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안인희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2009)
인간은 우리의 첫 번째 조건이다. 인간이 우리의 척도를 결정한다.
…….
자기 역사와의 만남을 거부하거나 독자적인 것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민족, 그런 나라는 이미 끝장난 것이고 박물관에나 들어가야 한다.
아프리카 남자와 여자는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벌써 끝장나지는 않는다. 그들이
말하게 해보라. 무엇보다도 그들이 행동하게 해보라. 효모가 작용하는 것처럼,
그들이 자신들의 메시지를 갖고서 우주의 문명을 만드는 것에 동참하게 해보라.
세네갈이 독립하기 1년 전인 1959년에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이 된 시인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 (1906~2001)
이 책을 추천한 이가 한비야 선생이었을까. 월드비전 난민캠프 지도자 생활을 진행하면서 했던 지식인의 서재로. 탁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정말 아프리카를 알고 있었을까? 적어도 나는 아프리카를 몰랐다. 알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우리와는 너무나 먼 대륙은 그저 단편적인 지식과 언론에 기대어 아는 정보들. 아마존 밀림이나 케냐의 동물보호구역, 헤밍웨이와 칼리만자로, 체의 평전으로 알게 된 각각의 나라이름들, 내전과 가뭄에 의한 오랜 굶주림, 소년병들의 참혹함정도.
좋아하는 배우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온 아름다운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낭만과 배경으로서의 아프리카, 아저씨 필이 나기 시작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온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시에라리온의 소년병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르완다 내전을 다룬 ‘호텔 르완다’를 통해 만난 것들, 넬슨 만델라로 대표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웃이 낸 책 ‘블랙 러브’로, 일 때문에 일 년의 반을 거기서 지내는 민희를 제주 올레에서 만난 이후로 더욱 친근한 나라가 되었지만 그 정도가 내가 아는 아프리카였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여전히 전체 역사를 알지는 못해도 나처럼 무지한 사람에게도, 그곳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사는 대륙이란 것을, 그들이 가진 무한한 자원은 재앙이 되어버려 사람으로 살기는커녕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가는 것만도 어렵게 되어 버린 아프리카를 만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죽여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우린 오래 거기에 길들여져 왔다는 생각이 든다.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요즈음에 읽은 일련의 책들에서 더욱 골똘해지는 명제다. 자존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내가 속한 곳을 제대로 읽어낼 줄 아는 깊은 눈을 가져야 가능한 것이다. 태어난 곳을 선택할 수는 없으니 주어진 생을 묵묵히 견뎌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프리카를 수박 겉핥기로 지나가는 것 같지만 그들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진 작가의 마음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특히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 나오는 매력적인 인물 부르키나파소의 초대 대통령 ‘토마 상카라’를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고 그의 죽음이 그때보다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한 사람의 뛰어난 지도자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다시 그들에게, 아프리카 대륙에 토마 상카라나 넬슨 만델라 같은 지도자가 나타나주었으면 좋겠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734/12/cover150/8991010849_1.jpg)
![](http://image.aladin.co.kr/product/89/45/cover150/8990809177_3.jpg)
이스마엘 베아(그도 이젠 벌써 34살이 되었나, 1980년에 태어났으니)가 쓴 ‘집으로 가는 길’을 읽었을 때의 충격이 떠오른다. 그때는 감정적으로 읽혔던 내용들이 구체화되어 현실로 읽힌다. 현재 진행형인 소년병들, 우리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이야기 한다. 한 순간의 아픈 기억들도 일생동안 따라다니는 트라우마가 되는 것인데 그들의 상처는 가히 짐작조차 못하겠다.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의 한심한 국가는 그 상처에 굵은 소금이나 뿌리고 있으니. 그것도 국산 천일염도 아니고 값싼 수입 소금으로 말이지. 어찌됐든 유병언은 죽었고, 아무런 권한도 없어 보이는 유대균은 잡혔는데 실권자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과연 유병언의 사체가 맞다 믿는 사람은 유능한 정부의 유능한 관리들 말고 또 누가 있을까? 또한 장정일식으로 말하자면 이쯤에서 그 사고에 관련된 책이 수십 종은 쏟아져 나와야 했을 터인데 우리가 가진 문화의 자산도 참으로 빈약하긴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아, 옆길로 빠져서 신랄해지지 말자. 가만히 있으란 말이지.
