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로 보는 이탈리아 기행

-다나카 치세코 지음, 정선이 옮김.

예담2002

  이 책은 막내한테서 욕심 부리고 가져온 지 오래되었으나(그런 책이 몇 권 있다.) 이제야 읽게 되었다.( 같은 이유로 안 읽은 책들) 아마도 오래 공들여서 직접 고르고 선물 받은 책이 아니면 그런 경향이 있다. 대체로 그러하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현재의 이탈리아가 궁금해서 펼쳐들었다. 그 시절에 흥했던 로마와 밀라노에는 로마의 멸망 후 정세에 비추어 많은 유적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안 가봤지만 15권까지 읽고 나니 역시 그런 것 같다. 이탈리아 주요도시이자 관광도시이고 영화를 찍었던 도시를 중심으로 여행을 펴나가는 작가는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 시칠리아, 밀라노, 로마의 순으로 엮어 나갔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기 전에는 이탈리아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 가득하다. 피렌체의 피사의 사탑, 두오모 성당.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곤돌라. 세계 3대 미항 나폴리. 세계 패션의 중심도시 밀라노, 그리고 로마 제국의 수도 로마. 고트족과 반달족의 침입과 약탈 파괴로 고대 로마의 완전한 모습은 잃었을 테지만 지금도 기능을 하고 있다는 로마가도와 분수들과 어우러진 현대의 로마를 만날 듯 만날 듯하다.

  영화 평론가인 저자가 사랑한 이탈리아가 이탈리아의 영화 장면들과 배경으로 설명해주는 독특한 기행을 영화 속으로 몰입해가는 재미가 있다.

  피렌체. 그곳사람들의 자부심은 로마를 능가하고 유럽의 중심, 르네상스의 시작이라는 자긍심이 가득한 곳,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키아밸리, 단테, 이름만으로도 압도하는 예술가를 가진 곳. 그곳에서 촬영한 ‘전망 좋은 방’의 장면들이 눈에 선하다.

 

  피렌체의 두오모(대성당)는 전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화려한 곳이다. 흰색과 녹색과 붉은색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이곳은 복원을 위해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음울하게 가려져있어 실로 유감이었는데, 1998년부터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두오모의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꽃의 성모’라는, 피렌체에 썩 잘 어울리는 이름으로 모직물과 상인의 아르테가 주축이 되어, 1296년에 착공하여 완성 된 것은 1421년이다. 높이가 112미터로 피렌체의 어디에서도 이 두오모의 둥근 지붕은 잘 보인다.

  <전망 좋은 방>에서 루시가 시뇨리아 광장의 소동에 놀라 기절할 무렵, 사촌언니 샤롯은 소설가인 친구와 거리를 산책하다가 길을 잃는다. “여기가 어디지? 여행 안내서에도 없잖아”라며 그녀들은 화를 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살짝 들여다보면 반드시 두오모의 쿠폴라가 보이므로 대충 그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피렌체의 거리는 좁고 구불구불 굽은 곳이 많아서 직선 코스로 곧바로 두오모까지 갈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도달할 수 있으므로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여름의 피렌체는 언제나 뜨겁다. 흔히들 유럽의 여름 기후는 건조해서 낮에는 섭씨 30도가 넘어도 아침저녁은 시원하고, 그늘로 들어가면 견딜 만하다.

  피렌체도 공기가 너무 건조해서 한참 걷다보면 몸에서 수분이 점차 빠져 나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도 그늘에서는 기분이 상쾌하다. 피렌체는 길이 좁고 건물들이 높아서 낮에도 반드시 그늘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양산이나 모자가 거의 필요 없다.

일 년 내내 여행자들로 북적이는 피렌체는 10여 년 전부터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있다. 거리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두오모 주변은 거의 그들이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타리는 있지만 교회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정문 앞 계단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피렌체의 두오모 광장은 좁은데다가 바로 앞으로 자동차들이 지나다녀서 밀라노의 두오모 광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곳에 앉아 있으면 눈을 뜬 채로 명상을 할 수 있다. 그것도 여행자의 감상과는 거리가 먼 영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다. 아마도 피렌체라는 거리의 성격 때문이 아닌가 싶다. 미켈란젤로와 다 빈치가 활약하던 그 거리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들의 감성과 지성이 저절로 흥분하기 때문이 아닐까.

