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십오 년 전인 1963년에 처음으로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그뒤로 계속 단편소설만 썼다. 이렇게 내가 간결함과 강렬함에 끌리는 원인의 일부는 (일부일 뿐이지만) 내가 단편소설 작가임과 동시에 시인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아직 학부생이던 1960년대 초기부터 시와 단편소설들을 거의 동시에 쓰고 발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인인 동시에 단편소설작가라는 점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나는 단편소설 쓰기의 매력에 완전히 사로잡혔기 때문에 설사 내가 원한다 할지라도 이제는 그만둘 수가 없다. 그리고 그만두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나는 좋은 단편이 보여주는 재빠른 도약을, 종종 첫 문장부터 - P338

시작되는 흥분을, 최상급 단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신비로운 감정을 사랑한다. 그리고 단편소설은 앉은자리에서 다쓰고 다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랑한다. (시처럼!) 이는 내가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였고,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ㅡ 그리고 아마 지금까지도 ㅡ 내게 가장 중요한 단편소설 작가는 이사크 바벨, 안톤 체호프, 프랭크 오코너, V. S. 프리쳇이었다. 누가 내게 바벨의 단편집을 처음 건넸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바벨의 가장 위대한 단편 가운데 한 문장과 마주한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 문장을 당시 늘 가지고 다니던작은 공책에 옮겨 적었다. 모파상과 그의 소설에 대해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 어떤 쇳조각도 올바른 자리에 찍힌 마침표처럼 강력하게 우리의 가슴을 찌를 수는 없다." - P339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계시를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바로 그렇게 글을 쓰고 싶었다. 정확한 위치에 정확한 구두점을찍음과 동시에 적절한 단어들을 배열하고, 정확한 이미지들을그려내서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집에 불이 나지 않는 한 눈을돌리지 못할 만큼 이야기에 확 빨려들게 하고 싶었다. 단어에 행동의 힘을 요구하는 건 아마도 헛된 바람일지 모르겠으나, 그건분명히 젊은 작가가 지닐 만한 소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독자들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명확하고 힘있는 글을 쓰고 싶 - P339

다. 오늘날도 이것은 내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첫번째 단편이 발표되고 십삼 년이 지난 1976년이 되어서야내 첫 단편집인 『제발 조용히 좀 해요』가 출간되었다. 창작, 잡지를 통한 발표, 그리고 책 출간 사이에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것은 내가 일찍 결혼한데다 아이들을 양육하고 블루칼라 노동직에 종사해야 했던 절박한 상황들, 황급하게 약간의 교육을 받아야 했던 점, 그리고 단 한 번도 월말까지 돈이 풍족했던 적이 없던 생활에 어느 정도는 원인이 있다. (내 삶에 은은함이란 거의없었는데도, 어떻게 하면 강물처럼 은은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될수 있을까 배우려 한참 동안 애쓰던 때이기도 하다.) - P340

첫 책을 채울 분량을 쓰고 그걸 출판해줄 사람 ㅡ 덧붙이자면 그 사람은 이처럼 터무니없는 일, 즉 무명작가의 첫 단편집을 내는 일에 무척이나 회의적이었다!ㅡ을 찾느라 십삼 년을 소비한뒤 나는 시간이 있을 때 재빨리 글을 쓰는 법을 배우려 애썼고,
영감이 있을 때 후다닥 글을 써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시간이 흘러 영감의 원천이 된 일들이 잠잠해지고, 너무나 안타깝게도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면 거리를 두고 꼼꼼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살펴보았다.
인생이 다 그러하듯 필연적으로 시간이 뭉텅이로 그냥 사라져버리는 일도 종종 있었고, 그 오랜 기간 동안 나는 그 어떤 단편도 쓸 수 없었다. (지금 그 시간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얼마 - P340

나 좋을까!) 때로는 소설을 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일이 년을흘려보냈다. 하지만 종종 나는 그 시간의 일부를 시를 쓰며 보낼수 있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중요했다. 왜냐하면 이제 꺼진 건아닐까 종종 두려워하던 내 안의 열정이 시를 쓴 덕분에 완전히 꺼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적어도 내게는 신기하게도 다시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돌아왔다. 내 삶의 환경이 바로 섰고, 아니면 적어도 개선되었고, 소설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글을 썼다. - P341

나는 십오 개월 동안 「대성당을 썼다. 이번에는 그중 여덟 편이 다시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 단편들을 쓰기 전 이 년 동안 나는 앞으로 무얼 쓰든 그걸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 그리고 어떻게 쓰고 싶은 건지를 알아내기 위해 이전에 썼던 글들을 살펴보았다. 그전에 낸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분수령이 되어준 책이었지만, 그런 책을 또 쓰거나 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기다렸다. 시러큐스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시와 서평 몇 편, 에세이를 한두 편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뭔가가 일어났다. 잠을 푹 잔 뒤, 나는 책상으로 가서 「대성당」을 썼다. 이게 그동안 내가 써온 이야기와는 다른 종류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어찌어찌 나는 내가 가야할 새로운 방향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쪽으로 갔다. 빠르게. - P341

V. S. 프리쳇은 단편소설을 "지나가며 곁눈질로 얼핏 본 무엇이라고 정의했다. 처음에는 얼핏 본 것일 뿐이다. 이윽고 그 얼핏 본 것에 생명이 생기고, 순간을 밝히는 뭔가로 바뀌고, 아마도 독자의 의식에 지울 수 없는 무언가가 깊게 새겨질 것이다. 헤밍웨이가 너무나도 멋지게 해냈듯이, 독자의 경험의 일부가되는 것이다. 영원히. 작가는 희망한다. 영원히.
만약 우리가 작가와 독자 모두가 운이 좋다면, 우리는 단편소설의 마지막 한두 줄을 마치고 잠시 조용히 앉아 있을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방금 우리가 쓴 또는 읽은 글에 대해 생각하리라. 아마 우리의 심장 또는 지성은 글을 읽기 전에 비해 아주 살짝 그 위치가 달라졌으리라. 우리의 체온은 눈에 띄게 올라가거나 내려가리라. 이윽고 숨이 다시 차분해지면, 우리는, 작가와독자는 마찬가지로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나리라. 그리고 체호프 - P342

