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灣)



동지 지난 어느 날이다
고양이 눈같이 새파란 달이
떴다

말수 적은 어느 집 새색시의
조브장한 허리를 막 빠져나온 듯
맑은 달이다

귓전에 묶어놓은 썰물 소리들이
이 시린 자갈밭들을 씻어다가
올려놓은 것인가?

썰물 뒤의
긴 모래톱 걸어간
발자국 하나
또하나
나란히
안 보일 즈음
달은 지나
달은 지나

달은 자글자글하게 금이 간 채
나뭇가지에도 걸렸다

무인도를 지나며



사랑의 최종점,
사랑의 열락, 꽃봉오리, 타오름, 에
사람이 살지 않듯
아무도 없으나
그러나 저 사랑의 아슬아슬한 자세!

이 세상 모든
그리움이
새파란
물이 되어
옹립하는

사랑의 변주

비 가득 머금은 먹구름떼 바라보는 할머니 눈매


불현듯
비 가득 머금은 먹구름떼 몰린다
일손 놓고, 넋 놓고
바라보는
할머니 눈매
위에 흰 돛배 하나 떠서
위태롭다

여기는 모두
선상이다

봄빛 근처
-옛 공원에 와서



봄은 아직 일러 나뭇가지들은 내내 적막하고 나는 왜 이 공원에 앉아서 근처를 맴도는 바람결같이 침침한 눈으로 저 먼바다 기슭을 바라보는 것이냐.
지난겨울 내내 나는 무슨 뉘우칠 일이 많아 저 바다는또한 내게 저토록 많은 빛을 모아 반짝이는 것이냐.
늑골 속에서 부- 뱃고동 소리 뽑아가는 저 물위의 신작로.
무엇이 그리 안타깝게 궁금해 저녁해는 자기 생각 깊이깊이 잠기는가.
잠겨...... 自己까지를 없애는가.

인연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오 그래,
네 젖은 눈속 저 멀리
언덕도 넘어서
달빛들이
조심조심 하관하듯 손아귀를 풀어
내려놓은
그 길가에서
오 그래,
거기에서

파꽃이 피듯
파꽃이 피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기꺼이 그것들을, 어떤 점에서는 건전하고 절도 있는 견해들 못지않게, 고찰하기 좋은 예시로 모아 놓는다. 그것을 통해 인간에 대해, 인간의 지각과 이성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인간의 자부심을 그토록 드높여 준 이 위대한 인물들에게서 그렇게 확연하고 그렇게 천박한 결함이 드러나니 말이다. 나로서는 그들이 학문을 마치 아무나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처럼되는대로 다루고, 이성을 허황되고 시시한 도구처럼 가지고 놀면서, 어떤 때는 좀 진지하게, 어떤 때는 좀 느슨하게 온갖 공상과 망상을 내놓았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인간을 닭으로 정의했던그 플라톤도 다른 데서는 소크라테스를 따라 진실을 말하자면 인간이 무엇인지 모른다면서, 인간이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주의일부분이라고 했다. 이 다양하고 불안정한 견해로 그들은 우리를마치 손으로 잡아끌듯, 암암리에 그들이 전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결론으로 이끌어 간다. 언제나 자기 견해를 맨얼굴로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습성이다. 그들은 자기 생각을 때로는 시(詩)의 가공적인 그림자 아래, 때로는 또 다른 어떤 가면 아 - P359

