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로 이사하기 오래전부터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물론 가공의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쓰고 싶었지만 동시에 시, 극, 각본도 쓰고 싶었고, 〈스포츠 어필드》 《트루〉 〈아르거시〉 〈로그>와 같은 곳에 기사도 쓰고 싶었다(당시 내가 읽던 잡지들이다). 지역 신문에도 글을 쓰고 싶었다. 일관성 있게 단어를 엮는 일이기만 하다면, 그리고 나 말고 다른사람의 흥미도 끌 수 있는 내용이라면 무엇이든 간에 글을 쓰고싶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사할 당시, 작가가 되려면 뭔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느낌이 뼛속 깊이까지 들었다. 당시 나는 교육에 굉장히 높은 우선순위를 두었다ㅡ지금보다도 당시에 더 그랬다고 확신하지만, 그건 이젠 내가 나이가 들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 P196
내 가족 중엔 대학에 간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사실 의무교육 과정인 8학년 이상을 다닌 사람조차 아무도 없었다. 나는아무것도 몰랐지만,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큼은 알았다. 그러니까 교육을 받겠노라는 욕망과 함께, 내겐 글을 쓰고 싶다는 아주 강한 욕망이 있었다. 그 욕망이 어찌나 강한지 분별력‘과 ‘차가운 현실‘ ㅡ즉 내 삶의 ‘실체‘ㅡ이 계속해 나에게 이제그만둬야 한다고, 이제는 꿈을 버리고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 뭔가 다른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음에도 나는 그뒤로도 오랫동안계속해 글을 썼다. 대학에서 받은 격려와 그때 얻은 통찰력이 도움이 되었다. - P196
가드너는 내가 글을 쓸 마땅한 장소를 구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내게 어린아이들과 아내가 있으며 우리가 성냥갑처럼 좁은 집에서 산다는 걸 알았다. 그는 내게 자기연구실 열쇠를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물은 내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그냥 평범한 선물이 아니었고, 내게 일종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진 듯하다ㅡ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나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의 일부를 그의 연구실에서 보냈고, 그곳에는 그의 원고가 든 상자들이 있었다. 그 상자들은 책상 옆 바닥에 쌓여 있었다. 상자 하나에 유성 연필로 니켈 산이라고 적혀 있던 것이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제목이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기 위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시도했던 것은 그의 연구실에서, 출간되지 않은 그의 책들이 보이는 곳에서였다.) - P198
그의 수업에서 단편을 쓰려는 학생들은 열에서 열다섯 쪽 분량의 단편소설을 하나 쓰는 과제를 받았다. 장편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이들ㅡ내 생각에 한두 명 정도 있었던 듯하다ㅡ은 이십쪽 정도 분량의 챕터 하나와 나머지 내용에 대한 요약을 써야 했다. 중요한 점은, 단편소설 한 편이나 장편소설의 한 챕터를 가드너가 만족할 때까지 학기중에 열 번 정도 교정을 해야 한다는것이었다. 작가라면 자신이 말한 것을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발견한다는 것이 가드너의 기본신조였다. 그리고 교정 과정을 통해 이런 것을 볼 수 있다고, 또는 좀더 명확히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교정을, 끝없는 교정을믿었다. 가드너는 교정 과정을 진심으로 신뢰했고, 작가가 어느단계에 있든지 꼭 필요한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는 이미 다섯번은 읽었던 글이라 할지라도 학생의 글을 읽으며 지겨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P200
내 생각에 1958년 그가 단편소설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은1982년에도 여전한 듯하다. 그는 단편소설이란 눈에 띄는 시작, 중간, 결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끔 그는 칠판으로 가서자신이 원하는 이야기의 봉우리, 계곡, 평원, 해결, 대단원과 같은 감정의 솟구침과 하강에 대해 요약해 보여주기 위해 도표를그리곤 했다. 노력은 했지만 사실 나는 그가 칠판에 그린 내용을이해할 수 없었고, 그리 큰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수업시간에 토론 주제가 된 학생의 단편소설에 대해 그가 하는 평들은 - P200
이해할 수 있었다. 가령, 가드너는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이야기가 거의 끝날 무렵까지 그 인물이 장애인인 것을 밝히지 않은 이유를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학생은 독자들이마지막 문장에 가서야 이 남자가 장애인임을 알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의 어조에는 반대 의견이 담겨 있었고, 그 말을 듣는 즉시 그 글을 쓴 작가를 포함해 수업에 참석한모든 사람들이 그게 좋은 전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독자를놀라게 하려는 의도에서 중요하고 필요한 정보를 이야기가 끝날때까지 숨기는 전략은 속임수였다. - P201
