터는 달의 북쪽 같은 걸 생각하다 다시 잠든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 몸이 살려고 뒤치락거리는 낮밤엔 득점이 필요 없는 축구를 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별자리 삼아 공이라 부를 만한 모든 공들을 제멋대로 드리블하며

꽃이라는 유심론


눈앞에 열명의 사람이 잘빠진 몸매로 웃고 있어도
백명의 사람이 반짝이는 선물을 펼쳐 보여도
내 눈엔 그대만 보이는

그대에게만 가서 꽂히는
마음
오직 그대에게만 맞는 열쇠처럼

그대가 아니면
내 마음나의 핵심을 열 수 없는

꽃이,
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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