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안인희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2009)

 

인간은 우리의 첫 번째 조건이다. 인간이 우리의 척도를 결정한다. 

…….

자기 역사와의 만남을 거부하거나 독자적인 것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민족, 그런 나라는 이미 끝장난 것이고 박물관에나 들어가야 한다.

아프리카 남자와 여자는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벌써 끝장나지는 않는다. 그들이

말하게 해보라. 무엇보다도 그들이 행동하게 해보라. 효모가 작용하는 것처럼,

그들이 자신들의 메시지를 갖고서 우주의 문명을 만드는 것에 동참하게 해보라.

세네갈이 독립하기 1년 전인 1959년에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이 된 시인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 (1906~2001)

 

  이 책을 추천한 이가 한비야 선생이었을까. 월드비전 난민캠프 지도자 생활을 진행하면서 했던 지식인의 서재로. 탁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정말 아프리카를 알고 있었을까? 적어도 나는 아프리카를 몰랐다. 알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우리와는 너무나 먼 대륙은 그저 단편적인 지식과 언론에 기대어 아는 정보들. 아마존 밀림이나 케냐의 동물보호구역, 헤밍웨이와 칼리만자로, 체의 평전으로 알게 된 각각의 나라이름들, 내전과 가뭄에 의한 오랜 굶주림, 소년병들의 참혹함정도.

  좋아하는 배우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온 아름다운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낭만과 배경으로서의 아프리카, 아저씨 필이 나기 시작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온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시에라리온의 소년병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르완다 내전을 다룬 ‘호텔 르완다’를 통해 만난 것들, 넬슨 만델라로 대표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웃이 낸 책 ‘블랙 러브’로, 일 때문에 일 년의 반을 거기서 지내는 민희를 제주 올레에서 만난 이후로 더욱 친근한 나라가 되었지만 그 정도가 내가 아는 아프리카였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여전히 전체 역사를 알지는 못해도 나처럼 무지한 사람에게도, 그곳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사는 대륙이란 것을, 그들이 가진 무한한 자원은 재앙이 되어버려 사람으로 살기는커녕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가는 것만도 어렵게 되어 버린 아프리카를 만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죽여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우린 오래 거기에 길들여져 왔다는 생각이 든다.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요즈음에 읽은 일련의 책들에서 더욱 골똘해지는 명제다. 자존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내가 속한 곳을 제대로 읽어낼 줄 아는 깊은 눈을 가져야 가능한 것이다. 태어난 곳을 선택할 수는 없으니 주어진 생을 묵묵히 견뎌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프리카를 수박 겉핥기로 지나가는 것 같지만 그들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진 작가의 마음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특히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나오는 매력적인 인물 부르키나파소의 초대 대통령 ‘토마 상카라’를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고 그의 죽음이 그때보다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한 사람의 뛰어난 지도자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다시 그들에게, 아프리카 대륙에 토마 상카라나 넬슨 만델라 같은 지도자가 나타나주었으면 좋겠다.

 

 

 

 

 

 

 

 

 

 

 

 

 

 

  이스마엘 베아(그도 이젠 벌써 34살이 되었나, 1980년에 태어났으니)가 쓴 ‘집으로 가는 길’을 읽었을 때의 충격이 떠오른다. 그때는 감정적으로 읽혔던 내용들이 구체화되어 현실로 읽힌다. 현재 진행형인 소년병들, 우리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이야기 한다. 한 순간의 아픈 기억들도 일생동안 따라다니는 트라우마가 되는 것인데 그들의 상처는 가히 짐작조차 못하겠다.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의 한심한 국가는 그 상처에 굵은 소금이나 뿌리고 있으니. 그것도 국산 천일염도 아니고 값싼 수입 소금으로 말이지. 어찌됐든 유병언은 죽었고, 아무런 권한도 없어 보이는 유대균은 잡혔는데 실권자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과연 유병언의 사체가 맞다 믿는 사람은 유능한 정부의 유능한 관리들 말고 또 누가 있을까? 또한 장정일식으로 말하자면 이쯤에서 그 사고에 관련된 책이 수십 종은 쏟아져 나와야 했을 터인데 우리가 가진 문화의 자산도 참으로 빈약하긴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아, 옆길로 빠져서 신랄해지지 말자. 가만히 있으란 말이지.

