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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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에게 똑같은 시대는 없다.

 최규석의 만화를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작가와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가난한 집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고, 도시하층민에 속하던 계급성을 뼛속 깊이 체화하며 살았다.  

 학교 다닐 적에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들이 말하던 민중이 우리 어머니, 아버지였고, 노동자가 우리 언니 오빠들이었는데 왜 그들은 늘 눈 앞에 있는 것들을 부정하고 책 속에서 길을 찾아서 헤매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그들이 소련이 망했다고, 사회주의가 끝났다고 술을 먹고 울면서 운동을 그만둘 때,  한마디로 좀 우스웠다. (물론 이런 사람은 소수였고, 정직하고 성실한 다수가 여전히 다양한 운동판을 지켜나가고 있다.)

 나더러 한 때 운동권이었다는 말이 제일 듣기 싫지만, 내 정체성에서 그걸 부정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 내가 우습게 본 그들의 모습을 어쩌면 다른 이들, 특히 내 가족들과 친구들 역시 나에게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 것들이 언젠나 내 뒷머리를 주뼛 서게 만드는 것이다.

 '한겨레 21'에 연재될 당시에도 한 회도 거르지 않고 챙겨 보았는데, 이렇게 다시 단행본으로 만나게 되어서 행복하다. 특히 연재 당시에는 없던 가족사와 인터뷰 글을 통해서 더 많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간간히 눈물을 닦아가며 읽었다.

 책을 덮고 나서 깊은 감동에 젖어 있다가 참으로 뜬금없이 든 생각.

 아, 만화가 하기엔 좀 아까운 인물인데...

 (웃자고 한 얘기는 아닌데, 좀 우스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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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여자 큰여자 사이에 낀 두남자 - 장애와 비장애, 성별과 나이의 벽이 없는 또리네 집 이야기
장차현실 글 그림 / 한겨레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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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제적 선거였었나?

어느 당에서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그런 문구를 사용한 적이 있다.

이 책을 덮고 나니 그 말이 문득 떠올랐다.

행복해지는 것은 모든 인간들의 바람일 터이지만, 또한 모든 인간들이 행복해지는 길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행복해지는 길은 타인의 제시하는 길이 아니라 나만의 길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 길을 걸어갈 때는 비난과 외로움을 각오해야하기 때문이 익숙한 것을 깨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 동반되는 것 아닐까?

이 작가의 삶 역시 다수와는 다른 삶, 그러나 오로지 행복해지기를 마다 않기에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참으로 아름다웠고 그들이 일구어온 행복이 빛나 보였다. 

이렇게 빛나는 삶을 일구어가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양한 가족들, 다양한 생각들, 다양한 사랑들... 그래서 행복의 모양이 많아져, 희망의 모양도 더 다양해지는 세상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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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사 Dr. 스쿠르 애장판 전12권 세트
사사키 노리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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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해마다 이 맘 때는 징글맞게 비가 내린다. 장맛비는 빨래를 눅눅하게 하고, 온 집안을 습기로 채우더니, 급기야는 기분까지 꿀꿀하게 만든다. 이럴 때는 노리코 사사키의 만화를 펴자. 눅눅한 빨래와 가득 찬 습기는 어쩌지 못해도, 꿀꿀한 기분만은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노리코 사사키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인물과 사건들로 사랑받는 만화가다. 그녀의 작품들은 어느 것 하나 재미있지 않은 게 없지만, 올 여름 장마 기간에는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를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특히, 동물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시락 싸들고 쫓아다니면서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사랑스럽지만 요상하기 짝이 없는 온갖 동물들과, 요상한 성격이지만 가끔 사랑스러운 H대학의 수의학도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개, 고양이, 닭, 말, 소, 양, 돼지 따위 상당히 보편적인 동물들은 기본이고, 쥐, 까마귀, 너구리, 오소리까지 등장한다. 심지어 온갖 세균들도 가끔 출연해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웃음 뒤에 찾아오는 갖가지 깨달음도 있으니, 내리는 비와 함께 생각에 빠져보아도 좋겠다. 나는 이 책을 읽고서, 인간이 동물을 ‘데리고’ 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남자와 여자가 더불어 살아가듯, 부모와 자식이 더불어 살아가듯, 인간은 동물과 더불어 살아간다.

 살아있는 존재는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낼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권리는 절대로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누구도 타자에게 자신을 위해 살아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다만 함께 살아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 뿐이다.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면 어떨까?

