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막연히 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이론가가 되더라도 적을 두는 예술 장르가 종래에는 생길 터인데, 그 마음의 집을어디로 두어야 할지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듣게 된 한 수업에서 어느 날 <목신의 오후>라는 무용 공연의 영상을 보았다. 1912년 니진스키가 안무하고, 훗날 누레예프가 목신 역할을춘 버전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왜 하필 그 작품이었는지를 좀처럼 설명하지 못하겠다. 어쨌거나 나는 그때, 확고하게 저것이 가장 아름답다, 라고 생각했다. 춤추는 사람의 몸, 그 아름다움을 만나 가슴이 쿵쾅거렸다. - P22
어느 미래에 덜 부끄럽기 위해 그때부터 춤을 배웠다. 무용 공연들을 보러 다니고, 각종 축제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렇게 7년 남짓이 흘렀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생각만큼 가슴 뛰는 공연이 많지 않은 것과, 무대 위 몸의 언어들을 이해하고 번역하는 일이 여전히 버거운 것에 지쳐갔다. 아름다움은 많은 의미에서 멀리 있었다. 그럼에도 처음 사랑한 예술가. 바슬라브 니진스키에 대한 마음만큼은 한 번도 작아진 적이 없다. 어느덧 무용보다는 다른 장르들에 더 적을 두고 살게된 지금이 미래에서도 마찬가지다. 고백할 것도 없이 나는 니진스키의 춤을 본 적이 없다. 백년 뒤에 살아남은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의 춤은 영상으로 남지 못했고, 전해지는 것은 몇 장의 사진뿐이다. 나는 그흑백사진들을 오래 들여다보며 아득해지는 일을 좋아한다. 오른팔을 위로, 왼팔을 옆으로 벌리고 고개를 젖힌 채 눈을 감 - P22
고 황홀하게 웃는 세헤라자데의 노예, 턱을 들고 미간을 다정히 모은 채 희미한 미소로 아래를 건너다보는, 곧 사랑하는 지젤을 잃고 윌리들의 숲에서 살아남을 고귀한 알브레히트, 주름진 얼굴에 서늘한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하는 광대 페트루슈카. 후대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그를 볼 수 없었으므로 그는 전설로 박제되었다. <장미의 정령>이라는 작품에서 니진스키는 분홍 장미 꽃잎으로 뒤덮인 의상을 입고, 이전까지 대개 여성무용수의 몫이었던 요정의 역할을 춤춘다.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무도회에서 돌아온 여인이 꿈꾸듯 잠들면, 창문으로 날아든 그가 눈 감은 그녀와 행복한 춤을 추고, 다정한 손길로 여인이 다시 소파에 몸을 기대자, 정령은 창문밖으로 날아 사라진다. 그리고 여인은 꿈에서 깨어난다. 이 춤에 관해 회자되는 전설에 따르면, 정령이 사라지는 장면에서 니진스키의 도약은 너무도 빼어나, 관객 중 누구도 그것이 그리는 포물선의 추락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영원히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던 것이다. - P23
왜냐하면 춤은, 모든 움직임은,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발생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포즈로부터 다른 포즈로, 어떻게건너가는가가 생을 이루기 때문이다. 단지 건너왔다는 사실 자체는 상실의 허무를 면할 수 없다. 건너옴 사이, 틈새와 균열속에 있던 것들, 거기서 살아 있고 반짝였으며 끝내 흘러가버린 것들이 실은 전부임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그림과 그림 사이에서 사라진 춤을, 여전히 애타게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3년, 또 하나의 제전을 복원하는 과제 앞에서 안무가 도미니크 브렁은 말했다. "저는 영화가 부럽습니다." 그에 따르면 영화에서는 이미지의 조각들을 배치하고 이어 붙여 움직임으로 구현시키는 작업 자체가 매체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그 같은 의미에서의 몽타주가 불가능하다. 춤은 그 어떤 사라진 틈새도 그저 삭제시킬 수 없다. 틈새를 메우는 움직임의 자취는 관객에게 고스란히 노출된다. 그 가시적인 블로킹을 벗어날 수 있는 몸은 없다. - P29
그리하여 그가 참조한 것은, 그토록 부러워 마지않는 영화 가운데, 지가 베르토프의 1928년 작 <여섯 번째 세계> 속몸들이었다. 그 낡은 흑백영화는 "당신은 ~입니다"라는 러시아어 문장과 함께, 냇물에서 물 긷는 사람, 양을 치는 사람, 아이에게 젖을 주는 사람, 나귀를 끌고 가는 사람, 모닥불에 몸을 쪼이는 사람 등이 담긴 짧은 영상을 몽타주함으로써 세계의 여섯 번째 영역, 그 가려진 풍경 속 사람들을 ‘당신‘이라는기묘한 호칭으로 우리 앞에 소환한다. 살아가는, 노동하는, 옛날의 몸들. 둘러싸인 자연과 제몫의 행위가 오만 없이 어울렸던 인간의 둥근 무게들. <봄의제전>으로부터 우리가상실한 것은 원작의 기록이 아닌 바로그 몸들이었으므로, 이제 비로소 도미니크 브렁은 제전의 몸을 상상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 빈틈을 기워낼 힘을 얻는다. 사랑했던, 없는 당신의 몸이 공간 속에 끌리던 방식을 떠올려볼 수 있게 된다. - P30