래 숨긴다. 우리가 아직도 불완전하기 때문에 날고기는 여전히 우리 위장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기를 말리고, 삭히고, 썩혀야 한다. 철학자들이 바로 그렇게 한다. 대중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그들은 때로는 본디 가진 견해와 판단을 모호하게 만들고 변조한다. 어린애들을 겁주지 않기 위해 그들은 인간 이성의 무지와 우매성을 터놓고 보여 주려 하지 않지만, 혼란스럽고 오락가락하는 학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충분히 그것을 털어놓는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 나는 이탈리아어를 어려워하는 어떤 이에게 충고했다. 별나게 잘 말하는 게 아니라 단지 자기 뜻을 전달하기만을 바랄 뿐이라면, 라틴어건, 프랑스어 스페인어 또는 가스코뉴어건, 입에서 처음 나오는 말에 이탈리아어 어미만 붙여 보라고. 그러면 언제나 토스카나어나 혹은 로마어 혹은 베네치아어,
혹은 피에몬테어, 나폴리어 등 이 나라 방언과 연결되어, 그 많은 어형(形) 중 어느 하나에 들어맞을 것이라고 말이다. - P360

철학에 대해서도 나는 같은 말을 한다. 철학은 하도 많은 얼굴과 다양성을 지녔고, 해 놓은 말도 많아서 우리의 온갖 망상과 ㅂ몽상이 죄다 들어 있다. 인간의 상상력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철학에 없는 것을 생각해 낼 수 없다. "어떤 철학자의 책에서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말을 할 수는 없다." (키케로) 그래서 나는 더욱 허심탄회하게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사람들에게 내놓는다. 그 생각들이 다른 주인 없이 내 안에서 생겨났을지라도 필시 어느 고대인의 견해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며 "바로 거기서 따왔군!"이라고 말할 사람이 반드시 있으리라는 것을 내가아니까.
내 생활 습관은 천성적인 것들이다. 나는 그 습관들을 만들 - P360

기 위해 그 어떤 철학파의 도움도 요청한 바 없다. 하지만 아무리보잘것없는 것일지언정 그것들을 열거하고 싶어지거나 좀 점잖게 여러 사람 앞에 내보여야 할 때면 내 생각과 예로 보충 설명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들이 우연히도 얼마나 많은 철학적인예와 성찰에 들어맞던지 나 자신에게도 놀라웠다. 내 삶이 어느파에 속하는지, 겪어 보고 살아 본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새로운종류의 철학자이다. 철학자가 되려니 생각지도 않았던 우연한 철학자라니! - P361

우리의 영혼 문제로 돌아와서, 플라톤이 이성은 뇌에, 분노는 가슴에, 욕심은 간에 두었던 것은 한 육체를 여러 지체로 구분하듯이 영혼을 나누고 분리하려 했다기보다 영혼의 움직임에 대한 해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철학자들의 견해 중에서 가장 그럴싸해 보이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영혼이 제 기능으로는 추론하고 기억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욕망하고, 그 외의 다른 작업들은신체의 다양한 기관들을 통해 마치 뱃사공이 자기 경험에 따라 배를 통제하며, 때로는 닻줄을 당기거나 풀어 주고, 때로는 돛을 올리거나 노를 저어 오직 그의 힘으로 갖가지 결과를 이끌어 내듯이) 행사한다는 견해, 그리고 그 영혼이 뇌에 깃들어 있다는 견해이다.
그 부분에 부상을 당하거나 사고가 생기면 즉시 영혼의 기능이 손상을 입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거기서 영혼이 신체의 다른 부분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 P361

철학자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저 한없이 혼란스러운 견해들과 사물의 인식에서 매양 벌어지는 끊임없는 논쟁은 제쳐 두자.
애초부터 인간들은, 가장 잘 타고난, 가장 능력 있는 학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그 무엇에 관해서도 일치할 수 없다는 게 충분히 예측된 사실이니 말이다. 심지어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조차 그들은 일치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의심하는•자들은 그것조차 의심하니까. 또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다.
는 것을 부정하는 자들은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한 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두 견해는 그것을 주장하는 자들의 수효로 볼 때 비교할 바 없이 가장 강력하다. - P389