전 세계적으로 어른의 전쟁에서 희생되는 민간인 희생자 중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희생자가 약 절반에 이른다. 아프리카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어린이 병사의 문제가 여기 덧붙여진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가장 어릴 경우 일곱 살이나 여덟 살까지 포함되는 전 세계 30만 명의 어린이 병사 중 약 12만 명이 아프리카에서 싸우고 있다. 어린이 병사 문제로 국제적으로 가장 심힌 비난을 받는 다섯 나라 중 네 나라가 아프리카에 있다.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콩고 민주 공화국, 부룬디 등이다. (2003년 통계)
어린이들이 언제나 싸우도록 강요를 받는 것만은 아니다. 부모가 죽거나 실종된 다음, 아니면 자기들 눈에는 강하게 보이는 사회에서 더 나은 미래를 얻으려고 군대에 자원하는 어린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 ‘람보 키즈’ 상당수는 기습 공격에서 특히 더 잔인하게 행동한다. AK 47 기관총을 겨우 들 수 있는 정도의 아이들이 기술적으로 무기를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개인적인 감정이나 어린 영혼에 대한 동경이 맨 먼저 파괴된다. 전쟁에서 살아남아 회복 프로그램 과정을 거치는 어린이들에게 장래 가장 큰 소망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이 소박한 답변을 한다. “직장, 일자리, 먹을 것……. (p260)
이제 좀 아프리카 역사인식에 가닥이 잡힌다.
어느 역사에서든 특히 핍박받는 모든 역사에서 한 사람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파리 목숨 같은 것인지, 대의를 위해 소의는 어떻게 유린 되는지……, 쓰라리게도 인정해야만 하는 삶의 엄정함이다.
남아프리카의 에이즈 환자 정치 조직체 ‘치료 활동 캠페인(TAC)의 공동 설립자인 자키 아크마트(1962~)는 2002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에이즈총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가난하기 때문에, 우리가 검기 때문에, 우리가 여러분에게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생명의 가치가 더 낮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p269)
여전히 어느 곳인가 내전 중인 불행한 대륙, 불행한 아이들, 에이즈로 위태롭게 지나가는 목숨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징후는 곳곳에서 보인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길을 가고 있다. 책을 덮고 나니 그 희망에 기운이 난다.
아프리카는 유럽의 문명보다 훨씬 더 먼저 존재했던 자기들의 문명의 기원을 자신감을 가지고 바라볼 이유가 충분하다. 유럽은 인류의 문화 발전이 이집트 이후 그리스와 로마 사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된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늘날 이쪽 아니면 저쪽이 더 낫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오랫동안 유보되었던 진실을 위해서다. 가능한 한 과거를 완전히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대화에도 좋은 일이다. (p58)
유럽 사람들은 자주 가장 부패한 아프리카 정치가들이 권좌에 오르도록 도움을 주었다. 겉으로는 ‘독립’이라는 깃발을 내걸었지만, 유럽 열강이나 그사이 끼어든 미국과 소련이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꼭두각시 정권을 만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 다음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할’ 능력이 얼마나 적은지 실컷 조롱하였다. 이런 신제국주의 놀음을 꿰뚫어보고, 제국주의에서 공식적으로 해방된 이·후 외부에서 들어오는 경제적·정치적 영향에 항거한 사람들은 여러 번이나 체계적으로 억압을 당했고, 그것이 먹히지 않으면 자주 냉혹하게 살해되었다.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를 짓밟기 시작한 것은 500년도 더 전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서부 아프리카에 도착하면서 부터였다. (p106)
위대한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좋다. 여기서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저기서도 작동할 것이다. 아마도 당신이 귀를 기울이고 함께 생각할 경우에 말이다.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작은 문제를 위한 해결책을 찾는다면, 그래야만 당신은 강해지고 더 큰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 그 반대는 아니다.