그리고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가루가 무엇인지를나는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은 몸이 불에타 한 움큼의 뼈로 남겨진 것을. 눈앞에서 뼈가 분쇄되고 정결한 빗자루로 쓸어 담기던 것을. 그 뽀얀 잿빛의 가루를 내가두 손에 받아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든 항아리를 땅에 묻고 삽으로 흙을 떠 세 번에 나누어 흩뿌려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 땅에도 겨울이 지나봄이 오던 것을 내가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공연의 끝에 밝혀지는바, 카스텔루치의 제전에서 사람을 대신해 춤춘 것은 수십 마리 소의 뼛가루였다. 실제로 오늘날 그것은 대규모로 생산돼 비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우리는여전히, 어떤 생명들을 희생하여 봄의 비옥을 맞이하고 있다. 나는 언 몸으로 객석에 앉아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세상의 어떤 죽음도 단일하게 종결되지 않는다는 새삼스런 사실을 실감했다. 전설 속의 지목된 여성도, 저 많은 동물들도, 사랑했던 당신도, 나를 대신해, 나의 봄을 대가로 죽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 뼈아픈 진실 속에서, 인간의 백 년이란 너무도 짧은 것이었다. - P32
솔렌은 무대의상을 만드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그는 한 세계속에서 한 인물이 입고 잠시 살다가 죽는 옷을 만든다. 그옷들은 정확한 효용에 의해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가 연극의 세계밖에서 무용해진다. 그녀의 학교에는 쓰임을 다한 무대의상들이 보관된 창고가 있다. 의상제작팀을 따로 둔 몇몇 국공립극장에도 그런 창고가 있다. 때때로 극장들은 창고를 열어 저렴한 값에 옷을 판매한다. 그러지 않으면 곧 무덤의 자리가 부족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날 객석에 앉아 나는 궁금했다. <타우버바흐>의 막이 올라가고 모두가 경외감에 싸이는순간, 솔렌과 친구들은 그 어떤 기시감에 아득했을까. 극장에서 판매하는 의상을 산 사람들은 아마도 그것을입을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특별하게 제작된 옷일수록 과도하게 연극적이기 마련이므로, 그러나 생이 연극임을 잊지 않는 이들의 옷장에 사라진 무대의 의상이 한 벌쯤 걸려 있는 풍경을 상상해보는 일은 즐거웠다. 그 옷은 반드시 유효했던 한작품의 필요에 의해 손수 지어졌으며, 오로지 한 인물, 한 배우의 몸만을 위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가상이면서도 실제인, 발생하면서도 소멸하는, 어떤 고유함을 위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그 일을 좋아한다고 솔렌은 말했다. - P40
그리고 아마도 파리에서의 초연 때였을 것이다. 역시 모두들 웃으며 손을 내렸고, 한 이란 사람이 일어났다. 그는 객석을 향해 말했다. 이란에서는 춤추는 일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선 그렇지 않은데, 당신들은 왜 춤을 추지 않습니까. 그가 무대로 나가 춤추기 시작했다. 춤의 첫걸음을 옮기는 동시에 그는 울고 있었다. 객석에서도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지만, 바흐를 듣지 못하고도 따라 부르던 사람들처럼, 그 춤을 생각하면 언제든 울수있어진다. 나희덕 시인의 「수화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네가 듣지 못하는 노래, 이 노래를 나는 들어도 괜찮은 걸까 네가 말하지 못하는 걸 나는 감히 말해도 괜찮은 걸까
우리는 누군가 듣지 못하는 노래를 듣고, 누군가 보지 못하는춤을 본다. 이 사실을 잊을 수는 없다. 무대 위 옷의 무덤도, 솔렌이 만든 의상의 하나뿐인 실루엣도, 손강과론 강이 만나는자리도, 그 여름의 별똥별도, 누군가 볼 수 없던 것을 나는 본채로 이렇게 쓴다. 그럼에도 저와 함께 춤추시겠어요, 그 질문앞에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고. - P43
나는 어디에서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디서나 살아도 상관없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나는 어디에서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분은 무척 낯선 것이었다. 논문을 마무리하고 일 년짜리 비자를 추가로 받게 되면, 나는 그곳에서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을 줄 알았다. 허나 어째서 우리는 가장사랑할 수 없는 시절에 이미 아낌없이 사랑을 해버렸던가. 기진한 내가 더 꾸려가고픈 일상의 풍경이 거기 없었다. 마음속에 풍경이 펼쳐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뒤로는 강의를 하며 지내고 있다. 감히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만 전하며, 그만큼 아름다운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수업이 끝난 뒤 꾸벅 인사하며 강의실을 나설 때, - P45
더러 어떤 얼굴은 어딘지 꼭 할 말이 있는 것만 같은 표정을숨긴다. 그 숨김이 애틋하여 나는 날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싶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날에는 바야흐로 몇 개의 토로가 당도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대체로 슬펐고 많이 따뜻했으며 늘 황송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서로의 몸짓이 눈에 익은 즈음, 또 어떤 이들은 불쑥 물었다. 선생님은 꿈이 있으신가요.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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