견해들의 이같이 무한한 다양성과 무궁무진한 갈래들 말고도, 우리의 판단력이 우리 자신에게 주는 혼란과 각자가 자기 안에서 느끼는 애매함으로도 우리는 판단력의 기반이 별로 확고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얼마나 우리는 사물들을 가지각색으로 판단하는가? 얼마나 여러 번 생각을 바꾸는가? 오늘 내가지지하고 믿는 것, 그것을 나는 내 모든 신념을 다해 지지하고 믿는다. 내 모든 능력과 힘이 그 견해를 움켜쥐고 최선을 다해 내게보증한다. 어떤 진리도 그보다 더 힘 있게 품어 안고 간직할 수는없을 것이다. 나는 그것에 내 전부를 내주고, 진실로 그것을 믿는다. 그러나 똑같은 수단으로 똑같은 조건에서 다른 어떤 견해를 - P389

끌어안았다가 후에 그르다고 생각한 일이 한 번이 아니라 백번, 아니 천 번, 나아가 매일매일 일어나지 않았던가?
겪어 봤으면 철이라도 나야 한다. 빛 좋은 개살구에 자주 속아 봤으면, 내 시금석이 대개는 틀리고, 내 저울이 편파적이고 불공정하다는 게 드러났으면 이번이라고 어떻게 다른 때보다 더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도 여러 번 같은 안내자에게 속아 넘어가다니 어리석은 일 아닌가? 그런데도 우연이 우리의 입장을500번이나 바꿔 놓아도, 그것이 하는 일이란 게 마치 항아리에 담듯 우리 믿음에 이런저런 견해를 채워 넣었다 비웠다 하는 것뿐인데도, 언제나 지금, 이 마지막 견해가 확실하고 오류 없는 견해이다. 그 견해를 위해서는 재산, 명예, 생명, 구원,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 P390

이렇게 결국 한 건축물을 지을 때,
처음부터 부정확한 자를 쓰고,
각도기가 삐뚤어 수직에서 멀어지고,
수평이 어느 쪽으로 약간만 기울어도,
건물 전체가 필히 잘못되고, 기울고,
기형이 되어 튀어나오고, 앞뒤가 기울며,
귀가 맞지 않아, 벌써 어떤 곳은 무너질 태세요,
곧 실제로 와르르 무너진다.
맨 처음 계산이 틀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만적인 감각에 의존하면
사물들에 대한 그대의 추론 전체가
필히 부정확하고 틀린 것이 되리라.
루크레티우스 - P452

인간의 삶에서 정녕 가장 주목할 만한 행위인 죽음에서 어떤 사람이 보인 침착한 태도를 판단할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가 그 지경에 이른 것을 잘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마지막 순간이 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이때만큼 희망의 속임수에 잘 넘어가는 경우도 없다. 희망은 우리 귀에 끊임없이 나팔을 분다. "다른사람들은 더 아프고도 죽지 않았어. 상태가 생각만큼 절망적인 것은 아니야. 최악의 경우 하느님이 분명 다른 기적들을 준비하셨을거야." 그리고 그런 일은 우리가 스스로를 너무 대단하게 여겨서일어난다. 세상 만물이 우리가 없어지는 것을 몹시도 괴로워하며,
우리 상태를 함께 아파하는 것만 같다. 바라보는 우리 눈이 달라진 만큼, 사물들도 달리 보이는 것이다. 우리의 눈길이 그것들을못 보게 되어 아쉬워하는 만큼 그것들도 우리가 사라지는 것을 애석해한다는 생각이 든다. 항해하는 사람에게 산, 들판, 마을, 하늘, 그리고 땅이 함께 흔들리며 떠나 가는 것 같아 보이듯이. - P460