의 등장인물이 말했듯이 "따뜻한 피와 신경으로 창조되어" 다음 일을 향해 전진하리라, 삶을 향해, 언제나 삶을 향해. - P343

좋은 창작 수업 선생이라면 좋은 작가 한 명을 여러 번 구해줄 수 있다. 내 생각에는 나쁜 작가 한 명도 여러 번 구할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글쓰기란 힘들고 외로운 과정이며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쉽다. 만약 우리가 일을 제대로 한다면, 창작 수업 선생들은 없어서는 안 될 부정적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제대로 선생 노릇을 하려면, 젊은 작가들에게 어떻게 쓰면 안 되는지를 가르치고, 또 어떻게 쓰면 안 되는지스스로 깨닫는 법을 가르쳐야만 한다. 에즈라 파운드는 독서의ABC에서 "서술의 근본적인 정확성은 글쓰기의 유일한 도덕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만약 ‘정확성‘이라는 단어를 언어 사용에서의 정직함으로 받아들인다면, 즉 작가가 얻고자 하는 결과를정확히 얻기 위해 의도하는 것을 정확히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학생의 글쓰기에서 정직함이란 도움과 격려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심지어 남에게서 배울 수도 있으리라 본다. - P349

글을 썼던, 또는 한 줄도 쓰지못했던 방에 들어가 텅 빈 종이 앞에 앉아 있을 때면 작가는 온몸으로 무시무시한 흥분을 느낀다. 동료 작가들도 똑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봤자, 심지어 당신과 동시에 그렇다는 걸알아봤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약 그 방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뭔가가 나오고, 그 공동체에 당신이 한 것을보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당신이 옳고 진실된 글을 쓰면기뻐하고 그러지 못했을 때 실망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어느 경우이든 상대는 자신의 생각을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묻는다면 말이다. 물론, 그걸로 충분하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도움은 된다. 그동안 당신의 근육은 강해지고, 피부는 두꺼워지고, 추위와다가올 힘든 여행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해줄 두툼한 겨울용 털이자라기 시작한다. 운이 좋다면, 당신은 별의 인도를 받아 방향을잡을 수도 있으리라.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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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편으론 이 단편이 사람들이 무조건 좋아하고 모든 것을 포기할, 영향과 폭과 깊이와 등장인물의현실감 넘치는 감정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 이것은 다른 종류의 이야기-어쩌면 더낫지 않을 수도 있고, 분명히 희망컨대 더 나쁘진 않았으면 좋겠지만, 어쨌든 다른 종류이다. 그리고 이 단편에서 내부적·외부적 진실과 가치는 안타깝지만 등장인물과도, 단편소설에서 소중히 여겨지는 다른 가치들과도 별 관계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과 글쓰기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내가싫어하는 점보다는 좋아하는 점을 더 잘 찾아내는 경향이 있다.
요즘에는 대형 잡지와 소형 잡지, 그리고 책의 형식으로 온갖 좋은 글들이 출판되는 듯하다. 물론 별로 안 좋은 글들도 많지만,
뭐하러 그런 것까지 걱정하겠는가? 내 마음속에서는 조이스 캐럴 오츠가 내 세대의 첫번째 작가이며(아마도 최근 세대까지도그러하리라, 우리 모두는, 적어도 가까운 장래까지는 그 그림자또는 주문 속에서 살아나가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 P307

나는 ‘타고난‘ 시인이 아니다. 내가 쓴 시 상당수는, 단편소설쓰는 걸 가장 좋아함에도 그것을 쓸 시간이 늘 주어지는 건 아니라서 쓰게 된 것들이다. 단편소설에 흥미가 있다보니 나는 이야기 줄거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 내가 쓴 시 상당수는서술적인 경향이 있다. 나는 처음 읽었을 때 뭔가를 말해주는 시를 좋아한다. 하지만 물론 내가 무척 좋아하는 시, 또는 특별히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시의 경우에는 그 시를 이해하기 위해 두 번, 세 번, 네 번이라도 읽는다. 내가 쓴 모든시에서 나는 명확한 분위기 또는 환경을 추구한다. 나는 시 속에인칭대명사를 빈번히 쓰지만 내가 쓰는 시의 상당수는 순수한 창작물이다.  - P308

에세이 두 편은 1981년에 원고 청탁을 받아 쓴 것이다. 하나는 뉴욕 타임스 북 리뷰>의 편집자가 나에게 "글쓰기에 대한 견해를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써달라고 해서 그 결과로 나온 「글쓰기에 대해」라는 짧은 글이다. 다른 하나는 <아메리칸 포어트리리뷰>의 스티브 버그와 하퍼 & 로의 테드 솔로태로프가 ‘영향‘에대한 글들을 모아 『계속되는 것을 찬양하며』라는 책을 내겠다며내게 원고를 하나 써달라고 했을 때 쓴 글이다. 나는 거기에 「정열」을 보냈고, 이 책의 제목으로 그걸 쓰기로 한 건 노엘 영의 생각이었다. - P313

가장 일찍 쓴 단편은 1966년에 쓴 「오두막」으로, 『분노의 계절』에 실렸으며 이번 출간을 위해 올여름에 개정을 했다. <인디애나 리뷰>는 1982년 가을호에 이 단편을 실을 예정이다. 훨씬더 최근에 쓴 단편 「꿩」은 이번 달에 메타콤 프레스가 내는 한정판 시리즈로 출간될 예정이며, 올가을 <뉴잉글랜드 리뷰>에도실릴 것이다.
나는 내 단편소설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처음부터 제대로 글을 쓰는 것보다는 글을 다 쓴 뒤 이리저리 고치고, 더 고치고, 여기를 바꾸고, 저기를 바꾸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내게 있어 처음에 글을 쓰는 건 그 이야기를 가지고 놀기 위해 - P313