 나는 혹시 타자에게 나를 위해 살아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는가? 부모에게, 자식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친구에게, 내 반려동물에게…….

 그런 적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당신에게 내가 연이어 묻고 싶다. 당신은 타자에게 당신을 위해 살아달라고 요구한 적이 정말 없는가?

 산에게, 강에게, 하늘에게, 땅에게, 바람에게, 햇살에게, 공기에게…….

 

 나는 그 질문에 고개를 들고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게 참 많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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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26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만화, 애장판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와 아이들이 모두 업드려서 돌려가며 봤지요.
우리 가족들을 잠시 행복하게 한 만화책입니다.
사람보다 허스키의 맹한 표정이 압권이지요.
하하


산딸나무 2008-08-2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걔 이름이 꼬마였지요.
저도 정말 좋아하는 친구랍니다.
어찌나 귀여운지...
 

  

 나는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꽤 많은 편이다. 작게는 영화나 문학 작품을 선택하는 취향부터, 크게는 정치적 성향까지 다수파가 되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로서 살아간다는 건 한없이 불편한 일이다. 남들 다 읽는 베스트셀러를 거의 읽지 않으니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얘기를 나눌 사람을 찾기 힘들고, 영화를 고르는 취향이 대중적이지 않으니 정말 좋아하는 영화를 스크린으로 보기 위해 서울까지 올라가는 일을 불사해야 한다. 또, 대구처럼 정치색이 분명한 도시에서 다툼 없이 무난하게 관계를 맺기 위해서 정치적 성향을 숨겨야 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소수자의 정체성 가운데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두 가지가 있으니, 그 하나가 ‘비혼주의자인 나’이고, 또 다른 하나가 ‘베지테리안인 나’이다.

 

 나는 육식을 전혀 하지 못한다. 어릴 때는 고기가 먹는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아서, 10대 후반부터는 내 철학과 양심에 부대낌이 덜한 식습관이란 생각이 들어서 기꺼이 베지테리안이란 정체성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정말 사소하기 짝이 없는 취향 하나가 나를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지 모른다. 외식을 하는 일이 늘 불편하다. 고를 수 있는 메뉴가 한정되어 있다보니, 밥 먹을 식당을 찾는 일부터 힘들다. 그나마 식당을 찾았다 해도 확인 절차가 남아있다. 비빔밥 하나를 시킬 때도 “고기 고명 올라가나요?” 물어야 하고, 국수를 하나 시키려고 해도 “혹시 국물로 고기육수 쓰나요?”하며 물어보아야 한다.


 허나 그런 불편함은 내 선택에 따르는 부록 같은 것이라 여기기에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회식이나, 술자리 등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이다.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가장 흔하게 먹는 것이 각종 고기인데 그걸 못 먹으니, 식사모임 자리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사실, 나는 고깃집에 가서 밥과 깍두기, 상추. 당근, 오이로 밥 한 끼를 때워도 아무 문제가 없다. 다 좋아하는 야채들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고기도 안 먹고 무슨 재미로 사냐고 핀잔주는 사람, 일단 한 번 먹어보라고 계속 권하는 사람, 고기를 안 먹으면 단백질 섭취에 문제가 있다고 친절하게 충고하는 사람까지 모두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으니…….

 

 비혼주의자인 나를 드러낼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힘들지 않은데, 왜 그리 걱정들이 많은지. 뭐 그리 궁금한 게 많고, 충고하고 싶은 게 많은지……. 정말 어떨 때는 예상 질문을 추려서 'Q&A'를 작성해 다니며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소수자로서의 삶이 좀 불편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불행하진 않다. 나만 하더라도 외식을 잘 못하는 불편함이 오히려 직접 요리하는 즐거움을 알게 했고, 혼자 사는 불안함이 건강에 더 신경 쓰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수의 잣대로 소수의 불편을 불행으로 몰아가는 시선들은 너무도 폭력적이어서,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그 폭력을 반복적으로 맞닥뜨리다 보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기 안 먹으면 힘들겠다. 뭐가 제일 힘들어요?”

 “혼자 살면 힘들죠? 어떤 게 가장 힘들어요?”

 그때마다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한 마디를 삼키느라 도를 닦는다.

 “너! 너 같이 묻는 사람! 너 같은 사람한테 일일이 대답하는 것!”


