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 옛이야기를 통해서 본 여성성의 재발견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엄마, 이젠 안녕이에요."

내 어머닌 아주 자애로우신 분이시다. 육남매를 키우시면서 단 한번의 욕설도, 한번의 손찌검도 하지 않으신 정말 드문 사람이다. 내가 이런 얘길 친구들에게 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설마... 아무리..." 하지만 무엇이든 지극한 건 병이 된다. 어미니의 지극한 사랑 역시 내게 서른 중반에 혹독한 성장통을 겪게 했으니까.

나는 가족이든 친구든 그게 누구라 하더라도 대신 인생을 살아 줄 수 없다는 걸 명확하게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누구 때문에'라는 말로 내 삶의 긴장을 늦춰 본 적이 없다. 타인의 불행에 가슴 아파하며 내 삶을 휘적거리는 짓은 비생산적이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런데 그런 내가 유독 한 사람, 내 어머니의 삶만은 거리를 두지 못한다. 어머니의 아픔을, 걱정을 덜어드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내게서 비롯된 고민이나 아픔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지 못해 더 아프고 괴롭다. 

어머니가 자식을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자식 역시 어머니를 떠나지 못하는 마음이 있나보다. 나는 그 마음에 발목을 붙들려서 오랫동안 힘들고 힘들었다. 사랑하면서도 애통해하지 않을 수 있는 나의 능력이 왜 내 어머니에겐 전혀 쓸모없는게 되어 버리는 걸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줄곧 그저 그런 해석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시큰둥했었는데, 해님달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슴이 욱신거리고 아려와서 책장을 넘기기가 너무 힘들었다. 어머니의 품을 떠나야 하는 자식의 성장통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는 이미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어머니의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글쓴이의 조근조근한 타이름에 나는 계속 '나는 아니야. 내 경우는 이게 아니야.'하고 되뇌고 있었다. 인정하는 순간, 어머닐 내게서 떠나보내는게 두려워서, 계속해서 변명거릴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발뺌하고 싶어도, 내 병의 원인은 바로 내가 그토록 사랑해마지 않는 내 어머니임에 틀림없었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내 마음이 선뜻 받아들일수 없는 진실... 자식을 떠나 보내야 하는, 자식의 아픔을 지켜보면서 삭여야 하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걸까? 이렇게 아픈 걸까? 

힘들게 책을 읽어내려가다 마지막 장에 다다를 즈음, 눈물이 책 위로 뚝뚝 떨어졌다. 

"직관은 결코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그래, 나의 직관은 이미 알고 있다. 어머니의 삶 역시 나 아닌 누군가의 삶으로 받아들여야만 내가 진실로 행복해질 수 있단  것을. 하지만 나는 그 단절의 아픔을 회피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종교에, '효'라는 윤리에, 

밤새 뒤척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어머니께 전화를 넣었다.

"엄마, 나 당분간 바쁠 것 같애. 자주 전화 안 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내 걱정은 말고...  밥 많이 묵고..."

그 전화 한 통으로 내 긴 성장통을 매듭짓는 의식을 끝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울었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 미련, 죄책감... 갖가지 감정이 온 몽을 휘돌아 나간 뒤에 내 마음엔 단 한번도 담아본 적 없는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다.  충만한 가을 아침이다.   

'엄마, 이젠 안녕이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
프랑크 쉬르마허 지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족이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가족이란 사랑이었고, 동시에 미움이었다. 기댈 수 있는 어깨였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짐보따리이기도 했다. 가족에게 받은 사랑은 언젠가는 돌려주어야할 빚 같은 것으로 인식되면서 점점 가족들과 관계맺기가 힘들어졌다.

 내가 독신을 선택한 까닭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가족이란 관계를 더 이상 확대하고 싶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애매모호하고 정의내리기 힘든 이 관계를 타고난 것 외에 또 맺어야 한다는 것은 두렵고 무섭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가족학의 범주에 속하는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가족에 대한 이런 양가적 감정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았다. 모든 이들에게 가족은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존재란 것을.

 이 책은 지금까지 내게 그런 깨달음을 준 책들과는 조금 달랐다. 가족의 문제를 생물학적으로 진단하고 있다는 것부터 신선하기도 했지만 내용은 더욱 신선한 것이었다. 내 속에 각인되어 있는 가족에 대한 감정이 우리 세대가 자라난 시대환경의 결과물이라니...

 새롭고 신선하며 충격적이다. 가족에 대해서 끝내 풀리지 않았던 매듭이 조금씩 그 끄트머리를 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끝부분의 해석은 '지나 사피엔스'에서 여성이 인류의 진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파헤치는 것과 같은 맥락이어서 더 재미있었다.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글이라 별달리 힘들이지 않고도 가뿐하게 읽을 수 있다. 저출산의 사회적 원인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 여성의 가족 내 역할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은 사람, 이번 추석에 가족들과 만날 생각에 골치가 아픈 사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일 속의 이슬람과 여성 - 문화사 이야기 지식전람회 15
오은경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보수주의자는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한 글이 기억난다. 제 아무리 진보적인 남성일지라도 여성문제에서만큼은 어찌된 일인지 모호함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이 늘 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이슬람 여성들의 베일은 진보인가 보수인가?"라는 것이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남성들의 권력이 미우면서도 한편으론 부럽기까지 했다. 그 베일을 직접 쓰는 여성들조차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를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대답해야 하는, 혹은 대답을 강요당하는 현실이 버거웠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정말 멋진 답을 주었다. 베일이라는 상징을 통해서 이슬람 여성들의 삶을 찬찬히 훑어내려간 작가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게다가 그 눈길의 따스함이라니...  정확한 역사적 자료와 문화인류학적, 종교적 인식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시종일관 그들의 삶을 존종하는 자세가 느껴지는 글이었다.

