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독립운동이 조직적으로 가열되고 일본군국주의의 식민지 지배1930년부터 1938년까지골화되던4부는 서울 동경 만주를 행동 무대로 하는지식인들의 행적 그리고 하동 진주 지리산만주를 연결하며 형평사 운동과 항일 운동에투신하는 크고 작은 인물들의 활약을 웅장한파노라마로 그린다. 4부에 이르러 작가는민족적 정조와 덕성(性)의 오랜원형을 탐구하고, 이를 탁월한 혜안과 풍부한지식, 생동하는 인물들의 뜨거운 형상을통해서 이야기한다. 작가의 저 오랜 주제인한(恨)과 생명의 사상, 휴머니즘과 도덕적민족주의 철학은 이로써 깊이 심화되고 마침내민족 모두의 것으로 공동화(共同化)된다. - P-1
朴景利씨에 있어 「土地는 단순한 농토를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의 삶의 터전 전체를 의미하는 대지적 이미지다. 土地는 다양한 인물, 숱한 형태의 삶, 그 삶들의 관계 · 가치관 · 인생관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土地는 삶의 종합적인 풍경이 되는 동시에 이념적 사상적 갈등과 사회·정치적, 경제·문화적 격변과 진통의 압축장이 된다. 다시말해 여느 마을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전통적인 농업 촌락인 평사리가 『土地」에서는 당대의 한국과 한국인의 삶 전체를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생생한 현장으로 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土地를 읽으면서 경악에 가까운 감동을 갖게 되는 것은 이소설이 우리 문학사에서 희귀한 대하소설의 장르를 가진다는 외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사와 전체사의 거대한 문학적 대종합을, 즉 총체소설의 성과를 얻고 있다는 데에서 빚어진다.
-金炳翼 문학평론가 - P-1
어디로 가든지, 특히 소도시나 소읍 같은 곳은 거의가 다 그러한데, 양과점을 위시하여 담배 가게, 이발소, 목욕탕, 대개 그런 비슷한 업종은 일본인 경영이다. 다른 업체라고 그렇지 않다는 얘기는물론 아니다. 비교적 일인과의 접촉이 잦은 업종인 데다가 눈에 띄어야 장사가 되고 사업이 되기 때문인데, 눈에 띄어야 한다는 것은결국 대중적이라는 내용이며 눈에 띈다는 그 자체가 벌써 식민지백성들의 하층 구조에까지 스며들어 일상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을뜻한다. 그러나 일상화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이 조선의 산천과 사물과 사람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은 보급이 된 지가 오래지 않아 그렇기도 하겠으나 다만 생소하다 하여 오는 거부감만은 아닐 것이다. 그 새로운 업종은 어디서 왔는가. 누가 들여왔고 누구의 손에서 경영이 되는가. 일본에서 건너왔고 일본인 그들에 의해 주로 경영이 된다는 사실, 그 사실에 대한 적개심이나 거부의 감정을 쉽사리 지적할 수 있을 것이지만 한편 유교 사상에 길들여진 조선 백성들의 잠재된 의식 속에는 예절과 검소 그 격조 높은 선비 정신의 잔영 (殘影)이 있었을 것이요, 생략할 수 있는 데까지 생략하는 세련된 미의식, 수천 년 몸에 배고 마음 깊이 배어 있는 안목에서 본다면 서양 것은 요란해 뵈었을 것이고 일본 것은 저 - P11
속하고 치졸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서양 것, 일본 것이 혼합된그같은 새로운 업종을 이용하고 거래하면서도 못마땅했을 것이며보수파들은 더더구나 모멸하고 혐오하기도 했을 것이다. 곡물과 면포와 시탄(柴炭)이면 족하였던 종전까지의 서민들, 하기는 어떤 세월, 태평성세라던 치하에서도 그런 것들은 충분했을리 없고 늘 흡족하지 못했을 것인데 하물며 일제에게 강토를 빼앗겼고 인성이 유린당하는 민족적 수난 속에서 없어도 생존이 가능한 과외의 것들, 서두에서 말한 바 있는 그런 것들이 서민들 생활에 기어들어가고 있다. 얼핏 생각하기엔 수수께끼요 이상한 일이다. 이씨 왕조가 무너질 그 무렵만 해도 바다를 건너온 문물은 싫든 좋든 지배층에 속하는 것, 언감생심 눈깔사탕 비누 한 조각을어디서 구경했겠는가. 한다면 일본 그네들이 염불 외듯 하는 말인데 미개국을 개명시킨 시혜국이란 것도 그럴싸하긴 하다. - P12
