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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발 중국 아가씨
렌세이 나미오카 지음, 최인자 옮김 / 달리 / 2006년 3월
평점 :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남성과 동일한 시대를 살더라도 그 삶의 결이 결코 같지 않다. 똑같은 무늬의 천을 만들어 내더라도 직조방식이 다를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여성의 삶에는 더 세심한 눈을 가지지 않으면 결코 찾아낼 수 없는 진실들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섬세한 결을 따라잡는 작가의 꼼꼼한 눈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목에서 살짝 눈치를 챈 사람도 있겠다. 이 글은 ‘아이린’이라는 한 여자아이가 중국 전족 풍습에 맞서서 씩씩하게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간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한 마디가 이 책의 무늬를 보여줄 순 있지만 직조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삶의 결까지 말해주진 못한다.
“그녀는 싸웠다. 그래서 이겼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의 적은 구제도와 남성들이었다.”도 아니다. “그녀는 성공했다.”는 더더욱 아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그녀의 삶도 미묘하고 복잡한 인간관계, 역사 속에서 우여곡절을 거듭한다.
아이린이 전족을 거부하려고 했을 때,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은 할머니, 어머니가 아니라 바로 변화하는 중국의 근대를 읽어냈던 아버지였다. 아이린은 전족의 고통을 아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않는가. 사랑한다고 해서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랑할 순 없다는 것을. 작가는 지금도 여전히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는 논리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를 감동적인 깨달음으로 보여준다.
또한 아이린이 전족을 거부하고 얻은 고단한 삶 끝에 얻어낸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깊이있는 통찰로 말해준다. 100년 전 버지니아 울프가 자유의 문을 열 수 있는 두 가지 열쇠라고 말한 것 가운데 ‘고정적인 소득’이 있었다면 아이린에겐 큰 두 발이 있었다. 전족을 거부한 그 발은 단순히 똑바로 걸을 수 있는 발이 아니라 바로 ‘노동할 수 있는 두 발’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낡은 관습과 억압에 맞서서 싸우는 많은 여성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들이 가리키는 달이 아니라 손가락 끝을 보면서 비난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녀들 스스로도 그 손가락에 고민의 끝자락을 걸어놓아 버리기도 한다. ‘큰발 중국 아가씨’를 읽고 나니, 문득 묻고 싶어진다.
“그대, 무엇을 얻고 싶어서 싸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