  루시가 만난 영국인 청년 조지도 이 피렌체에서 식사 도중에, 혹은 초원의 바람 속에서 커다란 물음표를 그리며 인생과 우주에 대해 사색하고 명상한 것은 아닐까.  (P34~40)

   이 책을 통해 생겨난 유럽을 향한 애정과 호기심은 가지고 있는 유럽 책을 전부 뒤적거리게 했는데 그중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은 제목 그대로 발칙하고 유쾌했고 특히 여행자가 가지고 있는 막연한 동경과 환상을 보기 좋게 박살내버렸다. 특히 피렌체와 밀라노, 나폴리에서 그가 경험하거나 본 것은 ‘다나카 치세코’보다 훨씬 오래 전이었음에도 사실적이고 집요하고 냉철하다. 아마도 그의 글쓰기 역량에 기인 한 것일 테지만. ‘나를 부르는 숲’을 읽고 그에게 빠져서, 그가 쓴 이 책과 한 페이지도 열어보지 목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구입했다는 생각이 난다.

  아, 또한 그 때문에 애팔레치아 트레일에 혹해서 부담스럽게 두꺼운 ‘와일드’를 읽은 생각도 난다. 내게는 그녀의 용기가 대단하기는 했지만 감탄할 정도로 매혹적이지는 않았다. 사진 한 장 없는 여행기라서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두껍고 세 권이나 됐던 ‘나는 걷는다’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미국인의 시선이었고 과장 광고 탓이 아닐까 싶지만 그녀가 신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투박하고 낡아빠진 워커 한 짝의(한 짝은 트레일 중에 잃어버렸을 것이다.) 표지디자인은 마음에 들었다. 425km 제주올레도 매력인데 4,285km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은 극한의 도전을 꿈꾸는 이들에겐 유혹이겠다. 나도 입맛을 다시는 부류에 속한다. 각설하고.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빌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21세기북스(2008)

 

  나는 피렌체를 좋아해 보려고 노력하면서 4일이나 피렌체 근방을 배회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보볼리 정원에서 바라보는 저 유명한 지붕 풍경은 화려하고 매혹적이다. 나는 아르노 강변을 산책하는 것도 좋았지만 실망스럽기도 했다. 관광객들 무리는 눈감아준다 해도, 나는 피렌체가 이 도시만큼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나 같은 여행객의 지출에 크게 의존하는 다른 도시들보다 더 싸구려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온 천지가 쓰레기투성이였고, 구걸하는 집시들이 끈덕지게 달라붙었으며, 세네갈 노점상들이 선글라스며 루이비통 가방 따위를 팔면서 보도를 점령하고 있었다. 자동차들은 좁은 보도 위 절반이나 차지하고 주차되어 있어 보행자는 자동차를 피하느라 차도로 내려설 수밖에 없다. 피렌체에서는 걸어 다니는 시간보다 장애물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시간이 더 많다. 모든 것이 먼지가 수북하고 물청소가 필요한 듯 보였다. 트라토리아(서민적인 레스토랑)는 손님들로 북적대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며 불친절했다. 도심으로 갈수록 더욱 그랬다. 아무도 자기 도시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부유한 사람들조차 전혀 거리낌 없이 쓰레기를 마구 버렸다. 두오모 주변 건물들은 내가 그리로 지나갈 때마다 점점 더 먼지가 쌓이고 더 낡아 보였다.

