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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0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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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담 한 송이

                     허수경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시집[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중에서

   시집의 첫 번째 시, 시인과 편집자가 첫으로 골랐을 시이다.

   암을 선고받고 '농담'이었으면 했을 사람 허수경이, 시인 허수경을 지켜보는 듯하다면 너무 작위적인가. 그냥 결과를 아는 내게는 그런 서러운, 가슴 먹먹하도록 서러운 '농담'으로 읽힌다. 결과를 몰랐을 때는 생각하지 않겠다. 마지막 시집이 되어버리리라곤 아무도 몰랐을 테니까.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은 도대체 어디인지 평범하디 평범한 나로서는 짐작도 못하겠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을 서성 서성, 오늘도 길 위에 있을 화자만이 알 수 있겠지.

  '끝끝내 서럽고 싶다'가 마지막 행 '살고 싶다' 보다 더 간절한 큰 울림으로 '살고 싶다'고 등 떠민다. 이런 서글픈 농담을 '한 송이'로 만들어 버리는 시인의 담대한 비장함이 처연해져서 더욱 서글프다. 어디에도 눈물은 없지만 통곡소리 가득한, 그렇게 첫 장을 읽는다. 빈속에 매운 고추를 베어 먹었나, 속이 오래~ 아리다.

   시인이 남기고 간 화두처럼,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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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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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줍니다.

                    허난설헌의 무덤

           ······.

   오늘 새벽 일찍이 난설헌 허초희(許楚姬)의 무덤을 찾아나섰습니다.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지월리. 자욱한 새벽 안개 속을 물어 물어 찾아왔습니다.

   오죽헌과는 달리 허난설헌의 무덤은 우리의 상투적이고 즉각적인 판단이나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판단에서 한 발 물러나 그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당신이 힘들게 얻어낸 결론이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철폐는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일과 직접 맞물려 있다'는 것이라면, 그리고 한 시대의 정점에 오르는 성취가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에 얼마만큼 다가서고 있는가 하는 것이 그의 생애를 읽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면 당신은 이곳 지월리에도 와야 합니다.

   사랑했던 오라버니의 유배와 죽음 그리고 존경했던 스승 이달(李達)의 좌절, 동시대의 불행한 여성에 대하여 키워온 그녀의 연민과 애정, 남편의 방탕과 학대 그리고 연이은 어린 남매의 죽음, 스물일곱의 짧은 삶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육중한 것이었습니다.

   사임당의 고아한 화조도(花鳥圖)에서는 단 한점도 발견할 수 없었던 봉건적 질곡의 흔적이 난설헌의 차가운 시비(詩碑) 곳곳에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개인의 진실이 그대로 역사의 진실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자연마저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음으로써 대리현실을 창조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만날 수 있기는 갈수록 더욱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뿐만아니라 모든 가치가 해체되고, 자신은 물론 자식과 남편마저 '상품'이라는 교환가치형태로 갖도록 강요되는 것이 오늘의 실상이고 보면 아픔과 비극의 화신인 난설헌이 설 자리를 마련하기는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자기의 시대를 고뇌했던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시대가 청산되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역사의 진실은 항상 역사서의 둘째권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죽헌을 들러 지월리에 이르는 동안 적어도 내게는 우리가 역사의 다음 장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의심스러워집니다.

   시대의 모순을 비켜간 사람들이 화려하게 각광받고 있는 우리의 현재에 대한 당신의 실망을 기억합니다. 사임당과 율곡에 열중하는 오늘의 모정에 대한 당신의 절망을 기억합니다. 단단한 모든 것이 휘발되어 사라지고 디즈니랜드에 살고 있는 디오니소스처럼 '즐거움을 주는 것'만이 신격의 숭배를 받는 완강한 장벽 앞에서 작은 비극 하나에도 힘겨워하는 당신의 좌절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지월리로 오시기 바랍니다.