 

 

  전 세계적으로 어른의 전쟁에서 희생되는 민간인 희생자 중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희생자가 약 절반에 이른다. 아프리카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어린이 병사의 문제가 여기 덧붙여진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가장 어릴 경우 일곱 살이나 여덟 살까지 포함되는 전 세계 30만 명의 어린이 병사 중 약 12만 명이 아프리카에서 싸우고 있다. 어린이 병사 문제로 국제적으로 가장 심힌 비난을 받는 다섯 나라 중 네 나라가 아프리카에 있다.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콩고 민주 공화국, 부룬디 등이다. (2003년 통계)

  어린이들이 언제나 싸우도록 강요를 받는 것만은 아니다. 부모가 죽거나 실종된 다음, 아니면 자기들 눈에는 강하게 보이는 사회에서 더 나은 미래를 얻으려고 군대에 자원하는 어린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 ‘람보 키즈’ 상당수는 기습 공격에서 특히 더 잔인하게 행동한다. AK 47 기관총을 겨우 들 수 있는 정도의 아이들이 기술적으로 무기를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개인적인 감정이나 어린 영혼에 대한 동경이 맨 먼저 파괴된다. 전쟁에서 살아남아 회복 프로그램 과정을 거치는 어린이들에게 장래 가장 큰 소망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이 소박한 답변을 한다. “직장, 일자리, 먹을 것……. (p260)

  이제 좀 아프리카 역사인식에 가닥이 잡힌다.

  어느 역사에서든 특히 핍박받는 모든 역사에서 한 사람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파리 목숨 같은 것인지, 대의를 위해 소의는 어떻게 유린 되는지……, 쓰라리게도 인정해야만 하는 삶의 엄정함이다.

  남아프리카의 에이즈 환자 정치 조직체 ‘치료 활동 캠페인(TAC)의 공동 설립자인 자키 아크마트(1962~)는 2002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에이즈총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가난하기 때문에, 우리가 검기 때문에, 우리가 여러분에게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생명의 가치가 더 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p269)

  여전히 어느 곳인가 내전 중인 불행한 대륙, 불행한 아이들, 에이즈로 위태롭게 지나가는 목숨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징후는 곳곳에서 보인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길을 가고 있다. 책을 덮고 나니 그 희망에 기운이 난다.

  아프리카는 유럽의 문명보다 훨씬 더 먼저 존재했던 자기들의 문명의 기원을 자신감을 가지고 바라볼 이유가 충분하다. 유럽은 인류의 문화 발전이 이집트 이후 그리스와 로마 사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된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늘날 이쪽 아니면 저쪽이 더 낫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오랫동안 유보되었던 진실을 위해서다. 가능한 한 과거를 완전히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대화에도 좋은 일이다. (p58)

 

  유럽 사람들은 자주 가장 부패한 아프리카 정치가들이 권좌에 오르도록 도움을 주었다. 겉으로는 ‘독립’이라는 깃발을 내걸었지만, 유럽 열강이나 그사이 끼어든 미국과 소련이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꼭두각시 정권을 만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 다음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할’ 능력이 얼마나 적은지 실컷 조롱하였다. 이런 신제국주의 놀음을 꿰뚫어보고, 제국주의에서 공식적으로 해방된 이·후 외부에서 들어오는 경제적·정치적 영향에 항거한 사람들은 여러 번이나 체계적으로 억압을 당했고, 그것이 먹히지 않으면 자주 냉혹하게 살해되었다.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를 짓밟기 시작한 것은 500년도 더 전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서부 아프리카에 도착하면서 부터였다. (p106)

 

  위대한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좋다. 여기서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저기서도 작동할 것이다. 아마도 당신이 귀를 기울이고 함께 생각할 경우에 말이다.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작은 문제를 위한 해결책을 찾는다면, 그래야만 당신은 강해지고 더 큰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 그 반대는 아니다.

  다시 안개가 덮이면 인내심을 보일 것. 당신 자신에 대해서(가장 어려운 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시 안개가 걷히면 그리고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누가 또는 무엇이 거기에 책임이 있는지를 단신이 이해하게 된다면.

  생각은 독립적일 수 있다. 다르게 되기가 어렵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서로에게서 독립적이고, 또 독립적으로 남는다. 전보다 더욱 많이.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그리고 온 세계에서.  (p174)

  나는 사람들이 에이즈가 무슨 뜻인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보살펴주고 존중해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병을 가지고 있어도, 그 사람을 건드리고 끌어안고 키스하고 손을 붙잡아주어도 에이즈가 옮지는 않아요.

  우리를 보살펴주고 받아들여주세요. 우리는 모두 인간입니다.

  우리는 아주 정상이에요. 우리는 두 손이 다 있고 두 발도 다 있습니다.

