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국 오만 없는 달콤한 세상에 나를 내던지길 선택한다면 나는 내 분노를 사랑이라고 부르리라. 나는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그첫마디 (사랑)로 나 자신을 영원히 속일까 너무 두려워 폭력 속에, 음욕의 피를 주입한 눈동자 안에 숨는다. 당신의 발과 늘 당신을 나타냈던 익명의 ‘타인‘의 발에 내가 굴복하는 것이 두려워 모든 것을, 정말 모든 것을 숨겼다. 자신을 굽히지 않는 나는어떤 왕인가? 나는 오만의 균열과 무지와 달콤함을 오가는 사랑의 흐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나의 오래된 진실이 아직 쓸모가 있을까? 신은 완벽을 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남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속하지 않으려고 하고 남들에게도 속하지 않으려고 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일곱 개의 죄를 금하셨다. 나는 타인이 ‘그‘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걸 아는 순간,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한다. 나는 사랑이 더 느 - P693

리고 위급함이 나를 소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당신의 사랑이 부디 나의 분노를 덮기를, 나의 분노가 그저 사랑하지 않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의 분노는 잡초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견디기 힘든 책임감으로 애쓰는 것이다. 나는 전능하다고 느끼는 깜짝 놀란 잡초다. 나에게서 파괴적인 거짓 전능함을 없애주시길. 이 선택의 순간에 상처를 주는 사람도 나와 같은 죄에빠져 있다는 것을 내가 깨닫게 해주시길, 바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교만함 속에서 단지 그가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상처를 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도 상처를 주기에 그가 단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단지 자신이 약탈당한 왕처럼 느껴진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분노로 고통받는 자들을 도와주러 오시기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당신에게 자신을 바치는 것이니까. 그러나 당신의 위대함을 나는 이해할 수 없으니,
내 앞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주시기를. 아버지 또는 어머니로, 친구로, 형제로, 애인으로, 아들로, 분노여, 내 안에서 용서로 변하기를, 너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고통이니까. - P694

너무도 대단한 명료함이 현재,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인 나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공허한 통찰력이다. 어떻게 설명할까? 모든 것은 꼭 필요하진 않지만 완벽한 수학적 계산 같다. 말하자면 나는 선명하게 공허를 본다. 내가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보다 무한히 크기에 나에게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통찰력으로 무엇을하겠는가? 나는 내가 가진 이 통찰력이 인간의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 일은 이미 일어났다. 왜냐하면 나는 현실에 대한 이 통찰력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비현실성을 포기하고 감수하는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적응의 끝에서, 그러니까 내 불꽃은 꺼진다. 신이시여, 이 불꽃은 매일을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가능한 방식 안에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그 안에 있기를, 그 안에 있기를, 아멘. - P738

더는 브라질에 대한 그리움으로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나는 뉴욕을 거쳐 돌아올 것이다. 뉴욕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잃으며 2주 동안 머무를 것이다. 뉴욕의 인파는 고독을 누리는가장 쉬운 방법이다. 너무 외롭게 느껴지면 영사관을 방문할 것이다. 브라질을 다시 보기 위해, 어려운 우리 말로 다시 말하기위해, 어렵지만 아름다운 언어. 특히 글로 쓸 때 아름답다. 포르투갈어로 쓰는 일은 확실히 어렵다. 그것은 사고와 결과에 의해작동하는 언어가 아니다. 인간의 섬세한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축약된 순응적 언어다.
그러다가 마침내 - 리우로 돌아올 것이다. 그전에 프란시스쿠 파울루 멘지스와 베네지투 누니스(주소가 뭐였더라? 부탁이니 내게 편지를 써주기를)와 다른 중요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벨렝에 갈 것이다. 그들은 분명 나를 잊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잊지 않았지만, 벨렝에서 매우 행복하게 6개월을 보낸 적이있다. 나는 그 도시에 감사한다. - P750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3시의 저 단단한 태양에대해서 누구도 내게 말해준 적이 없었다. 이토록 메마른 삶의 리듬이나 이 먼지 두드리는 소리에 대해서도 아무도 내게 미리 말해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누가 아프게 할지 막연하게 알려줬다.
그러나 나의 희망을 향해 수평선에서 오는 것이 내게 다가와 내위에서 독수리 날개를 활짝 펴며 정체를 밝힐 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위협적으로 펼친 커다란 날개로, 나를 향해 날카롭게 내밀어 나를 쪼는 부리로 침울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 P767

사춘기 때 찍었던 사진들의 앨범 속에서 나는 오만하게도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지만, 그때가 내가 가장 사랑했던때였고, 나는 그것을 혼자 깨달아야 했다. 거짓말의 대가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나는 조심하기 위해 거짓말하기 시작했고누구도 내게 이런 신중함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거짓말은 나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나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 내가 한 거짓말에 대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할 정도였고, 내게는 그것이 이미 얼빠진 짓이라고 느꼈다 진실을 말하는 일이었다. 나는 결국 내가 한 거짓말이 꾸밈없고, 짧고, 단순한 것이라고 할 정도로 타락했다. 나는 그거짓말이 폭력적인 진실이라고 말했다. - P767

헤밍웨이와 카뮈는 그들의 문학으로 속단하지 않아도 좋은 저널리스트였다. 정도를 잘 지키는 것, 그것이 호흡이 달리지 않는다면 내가 갈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렵다. 많이 쓰면 보통 말이 망가지기 마련이니까. 신발을 팔거나 만드는 게 말을 지키는 데에는 더 나을 것이다. 말은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테니까. 신발을 만들 줄 모르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보또 다른 문제는 신문에 실릴 글을 쓸 때 절대 독자를 잊어서는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쓸 때에는 곧바로 사람들과 타협하지 않고 훨씬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벨루오리존치의 어느 저널리스트는 신기한 사실을 검증했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 책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내가더 복잡한 글을 실어도 신문에 실린 글은 완벽하게 이해한다는것이다. 내가 쓴 글 중에 은총을 받은 상태에 관해 쓴 것이 있는 - P792

데 주제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어느 미사 경본에 실렸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나는 저널리스트에게 독자들의 이해는 텍스트에 접근하는 독자의 태도와 경향, 선입관의 여부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고 대답했다. 어려움 없이 읽는 것에 익숙한 신문 독자들은 모든 것을 다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신문은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신문에 쓰는 글보다 책에 쓰는글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신문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는 기쁨을, 그런 글을 끊임없이 사랑하면서 말이다. - P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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