  왜 사람들이 제일 가보고 싶어 하는 도시들일수록 그곳을 쾌적하게 가꾸는데 제일 게으른지 모르겠다. 쓰레기를 치우고 도시에 벤치를 마련하며, 집시들이 집요한 구걸을 자제하도록 하면서 도시를 더 밝게 만드는 일이 피렌체 주민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이곳 사람들은 대체 왜 보지 못하는 걸까? 피렌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곳으로 유네스코 보고서에 따르면 문화유산과 같은 볼거리가 스페인 전체보다 더 많은 도시다. 궁전만 21곳, 유서 깊은 교회가 55곳, 미술관이 8개에 박물관이 20개나 된다. 그러나 피렌체 시의 연간 복구 예산은 500만 파운드가 채 안 된다. 고고학 박물관만 해도 1966년 대홍수 이후 청소를 기다리는 작품이 1만점이나 된다. 피렌체의 상당 부분이 별로 사랑받지 못하는 듯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문화재에 대한 방치가 없다 해도 무능과 부패가 여지없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곤 한다. 벌써 오래전에 내려졌어야 할 시뇨리아 광장 복구 결정이 1986년에야 확정되었다. 이 결정 후, 청소를 위해 고대부터 사용되어 온 자갈돌을 파서 이송을 했는데, 청소 후 자갈돌들이 돌아왔을 때 이 돌들은 새것처럼 보였다. 새 것 같은 게 아니라 정말 ‘새 자갈’이었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내려온 원래의 자갈들은, 들리는 바에 의하면 막대한 금액에 팔려 지금은 부자들의 저택 진입로에 깔려 있다고 한다.   (p257~259)

 

  같은 피렌체일까 싶어진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닌 두 저자의 다른 시선에도 불구하고 피렌체라는 도시에 대한 사랑이 전해온다. 먼 나라, 남의 일만이 아닌 것 같아서 이 부분을 읽는데 입이 썼다. 이 도시, 수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화재 관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화성(華城)의 아름다운 동북공심돈은(일명 소라각) 내가 본 기억으로 이년 사이에 세 번째로 연두색 비닐 장막에 가려졌다. 두 번째의 공사가 끝난 얼마 후 찾아갔더니 부식된 벽돌들이 푸슬푸슬 떨어져 내렸다. 문화유산을 관리하고 있는 건지, 유지비용을 관리하고 있는 건지 우매한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계속 논란이 되는 광화문 현판이 그렇고 숭례문이 그렇고, 우리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문화와 예술로 보는 이탈리아 기행’ 은 그 제목과 목적에 걸맞게 사진도 내용도 충실하고 완성도가 깊다. 그렇게 피렌체에서 시작해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조금 무거운 듯 아름다운 감상들로 한결 같다. 거기에 덧붙여 고전적인 영화의 제목들과 감독과 배우의 이름들과 어우러진 촬영지 소개는 그쪽 매니아라면 페이지마다 포스트잇을 붙여놓게 만들었을 것이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또한 한결 같은 자세로 그가 본 유럽 전역을 느낄 수 있었다. 냉소적인 독설에도 불구하고 산책자이자 여행가인 그가 가진 유럽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이 깊게 얽혀 있었다. 개인적으로 중유럽에 호기심이 많은데 그 덕분에 증폭된 느낌이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나라면 알래스카를 택하지 않았을까.) 유럽의 최북단 함메르페스트를 향한 여정의 시작에서 아시아와 경계도시 이스탄불에 이르는 여정은 청춘 시절, 친구와 동행했을 때와 혼자인 지금으로 얽혀서 쓰고 있다.

 

  가끔은 어떤 나라에서 처음 유래한 사물이 매우 독창적이고 기발해서 그 물건 하면 반드시 그 나라가 연상 되는 것들이 있다. 영국의 2층 버스나 네델란드의 풍차(평평한 땅에 얼마나 훌륭한 착상인가. 네델란드 인들을 네브라스카에 데려다 놓으면 이 황량한 주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자못 궁금하다) 파리의 노천카페가 그렇다. 반면에 다른 국가들이 대부분 아주 쉽게 하는 일인데도 어떤 나라 사람들은 아예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

  가령 프랑스 사람들은 줄서기의 의의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되나 보다. 파리에 가면 버스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지만, 버스가 도착하기만 하면 이 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정류장은 비인도적인 수용소에 화재경보라도 울린 듯이 아수라장이 된다. 모두들 버스를 먼저 타려고 쟁탈전을 벌인다. 그럴 거면 애초에 줄은 왜 서느냔 말이다.