어떤 경박지사가 아이스크림의 맛을 어찌 나폴레옹이 알소냐! 하며 현대문명을 구가했다던가, 그런 가락으로 말한달 것 같으면 연산군도전차는 못 타보았을 것이다! 조선의 서민들이라고 뽐내지 말라는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뻔한 이치는 동쪽에서 바라보는 산과 서쪽에서 바라보는 산의 모습이 다른데 어쩌랴. 금관에 용포도 왕이 쓰고 입으면 왕을 나타내는 것이요, 종이 쓰고 입으면종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니, 연이나 지금은 배부른 종의 얘기를할 때는 아니다. 이 대명천지 굶어죽고 얼어죽을 자유는 있을지언정 섬겨야 할 강산도 상전도 모두 괴멸되어 없는 터에 종의 뿌린들남아 있을라구. 각설하고 편리하다는 것, 소위 그 위생적이라는 것, 혀끝에 감칠맛이 남는다는 것,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금종이 은종이에 싼 유리통 속의 꿈과 같은 고급 과자 무슨 옥(屋)이니 헌(軒)이니 하는 명(銘)이 찍힌 생과자를 아무나가 먹는가. 사십 전 하는 ‘GGC‘, 십오 전의 ‘가이다‘, 그런 고급 담배를 아무나가 피우는가. 재주껏 발돋움을 해보아야 ‘메이지 캐러멜‘ ‘모리나가 밀크‘가 고작이며 담배는 십 전짜리 ‘피전‘이 상한선, 조선인은그 정도로 상류에 속한다고 착각들 한다. 거의 모든 사람은 엽초를 - P12
피웠고 젊은 층은 ‘마코‘라는 오 전짜리 담배를 피운다. 아이들 역시 동전 한 닢으로 향료도 없는 흑설탕의 눈깔사탕 한두 개, ‘센베이‘가 두세 개, 그걸 입에 물면 행복해지는데 단순한 그 행복도 위협을 받고 마음에 상처를 받아야 얻어진다. 과자점의 하얀 앞치마입은 오카미상(여주인)은 동전을 내미는 아이를 노려보기 일쑤였고과자 집게가 아이 손에 닿지 않게 사탕을 떨어뜨려주곤 했었다. 식민지의 서민들과 일본인 업주와의 관계는 늘 그런 식이었고 거래라는 것도 대강 그런 정도였지만 ‘마코‘를 피우고 눈깔사탕을 먹는편이 절대 다수인 만큼 영업 성패에 무관하다 할 수 없건만 일인업주는 소비자를 거지 보듯 오만불손하였고 식민지의 가난한 백성은 내 돈 내고도 빌어서 먹는 시늉을 해야만 했다. 하기는 농토에서 잡초같이 뽑혀나간 농민들과 뭐 다를 것이 별로 없다. 소도시나 소읍에서 우왕좌왕하는 가난뱅이 소비자도 어차피, 조만간에 뽑혀서 버려질 잡초인 것은 매일반이며 결국 거지로 전락할밖에 길이 없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 같은 부동(浮動)인구는 본래 가농민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P13
남부여대(男負女戴) 땅을 찾아 간도로만주로 떠났고 모집에 휩쓸리어 광산 등, 노동력을 팔러 일본으로건너갔고 혹은 하와이에 농장 노예나 진배없는 그런 조건으로 이민간 사람들, 나머지가 이곳의 부동 인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상대대로 살던 땅에서 쫓겨나 산 설고 물 설은 남의 고장에서 그들의처지가 나올 것도 없겠으나 소도시로 소읍으로 밀려나와 방황하는무리의 참상 또한 목불인견인 것은 사실이다. 그들 무리를 살펴보건대 거리마다 밥 빌러 다니는 걸인들이 태반이요, 부두, 정거장, 여관, 저잣거리에는 팔짱 낀 지게꾼이 그리운 님 기다리듯 짐을 기다리는 광경이 그들의 형편이었다. 일본인 왈, 조선인은 게으르다, 조선에는 웬 거지가 이리 많으냐, 그 실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총독부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가렴주구에 항거하는 민란도 수없이 있었지만 조선조 오백년, 나라에서는 공전(公田)이라 하며농민으로부터 땅을 걷어들인 일은 거의 없었고 설사 걷어들였다한들 결국 조선 백성이 경작하게 마련, 사유지의 경우도 땅문서라 - P13