  우리는 걷고 말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똑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를 두려워하지 말아요. 우리도 똑같아요!

                                         2000년 7월 남아프리카 더반 에이즈 총회에서 은코시 존슨(1989~2001) (p273)

 

  지난 500년 동안 아프리카 민족들은 인류 역사에서 유일하다고 할 만한 여러 가지 굴욕을 겪었다. 노예 제도와 식민 지배는 파괴적인 흔적을 남겼다. 신(新)식민주의는 아직도 가장 고약한 황폐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증조할머니처럼 느낀다. 대개는 우리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힘들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대화를 시작하는 대신, 우리에게도 중요한 가치를 함부로 옆으로 밀쳐낸다. 그래서 마치 할머니처럼 이따금 우리 입술에 미소가 얼어붙는다. 하지만 그것은 동경에 가득 차서 우리 가슴 속에 계속 살아남는다.

  루츠 판 다이크는 나와 같은 세대에 속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대륙에서 태어났다. 아주 뒷날 우리는 여행을 하고 두 세계를 체험할 특권을 가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가 우리 대륙의 역사를 쓸 권리를 가진단 말인가? 그의 책을 오래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루츠 판 다이크는 아프리카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경청하기 때문에 그 권리를 스스로 얻었다고. 그는 이런 일을 정열적으로 행하여 독자들에게 아프리카나 유럽, 혹은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상관없이 똑같은 것을 한번 시도해보라고 격려해준다. 처음에 가장 낯설게 들리는 목소리라도 조심스럽게 귀 기울여 들으려는 노력을 더 해보라고 말이다.

  내 소원은 아프리카의 역사가 이 책에 씌이는 것처럼 씌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어려움과 기대가 현실적으로 서술되고 또한 우리의 강점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관한 많은 책들이 이렇게 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삶을 어떤 식으로도 낭만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고, 또한 아프리카 정부들을 비판 없이는 서술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루츠 판 다이크가 아프리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유리하다. 아무도 그의 책이 아프리카의 부족함을 사과하려 하는 아프리카 사람의 시도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그를 비난 할 수는 없다.

  우리의 역사는 많은 고통과 슬픔을 지녔다. 그런데도 우리가 언제나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 삶의 기쁨으로 가득 넘쳐서 서로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다른 어떤 역사책에서도 찾아내지 못한, 어떤 내적인 강인함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아프리카 사람이 아닌 사람들에게 어딘지 이해할 수 없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진기한 특성으로 서술되지 않고 아주 깊이 인간적인 어떤 것, 우리가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내가 다른 사람 몰래 증조할머니에게로 가져갔던 한 줌의 소금처럼 말이다. (p297~298)

 

  마지막으로 인용한 글은 가나의 여성 작가 암마 다르코가 쓴 글이다. 그 어떤 미사여구의 감상평보다 담담하게 담기는 내용이어서 전문을 인용하고 싶었는데 너무 길다. 이제 머나먼 대륙이 조금 가깝게 느껴진다.

 아프리카, 아 아프리카.

 선함이 있기를. 부디 찬란함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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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와 예술로 보는 이탈리아 기행

-다나카 치세코 지음, 정선이 옮김.

예담2002

  이 책은 막내한테서 욕심 부리고 가져온 지 오래되었으나(그런 책이 몇 권 있다.) 이제야 읽게 되었다.( 같은 이유로 안 읽은 책들) 아마도 오래 공들여서 직접 고르고 선물 받은 책이 아니면 그런 경향이 있다. 대체로 그러하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현재의 이탈리아가 궁금해서 펼쳐들었다. 그 시절에 흥했던 로마와 밀라노에는 로마의 멸망 후 정세에 비추어 많은 유적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안 가봤지만 15권까지 읽고 나니 역시 그런 것 같다. 이탈리아 주요도시이자 관광도시이고 영화를 찍었던 도시를 중심으로 여행을 펴나가는 작가는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 시칠리아, 밀라노, 로마의 순으로 엮어 나갔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기 전에는 이탈리아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 가득하다. 피렌체의 피사의 사탑, 두오모 성당.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곤돌라. 세계 3대 미항 나폴리. 세계 패션의 중심도시 밀라노, 그리고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 고트족과 반달족의 침입과 약탈 파괴로 고대 로마의 완전한 모습은 잃었을 테지만 지금도 기능을 하고 있다는 로마가도와 분수들과 어우러진 현대의 로마를 만날 듯 만날 듯하다.