어린 남매의 무덤 앞에 냉수 떠놓고 소지 올려 넋을 부르며 "밤마다 사이좋게 손잡고 놀아라"고 당부하던 허초희의 음성이 시비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감수성과 시대가 선포되고 과거와 함께 현재의 모순까지 묻혀져가는 오늘의 현실에 맞서서 진정한 인간적 고뇌를 형상화하는 작업보다 우리를 힘있게 지탱해주는 가치는 없다고 믿습니다.

   중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소음이 쉴새없이 귓전을 할키고 지나가는 가파른 언덕에 지금은 그녀가 그토록 가슴 아파했던 두 아이의 무덤을 옆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정승 아들을 옆에 거두지도 못하고, 남편과 함께 묻히지도 못한 채 자욱한 아침 안개 속에 앉아 있습니다.

   열락(悅樂)은 그 기쁨을 타버린 재로 남기고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준다던 당신의 약속을 당신은 이곳 지월리에서 지켜야 합니다.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돌베개 1996)

 

 

  송하곡적갑산 (送荷谷謫甲山)

 

 

  멀리 갑산으로 귀양가는 나그네

  함경도길 가시느라 발걸음도 마음도 바빠보이네

  쫓겨나는 신하는 가태부 같지만

  임금이야 어찌 초나라 회왕이리오

  강물은 가을언덕으로 잔잔히 흐르고

  변방의 구름은 석양에 물드는데

  서릿바람 불어 기러기떼 날아가지만

  중간이 끊어져 형렬을 못이루네

 

  遠謫甲山客, 咸原行色忙.

  臣同賈太傅, 主豈楚懷王.

  河水平秋岸, 關雲欲夕陽.

  霜風吹雁去, 中斷不成行.

 

  * 이 시는 허난설헌의 시로, 그의 둘째 오빠 허봉이 갑산으로 유배당할 때 오빠를 떠나보내며 열네 살의 나이에 썼다. 허난설헌은 이 시에서 오빠 허봉을 중국 전한 시대의 가태부가 억울하게 장사(長沙)로 귀양갔던 고사와 비교한다. 또한 중국 전국시대의 회왕이 바른 말 잘하는 삼려대부 굴원을 미워했던 사실을 상기하며, 우리 임금이야 어찌 초나라 회왕과 같겠냐고 은근하게 물러서지만 이 시의 행간 안에는 이미 두 임금을 비교했다고 보아야 한다.


  자식을 곡하며 (哭子)


  지난해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었네

  슬프디 슬픈 광릉 땅

  두 무덤 나란히 마주하고 있구나

  백양나무에 쓸쓸히 바람 일고

  소나무 숲엔 도깨비불 반짝이는데

  지전을 태워서 너희 혼을 부르고

  네 무덤에 맑은 술을 올린다

  그래 안다 너희 남매의 혼이

  밤마다 서로 따르며 함께 놀고 있음을

  비록 뱃속에 아이 있다지만

  어찌 제대로 자랄지 알겠는가

  하염없이 슬픔의 노래 부르며

  피눈물 나는 슬픈 울음 삼키고 있네


  去年喪愛女, 今年喪愛子.

  哀哀廣陵土, 雙墳相對起.

  蕭蕭白楊風, 鬼火明松楸.

  紙錢招女魂, 玄酒尊汝丘.

  應知弟兄魂, 夜夜相追遊.

  縱有服中孩, 安可冀長成.

  浪吟黃臺詞, 血泣悲呑聲.


  * 허난설헌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내보였다. 그러나 열 다섯에 시집을 간 후 세 자식을 잃고 가정적으로는 불행했다. 천여 수의 시를 지었으나 대부분 유언에 따라 불태워졌는데 동생인 허균이 스스로 암송하고 있던 시와 외가에 남아있던 누이의 시를 묶어 허난설헌집을 엮었다. 마침 명나라 사신으로 온 오명제를 맞이할 사람으로 선조가 허균을 보냈는데 중국의 문장가인 오명제가 조선의 시선을 부탁하자 허균이 우리나라의 시들을 뽑아서 엮었고 누이의 시를 모은 허난설헌집도 주었다. 이것이 중국에 전해져 허난설헌은 조선 최고의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심지어는 중국의 시선 이백에 견줄만하다는 평까지 듣는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더욱 강고해진 유교 가부장제에 치여 홀대받았다.