견뎌야 할 시련처럼 보일 뿐이다. 내게 있어 고쳐쓰기는 하기 싫은 시시한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충동적이기보다는 계획적이고 신중한 쪽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뭔가에 대한 설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연관지으려 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다 쓴 글을 개정하는 작업이 내겐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건확실하다. 어쩌면 내가 개정 작업을 하는 건 그 과정을 통해 점차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심장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그것을 알아낼 수 있는지 알기 위해열심히 애를 써야만 한다. 글이란 고정된 위치라기보다는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 P314

당연히, 내 시는 문자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다. 진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며, 실제 일어났다 하더라도 적어도 시에서 내가말한 방식대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단편소설 대부분이 그러하듯 시에도 내 자서전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 시 속에서일어나는 일들과 비슷한 뭔가가 언젠가 내게 일어났으며, 그 기억이 표출되길 기다리며 내 안에 담겨 있었다. 또는 시에서 종종서술되는 대상이 그 시를 쓰던 당시의 내 심적 상태를 어느 정도는 반영하고 있다. 나는 크게 보아 내 시가 단편소설보다 좀더 개인적이며 그래서 좀더 나를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작품이든 다른 사람의 작품이든, 서술적인 시를 좋아 - P326

한다. 시가 꼭 시작과 중간과 결말이 있는 이야기를 말해야 할필요는 없지만, 내게 있어 시는 계속 움직이고, 생생히 나아가고, 번뜩이는 게 있어야만 한다. 시란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여야한다. 그 방향이라는 것이 과거일 수도 있고, 먼 미래일 수도 있다. 또는 옷자란 오솔길로 방향을 틀 수도 있다. 심지어 지구에한정된 게 아니라 별들 속을 누비며 머물 곳을 찾을 수도 있다. 무덤 너머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연어, 기러기, 메뚜기와 여행을 할 수도 있다. 시는 정지해 있으면 안 된다. 시는움직여야 한다. 시는 움직이고, 설사 그 안에서 신비로운 요소들이 작용할지라도,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암시하는 본질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시는 빛나야 한다. 적어도, 나는 시가 빛나길 바란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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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로 이사하기 오래전부터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물론 가공의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쓰고 싶었지만 동시에 시, 극, 각본도 쓰고 싶었고, 〈스포츠 어필드》 《트루〉 〈아르거시〉 〈로그>와 같은 곳에 기사도 쓰고 싶었다(당시 내가 읽던 잡지들이다). 지역 신문에도 글을 쓰고 싶었다.
일관성 있게 단어를 엮는 일이기만 하다면, 그리고 나 말고 다른사람의 흥미도 끌 수 있는 내용이라면 무엇이든 간에 글을 쓰고싶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사할 당시, 작가가 되려면 뭔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느낌이 뼛속 깊이까지 들었다. 당시 나는 교육에 굉장히 높은 우선순위를 두었다ㅡ지금보다도 당시에 더 그랬다고 확신하지만, 그건 이젠 내가 나이가 들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 P196

내 가족 중엔 대학에 간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사실 의무교육 과정인 8학년 이상을 다닌 사람조차 아무도 없었다. 나는아무것도 몰랐지만,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큼은 알았다.
그러니까 교육을 받겠노라는 욕망과 함께, 내겐 글을 쓰고 싶다는 아주 강한 욕망이 있었다. 그 욕망이 어찌나 강한지 분별력‘과 ‘차가운 현실‘ ㅡ즉 내 삶의 ‘실체‘ㅡ이 계속해 나에게 이제그만둬야 한다고, 이제는 꿈을 버리고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 뭔가 다른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음에도 나는 그뒤로도 오랫동안계속해 글을 썼다. 대학에서 받은 격려와 그때 얻은 통찰력이 도움이 되었다. - P196

가드너는 내가 글을 쓸 마땅한 장소를 구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내게 어린아이들과 아내가 있으며 우리가 성냥갑처럼 좁은 집에서 산다는 걸 알았다. 그는 내게 자기연구실 열쇠를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물은 내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그냥 평범한 선물이 아니었고, 내게 일종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진 듯하다ㅡ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나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의 일부를 그의 연구실에서 보냈고, 그곳에는 그의 원고가 든 상자들이 있었다. 그 상자들은 책상 옆 바닥에 쌓여 있었다. 상자 하나에 유성 연필로 니켈 산이라고 적혀 있던 것이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제목이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기 위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시도했던 것은 그의 연구실에서, 출간되지 않은 그의 책들이 보이는 곳에서였다.) - P198

그의 수업에서 단편을 쓰려는 학생들은 열에서 열다섯 쪽 분량의 단편소설을 하나 쓰는 과제를 받았다. 장편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이들ㅡ내 생각에 한두 명 정도 있었던 듯하다ㅡ은 이십쪽 정도 분량의 챕터 하나와 나머지 내용에 대한 요약을 써야 했다. 중요한 점은, 단편소설 한 편이나 장편소설의 한 챕터를 가드너가 만족할 때까지 학기중에 열 번 정도 교정을 해야 한다는것이었다. 작가라면 자신이 말한 것을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발견한다는 것이 가드너의 기본신조였다. 그리고 교정 과정을 통해 이런 것을 볼 수 있다고, 또는 좀더 명확히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교정을, 끝없는 교정을믿었다. 가드너는 교정 과정을 진심으로 신뢰했고, 작가가 어느단계에 있든지 꼭 필요한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는 이미 다섯번은 읽었던 글이라 할지라도 학생의 글을 읽으며 지겨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P200

