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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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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김남주 시인이 브레히트, 하이네와 함께 묶어서 번역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라는 시집 속에서 파블로 네루다와 그가 사랑해 마지 않던 칠레 민중의 삶과 역사를 만났다. 혁명이 사랑과 시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머리로는 그 공식을 달달 외울 수 있었지만 정작 가슴에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던 때였다. 칠레의 혁명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그렇게 내 머리에 낙인찍히고는 잊혀졌다.

'일 포스티노'를 보고 다시 그 이름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나치게 잘 만들어진 그 영화는 섬의 아름다운 풍광과 파도 소리를 먼저 기억하게 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를 통해 만난 네루다. 그리고 마리오, 그리고 칠레는 내가 이십대에 줄기차게 부여잡고 살던 시와 사랑과 혁명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번역된 글을 이렇게 재미있게, 또 가슴 저리게 읽어본 기억이 언젠지 가물가물하다. 옮긴이의 실력과 더불어서 이 글에 대한 애정이 매끄럽고 유쾌한 우리말로 되살아나 조금의 껄끄러움도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진실한 삶은 원래 유치하기 짝이 없는 메타포의 연속이다. 인간이 가장 진실해지는 순간이 바로 자연 앞에 설 때와 사랑할 때, 그리고 꿈 꿀 때가 아닐까.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그 순간을 노래한 것일 터이다.돌아 보니, 현실보다 오히려 시가 삶과 더 살갑게 맞닿아 있는 것을 느낄 때 내 삶은 정말 행복하였다.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메타포가 필요없는 시대? 혁명의 꿈이 시들어 버린 시대? 사랑이 열정과 유치함에서 멀어지는 시대? 그래서 서글퍼지는 밤이 다시 온다면... 책꽂이에서 다시 이 책을 꺼내 밤을 새워 읽을 것이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시적인지, 시가 얼마나 인간적인지 느끼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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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밭으로 오세요
공선옥 지음 / 여성신문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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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가난을 알아?' 한마디로 통쾌했다. 공선옥의 소설은 작가가 살아온 삶의 이력때문인지 언제 읽어도 씩씩하고 유쾌하기 짝이 없다. 못배우고 가난해서 소외받은 사람들이 주인공들인데도, 음울하다거나 쾌쾌하지 않다. 작가가 가난을 살아내었고 그 힘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따로이 프로필을 살피지 않아도 가난하게 자랐다는 걸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이의 삶이 그이의 소설을 좋아하게 하는 반쪽의 요소라면 나머지 반쪽은 그이가 억척스러운 여성이고 어머니란 사실이다.

똑같이 가난해도 남성이 느끼는 가난과 여성이 느끼는 가난은 다르다. 아이엠에프가 터진 뒤, 그 청천벽력 같은 회오리에 휩쓸린 남자들이 술로 하루를 보낼 때, 그의 아내들은 파출부를 나갔고, 세상을 향한 분노를 그의 아내들과 자식들에게 주먹질로 퍼부을때, 사회는 그를 위로 했지만, 맞지 않기 위해 집을 나간 그의 아내들을 질타했다. 공선옥의 소설은 가난과 여성, 그 두가지 빼면 남는 게 없다는 말처럼 그 두가지가 고루 담긴 소설이어서 나는 공선옥의 소설을 두근거리며 읽는다.

이 책의 주인공, 필순이는 정말 내 이상형이다. 나는 싹싹한 여자보다 씩씩한 여자가 좋다. 머리 굴리는 것보다 팔뚝 걷어 부치는 게 더 빠른 여자가 좋다. 그리고, 어려운 말로 자기를 이해시키는 고고한 여자보다 제 발등에 떨어진 불보다 남의 콧등에 난 뽀로지를 먼저 '우짜냐'하며 너스레 떨어주는 무식한 여자가 좋다. 그런 여자는 세상이 자기를 몇번이고 속여도 '에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죽기밖에 더 하겠냐.'며 다시 일어나는 여자다.
나는 정말 그런 여자가 되고 싶다.

똑똑하고 배운 여자들이 '여성'의 대명사로 자리잡으며 또다시 여성성을 곡해 시키는 세상에서 -그걸 부추기는 가부장제 사회가 더 밉지만- '이게 진짜 여성의 삶이다.'고 보여주는 책이어서 더 사랑스럽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읽는 위인전 가운데 여성위인이 거의 없다는 얘길 한다. 그나마 있는 신사임당이나 유관순도 남성들의 눈에 필요한 부분으로 왜곡되어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떨까? 역할모델이 없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에게 한번 권해보고 싶다. 읽고 나면 가난한 여성으로 산다는게 절로 사는게 의연해 질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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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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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황석영의 소설을 읽을 수있다는 기쁨이 우선 앞섰다. 살아가면서 작가의 이름 석자만 믿고 주저없이 책을 살 수 있다는 것은 평생 좋은 친구를 얻는 기쁨만큼 값지고 귀한 것일 터이다. 내게 황석영은 대학 시절부터 삶으로, 작품으로 나를 배신하지 않은 친구이자 작가였다.