 

 

  견흥 5 (遣興 五)


  근래에 최경창이나 백광훈 같은 이들은

  성당의 법을 삼아 시를 익혔네

  적막하기만 했던 시의 올바른 소리가

  이들을 만나서야 쩡쩡 울렸네

  낮은 벼슬 광록에 곤궁하고

  변두리 촌 벼슬살이에 화근을 사

  나이도 지위도 함께 시들어가니

  이제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함을 믿는다


  近者崔白輩, 攻詩軌盛唐.

  寥寥大雅音, 得此復鏗鏘.

  下僚困光祿, 邊郡愁積薪.

  年位共零落, 始信詩窮人.

 

  * 최경창이나 백광훈 같은 시인은 시로서는 으뜸이지만 사는 모습은 궁벽하다고 읊었다. 시골의 낮은 벼슬살이에 시들어가는 시인의 모습, 그러나 그들의 시만은 누가 보아도 쟁쟁하니 훌륭한 문학은 지난한 삶을 양분으로 삼아 꽃을 피우는 것일까?



  * 허난설헌 (許蘭雪軒, 1563~1589)

조선 중기 시인.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허균의 누이이다.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을 짓는 등 신동으로 일컬어졌다. 이달에게 시를 배웠고, 15세 무렵 김성립과 결혼하여 27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쳤다. 동생 허균이 명(明)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준 <난설헌집>은 중국에서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1711년 분다이야 지로에 의해 간행되어 애송되었다.

                       * 시, 해설; '허난설헌 평전' (박혜숙 지음, 건국대학교 출판부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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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으로 보내는 편지

                                    박준

   오랫동안 기별이 없는 당신을 생각하면 낮고 좁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울음이 먼저 걸어나오더군요

   그러고는 바쁜 걸음으로 어느 네거리를 지나 한 시절 마른 저수지와 강을 건너 흙빛 선연한 남쪽 땅으로 가더군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땅 황토라 하면 알 굵은 육쪽마늘이며 편지지처럼 잎이 희고 넓은 겨울 배추를 자라게 하는 곳이지요 아리고 맵고 순하고 여린 것들을 불평 하나없이 안아주는 곳 말입니다

   해서 그쯤 가면 사람의 울음이나 사람의 서러움이나 사람의 분노나 사람의 슬픔 같은 것들을 계속 사람의 가슴에 묻어두기가 무안해졌던 것이었는데요

   땅 끝, 당신을 처음 만난 그곳으로 제가 자꾸 무엇들을 보내고 싶은 까닭입니다

         시집[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2012)]중에서

                                                                   

   면벽 24

                                                                              강세환

     -오래전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만났던 김태정 시인의 부음을 듣고

   미황사 아래 어디

   해남 송호리 어디

   무릎께만 한 땅거미도 슬금슬금 기어들던

   푸성귀 널어논 마당을 지나

   어느 독거노인 집 건넌방에 겨우 세 들어 살던

   깍지 낀 손을 풀었다 쥐던

   흙바람 벽면에 툭 던져놓은

   창 넓은 흰색 민모자 하나

   낡고 허름한 추리닝 한 벌

   텅 빈 액자 자국 하나

   벽면에 홀로 남겨놓고

   꼭 그렇게 떠나려고 했으리라

   친구도 혈육도 세간살이도 통장 잔고도 집 한 칸도

   어떤 소식도 없이

   (······)

   그녀는 그렇듯 떠났으리라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그녀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을 돌아보고

   느릿하게 또 돌아보며

   시집 [앞마당에 그가 머물다 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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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시선 237
김태정 지음 / 창비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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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산