 다수의 삶이 얼마나 편하고 행복한지 경험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소수자의 삶 또한 다수파인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힘들고 불행하지 않다. 충분히 행복하다. 당신이 입만 닫아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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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2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일이 대답하는 것.. 하하


산딸나무 2008-08-26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게 정말 제일 피곤한 일이에요.
사람들이 왜 그리 쓸데없는 일에 궁금한 게 많은지...
 

  

 오월이 간다. 

 자연은 오월을 흐드러진 연두 빛으로 채웠다. 눈길 닿는 곳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이토록 아름다운 오월을 유달리 피곤하게 보낸 사람들이 있으니…….




 이혼을 하고 딸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친구가 있다. 이혼하기까지 너무도 힘든 과정을 거쳤음에도 그는 이혼을 늘 자기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자부한다.

 남편과 함께 살 때는 딸아이에게 ‘엄마처럼 살지 마.’라고 했는데, 지금은 ‘네가 나만큼만 살아내면 좋겠다.’고 얘기한단다. 예전엔 자식이 자기 인생의 ‘희망’이었지만, 지금은 자기 인생의 희망은 자기 자신이고 자식은 단지 ‘기쁨’일 뿐이라고 고백한다.

 남들이 다 하니까 하는 결혼에는 별다른 철학이 필요 없었지만, 남들이 잘 안 하는 이혼을 선택하기에는 철학이 필요하더라고, 그래서 철학을 가지고 살아내는 지금의 삶이 갑절이나 더 행복하다고 하는 그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가끔은 초등학생인 딸과 싸워서 삐치기도 하고, 때로는 밥벌이의 팍팍함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늘 씩씩하게 웃으며 살아간다. 

 

 또 한 친구는 나이 어린 애인과 알콩달콩 동거를 하고 있다. 결혼은 하기 싫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단다. ‘일단 살아보고’가 아니라, ‘평생 이렇게’를 합의한 두 사람에게 그 가정은 결혼식이나, 혼인신고가 대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신뢰가 뒷받침되어 있다. 두 사람은 꽤 잘 어울리는 평생연인이다.




 동갑내기 남편과 아이 없이 딩크족으로 살아가는 친구도 있다. 아이가 가정을 이루는 필수조건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그는 자기 부부는 ‘아이가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이가 없어서 행복한 사람들’이란다. 자신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해서 현명한 선택을 한 그들의 가정에는 아이의 웃음 대신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늘 집안을 채운다.




 그런데 아이와, 애인과, 남편과 더불어 각자가 꾸민 가정에서 잘 살고 있는 그들은 5월 한 달을 참으로 피곤하게 보냈다. 왜냐하면, 역설적이게도 오월이 바로 ‘가정의 달’이기 때문이다.

 오월 내내, ‘가정의 달’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정상적 가정’이라는 기준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불행’으로 감염시켰다. 겉으로 보기에 조금이라도 불량한 껍데기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이 즈음 특히 기승을 부리는 이 바이러스를 피할 수 없다. 독신가정의 가장이자 주부로 혼자 ‘룰루 랄라’ 신나게 살고 있는 나에게도 이 바이러스는 치명적이었다. 내  껍데기도 불량하기로 치자면 내 친구들과 어금버금하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 오월을 바이러스와 싸우며 피곤하게 보내고 나니, 좀 억울하다.

 도대체 정상적인 가정이 무엇이기에? 가정이란 것이 개인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라면 그 껍데기야 어떻든 구성원들이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우리 사회는 껍데기만 잘 갖추어지면 그 구성원들이 아무리 불행하게 살아도 ‘정상적’이란 딱지를 버젓이 붙여준다. 가정폭력과, 근친 성폭행, 노인학대 등이 오랫동안 묻혀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정상적 가정’이란 딱지를 떼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제 제발 껍데기에 집착하지 말자. 행복할 수만 있다면 껍데기 따위야 아무려면 어떤가. ‘평범하고 정상적’이란 그 딱지가 과연 내 행복과 맞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더 늦기 전에 한번 생각해 보자. 자칫하다간 껍데기 보수공사에 평생을 허비할 수도 있으니.




 드디어 5월이 간다. 속이 다 시원하다. 오늘 저녁엔 기념으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술이라도 한 잔 해야겠다. 껍데기는 불량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멋지게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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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26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른 알라딘으로 돌아와야 겠어요.. 산딸나무님.
나말고는 댓글 올려주는 사람이 없군요.. 하하

저는 또 쉬어야 합니다.
안녕히. 산딸나무님


산딸나무 2008-08-26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덕분에 늘 무플을 면하지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