남북의 이데올로기 문제에 대한 진지하고도 풍부한 접근.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목 메이도록 가슴 아린 애정을 느낄 수 있게하는 그 섬세한 문체. 역시 황석영이었다.
내가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맑스의 사상에 빠져들고 젊은 시절을 온통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두 이데올로기를 저울질 하면서 살았기 때문일까? 이 작품은 내게 그야말로 바싹 다가와서 조근 조근 말을 걸어왔다.

산다는 것은 늘 느끼는 것이지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그러나 간단하지 않다고해서 모르쇠 할 수는 없는 것이 또 우리 삶이 가지는 매력이 아닌가. 해방 반세기를 훌쩍 넘어서 이 시점에 우리에게 분담의 아픔을 이렇게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작품이 나타난 것에 대해서 이 땅에 살아 남았음이 가슴아픈 사람으로 정말 감사한다. 마음을 열고, 나를, 내가 배워온 역사를 기꺼이 부정하고 새로운 인간의 역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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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Classics in Love (푸른나무) 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영하 옮김 / 푸른나무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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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보다 서른 살에 가까운 나이가 되면 많은 여자들이 결혼이라는 굴레에 묶여 지대한 탄압을 받는다. 서른을 넘기면 거의 '반병신' 취급을 당한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논리에 대해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여성과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겠다.' 정말로 좋은 사회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회현상을 꼼꼼히 뜯어 보면 허탈해진다. 그토록 자신있게 이십대를 넘긴 여자들이 자신의 사랑을 찾아 결혼을 하지만 그 늦은 사랑 또한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디에 있나? 바로 우리사회가 '사랑'이라는 담론에 대해 구체적이고도 진지한 고민을 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데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사랑. 사랑. 노래를 해대지만 정작 그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자기 중심을 세울수 있는 기회란 많지 않다. 고등학교 때까지 입시교육을 받으며 사랑이란 문제를 철학적으로 삶의 문제로 접근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없거니와 대학이란 델 가더라도 그 곳엔 미팅과 남자와 여자, 호기심, 연애 따위가 난무할 뿐 정작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 결혼이란 문제에 대해 자기원칙을 세운 사람이라면 이젠 사랑이라는 문제도 자기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에 도움이 되는 책으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누군가에게 이 책을 권하면서 나는 아주 큰 부담을 갖는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제목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거니와, 읽은 사람치고 다시 한번 더 볼 만한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 또한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담을 안고서라도 한번쯤은 친한 벗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그 까닭을 이 책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오해를 풀면서 해 볼까 한다.

먼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책이 무슨 내용인지는 대충 알고 있다. 베르테르라는 청년이 롯테라는 여인을 너무도 사랑하여 마침내 자살로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 과히 틀리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너무도 사랑하는 여인에게 버림받고 자살충동을 이기지 못한 죽음'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정도 서 있는 나이에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면 그 청년이 죽은 까닭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회를 향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음을 알게 된다.

젊은 괴테는 권위와 관습으로 굳게 닫혀있는 사회에 대해 갑갑함과 안타까움을 넘어서는 분노를 가진다. 그 분노가 가장 잘 표현된 글이 바로 이 작품이다. 결혼이란 제도와 사랑이란 감정 본연을 파헤치기를 두려워하는, 사회적으로 훈련된 인간들. 그리고 롯테의 약혼자, 알베르트로 대변되는 그 시대 '상식적인 사람들'의 사고. 그런 것들에 적당히 타협하며 살 수 없는 순결한 영혼이 바로 괴테가 그려낸 인물, 베르테르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롯테가 베르테르를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오해하고 있지만 절대로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약혼자보다 더 그를 사랑한다. 그녀의 감정을 군데군데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훈련된 자신의 이성에 짓눌려 진실한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사랑과 결혼은 곧바로 안정을 뜻하는 사회 속에서 그녀도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니까. 인간은 영혼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 자유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 인간다움의 시작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책은 사랑하는데 있어 자유롭고자 하나 그 감정의 원천을 다시 회의하고 파헤쳐 보는 것조차 용납이 되지 않던 시대, 열정적인 청춘의 고뇌가 그대로 담겨있는 괴테의 수작이다. 찬찬히 돌아보면 지금이라고 더 나아진 것이 있는가? 사랑이라는 인간에 대한 최고의 경외심이 아무런 조건 없이 가능한 사회인가? 모든 것을 거부하고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고전이 고전일 수 밖에 없는 까닭은 그것이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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