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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 뒤의 최후의 아이들 - 좋은책문고 2 동화 보물창고 62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김두남 옮김 / 유진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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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구드룬 파우제방의 글은 늘 세상과 사람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따뜻한 관심이 어우러져 묻어난다. 글을 읽다 보면 어떤 글들은 한없이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떤 글들은 시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느끼게도 하지만, 그 두가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글을 흔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나는 구드룬 파우제방의 글을 좋아한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모두 즐겨 읽었는데, 특히 잊혀지지 않는 작품이 바로 <핵전쟁 뒤의 최후의 아이들>이었다.

핵전쟁이 일어나고 난 뒤, 시간의 흐름대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한 소년의 눈을 따라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핵전쟁의 무서움을 생생하게 몸으로 느끼게끔 보여준다. 그리고 행동하는 작가답게 핵전쟁의 공포가 인간의 삶을 좀먹는 이 순간에도 끝없이 핵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논리와 언론들의 시각을 예리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그녀의 비판은 바로 우리 자신들을 향해 있다. 모두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어른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핵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어머니의 말에, '정치인들이란 늘 똑같은 소릴 반복하잖아, 신경쓰지말고 여행이나 가자.'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정치에 무관심한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핵전쟁이 일어나고 살아남은 최후의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살인자'라는 비난을 듣는다. 왜 당신이 무언가 할 수 있을 그때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느냐고. 이 장면을 읽다보면 가슴이 섬뜩해진다.

작품 속에 '무언가 할 수 있는 그때'가 바로 내가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이 순간이고, '무언가 해야 하는 당신'이 바로 이 책을 읽고 있는 바로'나'이기 때문이다. 평화는 그저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 끊임없이 싸우고 노력한 결과이고, 그것들은 누구 하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힘을 모아 지켜낼 때 가능한 것이다. 그 명쾌한 진리가 아이들과 어른들의 가슴을 싸아하게 쓸어내리는 명작이다. 더 늦기 전에 읽어 보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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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모자와 무민 - 즐거운 무민가족 2 소년한길 동화 12
토베 얀손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한길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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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 되면 나는 내 눈으로 처음 본 나비의 색깔이 무슨 색일까 기대한다. 노랑색이면 행복한 여름이 될 것이고, 흰색이면 조용한 여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바다를 가면 푸르게 출렁이는 바다가 모두 딸기주스가 되어 있지 않은지 꼭 확인해 본다. 또,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기 전에 내 방안에 온갖 식물들이 밤사이 자라나 있지는 않은지 기대하며 살며시 눈을 뜨기도 하고, 달꺌 껍질을 버릴 때 마다 그것들이 흰구름이 되어서 방안을 떠다니지는 않을지 쓰레기통을 다시 한번 열어보기도 한다.

이 책이 내게 준 습관은 그것만이 아니다. 나는 핀란드란 나라에는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무민들이 살고 있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내가 무민 이야기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마밍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난 무민시리즈로 무민가족들의 긴 이야기를 비로소 다 만날 수 있었다. 토베얀손의 글과 그림을 다시 만나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하나 하나가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걸 확인 할 때 그 기쁨이라니...

사랑과 모험이 가득한 무민들의 세계. 그 속에 빠져드는 기쁨은 혼자만이 맛보기엔 너무도 아깝다. 우리 아이들에게 핀란드하면 뭐가 떠오르느냐 물었더니 '자일리톨 껌'이라고 한다. 한참을 배를 잡고 웃다가 서글프기도 하다. 자일리톨 껌 대신 사랑스러운 요정들 무민 가족을 떠올릴 수 있었던 내 어린시절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우리 아이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삶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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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을 점령하라 사계절 중학년문고 4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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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님의 동화는 줄곧 재미있게 봐 왔지만, 지난번에 나온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으면서 정말 이 작가의 필력이 '물이 오를 대로 올랐구니.'싶었다. 이렇게 자기 작품세계를 완성해가는 작가의 새 작품을 읽는 일은 설레임과 두근거림을 동반한다.

더구나 이번에 새로 나온 '과수원을 점령하라'를 사 들었을때, 김환영 화백이 그림을 담당했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더욱 기뻤다. 황선미작가의 글과 김환영화백의 그림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라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를 이야기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다. 표지에 그려진 할머니, 나무, 오리, 고양이, 쥐, 까치, 찌르레기, 귀신(책을 읽지 않아도 나무의 정령임을 한눈에 알았다. 통하는 느낌?) 들이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 사뭇 기대감에 들떠서 첫장을 넘겼다.

