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꽤 많은 편이다. 작게는 영화나 문학 작품을 선택하는 취향부터, 크게는 정치적 성향까지 다수파가 되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로서 살아간다는 건 한없이 불편한 일이다. 남들 다 읽는 베스트셀러를 거의 읽지 않으니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얘기를 나눌 사람을 찾기 힘들고, 영화를 고르는 취향이 대중적이지 않으니 정말 좋아하는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기 위해 서울까지 올라가는 일을 불사해야 한다. 또, 대구처럼 정치색이 분명한 도시에서 다툼 없이 무난하게 관계를 맺기 위해서 정치적 성향을 숨겨야 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소수자의 정체성 가운데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두 가지가 있으니, 그 하나가 ‘비혼주의자인 나’이고, 또 다른 하나가 ‘베지테리안인 나’이다.
나는 육식을 전혀 하지 못한다. 어릴 때는 고기가 먹는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아서, 10대 후반부터는 내 철학과 양심에 부대낌이 덜한 식습관이란 생각이 들어서 기꺼이 베지테리안이란 정체성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정말 사소하기 짝이 없는 취향 하나가 나를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지 모른다. 외식을 하는 일이 늘 불편하다. 고를 수 있는 메뉴가 한정되어 있다보니, 밥 먹을 식당을 찾는 일부터 힘들다. 그나마 식당을 찾았다 해도 확인 절차가 남아있다. 비빔밥 하나를 시킬 때도 “고기 고명 올라가나요?” 물어야 하고, 국수를 하나 시키려고 해도 “혹시 국물로 고기육수 쓰나요?”하며 물어보아야 한다.
허나 그런 불편함은 내 선택에 따르는 부록 같은 것이라 여기기에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회식이나, 술자리 등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이다.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가장 흔하게 먹는 것이 각종 고기인데 그걸 못 먹으니, 식사모임 자리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사실, 나는 고깃집에 가서 밥과 깍두기, 상추. 당근, 오이로 밥 한 끼를 때워도 아무 문제가 없다. 다 좋아하는 야채들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고기도 안 먹고 무슨 재미로 사냐고 핀잔주는 사람, 일단 한 번 먹어보라고 계속 권하는 사람, 고기를 안 먹으면 단백질 섭취에 문제가 있다고 친절하게 충고하는 사람까지 모두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으니…….
비혼주의자인 나를 드러낼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힘들지 않은데, 왜 그리 걱정들이 많은지. 뭐 그리 궁금한 게 많고, 충고하고 싶은 게 많은지……. 정말 어떨 때는 예상 질문을 추려서 'Q&A'를 작성해 다니며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소수자로서의 삶이 좀 불편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불행하진 않다. 나만 하더라도 외식을 잘 못하는 불편함이 오히려 직접 요리하는 즐거움을 알게 했고, 혼자 사는 불안함이 건강에 더 신경 쓰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수의 잣대로 소수의 불편을 불행으로 몰아가는 시선들은 너무도 폭력적이어서,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그 폭력을 반복적으로 맞닥뜨리다 보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기 안 먹으면 힘들겠다. 뭐가 제일 힘들어요?”
“혼자 살면 힘들죠? 어떤 게 가장 힘들어요?”
그때마다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한 마디를 삼키느라 도를 닦는다.
“너! 너 같이 묻는 사람! 너 같은 사람한테 일일이 대답하는 것!”
다수의 삶이 얼마나 편하고 행복한지 경험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소수자의 삶 또한 다수파인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힘들고 불행하지 않다. 충분히 행복하다. 당신이 입만 닫아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