내 생각에 1958년 그가 단편소설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은1982년에도 여전한 듯하다. 그는 단편소설이란 눈에 띄는 시작, 중간, 결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끔 그는 칠판으로 가서자신이 원하는 이야기의 봉우리, 계곡, 평원, 해결, 대단원과 같은 감정의 솟구침과 하강에 대해 요약해 보여주기 위해 도표를그리곤 했다. 노력은 했지만 사실 나는 그가 칠판에 그린 내용을이해할 수 없었고, 그리 큰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수업시간에 토론 주제가 된 학생의 단편소설에 대해 그가 하는 평들은 - P200

이해할 수 있었다. 가령, 가드너는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이야기가 거의 끝날 무렵까지 그 인물이 장애인인 것을 밝히지 않은 이유를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학생은 독자들이마지막 문장에 가서야 이 남자가 장애인임을 알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의 어조에는 반대 의견이 담겨 있었고, 그 말을 듣는 즉시 그 글을 쓴 작가를 포함해 수업에 참석한모든 사람들이 그게 좋은 전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독자를놀라게 하려는 의도에서 중요하고 필요한 정보를 이야기가 끝날때까지 숨기는 전략은 속임수였다. - P201

수업시간에 그는 늘 내게 낯선 작가들 이름을 거론했다. 혹은이름은 알았다 할지라도 작품은 읽지 않은 작가들을 거론했다.
콘래드 셀린, 캐서린 앤 포터, 이사크 바벨, 월터 밴 틸버그 클라크, 체호프, 호텐스 캘리셔, 커트 하낵, 로버트 펜 워런. (우리는 워런의 「블랙베리 겨울이라는 단편을 읽었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나는 그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고, 가드너에게 그렇게 말했다. "다시 읽는 게 좋을 거야." 가드너는 그렇게 말했고, 그는농담을 한 게 아니었다.) 윌리엄 개스도 언급했다. 가드너는 막<MSS>라는 잡지를 출간하려던 참이었고, 그 첫 호에 「피더슨의아이라는 단편을 실을 예정이었다. 나는 그 원고를 읽었지만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다시 한번 가드너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가드너는 이번에는 내게 다시 읽어보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 P201

내게서 원고를 받아가기만 했다. 가드너는 제임스 조이스와 플로베르와 이사크 디네센에 대해 마치 그들이 유바시티 거리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가드너가 말했다.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자네에게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만큼 누구의 글을 읽어야 하는지도 가르쳐주기 위해서야." 나는 멍한 상태로 교실을 나왔고, 도서관으로 곧장 가서 가드너가 말한 작가들 책을 찾아보았다.
그 당시 헤밍웨이와 포크너는 유행하는 작가였다. 하지만 나는 이 둘이 쓴 작품을 고작해야 두세 권 정도 읽은 것 같다. 어쨌든, 그 둘은 워낙 유명했고 자주 회자되는 사람들이다보니 실제작품이 그 유명세만큼 뛰어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안 그런가? 나는 가드너가 내게 한 말을 기억한다. "포크너의 작품을 닥치는대로 읽어. 그런 뒤엔, 머릿속에서 포크너를 비워내기 위해 헤밍웨이의 모든 작품을 읽고." - P202

나는 가드너가 다른 학생들과 그들의 작품을 교정하기 위해개인 면담을 할 때는 어떤 식으로 했는지 모른다. 난 가드너가모든 학생에게 충분히 주의를 기울였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내가 당시 느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바, 당시에 가드너는기대했던 것보다 더 진지하고 세밀하고 유심하게 내 글을 살펴보았다. 나는 가드너에게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종류의 비평들을 받았다. 가드너는 나와 만나기 전에 내 글에 미리 표시를 하고, 부적절한 문장과 구와 단어, 심지어 구두점에까지 줄을 그어지웠다. 그리고 이렇게 삭제한 부분은 양보할 수 없는 사항임을내게 이해시켰다. 문장, 구, 단어에 괄호를 해둔 곳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며 이것들을 살릴 수도 있있다. 가드너는 내가 쓴 것에 뭔가를 끼워넣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단어가 하나 또는 몇 개씩 들어가고, 어떤 때는 문장이 하나 통째로 - P203

들어가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세상에 이보다 더 중요한일은 없다는 듯한 기세로 내 글의 쉼표에 대해 토론했고, 실제로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 가드너는 늘 뭔가 칭찬할 거리를찾았다. 마음에 드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야기를 즐겁고 기대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끌고 갈 문장, 대화, 지문을 보면 여백에 ‘잘했어‘ 또는 ‘훌륭해‘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러한 의견이 달린 걸 보면 나는 가슴이 뛰었다. - P204

가드너는 꼼꼼하게 한 줄 한 줄 비평을 해주었고, 그러한 비평뒤에 숨은 이유, 왜 그런 식이 아닌 이런 식으로 되어야 하는가를설명해주었다. 그것은 내가 작가로서 발전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우리는 이야기의 더 큰 부분에 대해, 이 이야기를 통해 비추고자 하는 ‘문제‘라든가 해결하려 애쓰는 갈등, 어떤 면에서 이 이야기가 글쓰기의 전체적 틀에 맞아들어갈 수도 있고아닐 수도 있는지 따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만약 작가의 무딘 감각과 부주의함과 감상벽 때문에 이야기가 모호해진다면, 그 이야기에는 엄청난 약점이 생긴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쁜, 무슨 수를 쓰더라도 피해야 할 것이 있었다.
만약 단어와 감정이 정직하지 않다면, 작가가 그것을 꾸며낸다면, 작가가 관심 없거나 믿지 않는 것에 대해 쓴다면, 그 누구도그 이야기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을 거라고 했다. - P204

작가에게는 가치관과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드너가가르치고 믿는 것이었으며, 짧지만 소중했던 그때 이후 내가 간직해온 신념이다.
가드너가 1982년 9월 14일 갑자기 세상을 
뜨기 전에 완성한소설가가 되는 것에 대해 작가가 되고 작가로 남는다는 것이어떤 일인지,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현명하고 정직한 평가인 듯하다. 이 책은 상식, 도량, 타협 불가능한 가치관들을 통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이라면 누구든 작가의 유머 감각과 고귀한 마음가짐 그리고 단호하고 타협 없는 정직함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에서 작가는 계속해 "내 경험에 의하면......"이라고 말하고 있다. - P205

