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꺼이 그것들을, 어떤 점에서는 건전하고 절도 있는 견해들 못지않게, 고찰하기 좋은 예시로 모아 놓는다. 그것을 통해 인간에 대해, 인간의 지각과 이성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인간의 자부심을 그토록 드높여 준 이 위대한 인물들에게서 그렇게 확연하고 그렇게 천박한 결함이 드러나니 말이다. 나로서는 그들이 학문을 마치 아무나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처럼되는대로 다루고, 이성을 허황되고 시시한 도구처럼 가지고 놀면서, 어떤 때는 좀 진지하게, 어떤 때는 좀 느슨하게 온갖 공상과 망상을 내놓았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인간을 닭으로 정의했던그 플라톤도 다른 데서는 소크라테스를 따라 진실을 말하자면 인간이 무엇인지 모른다면서, 인간이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주의일부분이라고 했다. 이 다양하고 불안정한 견해로 그들은 우리를마치 손으로 잡아끌듯, 암암리에 그들이 전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결론으로 이끌어 간다. 언제나 자기 견해를 맨얼굴로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습성이다. 그들은 자기 생각을 때로는 시(詩)의 가공적인 그림자 아래, 때로는 또 다른 어떤 가면 아 - P359

래 숨긴다. 우리가 아직도 불완전하기 때문에 날고기는 여전히 우리 위장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기를 말리고, 삭히고, 썩혀야 한다. 철학자들이 바로 그렇게 한다. 대중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그들은 때로는 본디 가진 견해와 판단을 모호하게 만들고 변조한다. 어린애들을 겁주지 않기 위해 그들은 인간 이성의 무지와 우매성을 터놓고 보여 주려 하지 않지만, 혼란스럽고 오락가락하는 학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충분히 그것을 털어놓는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 나는 이탈리아어를 어려워하는 어떤 이에게 충고했다. 별나게 잘 말하는 게 아니라 단지 자기 뜻을 전달하기만을 바랄 뿐이라면, 라틴어건, 프랑스어 스페인어 또는 가스코뉴어건, 입에서 처음 나오는 말에 이탈리아어 어미만 붙여 보라고. 그러면 언제나 토스카나어나 혹은 로마어 혹은 베네치아어,
혹은 피에몬테어, 나폴리어 등 이 나라 방언과 연결되어, 그 많은 어형(形) 중 어느 하나에 들어맞을 것이라고 말이다. - P360

철학에 대해서도 나는 같은 말을 한다. 철학은 하도 많은 얼굴과 다양성을 지녔고, 해 놓은 말도 많아서 우리의 온갖 망상과 ㅂ몽상이 죄다 들어 있다. 인간의 상상력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철학에 없는 것을 생각해 낼 수 없다. "어떤 철학자의 책에서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말을 할 수는 없다." (키케로) 그래서 나는 더욱 허심탄회하게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사람들에게 내놓는다. 그 생각들이 다른 주인 없이 내 안에서 생겨났을지라도 필시 어느 고대인의 견해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며 "바로 거기서 따왔군!"이라고 말할 사람이 반드시 있으리라는 것을 내가아니까.
내 생활 습관은 천성적인 것들이다. 나는 그 습관들을 만들 - P360

기 위해 그 어떤 철학파의 도움도 요청한 바 없다. 하지만 아무리보잘것없는 것일지언정 그것들을 열거하고 싶어지거나 좀 점잖게 여러 사람 앞에 내보여야 할 때면 내 생각과 예로 보충 설명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들이 우연히도 얼마나 많은 철학적인예와 성찰에 들어맞던지 나 자신에게도 놀라웠다. 내 삶이 어느파에 속하는지, 겪어 보고 살아 본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새로운종류의 철학자이다. 철학자가 되려니 생각지도 않았던 우연한 철학자라니! - P361

우리의 영혼 문제로 돌아와서, 플라톤이 이성은 뇌에, 분노는 가슴에, 욕심은 간에 두었던 것은 한 육체를 여러 지체로 구분하듯이 영혼을 나누고 분리하려 했다기보다 영혼의 움직임에 대한 해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철학자들의 견해 중에서 가장 그럴싸해 보이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영혼이 제 기능으로는 추론하고 기억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욕망하고, 그 외의 다른 작업들은신체의 다양한 기관들을 통해 마치 뱃사공이 자기 경험에 따라 배를 통제하며, 때로는 닻줄을 당기거나 풀어 주고, 때로는 돛을 올리거나 노를 저어 오직 그의 힘으로 갖가지 결과를 이끌어 내듯이) 행사한다는 견해, 그리고 그 영혼이 뇌에 깃들어 있다는 견해이다.
그 부분에 부상을 당하거나 사고가 생기면 즉시 영혼의 기능이 손상을 입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거기서 영혼이 신체의 다른 부분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 P361