  영화 평론가인 저자가 사랑한 이탈리아가 이탈리아의 영화 장면들과 배경으로 설명해주는 독특한 기행을 영화 속으로 몰입해가는 재미가 있다.

  피렌체. 그곳사람들의 자부심은 로마를 능가하고 유럽의 중심, 르네상스의 시작이라는 자긍심이 가득한 곳,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키아밸리, 단테, 이름만으로도 압도하는 예술가를 가진 곳. 그곳에서 촬영한 ‘전망 좋은 방’의 장면들이 눈에 선하다.

 

  피렌체의 두오모(대성당)는 전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화려한 곳이다. 흰색과 녹색과 붉은색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이곳은 복원을 위해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음울하게 가려져있어 실로 유감이었는데, 1998년부터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두오모의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꽃의 성모’라는, 피렌체에 썩 잘 어울리는 이름으로 모직물과 상인의 아르테가 주축이 되어, 1296년에 착공하여 완성 된 것은 1421년이다. 높이가 112미터로 피렌체의 어디에서도 이 두오모의 둥근 지붕은 잘 보인다.

  <전망 좋은 방>에서 루시가 시뇨리아 광장의 소동에 놀라 기절할 무렵, 사촌언니 샤롯은 소설가인 친구와 거리를 산책하다가 길을 잃는다. “여기가 어디지? 여행 안내서에도 없잖아”라며 그녀들은 화를 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살짝 들여다보면 반드시 두오모의 쿠폴라가 보이므로 대충 그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피렌체의 거리는 좁고 구불구불 굽은 곳이 많아서 직선 코스로 곧바로 두오모까지 갈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도달할 수 있으므로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여름의 피렌체는 언제나 뜨겁다. 흔히들 유럽의 여름 기후는 건조해서 낮에는 섭씨 30도가 넘어도 아침저녁은 시원하고, 그늘로 들어가면 견딜 만하다.

  피렌체도 공기가 너무 건조해서 한참 걷다보면 몸에서 수분이 점차 빠져 나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도 그늘에서는 기분이 상쾌하다. 피렌체는 길이 좁고 건물들이 높아서 낮에도 반드시 그늘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양산이나 모자가 거의 필요 없다.

일 년 내내 여행자들로 북적이는 피렌체는 10여 년 전부터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있다. 거리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두오모 주변은 거의 그들이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타리는 있지만 교회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정문 앞 계단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피렌체의 두오모 광장은 좁은데다가 바로 앞으로 자동차들이 지나다녀서 밀라노의 두오모 광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곳에 앉아 있으면 눈을 뜬 채로 명상을 할 수 있다. 그것도 여행자의 감상과는 거리가 먼 영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다. 아마도 피렌체라는 거리의 성격 때문이 아닌가 싶다. 미켈란젤로와 다 빈치가 활약하던 그 거리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들의 감성과 지성이 저절로 흥분하기 때문이 아닐까.

  루시가 만난 영국인 청년 조지도 이 피렌체에서 식사 도중에, 혹은 초원의 바람 속에서 커다란 물음표를 그리며 인생과 우주에 대해 사색하고 명상한 것은 아닐까.  (P34~40)

   이 책을 통해 생겨난 유럽을 향한 애정과 호기심은 가지고 있는 유럽 책을 전부 뒤적거리게 했는데 그중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은 제목 그대로 발칙하고 유쾌했고 특히 여행자가 가지고 있는 막연한 동경과 환상을 보기 좋게 박살내버렸다. 특히 피렌체와 밀라노, 나폴리에서 그가 경험하거나 본 것은 ‘다나카 치세코’보다 훨씬 오래 전이었음에도 사실적이고 집요하고 냉철하다. 아마도 그의 글쓰기 역량에 기인 한 것일 테지만. ‘나를 부르는 숲’을 읽고 그에게 빠져서, 그가 쓴 이 책과 한 페이지도 열어보지 목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구입했다는 생각이 난다.

