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편으론 이 단편이 사람들이 무조건 좋아하고 모든 것을 포기할, 영향과 폭과 깊이와 등장인물의현실감 넘치는 감정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 이것은 다른 종류의 이야기-어쩌면 더낫지 않을 수도 있고, 분명히 희망컨대 더 나쁘진 않았으면 좋겠지만, 어쨌든 다른 종류이다. 그리고 이 단편에서 내부적·외부적 진실과 가치는 안타깝지만 등장인물과도, 단편소설에서 소중히 여겨지는 다른 가치들과도 별 관계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과 글쓰기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내가싫어하는 점보다는 좋아하는 점을 더 잘 찾아내는 경향이 있다.
요즘에는 대형 잡지와 소형 잡지, 그리고 책의 형식으로 온갖 좋은 글들이 출판되는 듯하다. 물론 별로 안 좋은 글들도 많지만,
뭐하러 그런 것까지 걱정하겠는가? 내 마음속에서는 조이스 캐럴 오츠가 내 세대의 첫번째 작가이며(아마도 최근 세대까지도그러하리라, 우리 모두는, 적어도 가까운 장래까지는 그 그림자또는 주문 속에서 살아나가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 P307

나는 ‘타고난‘ 시인이 아니다. 내가 쓴 시 상당수는, 단편소설쓰는 걸 가장 좋아함에도 그것을 쓸 시간이 늘 주어지는 건 아니라서 쓰게 된 것들이다. 단편소설에 흥미가 있다보니 나는 이야기 줄거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 내가 쓴 시 상당수는서술적인 경향이 있다. 나는 처음 읽었을 때 뭔가를 말해주는 시를 좋아한다. 하지만 물론 내가 무척 좋아하는 시, 또는 특별히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시의 경우에는 그 시를 이해하기 위해 두 번, 세 번, 네 번이라도 읽는다. 내가 쓴 모든시에서 나는 명확한 분위기 또는 환경을 추구한다. 나는 시 속에인칭대명사를 빈번히 쓰지만 내가 쓰는 시의 상당수는 순수한 창작물이다.  - P308

에세이 두 편은 1981년에 원고 청탁을 받아 쓴 것이다. 하나는 뉴욕 타임스 북 리뷰>의 편집자가 나에게 "글쓰기에 대한 견해를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써달라고 해서 그 결과로 나온 「글쓰기에 대해」라는 짧은 글이다. 다른 하나는 <아메리칸 포어트리리뷰>의 스티브 버그와 하퍼 & 로의 테드 솔로태로프가 ‘영향‘에대한 글들을 모아 『계속되는 것을 찬양하며』라는 책을 내겠다며내게 원고를 하나 써달라고 했을 때 쓴 글이다. 나는 거기에 「정열」을 보냈고, 이 책의 제목으로 그걸 쓰기로 한 건 노엘 영의 생각이었다. - P313

가장 일찍 쓴 단편은 1966년에 쓴 「오두막」으로, 『분노의 계절』에 실렸으며 이번 출간을 위해 올여름에 개정을 했다. <인디애나 리뷰>는 1982년 가을호에 이 단편을 실을 예정이다. 훨씬더 최근에 쓴 단편 「꿩」은 이번 달에 메타콤 프레스가 내는 한정판 시리즈로 출간될 예정이며, 올가을 <뉴잉글랜드 리뷰>에도실릴 것이다.
나는 내 단편소설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처음부터 제대로 글을 쓰는 것보다는 글을 다 쓴 뒤 이리저리 고치고, 더 고치고, 여기를 바꾸고, 저기를 바꾸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내게 있어 처음에 글을 쓰는 건 그 이야기를 가지고 놀기 위해 - P313

견뎌야 할 시련처럼 보일 뿐이다. 내게 있어 고쳐쓰기는 하기 싫은 시시한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충동적이기보다는 계획적이고 신중한 쪽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뭔가에 대한 설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연관지으려 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다 쓴 글을 개정하는 작업이 내겐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건확실하다. 어쩌면 내가 개정 작업을 하는 건 그 과정을 통해 점차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심장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그것을 알아낼 수 있는지 알기 위해열심히 애를 써야만 한다. 글이란 고정된 위치라기보다는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 P314

당연히, 내 시는 문자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다. 진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며, 실제 일어났다 하더라도 적어도 시에서 내가말한 방식대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단편소설 대부분이 그러하듯 시에도 내 자서전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 시 속에서일어나는 일들과 비슷한 뭔가가 언젠가 내게 일어났으며, 그 기억이 표출되길 기다리며 내 안에 담겨 있었다. 또는 시에서 종종서술되는 대상이 그 시를 쓰던 당시의 내 심적 상태를 어느 정도는 반영하고 있다. 나는 크게 보아 내 시가 단편소설보다 좀더 개인적이며 그래서 좀더 나를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작품이든 다른 사람의 작품이든, 서술적인 시를 좋아 - P326

한다. 시가 꼭 시작과 중간과 결말이 있는 이야기를 말해야 할필요는 없지만, 내게 있어 시는 계속 움직이고, 생생히 나아가고, 번뜩이는 게 있어야만 한다. 시란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여야한다. 그 방향이라는 것이 과거일 수도 있고, 먼 미래일 수도 있다. 또는 옷자란 오솔길로 방향을 틀 수도 있다. 심지어 지구에한정된 게 아니라 별들 속을 누비며 머물 곳을 찾을 수도 있다. 무덤 너머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연어, 기러기, 메뚜기와 여행을 할 수도 있다. 시는 정지해 있으면 안 된다. 시는움직여야 한다. 시는 움직이고, 설사 그 안에서 신비로운 요소들이 작용할지라도,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암시하는 본질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시는 빛나야 한다. 적어도, 나는 시가 빛나길 바란다. - P3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