대립 논리가 없는 논리란 없다고 철학자들 중 가장 현명한 학파는 말한다. 나는 조금 전 한 고대인이 인생을 경멸하기 위해 주장한 이 훌륭한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잃어버릴 수도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떤 보배도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다." "무엇을 잃어서 겪는 고통이나,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서 겪는고통이나 고통은 똑같다." (세네카)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생명을잃을까 봐 두려워한다면 삶을 진정으로 향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반대로 그 보배에 안심할 수 없고 빼앗길까 두려워할수록 더욱 그것에 애착을 느끼며, 더 단단히 움켜쥐고 끌어안는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추우면 불기운이 더 잘 느껴지듯, 우리의 의지도 반대에 부딪히면 더 날카로워지는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 P4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특히 그것이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그 운동으로 보아 이런생각이 너무도 그럴싸하므로 플라톤이 그렇게 확언했고, 우리시대의 많은 이들도 그것을 확신하거나 또는 감히 부인하지 못한다. 그들은 하늘, 별들, 그리고 이 세상의 다른 구성 요소들도 신체와 영혼으로 구성된 피조물로 조립된 것으로 보면 멸할 것들이지만, 조물주의 결정에 의해 불멸한다는 고대의 견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데 만일 데모크리투스, 에피쿠로스 등 거의 모든철학자들이 생각했듯이 세상이 여럿이라면, 우리 세상의 원칙과규칙들이 다른 세상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지 우리가 어떻게알겠는가? 어쩌면 그것들은 다른 모습과 다른 제도를 가졌을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그것들이 비슷할 수도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거리만 떨어져 있어도 무한한 차이와 다양성이 있음을 바로 이 세상에서 본다. 우리 선조들이 발견한 신세계에서는밀도 포도나무도 볼 수 없고, 우리 고장에 있는 동물들도 전혀 없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다르다. 또 옛날에는 이 세상의 얼마나많은 곳에서 바쿠스도 케레스도 알지 못했던가. - P322

자연에는 오직 의심만이 있을 뿐이라고 프로타고라스는 말한다.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다면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다는 바로 그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수 있다는것이다. 나우시파네스는 우리 눈에 존재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것들 중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기보다는 존재한다고 할 수 없고, 유일한 확실성은 불확실성뿐이라고 주장한다. 파르메니데스는 우리눈에 보이는 것들 중 어느 것 하나도 보편적인 것은 없고 ‘하나‘만이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제논은 ‘하나‘조차 존재하지 않고 전혀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하나‘가 존재한다면 그 자체에, 또는다른 것에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다른 것에 존재하면 둘이 될 것이다. 그 자체에 존재한대도 품고 있는 것과 담긴 것이 있으니 여전히 둘이다. 이런 이론을 따라가자면, 세상은 가짜이거나 공허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 P325

스콜라 학파의 신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의 칙령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스파르타에서 뤼쿠르고스의 명령에 토를 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대한 과실이다. 그의 학설은 우리에게는 철칙이지만 아마도 다른 이의 학설만큼 그릇된 것이다. 왜 플라톤의관념이나 에피쿠로스의 원자, 또는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공(空)과 만(滿), 탈레스의 물, 혹은 아낙시만드로스의 자연의 무한성, 디오게네스의 공기, 퓌타고라스의 수와 균형, 파르메니데스의 무한, 무사이우스의 일자(一者), 아폴로도로스의 물과 불, 아낙사고라스의 유사 부분들, 엠페도클레스의 불화와 우정, 헤라클레이토스의 불, 또는 전혀 다른 견해, 그리도 훌륭한 인간의 이성이제가 참견하는 모든 것에서 확신과 통찰력을 가지고 만들어 내는무한 잡탕의 견해와 판단들 중 한 견해를, 사물의 원리, 질료, 형상, 결여라는 세 요소를 기점으로 구축한 원리들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 만큼 기꺼이 수긍하지 못할 이유를 나는 알 수 없다. - P3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웃 사람들