가드너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글쓰기의 어떤 면은 배울 수 있고 남에게, 대개는 자신보다 젊은 작가에게 전해줄 수있다는 것을 알았다-그리고 내가 창작 수업의 선생 역할을 하며 얻은 경험을 통해 보아도 그렇다. 교육과 예술 창작에 진지하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견해에 놀라지 않으리라. 대부분의 우수하거나 심지어 훌륭한 지휘자, 작곡가, 미생물학자, 발레리나, 수학자, 시각예술가, 천문학자, 전투기 조종사들은 자기보다 나이 많고 능력 있는 선배에게서 배운다. 도자기 굽는 법이나 약물에 대한 수업을 듣는다고 모두가 위대한 도공이나 의사가 되지 못하듯이, 글쓰기 수업을 듣는 그 자체만으로는 위대 - P205

한 작가가 되지 못한다. 심지어 그런 일을 잘하게 되지도 못한다. 하지만 가드너는 그러한 수업을 듣는다고 손해가 되지도 않는다고 확신했다.
창작 수업을 가르치거나 들을 때의 위험 가운데 하나는 젊은작가의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거짓말이다 이번에도 내 경험을 통해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가드너로부터 반대의 실수를저지르느니 차라리 그 위험을 감수하는 게 낫다는 걸 배웠다. 가드너는 나에게 끊임없이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심지어 젊고 배우는 과정에 있는 이가 그러기 쉽듯 내가 마구 흔들릴 때에도 계속 격려해주었다. 다른 직업군에 진입하는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분명 젊은 작가에게도 격려가 필요하다. 아니 내 생각에는 더큰 격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격려는 늘 정직해야만 하며 절대로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가드너의 책이 특히 뛰어난 점은 바로 그 수준 높은 격려에 있다.
- P206

실패와 실망은 우리 모두가 흔히 겪는 일이다. 인생에서 뭔가를 시도하지만 그게 계획처럼 풀리지 않는다는 의심은 우리 모두에게 언제라도 찾아들 수 있다. 열아홉 살 쯤에 당신은 자신이 되지 않을 무엇인가에 대해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이 반 이상 지나야, 혹은 중년에 접어들어야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현실을 제대로 통찰하게 된다. 그 어떤 선생도, 제아무리 많은 교육도 애당초 작가가 될 수 없 - P206

는 기질의 누군가를 작가로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직업에 종사하기 시작하고 천직을 추구하는 이라면 누구나 인생에서 쓴맛과 실패를 맛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세상에는 실패한 경찰, 정치인 장군, 실내장식가, 엔지니어, 버스 운전사, 편집자, 저작권 중개인 사업가, 바구니 짜는 이들이 있다. 세상에는 또한 실패하고 환멸에 빠진 글쓰기 수업 선생들과 실패하고 환멸에 빠진 작가들이 있다. 존 가드너는 이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소설가가 되는 것에 대해]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가드너에게 엄청난 빚을 졌고, 이 짧은 글의 문맥에선 아주 간단하게밖엔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없을정도로 가드너가 그립다. 하지만 가드너에게서 비평을 들을 수있었고 관대한 격려를 받을 수 있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행운아였다고 생각한다. - P207

내게는 두 가지 삶이 있다. 첫번째 삶은 1977년 6월, 내가 술을 끊었을 때 끝났다. 그때쯤엔 친구들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않았다. 대개는 그냥 아는 사람들과 술친구들이었다. 나는 친구들을 잃었다. 친구들은 점차 연락을 끊거나 그런 행동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그냥 사라져버렸고, 더 안타까운 건 내가 이들을 그리워하지도 않았으며 이들이 사라진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만약 내가 현재의 친구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난한 삶과 골골한 몸을 택해야만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친구를 선택할까? 아니다. 내가 현재 삶을 포기하고, 가령 구명보트에서 - P216

내 자리를 양보하고 친구를 위해서 죽을 수 있을까? 대답하기 어렵지만, 비겁해 보일지 몰라도 답은 ‘아니요‘이다. 내 친구들도, 내 친구들 가운데 그 누구도 나를 위해서 그러지 않을 것이며, 나 역시 그리 해주길 원치 않을 것이다. 다른 많은 일에서 그러하듯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서로를 완벽히 이해한다. 우리가 친구인 건 우리가 서로를 진정 이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서로를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을 좀더 사랑한다.
다시 사진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있으며, 우리 삶의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작가로사는게 즐겁다. 이 세상에 우리가 작가 말고 되고 싶은 건 없다.
비록 우리 모두 전에 작가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런던에서 함께할 수 있게 된게 무척이나 좋다. 보시다시피,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친구다. 그리고 친구란 함께 있을 때 즐거워야 하는법이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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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막연히 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이론가가 되더라도 적을 두는 예술 장르가 종래에는 생길 터인데, 그 마음의 집을어디로 두어야 할지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듣게 된 한 수업에서 어느 날 <목신의 오후>라는 무용 공연의 영상을 보았다. 1912년 니진스키가 안무하고, 훗날 누레예프가 목신 역할을춘 버전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왜 하필 그 작품이었는지를 좀처럼 설명하지 못하겠다. 어쨌거나 나는 그때, 확고하게 저것이 가장 아름답다, 라고 생각했다. 춤추는 사람의 몸, 그 아름다움을 만나 가슴이 쿵쾅거렸다. - P22