  영국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 기본적인 점 몇 가지를 도통 이해하지 못한다. 햄버거를 굳이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해서 먹으려 하는 점만 봐도 그렇다. 어떤 이들은 포크를 뒤집어서 포크 뒷면으로 음식을 가지런히 정돈하기도 하는데, 왜 그러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영국에 산 지 벌써 15년이 되었건만, 햄버거를 먹을 때 포크와 나이프를 가지고 씨름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낯선 그들에게 다가가 조언해 주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한다.

  “저기요, 두 손으로 쥐고 먹으면 지금처럼 완두콩이 사방에 줄줄 떨어지지 않거든요?”

  독일인들은 유머라면 아주 당혹스러워하며, 스위스 인들은 즐길 줄을 모르고, 스페인 사람들은 자정에 저녁을 먹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심성이라곤 전혀 없는 이탈리아 인들은 자동차 발명에 절대로 참여하지 말았어야 한다.

  첫 유럽 여행에서 특히 경이로웠던 사실은, 세상이 이토록 다양하며, 먹고 마시거나 영화표를 사는 일처럼 간단한 일을 하는데도 수많은 방법이 있다는 점이었다. 유럽 인들은 하나 같이 너무나 비슷하다. 모두 책을 좋아하고 지적이며, 소형차를 몰고, 오래된 마을의 작은 집에서 살며, 축구를 좋아하고, 상대적으로 덜 물질주의적이며, 법을 준수하고, 호텔방은 춥게 하면서 음식점이나 술집은 따뜻하고 편안하게 만들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동시에 예상치 못한 측면에서 서로 너무나 다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나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p52~53)

 

  시작부분부터 이 발칙한 글쟁이의 훈훈한 시선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그때로부터 멀리 지나왔고 유로화가 진행되어 그가 만난 유럽을 우리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제야 읽기도 했고 육로로 국경을 지나는 일은 우리에겐 여전히 설레고 독특한 경험이 될 것이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

  바야흐로 휴가철이 시작됐다.

  훌쩍 떠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꼭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이렇게 책 속을 배회하는 일도 낯선 도시의 골목을 헤매는 시간보다 덜 하지는 않다.

  세월호의 100일이 지나가는 오늘, 진도 바다의 열 명의 영혼도, 그 가족들도, 세월호와 함께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단한 여행을 하루빨리 접고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밥상에 둘러 앉아 여행지의 에피소드를 풀어 놓고, 고실 고실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랜만에 근심 없이 단잠에 빠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분명 여행의 끝에 와 있었다. 저 반대편이 아시아가 아닌가. 유럽에서 가장 멀리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였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고생만 하고 있는 내 아내는 한 해 걸러 아기를 가졌는데 지금도 임신 중이었다. 아내는 전화 통화에서 아이들 중 어린 두 녀석은 성인 남자만 보면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잔디는 허리까지 자랐고, 목장 울타리는 일부가 쓰러져가고 있었으며, 양들은 물가의 풀밭에, 소들은 옥수수밭에 아무렇게나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나도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족이 보고 싶었고, 내 집의 친숙함이 그리웠다. 매일 먹고 자는 일을 걱정하는 것도 지겨웠고, 기차와 버스도, 낯선 사람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도, 끊임없이 당황하고 길을 잃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라는 사람과의 재미없는 동행이 지겨웠다. 요즘 버스나 기차에 갇혀서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대는 내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나 자신을 내팽개치고 도망가고픈 충동을 얼마나 많이 느꼈던가?

  동시에 나는 계속 여행을 하고 싶다는 비이성적인 충동을 강하게 느끼기도 했다. 여행에는 계속 나아가고 싶게 만드는, 멈추고 싶지 않게 하는 타성이 있다. 해협 바로 저편에 아시아가 있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저기가 아시아 대륙이라고 생각하자 경이로웠다. 몇 분이면 아시아 땅을 밟을 수 있다. 돈도 아직 남았다. 그리고 내가 가보지 못한 대륙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았다. 대신에 콜라를 한 잔 더 주문하고, 오가는 페리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아시아에 갔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여행이란 어차피 집으로 향하는 길이니까.   (p385~386)

 

  나도 지금 마악 어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의 끝은 새로운 여행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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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7-26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일 동안의 유럽 여행'에서 막 돌아온 제가 읽기에 딱 맞는 아주 흥미진진한 글이네요. 정말 재미있게 흠뻑 빠져 이 글을 읽었습니다.