                                         김태정

   삼십칠년이란 세월을 내 이름 속에서 헤매었듯 봄산에서 한때, 길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진달래 향기에 깊이 취했던 것도 아닌데 등산객들의 발자국 어지러운 샛길, 길이 너무 많아 차라리 길을 놓아버리고 싶었던 걸까요 길 안팎에서 한나절을 헤매었습니다 바람 속 무성한 시누대 숲은 좀처럼 길을 열어주지 않고 해묵은 낙엽들은 밑에서 아프게 바스라지는데

   손바닥에 잔금이 이리도 많은 걸 보니 너도 잔근심이 많겠구나, 겨울 실가지처럼 무수한 손금에서 삶의 비밀을 뒤적이듯 봄산 난마처럼 얽혀 있는 샛길에서 길을 찾듯 삼십칠년이란 세월을 내 이름 속에서 헤매었습니다 곧을 태 곧을 정, 까짓거 대나무처럼만 살면 될 거 아닌가 뜻도 모르는 채 내 이름 석자에 온 생을 맡겼습니다 곧고 곧아라 삶도 사랑도, 내 이름대로만 살면 될 거 아닌가 겁도 없이

   봄도 아직 이른 봄이라 살갗을 파고드는 바람에 진달래 낯빛 핏기 없이 질려 있는데 시누대는 제 울음만큼 한매듭씩 자라나는데 내 몸이 내 이름을 감당하지 못하여 나는 자주 휘청거리곤 했지요 대나무붙이들아 늬들도 과분하게 주어진 이름들이 부끄러워 자꾸만 고개를 숙이는거니?

손바닥의 잔금만큼 사소한 근심들이 거미줄 치던 세월, 시누대 그 고통의 생장점이 스스로 바람을 불러일으키듯 슬픔이 나를 팽창시켰고 나는 어느덧 손금 위에서 서성이지 않아도 좋을 나이

   삼십칠년이란 세월을 내 이름 속에서 헤매듯 봄산에서 한때, 길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길을 찾아헤매는 내 발자국이 길 위에 길을 보태었다는 걸, 산을 내려온 뒤에야 알았습니다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중에서

 

 

 

 

 

 

   봄 산에서 길을 잃지는 않았지만 며칠 헤매고 다녔습니다.

   난마처럼 얽혀있는 샛길은 모른 척 반듯한 등산로만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하냥 걷고 걸었습니다. 삼십칠 년 더하기 이십 년을 여전히 이름 속에서 헤매는 발걸음이 아득해서 걷고 또 걸었습니다.

맑은 산, 언제쯤 이름에 값하는 생애를 살게 될까요. 곧고 곧게 삶을 사랑하고 살다간 김태정 시인의 생애를 생각하다가 괜한 나무 부리에 발길이 채이기도 했고 몇 해전 산불에 그대로 멈춰버린 생애를 지키는 나무들의 검은 팔이 연둣빛 몽실몽실한 숲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나무들의 경고 무시하고 다시 며칠 전 산불로 검은 흉터로 변해버린 능선은 섬뜩했습니다. 연두의 행렬 중에 나타난 검은색은 낯설었습니다. 아직도 불내 가득합니다. 잔불이 남아있나 살피는 분주한 장화들에 죄송했습니다. 숲 하나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숲에 물푸레나무도 있었을 테지요. 더욱 아득해져 봄 산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사람이 지나는 길은 왜 점점 황폐해지는지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할까요? 이래저래 봄 산은 아름답고도 처절합니다. 진달래는 시나브로 지고 있고 여린 분홍 색감의 철쭉들이 화마와 무관하게 몽오리몽오리 수줍게 몸을 틔우고 있습니다.