수업시간에 그는 늘 내게 낯선 작가들 이름을 거론했다. 혹은이름은 알았다 할지라도 작품은 읽지 않은 작가들을 거론했다. 콘래드 셀린, 캐서린 앤 포터, 이사크 바벨, 월터 밴 틸버그 클라크, 체호프, 호텐스 캘리셔, 커트 하낵, 로버트 펜 워런. (우리는 워런의 「블랙베리 겨울이라는 단편을 읽었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나는 그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고, 가드너에게 그렇게 말했다. "다시 읽는 게 좋을 거야." 가드너는 그렇게 말했고, 그는농담을 한 게 아니었다.) 윌리엄 개스도 언급했다. 가드너는 막<MSS>라는 잡지를 출간하려던 참이었고, 그 첫 호에 「피더슨의아이라는 단편을 실을 예정이었다. 나는 그 원고를 읽었지만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다시 한번 가드너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가드너는 이번에는 내게 다시 읽어보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 P201
내게서 원고를 받아가기만 했다. 가드너는 제임스 조이스와 플로베르와 이사크 디네센에 대해 마치 그들이 유바시티 거리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가드너가 말했다.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자네에게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만큼 누구의 글을 읽어야 하는지도 가르쳐주기 위해서야." 나는 멍한 상태로 교실을 나왔고, 도서관으로 곧장 가서 가드너가 말한 작가들 책을 찾아보았다. 그 당시 헤밍웨이와 포크너는 유행하는 작가였다. 하지만 나는 이 둘이 쓴 작품을 고작해야 두세 권 정도 읽은 것 같다. 어쨌든, 그 둘은 워낙 유명했고 자주 회자되는 사람들이다보니 실제작품이 그 유명세만큼 뛰어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안 그런가? 나는 가드너가 내게 한 말을 기억한다. "포크너의 작품을 닥치는대로 읽어. 그런 뒤엔, 머릿속에서 포크너를 비워내기 위해 헤밍웨이의 모든 작품을 읽고." - P202
나는 가드너가 다른 학생들과 그들의 작품을 교정하기 위해개인 면담을 할 때는 어떤 식으로 했는지 모른다. 난 가드너가모든 학생에게 충분히 주의를 기울였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내가 당시 느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바, 당시에 가드너는기대했던 것보다 더 진지하고 세밀하고 유심하게 내 글을 살펴보았다. 나는 가드너에게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종류의 비평들을 받았다. 가드너는 나와 만나기 전에 내 글에 미리 표시를 하고, 부적절한 문장과 구와 단어, 심지어 구두점에까지 줄을 그어지웠다. 그리고 이렇게 삭제한 부분은 양보할 수 없는 사항임을내게 이해시켰다. 문장, 구, 단어에 괄호를 해둔 곳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며 이것들을 살릴 수도 있있다. 가드너는 내가 쓴 것에 뭔가를 끼워넣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단어가 하나 또는 몇 개씩 들어가고, 어떤 때는 문장이 하나 통째로 - P203
들어가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세상에 이보다 더 중요한일은 없다는 듯한 기세로 내 글의 쉼표에 대해 토론했고, 실제로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 가드너는 늘 뭔가 칭찬할 거리를찾았다. 마음에 드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야기를 즐겁고 기대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끌고 갈 문장, 대화, 지문을 보면 여백에 ‘잘했어‘ 또는 ‘훌륭해‘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러한 의견이 달린 걸 보면 나는 가슴이 뛰었다. - P204
가드너는 꼼꼼하게 한 줄 한 줄 비평을 해주었고, 그러한 비평뒤에 숨은 이유, 왜 그런 식이 아닌 이런 식으로 되어야 하는가를설명해주었다. 그것은 내가 작가로서 발전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우리는 이야기의 더 큰 부분에 대해, 이 이야기를 통해 비추고자 하는 ‘문제‘라든가 해결하려 애쓰는 갈등, 어떤 면에서 이 이야기가 글쓰기의 전체적 틀에 맞아들어갈 수도 있고아닐 수도 있는지 따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만약 작가의 무딘 감각과 부주의함과 감상벽 때문에 이야기가 모호해진다면, 그 이야기에는 엄청난 약점이 생긴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쁜, 무슨 수를 쓰더라도 피해야 할 것이 있었다. 만약 단어와 감정이 정직하지 않다면, 작가가 그것을 꾸며낸다면, 작가가 관심 없거나 믿지 않는 것에 대해 쓴다면, 그 누구도그 이야기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을 거라고 했다. - P204
작가에게는 가치관과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드너가가르치고 믿는 것이었으며, 짧지만 소중했던 그때 이후 내가 간직해온 신념이다. 가드너가 1982년 9월 14일 갑자기 세상을 뜨기 전에 완성한소설가가 되는 것에 대해 작가가 되고 작가로 남는다는 것이어떤 일인지,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현명하고 정직한 평가인 듯하다. 이 책은 상식, 도량, 타협 불가능한 가치관들을 통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이라면 누구든 작가의 유머 감각과 고귀한 마음가짐 그리고 단호하고 타협 없는 정직함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에서 작가는 계속해 "내 경험에 의하면......"이라고 말하고 있다. - P205