 무엇보다 이 글의 묘미는 서구의 눈이 아닌 이슬람의 눈으로, 남성의 눈이 아닌 여성의 눈으로 '베일 속의 이슬람과 여성'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딱 그만큼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들의 삶 속에서 내내 동시대 우리 어머니와 나의 삶을 겹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정확한 인식을 목적으로 집어들었으나 뜨거운 공감을 남기는 책.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큰발 중국 아가씨
렌세이 나미오카 지음, 최인자 옮김 / 달리 / 200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남성과 동일한 시대를 살더라도 그 삶의 결이 결코 같지 않다. 똑같은 무늬의 천을 만들어 내더라도 직조방식이 다를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여성의 삶에는 더 세심한 눈을 가지지 않으면 결코 찾아낼 수 없는 진실들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섬세한 결을 따라잡는 작가의 꼼꼼한 눈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목에서 살짝 눈치를 챈 사람도 있겠다. 이 글은 ‘아이린’이라는 한 여자아이가 중국 전족 풍습에 맞서서 씩씩하게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간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한 마디가 이 책의 무늬를 보여줄 순 있지만 직조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삶의 결까지 말해주진 못한다.

 

   “그녀는 싸웠다. 그래서 이겼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의 적은 구제도와 남성들이었다.”도 아니다. “그녀는 성공했다.”는 더더욱 아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그녀의 삶도 미묘하고 복잡한 인간관계, 역사 속에서 우여곡절을 거듭한다.

 

  아이린이 전족을 거부하려고 했을 때,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은 할머니, 어머니가 아니라 바로 변화하는 중국의 근대를 읽어냈던 아버지였다. 아이린은 전족의 고통을 아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않는가. 사랑한다고 해서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랑할 순 없다는 것을. 작가는 지금도 여전히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는 논리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를 감동적인 깨달음으로 보여준다.

 

  또한 아이린이 전족을 거부하고 얻은 고단한 삶 끝에 얻어낸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깊이있는 통찰로 말해준다. 100년 전 버지니아 울프가 자유의 문을 열 수 있는 두 가지 열쇠라고 말한 것 가운데 ‘고정적인 소득’이 있었다면 아이린에겐 큰 두 발이 있었다. 전족을 거부한 그 발은 단순히 똑바로 걸을 수 있는 발이 아니라 바로 ‘노동할 수 있는 두 발’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낡은 관습과 억압에 맞서서 싸우는 많은 여성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들이 가리키는 달이 아니라 손가락 끝을 보면서 비난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녀들 스스로도 그 손가락에 고민의 끝자락을 걸어놓아 버리기도 한다. ‘큰발 중국 아가씨’를 읽고 나니, 문득 묻고 싶어진다.

 “그대, 무엇을 얻고 싶어서 싸우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당을 나온 암탉 (양장)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동화에 대한 오해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오해는 이 글을 읽고 있을 바로 당신이 하고 있을 생각입니다.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맞는 말이기도 한 이 생각을 동시에 틀린 생각이기도 합니다.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또한 '한때는 아이였으이 틀림없을' 어른을 위한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권하기에 앞서 이 땅에서 여성으로 고단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당신에게 먼저 권하고 싶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

'암탉'이라는 말의 어감이 그리 유쾌하진 않지요? 아마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얘기서부터 '알이나 잘 낳으면 그만인 암컷'이란 은유가 떠오르기 때문이겠지요.

이 책에 나오는 암탉도 '알 낳는 일밖에는 할 줄 모르는-사실은 알 낳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었던'양계닭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기 시작합니다.  그가 최초로 한 일은 바로 자신의 이름을 짓는 일입니다. '잎싹'. 그가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는 순간, 이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잎싹의 꿈은 마당에 사는 암탉처럼 자기가 낳은 알을 품어서 병아리를 까는 것입니다. 예쁜 병아리를 낳아 기르고 싶어서 그는 마당으로 탈출할 게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성공합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가 상상할 수 있는 뻔한 전개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제목이 '마당에 나온 암탉'이 아니라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데에 이 이야기의 철학은 상상력을 타고 날아오르기 시작합니다.

그 비상에 동참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펼쳐드세요. 그리고 읽어보세요.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양계장 안의 닭인가, 마당 안의 닭인가, 마당 밖의 닭인가?

여성임이 자랑스러워지는 책,  어머니를 부둥켜 안고 울고 싶은 책, 내 아이를 다시금 돌아보는 책, 분노를 넘어서 세상과 화해하는 황선미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 을 당신께 권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