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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약국 -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언어학자의 51가지 처방전
박현주 지음, 노석미 그림 / 마음산책 / 2006년 8월
평점 :
간만에 시간이 남아 컴퓨터에 담겨있는 이런 저런 원고들을 정리했다. 분류해 놓은 폴더에 정리하지 않은 글들이 중구난방 넘쳐나서 한참을 찾아 다시 정리하느라 애 먹었다. 그런데 내가 만들어 놓았음에도 뭐가 들어있는지 기억나지 않는 폴더가 있었다.
'호수에 잠긴 돌멩이'
폴더 이름으로 뭐 이딴 걸 적어 놨을까 싶어서 클릭해 들어갔더니, 세상에, 그건 내가 그동안 사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폴더를 따로 만들 때, 이 사랑이 끝나도 이 마음만은 영원히 빛나리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호수에 돌멩이가 떨어지면 파문이 멎은 뒤에도 돌멩이는 호수 바닥에 영원히 잠겨드는 것 처럼.
딴에는 어린 마음에 신경써서 만든 제목인데, 이젠 그게 뭐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다니... 갑자기 마음이 헛헛해졌다.
그때 그 마음들이 어땠나, 그 돌멩이들을 하나 하나 확인해 보았다. 내가 보낸 편지임에도 참 아름다운 글들이어서 읽는 재미와 감동이 쏠쏠했다. 아, 내가 글을 이렇게 잘 썼나, 싶을 만치... 역시 연애는 모든 사람을 시인으로 만든다더니, 나도 예외가 아니었구나 싶었다.
근데, 받는 사람의 이름을 따로이 부르지 않고 써내려간 한 편의 편지가 있었다. 내가 당시에 이 사람에게 얼마나 애틋했었나,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편지였다. 그런데...
이걸 도대체 누구한테 보낸 거였지?
받는 사람이 누구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거다. 글 쓴 연도를 써 놓았으면 그 즈음 사귄 사람이겠거니 싶을텐데, 날짜만 달랑 써 놓았으니 아무리 그 감정을 되짚어 찾아보아도 이게 내가 쓴 글이기는 한가 의심스러울만치 기억이 똑 끊어지는 것이다.
아, 호수 안에 돌멩이가 남기는 남는데 그게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구분이 안 된다니... 사랑의 덧없음이여...
혼자서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십여분을 깔깔거리면서 나뒹굴었다.
'로맨스 약국'을 읽는 느낌이 바로 이 상황의 느낌 그대로이다.
날 것 그대로 사랑, 날 것 그대로 인생. 그 유쾌함...