아파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 한가운데 배꽃마을의 마지막 모습인 과수원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의 고향이고, 동물들의 고향이고, 나무들과 꽃들의 고향인 그곳, 더 나아가서 인간들과 함께 살아왔던 신들의 고향. 어디 그뿐인가? 배꽃마을의 마지막 과수원은 인간이 자연과 한몸임을 기억하는 이데아였고, 인간다움이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배불리는 것에 있지 않음을 기억하는 유토피아였다.

아름다워라. 그 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 자연 속에서는 주인과 종이 없고 모두가 이웃이다. 텃새인 까치와 철새인 찌르레기의 관계가 그렇고, 고양이와 쥐들의 관계가 그렇고, 나무와 인간의 관계가 그렇고... 모두가 얽히고 얽혀서 나, 너를 따로 가리기 힘든 그야말로 대자연의 진리를 몸소 살아가고 있는 과수원의 식구들. 그네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기 그지 없다.

나는 종종 동화 작가는 생명을 노래하는 노래꾼이란 생각을 했다. 어린이란 무엇인가? 한때 어린이였음이 틀림없는 어른이란 무엇인가? 모두가 생명이 아니던가. 그 당연한 만고불변의 진리를 잊어가는 요즈음, 동화작가는 생명의 귀함을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저리게, 때로는 희망으로 노래하는 사람일 것이다. '과수원을 점령하라'는 그 생각에 꼭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살아있음이 유쾌해지고, 고마워지고, 따스해지는 느낌이 온 몸에 곰실곰실 퍼져나간다. 그리고 내 생명, 우리 인간의 생명 뿐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에 달뜬 희열을 느끼게 된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으나 모든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되는 동화, 그것이 최고의 경지에 이른 동화라면 나는 이 작품을 최고의 동화라고 서슴없이 꼽고 싶다.

책을 덮고 다시 처음본 표지를 들여다 본다. 과수원을 점령하라. 인간의 마지막 고향을 지켜라. 그 속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을 지켜내라. 자신이 인간임을 지켜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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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이야기 비룡소 걸작선 29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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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밥 먹는 시간을 빼고 꼬박 책에 매달려 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책이 나를 붙들고 있었다. 끝없는 이야기는 끝이 없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감동 또한... 미하엘 엔데의 작품은 내 중학 시절 '모모'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다. 모든 이에게 마음을 열어주던 여자 아이 모모는 내 이상형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은 모모는 그 당시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감동을 내게 선물했고 엔데의 작가적 상상력과 어린이에 대한 깊은 신뢰에 다시금 감동했다.

'끝없는 이야기'를 사기 위해 몇군데 서점을 들렀으나 모두 절판되었단 이야기만 들었다. 그 실망감이라니... 그래도 꿋꿋하게 구하고 다니던 중 드디어 묵직한 이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작품을 단연 판타지의 으뜸으로 꼽고 싶다. 판타지를 단순한 허구의 이야기쯤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판타지는 그냥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고, 그 세상은 이 현실 세계의 또다른 해석이고, 대안제시이다. 그 세상의 모든 질서와 법칙들이 그 세상을 지배하고 철학과 윤리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또다른 삶의 대안인 것이다.

그런 뜻에서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는 그 어떤 판타지도 넘보기 힘든 판타지 세계 그 자체를 소재로 삼은 뛰어난 도전이다. 판타지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얼마나 섬세하게 엮여 있는지, 그리고 판타지의 어두운 면인 거짓과 망상들이 어떻게 인간에게 오게 되었는지, 그 또한 인간의 책임인 것을... 그리고, 이 책이 전반부엔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바스티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후반부엔 그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에서 나는 작가의 놀라운 혜안을 감지했다.

내가 인간임을 자각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건강한 환상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 이 진리를 망각한 사람들의 결말이 어떠한 지도 엔데는 잘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합리적인 해석보다 이 책에 어울리는 느낌은 책이라는 창조물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뛰어난 선물, 바로 '자아의 발견'이다.

삭막한 세상에 하루하루를 성실한 현대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아등바등 용을 쓰고 있는 나에게 환상세계 주민들은 '삶이 무엇인지, 나란 누구인지'를 돌아보게 했다. 그들은 그들의 현실과 나의환상을 연결하였고, 나의 진실은 그들의 환상을 일깨워주었다. 책을 덮은 저녁, 세상에서 내가 경험한 가장 긴 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오늘을 잊지 않는다. 끝없는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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