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십오 년 전인 1963년에 처음으로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그뒤로 계속 단편소설만 썼다. 이렇게 내가 간결함과 강렬함에 끌리는 원인의 일부는 (일부일 뿐이지만) 내가 단편소설 작가임과 동시에 시인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아직 학부생이던 1960년대 초기부터 시와 단편소설들을 거의 동시에 쓰고 발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인인 동시에 단편소설작가라는 점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나는 단편소설 쓰기의 매력에 완전히 사로잡혔기 때문에 설사 내가 원한다 할지라도 이제는 그만둘 수가 없다. 그리고 그만두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나는 좋은 단편이 보여주는 재빠른 도약을, 종종 첫 문장부터 - P338
시작되는 흥분을, 최상급 단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신비로운 감정을 사랑한다. 그리고 단편소설은 앉은자리에서 다쓰고 다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랑한다. (시처럼!) 이는 내가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였고,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ㅡ 그리고 아마 지금까지도 ㅡ 내게 가장 중요한 단편소설 작가는 이사크 바벨, 안톤 체호프, 프랭크 오코너, V. S. 프리쳇이었다. 누가 내게 바벨의 단편집을 처음 건넸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바벨의 가장 위대한 단편 가운데 한 문장과 마주한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 문장을 당시 늘 가지고 다니던작은 공책에 옮겨 적었다. 모파상과 그의 소설에 대해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 어떤 쇳조각도 올바른 자리에 찍힌 마침표처럼 강력하게 우리의 가슴을 찌를 수는 없다." - P339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계시를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바로 그렇게 글을 쓰고 싶었다. 정확한 위치에 정확한 구두점을찍음과 동시에 적절한 단어들을 배열하고, 정확한 이미지들을그려내서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집에 불이 나지 않는 한 눈을돌리지 못할 만큼 이야기에 확 빨려들게 하고 싶었다. 단어에 행동의 힘을 요구하는 건 아마도 헛된 바람일지 모르겠으나, 그건분명히 젊은 작가가 지닐 만한 소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독자들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명확하고 힘있는 글을 쓰고 싶 - P339
다. 오늘날도 이것은 내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첫번째 단편이 발표되고 십삼 년이 지난 1976년이 되어서야내 첫 단편집인 『제발 조용히 좀 해요』가 출간되었다. 창작, 잡지를 통한 발표, 그리고 책 출간 사이에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것은 내가 일찍 결혼한데다 아이들을 양육하고 블루칼라 노동직에 종사해야 했던 절박한 상황들, 황급하게 약간의 교육을 받아야 했던 점, 그리고 단 한 번도 월말까지 돈이 풍족했던 적이 없던 생활에 어느 정도는 원인이 있다. (내 삶에 은은함이란 거의없었는데도, 어떻게 하면 강물처럼 은은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될수 있을까 배우려 한참 동안 애쓰던 때이기도 하다.) - P340
첫 책을 채울 분량을 쓰고 그걸 출판해줄 사람 ㅡ 덧붙이자면 그 사람은 이처럼 터무니없는 일, 즉 무명작가의 첫 단편집을 내는 일에 무척이나 회의적이었다!ㅡ을 찾느라 십삼 년을 소비한뒤 나는 시간이 있을 때 재빨리 글을 쓰는 법을 배우려 애썼고, 영감이 있을 때 후다닥 글을 써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시간이 흘러 영감의 원천이 된 일들이 잠잠해지고, 너무나 안타깝게도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면 거리를 두고 꼼꼼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살펴보았다. 인생이 다 그러하듯 필연적으로 시간이 뭉텅이로 그냥 사라져버리는 일도 종종 있었고, 그 오랜 기간 동안 나는 그 어떤 단편도 쓸 수 없었다. (지금 그 시간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얼마 - P340
나 좋을까!) 때로는 소설을 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일이 년을흘려보냈다. 하지만 종종 나는 그 시간의 일부를 시를 쓰며 보낼수 있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중요했다. 왜냐하면 이제 꺼진 건아닐까 종종 두려워하던 내 안의 열정이 시를 쓴 덕분에 완전히 꺼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적어도 내게는 신기하게도 다시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돌아왔다. 내 삶의 환경이 바로 섰고, 아니면 적어도 개선되었고, 소설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글을 썼다. - P341
