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영朴濟瑩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소통을 위한,나와 당신의』 『푸르른 소멸-플라스틱 플라워」 「뜻밖에」가 있으며 <빈터>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시인의 말
몸을 낮추고 속도를 낮출 때 비로소 보이는, 비로소 들리는 풍경이 있다.
대개의 生生한 삶은 낮고 느리고, 어둡고 쓸쓸한 그곳에 있다.
쥐며느리처럼 웅크린 사람들 내 시는 지금 그곳을 통과중이다.
이천팔년 정월 춘천에서 박제영
박제영 시인의 시는 <통>의 집합체다. 우선 ‘桶‘이 크다. 누구하고든 잘 通한다. 어디 그뿐인가. "뼈란 뼈 전부 녹고 삭아 마침내 "엉텅 빈" 허깨비 같은 生生을 끌어안고 하냥 아파하는 ‘通이며, "흐린 주점" 구석에 웅크려 술주정인 척 서럽게 울음우는 慟이며, "나를 읽고 있는 당신, 나를 해석하는 당신, 일부도 모르면서 나를 온전히 아는 척 거들먹거리는 모양새를 오히려 환히 꿰뚫는 ‘洞‘이며, 숫사슴의 피를 받아마시고도 "도무지 심!이 서질 않아 더럭 상심한 ‘恫‘이다. 통 크고 사통팔달하던 박제영 시인의 시가 불혹을 넘어서면서 달라졌다. 짭쪼름해졌다. 집요해졌다. 게다가 무섭도록 깊어졌다. 전자의 대륙기질 농후한이 후자의 서럽도록 신산한 반도기질 ‘통‘을 만난 것이다. 견자의 ‘통‘, 상심의 ‘통‘을 만난 것이다. 하여, 그의 시는 지금 "마음 한 켠이 새고 있"는, "마음 한 둑이 무너지고 있는, "저, 저, 저, 모든, 독을 품은, "가령"과 "설령" 사이를 밤새 배회하는, "영혼의 몽리면적을 잃어버린 우리 곁에 있다. "박팀장, 박시인, 박씨, 박형, 박선생, 박사장, 여보, 아빠, 자기야, 오빠....." 로, 때론 "40번 손님! 그 새끼"로 서 있다. 길 잃은 저마다와 흡사한 샴으로 서 있다. "달처럼 예쁜 도희"를 업고 서 있다. 세상 모든 뜻하는 것들의 계산을 철저히 배재한 "뜻밖에 뜻, 밖에"에 서 있다. 박제영 시인의 시가 예사롭지 않다. 손세실리아(시인)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그리움이란 마음 한 켠이 새고 있다는 것이니 빗 속에 누군가 그립다면 마음 한 둑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니
비가 내린다, 그대 부디, 조심하기를 심하게 젖으면, 젖어들면, 허물어지는 법이니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마침내 무너진 당신, 견인되고 있는 당신
한때는 ‘나‘이기도 했던 당신 떠나보낸 줄 알았는데
비가 내리는 오후 세 시 나를 견인하고 있는 당신 - P17
주저흔
죽음 앞에서 제 죽임을 망설인 흔적, 망자의 사인(sign) 그것은 스키드 마크다 고속도로에 무수히 찍힌 스키드 마크 제 삶에 급브레이크를 걸어야 했던 절박의 흔적들
주저흔이란 방어흔이다 자살은 없다 모든 자살은 타살이다 - P91
뜻밖에
젊은 날엔 시를 쓰기 위해 사전을 뒤져야 했다 몇 번의 실직과 몇 번의 실연이 지나갔다 시는 뜻밖에 뜻, 밖에 있었다 - P21
춘천
바깥의 누군가는 산과 호수와 나무와 새와 바람과 사람이 저마다 안개를 키운다고 생각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안개가 산과 호수와 나무와 새와 바람과 사람 모두를 키운다고 생각하겠지만, 춘천에 산다는 것은 마침내 안개가 되는 것이다 산이 산을 지우고 호수가 호수를 지우고 나무와 새와 바람이 나무와 새와 바람을 지우고 사람이 마침내 사람을 지우고 안개가 되는 것이다 춘천은 가장 안쪽의 풍경이다 - P28
어느 필모그래피의 죽음
충무로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50대의 사내가 죽은 지 7일 만에 발견되었다 그는 <바보들의 행진>의 구두닦이였고, <영자의 전성시대>의 깡패였고, <바람불어 좋은 날>의 식당주인이었고, <만다라>의 걸승이었고, <칠수와 만수>의 페인트공이었고, <남부군>의 인민군 18이었고, <하얀전쟁>의 베트공 13이었고, <악어>의 포주였고, <실미도>의 버스승객 7이었고, 그 사이 한 여자를 만나 동거를 할때도, 그 여자 아들 데리고 떠나갔을 때도, 그는 스크린 속에서 우리와 함께 있었지만, 지금 촬영 중인 영화의 택시기사역이 일주일 전에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지만 촬영장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것처럼, 우리가 그의 필모그래피를 모르는 것처럼, 그의 죽음은 무연고자로 처리되었다 - P68
불혹
강원도청 앞 그 식당은 이름이 셋이다 오른쪽 붉은 지붕 위로 ‘한양화로숯불구이‘ 라는 이름이, 왼쪽 처마 밑으로 ‘한양설렁탕‘이라는 이름이, 입구 현관 위에는 ‘소담송하‘라는 이름이 매달려 있다 누구는 ‘한양집‘ 이라 하고, 누구는 ‘도청 앞 설렁탕집‘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소담송하가 맞다고 하고, 어떤 이는 그냥 ‘도청 앞 식당‘으로 오라고도 한다 어떻게 부르든 사람들은 길을 잃는 법없이 쉽게 찾아온다 ‘병천순대국 개시‘라는 플래카드와 ‘갈비탕 냉면 개시‘라는 플래카드가 일년 내내 걸려 있지만 메뉴판에는 불고기도 있다 누구는 순대국을 주문하고, 누구는 갈비탕을 주문하고, 어떤 이는 냉면을 주문하고, 또 어떤 이는 불고기를 주문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그냥 설렁탕을 먹고 나온다 순대국을 주문했는데 가끔 설렁탕이 나오거나 냉면을 주문하지만 준비가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도 대개의 사람들은 그냥 설렁탕을먹고 나온다 아주 가끔은 실랑이가 벌어지는 수도 있긴하지만 그것이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 P102
나를 부르는 이름도 만만찮다 박팀장, 박시인, 박씨, 박형, 박선생, 박사장, 여보, 아빠, 자기야, 오빠...... 가끔은 나를 40번 손님!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전해 들은 바로는 나를 그 새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떻게 부르든 그들이 내게서 길을 잃는 법은 없다 대체로 이것 저것 내 안의 요리들을 알아서 가져가고 알아서 간을 맞춰 먹는다 가끔은 혼선을 빚곤 하지만 그것이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대체로 그렇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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