철학자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저 한없이 혼란스러운 견해들과 사물의 인식에서 매양 벌어지는 끊임없는 논쟁은 제쳐 두자.
애초부터 인간들은, 가장 잘 타고난, 가장 능력 있는 학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그 무엇에 관해서도 일치할 수 없다는 게 충분히 예측된 사실이니 말이다. 심지어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조차 그들은 일치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의심하는•자들은 그것조차 의심하니까. 또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다.
는 것을 부정하는 자들은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한 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두 견해는 그것을 주장하는 자들의 수효로 볼 때 비교할 바 없이 가장 강력하다. - P389

견해들의 이같이 무한한 다양성과 무궁무진한 갈래들 말고도, 우리의 판단력이 우리 자신에게 주는 혼란과 각자가 자기 안에서 느끼는 애매함으로도 우리는 판단력의 기반이 별로 확고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얼마나 우리는 사물들을 가지각색으로 판단하는가? 얼마나 여러 번 생각을 바꾸는가? 오늘 내가지지하고 믿는 것, 그것을 나는 내 모든 신념을 다해 지지하고 믿는다. 내 모든 능력과 힘이 그 견해를 움켜쥐고 최선을 다해 내게보증한다. 어떤 진리도 그보다 더 힘 있게 품어 안고 간직할 수는없을 것이다. 나는 그것에 내 전부를 내주고, 진실로 그것을 믿는다. 그러나 똑같은 수단으로 똑같은 조건에서 다른 어떤 견해를 - P389

끌어안았다가 후에 그르다고 생각한 일이 한 번이 아니라 백번, 아니 천 번, 나아가 매일매일 일어나지 않았던가?
겪어 봤으면 철이라도 나야 한다. 빛 좋은 개살구에 자주 속아 봤으면, 내 시금석이 대개는 틀리고, 내 저울이 편파적이고 불공정하다는 게 드러났으면 이번이라고 어떻게 다른 때보다 더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도 여러 번 같은 안내자에게 속아 넘어가다니 어리석은 일 아닌가? 그런데도 우연이 우리의 입장을500번이나 바꿔 놓아도, 그것이 하는 일이란 게 마치 항아리에 담듯 우리 믿음에 이런저런 견해를 채워 넣었다 비웠다 하는 것뿐인데도, 언제나 지금, 이 마지막 견해가 확실하고 오류 없는 견해이다. 그 견해를 위해서는 재산, 명예, 생명, 구원,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 P390

이렇게 결국 한 건축물을 지을 때,
처음부터 부정확한 자를 쓰고,
각도기가 삐뚤어 수직에서 멀어지고,
수평이 어느 쪽으로 약간만 기울어도,
건물 전체가 필히 잘못되고, 기울고,
기형이 되어 튀어나오고, 앞뒤가 기울며,
귀가 맞지 않아, 벌써 어떤 곳은 무너질 태세요,
곧 실제로 와르르 무너진다.
맨 처음 계산이 틀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만적인 감각에 의존하면
사물들에 대한 그대의 추론 전체가
필히 부정확하고 틀린 것이 되리라.
루크레티우스 - P452

인간의 삶에서 정녕 가장 주목할 만한 행위인 죽음에서 어떤 사람이 보인 침착한 태도를 판단할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가 그 지경에 이른 것을 잘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마지막 순간이 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이때만큼 희망의 속임수에 잘 넘어가는 경우도 없다. 희망은 우리 귀에 끊임없이 나팔을 분다. "다른사람들은 더 아프고도 죽지 않았어. 상태가 생각만큼 절망적인 것은 아니야. 최악의 경우 하느님이 분명 다른 기적들을 준비하셨을거야." 그리고 그런 일은 우리가 스스로를 너무 대단하게 여겨서일어난다. 세상 만물이 우리가 없어지는 것을 몹시도 괴로워하며,
우리 상태를 함께 아파하는 것만 같다. 바라보는 우리 눈이 달라진 만큼, 사물들도 달리 보이는 것이다. 우리의 눈길이 그것들을못 보게 되어 아쉬워하는 만큼 그것들도 우리가 사라지는 것을 애석해한다는 생각이 든다. 항해하는 사람에게 산, 들판, 마을, 하늘, 그리고 땅이 함께 흔들리며 떠나 가는 것 같아 보이듯이. - P460

대립 논리가 없는 논리란 없다고 철학자들 중 가장 현명한 학파는 말한다. 나는 조금 전 한 고대인이 인생을 경멸하기 위해 주장한 이 훌륭한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잃어버릴 수도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떤 보배도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다." "무엇을 잃어서 겪는 고통이나,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서 겪는고통이나 고통은 똑같다." (세네카)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생명을잃을까 봐 두려워한다면 삶을 진정으로 향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반대로 그 보배에 안심할 수 없고 빼앗길까 두려워할수록 더욱 그것에 애착을 느끼며, 더 단단히 움켜쥐고 끌어안는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추우면 불기운이 더 잘 느껴지듯, 우리의 의지도 반대에 부딪히면 더 날카로워지는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 P4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