빌과 알린 밀러는 행복한 부부였다. 그러나 때로 그들은 그들이 속한 그룹에서 어쩐지 자기들만 별볼일 없이 사는 것 같다고느꼈다. 빌은 부기 업무에 매달리고, 알린은 비서의 잡무에 파묻혀 지내면서 말이다. 그들은 가끔씩 그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개는 이웃인 해리엇과 짐 스톤 부부의 삶과 비교해볼 때의 얘기였다. 밀러 부부에게는 스톤 부부가 더 충만하고 빛나는 삶을 사는듯이 보였다. 스톤네는 저녁때면 언제나 외식을 했고, 집에 손님을 초대했으며, 짐의 일과 관련하여 국내 여기저기를 여행하고다녔다.
스톤 부부는 밀러네와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다. 짐은기계 부품 회사의 세일즈맨이었는데 종종 일과 유람을 결합하는 - P18

재주를 부렸고, 이번에는 부부가 함께 열흘 동안 여행을 하며 친척들을 만난다면서 먼저 샤이엔으로 갔다가 그 다음에는 세인트투이스를 방문한다고 했다. 그들이 여행 가고 없을 때면 밀러 부부는 스톤네 아파트를 보살피고, 고양이 키티에게 먹이를 주고, 나무에 물을 주곤 했다.
빌과 짐이 차 옆에서 악수를 했고, 해리엇과 알린은 서로 팔을잡고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즐겁게 지내세요."
빌이 해리엇에게 말했다.
"그럴게요. 두 분도 즐겁게 지내요."
해리엇이 인사했다. 알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짐이 그녀에게 윙크했다.
"잘있어요, 알린, 남편 잘 돌보세요."
"네."
알린이 대답했다. - P19

그가 부엌으로 가서 반짝이는 싱크대 위에 쌓여 있는 깡통 중에서하나를 고르자 재빨리 뛰어올랐다. 그는 고양이가 얌전하게 먹이를 먹도록 놔두고 욕실로 갔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다시 바라보았다. 그는 약장을열고 알약통 하나를 찾아냈다. 통에 붙은 종이에는 ‘해리엇 스톤. 지시대로 하루 한 알‘ 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는 약통을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부엌으로 돌아와 물주전자를 꺼내어 거실로 갔다. 화분에 물을 준 다음 주전자를 바닥의 깔개 위에놓아두고 술을 넣어둔 장을 열었다. 뒤쪽에 놓인 시바스 리갈 병을 꺼내어 두 잔을 따라 마신 후, 소매로 입술을 닦고 술병을 장안에 도로 넣었다.
키티는 소파 위에서 자고 있었다. 그는 불을 끄고 천천히 문을닫은 후 잘 잠겼는지 확인했다. 뭔가 놓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P21

그들은 복도를 건너는 짧은 시간 동안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말을 했을 때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거의 알아들을 수가없었다.
"열쇠, 나한테 줘."
"뭐?"
그녀는 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열쇠 말야. 당신이 가지고 있잖아."
"이를 어째, 열쇠를 안에 놔뒀어."
그는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문은 잠겨 있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손잡이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이 벌어지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는 두 팔을 벌렸고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겼다.
그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걱정 마. 제발, 걱정하지 마."
그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들은 서로 꼭 끌어안았다.
그들은 바람에 맞서듯이 문에 기대어 서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 P29

그들은 당신 남편이 아니야



얼 오버는 세일즈맨으로 현재 실직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아내 도린은 시내 변두리에 있는 24시간 커피숍에서 밤마다 종업원으로 일했다. 어느 날 밤 술을 마시다가 얼은 그 커피숍에 들러 뭘 좀먹기로 했다. 그는 도린이 일하는 곳을 보고 싶었고 공짜로 주문할 수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는 카운터에 앉아서 메뉴를 들여다보았다.
"당신 여기서 뭐 해요?"
그가 거기 앉아 있는 걸 보고 도린이 말했다.
그녀는 주문서를 주방장에게 주었다.
"얼, 뭘 주문할거예요? 애들은 괜찮아요?"
"괜찮아. 커피하고 2번 샌드위치 중 하나를 먹겠어." - P39