다시 안개가 덮이면 인내심을 보일 것. 당신 자신에 대해서(가장 어려운 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시 안개가 걷히면 그리고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누가 또는 무엇이 거기에 책임이 있는지를 단신이 이해하게 된다면.
생각은 독립적일 수 있다. 다르게 되기가 어렵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서로에게서 독립적이고, 또 독립적으로 남는다. 전보다 더욱 많이.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그리고 온 세계에서. (p174)
나는 사람들이 에이즈가 무슨 뜻인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보살펴주고 존중해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병을 가지고 있어도, 그 사람을 건드리고 끌어안고 키스하고 손을 붙잡아주어도 에이즈가 옮지는 않아요.
우리를 보살펴주고 받아들여주세요. 우리는 모두 인간입니다.
우리는 아주 정상이에요. 우리는 두 손이 다 있고 두 발도 다 있습니다.
우리는 걷고 말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똑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를 두려워하지 말아요. 우리도 똑같아요!
2000년 7월 남아프리카 더반 에이즈 총회에서 은코시 존슨(1989~2001) (p273)
지난 500년 동안 아프리카 민족들은 인류 역사에서 유일하다고 할 만한 여러 가지 굴욕을 겪었다. 노예 제도와 식민 지배는 파괴적인 흔적을 남겼다. 신(新)식민주의는 아직도 가장 고약한 황폐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증조할머니처럼 느낀다. 대개는 우리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힘들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대화를 시작하는 대신, 우리에게도 중요한 가치를 함부로 옆으로 밀쳐낸다. 그래서 마치 할머니처럼 이따금 우리 입술에 미소가 얼어붙는다. 하지만 그것은 동경에 가득 차서 우리 가슴 속에 계속 살아남는다.
루츠 판 다이크는 나와 같은 세대에 속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대륙에서 태어났다. 아주 뒷날 우리는 여행을 하고 두 세계를 체험할 특권을 가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가 우리 대륙의 역사를 쓸 권리를 가진단 말인가? 그의 책을 오래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루츠 판 다이크는 아프리카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경청하기 때문에 그 권리를 스스로 얻었다고. 그는 이런 일을 정열적으로 행하여 독자들에게 아프리카나 유럽, 혹은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상관없이 똑같은 것을 한번 시도해보라고 격려해준다. 처음에 가장 낯설게 들리는 목소리라도 조심스럽게 귀 기울여 들으려는 노력을 더 해보라고 말이다.
내 소원은 아프리카의 역사가 이 책에 씌이는 것처럼 씌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어려움과 기대가 현실적으로 서술되고 또한 우리의 강점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관한 많은 책들이 이렇게 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삶을 어떤 식으로도 낭만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고, 또한 아프리카 정부들을 비판 없이는 서술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루츠 판 다이크가 아프리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유리하다. 아무도 그의 책이 아프리카의 부족함을 사과하려 하는 아프리카 사람의 시도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그를 비난 할 수는 없다.
우리의 역사는 많은 고통과 슬픔을 지녔다. 그런데도 우리가 언제나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 삶의 기쁨으로 가득 넘쳐서 서로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다른 어떤 역사책에서도 찾아내지 못한, 어떤 내적인 강인함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아프리카 사람이 아닌 사람들에게 어딘지 이해할 수 없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진기한 특성으로 서술되지 않고 아주 깊이 인간적인 어떤 것, 우리가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내가 다른 사람 몰래 증조할머니에게로 가져갔던 한 줌의 소금처럼 말이다. (p297~298)
마지막으로 인용한 글은 가나의 여성 작가 암마 다르코가 쓴 글이다. 그 어떤 미사여구의 감상평보다 담담하게 담기는 내용이어서 전문을 인용하고 싶었는데 너무 길다. 이제 머나먼 대륙이 조금 가깝게 느껴진다.
아프리카, 아 아프리카.
선함이 있기를. 부디 찬란함을 잊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