는 것이 애매모호했으나 땅문서 이상으로 윤리 도덕이 견고하여남의 땅을 도적질하는 일은 없었다. 항상 족하지 못했지만 마을마다 대개 객사라는 것이 있었고 여염집에서도 한두 끼의 끼니, 잠자리를 거절하는 풍속이 아니었기에 나그네는 있었으나 거지는 흔치아니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삼천리 강산, 남의 땅으로 쫓겨간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이 불운한 강산 거리거리에 거지들이 떼지어 방황하고 있는 것인가. 일인들 왈 조선에는 웬 거지가 이리 많으냐, 총독부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땅을 약탈하여 배가 불러 터지게 된 동척(東拓)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조선인은 게으르다, 어째 게으른가 그것 역시 총독부, 동척에 가서 물어볼 일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내쫓긴 수많은 사람들, 날품팔이 행상, 남의집 고공살이, 그런 일자리나마 과연 충분하며 입에 풀칠할 만한 수입인가. 그러나 어쨌든 거지가 아닌 그런 부동 인구가 우선은, 앞서 말한 새로운 업종의 구매자요 이용자인 것만은 사실이다. - P14
일자리를 얻기위하여, 얻은 일자리를 부치하기 위하여, 장사를 하기 위하여, 상투가 잘렸으니 이발소라는 곳에 가서 머리를 깎아야 하고 등물할 내집, 마을의 시내도 잃었으니 목욕탕에 가서 몸도 씻어야 한다. 이발관에서는 머리에 바르는 지쿠 냄새가 났다. 활동사진관 주변에서올백한 건달들이 사이다, 라무네 등을 마시며 오가는 사람들에게시비를 걸곤 하는데 그들에게서도 지쿠 냄새가 났고 손가락 사이에 면도날을 숨긴 새로운 직종, 일본서 기술을 배운 수리꾼 그들도지쿠 냄새를 풍겼고 이다바(요리사), 일인 상점의 점원 등, 쥐꼬리만한 급료를 받는 부류의 청년들도 월급날에는 이발하고 목욕하고지쿠 바르고 유곽을 찾는다. 일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 곳곳에 세운성곽과도 같은 거대한 청루(靑樓), 그러고 보니 수리꾼, 유곽도 과연 새로운 직종이요 업체다. 칼날과 섹스, 그것이야말로 진실로 일본의 수천 년 역사의 진수가 아니었던가. 목욕탕에선 ‘가오세켄‘이라는 비누 냄새와 ‘우데나‘ 크림의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등바닥까지 회칠을 하는 일본 기생을 연상하게 한다. 목욕탕에서는 언제나 그들 일본 기생을 볼 수 있었다 - P14
늙은 할미는 손녀를 보고 물었다. "머 묵노?" "사탕." "어디서 났노?" "아부지가 한푼 주데요." "댓끼놈의 가시나! 양식도 못 팔아묵는데 배부릴 기라꼬 그거를묵나! 회만 생기고 이빨은 안 썩을 기든가? 애비도 애비다. 죽물도안 들어간 창자에 사탕이 웬 말고." 내일이 없는 아비 어미의 자포자기한 생활, 자포자기한 사랑 때문에 아이는 배도 안 부 르고 이빨만 썩을 사탕을 먹게 된다. 떡할쌀, 엿을 고을 엿기름 한줌이 없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없는 것이 어디 그것뿐일까. 코딱지만한 남의 곁방살이, 처마밑이 부엌이며 아궁이에 지필 나무 한 가치 없고 간장 된장도 사먹어야 하는뜨내기 살림, 아이 입에 사탕만 물리던가? 돈 생기면 허기부터 달래려고 우동을 사먹게 된다. 우동만 사먹는가? 환장한 가장은 야바위판에 주질러앉아 돈 털리고 호주머니 바닥 털어 술 사먹고 돌아와서 계집 자식 친다. - P15
내일이 없는 뜨내기, 그들은 모두 허무주의자다. 허무주의는 소비를 촉진한다. 바닥을 털어가며 사는 사람들, 끝없는 노동력을 제공해도 바닥은 메워지지 않는다. 노동을 팔고 싶어도 팔 자리가 없어 빈털터리요 어쩌다 얻어걸리는 품팔이, 급한김에 아이 입에 사탕 물리고 허기 달래려고 우동이며 국수며 혹은떡이며, 해서 이들은 왕도 손님도 아닌 거지의 시늉을 내는 소비자인 것이다. 머지않아 거지로 전락할 사람들인 것이다. 이청루에 몸을 판 여자는 순결할 때 쓰던 녹두가루, 팥가루 같은것 대신 비누를 쓰고 화장품을 소비한다. 혀가 꼬부라지게 과자를먹고 창자가 썩을 만큼 술을 마시고 어차피 성병 따위로 천당 갈날이 머지않았으니 말이다. 아편보다 못할 것이 없다. 저속한 그 모든 것들은 서서히 서서히 노동력을 소모하고 가진 것을 소모하고하나씩 사라지면서 그네들에게 압제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그러면 도시말고 농촌은 형편이 다를까. 아니, 가까스로 발붙인 - P15