가드너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글쓰기의 어떤 면은 배울 수 있고 남에게, 대개는 자신보다 젊은 작가에게 전해줄 수있다는 것을 알았다-그리고 내가 창작 수업의 선생 역할을 하며 얻은 경험을 통해 보아도 그렇다. 교육과 예술 창작에 진지하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견해에 놀라지 않으리라. 대부분의 우수하거나 심지어 훌륭한 지휘자, 작곡가, 미생물학자, 발레리나, 수학자, 시각예술가, 천문학자, 전투기 조종사들은 자기보다 나이 많고 능력 있는 선배에게서 배운다. 도자기 굽는 법이나 약물에 대한 수업을 듣는다고 모두가 위대한 도공이나 의사가 되지 못하듯이, 글쓰기 수업을 듣는 그 자체만으로는 위대 - P205
한 작가가 되지 못한다. 심지어 그런 일을 잘하게 되지도 못한다. 하지만 가드너는 그러한 수업을 듣는다고 손해가 되지도 않는다고 확신했다. 창작 수업을 가르치거나 들을 때의 위험 가운데 하나는 젊은작가의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거짓말이다 이번에도 내 경험을 통해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가드너로부터 반대의 실수를저지르느니 차라리 그 위험을 감수하는 게 낫다는 걸 배웠다. 가드너는 나에게 끊임없이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심지어 젊고 배우는 과정에 있는 이가 그러기 쉽듯 내가 마구 흔들릴 때에도 계속 격려해주었다. 다른 직업군에 진입하는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분명 젊은 작가에게도 격려가 필요하다. 아니 내 생각에는 더큰 격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격려는 늘 정직해야만 하며 절대로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가드너의 책이 특히 뛰어난 점은 바로 그 수준 높은 격려에 있다. - P206
실패와 실망은 우리 모두가 흔히 겪는 일이다. 인생에서 뭔가를 시도하지만 그게 계획처럼 풀리지 않는다는 의심은 우리 모두에게 언제라도 찾아들 수 있다. 열아홉 살 쯤에 당신은 자신이 되지 않을 무엇인가에 대해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이 반 이상 지나야, 혹은 중년에 접어들어야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현실을 제대로 통찰하게 된다. 그 어떤 선생도, 제아무리 많은 교육도 애당초 작가가 될 수 없 - P206
는 기질의 누군가를 작가로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직업에 종사하기 시작하고 천직을 추구하는 이라면 누구나 인생에서 쓴맛과 실패를 맛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세상에는 실패한 경찰, 정치인 장군, 실내장식가, 엔지니어, 버스 운전사, 편집자, 저작권 중개인 사업가, 바구니 짜는 이들이 있다. 세상에는 또한 실패하고 환멸에 빠진 글쓰기 수업 선생들과 실패하고 환멸에 빠진 작가들이 있다. 존 가드너는 이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소설가가 되는 것에 대해]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가드너에게 엄청난 빚을 졌고, 이 짧은 글의 문맥에선 아주 간단하게밖엔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없을정도로 가드너가 그립다. 하지만 가드너에게서 비평을 들을 수있었고 관대한 격려를 받을 수 있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행운아였다고 생각한다. - P207
내게는 두 가지 삶이 있다. 첫번째 삶은 1977년 6월, 내가 술을 끊었을 때 끝났다. 그때쯤엔 친구들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않았다. 대개는 그냥 아는 사람들과 술친구들이었다. 나는 친구들을 잃었다. 친구들은 점차 연락을 끊거나 그런 행동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그냥 사라져버렸고, 더 안타까운 건 내가 이들을 그리워하지도 않았으며 이들이 사라진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만약 내가 현재의 친구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난한 삶과 골골한 몸을 택해야만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친구를 선택할까? 아니다. 내가 현재 삶을 포기하고, 가령 구명보트에서 - P216
내 자리를 양보하고 친구를 위해서 죽을 수 있을까? 대답하기 어렵지만, 비겁해 보일지 몰라도 답은 ‘아니요‘이다. 내 친구들도, 내 친구들 가운데 그 누구도 나를 위해서 그러지 않을 것이며, 나 역시 그리 해주길 원치 않을 것이다. 다른 많은 일에서 그러하듯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서로를 완벽히 이해한다. 우리가 친구인 건 우리가 서로를 진정 이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서로를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을 좀더 사랑한다. 다시 사진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있으며, 우리 삶의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작가로사는게 즐겁다. 이 세상에 우리가 작가 말고 되고 싶은 건 없다. 비록 우리 모두 전에 작가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런던에서 함께할 수 있게 된게 무척이나 좋다. 보시다시피,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친구다. 그리고 친구란 함께 있을 때 즐거워야 하는법이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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