  아, 또한 그 때문에 애팔레치아 트레일에 혹해서 부담스럽게 두꺼운 ‘와일드’를 읽은 생각도 난다. 내게는 그녀의 용기가 대단하기는 했지만 감탄할 정도로 매혹적이지는 않았다. 사진 한 장 없는 여행기라서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두껍고 세 권이나 됐던 ‘나는 걷는다’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미국인의 시선이었고 과장 광고 탓이 아닐까 싶지만 그녀가 신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투박하고 낡아빠진 워커 한 짝의(한 짝은 트레일 중에 잃어버렸을 것이다.) 표지디자인은 마음에 들었다. 425km 제주올레도 매력인데 4,285km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은 극한의 도전을 꿈꾸는 이들에겐 유혹이겠다. 나도 입맛을 다시는 부류에 속한다. 각설하고.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빌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21세기북스(2008)

 

  나는 피렌체를 좋아해 보려고 노력하면서 4일이나 피렌체 근방을 배회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보볼리 정원에서 바라보는 저 유명한 지붕 풍경은 화려하고 매혹적이다. 나는 아르노 강변을 산책하는 것도 좋았지만 실망스럽기도 했다. 관광객들 무리는 눈감아준다 해도, 나는 피렌체가 이 도시만큼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나 같은 여행객의 지출에 크게 의존하는 다른 도시들보다 더 싸구려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온 천지가 쓰레기투성이였고, 구걸하는 집시들이 끈덕지게 달라붙었으며, 세네갈 노점상들이 선글라스며 루이비통 가방 따위를 팔면서 보도를 점령하고 있었다. 자동차들은 좁은 보도 위 절반이나 차지하고 주차되어 있어 보행자는 자동차를 피하느라 차도로 내려설 수밖에 없다. 피렌체에서는 걸어 다니는 시간보다 장애물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시간이 더 많다. 모든 것이 먼지가 수북하고 물청소가 필요한 듯 보였다. 트라토리아(서민적인 레스토랑)는 손님들로 북적대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며 불친절했다. 도심으로 갈수록 더욱 그랬다. 아무도 자기 도시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부유한 사람들조차 전혀 거리낌 없이 쓰레기를 마구 버렸다. 두오모 주변 건물들은 내가 그리로 지나갈 때마다 점점 더 먼지가 쌓이고 더 낡아 보였다.

  왜 사람들이 제일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들일수록 그곳을 쾌적하게 가꾸는데 제일 게으른지 모르겠다. 쓰레기를 치우고 도시에 벤치를 마련하며, 집시들이 집요한 구걸을 자제하도록 하면서 도시를 더 밝게 만드는 일이 피렌체 주민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이곳 사람들은 대체 왜 보지 못하는 걸까? 피렌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곳으로 유네스코 보고서에 따르면 문화유산과 같은 볼거리가 스페인 전체보다 더 많은 도시다. 궁전만 21곳, 유서 깊은 교회가 55곳, 미술관이 8개에 박물관이 20개나 된다. 그러나 피렌체 시의 연간 복구 예산은 500만 파운드가 채 안 된다. 고고학 박물관만 해도 1966년 대홍수 이후 청소를 기다리는 작품이 1만점이나 된다. 피렌체의 상당 부분이 별로 사랑받지 못하는 듯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문화재에 대한 방치가 없다 해도 무능과 부패가 여지없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곤 한다. 벌써 오래전에 내려졌어야 할 시뇨리아 광장 복구 결정이 1986년에야 확정되었다. 이 결정 후, 청소를 위해 고대부터 사용되어 온 자갈돌을 파서 이송을 했는데, 청소 후 자갈돌들이 돌아왔을 때 이 돌들은 새것처럼 보였다. 새 것 같은 게 아니라 정말 ‘새 자갈’이었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내려온 원래의 자갈들은, 들리는 바에 의하면 막대한 금액에 팔려 지금은 부자들의 저택 진입로에 깔려 있다고 한다.   (p257~259)

 

  같은 피렌체일까 싶어진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닌 두 저자의 다른 시선에도 불구하고 피렌체라는 도시에 대한 사랑이 전해온다. 먼 나라, 남의 일만이 아닌 것 같아서 이 부분을 읽는데 입이 썼다. 이 도시, 수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화재 관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화성(華城)의 아름다운 동북공심돈은(일명 소라각) 내가 본 기억으로 이년 사이에 세 번째로 연두색 비닐 장막에 가려졌다. 두 번째의 공사가 끝난 얼마 후 찾아갔더니 부식된 벽돌들이 푸슬푸슬 떨어져 내렸다. 문화유산을 관리하고 있는 건지, 유지비용을 관리하고 있는 건지 우매한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계속 논란이 되는 광화문 현판이 그렇고 숭례문이 그렇고, 우리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문화와 예술로 보는 이탈리아 기행’ 은 그 제목과 목적에 걸맞게 사진도 내용도 충실하고 완성도가 깊다. 그렇게 피렌체에서 시작해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조금 무거운 듯 아름다운 감상들로 한결 같다. 거기에 덧붙여 고전적인 영화의 제목들과 감독과 배우의 이름들과 어우러진 촬영지 소개는 그쪽 매니아라면 페이지마다 포스트잇을 붙여놓게 만들었을 것이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또한 한결 같은 자세로 그가 본 유럽 전역을 느낄 수 있었다. 냉소적인 독설에도 불구하고 산책자이자 여행가인 그가 가진 유럽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이 깊게 얽혀 있었다. 개인적으로 중유럽에 호기심이 많은데 그 덕분에 증폭된 느낌이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나라면 알래스카를 택하지 않았을까.) 유럽의 최북단 함메르페스트를 향한 여정의 시작에서 아시아와 경계도시 이스탄불에 이르는 여정은 청춘 시절, 친구와 동행했을 때와 혼자인 지금으로 얽혀서 쓰고 있다.