   시속의 화자보다 20년을 더 살아온 생애와 이름에 얽힌 생애의 길이 길 위에 길을 보태는 걸음걸음에 얹어졌습니다. 하루 만에 아기 연두는 소년이 되어버렸더니 며칠이 지나자 숲은 제 그림자를 끌고 사람이 범접하기 어려운 자태로 늠름합니다. 나는 아직도 잔 손금 위에서 서성서성 길을 잃고 마는데 말이지요. 봄 산은 벌써 신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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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손바닥 위의 숲

                             김태정

   꽃이삭을 늘어뜨린 상수리

   열푸름한 꽃을 피운 회잎나무

   흰꽃 잔조롬한 덜꿩나무

   연보랏빛 물이 빠진 현호색

   그 옆의 작은 개별꽃 노란 금붓꽃

   부질없는 세간의 말로나마

   이 숲의 삶들을 손바닥에 받아적고 나니

   손바닥은 또 하나의 숲을 이루었습니다

   뒷모습을 불러 세우는 듯한 휘이, 휘요호

   새초롬하니 토라진 삐친삐친삐친

   어눌한 날 놀리는 쥬비디쥬비디쥬비디

   오래된 흉터를 쪼아대는 쑤잇쑤잇쑤잇

   넋과 바람을 부르는 휘휘휘요 휘용휘용휘용

   그리고, 산밑 길을 돌아 내게로 오는

   물소리 바람소리

   이 숲이 부르는 진혼가를

   손바닥에 받아적고 나니

   당신께 보낼 말이 달리 없습니다

   쉰 목청으로 우는 산꿩의 간절함과

   불러도 불러도 허공으로나 되돌아오는

   수취인불명의 메아리와

   바위에 돋을새김으로 남긴 물의 발자국과······

   그 모든 간절함과 추억을 받아적고 나니

   당신께 보낼 전언이 달리 없어

   흐르는 물에 가만히 저들을 띄워보냅니다

   흙으로 누워 상수리가 되고

   현호색 금붓꽃 박새 후투티가 되고

   물소리 바람소리가 되어

   내 손바닥 위 숲으로 돌아오는 당신

   빗돌 아래 제비꽃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향기로

   당신께 타전하는데

   오늘밤 달은 없고

   이름만 덩두렷한 망월에서

   솟 솟쩍, 쓴 울음 삼키는 소리까지 적고나니

   당신께 보낼 것은 단지 슬픔밖에 없어

   차라리 입을 다물고 맙니다.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중에서

 

   시는 문사철과 마찬가지로 언어를 사용하지만 시어는 그 언어의 개념적 의미를 뛰어넘는다.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처럼 일종의 메타언어(meta language)다. 예를 들어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말하는 '연탄재'는 자기를 아낌없이 불태운 사람의 초상이다.[담론,26]  김영하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2013)을 보면 시인에 관한 설명이 있다. "시인은 숙련된 킬러처럼 언어를 포착하고 그것을 끝내 살해하는 존재입니다."(8쪽) 시인은 언어를 통해 언어를 넘어서야 한다. 언어의 지시적 의미, 일반적 의미를 '살해'하지 못한다면 시인이라 할 수 없다. 【신영복 평전, p268】

   쇠귀는 "사실성과 사회미에 충실하되 사실 자체에 갇히지 않는 것"[담론,32]을 시적 관점이라고 본다. 그래서 시는 언어의 한계, 문학 서사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다. 현실에서 우리가 보고 느끼고 글로 쓰는 것은 시공과 감각의 한계 속에서 건져 낸 사실의 조각들(facts)에 불과하다. '진실'은 건져 낸 사실이나 언어 너머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사실을 진실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너머를 볼 수 있는 고리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시는 문학 서사 양식을 뛰어넘는 인식틀이다. 복잡한 것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때, 다시 말하면 시적인 틀에 담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안다고 할 수 있다. 맹자는 그것을 설약(說約)이라고 했다. 시는 설약의 전형이다.[담론,57~58] 사물과 세상에 대한 유연한 시적 사유는 우리의 인식 세계를 다른 차원으로 확장할 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쇠귀의 생각이다. 물론 전제가 있다. 시는 시를 만드는 사람 스스로도 감동할 수 있는 진정성의 공감이 있어야 한다. [담론,32]    【신영복 평전,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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