얼은 커피를 마시면서 샌드위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양복 차림에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 깃을 열어젖힌 남자 둘이 그의 옆에앉아서 커피를 시켰다. 도린이 커피를 따르고 가자 그중 한 사람이 옆의 남자에게 말했다.
"저 여자 엉덩이 좀 보게. 놀랍군."
다른 남자가 웃었다.
"그리 대단하진 않은데."
"내 말이 그거야."
처음 남자가 말했다.
"그렇지만 어떤 바보들은 엉덩이에 살이 많은 걸 좋아하지."
"난 아니야." - P40

그녀는 커피 주전자를 가지고 돌아와서 그와 그 옆의 두 남자에게 따라주었다. 그러고는 접시를 하나 집어들더니 아이스크림을가지러 갔다. 그녀는 아이스크림 통 안으로 몸을 굽히고 아이스크림을 뜨기 시작했다. 흰색 스커트가 엉덩이에 들러붙고 다리위로 끌려올라갔다. 거들이 보였다. 분홍색이었다. 주름이 지고창백하며 털이 약간 있는 허벅지와 보기 흉하게 퍼져나간 핏줄이 보였다.
얼 옆에 앉은 두 남자가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그들 중 하나가눈썹을 치켜올렸다. 다른 남자는 헤벌쭉 웃으며 도린이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 위에 초콜릿 시럽을 끼얹는 동안, 커피를 마시며그녀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녀가 휘핑 크림 깡통을 흔들기 시작했을 때 얼은 음식을 다 먹지도 않고 일어서서 문으로 향했다. 그녀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으나 그는 계속 걸었다. - P41

"나 조금씩 먹어요. 하루 종일 굶다가 일하면서 조금씩만 먹죠. 그게 상당한가봐요."
일 주일 후에 그녀의 몸무게는 5파운드가 줄었다. 그로부터 또 일주일 후에는 9파운드 반이 줄었다. 옷들이 헐렁해졌다. 그녀는 새 유니폼을 사기 위해 집세 낼 돈에 손을 대야 했다.
"커피숍에서 사람들이 말이 많아요."
그녀가 말했다.
"뭐라고 하는데?"
"첫째로는 내가 너무 창백하다고요. 내가 나 같아 보이지 않는대요. 살을 너무 많이 빼는 게 아닌가 하는거죠."
"살 빼는 게 뭐 잘못됐나? 그 사람들 말에 신경 쓰지 마. 자기들일이나 잘하라고 해. 그들은 당신 남편이 아니야. 그들과 함께 사는게 아니잖아."
"그 사람들과 일을 하잖아요."
도린이 말했다.
"그렇지. 하지만 그들은 당신 남편이 아니야."
얼이 대답했다. - P47

학생의 아내



그가 자신이 찬미하는 시인인 릴케의 시를 읽어주고 있는 동안그녀는 그의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다. 그는 큰 소리로 읽는 걸 좋아했고, 잘 읽기도 했다. 확신에 찬 맑은 목소리가 낮고 음울하게깔리다가 높아지는가 하면 흥분으로 떨리기도 했다. 읽을 때면절대로 책장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담배를 찾아 침대 옆 작은 탁자로 손을 뻗을 때에만 멈추었다. 그의 낭랑한 목소리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막 출발한 대상(商)과 긴 옷을 입고 수염기른 남자들이 나오는 꿈속으로 그녀를 떨어뜨렸다. 그녀는 잠깐동안 그가 읽어주는 것을 듣다가 눈을 감곤 스르르 잠에 빠지는것이었다. - P205

밖이 환해지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창가로 걸어갔다. 언덕 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하얗게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나무들과 길 건너편에 한줄로 늘어선 2층짜리 공동주택들이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동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늘이 점점 하얘지면서 언덕 뒤에서부터 빛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아이들 때문에 밤새 깨어 있었던 때를 제외하고는(그러나 그럴 때면 밖을 내다보지 않고 침대나 부엌으로 서둘러 돌아갔기 때문에 그녀는 그것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 그녀는 평생 해돋이를 몇 번 보지 못했다. 그것도 다 어렸을 때 본 것이었다. 그녀는 그 해돋이 중 어느 것도 지금 것과 같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그림에도, 어떤 책에도 해돋이가 이 - P219