 

  가끔은 어떤 나라에서 처음 유래한 사물이 매우 독창적이고 기발해서 그 물건 하면 반드시 그 나라가 연상 되는 것들이 있다. 영국의 2층 버스나 네델란드의 풍차(평평한 땅에 얼마나 훌륭한 착상인가. 네델란드 인들을 네브라스카에 데려다 놓으면 이 황량한 주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자못 궁금하다) 파리의 노천카페가 그렇다. 반면에 다른 국가들이 대부분 아주 쉽게 하는 일인데도 어떤 나라 사람들은 아예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

  가령 프랑스 사람들은 줄서기의 의의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되나 보다. 파리에 가면 버스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지만, 버스가 도착하기만 하면 이 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정류장은 비인도적인 수용소에 화재경보라도 울린 듯이 아수라장이 된다. 모두들 버스를 먼저 타려고 쟁탈전을 벌인다. 그럴 거면 애초에 줄은 왜 서느냔 말이다.

  영국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 기본적인 점 몇 가지를 도통 이해하지 못한다. 햄버거를 굳이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해서 먹으려 하는 점만 봐도 그렇다. 어떤 이들은 포크를 뒤집어서 포크 뒷면으로 음식을 가지런히 정돈하기도 하는데, 왜 그러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영국에 산 지 벌써 15년이 되었건만, 햄버거를 먹을 때 포크와 나이프를 가지고 씨름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낯선 그들에게 다가가 조언해 주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한다.

  “저기요, 두 손으로 쥐고 먹으면 지금처럼 완두콩이 사방에 줄줄 떨어지지 않거든요?”

  독일인들은 유머라면 아주 당혹스러워하며, 스위스 인들은 즐길 줄을 모르고, 스페인 사람들은 자정에 저녁을 먹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심성이라곤 전혀 없는 이탈리아 인들은 자동차 발명에 절대로 참여하지 말았어야 한다.

  첫 유럽 여행에서 특히 경이로웠던 사실은, 세상이 이토록 다양하며, 먹고 마시거나 영화표를 사는 일처럼 간단한 일을 하는데도 수많은 방법이 있다는 점이었다. 유럽 인들은 하나 같이 너무나 비슷하다. 모두 책을 좋아하고 지적이며, 소형차를 몰고, 오래된 마을의 작은 집에서 살며, 축구를 좋아하고, 상대적으로 덜 물질주의적이며, 법을 준수하고, 호텔방은 춥게 하면서 음식점이나 술집은 따뜻하고 편안하게 만들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동시에 예상치 못한 측면에서 서로 너무나 다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나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p52~53)

 

  시작부분부터 이 발칙한 글쟁이의 훈훈한 시선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그때로부터 멀리 지나왔고 유로화가 진행되어 그가 만난 유럽을 우리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제야 읽기도 했고 육로로 국경을 지나는 일은 우리에겐 여전히 설레고 독특한 경험이 될 것이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

  바야흐로 휴가철이 시작됐다.

  훌쩍 떠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꼭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이렇게 책 속을 배회하는 일도 낯선 도시의 골목을 헤매는 시간보다 덜 하지는 않다.