나는 십오 개월 동안 「대성당을 썼다. 이번에는 그중 여덟 편이 다시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 단편들을 쓰기 전 이 년 동안 나는 앞으로 무얼 쓰든 그걸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 그리고 어떻게 쓰고 싶은 건지를 알아내기 위해 이전에 썼던 글들을 살펴보았다. 그전에 낸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분수령이 되어준 책이었지만, 그런 책을 또 쓰거나 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기다렸다. 시러큐스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시와 서평 몇 편, 에세이를 한두 편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뭔가가 일어났다. 잠을 푹 잔 뒤, 나는 책상으로 가서 「대성당」을 썼다. 이게 그동안 내가 써온 이야기와는 다른 종류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어찌어찌 나는 내가 가야할 새로운 방향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쪽으로 갔다. 빠르게. - P341
V. S. 프리쳇은 단편소설을 "지나가며 곁눈질로 얼핏 본 무엇이라고 정의했다. 처음에는 얼핏 본 것일 뿐이다. 이윽고 그 얼핏 본 것에 생명이 생기고, 순간을 밝히는 뭔가로 바뀌고, 아마도 독자의 의식에 지울 수 없는 무언가가 깊게 새겨질 것이다. 헤밍웨이가 너무나도 멋지게 해냈듯이, 독자의 경험의 일부가되는 것이다. 영원히. 작가는 희망한다. 영원히. 만약 우리가 작가와 독자 모두가 운이 좋다면, 우리는 단편소설의 마지막 한두 줄을 마치고 잠시 조용히 앉아 있을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방금 우리가 쓴 또는 읽은 글에 대해 생각하리라. 아마 우리의 심장 또는 지성은 글을 읽기 전에 비해 아주 살짝 그 위치가 달라졌으리라. 우리의 체온은 눈에 띄게 올라가거나 내려가리라. 이윽고 숨이 다시 차분해지면, 우리는, 작가와독자는 마찬가지로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나리라. 그리고 체호프 - P342
의 등장인물이 말했듯이 "따뜻한 피와 신경으로 창조되어" 다음 일을 향해 전진하리라, 삶을 향해, 언제나 삶을 향해. - P343
좋은 창작 수업 선생이라면 좋은 작가 한 명을 여러 번 구해줄 수 있다. 내 생각에는 나쁜 작가 한 명도 여러 번 구할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글쓰기란 힘들고 외로운 과정이며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쉽다. 만약 우리가 일을 제대로 한다면, 창작 수업 선생들은 없어서는 안 될 부정적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제대로 선생 노릇을 하려면, 젊은 작가들에게 어떻게 쓰면 안 되는지를 가르치고, 또 어떻게 쓰면 안 되는지스스로 깨닫는 법을 가르쳐야만 한다. 에즈라 파운드는 독서의ABC에서 "서술의 근본적인 정확성은 글쓰기의 유일한 도덕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만약 ‘정확성‘이라는 단어를 언어 사용에서의 정직함으로 받아들인다면, 즉 작가가 얻고자 하는 결과를정확히 얻기 위해 의도하는 것을 정확히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학생의 글쓰기에서 정직함이란 도움과 격려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심지어 남에게서 배울 수도 있으리라 본다. - P349
글을 썼던, 또는 한 줄도 쓰지못했던 방에 들어가 텅 빈 종이 앞에 앉아 있을 때면 작가는 온몸으로 무시무시한 흥분을 느낀다. 동료 작가들도 똑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봤자, 심지어 당신과 동시에 그렇다는 걸알아봤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약 그 방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뭔가가 나오고, 그 공동체에 당신이 한 것을보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당신이 옳고 진실된 글을 쓰면기뻐하고 그러지 못했을 때 실망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어느 경우이든 상대는 자신의 생각을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묻는다면 말이다. 물론, 그걸로 충분하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도움은 된다. 그동안 당신의 근육은 강해지고, 피부는 두꺼워지고, 추위와다가올 힘든 여행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해줄 두툼한 겨울용 털이자라기 시작한다. 운이 좋다면, 당신은 별의 인도를 받아 방향을잡을 수도 있으리라.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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