어느 미래에 덜 부끄럽기 위해 그때부터 춤을 배웠다. 무용 공연들을 보러 다니고, 각종 축제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렇게 7년 남짓이 흘렀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생각만큼 가슴 뛰는 공연이 많지 않은 것과, 무대 위 몸의 언어들을 이해하고 번역하는 일이 여전히 버거운 것에 지쳐갔다. 아름다움은 많은 의미에서 멀리 있었다. 그럼에도 처음 사랑한 예술가. 바슬라브 니진스키에 대한 마음만큼은 한 번도 작아진 적이 없다. 어느덧 무용보다는 다른 장르들에 더 적을 두고 살게된 지금이 미래에서도 마찬가지다.
고백할 것도 없이 나는 니진스키의 춤을 본 적이 없다. 백년 뒤에 살아남은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의 춤은 영상으로 남지 못했고, 전해지는 것은 몇 장의 사진뿐이다. 나는 그흑백사진들을 오래 들여다보며 아득해지는 일을 좋아한다.
오른팔을 위로, 왼팔을 옆으로 벌리고 고개를 젖힌 채 눈을 감 - P22

고 황홀하게 웃는 세헤라자데의 노예, 턱을 들고 미간을 다정히 모은 채 희미한 미소로 아래를 건너다보는, 곧 사랑하는 지젤을 잃고 윌리들의 숲에서 살아남을 고귀한 알브레히트, 주름진 얼굴에 서늘한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하는 광대 페트루슈카.
후대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그를 볼 수 없었으므로 그는 전설로 박제되었다. <장미의 정령>이라는 작품에서 니진스키는 분홍 장미 꽃잎으로 뒤덮인 의상을 입고, 이전까지 대개 여성무용수의 몫이었던 요정의 역할을 춤춘다.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무도회에서 돌아온 여인이 꿈꾸듯 잠들면, 창문으로 날아든 그가 눈 감은 그녀와 행복한 춤을 추고, 다정한 손길로 여인이 다시 소파에 몸을 기대자, 정령은 창문밖으로 날아 사라진다. 그리고 여인은 꿈에서 깨어난다.
이 춤에 관해 회자되는 전설에 따르면, 정령이 사라지는 장면에서 니진스키의 도약은 너무도 빼어나, 관객 중 누구도 그것이 그리는 포물선의 추락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영원히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던 것이다. - P23

왜냐하면 춤은, 모든 움직임은,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발생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포즈로부터 다른 포즈로, 어떻게건너가는가가 생을 이루기 때문이다. 단지 건너왔다는 사실 자체는 상실의 허무를 면할 수 없다. 건너옴 사이, 틈새와 균열속에 있던 것들, 거기서 살아 있고 반짝였으며 끝내 흘러가버린 것들이 실은 전부임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그림과 그림 사이에서 사라진 춤을, 여전히 애타게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3년, 또 하나의 제전을 복원하는 과제 앞에서 안무가 도미니크 브렁은 말했다. "저는 영화가 부럽습니다." 그에 따르면 영화에서는 이미지의 조각들을 배치하고 이어 붙여 움직임으로 구현시키는 작업 자체가 매체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그 같은 의미에서의 몽타주가 불가능하다. 춤은 그 어떤 사라진 틈새도 그저 삭제시킬 수 없다. 틈새를 메우는 움직임의 자취는 관객에게 고스란히 노출된다. 그 가시적인 블로킹을 벗어날 수 있는 몸은 없다. - P29

그리하여 그가 참조한 것은, 그토록 부러워 마지않는 영화 가운데, 지가 베르토프의 1928년 작 <여섯 번째 세계> 속몸들이었다. 그 낡은 흑백영화는 "당신은 ~입니다"라는 러시아어 문장과 함께, 냇물에서 물 긷는 사람, 양을 치는 사람, 아이에게 젖을 주는 사람, 나귀를 끌고 가는 사람, 모닥불에 몸을 쪼이는 사람 등이 담긴 짧은 영상을 몽타주함으로써 세계의 여섯 번째 영역, 그 가려진 풍경 속 사람들을 ‘당신‘이라는기묘한 호칭으로 우리 앞에 소환한다.
살아가는, 노동하는, 옛날의 몸들. 둘러싸인 자연과 제몫의 행위가 오만 없이 어울렸던 인간의 둥근 무게들. <봄의제전>으로부터 우리가상실한 것은 원작의 기록이 아닌 바로그 몸들이었으므로, 이제 비로소 도미니크 브렁은 제전의 몸을 상상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 빈틈을 기워낼 힘을 얻는다.
사랑했던, 없는 당신의 몸이 공간 속에 끌리던 방식을 떠올려볼 수 있게 된다. - P30

그리고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가루가 무엇인지를나는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은 몸이 불에타 한 움큼의 뼈로 남겨진 것을. 눈앞에서 뼈가 분쇄되고 정결한 빗자루로 쓸어 담기던 것을. 그 뽀얀 잿빛의 가루를 내가두 손에 받아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든 항아리를 땅에 묻고 삽으로 흙을 떠 세 번에 나누어 흩뿌려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 땅에도 겨울이 지나봄이 오던 것을 내가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공연의 끝에 밝혀지는바, 카스텔루치의 제전에서 사람을 대신해 춤춘 것은 수십 마리 소의 뼛가루였다. 실제로 오늘날 그것은 대규모로 생산돼 비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우리는여전히, 어떤 생명들을 희생하여 봄의 비옥을 맞이하고 있다. 나는 언 몸으로 객석에 앉아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세상의 어떤 죽음도 단일하게 종결되지 않는다는 새삼스런 사실을 실감했다. 전설 속의 지목된 여성도, 저 많은 동물들도, 사랑했던 당신도, 나를 대신해, 나의 봄을 대가로 죽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 뼈아픈 진실 속에서, 인간의 백 년이란 너무도 짧은 것이었다. - P32