  세월호의 100일이 지나가는 오늘, 진도 바다의 열 명의 영혼도, 그 가족들도, 세월호와 함께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단한 여행을 하루빨리 접고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밥상에 둘러 앉아 여행지의 에피소드를 풀어 놓고, 고실 고실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랜만에 근심 없이 단잠에 빠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분명 여행의 끝에 와 있었다. 저 반대편이 아시아가 아닌가. 유럽에서 가장 멀리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였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고생만 하고 있는 내 아내는 한 해 걸러 아기를 가졌는데 지금도 임신 중이었다. 아내는 전화 통화에서 아이들 중 어린 두 녀석은 성인 남자만 보면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잔디는 허리까지 자랐고, 목장 울타리는 일부가 쓰러져가고 있었으며, 양들은 물가의 풀밭에, 소들은 옥수수밭에 아무렇게나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나도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족이 보고 싶었고, 내 집의 친숙함이 그리웠다. 매일 먹고 자는 일을 걱정하는 것도 지겨웠고, 기차와 버스도, 낯선 사람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도, 끊임없이 당황하고 길을 잃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라는 사람과의 재미없는 동행이 지겨웠다. 요즘 버스나 기차에 갇혀서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대는 내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나 자신을 내팽개치고 도망가고픈 충동을 얼마나 많이 느꼈던가?

  동시에 나는 계속 여행을 하고 싶다는 비이성적인 충동을 강하게 느끼기도 했다. 여행에는 계속 나아가고 싶게 만드는, 멈추고 싶지 않게 하는 타성이 있다. 해협 바로 저편에 아시아가 있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저기가 아시아 대륙이라고 생각하자 경이로웠다. 몇 분이면 아시아 땅을 밟을 수 있다. 돈도 아직 남았다. 그리고 내가 가보지 못한 대륙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았다. 대신에 콜라를 한 잔 더 주문하고, 오가는 페리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아시아에 갔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행이란 어차피 집으로 향하는 길이니까.   (p385~386)

 

  나도 지금 마악 어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의 끝은 새로운 여행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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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7-26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일 동안의 유럽 여행'에서 막 돌아온 제가 읽기에 딱 맞는 아주 흥미진진한 글이네요. 정말 재미있게 흠뻑 빠져 이 글을 읽었습니다.

저는 13년 전에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가 봤는데, 영국에서 저녁때쯤 비행기를 타고 로마를 향해 날아가는 동안에도 계속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기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새벽 1시가 거의 다 될 무렵에 비행기가 서서히 땅 쪽으로 내려앉는다 싶었는데, 창 밖으로 '마침내' 불빛 찬란한 로마가 시야에 들어오더군요. 그 때 얼마나 감격했던지 거의 눈물을 흘릴 뻔했지요.

로마, 나폴리,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등지를 대략 5일 정도에 걸쳐서 둘러봤던 것 같은데(가족들과 함께 패키지 여행으로), 이탈리아의 모든 도시들이 그렇게 매혹적이고 좋을 수가 없더군요. 물론 빌 브라이슨이 '피렌체'에 대해 표현한 내용처럼 '이탈리아 특유의 문제점들' 때문에 세계적으로 훌륭한 유산이 가득한 유서깊은 도시들이 너무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는 느낌은 떨치기 어려웠지만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유럽 하면 '이탈리아'를 손꼽는 이유도 옛 로마제국의 위대함과 더불어 르네상스 시대의 빛나는 유산들과 이탈리아 특유의 온화하고 따뜻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저는 이번에 독일의 여러 도시들과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을 '자동차를 몰고' 두루 다녀봤지만, 독일 사람들의 '융통성은 다소 없지만 너무나 합리적인' 스타일이 정말 마음에 들더라구요. 어쩌면 이탈리아와는 정 반대편의 성향으로 볼 수도 있는 측면들 말입니다. '고도의 신뢰 사회'가 사람들의 생활을 얼마나 편리하고 걱정 없게 만드는가 싶은 생각이 절실하게 들더군요.

여행사진 한 장 없는 『나는 걷는다』시리즈는 저도 읽었답니다. 3년 전에 실크로드를 따라 사마르칸트를 다녀올 때 말이지요. 그 저자가 화가와 함께 다시 실크로드를 다녀오며 쓴 책『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 수채화판 실크로드 여행수첩』에는 저자가 오래도록 걸으며 마주친 풍경과 사람들을 그린 그림들이 수두록하게 담겨 있어서 읽기가 훨씬 낫더군요.

그 책 속에서 만났던 인상적인 구절 하나를 덧붙여 봅니다.

* * *

"도착하기만 바란다면, 역마차를 집어타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걸어가야 한다." 장 자크 루소가 그의 저작《에밀(Emile)》에서 한 말이다. 나도 '도착하기' 만을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어디에 도착한다는 말인가?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늘 얘기했던 것처럼, '가는 것' 그 자체다.