렇게 끔찍하다고 나와 있지 않았다.
그녀는 기다리다가 문을 따고 현관으로 나갔다. 그녀는 가운의목 주변을 여몄다. 공기는 축축하고 차가웠다. 조금씩 조금씩 사물들의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눈길 닿는 대로 여기저기 바라보다가 건너편 언덕 위의 라디오 송신탑 꼭대기에서 반짝이는 붉은 빛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 P2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뚱보



나는 친구 리타네 집에서 커피를 앞에 놓고 담배를 피워가면서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다.
다음은 내가 그녀에게 얘기한 내용이다.
허브가 그 뚱뚱한 남자를 내 담당 테이블에 앉힌 건 손님이 뜸한 어느 수요일 저녁이었어.
그 뚱뚱한 남자는 단정한 외모에 아주 잘 차려입고 있긴 했지만, 난 그렇게 뚱뚱한 사람은 처음 봤어. 모든 게 다 크더라구. 하지만 가장 잘 기억나는 건 손가락이야. 그 사람 테이블 가까이에앉은 노부부의 시중을 들러 그 옆에 섰을 때 그 손가락들을 처음보았어. 보통사람 크기의 세 배는 되어 보이데. 길고 두껍고 말랑말랑하게 생겼어. - P9

나는 다른 테이블의 시중도 들어야 했어. 요구가 많은 사업가네 명이 앉은 테이블하고 남자 세 명과 여자 한명이 앉은 테이블, 그리고 노부부의 테이블이었지. 리앤더가 그 뚱뚱한 남자에게 물을 따라주었고, 나는 그 남자가 결정할 시간을 충분히 준 다음 그테이블로 갔어.
안녕하세요? 주문 받을까요? 내가 말했지.
리타, 그 남자는 덩치가 컸어, 정말 크더라구.
안녕하세요, 좋은 저녁이네요. 우리 이제 주문할 준비가 된 것같은데요, 하고 그가 말했지. - P10

그는 이런 식으로 말했어 ㅡ이상하지 않니? 그리고 때때로 조금씩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더라.
시저 샐러드로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그러고 나서 괜찮으시다면 수프에 빵과 버터를 곁들이구요. 양고기 요리가 좋을 것 같군요. 사워크림 얹은 구운 감자하고요. 디저트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합시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 메뉴를 건넸어.
세상에, 리타, 그 손가락이라니.
나는 서둘러 주방으로 가서 루디에게 주문서를 내밀었어. 그는인상을 쓰면서 그것을 받았어. 너도 알잖아. 그 사람 일할 때면 늘그런 얼굴이지. - P10

나는 침대에 들어가서 가장자리에 딱 붙어 배를 깔고 누웠어. 그런데 불을 끄고 침대로 들어오자마자 루디가 시작하는 거야. 나는 원치 않았지만 바로 누워서 몸의 힘을 뺐어. 그런데 바로 그거였어. 그가 내 위로 올라왔을 때 난 갑자기 내가 뚱뚱하다고 느낀 거야. 내가 끔찍하게 뚱뚱하다고, 너무 뚱뚱해서 루디가 조그맣게 되어버리고 날 제대로 안지도 못한다고.
말도 안 돼, 라고 리타가 말하지만 나는 그녀가 그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어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우울해진다. 하지만 그녀와 그 얘기를 계속 하지는 않을것이다. 벌써 그녀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말했다.
그녀는 우아한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지면서 기다리고앉아 있다.
뭘 기다리는 걸까? 난 알고 싶다.
8월이다.
내 인생은 변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느낀다. - P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