농민들은 살아갈 한하지. 그게 그렇지가 않다. 잿빛 돌담에 비치는햇빛은 비정하고 생활은 가열하다. 강가에서 주운 돌을 하나씩 쌓아올려 돌담을 만들던 시절, 삼태기를 만들고 물통을 만들던 가난했던 시절, 가난은 여전한데 아니, 더한데 돌담을 쌓고 삼태기를 만들던 생활을 농민들은 잃었다. 부평초 신세는 도시 유랑민뿐만은아니었다. 개척민 성격을 띤 일인들이 많은 농토를 차지했다. 처음삼강오륜을 헤아리는 조선의 농부들 눈에 본토에서 버림받은 비천한 일인들이 짐승으로 보였다. 그들은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야만인이었다. 탈망한 사내가 온다고 숨던 부녀자들이 샅바 하나 찬벌거숭이 왜인들을 만났을 때 기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일본 농부들의 무례보다, 넓어진 경작지에 과중한 노동을 하는데 수익은 전과 다름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경작지가 넓어지고 보다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면 수익이 느는 것이 이치다. 하기는 인심이 그렇게 했다면 애당초 잡초처럼 농민들을 솎아냈을 리가 없다. 보다 많은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것은 짜낼 수 있을 만큼 시간을 짜낸다는 것을 의미하고 여가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 P16
기계가 짜내는 광목, 옥양목에 밀리어 농가의 수직 면포가 상품으로서 쇠퇴해가는 추세도 추세려니와 아녀자들은 이제 베틀에 앉을 체력을 잃었고 남정네는 나무 한짐 해서 장에 내다파는 시간을 얻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생활에 보태는 방도가 끊긴 것이며 뿐인가 흉작, 풍작에 관계없이 소정된 소작료는 세금보다 무섭다. 액수가 부족하면 등바닥에 불난 것처럼 장리변, 일수 가릴 것 없이 아구를맞추어내야 하는 것이다. 빛이 눈사람 모양으로 불어나는 것은 전에 없던 복리의 요술이겠으나 그 요술 때문에 식구들이나마 등 덮어주기 위해 베를 짜던 딸은 청루로 가거나 도방에 더부살이로 가거나, 나루터에서 울며 이별할밖에 없다. "아부지, 점심때가 된 것 같소." "아직 멀었다." 돌아보지도 않고 김을 매는 아비와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은 보리밥 한 덩어리를 보고 또 원망스럽게 해를 보던 아들, 한숨을 쉬며 - P16
다시 김을 매던 아들은 선금에 흘리어 모구리질(잠수부)을 하러가는데 동네 사람들이 말린다. "이눔아아야, 물속에서 시비리(마비)가 한분 오픈 그냥 죽어부린단다. 차라리 일본에나 가지 그랬나." 아들은 등을 돌리며 "부모 형제가 있는데 멀리는 가고 접잖소." 어미는 돈이 원수라 하며 울었고 아비는 뒷짐지고 먼산만 보고, 뿌리가 뽑히기론 매한가지다. 농촌에서 딸 팔아먹고 아들 떠나보내는 것은 이제 다반사가 되었다. 훌륭한 개명파 지식인들, 일본물 마시고 서양서 온 기독교에 목욕한 사람들, 미신 타파를 외치고 민족 개조를 외치고 조선인을 계몽하려고 목이 터지는 사람들, 미신 타파하면 땅을 찾고 수천 년내려온 조선의 문화를 길바닥에 내다버려야 땅을 찾고 나물 먹고물마시고 이만하면 대장부 살림살이, 대신 사탕 빨고 우동 사먹어야 땅을 찾을 것이던가. 사실은 긴구치(金]나 하마키피를우는 족속, 금종이 은종이에 싼 과자 먹는 족속, 우리 것을 길바닥에 내다버리는 족속 때문에, 그들 때문에 조선 민족은 말살될지 모른다. 남부여대 고국을 떠나는 사람들, 바가지 들고 거리를 헤매는사람들, 지게 지고 그리운 님 기다리듯 서 있는 사람들, 그들의 신세는 마을 큰나무에 돌 얹고 절한 때문인가 성황당에 제물 바친 때문인가 용왕을 모시고 터줏대감을 모신 때문인가, 그것을 총독부, 동척 아닌 어느 곳에 가서 물어볼꼬.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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