솔렌은 무대의상을 만드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그는 한 세계속에서 한 인물이 입고 잠시 살다가 죽는 옷을 만든다. 그옷들은 정확한 효용에 의해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가 연극의 세계밖에서 무용해진다. 그녀의 학교에는 쓰임을 다한 무대의상들이 보관된 창고가 있다. 의상제작팀을 따로 둔 몇몇 국공립극장에도 그런 창고가 있다. 때때로 극장들은 창고를 열어 저렴한 값에 옷을 판매한다. 그러지 않으면 곧 무덤의 자리가 부족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날 객석에 앉아 나는 궁금했다. <타우버바흐>의 막이 올라가고 모두가 경외감에 싸이는순간, 솔렌과 친구들은 그 어떤 기시감에 아득했을까.
극장에서 판매하는 의상을 산 사람들은 아마도 그것을입을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특별하게 제작된 옷일수록 과도하게 연극적이기 마련이므로, 그러나 생이 연극임을 잊지 않는 이들의 옷장에 사라진 무대의 의상이 한 벌쯤 걸려 있는 풍경을 상상해보는 일은 즐거웠다. 그 옷은 반드시 유효했던 한작품의 필요에 의해 손수 지어졌으며, 오로지 한 인물, 한 배우의 몸만을 위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가상이면서도 실제인, 발생하면서도 소멸하는, 어떤 고유함을 위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그 일을 좋아한다고 솔렌은 말했다. - P40

그리고 아마도 파리에서의 초연 때였을 것이다. 역시 모두들 웃으며 손을 내렸고, 한 이란 사람이 일어났다. 그는 객석을 향해 말했다. 이란에서는 춤추는 일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선 그렇지 않은데, 당신들은 왜 춤을 추지 않습니까.
그가 무대로 나가 춤추기 시작했다. 춤의 첫걸음을 옮기는 동시에 그는 울고 있었다. 객석에서도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지만, 바흐를 듣지 못하고도 따라 부르던 사람들처럼, 그 춤을 생각하면 언제든 울수있어진다. 나희덕 시인의 「수화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네가 듣지 못하는 노래,
이 노래를 나는 들어도 괜찮은 걸까
네가 말하지 못하는 걸
나는 감히 말해도 괜찮은 걸까


우리는 누군가 듣지 못하는 노래를 듣고, 누군가 보지 못하는춤을 본다. 이 사실을 잊을 수는 없다. 무대 위 옷의 무덤도, 솔렌이 만든 의상의 하나뿐인 실루엣도, 손강과론 강이 만나는자리도, 그 여름의 별똥별도, 누군가 볼 수 없던 것을 나는 본채로 이렇게 쓴다. 그럼에도 저와 함께 춤추시겠어요, 그 질문앞에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고. - P43

나는 어디에서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디서나 살아도 상관없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나는 어디에서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분은 무척 낯선 것이었다. 논문을 마무리하고 일 년짜리 비자를 추가로 받게 되면, 나는 그곳에서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을 줄 알았다. 허나 어째서 우리는 가장사랑할 수 없는 시절에 이미 아낌없이 사랑을 해버렸던가. 기진한 내가 더 꾸려가고픈 일상의 풍경이 거기 없었다. 마음속에 풍경이 펼쳐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뒤로는 강의를 하며 지내고 있다. 감히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만 전하며, 그만큼 아름다운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수업이 끝난 뒤 꾸벅 인사하며 강의실을 나설 때, - P45

더러 어떤 얼굴은 어딘지 꼭 할 말이 있는 것만 같은 표정을숨긴다. 그 숨김이 애틋하여 나는 날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싶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날에는 바야흐로 몇 개의 토로가 당도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대체로 슬펐고 많이 따뜻했으며 늘 황송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서로의 몸짓이 눈에 익은 즈음, 또 어떤 이들은 불쑥 물었다. 선생님은 꿈이 있으신가요.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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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정원

서울대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렌느2대학에서 공연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에서 공연예술이론 및 예술학일반을 가르치며, 변호하고 싶은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 비평을 쓴다.
가끔 사진을 찍고 노래 부른다.

뒤늦게 쓰인 비평


좋은 작품을 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 글을 쓰고 싶어진다. 그 작품에 대한 것일 수도, 전혀 아닌 것일 수도 있는 글을. 그충동을 따르지 못하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 박사 논문이라는 거대한 산이 여타의 사유와 문장을 가로막던 시절. 대체로 많은 날들을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누워 보냈음에도 피차 버려질 그 시간에 일어나 다른 글을 쓸 수는 없던. 그게 산에 대한 예의이자 책무이던 날들.

그러는 동안 아마도 생이 유예되었다. 밖은 소용돌이였으나 나의 작은 방 문을 닫으면 고요가 가라앉았다. 그렇게 시간을 벌었다. 현재적 휘말림이 아닌, 어지러운 춤이 아닌 방식으로 저 소용돌이와 다시 관계 맺을 수 있게 될 때까지 관망할, 애도할 거리가 생길 때까지. 그러나 거리라는 말은 내가 적을두고 있는 공연예술이라는 장르에 얼마나 생소한 것인지. 나는 얼마나 나의 직업을 배반하며 지냈던 것인지.
왜냐하면 공연예술은 시간예술이기 때문이다. 그 존재 방식이 시간에 기대고 있어, 발생하는 동시에 소멸하는 예술. 작품을 다 본 순간 그것은 이미 세상에 없다. 그것은 사라졌다. 남는 것은 기억뿐이며, 기억도 금세 바스라진다. 그러므

로 대개 공연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가쁜 호흡으로 이루어진다. 흐릿해지기 전에, 영영 지워지기 전에. 그러나 아무리 현재적이어도 그 글쓰기는 공허를 면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글은 독자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문학 비평이나 영화 비평을 읽는 것처럼 공연 비평을 읽지 않는다. 글을읽다 흥미로울 경우 뒤늦게 찾아볼, 작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심연이 있다. 당신은 내가 본그것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묘사하는 나의 문장은당신에게 기어코 낯설 것이다. 나의 흥분은 기이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독서를 계속할 인내를 품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하여 그때, 유예의 시절에, 나는 나를 가슴 뛰게 한많은 공연을 기꺼이 기억의 무덤 속으로 넘겨 보냈다. 충분히희미해진 뒤에, 말하자면 독자에게만큼 내게도 작품이 비실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글을 쓰기 위해서, 독자와는 조금 더가까워지고, 작품과는 한없이 멀어진 채로, 이제는 발생을 멈춘 것들을 끝내 뒤돌아보기 위해서 많은 것이 지나간 뒤에,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이 책에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 동안 프랑스에