저는 13년 전에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가 봤는데, 영국에서 저녁때쯤 비행기를 타고 로마를 향해 날아가는 동안에도 계속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기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새벽 1시가 거의 다 될 무렵에 비행기가 서서히 땅 쪽으로 내려앉는다 싶었는데, 창 밖으로 '마침내' 불빛 찬란한 로마가 시야에 들어오더군요. 그 때 얼마나 감격했던지 거의 눈물을 흘릴 뻔했지요.

로마, 나폴리,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등지를 대략 5일 정도에 걸쳐서 둘러봤던 것 같은데(가족들과 함께 패키지 여행으로), 이탈리아의 모든 도시들이 그렇게 매혹적이고 좋을 수가 없더군요. 물론 빌 브라이슨이 '피렌체'에 대해 표현한 내용처럼 '이탈리아 특유의 문제점들' 때문에 세계적으로 훌륭한 유산이 가득한 유서깊은 도시들이 너무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는 느낌은 떨치기 어려웠지만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유럽 하면 '이탈리아'를 손꼽는 이유도 옛 로마제국의 위대함과 더불어 르네상스 시대의 빛나는 유산들과 이탈리아 특유의 온화하고 따뜻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저는 이번에 독일의 여러 도시들과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을 '자동차를 몰고' 두루 다녀봤지만, 독일 사람들의 '융통성은 다소 없지만 너무나 합리적인' 스타일이 정말 마음에 들더라구요. 어쩌면 이탈리아와는 정 반대편의 성향으로 볼 수도 있는 측면들 말입니다. '고도의 신뢰 사회'가 사람들의 생활을 얼마나 편리하고 걱정 없게 만드는가 싶은 생각이 절실하게 들더군요.

여행사진 한 장 없는 『나는 걷는다』시리즈는 저도 읽었답니다. 3년 전에 실크로드를 따라 사마르칸트를 다녀올 때 말이지요. 그 저자가 화가와 함께 다시 실크로드를 다녀오며 쓴 책『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 수채화판 실크로드 여행수첩』에는 저자가 오래도록 걸으며 마주친 풍경과 사람들을 그린 그림들이 수두록하게 담겨 있어서 읽기가 훨씬 낫더군요.

그 책 속에서 만났던 인상적인 구절 하나를 덧붙여 봅니다.

* * *

"도착하기만 바란다면, 역마차를 집어타고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을 하고자 한다면, 걸어가야 한다." 장 자크 루소가 그의 저작《에밀(Emile)》에서 한 말이다. 나도 '도착하기' 만을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어디에 도착한다는 말인가?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늘 얘기했던 것처럼, '가는 것' 그 자체다.

- 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수채화판 실크로드 여행수첩 中에서

2014-07-27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일 동안의 유럽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히 돌아오신 걸 축하드려요 오렌님~!
후기,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께요.
사진만으로는 많이 아쉬웠어요^^

아, 어쩐지 알 것 같은 그 벅찬 느낌.
친숙하기도 하고 부럽기도한 그 느낌이 얼마나 먼 것인지...... 문득 떠난지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
여행기를 즐겨읽지만 같은 곳을 보고 같은 느낌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초기에 극복했지요.
정보가 필요해서기도 하고 대리 만족이기도 하고.... ㅎ 제게 이즘의 여행서들은 거의 대리 만족이지요.
나는 걷는다를 끌고 다닐 때는 좋았어요.
갠적으로 실크로드에 관심이 많아서 더욱.
루소의 저 말은 에필로그에도 나오지요. 아마~
그런데 수채화판도 있었군요.
저는 아직 '쇠이유 문턱이라는 이름의 기적'도 못 읽었는데...... 읽어야할 목록이 자꾸 늘어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