- 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수채화판 실크로드 여행수첩 中에서

2014-07-27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일 동안의 유럽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히 돌아오신 걸 축하드려요 오렌님~!
후기,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께요.
사진만으로는 많이 아쉬웠어요^^

아, 어쩐지 알 것 같은 그 벅찬 느낌.
친숙하기도 하고 부럽기도한 그 느낌이 얼마나 먼 것인지...... 문득 떠난지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
여행기를 즐겨읽지만 같은 곳을 보고 같은 느낌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초기에 극복했지요.
정보가 필요해서기도 하고 대리 만족이기도 하고.... ㅎ 제게 이즘의 여행서들은 거의 대리 만족이지요.
나는 걷는다를 끌고 다닐 때는 좋았어요.
갠적으로 실크로드에 관심이 많아서 더욱.
루소의 저 말은 에필로그에도 나오지요. 아마~
그런데 수채화판도 있었군요.
저는 아직 '쇠이유 문턱이라는 이름의 기적'도 못 읽었는데...... 읽어야할 목록이 자꾸 늘어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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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출장을 다녀왔어요^^

 
은유적 생
                  손세실리아

  광교산자락 무허가식당에서 일하는 산숙씨 버려진 땅 일궈 재배한 시금치 앉은걸음으로 반나절 넘게 캐 손수레에 싣고 가게로 돌아가던 중 왕벚꽃터널 혼자 보기 아깝다며 육성으로 중계해주는데요 어서 가 쉬라는 말 일축한 채 일당 받고 출장 나와 꽃구경하는 처지에 고되다면 염치없는 거 아니냐며 여기야말로 신의 직장이라 너스렙니다 노조간부하다 미운털 박혀 잘리고 손대는 일마다 실패해 남은 거라곤 바슬바슬한 몸뚱이 뿐이지만 죽는소리 일절 없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어금니 악물고 견디는 중일 테지요 생과 맞장 뜨는 참일 테지요 신경질적인 경적 더는 모르쇠 못하겠던지 전화 끊으려다말고 불쑥 화장실문짝에 시 한 편 붙여놨다며 저작료 숯불제육구이에 동동주는 알아서 수령해가라 통고합니다 구실 삼아 밥 한 끼 거둬 먹이려는 속정일터 책상머리 벗어나 하루쯤 콧바람 쐬라는 완곡한 출장명령 일터

 신고한 생에서 길어 올린
 놀랍도록 번뜩이는

                             발표지면; [현대 시학] 2010년 2월호

 

 

 

      

 

       

 

 

      

 

 

      

 

 

      

 

       

 

 

 

시금치는 아니고 열무였는데

연휴가 길고 다른 밭의 열무들한테
우선 순위가 밀려
꽃이 피어버렸어요.
그래도 녀석들은 김치거리가 아니고
국거리용이니까 심한 애들은 빼고도 두차...
오고 가는 길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과
이문세의 '슬픔도 지나고나면' 이
동행했어요.
모두의 원성을 뒤로하고 한다발 꺾어온
장다리꽃... 예뻐요^^

오늘, 열무를 삶고있어요
씻어서 씻고 짜고
더러는 염장
이번 여름 열무는 이것으로 끄읕.
                                         2014.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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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
                        도종환

흐린 차창 밖으로 별 하나가 따라온다
참 오래되었다 저 별이 내 주위를 맴돈 지
돌아보면 문득 저 별이 있다
내가 별을 떠날 때가 있어도
별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 별처럼 있고 싶다
상처받고 돌아오는 밤길
돌아보면 문득 거기 있는 별 하나
괜찮다고 나는 네 편이라고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
이만치의 거리에서 손 흔들어주는
따뜻한 눈빛으로 있고 싶다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중에서

 

          

 

비 오시는 밤,
엄마 기일이 지나가는 밤,
마지막으로 엄마의 이마를 쓸어 내렸던
촉감을 소스라치게 기억 하는 밤,
이 시각에도 가슴에 짜락짜락 비가 내리고 있을 이들을 생각하는 밤,
심한 목감기에 이틀째 말문을 닫아 걸고
묵언정진 하는 밤,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내 인생을 상대할 수 있을까.
어떤 목소리가 답해왔다.
죽는 날까지.'

라고 작가 정유정은 히말라야 환상방황에서

 


내 심장을 쏴라 속 승민의 목소리로 쓰고있다.
죽는 날까지.
.......
죽는 날까지.
.......
엄마가 가신 나이에서 십년을 남겨두고 있구나.
오늘은 이 책을 다 읽어야 잠들겠구나.
히말라야를 그녀를 따라 걷는다.
고산병에 시달리면서
이 악물고 통증을 감내하면서.
잔인한 사월이
아픈 사월이
이렇게 가고 있다.
눈물이 비 되어 내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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