살면서,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두 해 반을 더 보내면서 품었던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보았던 무대, 걸었던 풍경, 만났던 사람, 못 지킨 죽음, 읽었던 말들과 불렀던 노래가 담겨 있다. 이는 그 모든 지나간 것들에 대한 뒤늦게 쓰인 비평이다. 당신에게 닿기를 바라 유예되고 간직되었던. 어쩌면 삶도 한 편의 공연처럼 흘러가면 그만이기에.
이제 한 시절이 덮였으니 문득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어째서 어떤 슬픔은 발화됨으로써 해소되는지. 나는 그것이 늘 슬펐다. 그러나 그럼에도 말이 되지 못하고 남는 것들이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모국어로만, 침묵으로만 호명되는 것들. 그러니 나는 아마도 다시 침묵 속으로 평생을 배워도 다알지 못할 세계의 아픔에게로, 언제나 나보다 한발 앞서 그아픔을 들여다보는 친애하는 예술에게로 모든 것을 빚진, 아름다움에게로.

2021년 10월
목정원

극장이라는 공간은 오묘하다. 실시간으로 눈앞에 펼쳐지는가상의 세계를 만나러 우리는 그곳에 간다. 몇 시간짜리 허구를 기꺼이 함께 용인하는 약속이 이루어지는 곳. 지구 위에는내가 사랑하는 극장들이 몇 있고, 사랑을 촉발시킨 것은 대체로 거기서 마주한 허구의 세계였다. 나는 아름다운 가상을 만난 곳에서, 그 공간을 또한 아름답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모든 가상은 실제의 공간 속에 기입됨으로써만관객과 만나게 된다. 적어도 지금껏 공연예술이라 일컬어진것들의 역사는 저 질서를 파기한 적 없다. 피터 브룩이라는 연출가는 그의 저서 『빈 공간에서 누군가 그곳을 가로지르고,
누군가 그를 지켜본다면, 모든 공간은 극장이 될 수 있다고썼다. 요컨대 무대가 성립되려면 최소한 한 명의 배우와 한 - P11

명의 관객이 필요하며, 그들의 현전이 파문을 일으킬, 공간이 필요하다.
이때 공간이란 어떤 종류여도 관계없다고 브룩은 덧붙였지만, 나는 언제고 궁금했다. 모든 빈 공간은 어떤 모양으로비어 있는가. 세상에 같은 공간은 없으므로, 우리는 반드시 고유하게 만날 것인데, 거기 어떤 모퉁이가 있어, 당신은 어디로들어오고, 나는 어디를 응시할 것인가. 빈 공간은 다시 또 어떤 빈 공간들로 나뉘고, 당신은 어디서 넘어질 것인가. 우리는어떻게 접힐 것인가. 당신의 춤은 어디까지 달려갈 것인가. - P12

제일 먼저 우리는 책상과 의자를 치워 공간을 비웠다. 그리고 거기 서서 우리가 속한 그곳을 바라보았다. 언제든 수업을 하러 강의실에 들어가면 먼저는 그 일을 하라고 위그가 말했다. 가만히 서서 공간을 감각하는 일. 이제 곧 이야기가 번질, 나의 목소리가 울려나올 그곳. 이때 공간을 감각한다는것은 그 공간 속에 존재하는 나를 잊지 않는 일이다. ‘내가 여기 있어.‘ 그것을 느끼는 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러나 존재는 몸이라는 물성을 입고 있기에 단지 바라봄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가 있다. 하여 다음으로 우리가 한일은 공간 속을 걸어보는 일이었다.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눈으로 인사하면서, 아무와도 부딪치지 않는 채로, 각자가 바닥에 그리던 보이지 않는 곡선들. 편재하는 공간을 몸으로 익히는 동안 다시 그 속에서 무수히 발생하던 새로운 공간들의 결. - P13

특별히 재밌었던 건 보편성과 특수성에 관한 연습을 한일이었다. 강단에 선 상황에서는 저 둘을 잘 조율하는 능력이필요할 거라고 위그가 말했다. 한두 사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청중을 존중하며 모두에게 발화하되, 판단에 따라어떤 순간에는 특정 지점에 눈길을 돌려 주의를 환기시킬 수있어야 한다는 것. 특수로부터 빠져나와 다시 보편으로 돌아가고, 보편을 보는 사이 포착된 특수를 제때 주목할 수 있는, 일종의 유희를 원활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 P13

공연을 보고 나와 해질 무렵의 강변을 걸으며, 나는 함께 있던 친구에게 그라프롱의 수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떠나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떠나보내기 위해 공간 속에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배웠노라고. 이제 어디에 살며 무슨 일을하더라도 제일 먼저 그곳에 도착했을 때 홀로 직립을 연습할수 있다고. 그날 마침 나는 극 중 에우리디케가 입은 것과 비슷한 검정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죽음으로부터 걸어 나올 때 그의 손에 쥐인 채 땅에 끌리던, 죽은 몸을 감쌌던 흰 베일과 닮은 천 가방을 들고 있었다. 친구는 신이 나서 내게 강가의 잔디 위를 걸어보라 하고는 연신 사진을 찍었다.
생은 고통이고 죽음만이 안식일지라도, 생을 향해 걸어나가는 일, 그 걸음을 흉내 내자 문득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만 같던 저 기분이 되살아났다.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같았다. 누구라도 나를 돌아보지 않을 것을 두려워 않고. - P18

누군가 내게 파리에서 무엇을 하였나 묻는다면 나는 그저 존재하는 일을 했다 하겠다. 공간 속에 서거나 앉거나 누워, 세계를 전부 감각했으므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몸을 마침내 연마했노라고, 그럼에도 거기 남아 있는 얼굴을 한 번만더 보고 싶었다고.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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